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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6-11 16:01:43

귀인 윤씨(덕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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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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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조선 덕종의 후궁
귀인 윤씨 | 貴人 尹氏
출생 미상
사망 미상
재위기간 조선 소훈
1456년 10월 1일 ~ 1475년 11월 16일
조선 숙의
1475년 11월 16일 ~ 1483년 10월 1일
조선 귀인
1483년 10월 1일 ~ 미상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8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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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본관 파평 윤씨
부모 부친 - 윤기(尹沂, 1369 ~ 1422)
모친 - 안동 김씨
배우자 덕종
자녀 없음
}}}}}}}}} ||
1. 개요2. 생애3. 무오사화4.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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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귀인 윤씨(貴人 尹氏, 생몰년 미상)는 조선 덕종 간택 후궁이다.

2. 생애

행 태일전직을 지낸 윤기(尹沂)의 딸로, 1456년(세조 2년) 음력 8월 23일 신선경의 딸, 권치명의 딸과 함께 당시 세자였던 덕종(의경세자)의 소훈으로 뽑혔으며[1], 같은 해 음력 10월 19일에 입궁하였다[2]. 윤씨는 양반 사대부 가문의 출신으로 정식으로 간택되어 입궁한 후궁이었으나, 남편 의경세자가 요절하는 바람에 소생이 없었다[3]. 한편 남편 의경세자가 왕으로 추존되자 윤씨도 종2품 숙의에 봉해졌으며, 1483년(성종 14년) 음력 6월 15일 종1품 귀인에 봉해졌다[4].

3. 무오사화

1498년(연산군 4년) 음력 7월 12일, 《성종실록》의 편찬 중 사초에 '세조가 며느리뻘 되는 귀인 권씨, 귀인 윤씨를 범했다.'라는 내용을 기록했다 하여 당시 사초를 쓴 김일손, 허반 등을 잡아들여 국문하였다[5]. 당시 김일손은 허반에게서 들은 내용을 토대로 하여, '세조가 윤씨에게 지나치게 많은 상을 내리고, 많은 땅과 노비, 집까지 내려주었으며, 크고 작은 거둥이 있을 때마다 반드시 어가를 수행하게 하니, 의심스러운 일이다.'라는 내용을 실었던 것이다[6]. 그 외에도 조의제문 등이 빌미가 되어 무오사화가 발생하였다[7].

4. 가족 관계


[1] 세조실록 5권, 세조 2년 8월 23일 경신 2번째기사 [2] 세조실록 5권, 세조 2년 10월 19일 을묘 4번째기사 [3] 세조실록 10권, 세조 3년 11월 24일 갑신 2번째기사 [4] 성종실록 155권, 성종 14년 6월 15일 병자 2번째기사 [5] 연산군일기 30권, 연산 4년 7월 12일 병오 2번째기사 [6] 연산군일기 30권, 연산 4년 7월 21일 을묘 3번째기사 [7] 네이버캐스트 〈무오사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