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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9 18:57:37

가족오락관

가족오락관 주요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한국PD대상
TV 대중문화 부문 작품상
한바탕 웃음으로
(1993년)
가족오락관
(1994년)
[1]
일요일 일요일 밤에
(1995년)

}}} ||
<colbgcolor=#dddddd><colcolor=#000000> KBS 1TV 예능
가족오락관
家族娛樂館|Family Entertainment
파일:KBS 가족오락관 로고.png
시청 등급 파일:모든 연령 시청가 아이콘.svg 전체 관람가
채널 KBS 2TV KBS 1TV
방송사 MIN Drama, KBS SKY DRAMA, KBS prime, KBS Story
방송 시간 역대 방송 시간 참고
방송 분량 1시간
방송 기간 1984년 4월 3일 ~ 2009년 4월 18일
방송 횟수 1237부작
제작 KBS, DSP미디어
책임 프로듀서 박정미
연출 한동규
각본 오경석, 박미경, 김여진, 최미림
출연 역대 MC 참조
HD 제작 HD 제작·방송

1. 개요2. 기획 의도3. 역사4. 오프닝 곡5. 변천사
5.1. 1980년대 초반5.2. 1980년대 중후반 ~ 1990년대5.3. 2000년대 초반5.4. 2000년대 중반5.5. 2008년 ~ 2009년 4월 18일
6. 역대 MC7. 역대 방송 시간8. 점수
8.1. 점수판의 역대 형태
9. 역대 게임10. 에피소드
10.1. 보조진행자 출신 연예인10.2. 가족오락관으로 유명해진 사례10.3. 전설의 왁자지껄 사건10.4. 그 외의 일화
11. 논란
11.1. 잦은 여성팀 편애 논란
12. 여담
12.1. 속어로서의 오락관

[clearfix]

1. 개요

파일:가족오락관.png
파일:familygame2.png
KBS 예능 프로그램으로, 1984년 4월 3일을 시작으로 무려 25년 15일이라는 긴 역사와 총 1237회라는 오랜 방송 회차로 2009년 4월 18일까지 25년 동안 방영되었다. 주 진행자는 허참(본명 이상룡). 여성 진행자는 수차례 바뀌어 무려 21명이나 되는데도 막방까지 허참만큼은 바뀌지 않았다. 다만, 1987년에 교통사고로 인해 딱 한 번 방송을 펑크낸 적은 있다고 한다.

2. 기획 의도

시청자들이 부담없이 웃고 즐길 수 있는 건전한 오락을 제공함으로 생활의 활력소가 되게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3. 역사

4. 오프닝 곡

5. 변천사

5.1. 1980년대 초반

5.2. 1980년대 중후반 ~ 1990년대

5.3. 2000년대 초반

5.4. 2000년대 중반

5.5. 2008년 ~ 2009년 4월 18일

6. 역대 MC


7. 역대 방송 시간

기간 채널 및 방송 시간
1984년 4월 3일 ~ 일자 미상 2TV 화요일 19:00
1992년 상반기 2TV 일요일 20:55
1992년 하반기 ~ 1995년 2월 17일 2TV 금요일 20:05
1995년 2월 23일 ~ 1995년 8월 31일 2TV 목요일 20:30
1995년 9월 6일 ~ 1996년 5월 8일 2TV 수요일 20:30
1996년 5월 15일 ~ 1997년 2월 26일 2TV 수요일 20:25
1997년 3월 5일 ~ 1997년 10월 15일 2TV 수요일 20:35
1997년 11월 26일 ~ 1998년 2월 11일 2TV 수요일 20:50
1998년 2월 18일 ~ 1998년 6월 10일 2TV 수요일 20:45
1998년 6월 17일 ~ 1998년 10월 7일 2TV 수요일 20:40
1998년 10월 14일 ~ 2000년 4월 26일 2TV 수요일 20:50
2000년 5월 4일 ~ 2000년 10월 5일 2TV 목요일 19:00
2000년 10월 14일 ~ 2008년 11월 15일 1TV 토요일 18:00
2008년 11월 22일 ~ 2009년 2월 28일 1TV 토요일 19:10
2009년 3월 14일 ~ 2009년 4월 18일 1TV 토요일 17:10

8. 점수

"가족오락관 최종점수, 몇 대~~~ 몇!!!"
파일:최종점수.png
가족오락관 803회(2000년 4월 26일 방영분)의 최종 점수

8.1. 점수판의 역대 형태

9. 역대 게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가족오락관/역대 게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0. 에피소드

파일:KBS 가족오락관 로고.png
방영 목록
1984년 1985년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 2009년

점수칸(혼성 대결 제외)은 남성팀이 승리한 회차는 파란색, 여성팀이 승리한 회차는 빨간색, 비긴 회차는 회색으로 표기했으며, 이긴 쪽의 점수를 볼드체로 표기했다.

10.1. 보조진행자 출신 연예인

10.2. 가족오락관으로 유명해진 사례

10.3. 전설의 왁자지껄 사건

이구동성 게임(네 명이 한번에 말을 하면 그걸 상대팀이 한 글자씩 듣고 정답을 유추해는 게임)에서 레전드 방송사고가 나왔다. 링크. 제시어가 "왁자지껄"이었는데, 첫글자가 ""으로 전달됐고, 이후 정작 두 번째 글자인 , 그리고 세번째 글짜인 는 제대로 전달되는 바람에, 이렇게 첫 세 글자가 완성되는 순간 스튜디오가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단순히 루머인 줄 알았으나, 라디오 스타에서 허참이 1989년 녹화 당시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발언하며 확정. 그 외에 당시 출연자였던 노사연이 라디오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녹화 후 제작진에서 이걸 내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장시간 회의를 한 끝에 허참의 제안으로 투표를 해서 방송에 내보냈다고 하는데,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키며 당시는 물론 종영 이후에도 가족오락관 하면 언제나 가장 먼저 소환되는 아는 사람은 아는 전설의 방송사고가 되었다. 물론 본방은 나갔지만 송출 불가 판정으로 1980~1990년대 당시 방송사에서 유행하던 재방송분에서는 해당 부분이 편집되어 한동안 진위여부가 불투명하긴 했다.

사실 한꺼번에 네 글자를 듣기 어렵고 각자 한 글자씩만 받아 조합해야 하는 코너 특성상 첫 글자로 "왁"을 전달해봤자 입모양이 비슷하고 훨씬 용례가 많은 "왕"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제작진이 자체 테스트만 한 번 했어도 바로 거를 수 있었겠지만... 생방송도 아닌데 그냥 방송에 내보낸 것을 보면 그냥 문제 자체를 일부러 그렇게 구성한 것일 수도 있다. 이외에 마지막 글자가 "커", "털"(...)[46] 등으로 전달되었다는 얘기, 이 문제 때문에 해당 코너가 없어졌다는 얘기도 있으나 이 쪽은 루머이다.

당시 담당 PD가 고심한 끝에 재미를 위해 이걸 내보냈다는 이유로 시말서를 썼다는 여담도 있다. #

이 에피소드는 나중에 SNL에서 우랄산맥 걸스데이가 이구동성으로 맞추면서 패러디되었다. # 하필 박소진이 첫 번째 단어를 라고 잘못 들었기 때문에...근데 진짜 이런 산맥이 있어요?

10.4. 그 외의 일화

11. 논란

11.1. 잦은 여성팀 편애 논란

이 방송이 유독 여성팀에게만 지나치게 유리한 판정을 짓는 프로그램이다. 심지어 이 프로그램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오죽하면 남성 시청자들이 불만을 드러내기까지 했을 정도다.

게다가 976회(2003년 12월 27일 달려라 울엄마 특집 방송분)에서 이혁재도 출연했을 때 허참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을 정도라고 하였고, 여성팀이 게임에서 자꾸 승리할 때마다 TV 채널을 돌렸다고 하는 시청자들도 대다수였다.

대부분 여성팀이 연승을 많이 할 정도로 승리를 많이 하였고, 남성팀이 승리한 횟수들은 많이 찾아볼 수는 없었다. 다만, 예외로 2002년(923회, 924회, 925회, 926회, 927회)과 2007년(1149회, 1150회, 1151회, 1152회, 1153회)에는 남성팀이 5연승이나 했다.

12. 여담

파일:가족오락관 방청객 초청.jpg
가족오락관 방청객 초청

12.1. 속어로서의 오락관

이미 종영된지 오래된 방송이지만, 한때 국민적 인기를 자랑한데다 방송에 사용된 게임과 포맷이 후대 예능에서도 종종 쓰이면서 현재에도 여전히 높은 인지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 고요 속의 외침'은 소리가 들리지 않게 헤드폰을 쓰고서 소리를 지르며 단어 전달을 한다는 독특한 방식과 이 과정에서 온갖 왜곡이 일어난다는 웃음 포인트 때문에 가족오락관의 대표 게임 중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훗날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 복불복 게임에서도 고요속의 외침을 하기도 하거나 신서유기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등[61] 맥락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고요 속의 외침에 빗대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루머, 뇌피셜 등을 기반으로 왜곡된 소문을 재생산하는 행위' 또는 '타인의 지적을 무시하며 루머나 뇌피셜 등 잘못된 정보를 옳다고 고집하는 행위', '위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말이 안 통하는 상황'을 '가족오락관' 내지는 '오락관', '오락관 돌린다' 등의 표현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런 의미의 '오락관'이라는 표현은 2010년대 중반에 등장해 주로 디시인사이드 쪽에서 사용되다 금방 유행이 지나갔지만, 루머나 뇌피셜로 인한 분쟁이 끊이지 않는 커뮤니티에서는 아직도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빨간약 떡밥으로 시끄러워지기 쉬운 키즈나 아이 마이너 갤러리를 비롯한 버츄얼 유튜버 관련 커뮤니티들이 있다.


[1] 1992년에는 TV 음악 코미디 부문, 1993년에는 TV 쇼 공개오락 부문, 1994년에는 TV 대중문화 부문, 1995년부터 2003년까지 TV 연예오락 부문으로 시상했고, 2004년부터 TV 예능 부문으로 시상하고 있다. [2] 이 때문에 일부 기성세대들은 자녀가 이걸 시청하면 “니가 무슨 이런 프로를 봐?”라며 디스하는 경우도 있었다. [3] 다만 개그콘서트는 시청률 저하로 이듬해 일요일 밤 9시로 이동한다. [4] 주로 엔딩 부분을 사용했다. [5] 2004년 12월 4일(1021회)까지는 뻐꾸기 효과음까지 넣어서 사용하다가 2004년 12월 11일(1022회)부터는 뻐꾸기 효과음 없이 오프닝을 진행했다. [6] 758회 ~ 825회 [7] 841회, 851회, 854회 ~ 859회, 상품 소개 후 바로 나오며, 기존 하이라이트 영상과는 다르게 조금 빠르게 편집되었다. [8] 826회 ~ 829회, 831회 ~ 840회에는 뮤직비디오, 830회, 843 ~ 849회에는 출연 가수의 무대로 엔딩을 대체했다. [9] 우연히도 1990년대 7대, 9대~11대 여자 MC, 2000년대 14대 여자 MC부터는 거의 다 진행을 맡기 이전에도 패널로 나온 적이 있다.(15대 윤지영 아나운서와 18대 이정민 前 아나운서는 제외) [10] KBS 아나운서와 동명이인. 그러나 KBS 아나운서 오유경은 1996년 1월 10일, 1997년 2월 19일에 패널출연만 하였다. [11] 1987년에 허참 교통사고로 인해 1회차분만 단독으로 진행했다. 가끔 가족오락관을 최장 기간 6년 진행했다고 오해하는 분이 있는데, 허참과의 6년 진행은 동양방송 쇼쇼쇼 진행 기간과 KBS 가족오락관 진행 기간을 합한 것이다. 추석특집 대리 진행 회차분 포함 오해도 있다는 실질적으로 가족오락관 최장기간 진행자는 4년 가까이 진행한 손미나 아나운서다. [12] 추석 특집 회차분을 김자영 아나운서 대신 진행했다. [13] 1987 미스코리아 르망, 장은영(1992 미스코리아 선)의 언니. [14] 결혼과 동시에 프로그램 진행과 아나운서를 그만두었다. [15] 후임 장서희가 올 때까지 1회차 분을 임시 진행했다. [16] 10주년 특집 방송으로 출연진 겸 MC로도 활동했다. [17] 여자 진행자 중 최단 기간 진행. 가족오락관 567회 방영분에서 드라마 서궁 촬영과 개편이 겹치면서 가족오락관 진행을 그만 두게 되었다고 한다. 이전 MC 전혜진도 드라마 스케줄과 겹쳐서 그만두게 된것과 같은 것 [18] 오영실 아나운서가 육아 문제 및 가사 사정으로 인해 프로그램을 그만 두고 손미나 아나운서가 입사 전이라 공백 기간까지 약 2달 동안 임시 진행했다. [19] 이 이후로는 여자 MC를 아나운서 위주로 기용했다. [20] 1996년 10월 9일은 오영실 아나운서의 방송 교육(해외 연수) 참여로 인해 진양혜 아나운서가 대신 진행했다. 1997년 1월 8일은 오영실 아나운서의 KBS 파업 참여로 허참 단독으로 진행했다. [21] 손미나 아나운서의 KBS 파업 참여로 인해 대신 진행했다. [22] 가족오락관 진행분만 여자 진행자 중 최장 기간 진행.(약 4년 5개월) [23] 윤지영 아나운서의 개인사정으로 인해 대신 진행했다. [24] 2002년에 도전! 주부가요스타에서 같이 진행한 적이 있다. [25] 가족오락관 역대 여자 진행자 중 최연소(1987년생, 당시 20세) 진행자이다. 또한 2000년대 여자 MC 중 유일하게 아나운서가 아니다. [26] 특히 2006년 초반에는 최종점수가 가장 낮게 나왔는데, 그 중 2006년 2월 18일(1080회)에는 220:110으로 남성팀이 최저점수로 승리한 적이 있었다. [27] 2006년 당시 혼성팀 대결을 다른 연도보다 많이 했다. [28] 702회(1998년 5월 6일 방송분)와 725회(1998년 10월 14일 방송분)가 그 예. 전자는 여성팀 주장이 조갑경(당시 32세)이었는데 그녀를 제외한 같은 팀의 나머지 멤버들은 모두 20대였고, 남성팀에도 당시 20대인 멤버들이 둘씩이나 있지만, 나머지가 모두 40대다. 후자는 당시 여성팀 출연진이 30대였던 최란을 제외하면 모두 20대였다. [29] 다만 초기~80년대 후반에는 세트장에 점수판이 없었고 화면을 따로 띄웠다. [30] 855회부터 잠깐 입구에 점수판이 설치된 적 있다. [31] 어떨 때는 하나 둘 셋을 외쳐 확인한 적이 있고, 한 팀 씩 점수를 확인한 경우도 있다. [32] <최종점수 확인> 자막은 1999년 5월 12일 754회부터 2009년 4월 18일 마지막회까지 사용되었다.(859회, 861회, 1229회는 제외) [33] 양쪽 모니터에 최종점수가 나오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92년 설특집(1992.02.04)에서는 복조리 갯수를 셌고, 1166회(2007.11.10)에서는 양쪽 모니터에 점수를 보이지 않고 최종점수를 자막으로 보인 경우도 있다. [34] 1993년 이전에는 TJ미디어의 대상 팡파레도 쓰인 적이 있다. 그 이후 가족오락관 자체 팡파레BGM이 사용되었다 [35] 전혜진, 손미나, 박주아, 이선영 [36] 복불복 게임의 일종으로 점수가 가산될 수도 있고 감점될 수도 있다. 화면에 +500점부터 -500점까지의 숫자들이 나타나는데 스톱을 외친 순간의 화면에 나온 점수를 가져간다. 이 게임 때문에 1999년 1월 13일(737회)에는 여성팀의 최종점수가 0점이었다. 아래 참조. 차이점으로는 1998년 크리스마스에는 십 단위 숫자까지 다르게 하여 다양한 배점이 나왔다면, 1999년 1월 13일에는 100 단위로 나왔다. [37] 엄밀히 말하면 양 팀 모두 1000점을 초과한 상황이었다. 중간점수가 450:500인 상황에서 당시 배점이 20점이었던 스피드 게임에서 남성팀은 총 28문제(10/8/10문제, 560점), 여성팀은 총 26문제(9/8/9문제, 520점)를 맞혔기 때문에 1010:1020이 정확한 점수다. 다만 가족오락관 점수판은 천 단위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양 팀 모두 1000점을 초과한 것에 어찌할 방법이 없었는지 점수판에는 양 팀 모두 40점이 깎인 970:980으로 표기되었다. [38] 당시 손미나가 보너스 게임 설명을 하던 중 허참이 "거기까지"라고 했고 손미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던 것을 보면, 제작진과 MC들만 사전에 보너스 게임 방식을 알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점수판에서는 올라간 점수가 반영되지 않았다. 이 때는 여성팀이 1020점(보너스 게임 이후에는 1050점)이 되었으나 가족오락관 점수판이 천 단위가 적용되지 않아서 999점으로 떠야 하는데 왜인지 그 점수가 올라가지 않았다. [39] 1058회(2005년 8월 20일)에서는 남성팀이 분홍색 점수판, 여성팀이 파란색 점수판이 설치되어 나왔다. [40] 972회(2003년 11월 29일) 쿨FM팀 vs 해피FM팀의 대결이 대표적이다. [41] 초창기에는 천자리의 1을 뺀 형태로 점수가 표시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서 1070점이면 070으로 표기되는 식. [42] 960 ~ 980회에서는 큰 디지털 점수판을 사용했다. [43] 모니터에는 노란색 펜으로 가족오락관 로고가 그려진다. 961회에서는 로고로 가리지 않고 최종점수까지 보였으나 962화부터는 초반에는 점수를 보이다가 최종점수 공개 전까지는 가렸다. 이 때 사용한 폰트는 Times New Roman. [44] 사용폰트가 2개의 형태였는데 그 중 첫번째는 seven segment이며, 두번째는 불명이다. [45] 폰트의 이름은 LCD다. 참고. [46] "털"(...)은 노사연 우렁차게 말해버리고, 그대로 테이블에 엎어져 배를 잡고 웃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많다. [47] 허참이 1949년생으로 이용식보다 3살 더 많다. [48] 1074회에 해당. [49] 1188, 1194회에 해당. [50] 1135회에 허참이 일그러지는 표정을 지었다. [51] 846회에 해당. [52] 여담이지만, 1999년에 방송된 766회 방송분에서는 오프닝 게임을 위해 모자를 쓰게 되자 허참이 이용식더러 돌하르방이라고 했는데 티격태격까진 가지 않았다. 허참: 완전히 저러고 있으니까 돌하르방같애~ [53] 1015회(2004.10.23) [54] 698회(1998.04.08) [55] 만화가 겸 삽화가 일송 최영수(1911~?)의 조카. MBC <유쾌한 스튜디오>, <건강백세> 등의 삽화를 맡았다.(출처: 한국 만화사 구술채록연구 10 황정희(비매품) - 한영주 편. 한국만화영상진흥원. 2010. p28.) [56] 이때는 일반 상식과 주부 기본 상식 문제가 주로 출제되었으며, 답안은 3지선다 또는 양자택일이 나왔다. [57] 이때 1200회에서 퀴즈 5인 5답에 나온 문제 중 하나를 낼 때, 선택지에 허참과 이선영이 나온 적이 있다. [58] 2021년 현재: 07328 [59] 627회(1996년 10월 30일) 방송에서는 깜짝비디오 공모 이벤트를 진행했으나, 참여율이 저조했는지 결국 취소되었다. [60] 다만 영상자료실에선 1990년대 초반 이전 회차들 중 비디오테이프 재활용 등으로 유실됐을 수도 있다. [61] 신서유기 버전은 문제를 내는 사람 역시 헤드폰을 쓴다는 약간의 차이점은 있지만, 기본적인 형식은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