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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15:40:44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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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cha.go.kr/a0021000037001.jpg 파일:왕궁리오층석탑.jpg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파일:월정사팔각구층석탑.jpg 파일:external/www.cha.go.kr/1611450.jpg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

1. 개요2. 유명한 석탑 사진3. 참고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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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석탑()은 을 깎아 만든 을 말하며 한국의 대표적인 탑 양식으로서 현재 많이 남아있다. 돌을 벽돌처럼 깎아서 쌓아 올린 모전석탑이라는 것도 있는데 그 수가 매우 적다. 초기의 석탑은 미륵사의 석탑처럼 목탑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재료만 돌이었던 것이 탑의 크기가 점차 소형화되면서 석탑만의 독특한 양식을 갖추게 됐으며, 특히 고려 시대에는 일반적이지 않은 독특하고 기이한 형태의 석탑(이형석탑)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한국 화강암이 많아 석탑 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사실 삼국시대때부터 조선초 무렵까지는 목탑도 많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목탑들은 여러 시대에 있었던 전란을 거치며 대부분 소설됐고, 전란을 피한 목탑도 관리비용이 많이 들어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목탑을 개보수할 돈이 줄어 유지하기 쉽지 않았다.

반면 흔한 석재인 화강암으로 만든 석탑은 튼튼해서 쉽게 파괴되지 않아 현재 많이 남았다. 절은 완전히 사라졌는데 석탑만 덩그러니 남은 경우가 굉장히 많다. 화강암은 튼튼한 만큼 가공이 그만큼 힘들다는 단점이 있는데 이와는 반대로 유럽에서 조각에 많이 사용한 대리석은 깎기 쉽기 때문에 기교를 비교적 많이 부릴 수 있지만[1] 비교적 강도가 약하고, 산성비에 약하다. 실제로 대리석으로 만든 경천사 석탑은 국립중앙박물관, 원각사 석탑은 보호각 안에서 보호받고 있다.

한반도에 남아있는 석탑들은 주로 백제, 신라, 고려에서 조성한 것으로 백제와 신라 시대의 석탑은 비슷한 듯 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데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탑의 지붕 모양이다. 백제는 전체적으로 지붕이 거대하면서도 끝부분이 갈수록 얇아지고 위로 휙휙 들려 있다. 반대로 신라는 지붕이 아담하면서도 뭉툭하다. 그리고 층수는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백제는 주로 5층탑을 기본으로 하되 각 층의 높이를 줄이고 지붕돌을 얇게 했으며, 신라는 3층 석탑이 많으며, 탑이 너무 낮게 보일 것을 감안해 기단을 2중으로 하고 상층 기단부는 높게 축조, 탑신부도 두텁게 해서 왜소해 보이는 것을 방지했다.

고구려는 현재 전해지는 석탑은 없지만 평창 월정사, 남양주 수종사 등 팔각다층석탑이 있는 지역들이 과거 고구려의 점령지였다는 점과 고구려 목탑지의 특성(팔각건물)과 공통점이 있다는 점에서 고구려계 석탑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게 되면서 경주 불국사 석가탑과 같은 형태의 통일신라식 3층 석탑이 한반도 전체로 퍼져 이후 석탑의 양식이 거의 통일되는데,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옛 백제의 영역이던 남원 실상사, 장흥 보림사의 삼층석탑, 그리고 지금은 북한령인 금강산의 정양사 삼층석탑에서까지 표준 양식 석탑이 만들어진 것이 그 예시이다. 물론 항상 똑같이 생긴 표준 양식 석탑만 만든 것은 아니고 어떤 것은 다른 석탑과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이런 이형석탑(異形石塔)의 대표격으로 불국사 다보탑,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화엄사 4사자 삼층석탑이 있다. 분황사의 계보를 잇는 모전석탑들도 일종의 이형석탑들이다.

신라 중대까지는 다른 장식 없이 깔끔하게 절제된 삼층석탑 위주로 세우지만 하대부터는 석탑에 다양한 조각을 새기는 세련된 정형석탑이 유행한다. 문짝, 인왕상( 금강역사상), 사천왕상, 팔부중상, 십이지신상 등. 예를 들어 경주 장항리 서 오층석탑, 경주 원원사지 삼층석탑, 울산 간월사지 삼층석탑,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이 다양한 조각이 남아있는 하대 석탑이다.

고려 시대 들어서는 각 지방 호족들의 문화가 발달하면서, 표준양식의 보급이 눈에 띄던 신라 때보다 전국에서 독자적인 형식의 석탑들이 많이 건립되었다. 고려 말에는 경천사 10층 석탑처럼 몽골 제국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은 석탑도 등장했다.

조선 시대에는 숭유억불로 전반적인 불교 교세가 축소되고 석탑보다는 불상을 중시하는 경향이 생겨 석탑 건립은 저조하고 석탑의 전체적 규모가 축소되었다. 층수는 높아지고 기단부, 탑신석, 옥개석은 낮고 간략화된다.

참고로 산업훈장 마지막 등급인 석탑(錫塔) 산업훈장은 돌탑이 아니라 주석탑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석탑은 북한에 있는 주체사상탑이다.

2. 유명한 석탑 사진

2.1. 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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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동탑. 1990년대에 복원한 것으로 기계로 깎아 너무 매끈한 탓에 이질감이 든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손으로 일일이 돌을 깎아 만들어서 어느 정도 울퉁불퉁하긴하나 그렇기 때문에 정성이 느껴지는데 기계로 매끈하게 자른 것이 오히려 성의없이 만든 느낌을 준다. 이러한 복원에 대해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쓴소리를 했다. 거기다 무게 때문에 금이 가서 지속적으로 보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문화재 졸속 복원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파일:SAM_5693.jpg
왕궁리 유적 5층 석탑. 본디 왕궁이었던 자리에 절이 세워졌으나 그 절마저 사라지고 탑만 남았다. ( 국보 제2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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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사지 오층석탑. 사진으로만 보면 체감이 되지 않지만 실제로 보면 상당히 크고 아름답다. ( 국보 제9호)

2.2.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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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 모전석탑. 형식은 전탑이나 점판암을 벽돌처럼 깎아서 쌓은 모전석탑이다. 본래는 7~9층으로 더 컸지만 현재는 3층만 남았다. ( 국보 제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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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지 3층 석탑. 문무왕때 건립되었으며, 경주의 석탑 중에서 가장 크다.[2] ( 국보 제1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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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다보탑. 535년(법흥왕 22년)에 불국사가 창건한 후, 751년(경덕왕 10년) 김대성의 발원으로 불국사가 중건될 때 석가탑과 함께 수축(修築)한 것으로 추정된다. ( 국보 제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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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석탑들 중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으며 흔히 석가탑이라고도 불린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여기서 발견되었다. ( 국보 제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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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탑신에 팔부중 부조를 새긴 것이 독특하다. ( 국보 제1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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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능지탑지의 능지탑(연화탑).(사진출처: 문화재청 능지탑 항목)) 현 모습은 1979년 남은 석재 중 일부로 복원한 것으로, 본래는 5층 석탑이었다고 추정된다. 참고로 복원 전에는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 현재는 인근 중생사라는 절에서 관리하고 있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34호)

2.3.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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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 지방에서 유행했던 석탑 양식을 대표한다.( 국보 제1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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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묘향산의 보현사 석탑과 남양주 수종산의 석탑과 마찬가지로 8각의 고구려계 석탑이다. ( 국보 제48호)

파일:external/mahan.wonkwang.ac.kr/EMB00000fb85d52.jpg
운주사 원형 다층 석탑. 대표적인 고려 시대의 이형석탑이다. ( 보물 제7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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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사 10층 석탑.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석탑으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 국보 제86호)

2.4. 조선

파일:external/www.nabi.or.kr/10top.jpg
원각사지 십층석탑. 경천사지 10층 석탑과 판박이 수준이다. 이것 역시 대리석 재질이어서 산성비 피해 방지를 위해 유리각으로 덮었다.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어서 문제. 가끔은 해당 문화청 공무원들이 관리에 들어가기는 하나 역시 아주 가끔이라서 아직까지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덮어있다보니 곰팡이가 생기거나 석탑 곳곳에 세월의 흔적인 금이 가 있어서 보수 공사라도 해야할 듯. ( 국보 제2호)

3. 참고 항목


[1] 원간섭기 당시 티벳불교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서도 경천사 10층 석탑, 원각사지 10층 석탑이 지어지기도 했다. [2] 신라 석탑 중 가장 큰 것은 충주시의 중앙탑이며, 전탑 중에는 더 큰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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