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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12:28:32

강경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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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시
강경읍
江景邑 | Ganggyeong-eup
<colbgcolor=#003994><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충청남도
기초자치단체 논산시
행정표준코드 4540042
관할 법정리 13리
하위 행정구역 28행정리 238반
면적 7.01㎢
인구 7,511명[1]
인구밀도 1,112.27명/㎢
정치 {{{#!wiki style="margin:-0px -11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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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시의원 | 가 선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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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필 (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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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복지센터 계백로 162 (남교리 76-1)
강경읍사무소
1. 개요2. 관할 리3. 역사4. 관광5. 특산물6. 행정기관7. 교육8. 교통9. 출신 인물10.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충청남도 논산시의 서쪽에 있는 .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면적이 두 번째로 좁은 읍이고, 조치원읍, 철원읍과 함께 가장 오래된 읍이자 최초의 읍이다. 원래는 전국에서 가장 좁은 읍이었으나, 2019년 10월 21일자로 퇴계원읍이 면에서 읍으로 승격되면서 2위로 떨어졌다. 읍소재지는 남교리이다.

2. 관할 리

3. 역사

강경포구를 통해 과거 군산, 부여, 공주 등을 연결하는 수상 교통의 요지여서 크게 번성했다. 서쪽으로 금강이 흐르고 곡창지대인 논산평야, 호남 평야와 가까워, 수운 상거래가 발달하여 대구, 평양과 함께 조선의 3대 시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번성했다.

특히 강경이 크게 번성한 때는 구한말 1900년대부터다. 일본인의 유입으로 상업이 발달하면서 1910년 한일은행 건물이 지어졌고[2], 충청남도에서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다. 전성기에는 인구가 3만 명에 육박했다. 심지어는 전남 여수처럼 강경 와서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경제 활동의 핵심인 은행이 논산시내보다 몇십년은 더 일찍 강경읍내에 생겼고 논산시내에 있을법한 논산경찰서 법원 검찰청 지청이 논산시청과 꽤 거리가 있는 강경에 있는 것은 그만큼 강경의 위상이 매우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1914년 호남선 철도 개통 이후 화물이 철도로 운송되면서 수운의 메리트가 없어졌고, 청주 공주가 강경 상권에서 이탈했으며 돈 있는 사람들은 강경을 떠나 공주나 대전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경은 일제의 수탈 목표였던 논산평야와 호남평야의 중심지였고 호남선 철도가 강경읍을 통과했으며 당시 도로 교통이 매우 열악했기에 일제강점기 시절까지도 대량의 물량 수송은 대부분 철도나 수운(혹은 해운)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군산항과 목포항이 최대 항구 중 하나였으니 강경은 이 때까지만 해도 명줄은 붙잡고 있었다.

본격적인 몰락은 1960년대~1990년대에 이루어진 국토 개발 정책에서 비롯되었다. 당시에는 6.25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려 여러 산업 발전과 경제 개발을 하고 있었는데 주로 미국과 일본 등의 교역을 위해 부산항을 중요하게 여겼다.[3] 그래서 서울과 부산을 이어주는 경부선이 각광받았다.[4] 그래서 1960년대~1990년대에는 주로 경인선과 경부선 일대를 중심으로 여러 산업단지들을 유치해 개발했으며 경인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가 더해 나가면서 더더욱 부산항과 인천항으로 물류가 집중되었다.

이와 달리 강경읍은 이 두 라인에 해당되지 않았고 호남선은 오랫동안 단선(單線) 상태였다.[5], 수운은 대부분 화물선이 부산항이나 인천항으로 갔기에, 수운 물류 운송이 줄어 완벽하게 타격을 입었다. 1990년에 금강하굿둑이 완공되며 수운 운송이 멈췄다.

이에 강경읍은 1960년대부터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인구도 줄며 논산시의 인구 유출과 쇠락까지 불러왔다. 현재는 강경읍과 논산시는 충청남도에서 평범한 시골이나 소도시가 되었다.[6]

참고로 강경읍은 조치원읍, 철원읍과 함께 1931년 4월 제도의 시행과 함께 설치된 유서깊은 읍이다.[7] 현 논산 시내인 논산읍이 이보다 7년 늦은 1938년에 읍으로 승격되었으므로, 당시 강경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 강경천이 흐르는 지형을 보면 오히려 전북특별자치도에 편입해도 될 정도지만 예전에는 강경읍 동쪽이 아닌 남쪽으로 흘렀다.[8]

4. 관광

옛날 건물들이 많이 있어 읍내를 돌아다니면 타임머신을 타고 1950~1960년대로 온 느낌이다. 강경역 앞에서 공공 자전거를 무료로 빌릴 수 있다.

과거에 번성했던 곳이기에 곳곳에 천주교 등 근현대에 들어오면서 전래된 종교 역사와 관련된 성지순례지도 있다.

5. 특산물

특산물로는 젓갈이 유명하며, 매년 10월 중순에 젓갈 축제가 열린다. 도리어 한 때의 번영이 지나고나서부터 이 곳의 젓갈 유통이 활발해져서, 지금은 전국 젓갈 유통의 70%를 차지한다.

충청 방언으로 갱갱이라고 불린다. 그래서 젓갈집 이름 중에 갱갱이 젓갈이라는 이름도 있다.

우어회, 혹은 우여회로 부르는 웅어(Coilia nasus) 회무침도 별미이다.

6. 행정기관

논산경찰서, 대전지방법원 논산지원, 대전지방검찰청 논산지청은 논산 시내에 없고 강경읍에 있다.[10] 강경읍이 논산 서쪽 끝에 있는 것을 생각하면 독특한 배치라고 할 수 있다...만, 사실 저 기관들은 원래 이름부터가 '강경경찰서', '강경지원', '강경지청'이었다가 1990년대 와서야 논산시 승격을 전후해 개칭된 것이다. 앞서 언급됐듯이 강경이 논산보다도 읍 승격이 더 빨랐던 만큼 강경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 흔적이다.

7. 교육

강경상업고등학교(줄여서 강경상고, 더 줄여서 강상)는 예전에 경제 엘리트를 배출하는 학교로 유명했다. 금융 쪽으로 상당히 잘 나갔던 학교여서, 관련 업계에 빵빵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축구인 염기훈과 2015년 출범한 KEB하나은행의 초대 행장인 함영주 씨도 강경상고 출신이다. 웅진씽크빅[11] 등을 가진 웅진그룹도 강경이 모태다.[12] 현재는 그저 그런 시골 학교.

탤런트 강부자도 이 곳 출신이다. 강경중앙국민학교와 강경여자고등학교를 다녔으며 후일 강경고등학교에 장학금을 쾌척하기도 했다. 덧붙여, 강경여자고등학교는 우리나라 스승의 날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강경중학교 출신으로 영화배우 고수가 있다. 논산시 강경읍 남교리 출생으로 후에 논산대건고등학교로 진학하였다.

8. 교통

호남선이 읍의 중앙부를 지나가며, 강경역 강경시외버스터미널이 있었다. 하지만 강경시외버스터미널은 현재는 논산행과 일부 대전서남부행을 제외하곤 운행하지 않는다. 따라서 고속/시외버스를 이용하려면 논산 버스 101번을 타고 논산고속/ 시외터미널로 가야 한다. 고속철도 KTX를 이용할 경우에도 동일하게 논산역으로 가면된다.

그 밖에 타지역 시내버스 노선은 부여군으로 가는 301, 302번이 1시간 간격으로 다니고, 익산시와 매우 가까워선지 익산 버스 333 익산시 시내버스도 20-40분 간격으로 경유한다.

금강변에 강경포구가 있다.

9. 출신 인물

10. 관련 문서


[1] 2023년 10월 주민등록인구 [2] 현재는 강경역사관으로 운영 중이다. [3] 유럽 쪽의 교역은 인천항을 주로 사용했다. [4] 1978년 대전~이리 구간 호남선 복선화와 1980년 충북선 복선화 이전 복선으로 이루어진 철도는 경부선과 경인선 밖에 없었다. [5] 그나마 강경역은 1978년에 호남선 대전~ 이리(익산) 구간이 복선화되었지만 광주(송정리)까지는 1988년, 목포까지는 2003년에 이르러서야 복선화됐다. [6] 그 대신 충청권에서 발전한 도시는 당연히 대전광역시, 청주시, 천안시로 이들은 경부라인에 속해서 1960년대부터 이루어진 경제 개발 정책에 혜택을 받았고, 인구가 유입되면서, 현재는 충청권에서 주도적인 위치이다. [7] 참고로 이외에도 1931년 4월 설치된 읍은 동래, 대전읍, 영등포읍, 광주읍, 전주읍 등이 있다. [8] 더욱 정확히는 기존 강경천을 너머 강경읍이 확장하였다. 또한 치수사업으로 강경천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9] 행정구역상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소재 성당이고 관할 교구 역시 익산시내 성당이기에 천주교 대전교구가 아닌 천주교 전주교구 관할이다. 그러나 강경읍 시가지와 인접하며 강경역에서 나바위성당까지 걸어서 순례할 수 있는 코스까지 있다. 참고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사제품을 받은 후 조선에 처음 상륙한 곳은 제주특별자치도 한경면 용수리. 제주도의 대표적 천주교 성지로 기념관까지 건립되어 있다. [10] 충청남도의 비슷한 예로 서천군 장항읍이 있다. [11] 코웨이는 2013년에 매각. [12] 윤석금 회장은 공주시 출신(이 때문에 그룹 이름도 공주시의 옛 이름인 웅진을 따왔다)인데, 집이 가난해서 은행원을 하려고 강경상고를 다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