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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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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hide_logo_1500.jpg
<colbgcolor=#000>
파일:히데(hide).jpg
본명 마츠모토 히데토
[ruby(松, ruby=まつ)][ruby(本, ruby=もと)][ruby(秀, ruby=ひで)][ruby(人, ruby=と)], Hideto Matsumoto
출생 1964년 12월 13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
사망 1998년 5월 2일 (향년 33세)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
묘소 일본 가나가와현 미우라시 카네다 미우라 령원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직업 가수, 기타리스트
활동 시기 1981년 ~ 1998년
신체 170cm | 50kg | AB형
가족 부모님
남동생 마츠모토 히로시(1968년생)[1]
장르 , 팝 음악, 팝 록, 펑크 록, 하드 록, 얼터너티브 록, 헤비메탈, 파워메탈, 스래시 메탈, 인더스트리얼, 글램메탈, 글램 록
소속 그룹 요코스카 샤벨 타이거 (1981 ~ 1986)
X JAPAN (1986 ~ 1997)
MxAxSxS (1993)
zilch (1996 ~ 1998)
hide with spread beaver (1998)
레이블 MCA Victor (1993 ~ 1997)
Universal Victor (1997)
Universal J (2000)
개인 소속사 Excess 24 (1993 ~ 1997)
Headwax Organization (1997 ~ 현재)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서명 파일:hidesignature.jpg [2]

1. 개요2. 생애
2.1. 사망2.2. 사후 활동
3. 평가
3.1. X JAPAN에서3.2. 솔로 활동3.3. 영향력
4. 장비
4.1. 기타4.2. 이펙터4.3. 앰프
5. 여담
5.1. 히데를 오마주한 가상인물5.2. 옐로우 하트의 행방
6. 음반 목록
6.1. 싱글6.2. 정규 앨범6.3. 정규 앨범 (Zilch)6.4. 라이브 앨범6.5. 트리뷰트 및 커버

[clearfix]

1. 개요

일본의 전 록 음악 뮤지션. X JAPAN의 전 기타리스트이자 솔로 아티스트이다. X JAPAN의 정신적 리더였으며[3] 솔로 아티스트로서는 팝 엔터테이너이자 비주얼계의 아이콘으로 평가받는 뮤지션이다.

hide는 '하이드'가 아니라 '히데'라고 읽는다. X JAPAN의 멤버로서 활동할 때는 대문자로 HIDE, 솔로 아티스트로 활동할 때는 소문자인 hide로 표기한다. 따라서 히데를 영문으로 표기할 때는 앞 글자만 대문자로 쓴 'Hide'라고 표기하지 않는다.

2. 생애

주일 미군기지가 있는 요코스카에서 태어나 자랐다. 중학교 2학년 시절 친구가 들려준 미국 하드락 밴드 키스의 라이브 앨범 'Alive!(1975년작)'을 듣고 록 음악에 빠지게 되어 AC/DC, 티렉스, 더 클래시, 데이빗 보위, 아이언 메이든, VOW WOW 등의 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그들의 음악에 큰 충격을 받아 음악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또한 야마모토 쿄지의 광팬으로써 패션, 기타 모델 등 많은 영향을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비만으로 인해 많은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리하여 내성적인 성격이 되었다고 한다. 히데 다큐멘터리에서는 당시 히데의 친구는 바로 프라모델. 이후 밴드 활동을 하기 위하여 극단적인 체중 감량을 감행하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상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한달에 25kg 정도 살이 확 빠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할머니로부터 깁슨 레스폴 디럭스 모델을 선물받고 기타를 시작한다. 당시만 해도 매우 고가품이었던 이 기타는 할머니가 미군 기지에서 열린 중고 장터에서 발견하고 구입하여 선물했다.[4] 이 보기 힘든 고급 기타 때문에 친구들도 기타 구경을 하자며 놀러올 정도였다고. 디럭스 모델에는 소형의 험버커 픽업이 장착 되어 있어, 일반 크기의 픽업으로 바꾸기 위하여 직접 개조도 한 모양이다. 이 기타는 현재로서는 행방이 불분명한 상태이다.[5]

1981년 고등학생 시절 같이 연주하던 친구들과 모여서 결성한 요코스카 사벨 타이거(YOKOSUKA SAVER TIGER)로 데뷔한다.[6]

1986년, X의 리더였던 요시키의 권유로 X에 가입했다. 이때 '히데가 음악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가려던 것을 요시키가 붙잡아서 가입했다'는 말이 있다.[7] 실제로는 요시키가 강하게 설득까지한 것은 아니었고, 히데가 밴드를 그만둔다고 요시키한테 말했을 때 요시키가 X 리허설에 오지않겠냐고 해서 구경왔다가 뒷풀이 때 히데가 X에 들어오겠다고 선언해서 들어왔다고 한다.[8]

X 가입 당시 원래 히데가 베이스를 맡으려 했으나 타이지의 베이스 실력이 워낙 출중해서 기타로 바꾸었다고 한다. 반대로 타이지는 여러 의견충돌로 처음에 밴드를 탈퇴했는데[9] 히데가 타이지에게 베이스 자리를 양보하며 "우리가 작심하고 같이 힘을 합치면 밴드는 반드시 전설이 될 것이다."라고 설득하여 결국 타이지가 밴드에 재가입하게 되었다.

인디밴드 시절부터 도쿄를 활동 중심으로 하던 밴드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했던 모양이다. LUNA SEA 같은 당대에 함께 활동했던 인기 밴드들의 증언에 의하면 눈에 띄는 실력, 외모, 카리스마에 의외로 자상한 성격으로 많은 밴드들의 큰형 노릇을 했다고 한다. 곧잘 후배 밴드들의 라이브를 보러가서 공연 후 격려의 말을 해주곤 했었던 모양이다. 친분을 쌓은 밴드들이 많은데 LUNA SEA가 대표적이다.

X에 가입 후 타이지와 함께 X의 음악적 방향성을 잡고 있었으나 리더이자 드러머인 요시키의 독단과 횡포, 금전 문제[10] 등이 과해지면서 요시키는 평소 자신과 트러블이 있었던 타이지를 해고하고 이런 요시키의 독단에 화가 난 히데는 X JAPAN 내에서 방관자 모드로 돌아서서 솔로 활동에 치중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몸 담았던 엑스재팬에 큰 애정이 있었던 듯하다. 근래에 토시가 TV 프로그램 <킨즈마 파란만장 스페셜>에서 직접 고백하길 토시가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멤버들을 모아놓고 밴드를 탈퇴한다고 선언했을 때 요시키는 단 한 마디의 질문이나 설득도 없이 알았다라는 하는 식으로 의외로 간단하게 대답했지만,[11] 히데는 끝까지 토시를 붙잡고 설득을 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토시가 왜 밴드를 빠지려고 하는지 차근차근 듣고 토시가 탈퇴하지 않고 그 종교를 믿을 수는 없는지 여러모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토시는 '그때 밴드를 깨지 않았다면 히데가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는 죄책감도 아직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면서 조력하는 것이 기조였던 그가 1997년에 해산 소식을 들었을 때 롯본기에서 속상함에 만취한 채 "우리가 1회용 장기말이냐!"라고 거칠게 울분을 토했던 사례가 있고 해산에 대한 입장을 묻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X JAPAN의 간판을 부수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는 등 당시 밴드 해산에 대한 반대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했을 정도였다.

1993년에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 X JAPAN에서의 이름 표기인 HIDE 대신 hide라는 표기의 이름으로 싱글 'Eyes Love You'으로 활동한다. 1994년에는 첫 앨범 'Hide Your Face'[12]를 발매했고 1996년에는 두번째 솔로 앨범인 'PSYENCE'를 발매하게 된다.

이후 히데는 미국 진출을 목표로 미국에서 영국인 멤버 두 명과 인더스트리얼 락 그룹 지르치(zilch)를 결성하여 앨범 레코딩을 하고 솔로 투어시 세션을 맡던 멤버 7명[13]과 hide with spread beaver라는 펑크(punk)적 색채가 강한 정식 팀을 만들어 세번째 앨범 녹음을 하고 지르치 앨범 녹음에 싱글 활동도 병행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98년 아래 후술할 히데의 갑작스런 사고사로 인하여 앨범은 완성되지 못했다.
Ever Free Doubt[14]
Pink Spider Rocket Dive
사망 12시간 전 촬영된 마지막 스튜디오 라이브
(1998/05/01)

2.1. 사망

1998년 5월 2일,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 아자부의 자택에서 히데가 급사했다는 소식이 보도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34세였고, 특히 사망 직전쯤까지만 해도 멀쩡히 TV에 나와서 지르치(Zilch)의 앨범 홍보[15]를 하고 있었던 사람이 사망했으니, 충격적일 수 밖에.[16] 당시 인터뷰
히데의 LA 일상 모습, 사망하기 몇시간 전의 스튜디오 라이브와 토크 그리고 장례식 현장을 담아놓은 다큐멘터리
(hIS iNVINCIBLE dELUGE eVIDENCE, 1998)

1차 공식 발표에 따르면 사인은 자살이었다. 자택의 목욕탕에서 1m 높이에 있는 문고리에 수건을 세로로 잘라 양 끝을 묶고 목을 메달아 질식사했다는 것이다. 자살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일부 팬들이 히데를 따라 자살시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1m라는 어중간한 높이로 인해 논란이 있었다. 상식적으로 1m 높이에서 자살을 시도했다기에는 높이가 너무 낮았기 때문이다. 동료인 타이지나 요코스카 샤벨 타이거 시절의 동료 REM 등의 이야기로는 평소 기타 연주 후 어깨결림을 자주 호소하던 히데는 수건을 목과 어깨에 감아 찜질하던 버릇이 있었는데 그날도 텔레비전 출연 등 스케줄로 인해 피로가 쌓여 찜질을 시도하던 중 수건이 문고리에 걸려 질식사한 게 아닐까 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외 당일에 다른 사람들과 앞으로의 일정을 의논하는 등 전혀 자살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증언도 있다. 동생의 증언 중에 술에 취해서 목이 걸린 상태에서 몸을 가누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정확한 것은 없었다.

그 후 시체 검안을 통해 일본 경시청에서 새롭게 내놓은 사인은 기도 폐쇄로 인한 질식사. 애초에 수건이든 뭐가 됐든 신체 외부에서 압력을 받아 목 졸려 사망한 것이 아닌, 기도가 내부에서 부풀어올라 목이 막혀 사망했다는 검안 결과가 나왔고,[17] 사망 당일 응급차에 실려가면서 현장에 동석한 구급대원이 기관절개술을 시행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 원인에 대한 여러가지 추측이 분분할 뿐 사망 자체는 거의 질식사로 결론이 난 분위기다. 그나마 근거 있는 추측은 히데가 원래 심각한 저혈압 환자였고[18] 그 전날 밤에 밴드 멤버들과 엄청난 과음을 했으며, 갑자기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던 중 쇼크로 인한 기도 폐쇄와 질식이 왔을 것이라는 추측 정도이다. 그래서 1차 공식 발표 이후에는 자살에서 사고사로 점점 기울어졌다.
히데의 장례식 보도 장면
파일:external/blog-imgs-22-origin.fc2.com/680758661.jpg

위 영상에서 팬 5만 명이 모여 긴 행렬로 히데의 마지막을 보내주는 모습이 나온다. 히데의 사망으로 인해 몇몇 팬이 잇따라 자살하는 일이 뉴스에 보도 되었고, 이에 요시키는 "여러분의 생명은 소중합니다. 히데를 편히 보내주었으면 합니다."라며 팬들의 자살을 막았다. 또한 안타깝게도 히데의 장례식에 가던 히데의 후배 2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일이 있었다. [19]

그가 죽기 전에 자살 관련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히데 : "마지막 순간에 느낀다는 엑스터시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지만 저는 죽음이 편안한 안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죽고나면 제 팬들이 얼마나 슬퍼하겠어요. 게다가 욕먹을 생각을 하면... 정말 끔찍해요." (웃음)
"죽고나면 지금의 세상이 무척 그리울지도 모르죠. 제 친구들이 절 그리워할게 뻔하니깐. 그치 요시키?" (웃음) "요시키가 제일 슬퍼하는 건 아닐까?"

요시키 : " ...딱히."

요시키가 말은 이렇게 했지만, 히데 사망 이후 가장 슬퍼했던 건 요시키였고, 요시키는 히데를 떠나보내며 이런 말을 남겼다.
"더 이상 널 볼 순 없지만 너의 기억은 내 가슴 속에서 영원히 남아 숨 쉬겠지.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그러니까, 안녕이라고 말하진 않을게."

사망 이후 히데의 시신은 1998년 5월 7일 도쿄도 화장장에서 화장되었고, 화장된 유골은 가나가와현 미우라 령원(靈園) 묘지에 안치되었으며, 일부는 같은 해 5월 19일에 미국 활동을 함께하던 Zilch 밴드 멤버들에게 전해져 미국 LA 산타 모니카 해변에 뿌려졌다.

2.2. 사후 활동

3. 평가

3.1. X JAPAN에서

그의 기타 연주실력이 정상급 기타리스트라 불릴 정도로 뛰어났다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과 실력을 개척한 뮤지션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의외로 같은 팀의 PATA보다 안정적인 연주력을 갖춘 기타리스트였다. 화려한 치장과 무대 매너 때문에 기타리스트로서 평가절하된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파타 문서에서는 히데보다 낫다고 하고 여기서는 히데가 파타보다 낫다고 하고

엑스재팬에서 활동할 때는 솔로 활동과는 다르게 페르난데스의 서스테이너 픽업을 사용한 기타톤을 많이 보여준다. 페르난데스가 기타보다 픽업이 더 유명한 회사이긴 하다 ART OF LIFE때까지는 흔한 메탈 기타 톤이었지만, DAHLIA때부터는 이 픽업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을 들을 수 있다. 덕분에 DAHLIA에서 인더스트리얼 장르에 적합한 톤을 잘 뽑아낼 수 있었다. 이 픽업의 진가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노래는 THE LAST SONG이다. 이 곡의 기타 솔로 마지막 부분에 한 음정으로 수 초 동안 쭉 이어지는 부분을 들을 수 있는데, 이 소리가 바로 이 픽업을 이용한 소리이다.[25] 서스테이너 픽업은 페르난데스에서 획기적으로 출시한 제품이였는데, 운이 좋게도 히데가 마침 이 회사의 기타를 애용하고 있어서 히데의 눈에 쉽게 발견된 제품이였을 것이다. 덕분에 엑스재팬은 실험적인 사운드를 낼 수 있었고 DAHLIA의 기타톤은 재결합 이후 엑스재팬이 최근에 녹음한 기타톤보다도 오히려 더 세련되었다는 평을 받는다.

히데의 편곡 능력은 X JAPAN의 앨범들에서 잘 알 수 있다.

3.2. 솔로 활동

히데는 솔로 커리어에서 폭이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음악이 한 장르 안에 갇히지 않고, 대중적인 팝 록, 인더스트리얼 록, 펑크 록, 어쿠스틱 넘버를 넘나들며 다양한 장르를 앨범에 시도하였다. 언뜻 장르가 하나로 통일되지 않아 조잡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곡들의 질이 너무 좋아 다양한 시도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히데만큼 다양한 록 장르를 모두다 소화할 수 있는 아티스트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에서 오셨습니다. 마츠모토 히데토 씨입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26]
"잘 가, 붉은 머리의 외계인. 네가 만든 로켓에 사랑을 담아, 아디오스... 아디오스, 아미고… 아디오스." #[27][28]

차트 성적은 오리콘 차트 1위, 정규 앨범 밀리언 셀러 달성 그리고 싱글 밀리언 셀러를 달성했다. 싱글 밀리언 셀러는 곡이 1~2곡밖에 없는 싱글로 100만 장을 판매한 것이다. 정규 앨범만 있을 뿐 여러모로 성공한 솔로 활동이다.

보컬 창법은 발성적으로 대중적인 창법을 사용하는 보컬은 아니었다.[29] 그러나 자신의 넓은 장르 스펙트럼에 알맞는 소화력은 높게 평가 받아 마땅하다. 장난스러운 팝 펑크에선 특유의 코맹맹이 음색으로, 인더스트리얼과 하드코어 등에선 음색을 거칠게 잘 갈아내면서 샤우팅, 스크래치, 스크리밍 창법을, 차분한 발라드[30]에서도 담백하게 자신의 음색을 변용할 줄 아는 보컬이었다.

그가 홈페이지에 연재하던 다이어리에 언급하던 음악들을 보면 나인 인치 네일스, 마릴린 맨슨, 제인스 어딕션, 스톤 템플 파일럿츠 등 그 당시 잘 나가던 밴드들부터 프로디지, 케미컬 브라더스 등 빅비트 팀들과 브릿팝, 오블리비언 더스트나 Cocco 같은 일본 락까지 정말 다양하다. 이는 뮤지션으로서 다른 아티스트들의 창작을 보고 배우며 공부하는 사람이었다는 증거다. 실제로 자신이 이루어낸 오만함에 갇혀 음악적인 공부를 하지 않는 뮤지션들은 정말 많다. 사족으로 사망하기 며칠 전 산 음반이 블러(밴드)의 리믹스 앨범인 'Bustin'+Dronin''이었다. 이 헤비메탈, 인더스트리얼, 사이키델릭, 당시 막 부흥하고 있던 뉴메탈 하드코어, 대중적인 팝락 등 다양한 장르 안에서 수준급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재능은 당시 일본음악계뿐만 아니라 서구 뮤지션들을 따져보더라도 흔치 않은 재능이다.

가사를 보면 확실히 히데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괴한 이미지가 많다. 암튼간에 다 기괴하다. 괴짜에다 사이키델릭한 면을 강조하는 면이 뮤직비디오 등에서도 나온다.

향후 X를 넘어 일본을 대표할 만한 아티스트로서 기대를 모았고 그에 부응하듯 왕성한 활동과 창작욕을 보였지만[31] 뜻하지 않게 활동을 마감한다.

미완의 작품들은 스프레드 비버 멤버들이 모여 완성시켜 'JA, ZOO'라는 타이틀로 발매했고 얼마 후에 레코딩과 마스터링을 미리 마친 zilch의 '3, 2, 1' 앨범도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큰 파급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는 뛰어난 앨범이다. 또한 당시 예정되었던 마릴린 맨슨과의 합동 공연도 무산되었다. 또한 뮤직비디오 촬영까지 마쳤으나 히데의 사망으로 발매는 커녕 활동조차 못한 'Electric Cucumber'라는 노래도 있다. 히데 사망 후에도 리믹스 앨범 Bastard Eyes를 발매하였고, 당시의 곡들을 LUNA SEA의 멤버였던 J를 객원 보컬로 삼아 라이브를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급조된 활동이 끝난 후로는 새 보컬리스트를 영입하여 새 싱글을 발매하였으나, 밴드의 주축이었던 히데가 사망한 것으로 큰 임팩트가 없던 싱글이었기에 조용히 묻혀버렸다. 그리고 또 몇 년 후 밴드의 베이시스트까지 사망하여 밴드의 활동 방향성은 더더욱 잡힐 수 없게 되었으며, 결국 완전 해산을 하였다.

3.3. 영향력

4. 장비

4.1. 기타

Fernandes MG-X
* "Paint"
파일:fernandes mg 480x paint.jpg }}} ||
89년 메이저 데뷔부터 93년경 까지 히데의 메인 기타. 히데가 직접 그린 화려한 무늬가 그려져 있다. 넥 픽업에 디마지오 DP-101, 브리지 픽업에 EMG-81이 장착되어있다.
* "Cherry Sunburst''
파일:fernandes mg 340x cs.jpg }}} ||
히데가 93~95년경까지 사용한 기타. 후술할 히데의 깁슨 레스폴의 소리와 구조를 지향하여 만들어진 기타로, 이 때문에 이전의 기타들보다 바디의 구조가 약간 복잡해졌다고 한다. 이모델 이후로나온 모든 사양의 MG-X의 기본형이 되었으며, 픽업으로 페르난데스의 VH-401과 페르난데스제 서스테이너를 채용하였다. 이 기타는 여러대가 존재하며, 첫 모델은 42mm의 바디 두께를 가지고 있으며 넥의 쉐잎이 U 형태이다. 이후 하얀색으로 재도장되어 1994년 하얀밤 라이브에서 사용 되었으며 두번째 모델 부터는 넥의 쉐잎이 V형이 되었다.
파일:fernandes mg 145s ld.jpg }}} ||
위의 기타와 마찬가지로 레스폴의 소리를 지향하여 만들어 졌으며, 이 모델은 45mm의 바디 두께를 가지고 있다. 픽업은 위의 기타와 동일하게 페르난데스 사의 VH-401픽업과 서스테이너.
파일:yellow heart.jpg }}} ||
히데의 96~98년간의 메인 기타. 서스테이너 픽업이 장착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 더 라스트 라이브'에서 ENDLESS RAIN 쿠레나이를 연주할 때 사용하였다. 앞면을 자세히 보면 영어로 "Love me", "Lick me", "Suck me", "Spank me"라고 적혀있다. 뜻은 "날 사랑해라, 핥아라, 빨아라, 찰싹 때려라"로 다소 외설적인 표현이다.
파일:greenheart.jpg }}} ||
' 더 라스트 라이브'에서 Rusty Nail THE LAST SONG 연주에 사용된 기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두 '옐로우 하트'로 연주했다고 잘못 알고 있거나 아예 이 기타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 이는 색상이 초록색이 아니라 노란색에 가까운 연두색이여서 '옐로우 하트'와 구별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발생한 일이다. 자세히 보면 '엘로우 하트'와 색상 뿐만 아니라 하트의 패턴 모양도 조금 다르다.
* “Kiban”
파일:fernandes mg 160s cg kiban.jpg }}} ||
원래 ' 더 라스트 라이브'에서 메인으로 사용될 예정인 기타였으나, 리허설에서의 소리가 마음에 들지않아 옐로우 하트의 서브기타로 세팅되어 있었던 기타이다.

* MG-CUSTOM

4.2. 이펙터

4.3. 앰프

5. 여담

5.1. 히데를 오마주한 가상인물

5.2. 옐로우 하트의 행방

2002년, 서태지가 개최한 록 페스티벌 "ETPFEST 2002"에서 hide with spread beaver를 섭외하였는데,[48] 이때 히데의 부모님은 해외 진출을 열망하던 히데의 꿈을 이루어준 서태지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히데의 메인기타였던 옐로우 하트를 선물했다. 일종의 바톤 터치의 의미라고도 하고, 박물관에 있느니 좋은 음악인에게 연주되길 히데도 바랄 것이라는 말과 함께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파일:서태지옐로우하트.gif

하지만 현재 요시키가 LUNATIC FEST에서 진짜 옐로우 하트를 들고 나오면서 돌려준 것이 확인되었다.[49] 서태지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보다 스프레드 비버 멤버나 엑스 멤버가 가지고 있는게 훨씬 어울릴거라 생각한 듯.

6. 음반 목록

본 문단에서는 솔로 활동 중 발표된 것만 서술합니다. X JAPAN 시절의 정보는 해당 문서로.

6.1. 싱글

발매일 타이틀 주간 판매량 비고
1 1993.08.05 EYES LOVE YOU 3위 247,374장 [50]
2 1993.08.05 50%&50% 6위 195,436장 [51]
3 1994.01.21 DICE 6위 259,035장
4 1994.03.24 TELL ME 4위 228,834장
5 1996.06.24 MISERY 3위 214,265장 [52]
6 1996.08.12 Beauty&Stupid 4위 203,595장 [53]
7 1996.12.18 Hi-Ho/GOOD BYE 8위 122,480장 [54]
8 1998.01.28 ROCKET DIVE 4위 691,615장 [55]
9 1998.05.13 PINK SPIDER 1위 1,038,701장 [56]
10 1998.05.27 Ever Free 1위 843,154장
11 1998.10.21 HURRY GO ROUND 2위 610,336장 [57]
12 2000.01.19 TELL ME 2위 291,120장
13 2002.07.10 In Motion 4위 95,770장
14 2014.12.10 子 ギャル 2위 57,897장 [58]

6.2. 정규 앨범

파일:hide_logo_1500.jpg
Discography
파일:external/ecx.images-amazon.com/51GHPDtvPnL.jpg 파일:external/ecx.images-amazon.com/51GsVh09IIL.jpg 파일:external/a1.mzstatic.com/13UMGIM26096.1200x1200-75.jpg
HIDE YOUR FACE PSYENCE Ja, Zoo

발매일 타이틀 주간 판매량
1 1994.02.23 HIDE YOUR FACE 9위 218,580장
2 1996.09.02 PSYENCE 1위 401,370장
3 1998.11.21 Ja, Zoo 2위 1,408,370장

6.3. 정규 앨범 (Zilch)

6.4. 라이브 앨범

6.5. 트리뷰트 및 커버



[1] 히데 생전 매니저를 담당하였으며, 현재도 히데의 사무소인 HEADWAX ORGANIZATION의 사장이다. [2] hide with spead beaver 명의의 히데 생전 마지막 싸인이다. 자세히 보면 날짜가 사망 2일 전이다. [3] 음악적 지주이자 실제 리더는 요시키지만 멤버간의 유대를 다지고 분위기를 이끌었던 사람은 히데였다. 요시키도 히데를 항상 존경했다. [4] 기타까지 사줄 정도였던 것으로 보면 밴드 활동에 대해 집안 반대는 없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내성적인 성격이 어느 정도 고쳐지면서 긍정적으로 본 모양이다. [5] 돈이 없었을때 팔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6] 영어 이름이 SABER TIGER로 잘못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SABEL TIGER라는 밴드는 홋카이도의 메탈 밴드로 히데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밴드이다. 참고로 히데가 소속되어 있던 SAVER TIGER도 원래는 SABEL TIGER였으나 홋카이도에 자신의 밴드와 동명(同名)의 밴드가 있다는 것을 알고 'B'를 'V'로, L을 R로 바꿨다. 최종적으로 밴드명은 '요코스카 사벨 타이거'가 되었다. [7] X의 다큐멘터리 영화 <We are X>에서 " 요시키를 처음 만났을 때 음악을 관두려던 참이었다.", "그때 X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미용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라는 히데의 인터뷰가 공개된다. [8] 참고로 루머로 ' 요시키의 밴드 가입 권유는 사실이지만 히데가 음악을 접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었다. 근거로는 일본에서 발매하는 잡지인 <롹킨에프> 1998년 11월호에서 사벨 타이거에서 같이 활동했던 멤버 키쿠치(드럼)와 쿄(보컬)의 인터뷰를 드는데, 이를 보면 당시 히데는 '단지 해당 밴드를 그만두는 것이었지 음악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다른 밴드를 알아보는 중이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후 일화로는 히데가 사벨 타이거 활동 종료 이후에도 사벨 타이거 시절을 회상할 때 "언제나 가슴을 펼 수 있고 자랑스러운 밴드였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며 '히데가 음악을 접으려는 것을 요시키가 설득했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이다.'라고 내용이 퍼진것이다. 하지만 이 인터뷰는 어디까지나 히데가 아닌 샤벨 타이거의 멤버의 인터뷰일 뿐이고, 결정적으로 히데가 살아생전 한 인터뷰가 나옴으로써 이 루머는 사실이 아닌 것이 밝혀졌다. [9] 가입 초기부터 요시키가 트윈 기타를 고집하였고, 타이지의 클래식 기타리스트 경력을 들먹이며 기타로 포지션을 바꿀 것을 요구했는데, 타이지는 이미 베이시스트로 명성을 얻고 있어서 이에 대한 반발이 심하여 밴드를 탈퇴했다. [10] 혼자서 2배를 넘게 받는 인세 등. [11] 나중에 요시키가 밝힌 후일담에서는 오랫동안 알았던 토시의 눈빛이 그때만큼은 진심으로 보여서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12] '얼굴을 숨긴다'라는 뜻과 동시에 히데 자신의 이름의 중의적 표현을 지닌다. 에일리언으로 유명한 H. R. 기거의 작품을 앨범 커버에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때 커버에 있는 눈은 히데의 눈이다. [13] I.N.A, Kiyoshi, Chirolyn, Kaz, Joe, Die 여기서 Kiyoshi는 솔로 1집 투어 참석 멤버였던 BLIZARD의 마츠카와 토시야가 건강 사정으로 하차하자 2집부터 참석한 멤버이고, Kaz는 hide with spread beaver의 활동이 정해지고 기존 솔로 투어 참석 멤버였던 X JAPAN PATA를 대신하여 들어온 멤버이다. [14] 해당 곡은 doubt라는 곡으로, 과거 1993년 Hide With L7 (Zilch Ver.) 명의로 공개했던 곡이다. 이후 Spread Beaver 활동을 하면서 드럼 앤 베이스, 재즈 요소를 가미한 리믹스를 했는데, 위 영상은 그 리믹스 버전인 "Doubt'97 LEMOMed JELLY MIX". 현재 기준으로도 상당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곡이다. [15] 방송 당시에는 발매되지 않았었다. 히데 사후 발매. [16] 당시 방송에서 웃으면서 "새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자신은 바퀴벌레를 엄청 싫어하는데, 뮤직비디오 연출에서 몸과 얼굴에 벌레를 붙이고 찍어야 했기 때문에 어떤 기분으로 촬영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라는 얘기를 농담으로 하기도 했다. PV의 곡은 'Electric Cucumber'. [17] 재부검을 했다고 하는 일부의 헛소문도 있으나, 유족의 반대로 시신에 칼을 대지 못하고 검안만 했다. [18] 언론에도 밝혀졌듯 히데의 저혈압은 상당한 중증이다. 원래 그 정도라면 술, 담배는 입에도 대면 안되는 수준이다. 심지어 본문에서 후술한대로 장시간 고온 목욕도 불가능하다. [19] 데샤비에(Deshabillz)의 베이시스트 우츠쿠시이 이비츠(美歪, 향년 21세)와 마데스 그레이르(Madeth gray'll)의 기타리스트 히즈미(歪, 향년 22세) [20] 참고로 이 페스티벌에 파타와 히스도 Dope Headz라는 밴드의 멤버로 출연했다. [21] 이때가 스테인버그사의 보컬로이드 프로그램 프로토 타입 초안이 나왔을 시기다. [22] 프로젝트 시작 당시 히데 목소리 데이터 수집과 복원 성공의 가능성은 30%도 채 안 되었다고 한다. 보컬로이드 엔진 V.4.0이 나온 16년만에야 겨우 완성되었으며 그것도 평범한 키보디스트에서부터 일본 락씬 내에서 손꼽히는 음향 엔지니어가 된 INA가 거의 10년 넘게 작업에 달라붙어서야 겨우 완성됐으니까… [23] TELL ME~히데와 함께 본 경치~ [24] 히데의 사망 직후라서 앨범발매에 이르기까지 트러블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히데의 사망직전까지 매니저로서 히데를 보좌하는 모습과, 히데의 사망 직후 앨범발매를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히로시의 모습 주된 스토리가 된다. [25] 참고로 일반 기타에서는 이 소리를 내지 못하여 ' 더 라스트 라이브' 공연에서 이 곡을 연주할때는 파타역시 자신이 원래 애용하던 깁슨 레스폴이 아닌 페르난데스 기타를 가지고 연주한다. [26] zilch 소속으로 낸 앨범 '3, 2, 1' 의 첫 트랙 'Electric cucumber' 의 인트로. 본인의 육성이다. [27] 일어 원문 : さらば、赤い髪のエイリアン。君の作ったロケットに、愛を込めて、アディオース… アディオース、アミーゴ… アディオース。 [28] 트리뷰트 앨범 2번 트랙 'ROCKET DIVE'의 마지막 부분에 삽입된 호테이 토모야스의 나레이션. [29] 히데 본인도 첫 솔로 준비 당시 보컬로서 부족한점을 본인도 인지하여 HIDE YOUR FACE 시절 자신의 보컬 담당을 Vocal이 아니라 Voice로 표기한 데서 드러난다. 하지만 Psyence 앨범부턴 자신의 보컬에 자신감을 갖게 되어 다채로운 운용법을 익히게 된다. 이는 파타의 후일담에서도 잘 언급된 부분. [30] 다만 타이지 자서전에 따르면 발라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31] 실제로 그가 죽기 몇 시간 전만해도 라이브에 서고 뮤직비디오를 찍는 등 죽기 직전까지도 음악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있었다 [32] 비주얼계하면 생각나는 무시무시한 화장등은 키스(밴드)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33] 실제로 한국가수들 중에서도 히데에게 영향을 받았거나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다수 존재한다. [34] 사진 속 기타는 실제 히데가 사용했던 기타는 아니고 미니어쳐 복제품이다. 다만 실제와 큰 차이는 없어서 참고용 사진으로 쓰기에 무리는 없다. [35] 색상은 체리 썬버스트. 시리얼 넘버 9 0297. 아래 사진 속 모델은 1959년도 사양을 복각, 재현한 리이슈 모델로, 실제 히데가 사용했던 모델은 아니다. [36] 그의 기타에 있는 무늬는 손수 페인팅했거나 직접 디자인 한 것이 많다. [37] 공교롭게도 히데의 사망 원인 또한 중증 저혈압인 상태에서 술담배를 끊지 않은 것이라는 게 유력하다. [38] 타이지 자서전 수록 내용. [39] 참고로 X JAPAN The last live 영상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엔딩 크레딧에 마유코의 이름이 나오기도 한다. [40] 과거에는 네이버 붐에 올려진 것이 링크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네이버 붐 서비스가 종료된 관계로 다른 블로그에 올려진 것을 링크. [41] 당초 20살까지 살 수 있으면 기적이라고 진단받았는데 28살까지 살다 세상을 떠났으니 이 또한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42] 특히 다리 [43] 이 사건 이후로 호테이 요시키의 관계가 개선되었는지 불명했지만, 2022년 요시키가 일본에 돌아왔다는 트윗에 호테이 Welcome Home이라는 리플라이를 달고 요시키도 거기에 '호테이상, 감사합니다!'라고 답장하는 등 현재는 갈등의 응어리가 풀린 것으로 보인다. 이를 본 팬들도 답글에서 히데가 좋아할 거라며 기뻐하고 있다. [44] "잘 가, 붉은 머리의 외계인. 네가 만든 로켓에 사랑을 담아, 아디오스... 아디오스, 아미고… 아디오스." [45] 파일:악마로소이다.png [46] 파일:external/c2.staticflickr.com/28262397181_d8ebb8b831_o.jpg [47] 파일:ichimatsurockstar-3868.jpg [48] 물론 고인이 된 히데는 영상으로만 볼 수가 있었고 SPREAD BEAVER 멤버들이 공연을 펼치는 정도였지만 이는 히데의 첫 해외 공연으로 남게 되었다. [49] 요시키 - (옐로우 하트를 들고 나오면서) "진짜입니다." [50] EYES LOVE YOU와 50%&50%는 동시 발매가 되었는데 자켓사진의 색상이 다르게 해서 서로 맞대는 전략으로 자켓을 구성했는데 발매당시인 1993년 당시에 일본에서 매직아이가 유행을 했기에 그에 흥미를 느낀 히데는 이 방식을 두 앨범 자켓에 적용하고 레코드사 마케팅에 '두 앨범 포스터가 같이 배치되도록' 주문했다고 한다. [51] EYES LOVE YOU와 50%&50%는 동시 발매가 되었는데 자켓사진의 색상이 다르게 해서 서로 맞대는 전략으로 자켓을 구성했는데 발매당시인 1993년 당시에 일본에서 매직아이가 유행을 했기에 그에 흥미를 느낀 히데는 이 방식을 두 앨범 자켓에 적용하고 레코드사 마케팅에 '두 앨범 포스터가 같이 배치되도록' 주문했다고 한다. [52] 거주중인 아파트에서 15분 거리의 CD샵에서 음악을 고르던 히데가 본 곡을 떠올리고 음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달려와서 만든 음악이기도 하다. [53] INA의 말에 따르면 당시에 잔상효과에 매력을 느꼈던 히데는 본 곡의 뮤직비디오에서 잔상효과를 대대적으로 도입했다. [54] 리컷 싱글 [55] 일본 애니메이션 <AWOL -Absent Without Leave->의 오프닝으로 차용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에 대한 반응이 별로 안 좋은 건지, 노래가 아깝다, 이건 너무 심했다, hide를 모독하지 말라는 반응이 심심찮게 있다. 예시 그야말로 전형적인 OST는 좋았다의 사례이다. [56] 히데의 유일한 밀리언셀러 싱글이다. [57] 곡 제목이 바람의 검심 -메이지 검객 낭만기- 251막의 타이틀로 인용되기도 했다. 와츠키 노부히로가 단행본에서 밝힌 작가의 말에 의하면, 이 곡의 가사 중 "다시 봄이 되면 만납시다." 라는 부분이 작품과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작업 중에 곡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여기에 히데가 요절한 점을 안타까워하며 그를 추모하는 의미를 더해서 제목을 인용한 것. [58] 히데 50번째 생일 기념으로 제작된 싱글. 히데가 생전에 녹음했던 미수록 발표곡인데 기존 히데 육성을 빅테이터로 분석한 뒤 복원하는 일종의 보컬로이드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참고로 싱글이라기에 보기가 좀 애매한 게, 초회한정판 기준 子 ギャル와 그 데모곡(히데가 살아 생전에 녹음한 거다!)을 빼고도 싱글 타이틀 곡과 2002년에 hide SINGLES ~ Junk Story ~에 뒤늦게 수록된 Junk Story까지 총 15곡을 수록한 베스트 앨범 격의 음반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 일본 위키피디아에서는 베스트 앨범으로 분류되어 있다. 무엇보다 히데의 인터뷰 음성을 삽입한 연주곡 Comment를 빼고 그 대신에 코갸루를 넣었으니 리패키지로 봐도 할 말 없다. [59] 리믹스앨범 [60] Hurry Go Round 보컬 Take2가 수록되어 있다. 히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중 I.N.A가 발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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