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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1 01:12:01

에베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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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남아메리카 아콩카과 산 6,962m
3 북아메리카 데날리 산 6,194m
4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산 5,892m
5 유럽 옐브루스 산 5,64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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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Mount Everest
파일:에베레스트.jpg
에베레스트산의 경관
높이 8,848.86m (29031.69 ft, 높이 문단 참조)
/ 세계 1위봉
언어별
명칭
영어 Mount Everest
티베트어 ཇོ་མོ་གླང་མ
(jo-mo-glang-ma)
네팔어 सगरमाथा
(Sagarmāthā)
중국어 珠穆朗玛峰
(Zhūmùlǎngmǎ Fēng[1])
지형학적
상대높이
8,848.86m[2]
모체
봉우리
없음[3]
위치한
국가

[[네팔|]][[틀:국기|]][[틀:국기|]]

[[중국|]][[틀:국기|]][[틀:국기|]]
산맥 히말라야산맥
최초
등정
1953년 5월 29일
에드먼드 힐러리 경 (Sir Edmund Hillary, 뉴질랜드)
텐징 노르가이[4] (Tenzing Norgay, 네팔/ 인도)
역대
등정 횟수
11,346회 (8,000m급 14좌 중 1위, 2022년 7월 기준)
등반 중
사망률
종합 5.7% (8,000m급 14좌 중 10위)
1990년대 이전 37% (8,000m급 14좌 중 4위)
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
이름 한국어 사가르마타 국립공원
영어 Sagarmatha National Park
프랑스어 Parc national de Sagarmatha
국가·위치 네팔 솔로쿰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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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유형 <colcolor=#373a3c,#dddddd> 자연유산
등재연도 1979년 등재
지정번호 120
등재사유 (vii)[5] }}}}}}}}}

1. 개요2. 명칭3. 높이4. 등정5. 최초의 완등6. 환경 문제7. 관광 자원8. 여담9. 창작물에서의 등장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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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베레스트산(Mount Everest)은 해발 8,848.86 m의 으로, 히말라야산맥 최고봉이며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네팔 중국 티베트 자치구의 국경선이 이 산을 지난다.

2. 명칭

네팔어, 산스크리트어 명칭은 사가르마타[6](सगरमाथा, '하늘의 이마'), 티베트어 명칭은 초모랑마(ཇོ་མོ་གླང་མ, '세상의 어머니')이다.[7] 중국어에서는 티베트어 명칭을 음차해 주무랑마봉(珠穆朗玛峰)이라 한다. 북한에서는 80년대에 중국어 명칭을 따서 '주무랑마봉'으로 부르다가 2000년대 이후 중국어의 l발음을 고려하여 지금까지 '주물랑마봉'으로 부른다. 세계의 지붕(the roof of the world)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경우에 따라 히말라야산맥 전체를 가리키는 별명으로도 쓰인다.

1852년경 세계 최고의 산임을 확인할 당시 동인도회사의 측량국장은 앤드루 워 경(Sir Andrew Scott Waugh, 1810–1878)이었는데, 존 크라카우어의 「희박한 공기 속으로」에 따르면 캘커타 지부에서 파견 나와 있던 벵골 출신의 라다나트 시크다르가 최고봉임을 알아낸 유력한 직원이라고 한다. 그는 토착 지명의 보존을 장려하는 영국 정부의 공식적인 정책을 따르지 않고 전임국장인 조지 에버리스트 경(Sir George Everest, 1790-1866)[8]의 공적을 기려 그의 성씨를 붙여 명명하였고, 비로소 에베레스트 산으로 세간에 알려졌다.

알래스카에 위치한 매킨리 산이 코유콘 아타바스카어 데날리로 바뀐 사례와 같이 전세계 고산들이 차츰 서양 언어 중심에서 현지 언어 지명으로 정정하는 추세이나, 에베레스트산은 그 저명성에서 에베레스트라는 이름으로 계속 통용된다. 세계 제일의 산으로 워낙 유명세가 확고한 데다가, 현지어 지명도 남쪽 네팔어 이름과 북쪽 티베트어 이름이 따로 있어 에베레스트를 밀어낼 후보 단일화가 안 되기 때문이다.[9]

3. 높이

해발 8,848m냐 8,850m냐는 논란이 많은데, 직전 GPS 측량 결과에서는 후자가 실제 높이에 근접한 값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다 2020년 중국, 네팔 공동 측량에서는 8,848.86m로 발표되었으며, 60년만에 수정되었다. 관련 기사

다만 얼음에 의해 어느 정도의 오차는 나올 수밖에 없다고 하니 대충 이 정도 높이라고만 알아두자. 중국에서 측량한 결과를 인용하자면, 정상의 암석부의 높이가 8,845m, 그 위에 3~5m 정도의 녹을 일이 없는 얼음층이 덮여있다고 한다. 산의 높이는 히말라야 산맥이 대륙판이 만나는 경계에 있어서 앞으로도 계속 높아질 것이다.

또 에베레스트는 해수면을 기준으로 한 해발고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지만 지구 중심부터 재면 에콰도르의 침보라소 산이 더 높은데, 이는 지구가 완전한 구형이 아니고, 자전의 영향으로 적도 부분이 더 불룩한 타원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도 인근의 침보라소 산이 지구 중심으로부터 가장 멀다. 침보라소 산의 정상은 지구 중심과 6,384.4km 떨어져 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고도를 잴 때는 해수면을 기준으로 하므로 이런 식의 계산을 하는 경우는 없으며, 에베레스트의 경우 원체 높기 때문에 지구 중심으로부터 재도 세계 5위의 산이 된다. 이 밖에 해저의 깊이를 합산할 경우 하와이의 마우나케아가 10,203m으로 더 높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이 역시 실생활에서 쓰이지 않는 계산법으로 토막상식에 지나지 않는다.

4. 등정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ount-Everest.jpg
티베트 고원에서 바라본 에베레스트 산 북벽(북쪽 사면)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ount_Everest_as_seen_from_Drukair2_PLW_edit.jpg
에베레스트 산 남벽(남쪽 사면) 항공 사진. 앞에는 눕체와 로체가 있다[10]
파일:external/ericbolz.com/everest_kangshung_face2.jpg
자주 보던 티베트 쪽 북벽이나 네팔 쪽 남벽이 아니라 좀 생소해 보일 수도 있는 에베레스트의 동쪽 사면 모습.
파일:everest_north1.jpg
북쪽(티벳)쪽 상공에서 본 루트[11]
파일:everest_south.jpg
남쪽(네팔)쪽 상공에서 본 루트[12]

세계에서 가장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산이기도 하나 명성에 비해 등정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워낙 여러 사람들이 올라가서 길도 훤한 데다 등정하기 쉽도록 시설 같은 것도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산세나 주변 지형 자체가 비교적 등정하기도 쉽다. 두 번째로 높은 K2을 등정하는 게 훨씬 까다롭다. 진짜 산을 좋아하는 산악인들은 K2 등정을 훨씬 높게 쳐주며, 이쪽은 생각 이상으로 험준해서 일반인의 상업 등반도 거의 없다고 한다. 수치로만 봐도 K2의 동계등정은 최초 등반 시도 후 119년이 지난 2021년에 처음 나왔으며, 동벽과 북벽은 지금까지 한명도 오르지 못했다. 게다가 K2의 북벽은 시도된 적도 없다. K2뿐 아니라, 세 번째로 높은 칸첸중가나 순위권에서 좀 아래쪽인 낭가파르바트(9위), 안나푸르나(10위) 등도 에베레스트보다 까다로운 산으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다른 8,000m 고봉들 기준이니 어쨌거나 세계에서 오르기 어려운 산들 중 하나다. 산악인들 외에는 오르기 힘들다.

올라가기 쉽다고 하는 이 산조차도 많은 전문 등반가들이 목숨을 잃는다. 고산병을 비롯하여 엄청난 강풍에 전문가들도 고전하기 일쑤며, 2011년까지만 해도 전 세계에서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여길 오르다가 영원히 혹은 살아서 내려오지 못했으며, 또한 도중에 몸이 아파서 병원으로 가던 도중 숨진 사람도 따로 또 많다. 2015년에도 24명이 사망했으며 이 중 정상 등정에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참고로 2000~2010년까지만 해도 여기에서 등산 도중 목숨을 잃은 사람이 60명이 넘는다. ( 등정중 조난사망의 분석)

등반 또는 하산 도중에 숨진 사람들의 시신은 회수하기 어려워 사망한 자리에 방치되고, 이후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지표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 대표적 예시가 '초록 장화'(Green Boots). '초록 장화'는 에베레스트에서 가장 유명한 시신으로, 동북쪽 능선의 해발 약 8,500m 정도 지점에 위치해 있다. 신원이 파악되지 않아 이름 대신 눈에 잘 띄는 형광색 초록 장화로 불리고 있으며, 이 사람의 정체는 1996년 이 산을 오르다가 실종된 인도인 등산가 '체왕 팔조르(Tsewang Paljor)'로 추정된다. 1996년 당해에 에베레스트 산에는 눈보라가 불어 8명의 등산가가 죽은 일이 있었다. 시신은 루트 근처의 석회암 동굴에 누워 있는데, 이는 정상까지의 거리를 가늠하는 지표로 기능하는 한편 그 구간이 수많은 등산가들의 목숨을 앗아간 거친 바위투성이 능선임을 시사한다. 이와 같은 '고비'가 8,500m대, 8,600m대, 8,700m대에 하나씩 존재하는데, 특히 두번째 것이 극악으로 여겨진다.

일단 시신의 체중과 장비 무게도 무게이지만, 이렇게 동사(凍死)한 시신의 경우 눈과 얼음이 쌓여 100kg이 넘는 무게를 갖게 된다. 남극에서 사망한 로버트 스콧의 시신도 비슷한 이유로 가져오지 못하고 현지 매장했다. 사망할 상황이면 극한 상황이라는 뜻이므로, 같이 등반한 대원들도 본인이 살아남기 급하니 시신을 끌고 내려올 수가 없다. 시신 회수를 위해 등반대가 다시 가는 일도 있지만, 비용만이 문제가 아니라 조난이나 탈진될 만큼 위험한 곳이면 회수 팀도 숨질 수가 있어서 산에다가 시신만 한구 더 생기는 꼴이 되기에 가기 어렵다.

고도가 높아 춥기 때문에 시신이 부패하지 않고 미라화 되거나 반쯤만 부패하거나 풍화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골짜기에 떨어져 죽은 경우엔 빙하에 묻혔다가 수십 년 만에 하류로 밀려 내려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버려진 시신이 에베레스트에만 200구가 넘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런 높은 산을 오르는 등산가들에게 미라나 시체는 질리게 봐서 봐도 그리 놀라지 않는다고 할 정도. 헬리콥터를 써서 가져오면 되지 않나 생각할 수 있는데, 고산은 기상 변화가 극심하고 바람이 심해서 비행이 매우 위험하다.[13] 고산 등반을 그린 K2 영화에서도 비록 기후가 훨씬 더 험악한 K2지만 비행이 위험해 헬기가 뜨지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에베레스트는 정상에 연이틀 헬기가 착륙한 기록이 있으니 굳이 가져오자면 기상상태 좋은 날에 하면 불가능하지 않고 실제로도 사례도 있으나, 부상자도 아닌 이미 죽은 시신을 회수하는데 돈을 쓰고 위험을 감수할 단체는 드물다. 저 사례도 정부기관인 외교부가 힘을 써서 수습한 것이지 일반 등반자들은 꿈도 못 꾼다. 시신 회수에 1,500만 원, 현지 화장 등 처리에 다시 1,500만 원 등 경제적인 부담이 큰 데다, 산을 좋아하던 산악인 등반가가 에베레스트에 묻혔으니 유가족 입장에서는 그대로 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위의 사례의 경우 그나마 해발 고도가 낮은 베이스캠프에서 벌어진 참변이기 때문에 헬기 회수를 한 것이었다.

에베레스트 오염의 심각성이 대두된 최근에 와서는 청소 등반대가 8천미터 이상에서도 시신과 쓰레기를 회수해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고도와 환경이 맞으면 헬리콥터를 이용하기도 하는 모양. 2018년작 영화 Death Zone: Cleaning Mount Everest는 이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

등반로 중 특히 북동쪽의 3개 봉우리를 넘어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험난한데, 여러 등산가들이 이 루트를 도전했다가 죽는 바람에 시체 밀집 지역이 되어버려 알록달록한 등산복이 많다고 해서 우스갯소리로 '무지개 계곡(Rainbow Valley)'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특이하게도 실족사보다 고산병으로 인해 겉모습만 보면 그냥 멀쩡한 상태로 가만히 죽는 경우가 많으며, 캠프 코앞에서도 이러한 시체가 많다. 죽음의 구역에서 배낭만 남겨져 있는 경우 항상 시신은 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등산가들의 수기를 읽어 보면 이렇게 죽는 사람들은 고산병으로 인한 판단력 저하로 인해 모든 것을 포기한 듯이 주저앉거나 누워서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제3자가 보기엔 마치 멀쩡한 사람이 뭔가에 홀린 듯 죽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더 섬뜩하다고 한다. # #

대한민국도 2004년 계명대학교 등산부팀이 여기 등정에 도전했다가 산악인 박무택, 장민, 백준호 3명이 사망했고, 박무택과 절친한 사이였던 선배 산악인 엄홍길이 이 소식을 듣고 1년 뒤인 2005년 휴먼원정대를 조직해 이들 중 박무택[14]의 시신을 수습해 운구를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그 자리에 돌무덤을 만들어 준 일이 있었다. 이 휴먼원정대 프로젝트를 다룬 황정민 주연의 영화인 히말라야가 2015년 12월 개봉했다. 자세한 건 문서 참고.

그 밖에도 2007년에도 산악인 이현조, 오희준이 등반 도중 낙석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이 두 사람을 잘 알던 만화가 허영만도 당시 식객[15] 연재를 잠깐 멈췄으며 단행본 19권 바지락 칼국수 에피소드 후기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참고로 이현조는 후술하는 김창호와 함께 2005년에 고난도로 악명 높은 낭가파르바트 루팔벽 중앙립 루트를 메스너 형제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등정한 바 있다.

2013년에도 에베레스트 등반을 끝으로 14좌 완등을 끝낸 김창호 대장이 이끄는 등반대원 중 산악인 서성호가 하산 중 8,050m 지점에서 취침 도중 고소증과 탈진으로 인해 사망했다. 이 원정대 중 김창호 대장과 서성호 대원 두 명은 무산소 등정을 하고 있었다. 하산 이후 캠프 4 지점에서 쉬고있던 서성호 대원의 상태가 좋지 않아 동료들과 셰르파가 산소 마스크를 쓸 것을 권유했지만 서 대원은 끝까지 거부했고 결국 취침 도중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건너고 말았다. # 이처럼 많은 경험과 기술이 있는 전문 산악인들도 위험한 곳에서, 일반인들에게 닥칠 수 있는 위험은 더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2022년 12월에는 40대 한국인 남성이 홀로 에베레스트 트레킹 중 고산증으로 사망했고, 2023년 1월, 단독 트레킹 중 이던 한국인 5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된데 이어 11월에는 에베레스트 서부 고쿄리(Gokyo Ri)에서 등반하던 20대 한국인 남성이 사망했다. #

즉, 한 해 두 자릿수 사망자가 나오며 아무리 전문 산악인이어도 목숨을 걸고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장소를 일반인이 쉽게 생각하고 등반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행위이다. 혈중 산소포화도가 90% 이하로 떨어져도 신진대사가 급격히 하락하고, 산소공급이 필요한 상황인데, 고도 6000m에서는 70%, 8000m에서는 혈중 산소포화도가 무려 50% 이하로 떨어지니 생명을 담보할 수 없다.

다만 돈 많고 산은 오르고 싶은데 체력은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약 5만 달러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면 정상까지 운반해주는 상업등반대도 있다고 한다. 등반 전문 사이트의 평가에 따르자면 높이가 가장 큰 문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붐빈다는 것도 등정하기 까다롭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한다.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에베레스트'가 다룬 1996년의 상업 등반대가 몰려 생긴 참사도 도리어 에베레스트에 사람들이 몰리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일 년에 에베레스트 등정자가 수백 명 단위이며, 한 여름 등산 시즌에는 베이스캠프에만 상업등반대 1,000여 명이 운집하며 하루에도 20여 개 팀씩 정상에 오른다고 한다. 심지어 가이드가 돈 받고 정상에 오른 뒤 하산 도중에 힘들어하는 고객을 버리고 내려오고, 그거로 모자라서 그 죽은 고객의 고급 침낭을 가지려고 한 사례까지 있다. 반대로 움직일 기력이 떨어져서 죽어가는 고객을 놓아두고 혼자서 내려올 수도 있지만[16] 죽어가는 고객을 버리지 않고 함께 사망한 직업정신이 투철한 가이드도 있다.

이외에도 등반하면서 베이스캠프부터 세우는 4, 5개 전진 기지를 세울 때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투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는 등반용 도끼 같은 도구들이 훌륭한 무기가 된다. 또 하산 중에 자기 산소가 모자라면 아무 텐트나 뒤져서 산소통을 갖고 가는 경우도 있다. 이러면 그 산소통의 원래 주인이 필요할 때 없기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게다가 베이스캠프에서는 그 지역 여인들이 와서 매춘도 이루어진다고 한다. 어떤 등산인은 베이스캠프에서 진상 짓을 하는 다른 등산인에 대한 이야기를 자기 블로그에 썼는데, 그 진상이 금방 그것을 읽고 열이 뻗쳐서 자기가 고용한 셰르파들을 등산용 도끼로 무장시키고 찾아오는 바람에, 자기 셰르파들이 똑같이 도끼를 들고 지켜주지 않았다면 베이스캠프가 무덤이 되었을 거라고 한다. <에베레스트의 진실> by 마이클 코더스

파일:에베레스트_힐러리스텝_사람_줄_바글바글.jpg

사우스콜 - 8,790m 지점의 힐러리 스텝. 아주 미어 터진다. 마치 토요일 오후의 북한산 인수봉이나 관악산 연주암을 보는 것 같다. 동일한 지점의 또 다른 사진[17] / 남동릉 노멀 루트의 성수기 때 사진을 보면 아주 한 줄로 줄을 주르르르륵 서 있다. 그러나 2015년 네팔 대지진으로 인해 빙벽이 붕괴되면서 비탈 경사면으로 바뀌었다. 이로 인해 수직 암벽 등반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게 되었지만 등반 경로가 제한적이라 병목 현상으로 인해 등산, 하산에 걸리는 시간이 늘어났고 지반이 불안정해져 붕괴될 우려가 더 커졌다고 한다.

에베레스트의 정상은 의외로 넓어, 가족용 식탁이나 당구대 정도 면적이 있다. 별로 안 넓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산들 중에는 정상에 사람 한 명이 올라설 자리도 간신히 나오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에베레스트에서는 정상에서 등반대 전원이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도 근처에 높이가 엇비슷한 봉들이 많기 때문에 "여기가 세계의 지붕이다!"라는 감흥은 의외로 잘 와닿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느낌은 K2가 최고라고 한다.[18]

지나치게 등산객이 많아지고 각종 안전사고 문제가 계속 나오자 네팔 정부는 결국 2019년 8월 14일, 등정 자격을 크게 제한하는 조치를 내렸다. 허가비를 기존 11,000달러에서 35,000달러로 늘리고, 해발고도 6,500m 이상 등반 경험이 있는 등산객에게만 등반 허가를 내주기로 했다. 전 세계적으로 6500m 이상되는 산이 별로 없을뿐더러 이들 산은 에베레스트보다 결코 쉽지는 않다. 앞서 언급했듯 에베레스트는 인프라가 많은 편이라 그 높이에 비해 등정이 까다롭진 않은 축에 속한다. 때문에 사실상 기존의 히말라야 등반자들 이외에는 거의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전 세계의 등정여부를 전산에 등록하지는 않기에 허위로 등정기록을 제출해도 네팔정부에서 판별할 기술은 없다.

5. 최초의 완등

파일:image-asset.jpg

위 사진 속의 사람은 텐징 노르가이이며, 정상에서 찍힌 힐러리의 모습은 없다. 그 이유는 텐징이 카메라의 조작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최초로 정상에 등정한 뒤 살아 돌아온 사람은 1953년 등정에 성공한 뉴질랜드 등반가 에드먼드 힐러리[19] 네팔인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20]다. 이 둘이 동시에 꼭대기에 발을 닿으면서 동시 등정했다고 한다. 덕분에 두 사람 모두 우리 둘이 동시에 등정했으니 어느 한 사람만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나중에 힐러리가 식구들에게 밝히는 바에 의하면 원래 경쟁적으로 서로 등정했더라면 노르가이야말로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사람이라고 했다. 그가 늘 앞서 있었고 마음만 먹었더라면 그가 앞서 꼭대기에 오를 수 있음에도 늘 나를 배려했고 같이 오르자고 도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느 문헌에서는 정상을 앞두고 있던 노르가이가 멈춰서서 힐러리에게 양보했다는 얘기도 있다.

힐러리 셰르파야말로 등산가의 친구이자 분신으로서 대하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하며, 셰르파의 권익 향상에 힘썼다. 지금도 힐러리의 이름을 딴, 셰르파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가 있다. 힐러리는 평생 노르가이와 친한 친구로 지냈으며 노르가이가 먼저 죽자 장례식에 직접 참석하여 슬피 울었다. 그리고 이들의 의리와 배려를 높이 기리고자 이 산으로 가는 길에 이용하게 되는 작은 공항에 이들의 이름이 붙어졌다. 이름은 텐징-힐러리 공항이다.

파일:external/i.telegraph.co.uk/Mount_Everest_Expe_2577409b.jpg

최초는 아니지만, 1978년 5월 8일에 산소 봄베 없이 처음 등정에 성공한 독일 이탈리아 등반가 라인홀트 메스너와 페터 하벨러도 산악인들 사이에는 상당한 유명인이다. 메스너는 8,000 m급 봉우리 14곳을 최초로 완등한 산악인이기도 하다. 다만 칸첸중가 등정을 두고 오은선의 증거부족을 문제 삼지 않고 대충 얼버무렸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이전에도 1924년에 영국 조지 말로리 앤드루 어빈이 최초로 정상 등정에 도전하여 등정에는 성공하였지만 돌아오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올라가다 실패한 것인지는 오랫동안 산악계의 뜨거운 논란거리였다. 현재에는 등정에 실패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들이 세컨드 스텝을 오르려고 시도하는 장면이 베이스 캠프에서 목격된 후 실종되었는데, 일반적으로는 그 당시의 장비와 등반 기술로는 세컨드 스텝을 돌파할 수 없었으리라고 본다. 게다가 그들이 등정에 성공했으면 무언가 흔적을 남겼을 가능성이 높은데 정상에 그들이 남긴 이렇다 할 흔적 역시 발견되지 않은 점 등으로 봐서 세컨드 스텝 돌파 중 추락했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 블로그

영국은 둘의 유해를 찾기 위한 수색대를 매년 파견해왔으며, 조지 말로리의 유해는 실종된 지 75년 만인 1999년에 영국 시몬스 등정대가 산 북쪽의 비탈에서 발견했다. 사실 1975년 중국인 왕홍보가 에베레스트 등정 도중 오래된 영국인 시체를 발견했다고 말했지만 왕홍보에게 이 소식을 들은 일본인 등산가 하세가와와 왕홍보도 등정 도중 죽는 바람에 그다지 알려지지 못했다.

필름이 손상되어 이들이 등반에 성공했는지 알지 못하게 되었다는 소리가 계속 나오는데, 애초에 수색대가 조지 말로리의 시신과 주변을 뒤져도 카메라는 나오지 않았다. 현재는 말로리가 아닌 앤드루 어빈이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다는 설이 유력하며, 어찌됐든 결국 이들이 등반에 성공했는지는 카메라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수수께끼로 남게 되었다.

참고로 조지 맬러리는 "왜 산을 오르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에 "거기에 산이 있으니까(Because it is there)"라고 대답한, 산악사 사상 가장 유명한 명언을 남긴 인물이다. 그런데 이 말을 힐러리가 한 말로 아는 이들도 많으며, 책자나 여러 글귀에서도 그렇게 표기한 게 꽤 있다. 훗날 영국군 공군 대장이 된 트래퍼드 리맬러리는 이 사람의 동생. 그런데 이 말 자체는 신문기자가 귀찮게 자꾸 물어보니까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다 나온 것이라고 한다.

1977년 9월 15일에 한국인 최초로 고상돈[21]이 등정에 성공했다. 당시 김영도[22]가 원정대장으로 원정대를 이끌었다.

6. 환경 문제

가장 높은 산이라는 상징성과, 등산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점 때문에[23] 가장 많은 등산가들이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며 덩달아 이 산악인들이 버린 쓰레기로 인한 환경 오염 문제도 심각하다. 기사 정상 등정을 위한 최종 캠프를 보통 사우스콜에 설치하는데, 여기에 버려진 산소 봄베의 숫자가 엄청나다고 한다. 덕분에 네팔 정부에서 청소비 명목으로 돈을 두둑히 받아서 여기 가려면 5만 달러 가까운 상당한 돈을 내야 한다. 그 밖에도 입산비라든지 여러 명목으로 추가로 네팔 측이 돈을 받는데 한 사람당 10만 달러에 달한다. 덕분에 이 돈 안 내고 올라가는 불법 등반이 꽤 많다. 만약에 걸리면 추방당하고 재입국하자면 벌금과 같이 돈을 더 많이 내야 하기에 어려움이 많다. 8,000m 14봉을 모두 올라간 김재수가 2번 불법 등반했다고 한다.

때문에 전문 산악인들이 산에 오를 때 잘 보면 입고 있는 등산용 옷에 온갖 회사 상표가 가득 달려있는 것도 바로 입산비라든지 여러 자금을 보태주는 스폰서 때문이다. 그 밖에도 입산비를 안 내고 올라가는 방법이 있는데 바로 청소등반대에 자원하면 된다. 이들은 입산비가 면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 그대로 등산하면서 산에 있는 쓰레기를 가지고 내려오는데 그만큼 힘도 들고 더 위험할 수도 있다. 기사

엄홍길이 쓴 책에 의하면 기상이변을 에베레스트에서 절실하게 느꼈다고 한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자동차를 구경하기 힘들었던 네팔 산가 마을이 2000년대 와선 자동차가 넘쳐나고 쓰레기도 많이 버려지면서 에베레스트 및 히말라야 고산 날씨와 기온이 제멋대로 달라져 환경이 더 나빠지고 엉망으로 변하면서 등정이 더더욱 힘들어졌다고 회술했다.

결국 보다 못한 네팔 정부가 2014년 4월부터 등산객 한 명당 8kg의 쓰레기를 의무적으로 가지고 내려와야 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하지만 이것도 상술한 대로 청소비 명목의 보증금을 받고 쓰레기를 가지고 오면 환급해주는 방식이라 실제로 쓰레기를 가지고 오는 경우는 절반밖에 안된다고 한다. 2019년부터 네팔 당국이 직접 쓰레기 수거를 하고 있지만 쓰레기는 계속해서 쌓이고 있다. 관련 뉴스

7. 관광 자원

청소비뿐 아니라 방문하는 관광객들 상대로 오랫동안 네팔의 독점으로 돈을 벌어들였다. 냉전 이전에는 티베트를 통해서도 많이 갔으나 1949년 이후 티베트를 점령한 중국이 쇄국정책을 쓰면서 중국 등반대 이외에는 거의 티베트를 통한 북쪽 루트를 이용한 등반은 불가능했다

2010년대 들어서 네팔쪽 입산료가 크게 올라서 그 반값밖에 안되는 중국쪽으로 가는 사람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네팔쪽 입산이 서방쪽에 좀 더 익숙하기 때문에, 많이가고 있다. 다만 입산료가 저렴한 티베트쪽으로 가는 북벽쪽 루트를 가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8.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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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창작물에서의 등장

10. 둘러보기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 화이트.svg 네팔 의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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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1979년

카트만두 계곡
काठमाडौं उपत्यका
1997년

룸비니, 부처의 탄생지
लुम्बिनी - गौतम बुद्धको जन्मस्थल
자연유산
1979년

사가르마타 국립공원
सगरमाथा राष्ट्रिय निकुञ्ज
1984년

치트완 국립공원
चितवन राष्ट्रिय निकुञ्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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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티베트어를 음역한 것이다. [2] 산의 높이는 해발고도뿐만 아니라 땅 위의 기준원점(기반지역)으로부터 봉우리 자체가 얼마나 큰지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지형학적 상대높이(topographic prominence)를 사용하기도 한다. 모체가 되는 봉우리의 기반으로부터 독립적인 봉우리를 구성하면서 얼마나 뻗어올라가는지를 측정하는 척도이다. 예를 들어 해발 8,586m로 세계 3위봉인 칸첸중가의 지형학적 상대높이는 3,922m에 불과하다. 모체 봉우리는 에베레스트. 하지만 에베레스트에 한해서 에베레스트의 모체를 이룰 봉우리가 없기 때문에 에베레스트의 지형학적 상대높이(topographic prominence)는 해발고도와 동일한 8,848m로 정의되었다. [3] 세계에서 가장 높기 때문에 모체 봉우리가 없다. 지형학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아프로-유라시아에 존재하는 모든 산의 모체로 정의되어 있다. [4] 본명은 남걀 왕디(Namgyal Wangdi)였으나 어린 시절에 개명. [5] 최상의 자연 현상이나 뛰어난 자연미와 미학적 중요성을 지닌 지역을 포함할 것 [6] 라틴 문자 표기를 한글로 옮긴 가장 흔한 표기로, '서거르마타'가 원어 발음과 더 비슷하다. [7] 표기를 그대로 한글로 옮긴 표기로, 라사 발음 기준으로 '초몰랑마'가 원어에 가깝다. [8] 철자와는 달리 /ˈiːvrɪst/로 발음한다. [9] 비슷한 사례로는 레닌 봉/ 이븐 시나 봉이 있다. K2의 경우 현지에서도 '이름모를 고산' 정도로만 불려온 탓에 마땅히 붙일 만한 현지 이름이 없어서 측량기사가 바라본 순서대로 붙인 코드네임이 그대로 정식 명칭으로 굳어진 거라 에베레스트와는 사정이 좀 다르다. [10] 여기서 남벽이라 칭해진 부분 대부분은 사실 눕체와 로체의 남벽이다. 에베레스트의 진짜 남벽은 사진에서 로체 너머에 있는 부분이다. 로체의 남벽은 전설적인 등정가 예지 쿠쿠츠카의 목숨을 앗아간 난벽이다. 히말라야의 난벽 중 단연 첫 손으로 꼽히는 곳. 일본 등반대가 벽 등정에는 성공했으나 로체 정상까지는 가지도 못했다. [11] 1924년의 조지 말로리&어빈 루트의 등정여부는 지금도 산악계의 논란거리이다. [12] 2009년 한국대의 북서벽 초등루트의 대장은 박영석 대장.
1975년 영국대의 북서벽 초등루트의 대장은 크리스 보닝턴 경.
[13] 다만 기상 상황이 괜찮은 편이면 사용하기도 한다. 이 또한 헬기가 도착하는것이 가능한 지점까지 사람이 끌어야하는것이 힘들기에 만만치 않다. [14] 오은선이 원정대와 관련 없이 단독 에베레스트 등정 박무택의 시신을 발견해 베이스캠프에 보고했다. [15] 허영만 박영석과 아는 사이여서 식객에 산악 관련 내용이 나온 적이 있었다. [16] 사실 에베레스트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하는 건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행동불능 상태에 빠진 사람 한 명을 데리고 내려온다는 건 사실상 시신 한 구를 가지고 내려오는 것과 다름없으며, 위험성은 위에서도 이미 설명이 된 바이다. 게다가 조난자의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해 산소 등의 물자도 추가로 소모하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17] 엄홍길 대장이 2005년에 에베레스트를 등반할 때 늘어선 사람들을 보며 개탄하고는 옆의 빙벽을 타고 혼자 올라가 버렸다. [18] K2는 카라코람 산맥 중에서도 혼자 뚝 떨어져 있기 때문. 대신 주변의 봉우리들이 바람을 막아주지 않기 때문에 등정 난이도가 극악이지만... [19] Edmund Hillary, 1919~2008. 뉴질랜드 5달러 지폐에 얼굴이 들어갔다. 당시 생존 중인 인물이 지폐에 들어간 몇 안되는 사례. ' 지식채널e'에서 '초몰룽마의 두 이방인' 편에서 백인이지만 영국인이 아니란 이유로 차별받던 힐러리의 처지를 소개한 바 있다. 어쨌든 영국 등반대 소속으로 에베레스트에 올랐기에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에게 기사 작위를 받았다. 자세한 건 문서 참고. [20] Tenzing Norgay, 1914~1986. 이 사람도 네팔 셰르파 사이에서는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우습게도 그의 국적을 두고 네팔 말고도 당시 인도 중국이 서로 자기들 나라 사람이라고 주장하지만 국제적으로 네팔 사람으로 더 알아준다. 참고로 그의 아들도 네팔에 살면서 "아버진 네팔 아니면 인도 사람이다"라며 다른 나라의 주장을 무시했다. 이후 인도 국적도 따서 네팔-인도 2중 국적으로 인정받는다. [21] 1948년생. 1979년 미국 데날리 산을 등정하는 데 성공했으나 하산 중 사고로 사망한다. [22] 당시 제9대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이었다. [23] 처음에는 당연히 등반하기 어려운 산이었으나, 수많은 사람들이 등정하면서 쉬운 루트와 장비들이 개발되었기 때문. [24] 최근에는 걸어서 반나절~하루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마을까지 지프가 오가며, 몇년 안에는 루클라까지 도로가 이어질 예정이다. 다만 네팔의 도로상황이 도로상황인 만큼, 도로가 이어진다 하더라도 카트만두에서 루클라까지는 약 이틀에 가까운 시간동안 차량으로 이동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5] geoid, 해발 0미터의 기준이 되는 타원체에 가까운 삼차원 도형. 평균 해수면을 육지까지 확장했다고 가정했을 때의 지구의 형태로, 이론적으로 중력 방향에 수직인 평면 중 평균 해수면과 일치하는 면을 가리킨다. 이는 지구 형태를 대표하는 면으로서 지구 타원체와 가장 가까운 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