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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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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1960년대 : 태동 이전2.2. 1960년대 : 중화권 무협의 본격 수입2.3. 1980년대 : 국산 무협의 시작2.4. 1990년대 초 : 몰락2.5. 1990년대 중반 : 신무협의 등장
3. 특징

1. 개요

武俠

구무협은 20세기 중화권에서 시작된 무협 소설들과[1] 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한국 무협 작품군을 일컫는 용어다.

구무협은 시대적으로 따지면 1980년대까지의 무협작품 특히 무협 소설을 가리키며, 1세대 무협 소설은 당시 '무협지'라는 명칭으로도 많이 불렸다.

이후 1990년대에 등장한 2세대 무협소설인 신무협과 구별하기 위해 구무협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이후 이것이 1세대 무협소설을 주로 가리키는 명칭으로 자리잡았다.[2]

2. 역사

2.1. ~1960년대 : 태동 이전

사실 무협물삘 작품들이 근대 이전에도 아예 없었던건 아니다. 당장 조선 시대나 그 이전의 유충렬전, 구운몽, 설공찬전 등의 고전문학이 어느 정도 무협의 요소를 취하고 있었고[3], 김조순이 이른바 '오대검협전'을 쓰기도 할 정도로 무술과 관련된 작품들은 있었다. 허나 오대검협전 등은 '검술 쓰는 협객'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입신양명을 모색하는 등 동아시아의 문화적 관념이 일치하는 데에서 우연히 겹치는 요소들이 있었다 뿐이지 하술할 '무협물'의 성격을 온전히 갖췄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또한 소설 자체를 패관으로 천시한 것에 더해 외세의 침략이 이어지며 나라도 점점 망조가 들던 시절이라 양반가에서 소설을 대량 취급하기는 점점 어려워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결국 이러한 조선시대의 고전 무협 문학은 자연적으로 대가 끊기고, 그 자리에 하술할 중화권 무협이 번역, 진입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시절이었던 1931년, 독립운동가 박건병이 '맹천'이라는 필명으로 평강불초생의 <강호기협전>을[4] 동아일보에서 번역 연재한 것이 국내에 최초로 소개된 무협소설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무협물은 생소한 장르였고, <강호기협전>도 중국에서만큼의 큰 인기는 끌지 못한채 연재가 중단되고 말았다. 참고로 연재가 중단되고 나서 불과 2개월 후인 1932년 1월 10일 박건병은 암살을 당한다.[5]

2.2. 1960년대 : 중화권 무협의 본격 수입

그래서인지 <강호기협전>이 국내에서 최초로 번역된 중국 무협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고, 일반적으로는 1961년 경향신문에 연재된 <정협지>가 최초의 중화권 무협 번역작인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물론 이 작품도 국내의 무협물 흐름을 짚을 수 있는 의의는 가진 작품이긴 하다. 원작은 대만 작가 위지문의 <검해고홍(劍海孤鴻)>으로, 언론인 김광주[6]가 번안했다.

그렇게 1960년대부터 알려진 중화권 무협지들은, 당시 대만과 홍콩에서 일던 신파 무협의 붐을 타고 1980년대까지 대본소에서 만화와 함께 널리 읽혀졌다. 즉, 이 시대에는 김용, 양우생, 와룡생, 고룡 등의 중화권 작가들이 구무협 시대를 이끌었다. 다만 이들은 중화권에선 오히려 신파 무협의 거장으로 불리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 국내의 구무협 정의에는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다보니, 결국 번역물 뿐만 아니라 중화권 작가의 이름을 달고 한국인 작가가 번안, 실질적으로 창작하는[7] 꼼수도 나타나는데, 여기서 역설적으로 국내 창작 무협의 시대가 열린다.

2.3. 1980년대 : 국산 무협의 시작

최초의 창작 무협이 어떤 작품인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중국 작가의 이름을 떼고 저자명으로 한국 작가의 이름을 올린 것은 1979년 을재상인[8]의 '팔만사천검법'이 효시로 꼽힌다. 이후 구무협이라고도 불리는 1세대는, 을재상인을 시작으로[9] 1980년대 일명 5대 작가로 불리운 사마달, 서효원, 금강, 야설록, 검궁인 등이 주요 작가로 활동한 시기다. 이들 외에도 내가위, 냉하상, 뇌강, 매설헌, 와룡강, 유랑, 설운, 설풍, 아도인, 이광주, 일주향, 제갈천, 천중행, 천중화, 철자생, 청운하, 해림, 해천인 등 많은 작가들이 활동했다. 이 시기 이들은 주로 만화방에 공급되는 박스형 무협소설을 통해 작품을 내놓았다.

이때 나온 무협소설들은 주인공의 탄생부터 시작해서 고전소설, 영웅소설을 연상케 하는 (영웅)일대기적 구성이 많았는데, 주인공이 차츰 힘을 쌓아가다 천하제일인이 되거나 무림일통, 군림천하의 패업을 달성하는 게 주된 결말이었다. 1세대 무협의 경우 일대기적 구성 외에도, 당시 홍콩 무협영화의 영향을 받았는지 강시나 음산한 지하동굴의 괴물 등 괴기스런 묘사가 있는 작품이 많았다는 특징도 있으며, 소설 서두에 기본 설정을 느낌표 가득한 거창한 문장으로 나열하는 점도 특징이었다.

하지만 이런 고전적 이야기 구조가 소설들에 지나치게 반복되면서 독자들이 식상함을 느끼게 되었고, 그 식상에 대응하고자 소설들이 뒤로 갈수록 과할 정도로 파워인플레가 뻥튀기 되어갔다. 게다가 표절 인식이 지금보다 미미하던 시절 국내외 작품들에 대한 심지어 자기 작품에 대한 표절(...) 등도 생겨나 무협소설의 명예를 떨어트려 갔다.

1980년대 무협지의 특징 중 하나는 야설을 능가하는 성적 묘사가 심심하면 등장한다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사실상 질 저하로 떠나는 독자를 이런거로라도 붙잡기 위한 프로덕션의 자충수였고[10], 그러다 보니 작가 입장에선 골 때리게도 반강제로 이런 묘사를 넣도록 지시받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심할 경우에는 지시를 거부하면 인격적 모독이나 체불임금, 폭행까지 당하고 쫓겨나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고 한다. 물론 다 그런건 아니고 몇몇 작가의 경우에는 사회와 본인에 대한 울분을 무협지를 통해 가학적인 성묘사로 풀어내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무협작가들의 일터 환경은 그리 좋진 못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무협지 프로덕션에 소속된 작가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생계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갈겨댄 작품들이 다수였다. 원래 순수 문학도였으나 돈이 되지 않는 관계로 무협지 프로덕션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간간히 그러한 울분이 드러나는 작품도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소설가로 대성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상당수는 착취 속에서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는 창작 아닌 창작 생활을 해야 했고, 일부는 자기 프로덕션을 차려서 후배들을 착취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기도 했다. 결국 당시 만화계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이때 무협지 작가들은 대부분 필명을 썼는데, 본인이 이런 작품을 썼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긴 사람도 있었던 모양. 필명은 유명 작가의 이름에서 한 글자를 바꿔쓰거나 무협지 주인공에 맞먹는 으리으리한 이름을 달기도 했다.

물론 이 시절에도 모든 작가들이 착취만 당한 것은 아니다. 소위 말하는 유명대학을 다니다가 수익이 많다는 이유로 전업한 작가들도 존재했다. 즉, 무협 소설 시대에 자기 필명 내걸고 소설 쓰던 작가들은 출간만 된다면 처녀작이건 뭐건 나름 괜찮게 받았다고 한다. 검궁인은 처녀작의 원고료로 66만원을 받았다고 증언했는데, 당시 대졸신입사원 월급이 25만원대였다고 했으니 적은 돈은 절대로 아니다. 때문에 소위 말하는 유명 구무협작가들은 학력이 화려한 편이었다. 서효원은 성균관대, 야설록은 연세대, 일주향은 서울대, 국내 무협소설 최초의 필화사건이 된 국보법문제작 무림파천황 사건의 박영창도 연세대 출신이였다. 용대운이 서울시립대 출신으로 야설록 혹은 야설록과 공저라는 형태로 초년을 시작했는데 대충 이정도가 기준선이었던듯 하다.

2.4. 1990년대 초 : 몰락

그러나 독자들의 지지와 인기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국내의 무협소설계는 대만이나 홍콩 등지에서 일어났던 신무협운동과 같은 질적 비약의 움직임이 너무 약했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당시 보수적인 한국 문단과 지성계의 상황과 맞물려 무협물은 저질문학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남기게 되었다. 중화권과 달리 한국에서는 무협의 은 개나줘버리고[11] 무림을 배경으로 폭력깽판 섹스만을 남발하는 소설이 주류였기도 하고. 이런 악평은 너무도 뿌리깊게 박혀서, 국내로 유입된 양우생과 김용, 고룡 등의 뛰어난 작품들도 싸그리 저질로 치부해버리는 안타까운 상황이 꽤 오래 지속되었다.

무엇보다 심각했던 것은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로 이어지는 한국무협소설 암흑기의 등장이었다. 검궁인은 1달에 무협지 1질(=1편)을 꾸준히 쓴 사람은 자신과 서효원 밖에 없었다고 밝혔는데, 당시 무협지 1질은 이후에 문고판으로 재간된 판본을 기준으로 하면 소설책 3권 분량이다. 무려 1달에 소설책 3권(...)을 썼다는 것인데, 이후 한국 양판소계에서 공장장으로 불린 성상영도 한달에 3, 4권[12]을 겨우 썼다. 그런데 검궁인이 한달에 2질을 써야 수입을 유지할 상황이 되었다면서 무협소설계를 떠나게 되는 것이 문제의 무협소설 암흑기였다. 이때가 위에 언급된 대명을 통한 공장이 돌아간 대표적인 시기이다. 이 시기에 1달에 1, 2편이 꾸준히 나오던 이름은 사마달과 백상이었고, 이 중에서 진짜로 자기가 쓴 것은 백상 뿐이었다. 어쩐지 오래된 만화방 가면 사마달 작품이 널렸더라 물론 한달에 6권을 쓰면서 안정될 퀄리티가 유지될리가 없어서, 이 시기 백상의 작품들은 그 완성도가 처참한 수준이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무협소설의 평가는 결정적으로 떨어졌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서 무협을 읽던 독자들은 점점 빠져나갔고 그런 독자들을 잡겠다는 안간힘은 소설 속 성행위 묘사가 갈수록 진해지는 꼴로 이어진다. 하지만 무의미한 성행위 묘사의 증가는 제대로 된 무협을 보려는 독자들의 이탈을 가속화하는 꼴을 불렀고, 거기다 지속적인 작품 공급을 위해서 이름만 빌려주고 그림자 작가들이 적당히 짜깁기한 글을 내놓는 이른바 대명무협이 범람하면서 작품들의 질은 급격히 하강, 결국 구무협 시대의 몰락을 가져온다.

이런 상황들 속에서 1980년대 후반에 이르면 1세대 무협은 와룡강 상표, 사마달 상표가 붙은 자기 복제성 노루표 무협지를 제외하곤 거의 멸종 상태로 이어지게 된다.

2.5. 1990년대 중반 : 신무협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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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악재를 겪던 무협지는 결국 기존의 틀을 대거 깨부수는 신무협 운동을 통해 혁신하게 된다.

3.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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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무협을 국내 창작 무협만으로 좁혀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2] 한국의 무협소설 계보를 크게 덩어리 지어 살펴보자면 구무협(~1980년대) - 신무협(1990년대) - 판협지(2000년대) - 무협 웹소설(2010년대 이후 ~ 현재) 순으로 발전되었다. [3] 무협물보단 동양풍 판타지류가 많다. [4] 평강불초생(平江不肖生)은 필명이고, 본명은 상개연(向愷然). 그는 1920년대 초부터 <홍잡>에 『강호기협전』을 6년 동안 연재한다. 일각에선 최초의 현대적 무협지로 평가받기도 한다. [5] 현재(?) 인터넷에서 박건병으로 검색을 해보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두산백과사전에 박건병을 설명하는 문서가 있다. 그러나 1932년 1월 10일에 박건병이 암살을 당했다는 동아일보의 보도가 분명히 있음에도 여기선 박건병의 사망년도를 미상으로 적어놓고 있다. 수정 신고하자 [6] 소설가 김훈의 아버지. [7] 요즘 세상엔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책을 수입, 번역할 때도 수준 미달이거나 맞지 않는 작품이 있으면 그걸 원문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아예 번역을 하면서 더 재미있게 뜯어고치는 마개조 경우도 잦았다고 한다. [8] 혹은 을상인. 본명 김대식 또는 김의민. [9] 때론 을재상인 같은 초기 시대는 따로 구분한 후 창작 무협의 생산이 본격화되고 대본소용 박스형 무협소설들이 자리 잡은 시기부터 1세대라고 보기도 한다. [10] 당연히 이는 또다시 질 저하의 악순환을 불러온다. [11] 다만 중화권 무협에서도 의와 협을 내세우는 작풍을 가진 작가는 의외로 소수였다. 국내에서 유명한 김용과 고룡만 해도 등장인물의 감정과 갈등을 더 중시하고, 와룡생은 군웅쟁패, 양우생은 민초의 투쟁을 주로 다뤘다. [12] 책형이 작고 여백과 띄어쓰기 등을 고려하면 비슷한 분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