조선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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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조선 문종의 후궁
사칙 양씨 | 司則 楊氏 |
|
출생 | <colbgcolor=#fff,#1f2023> 1414년 |
사망 | 1453년 이후 (향년 39세 이상) |
배우자 | 문종 |
자녀 |
슬하 2녀 장녀 - 경숙옹주(敬淑翁主, 1439 ~ ?) 차녀 - 왕녀(1450 ~ 1451) (조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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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문종의 후궁. 문종의 유일한 서출 소생인 경숙옹주의 어머니다.[1]2. 생애
현재까지 전해지는 기록이 없어서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 다만, 사칙(司則)은 동궁에 소속된 종6품의 궁인을 뜻하므로 본래 동궁전에서 일하는 궁녀였을 것으로 추측된다.《청룡사사지》에 의하면 양씨는 문종과 동갑이며, 신분은 미천하였다고 한다. 13세 때 궁인으로 들어왔는데, 자색이 아름다웠다고 한다. 당시 세자빈( 순빈 봉씨)은 부덕하여 세자(문종)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그런 와중에 양씨가 세자의 눈에 들어 딸( 경숙옹주)을 낳았다고 한다. 이에 봉씨는 자신은 세자의 사랑도 받지 못 하고 아이도 낳지 못 하는데 양씨가 아이를 낳자, 질투심에 양씨를 죽이려다가 도리어 폐출당했다고 한다.
한편 조선의 모든 후궁 중 사칙이라는 호칭을 받은 것은 양씨가 유일하다. 사칙은 왕세자궁에 딸린 내명부의 벼슬 중 하나이며, 1405년( 태종 5년)에 설치되었다. 예의와 알현에 관한 일을 담당하며, 품계는 종6품이다. 《경국대전》 제정 후 수칙(守則)으로 호칭이 바뀌었다.
문종과의 사이에서 두 딸을 낳았다. 장녀 경숙옹주는 강자순과 혼인하였으나 일찍 요절하여 후사를 남기지 못했고[2], 차녀는 2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3]
3. 매체에서의 등장
- 대체역사물 《 내가 바로 세종대왕의 아들이다》에서는 고려 시절 정착한 위구르계 무슬림의 후손이라는 설정을 넣어서, 큰 가슴과 갈색머리에 평범한 조선 남자들보다 키가 큰 서구적 외모의 미인으로 등장한다.
[1]
문종은 여러 후궁이 있어서 그들로부터 자식을 얻었지만 모두 요절하였다. 그나마 성년까지 살아서 책봉까지 된 서출 소생은 경숙옹주 하나 뿐이다.
[2]
강자순은 경숙옹주가 죽고 현감 이길상의 딸과 재혼하였다. 그 바람에 강자순의 재혼을 재취(계실)로 보느냐, 첩으로 보느냐의 논쟁이 일어났는데 결국 첩이 된다.
[3]
문종실록 9권, 문종 1년 8월 12일 정축 1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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