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728489><colcolor=#ff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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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사극, 로맨스 | |
방송 시간 | 월 · 화 오후 9:55~ | |
방송 기간 | 2009년 3월 10일 ~ 2009년 7월 21일 | |
제작 | 크리에이티브그룹 다다 | |
방송 횟수 | 39부작 | |
채널 | SBS | |
제작진 | <colbgcolor=#728489> CP | 배태섭 |
PD | 허웅 | |
연출 | 이명우 | |
극본 | 정성희[1] | |
무술감독 | 박주천 | |
출연 | 정려원, 정경호, 박민영 외 | |
[[영상물 등급 제도|{{{#fff 시청 등급 }}}]] | 15세 이상 시청가 |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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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SBS 에서 방영한 39부작 월화 드라마.2. 공개 정보
2.1.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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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획의도
하나, 은유된 역사를 찾아가는 상상력의 즐거움 오래전 지인으로부터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에 나오는 자명고가 실은 사람이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명고가 사람이었구나... 낙랑국의 신기로 알려진 자명고가 예언의 능력을 지닌 왕녀라면? 그녀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운명은 날줄과 씨줄처럼 인간의 오욕과 칠정이 짜 넣은 그 욕망들 때문에 자초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이야기에 우리는 더 많은 윤기를 더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고대사의 채워지지 않은 빈 블록을 우리는 상상력으로 채워 넣을 수밖에 없다. <왕녀 자명고>와 함께 유사 이래 한반도의 가장 활발하고 역동적이었던 한 시대를 재현하고, 그 위에 가장 아름답고, 격정적인 사람을 더듬어가는 창의의 즐거움을 함께 만들어보고 싶다. 둘, 구국의 남자영웅담, 이제는 너무 지루하지 않은가? <왕녀 자명고>는 일체 편협한 위선의 윤리를 거부한다. 이 고대사의 세계는 죽이고, 살리는 일에 감정이 개입될 만큼 간단하고 편안한 시대가 아닌 것이다. 지도자가 한발을 잘못 내디디면 나라가 멸하고, 백성이 도탄에 빠지는 이 百尺竿頭의 세계에는 국가를 위해 가족을 자기 손으로 베어 죽이는 계백장군 같은 이들이 있고, 다섯 부족을 다독여, 제국을 와해시키지 않으려고 도절태자, 해명태자 두 명의 자기 자식을 죽이는 유리명왕이나, 대무신왕 같은 이들이 살아 숨쉬는 시대이다. <왕녀 자명고> 역시 그들의 세계에 속한다. 최리는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딸, 낙랑공주(라희)를 죽인다. 하기사 열국지의 수많은 명군들조차 자신의 혈육을 죽이지 않았던가? 그들에게도 혈육에 대한 애정은 있었을 텐데.. 본래 왕이란 그런 것이다. 대의를 위해서 패권을 위해서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리지 않기 위해서 속으로 울면서 자신의 자식을, 아내를, 형제를 제 손으로 베어낼 수 있는 무정함이 있어야 했다. 국가냐? 사랑이냐?에서 사랑을 선택한 낙랑공주를, 똑같은 물음인 국가냐? 사랑이냐? 앞에서 조국을 위해 사랑하는 호동의 가슴에 칼을 찔러 넣는 자명공주를 우리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가능한 아름답게, 가능한 눈물겹게 보여주고 싶다. 셋, 호쾌한 여성무협의 세계라면 즐겁지 않을까? <왕녀 자명고>에서는 호쾌한 여성 무협의 세계를 그려, 이제까지 드라마화 된 영웅담과는 변별되는 드라마를 만들고자 한다. 자명고가 사용하는 검법, 낙랑공주가 사용하는 금침(金針) 암기와 우아한 연검술, 호동왕자가 익힌 고조선의 검법과 태극권, 낙랑공주의 어머니이자 자명고의 정적인 최리의 제2왕후 왕자실의 특기인 독살법 등등.. 무협의 미학을 보여주었던 와호장룡에서 양자경과 장지이의 무술대결을 보았다면, 여성무협이 주는 우아한 아름다움에 동의하리라. 이 드라마에서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캐릭터와 여성무협을 통해, 가능하다면 와효장룡에서 보여진 생사를 넘나드는 대결 속에 극진한 아름다움을 구현해보고 싶다.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 자명공주가 걸어가는 그 길 자체가 바로 지난한 구국이자 구도의 길이기에, 거기에 걸맞은 우아함과 절제를 구현할 것이다. 넷, 왜 우리는 승자에게만 열광하며 그들이 最善이라 여기는가? <왕녀 자명고>는 잃어버린 우리 고대사의 한 단면을 복원시키고자 한다. 정당한 명분과 정당한 싸움이었을 때, 우리는 승자보다 패자가 사랑 받는 사례를 수없이 알고 있다. 초패왕 항우는 한고조 유방보다 사랑 받았으며, 비극적으로 죽은 오자서는 지금도 숭앙 받고 있다. 삼국을 통일하고 진(晋)을 세운 사마염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는 아름다운 패자였던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를 동경하고, 공명의 죽음에 눈물짓지 않았던가? 진실로 사랑받을 수 있는 이들은 고귀하게, 아름답게 석양처럼 떨어지면서도 자신들의 신념을 포기할 수 없었던 패자의 영웅들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 드라마 <왕녀 자명고>는 정통역사드라마는 아니다. 굳이 멀하자면 팩션 드라마라고 할 수 있겠다. 팩션이라는 의미자체가 그러하듯이, 정확한 역사적 펙트(fact)와 그 이면에 숨겨진 은유와 상징, 그 잃어버린 고리들은 드라마적 상상력(fiction)을 씨줄과 날줄처럼 조화롭게 직조해, 한편의 여성 영웅의 대 서사시를 구현해보고자 한다. 고구려보다 부유했으며, 인구도 많았던 낙랑국. 고구려와 한나라의 세력균형 속에.. 국가보다 사랑이 우선되었던 낙랑공주라는 한 여인의 손에 자멸해버린 낙랑군을 되살리고, 그 속에서 누구보다 뜨겁고 애절하게 살았던 한 여인, 왕녀 자명을 이 시대에 꼭 한번 되살려 보고 싶다. |
2009년 당시 기획의도와 현재 공식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기획의도의 내용이 상당히 다르다.
자명고가 찢어졌을때.. 사랑을 버렸습니다.. 사랑받고, 사랑하는 여자로 살고픈 마음이 어찌 죄가 된다더냐 자명고의 전설이 살이있는 역사가 된다.. |
4. 등장인물
자세한 내용은 자명고(드라마)/등장인물 문서 참고하십시오.5. 설정
- 낙랑국 : 본작에서는 옛 조선이 한나라에 의해 멸망한 뒤 설치된 군현 중 낙랑군을 토착 세력 출신인 최리와 왕굉이 무너뜨리고 세운 나라로 설정되어 있다. 낙랑의 군현은 기록에 따라 그 수가 다르지만 드라마에서는 18개 현에 인구 30만이라는 묘사가 여러 차례 거듭해서 나오며 수도는 지금의 평양인 왕검성, 왕궁은 진양궁이라 불리는데 대조영에서 당나라 황궁으로 사용되었던 것과 같은 세트장에서 촬영되었다. 극중 고구려 대무신왕의 묘사에 의하면 영토는 고구려의 절반도 안 되면서 물산이 풍족해 백성 30만을 넉넉하게 먹일 수 있는 좋은 땅이라는 듯. 다만 풍부한 물산과 많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극중에서는 최리와 왕굉의 독립전쟁 7년에 걸쳐 수많은 피해를 입었기에 즉위 후 상당기간 최리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고구려의 군사력을 당해낼 수 없었고 결국에는 이에 무너지게 된다.
- 고구려 : 존재 양상에 대해 그 의견이 분분한 최씨 낙랑국에 비해 이쪽은 그래도 삼국 중 하나로 정립하는 나라. 덕분에 그나마도 최리, 왕굉, 낙랑공주를 제외하면 대부분 가상 인물인 낙랑과 달리, 송옥구나 을두지 등 이쪽의 등장인물들은 나름대로 사서에서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전성기의 고구려처럼 요동과 만주로 영토를 확장하는 모습, 혹은 초창기의 고구려처럼 신화적인 창업군주가 초강대국 한나라를 밀어내고 나라를 세우는 모습과는 다소 다른 고구려의 면면들이 그려진다. 극 초반에서부터 보릿고개와 겨울을 걱정하는 대무신왕, 낙랑태수 봉위 30주년 기념행사에 축하 선물을 보내 식량[2]을 얻어오게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척박한 땅 위에 있다보니 낙랑이나 요동, 현도 등과의 교역에서 약세를 드러내는 면을 자주 보이고, 또 실제로 최리가 이를 활용하여 고구려와의 관계를 조정한다는 얘기, 고구려 이탈병들이 주변국을 약탈한다는 얘기 등도 언급된다. 한편 중앙집권적 국가로 도약하지 못한 상태, 즉 5나부가 저마다의 세력을 합쳐 나라를 일구던 시기의 모습도 강조되는데, 여기서의 고구려는 계루부, 비류나부, 연나부, 환나부, 관나부의 5개 부가 모여 백성 18만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문제는 왕실의 계루부가 백성 5만이라 지분은 과반은 커녕 3분의 1도 안 되고, 그 다음인 비류나부는 백성 4만으로 나름의 야심을 품고 있다는 것. 극중에서는 대무신왕과 비류나부의 송옥구가 대립하는 모습이 자주 연출된다. 연나부 장수 타호태가 가끔 나오긴 하지만 별 비중은 없고, 나머지 2개 부는 쩌리. 여하간 경제로 보나 정치로 보나 취약한 점이 많기에 대무신왕은 이를 극복하고자 정복전쟁을 벌여 주변의 경제력이 보다 나은 나라들을 복속시키는 한편, 왕의 권위를 강화하려 해왔고 또 그러려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6. 줄거리
- 극 시작 : 극 후반에 해당하는 내용이 우선적으로 소개된다. 호동을 위해 자명고를 찢으려는 라희와 이를 막으려는 자명이 충돌하나, 독을 사용한 라희의 공격에 자명은 혼수상태에 빠지고 자명고를 지키지 못했음을 한탄하며 아버지 최리가 낙랑국을 세운 과정을 돌아보며 전체 내용이 시작된다.
- 낙랑 독립 전쟁 : 서기 18년 낙랑군은 황족 출신 태수 유헌의 폭정으로 토착 조선인의 반란이 연이어 일어난다. 낙랑군의 대장군 유성하는 적미군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낙랑을 비운 터라 유헌은 좌중랑장 최리와 우중랑장 왕굉에게 군사를 주어 반란이 일어난 여러 현들을 공격해 진압한 뒤 조선인 남자들은 모두 죽이고, 여자들은 노예로 팔라는 명을 내린다. 최리가 이에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임을 들며 명을 받들지 않자 유헌은 최리를 당장 베어버리겠다며 위협하고, 네 조부가 이미 한인의 첩지를 받지 않았냐며 너는 한인인지, 조선인인지 답을 확실히 내라고 윽박지른다. 최리는 결국 이에 굴복하지만 유헌의 궁에서 나와서는 단군사당으로 가 유헌을 밀어내고 조선인들을 해방시키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여기에 왕굉이 참여한다. 한편 낙랑군의 태사령 자묵은 천문을 읽어 최리의 딸들에게 반역의 기운이 있음을 느끼고 이를 유헌에게 고한다. 유헌과 신하들은 이미 반란 진압을 위해 최리에게 군사를 준 이상 최리를 당장 어떻게 할 수는 없고, 그 딸들을 대신 죽여 기를 꺾어 놓으려 한다. 과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자묵의 예언대로 최리의 부인 모하소와 왕자실이 두 딸을 낳았지만, 왕자실은 자묵을 유혹하여 예언을 바꾸게 해[3] 자신의 딸을 살려내고, 모하소의 딸 자명만 죽게 된다. 모하소는 자명에게 천을 덮어 숨을 쉬지 못하게 하여 죽이려 하나, 그렇게 했음에도 잠시 숨이 끊어진 듯 했던 자명이 다시 숨을 쉬자 왕자실은 이러고 있다가는 모두가 죽는다며 자신의 산호 뒤꽂이를 자명의 심장에 박아 넣고, 결국 그 상태에서 자명은 일품과 함께 삿갓배에 실려 강에 버려진다. 최리와 왕굉은 그 이후 결의에 따라 반란을 일으키고 유헌과 7년에 걸친 전쟁을 치르며 결국 그를 죽이고 낙랑을 독립시키는 데에 성공한다. 한편 버려진 삿갓배는 한겨울 바다를 건너 한나라 동모현 바닷가에 닿았고, 버려진 아이들을 본 희희낙락 기예단의 차차숭 부부가 거두어 기르게 된다. 전말을 알게 된 모하소는 분노하여 갓난쟁이인 라희를 연못에 던져버리지만, 출전 전에 라희를 비롯한 식구들을 부탁한 최리의 말, 그리고 전쟁터에서 최리가 돌아오지 못 할 수도 있는데 라희를 죽이면 형님의 손으로 최씨가의 대를 끊은 것과 다름없다고 미친 소리를 늘어놓는 왕자실에 의해 결국 못에서 건져내어 젖을 물리고 키우게 된다.
- 왕위 쟁탈전 : 낙랑 독립 이후 새로이 나라를 세우게 된 왕굉과 최리 그리고 그 수하들은 서로 새로운 나라의 왕위를 놓고 대립을 시작한다. 최리는 신생국으로서 처지가 어려운 판에 내분이 일어날까 두려워 왕굉에게 이를 양보하고 본가인 월해청원(원산)으로 물러나려 하지만 왕굉의 부하들과 그 아내 모양혜는 최리를 살려두지 않으려 하고, 여기에 최리를 견제하기 위한 고구려의 개입이 왕굉을 자극하며 왕굉도 최리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이후 최리는 왕굉의 요구에 따라 한나라로 함께 가기 위해 배에 올랐지만, 못지 않게 왕위에 욕심을 내고 있던 왕자실이 선수를 치며 왕굉은 배 위에서 죽었고 결국 낙랑의 왕위는 최리가 가져가게 된다. 한편 동모현에 내린 최리 일행과 모하소는 우연히 희희낙락 기예단과 그 안에 있는 뿌쿠(자명)를 만나게 된다.
- 왕홀의 혼례와 희희낙락 기예단 : 왕굉이 죽어서 돌아온 것에 분노한 모양혜는 이에 대한 보복을 외치며 왕자실이 있는 청해헌(최리의 사저)을 공격했고, 이 사건이 빌미가 되어 결국 처형될 위기에 놓인다. 최리는 모양혜의 처형을 극력 반대했으나 왕자실이 모양혜로 인해 입은 화상까지 드러내 보이며[4] 밀어 붙이자 어쩔 수 없이 허락한다. 그러나 대신 그 뒤에서 처남이 되는 왕홀에게 형사취수혼을 넌지시 알려주었고[5], 왕홀은 갈등했으나 일단은 모양혜를 살리기 위해 응하게 된다. 모양혜를 제거하려다 실패한 왕자실은 어머니뻘인 형수와 결혼하게 된 동생 왕홀의 혼례에 격분하지만, 이내 상황을 받아들이고는 대신 이를 활용하여 그간 추적하던 자명을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왕자실에 의해 왕홀의 혼례 공연에 희희낙락 기예단을 섭외하기로 한 것. 이에 따라 희희낙락 기예단과 그에 속한 뿌쿠가 낙랑으로 오게 되고, 왕자실은 여관장 치소에게 명을 내려 자명을 죽이려 하지만 실패하고 대신 다른 기예단 아이인 묘리가 죽게 된다. 뿌쿠는 묘리의 죽음으로 인해 크게 각성하고, 마침 눈치를 채고 기회를 노리던 전 낙랑군 태부 호곡에게 무예를 배우게 된다.
- 주인공들의 성장과 한나라 방문 : 14화부터는 성인 연기자들이 등장. 라희는 공주로서 신료들에게 제왕학을 공부하고 곧 왕위 계승권자인 태녀로 책봉되며, 뿌쿠는 동모현에서 기예단 생활을 하며 호곡과 차차숭에게 무예 및 생존기술을 배운다. 호동 역시 고구려에서 성장하며 언급에 의하면 비류나부를 제외한 나머지 4개 부의 지원을 얻는 데에 성공. 그러나 이런 때에 그간 대무신왕 몰래 몸을 추스려 회임을 시도하던 송매설수가 드디어 임신에 성공하고, 이것이 발각되며 고구려가 뒤집어진다. 송매설수는 친정인 비류나부로 피신하려 했고 대무신왕은 이런 왕비를 잡아 처형하라는 명을 내린다. 송매설수는 어찌 어찌 여랑공주의 도움을 받아 비류나부 목전인 기평까지 이르는 데에 성공, 호동 역시 이곳에서 송매설수의 마차를 잡는 데에 성공하지만 차마 왕비를 죽이지는 못하고 결국 비류나부로 돌려보낸다. 한편 국내성에서는 대무신왕의 처사를 말리던 을두지가 처형될 위기에 놓였는데, 환궁한 호동이 그 죄를 대신 갚겠다면서 한나라로 가 광무제의 즉위 10년 봉축식에 참석하여 고구려의 경제적 문제를 해소할 거래를 성사시키겠다고 말한다. 한편 낙랑에서는 라희 역시 태녀 자격으로 여기에 참석하기로 한 상황. 결국 주연들은 한나라로 향하게 되고 여기서 모두 다시 만나게 된다. 그간 자명의 정체를 알고 내심 이를 활용해 최리에게 복수하려던 호곡의 계책으로 태산관에서 열린 연회에 자명이 자객으로 동원되기도 하지만 좋지 않은 조짐을 알아차린 호동에 의해 이는 파토가 나고, 자명은 암살 시도 조사에 나선 낙랑의 추궁을 피하기 위해 호동에게 부탁하여 호위무사로 들어가게 된다. 한바탕 소동이 끝난 뒤 호동과 라희는 낙양으로 가 황제를 알현하는데, 황제와 외교 담당 유릉은 라희는 환대한 반면 호동에게는 삼궤구고두례를 행하라 강요했고, 고구려 측 사신단은 크게 반발하지만 호동은 현실적으로 한나라와 고구려 사이의 국력차(와 을두지를 살리고자 했던 애초의 목표)를 고려하여 이를 행한다. 호동을 보좌하던 우나루와 추발소는 당연히 이에 반발, 호동을 버려두고 먼저 고구려로 돌아가버린다. 그런데 하필이면 호동이 한나라에 있을 때 이를 처치하려는 송옥구에 의해 호동은 고구려로 돌아가던 중 요동에서 선비족과 송강(송매설수의 오라비)의 공격을 받아 독상을 입게 되고, 여기서 자명이 호동을 구해내며 둘 사이의 관계까 진전되기 시작한다. 한편 자명이 자는 틈을 타, 왕자실에게 부탁을 받은 왕홀은 자명의 가슴팍 상처를 확인하여 자명이 원후의 공주임을 알아낸다. 이를 왕자실에게 알리게 되나 과정에서 왕씨가에서 비밀리에 서신을 베껴가게 되고, 모양혜도 자명의 생존과 거취를 파악하게 된다.
- 호동과 라희의 국혼 : 호동은 고구려로 돌아와 자기를 구하는 와중에 상처를 입은 자명을 돌보고, 그 사이 송매설수는 뒷날 모본왕이 되는 아들 해애우를 낳는다. 대무신왕은 아들을 낳아 데려온 송매설수를 놓고 호동에게 그 아기의 생사여탈권을 주지만, 역시 여기에서도 호동은 동생을 죽이지 않았고 해애우는 왕자로 인정받게 된다. 이에 낙랑에서는 고구려 내의 왕위계승을 놓고 정세를 살피는 한편, 라희와 호동의 국혼을 통해 낙랑이 거둘 수 있는 이익을 계산하고자 그간 질질 끌어오던 국혼 문제를 논의할 사절단을 고구려로 파견하는데, 여기에 왕자실과 모양혜가 억지로 끼어들게 된다.[6] 둘 모두 고구려에 자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뜻하던 바를 이루기 위해 나선 것. 왕자실은 고구려로 와서는 송매설수를 만나 호동이 라희와 결혼하여 낙랑을 처가로 얻게 되면 이를 발판으로 삼아 태자에 책봉될 것이라고 말하며, 혼담을 깨는 대신 자명을 자신에게 달라고 요청한다. 송매설수는 일개 호위무사 계집을 대가로 청하는 왕자실을 이상하게 여기면서도[7] 혼담을 깨는 조건으로는 나쁘지 않다 여겼기에 이를 승락하고, 왕비의 권한으로 자명을 왕자실에게 내어줘 버린다. 문제는 바로 이 시점에서 호동과 자명이 첫날밤을 보내며 관계가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는 점. 자명은 일단은 부모를 찾기 위해 낙랑으로 가려 하고 있었기에 왕비의 명을 받아 낙랑으로 향하고, 왕자실을 때를 봐서 자명을 적당히 처리하려 하지만 그 순간 왕자실에 의해 혼담이 파기된 것에 분노한 대무신왕이 낙랑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이 혼란의 와중에 자명은 낙랑 사신단 일행을 떠나 호동에게로 달려간다. 호동은 대무신왕의 명을 받아 낙랑의 주요 관문들을 공격, 그 방어전을 지휘하던 라희를 생포하는 데에 성공하는데 이 과정에서 자명은 호동을 도와 낙랑의 개국공신이자 최리의 가신인 하호개를 죽이고 낙랑 공주를 직접 붙잡는 등의 공을 세운다.
- 자명의 각성 : 호동은 라희를 붙잡아 국내성으로 되돌아오고 대무신왕은 이에 흡족해하며 둘을 결혼시키려 한다. 최리는 이와 같은 강제 결혼으로 낙랑의 왕권이 고구려에 종속될 것을 우려, 대무신왕과의 회담을 청해 혼인을 정식으로 다시 논하자고 하지만, 고구려는 혼인의 대가로 낙랑의 18개 현 중 북부의 6개 현을 내놓으라고 하며 사실상 이를 파토내 버린다. 최리는 최후의 수단으로 라희에게 자결을 명하는 글과 칼을 보내지만, 모하소는 이에 크게 반발하고, 왕자실도 따로 송매설수에게 부탁하여 라희를 구해내고자 한다. 송매설수는 호동의 국혼을 껄끄럽게 여기던 차라 한번 더 왕자실을 도와주기로 하고, 결국 해애우의 100일 잔치로 연회가 열린 날 기회를 봐서 낙랑공주를 탈출시켜 준다. 연회가 파한 뒤 대무신왕이 이에 노한 것은 당연. 대무신왕은 낙랑공주를 붙잡아 죽이라는 명을 내리고, 최리는 군사를 끌고 국경으로 나아가 라희를 안전하게 데려오려 하는 와중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는데, 하나는 호동이 라희를 붙잡기는 하지만 라희의 청을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이를 놓아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명은 라희를 구하고자 고구려에 잠입한 왕홀을 통해 자신이 낙랑의 왕녀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자명은 앞서 요동에서 독상을 입은 뒤 기통을 통해 치유하며 본 환각들이 곧 자신이 낙랑을 지켜낼 운명임을 암시한다는 것을 깨닫고 고구려에 차마 남아있을 수가 없어 낙랑으러 떠났고, 도중 국경으로 가던 라희를 만나 그 탈출에 도움을 주고, 결국에는 라희와 함께 낙랑으로 오게 되지만 그와 동시에 하호개를 죽인 죄인으로서 체포된다.
- 신녀가 되는 자명과 졸본으로 유폐된 호동 : 돌아온 자명으로 인해 낙랑국 왕실과 정계는 둘로 분열을 맞게 된다. 자명의 어머니인 모하소는 앞서 시녀장인 동고비와 하랍산 신녀 등의 도움으로 뿌쿠가 자명이라는 것을 알게 된 상태였고, 모양혜와 그녀가 이끄는 남부의 7개 현은 왕자실에 대한 적대감으로 자명을 지지하고 있었다. 반면 왕자실과 그녀의 영향력이 강한 나머지 북부의 11개 현은 자명이 표면적으로는 낙랑의 공신을 죽인 죄인이라는 점을 들어 벌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쪽이 갈라선 사이 대장군 왕홀은 다시금 자명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물론 자명에 대한 연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명을 부인으로 맞으려 하지만, 자명은 앞서 자신의 꿈 얘기를 최리에게 전하며 자신이 낙랑을 지키기 위해 신녀가 되기를 자청한다. 이 즈음 호동은 대무신왕의 명을 어기고 라희를 풀어준 것에 대한 벌로 궁에 연금되어 있었는데, 뿌쿠가 낙랑으로 갔다는 것을 알고는 결국 이를 참지 못하고 궁을 나와 낙랑으로 향한다. 낙랑에 온 호동은 뿌쿠, 자명을 만나지만 자명은 이미 왕홀의 요청으로 호동을 죽이기 위해 군사와 함께 호동을 만나고는 자신은 고구려에 돌아갈 수 없다며 왕홀과 낙랑에서 혼인할 것이라고 말하고는 호동의 손을 내친다. 호동은 왕홀의 매복에 빠져 죽게 되는데 이때 낙랑공주 라희가 개입하여 호동을 되돌려보내 준다. 고구려로 돌아온 호동은 대무신왕을 만나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며 그의 뜻에 따라 낙랑을 치겠다고 말하고 스스로를 졸본에 버려줄 것을 청한다. 대무신왕은 이를 받아들여 표면적으로는 호동에게 죄를 주어 졸본에 유폐하는 식으로 그를 국내성에서 추방한다. 그리고 낙랑에서는 대외적으로는 뿌쿠에 대한 여론을 달래기 위해 낙랑의 공신을 죽인 뿌쿠에게 죄를 물어 가짜 사약을 내리고 이후에 자명을 신녀로서의 수업에 임하게 하려 하는데, 왕자실은 여기서 가짜 사약에 독을 타 자명을 끝내 죽이려 한다. 물론, 그럼에도 자명은 죽지 않고 하랍산으로 옮겨져 하랍산 신녀와 그녀의 친구인 자묵의 영혼을 만나 낙랑을 지킬 방도를 연구하며 수업을 받는다.
- 호동의 거짓 망명과 자명고의 등장 : 3년의 시간이 흐르는 사이 호동은 졸본에서 군사를 기르는 한편 라희와 계속해 편지를 주고받으며 낙랑으로 갈 계획을 세운다. 마침 낙랑공주의 혼사와 관련된 소문이 돌자 호동을 국내성으로 가서 대무신왕과 각본을 짜고는 낙랑으로 거짓 망명을 행한다. 호동의 망명에 대해 낙랑에서는 대체로 호동을 받아들이길 껄끄러워 하는데, 거짓 망명을 성공시키기 위해 대무신왕이 군사를 보내 호동을 추적하기도 하고, 또 최리가 원하던 철광지대와 막대한 재물을 내걸고 호동의 목을 청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호동은 이에 자신을 잡으러 사신으로 온 을두지를 공격해 베어 낙랑 측의 의심을 덜어냈고, 또 그간 호동이 작업을 걸어둔 라희가 적극적으로 호동을 구해달라고 매달리며 결과적으로는 호동의 망명이 성사된다. 이에 호동과 라희의 국혼이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그 즈음 호동의 계획을 가로막는 장벽으로서 자명고가 등장하게 된다. 낙랑을 지키는 신물, 단군 왕검이 내려줬다는 신성한 북 등의 프로파간다가 차차숭의 기예단을 통해 연극으로 만들어져 낙랑과 고구려 등에 퍼지게 되었고, 마침 낙랑이 고구려의 국지적인 기습을 실제로 격퇴하는 데에 성공하며 그 영향력도 배증, 낙랑을 치고자 했던 호동과 고구려의 골칫덩이로 부상하게 된다.
- 전쟁 준비 : 자명고로 인해 고구려군의 사기가 저하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대무신왕은 직접 낙랑으로 향하게 되고, 자명고가 실제로 작동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이에 호동에게 자명고를 처리할 계책을 내라 하고, 호동은 이에 대무신왕이 칭병하여 호동과 라희 내외를 고구려로 불러줄 것을 청한다. 대무신왕은 자명고를 본 뒤에 너무 놀라 병이 들었다는 소문을 내고는 죽기 전에 호동을 다시 보고 싶다는 핑계를 대 호동과 라희를 국내성으로 불렀고, 라희가 국내성에 오자 멀쩡해진 모습으로 나타나 라희에게 자명고를 부술 것을 종용한다. 라희는 이에 강하게 반발하지만 대무신왕은 그래도 전쟁은 막을 수 없다면서 고구려가 전면전을 통해 낙랑을 칠 것이고, 양국이 대규모 전쟁을 통해 공멸하면 한반도는 한나라가 집어먹게 될 것이라고 협박한다. 라희는 호동의 배신에 분노하지만 호동이 전후 낙랑을 형제의 나라로 대할 것이라고 약속하며 달래자 결국엔 이를 받아들이고 혼자 낙랑으로 돌아온다. 겉으로는 호동이 대무신왕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국내성에 남았다는 핑계를 대었지만, 호동은 국내성에 남아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고 이러한 사실을 알릴 낙랑의 세작들은 호동이 국내성으로 갈 때 가져간 명단으로 색출되어 모두 처형되었기에 낙랑에서는 고구려 내의 사정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 최종 결전 : 라희는 그간 어머니 왕자실로부터 배운 독을 사용해 자명고를 지키는 군사들을 처리하고, 자신을 막아선 자명까지 죽인 뒤 자명고를 찢어버려 그 증표를 호동에게 보낸다. 대무신왕과 호동은 해애우를 태자로 책봉하겠다는 거짓 편지로 비류나부를 낚아 그 군사를 동원해 5나부의 병력을 모두 모으고 낙랑 정벌을 준비한다. 물론 진상을 알게 된 송옥구가 크게 반발하며 군사를 거두려 했지만 송옥구는 전시에 전열을 이탈하려 했다는 죄를 받아 즉결 처형. 이후 호동은 자명고가 부서졌다는 증표를 군사들에게 보여 사기를 고취시킨 뒤 낙랑을 공격했고 낙랑은 당연히 기습을 받은 터에 연전연패하며 무너지게 된다. 자명고가 찢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낙랑군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고, 대장군 왕홀은 미리 호동이 지시한대로 라희가 남부 지방에 파견해 둔 상태였으며, 또 호동이 거짓으로 망명했던 사이 낙랑의 내부사정을 파악하고 요소에 자기 사람과 졸본 군사들을 배치해 두었기 때문. 결국 수도 왕검성이 함락되고 최리가 포로로 붙잡히게 된다. 대무신왕은 고구려의 패권시대가 열렸음을 선포하며 호동과 라희의 청에도 불구하고 최리를 처형했고, 더 나아가 낙랑의 민심을 다스린다는 명목으로 낙랑 백성들의 망국의 한을 배신자 라희를 죽여 풀게 한다.
-
낙랑멸망 : 최리가 죽고 모하소와 왕자실은 최리의 상을 치른다. 모하소는 라희가 백성들에게 돌을 맞아 죽을 때 이를 감싸다가 함께 죽었고, 왕자실은 대무신왕에게 청해 라희의 시신을 얻어 낙랑을 떠난다. 왕홀은 왕검성이 함락될 때 남부에 있었고 이후 모양혜와 함께 저항군을 이끌었으나 결국엔 함께 전사. 자명은 앞서 라희가 자명고를 찢을 때 독에 당한 뒤 피신하여 이를 치료하느라 왕검성이 무너질 때도 살아남았으나 이후 낙랑에 '또 하나의 왕녀가 있어 낙랑을 부흥시키리라'는 소문이 돌자 대무신왕은 호동에게 자명을 잡아 죽이라는 명을 내린다. 호동은 아버지의 명령과는 별도로 어쨌든 자명을 찾고 있었고, 또 결국엔 재회하지만 자명은 자신의 아버지 최리를 죽이고 나라를 멸망시킨 호동을 보자 칼을 겨눈다. 자명공주는 호동을 칼로 찌르지만 호동을 죽이지 않았다.
호동: 날 왜 죽이지 않았느냐.. 어째서..
자명: 나도 당신처럼 조금 더 느끼고 싶어서일까? 당신이 살아있는 걸.
호동: 지금은.. 지금은.. 나의 뿌쿠인가?
자명: 내가 자명이로 있었든 신녀로 있었든 숨겨놓았든 숨기지 않았든 당신의 뿌꾸가 아니었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어요. 나 기도했어. 진심으로 기도했어. 이 빌어먹을 운명을 하루 만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게 해달라고. 그럴 수는 없는 거겠죠.
아침이 되자 호동을 구하러 온 고구려 군사들이 다가오고, 검을 들고 싸우려는 자명을 말린 호동은 자명을 끌어안으며 검으로 자신과 자명을 함께 찌른다. 그렇게 호동과 자명은 동반자살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호동: 다른 사람 손에... 널 죽게 할 수 없었다. 만약에 다음 생이 있다면 그 땐 너와 난, 평범한 사람으로 만나 사랑할 수 있겠지.
자명: 다음 생애가 있다면 난, 당신의 어머니로 태어나고 싶어. 이번 생에는 충분히 사랑받았으니까 좋은 엄마가 되어서 당신을 사랑할게. 당신은.. 라희를 사랑해줘.
7.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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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 % | 별점 / 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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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3.1 / 5.0 |
드라마 자명고의 가장 큰 특징은 '자명고' 라는 북을 사람으로 설정했다는 것이다.[8] 즉, 낙랑을 지키는 신물인 자명고는 실제로는 자명공주 그 자체이며, 나아가 역사상에 실존하지 않는 이 자명공주 역을 통해 삼각관계를 만들었다. 이를 두고 참신하다는 평도 많았지만, 공감하지 못한 시청자들 사이엔 역사 왜곡 논란이 일었다.
물론 자명고라는 정말 큰 북 자체도 나오기는 하는데, 극중에서는 현실적으로 각색했다. 어두운 북 안에 엄청난 수의 박쥐들을 사육하고 있으며 북을 울려야 할 때는 전서응을 들여보내 박쥐들을 깨워 박쥐들이 북 안에서 난동을 일으켜서 북이 스스로 울리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좀 더 설명하자면 평소에는 거대한 북안에 박쥐들을 풀어놓고 기르다 멀리서 외적의 움직임이 감지될 시 국경지대의 보초병들이 매를 북 안에 들여보내 박쥐떼들을 흐트러놓는다. 이때 매의 다리엔 색끈을 묶어놓아 정보를 전달하는 병사가 어떤 적이 어디서 침입했는지 구분할 수 있게끔 해놓았는데, 자명고를 단순히 북이 울리는 방법만이 아닌 적을 식별하는 경보체계 그 자체로 각색했다는 점이 포인트이다.
허준, 대장금, 주몽, 선덕여왕 같은 영웅담을 그린 MBC 사극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이 사랑의 문제를 퓨전적으로 그린 자명고에 적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시청률 부진과는 별개로 대사 하나하나가 수준급이며, 미려한 화면 연출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욕을 먹는 드라마라기보다는 무언가 들인 노력에 비해 결실이 아쉬운 드라마로 평가받고 있다. 비극이 예정된 결말을 향한 줄거리 자체는 꽤 아름답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조기종영이 결정되자 시청자 게시판은 항의로 들끓었다.
그러나 여타 히트한 사극들을 보면 전쟁이나, 박진감 넘치는 장면이 주를 이루는데 반해, 자명고는 50부작 예정으로 해서 그런지 중반부 전개에서 고구려와 낙랑국 두 나라의 권력 다툼만 지루하게 계속 보여주고 말았다. 반면 후반에는 전개가 갑작스럽게 빨라져서 시청자들이 당황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갑자기 결정된 조기종영의 영향이다. 또 많은 돈을 들인 CG도 초반만 반짝하고 나중에는 전쟁에 병사 열 몇명만 보이는 등 전혀 치밀하다고 할 수 없는 구성을 보였다. 가끔 허접한 CG에 경우 손발이 오그라드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선덕여왕하고 같은 시간대에 방송된 것이 이 드라마의 조기종영 원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명고에 나왔던 배우들의 면면을 보면 선덕여왕에 나왔던 배우들보다 연기력에서 인정받는 배우들이 많았고 특히 최고의 연극배우이자 영화배우로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던 고수희가 처음으로 TV드라마에서 연기를 펼쳤다는 점이 주목할 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주인공 덕만과 자명고의 주인공 자명(뿌쿠)의 운명은 비슷한데, 둘다 태어나자마자 예언 때문에 죽을 위기에 처했고, 한낮 한시에 태어난 자신들의 언니들과는 운명이 갈려 타지로 가 자신의 신분도 모른 채 죽도록 고생만 한다. 두 드라마의 차이점은 선덕여왕의 천명공주는 그래도 먼저 태어난 덕에 덕만처럼 타지로 가서 수난을 당하지 않고 공주로 자라나지만, 황궁에 남아있는 대로 고생한 케이스다. 근데 라희는 기예단에서 매 맞아가며 구르는 자명과는 달리 부유하고 풍족한 환경에서 아버지와 두 어머니의 방식이 다른 사랑을 받아가며 행복하게 자라난다. 또 다른 차이점은 덕만은 그래도 고생 끝에 구사일생으로 공주 신분을 되찾아 황궁에 입성하고, 어머니 마야부인은 '천명의 몫까지 공주로서 모든 것을 누리게 해주겠다.'며 눈물을 흘리는데, 자명(뿌쿠)는 신분 복원은커녕 친어머니 모하소에게 밥상 한 끼 얻어먹은 게 다이다.[9][10]
이 드라마의 아쉬운 점들중 하나는 문성근의 그것이 알고싶다 식의 대사 처리 정도다. 심각할 때나 평상시 때나 항상 그것이 알고싶다 내레이션 하는듯한 어감이다. 문성근이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인 건 맞지만 사극 쪽에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았다. 신인이었던 정경호와 박민영 등도 연기력이 아주 좋다고 하긴 어려웠지만, 문성근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명연기자기 때문에 자명고에서 보여준 발연기에 대해 시청자들의 실망이 컸다. 이 이후 문성근은 연인에 출연하기전까지 근대 이전을 다룬 사극에 단 한 편도 출연하지 않았던만큼 본인에게도 이 당시 연기력 논란이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왔던 듯 하다.
고증도 나름대로 있어서 용어상 불암[11]이라는 표현도 있었으며 SBS 연개소문의 영향 탓에 고구려군 엑스트라 병사들의 고증도 나름대로 충실했다. 하지만 고구려군 장수들의 갑옷은 판타지 갑옷 식으로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고증 오류를 자초했다.
컨셉 자체는 좋았으며 배우들도 나름대로 훌륭한 연기를 했고 촬영하는 내내 배우들과 스태프들간의 호흡도 척척 맞아 분위기도 좋았었기 때문에 조기 종영 결정 후 종방할 때 배우 & 스태프 모두 아쉬워했다고 한다. 즉 방영 시기를 너무 늦게 잡은 것이 문제였던 듯 하다.[12]
8. 기타
- 2021년 현재 SBS 온에어 어플에서 무료로 전회차 시청가능하다. 단 로그인이 필수이며 화질은 그리 좋지 못하다.
- 2022년 7월부터 SBS측에서 본사의 과거 드라마들을 올리는 채널인 빽드-스브스 옛날 드라마에서 편집된 방영분을 업데이트하기 시작하였다. 그중 현재 성년배우로서 좋은 연기를 펼지는 호동왕자 아역의 여진구와 낙랑공주 아역의 진지희의 어릴 적 귀여운 모습을 담은 쇼츠영상이 조회수 300만을 넘는 기록을 선보였다.
- SBS의 2009년 10대 기획으로 야심차게 준비했던 100억원이 넘는 50부작 대하 퓨전 사극이었지만 꽃보다 남자, 내조의 여왕, 선덕여왕 등에 치이며, 시청률이 10%를 오르내리는 바람에 당초 기획했던 50부작이 39부작으로 조기종영되면서, SBS는 다시 한번 조기종영 논란에 휩싸였다. 후속작으로 방영되었던 ' 드림'은 시청률이 더 저조하면서 SBS는 큰 타격을 입게 되어 결국 천사의 유혹 부터는 밤 9시로 시간대를 옮기는 강수를 두었다.
고구려 열풍이 불던
2006년 ~ 2009년 시기의 마지막을 찍은 작품이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삼국 중에서도
고구려를 다룬
사극이 많아 고구려붐이 불었는데, 그
이유는
중국의
동북공정 때문이었다. 방송계조차 이대로 방관할 수는 없다는 분위기였고,
지상파 3사가 모두
고구려 사극을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MBC가 시기적으로도 빨랐고, 고구려에서도 초기 역사인
주몽의 건국시기를 담자, SBS가
연개소문을 제작했고, 이어
KBS도
대조영을 제작했다. <주몽>과 <연개소문>, <대조영> 이후 2007년
태왕사신기와
2008년
바람의 나라, 그리고 SBS가 이 작품을 다룬 뒤
고구려 열풍은 막을 내렸다.
[1]
대표작으로
국희,
패션 70's,
서울 1945 등이 있다.
[2]
쌀과 보리, 소금과 고래기름이라는 생필품 요소들이 작중 자주 언급된다.
[3]
죽을 자식이라면 낳지 않겠다며 모하소가 출산을 억지로 멈추고 버티고 있을 때, 얼른 딸을 낳아버린 후(...) 자묵과 함께 불꽃이 달린 화살을 모하소 처소의 후원에 쏘아 재앙이 모하소의 딸에게만 몰렸다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을 하도록 조작한다. 최리를 너무 몰아치지 않고 숨쉴 틈은 주어 더욱 복종토록 한 낙랑군 조정의 뜻으로 더 캐지는 않지만, 후일 수상함을 느낀 모하소가 후원을 뒤져보고 전말을 알게 된다.
[4]
머리는 반이 단발마냥 홀랑 탔고, 팔부터 어깨죽지까지 심한 화상이 남았다.
[5]
처의 잘못은 지아비만이 물을 수 있으니, 형수를 처로 취한 후 죄를 덮으며 금액은 전액 왕씨가에서 배상토록 하는 수.
[6]
왕자실은 생모로서 공식적으로는 낙랑태녀의 혼사를 논할 내전어른이라는 핑계를, 비공식적으로는 매설수가 갓 낳은 왕자를 외손으로 두게 된 비류부와 호동의 사이를 염탐해온다는 핑계를 댔다. 모양혜는 본인이 왕홀의 적처 자리에서 쫓겨나기 전 받은 일 년의 시간제한 내에 속히 회임을 해야 하니, 사신으로 갈 대장군과 잦은 합궁(...)을 꾀한다는 핑계를 걸었다. 물론 둘 다 본 목적은 호동왕자의 호위로 있는 자명. 왕자실은 자명을 죽이고자 하고, 모양혜는 라희의 대적수로 자명을 태녀로 밀고자 한다.
[7]
왕자실은 아우인 왕홀이 뿌꾸에거 반하여 모양혜를 대신해 후사를 보게 하고자 함이라는 핑계를 댄다. 송매설수는 '퍽이나ㅋ' 하는 표정.
[8]
사실,
바람의 나라에서도 나온 해석이다. 해당 작품에서는 낙랑공주의 두 오빠로서 '천리 밖을 내다보는 신기'를 지녔다는 설정으로 나오며, 특히 그 중 작은 오빠는 그녀에게
근친상간에 준하는 감정까지 갖고 있다.
[9]
그마저도 라희가 먹다가 남긴 거였다.
[10]
그래도 모하소 역시 눈물을 흘리며 맞이하긴 했으나 왕자실의 계략으로 딸이 공주 신분을 되찾지 못하자 발만 동동 구르는 식으로 도와주지도 못한다.
[11]
백두산, 대표 표현으로는 '은혜가 불암에 닿았나이다.'
[12]
경쟁작도 운이 없었는데 신드롬을 일으켰던 KBS
꽃보다 남자였고, 게다가 MBC는
내조의 여왕에다가 후속작
선덕여왕까지 대박을 치는 바람에 시청률 경쟁에서 계속 밀렸다. SBS는
타짜부터 이어져온 월화 드라마 잔혹사를 이겨내고자 야심차게 내놓은 작품이지만 처참하게 실패했고, 2010년
자이언트가 나오기 전까지 2년 가까이 침체기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