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11-18 20:50:26

문립

진서(晉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color: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제기(帝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4권 「혜제기(惠帝紀)」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사마충(衷) 사마치 · 사마업 사마예 · 사마소(紹)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사마연(衍) · 사마악 사마담 · 사마비 · 사마혁
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 31·32권 「후비전(后妃傳)」 ||
[ 재기(戴記) ]
||<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 유화 · 유선, 유총 ,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 석홍 · 장빈, 석계룡 ,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모용외 , 배억 · 고첨, 모용황 , 모용한 · 양유,
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모용준 , 한항 · 이산 · 이적, 모용위 , 모용각 · 양무 · 황보진,
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 왕타, 부견 ,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0080><tablebgcolor=#800080> ||
}}} ||

1. 개요2. 생애

1. 개요

文立
(? ~ 279)

삼국시대 촉나라 및 서진의 인물. 자는 광휴(廣休). 익주 파군(巴郡) 임강현(臨江縣) 출신.

2. 생애

촉나라 시절 태학에 들어가 《모시》, 《주례》, 《예기》, 《의례》 등 다양한 유학 경전을 전공하고 초주의 스승이 되었다. 당대 문사들은 문립을 안회와 같다 평했고, 진수, 이밀은 자유, 자하와 같다고 했으며, 나헌 자공과 같다고 하였다. 이후 임관하여 관직이 상서까지 이르렀다가, 촉이 평정되고 진나라에서 수재로 천거받아 낭중이 되었다.

266년에 제음태수로 임명되었다가 중앙에 부름을 받아 태자중서자가 되었으며, 제갈량, 장완, 비의의 자손이 중원을 방황하고 있으니 이들에게 관위를 주어 등용하면서 파촉의 민중의 마음을 위로하면서 오의 백성들의 기대를 이 곳으로 돌리는 것이 좋다고 상표했고 이 일은 모두 시행되었다.

조칙에서 문립이 충실하고 마음이 바르면서 청렴하며, 사려가 깊고 재능이 깊다고 칭찬하면서 이전의 치적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문립을 산기상시에 임명했다. 사마염이 이름높은 정경에 대해 추천하지 않는 것을 묻자 늙은데다가 명예를 바라지 않기에 추천하지 않았다고 했으며, 서역으로부터 말이 헌상될 때 사마염이 이 말을 어찌하냐고 묻자 태복에게 물으라고 했고 사마염은 이를 옳게 여겼다.

위위에 승진해 279년에 사망했고 저술한 상주문, 시, 부를 모아 수십 편이 세상에 전해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