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47a0> 이명 | 김치만(金致萬) |
출생 | 1875년 11월 29일 |
함경도
무산도호부 동하면 풍산동 (現 함경북도 무산군 풍산리) |
|
사망 | 몰년 미상 |
사망지 미상 | |
직업 | 독립운동가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clearfix]
1. 개요
일제강점기 당시 밀정을 처단하는 등 독립군에서 활동을 한 독립운동가.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2. 생애
1875년 11월 29일 함경도 무산도호부 동하면 풍산동(現 함경북도 무산군 풍산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북간도 화룡현으로 이주를 하고 그곳에서 정착하며 살던 그는 1920년 46세의 나이에 항일무장투쟁을 준비하던 독립군인 야단(野團)에 가입하였다. 야단에서 김두일은 경호원을 맡아 활동하였다. 그 해 5월에 함경북도 무산군에서 머물고 있던 일제의 밀정인 이남율이 만주지역의 독립군들과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화룡현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만주지역에 도착하였다. 이에 김두일은 다른 야단의 단원들과 함께 그를 처단하였다. 이로 인해 김두일은 일제에 체포되었고 청진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 후 징역 12년 6개월로 감형된 그는 감옥에 수감되었고 1935년 11월 23일에 출소하였다.[1] 이후 그의 행적은 불분명하다.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
김두일 공적조서-공훈전자사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