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다'라는 뜻의 영어단어 Hide에 대한 내용은 하이드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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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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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마츠모토 히데토 |
[ruby(松, ruby=まつ)][ruby(本, ruby=もと)][ruby(秀, ruby=ひで)][ruby(人, ruby=と)], Hideto Matsumoto | |
출생 | 1964년 12월 13일 |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 | |
사망 | 1998년 5월 2일 (향년 33세) |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 | |
묘소 | 일본 가나가와현 미우라시 카네다 미우라 령원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가수, 기타리스트 |
활동 시기 | 1981년 ~ 1998년 |
신체 | 170cm | 50kg | AB형 |
가족 | 부모님 |
남동생 마츠모토 히로시(1968년생)[1] | |
장르 | 록, 팝 음악, 팝 록, 펑크 록, 하드 록, 얼터너티브 록, 헤비메탈, 파워메탈, 스래시 메탈, 인더스트리얼, 글램메탈, 글램 록 |
소속 그룹 | 요코스카 샤벨 타이거 (1981 ~ 1986) |
X JAPAN (1986 ~ 1997) | |
MxAxSxS (1993) | |
zilch (1996 ~ 1998) | |
hide with spread beaver (1998) | |
레이블 | MCA Victor (1993 ~ 1997) |
Universal Victor (1997) | |
Universal J (2000) | |
개인 소속사 | Excess 24 (1993 ~ 1997) |
Headwax Organization (1997 ~ 현재) | |
링크 | | | |
서명 | [2] |
[clearfix]
1. 개요
일본의 전 록 음악 뮤지션. X JAPAN의 전 기타리스트이자 솔로 아티스트이다. X JAPAN의 정신적 리더였으며[3] 솔로 아티스트로서는 팝 엔터테이너이자 비주얼계의 아이콘으로 평가받는 뮤지션이다.hide는 '하이드'가 아니라 '히데'라고 읽는다. X JAPAN의 멤버로서 활동할 때는 대문자로 HIDE, 솔로 아티스트로 활동할 때는 소문자인 hide로 표기한다. 따라서 히데를 영문으로 표기할 때는 앞 글자만 대문자로 쓴 'Hide'라고 표기하지 않는다.
2. 생애
주일 미군기지가 있는 요코스카에서 태어나 자랐다. 중학교 2학년 시절 친구가 들려준 미국 하드락 밴드 키스의 라이브 앨범 'Alive!(1975년작)'을 듣고 록 음악에 빠지게 되어 AC/DC, 티렉스, 더 클래시, 데이빗 보위, 아이언 메이든, VOW WOW 등의 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그들의 음악에 큰 충격을 받아 음악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또한 야마모토 쿄지의 광팬으로써 패션, 기타 모델 등 많은 영향을 받았다.어렸을 때부터 비만으로 인해 많은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리하여 내성적인 성격이 되었다고 한다. 히데 다큐멘터리에서는 당시 히데의 친구는 바로 프라모델. 이후 밴드 활동을 하기 위하여 극단적인 체중 감량을 감행하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상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한달에 25kg 정도 살이 확 빠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할머니로부터 깁슨 레스폴 디럭스 모델을 선물받고 기타를 시작한다. 당시만 해도 매우 고가품이었던 이 기타는 할머니가 미군 기지에서 열린 중고 장터에서 발견하고 구입하여 선물했다.[4] 이 보기 힘든 고급 기타 때문에 친구들도 기타 구경을 하자며 놀러올 정도였다고. 디럭스 모델에는 소형의 험버커 픽업이 장착 되어 있어, 일반 크기의 픽업으로 바꾸기 위하여 직접 개조도 한 모양이다. 이 기타는 현재로서는 행방이 불분명한 상태이다.[5]
1981년 고등학생 시절 같이 연주하던 친구들과 모여서 결성한 요코스카 사벨 타이거(YOKOSUKA SAVER TIGER)로 데뷔한다.[6]
1986년, X의 리더였던 요시키의 권유로 X에 가입했다. 이때 '히데가 음악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가려던 것을 요시키가 붙잡아서 가입했다'는 말이 있다.[7] 실제로는 요시키가 강하게 설득까지한 것은 아니었고, 히데가 밴드를 그만둔다고 요시키한테 말했을 때 요시키가 X 리허설에 오지않겠냐고 해서 구경왔다가 뒷풀이 때 히데가 X에 들어오겠다고 선언해서 들어왔다고 한다.[8]
X 가입 당시 원래 히데가 베이스를 맡으려 했으나 타이지의 베이스 실력이 워낙 출중해서 기타로 바꾸었다고 한다. 반대로 타이지는 여러 의견충돌로 처음에 밴드를 탈퇴했는데[9] 히데가 타이지에게 베이스 자리를 양보하며 "우리가 작심하고 같이 힘을 합치면 밴드는 반드시 전설이 될 것이다."라고 설득하여 결국 타이지가 밴드에 재가입하게 되었다.
인디밴드 시절부터 도쿄를 활동 중심으로 하던 밴드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했던 모양이다. LUNA SEA 같은 당대에 함께 활동했던 인기 밴드들의 증언에 의하면 눈에 띄는 실력, 외모, 카리스마에 의외로 자상한 성격으로 많은 밴드들의 큰형 노릇을 했다고 한다. 곧잘 후배 밴드들의 라이브를 보러가서 공연 후 격려의 말을 해주곤 했었던 모양이다. 친분을 쌓은 밴드들이 많은데 LUNA SEA가 대표적이다.
X에 가입 후 타이지와 함께 X의 음악적 방향성을 잡고 있었으나 리더이자 드러머인 요시키의 독단과 횡포, 금전 문제[10] 등이 과해지면서 요시키는 평소 자신과 트러블이 있었던 타이지를 해고하고 이런 요시키의 독단에 화가 난 히데는 X JAPAN 내에서 방관자 모드로 돌아서서 솔로 활동에 치중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몸 담았던 엑스재팬에 큰 애정이 있었던 듯하다. 근래에 토시가 TV 프로그램 <킨즈마 파란만장 스페셜>에서 직접 고백하길 토시가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멤버들을 모아놓고 밴드를 탈퇴한다고 선언했을 때 요시키는 단 한 마디의 질문이나 설득도 없이 알았다라는 하는 식으로 의외로 간단하게 대답했지만,[11] 히데는 끝까지 토시를 붙잡고 설득을 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토시가 왜 밴드를 빠지려고 하는지 차근차근 듣고 토시가 탈퇴하지 않고 그 종교를 믿을 수는 없는지 여러모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토시는 '그때 밴드를 깨지 않았다면 히데가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는 죄책감도 아직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면서 조력하는 것이 기조였던 그가 1997년에 해산 소식을 들었을 때 롯본기에서 속상함에 만취한 채 "우리가 1회용 장기말이냐!"라고 거칠게 울분을 토했던 사례가 있고 해산에 대한 입장을 묻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X JAPAN의 간판을 부수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는 등 당시 밴드 해산에 대한 반대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했을 정도였다.
1993년에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 X JAPAN에서의 이름 표기인 HIDE 대신 hide라는 표기의 이름으로 싱글 'Eyes Love You'으로 활동한다. 1994년에는 첫 앨범 'Hide Your Face'[12]를 발매했고 1996년에는 두번째 솔로 앨범인 'PSYENCE'를 발매하게 된다.
이후 히데는 미국 진출을 목표로 미국에서 영국인 멤버 두 명과 인더스트리얼 락 그룹 지르치(zilch)를 결성하여 앨범 레코딩을 하고 솔로 투어시 세션을 맡던 멤버 7명[13]과 hide with spread beaver라는 펑크(punk)적 색채가 강한 정식 팀을 만들어 세번째 앨범 녹음을 하고 지르치 앨범 녹음에 싱글 활동도 병행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98년 아래 후술할 히데의 갑작스런 사고사로 인하여 앨범은 완성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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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 Free | Doubt[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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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k Spider | Rocket Dive |
사망 12시간 전 촬영된 마지막 스튜디오 라이브
(1998/05/01)
(1998/05/01)
2.1. 사망
1998년 5월 2일,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 아자부의 자택에서 히데가 급사했다는 소식이 보도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34세였고, 특히 사망 직전쯤까지만 해도 멀쩡히 TV에 나와서 지르치(Zilch)의 앨범 홍보[15]를 하고 있었던 사람이 사망했으니, 충격적일 수 밖에.[16] 당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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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의 LA 일상 모습, 사망하기 몇시간 전의 스튜디오 라이브와 토크 그리고 장례식 현장을 담아놓은 다큐멘터리 (hIS iNVINCIBLE dELUGE eVIDENCE, 1998) |
1차 공식 발표에 따르면 사인은 자살이었다. 자택의 목욕탕에서 1m 높이에 있는 문고리에 수건을 세로로 잘라 양 끝을 묶고 목을 메달아 질식사했다는 것이다. 자살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일부 팬들이 히데를 따라 자살시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1m라는 어중간한 높이로 인해 논란이 있었다. 상식적으로 1m 높이에서 자살을 시도했다기에는 높이가 너무 낮았기 때문이다. 동료인 타이지나 요코스카 샤벨 타이거 시절의 동료 REM 등의 이야기로는 평소 기타 연주 후 어깨결림을 자주 호소하던 히데는 수건을 목과 어깨에 감아 찜질하던 버릇이 있었는데 그날도 텔레비전 출연 등 스케줄로 인해 피로가 쌓여 찜질을 시도하던 중 수건이 문고리에 걸려 질식사한 게 아닐까 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외 당일에 다른 사람들과 앞으로의 일정을 의논하는 등 전혀 자살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증언도 있다. 동생의 증언 중에 술에 취해서 목이 걸린 상태에서 몸을 가누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정확한 것은 없었다.
그 후 시체 검안을 통해 일본 경시청에서 새롭게 내놓은 사인은 기도 폐쇄로 인한 질식사. 애초에 수건이든 뭐가 됐든 신체 외부에서 압력을 받아 목 졸려 사망한 것이 아닌, 기도가 내부에서 부풀어올라 목이 막혀 사망했다는 검안 결과가 나왔고,[17] 사망 당일 응급차에 실려가면서 현장에 동석한 구급대원이 기관절개술을 시행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 원인에 대한 여러가지 추측이 분분할 뿐 사망 자체는 거의 질식사로 결론이 난 분위기다. 그나마 근거 있는 추측은 히데가 원래 심각한 저혈압 환자였고[18] 그 전날 밤에 밴드 멤버들과 엄청난 과음을 했으며, 갑자기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던 중 쇼크로 인한 기도 폐쇄와 질식이 왔을 것이라는 추측 정도이다. 그래서 1차 공식 발표 이후에는 자살에서 사고사로 점점 기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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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의 장례식 보도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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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상에서 팬 5만 명이 모여 긴 행렬로 히데의 마지막을 보내주는 모습이 나온다. 히데의 사망으로 인해 몇몇 팬이 잇따라 자살하는 일이 뉴스에 보도 되었고, 이에 요시키는 "여러분의 생명은 소중합니다. 히데를 편히 보내주었으면 합니다."라며 팬들의 자살을 막았다. 또한 안타깝게도 히데의 장례식에 가던 히데의 후배 2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일이 있었다. [19]
그가 죽기 전에 자살 관련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히데 : "마지막 순간에 느낀다는
엑스터시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지만 저는 죽음이 편안한 안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죽고나면 제 팬들이 얼마나 슬퍼하겠어요. 게다가 욕먹을 생각을 하면... 정말 끔찍해요." (웃음)
"죽고나면 지금의 세상이 무척 그리울지도 모르죠. 제 친구들이 절 그리워할게 뻔하니깐. 그치 요시키?" (웃음) "요시키가 제일 슬퍼하는 건 아닐까?"
요시키 : " ...딱히."
"죽고나면 지금의 세상이 무척 그리울지도 모르죠. 제 친구들이 절 그리워할게 뻔하니깐. 그치 요시키?" (웃음) "요시키가 제일 슬퍼하는 건 아닐까?"
요시키 : " ...딱히."
요시키가 말은 이렇게 했지만, 히데 사망 이후 가장 슬퍼했던 건 요시키였고, 요시키는 히데를 떠나보내며 이런 말을 남겼다.
"더 이상 널 볼 순 없지만 너의 기억은 내 가슴 속에서 영원히 남아 숨 쉬겠지.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그러니까, 안녕이라고 말하진 않을게."
사망 이후 히데의 시신은 1998년 5월 7일 도쿄도 화장장에서 화장되었고, 화장된 유골은 가나가와현 미우라 령원(靈園) 묘지에 안치되었으며, 일부는 같은 해 5월 19일에 미국 활동을 함께하던 Zilch 밴드 멤버들에게 전해져 미국 LA 산타 모니카 해변에 뿌려졌다.
2.2. 사후 활동
- 1998년, 발매 준비중이던 'Hurry go round'가 프로그래밍으로 완성되어 싱글 발매 되었다. 이후 3번째 솔로 앨범 'Ja Zoo(1998)'도 나왔다. 죽고 난 뒤 1주기를 기념해 트리뷰트 앨범 'hide tribute spirits' 가 나왔는데, 참가 멤버는 호테이 토모야스, LUNA SEA, BUCK-TICK, 키요하루, SIAM SHADE, GLAY 등등. 일본에서 그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웬만하면 뭉치기 힘든 라인업이 오로지 히데의 추모를 위해 모여줬던 것이니 일본 대중음악계가 그의 죽음을 얼마나 안타까워했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다.
- 2002년, 서태지가 개최한 록 페스티벌 "ETPFEST 2002"에서 hide with spread beaver를 섭외하였다.[20] 물론 고인이 된 히데는 영상으로만 볼 수가 있었고 SPREAD BEAVER 멤버들이 공연을 펼치는 정도였지만 이는 히데의 첫 해외 공연으로 남게 되었다. 부정적인 의견으로는 이것이 히데 주변인들의 일종의 마케팅이라는 시선이 존재하는데, 그 이유 중 큰 것이 히데의 유족들이 히데가 사망한 이후 다방면으로 고인을 돈벌이용으로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hide museum의 경우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팬클럽의 모금 운동이나 지방 자치단체의 보존 요청 등을 무시하고 철거해버렸을 정도.
- 2014년, hide with Spread Beaver의 멤버였던 INA가 히데에 관련된 놀랄 만한 발표가 있을거라 밝힌 뒤, 2014년 12월 10일 히데가 생전에 쓴 곡을 보컬로이드로 재현한 히데의 마지막 신곡 ' 子ギャル(코갸루)'와 함께 기존 곡 15곡이 보너스 트랙으로 포함된 동명의 앨범이 발매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일부 팬들은 이것이 상술이느니 마느니, 또 우려먹느냐는 평가도 하지만… 애초에 히데 사망 직후 무렵부터[21] INA 및 hide with spread beaver 멤버들이 유가족이나 요시키 측과는 상관 없이 헌정의 느낌으로 생전의 히데 목소리 데이터를 하나하나 수집하여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실패 가능성이 워낙 높아서[22] 음원 발매는커녕 공개하는 것조차도 꿈도 못 꿨었다고 한다. INA가 훗날 자신의 저서에 子ギャル(코갸루)의 공개 여부는 INA가 결정한다는 특이한 조항이 있었다고 언급했고, 그에 따른 압박감을 적어놓았다.
- 2015년, "히데, 정크 스토리"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했다.
- 2017년 11월 20일 여성 래퍼 허니비가 히데의 첫 밴드 SAVER TIGER와 동명인 제목으로 싱글앨범을 발매했다. 실제로 허니비는 히데의 팬이라고 하며, 장르는 힙합이다. #
- 2018년에는 사망 20주기 메모리얼 이벤트를 성대하게 열었다.
- 2018년 9월 8일 X JAPAN의 PATA와 과거 Spread Beaver에서 베이시스트로 활동한 Chirolyn등이 내한공연을 가졌는데, 엔딩곡으로 히데의 Pink Spider와 Rocket Dive를 불렀다.
- 2022년, 히데의 친동생인 마츠모토 히로시의 저서인 "형제 추억의 hide(兄弟 追憶のhide)"를 바탕으로 한 영화 "TELL ME ~hideと見た景色~"[23]가 개봉예정에 있다. 히데의 전기영화는 아니고, 히데 사망 직전 솔로앨범 "JA, ZOO"와 ZIlch의 "3,2,1"를 제작하는 시기부터 사망 후까지의 히데의 앨범발매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을 동생 히로시의 관점에서[24] 그린 영화이다. 예고편 홈페이지
3. 평가
3.1. X JAPAN에서
그의 기타 연주실력이 정상급 기타리스트라 불릴 정도로 뛰어났다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과 실력을 개척한 뮤지션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의외로 같은 팀의 PATA보다 안정적인 연주력을 갖춘 기타리스트였다. 화려한 치장과 무대 매너 때문에 기타리스트로서 평가절하된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엑스재팬에서 활동할 때는 솔로 활동과는 다르게 페르난데스의 서스테이너 픽업을 사용한 기타톤을 많이 보여준다.
히데의 편곡 능력은 X JAPAN의 앨범들에서 잘 알 수 있다.
3.2. 솔로 활동
히데는 솔로 커리어에서 폭이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음악이 한 장르 안에 갇히지 않고, 대중적인 팝 록, 인더스트리얼 록, 펑크 록, 어쿠스틱 넘버를 넘나들며 다양한 장르를 앨범에 시도하였다. 언뜻 장르가 하나로 통일되지 않아 조잡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곡들의 질이 너무 좋아 다양한 시도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히데만큼 다양한 록 장르를 모두다 소화할 수 있는 아티스트를 찾아보기가 어렵다.차트 성적은 오리콘 차트 1위, 정규 앨범 밀리언 셀러 달성 그리고 싱글 밀리언 셀러를 달성했다. 싱글 밀리언 셀러는 곡이 1~2곡밖에 없는 싱글로 100만 장을 판매한 것이다. 정규 앨범만 있을 뿐 여러모로 성공한 솔로 활동이다.
보컬 창법은 발성적으로 대중적인 창법을 사용하는 보컬은 아니었다.[29] 그러나 자신의 넓은 장르 스펙트럼에 알맞는 소화력은 높게 평가 받아 마땅하다. 장난스러운 팝 펑크에선 특유의 코맹맹이 음색으로, 인더스트리얼과 하드코어 등에선 음색을 거칠게 잘 갈아내면서 샤우팅, 스크래치, 스크리밍 창법을, 차분한 발라드[30]에서도 담백하게 자신의 음색을 변용할 줄 아는 보컬이었다.
그가 홈페이지에 연재하던 다이어리에 언급하던 음악들을 보면 나인 인치 네일스, 마릴린 맨슨, 제인스 어딕션, 스톤 템플 파일럿츠 등 그 당시 잘 나가던 밴드들부터 프로디지, 케미컬 브라더스 등 빅비트 팀들과 브릿팝, 오블리비언 더스트나 Cocco 같은 일본 락까지 정말 다양하다. 이는 뮤지션으로서 다른 아티스트들의 창작을 보고 배우며 공부하는 사람이었다는 증거다. 실제로 자신이 이루어낸 오만함에 갇혀 음악적인 공부를 하지 않는 뮤지션들은 정말 많다. 사족으로 사망하기 며칠 전 산 음반이 블러(밴드)의 리믹스 앨범인 'Bustin'+Dronin''이었다. 이 헤비메탈, 인더스트리얼, 사이키델릭, 당시 막 부흥하고 있던 뉴메탈 하드코어, 대중적인 팝락 등 다양한 장르 안에서 수준급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재능은 당시 일본음악계뿐만 아니라 서구 뮤지션들을 따져보더라도 흔치 않은 재능이다.
가사를 보면 확실히 히데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괴한 이미지가 많다.
향후 X를 넘어 일본을 대표할 만한 아티스트로서 기대를 모았고 그에 부응하듯 왕성한 활동과 창작욕을 보였지만[31] 뜻하지 않게 활동을 마감한다.
미완의 작품들은 스프레드 비버 멤버들이 모여 완성시켜 'JA, ZOO'라는 타이틀로 발매했고 얼마 후에 레코딩과 마스터링을 미리 마친 zilch의 '3, 2, 1' 앨범도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큰 파급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는 뛰어난 앨범이다. 또한 당시 예정되었던 마릴린 맨슨과의 합동 공연도 무산되었다. 또한 뮤직비디오 촬영까지 마쳤으나 히데의 사망으로 발매는 커녕 활동조차 못한 'Electric Cucumber'라는 노래도 있다. 히데 사망 후에도 리믹스 앨범 Bastard Eyes를 발매하였고, 당시의 곡들을 LUNA SEA의 멤버였던 J를 객원 보컬로 삼아 라이브를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급조된 활동이 끝난 후로는 새 보컬리스트를 영입하여 새 싱글을 발매하였으나, 밴드의 주축이었던 히데가 사망한 것으로 큰 임팩트가 없던 싱글이었기에 조용히 묻혀버렸다. 그리고 또 몇 년 후 밴드의 베이시스트까지 사망하여 밴드의 활동 방향성은 더더욱 잡힐 수 없게 되었으며, 결국 완전 해산을 하였다.
3.3. 영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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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계
2000년대 이후 일본 록밴드들, 특히 비주얼계에 절대적인 큰 영향을 끼친[32]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애초에 X의 캐치프레이즈였던 "PSYCHEDELIC VIOLENCE CRIME OF VISUAL SHOCK"이라는 문구는 히데가 썼다. 이 문구에서 비주얼계라는 표현 자체가 유래되었다. 워낙 비주얼계에 끼친 영향이 크다보니 "비주얼계는 히데에서 시작해서 히데에서 끝났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실제로 히데가 사망한 후, 비주얼계의 본래 의미가 퇴색하여 성장 동력이 급감해 '팬덤 장사하는 장르'라는 평가까지 그 위상이 하락했다. 그 예시로 라르크 앙 시엘, GLAY, LUNA SEA 등과 같은 초기 비주얼계 밴드들이 탈 비주얼을 선언하는 것을 들 수 있다. 하지만 그 계보를 이으려는 미야비, 각트 등의 후배들이 여전히 왕성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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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그의 죽음은 일본 음악계에 현재까지도 충격적 사건으로 남아있으며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지 불과 1주일만에 3명의 팬들이 그를 따라서 자살해버렸고 60여 명이 입원을 하였으며 200여 명에 달하는 팬들이 정신적 충격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다. 당시의 파장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수준이라 문화교류가 단절되어 있던 한국에서도 끊임없이 일본문화를 다룬 다큐에서 그의 사망과 관련된 뉴스가 연일 보도될 수준이었다. 어느 수준이었냐면 일본의 전설적인 락밴드 출신 기타리스트가 갑자기 사망했다. 이런 식으로 다큐나 신문과 같은 미디어에서 연일 보도될 수준이었다. 한일간의 제대로 된 문화교류가 2000년대 초반에서야 시작되었고 당시 일본문화는 베일에 쌓인 저 너머의 무언가임을 생각하면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엄청난 수준이었는지 알만하다. 만약 한국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실제(1998년)보다 더욱 빨리 이루어졌다면 hide의 죽음으로 한국인들이 받았을 충격은 더더욱 커졌을 것이다. 5월 7일 열린 그의 장례식에서는 무려 5만여 명에 달하는 팬들이 그의 장례식장을 찾아서 그를 추모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닐 슈트라우스(Neil Strauss)는 이 현상을 보고 "지난 몇주간 일본의 대중문화는 히데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모든 것이었다."라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일본 록의 거대한 아이콘인 X JAPAN의 해체와 히데의 죽음은 신드롬처럼 록 씬에 전방위적 반향을 일으켰고 1998년, 아무로 나미에, 드림스 컴 트루, 쿠보타 토시노부 등에 의해 주춤했던 제이 록이 중흥기를 맞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X JAPAN 내에서도 큰 존재감과 인기, 솔로 활동에서도 압도적인 성과를 남겼기에, 딱히 비주얼계 후배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장르의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도 동경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는 존재[33]이며 공공연하게 인정받은 따뜻한 성품도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덕목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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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화
2010년대 중반~23년 현재까지 toshl(토시)의 극적인 재활을 통한 XJAPAN의 재결성 등으로 헤이세이 후반대의 젊은 세대에게 "승천한 레전드"로서 추앙받고 있다. 재결성 과장에서 합류할듯 하던 TAIJI의 사망에서도그의 평탄하지 못했던 인성/생애또한 "비운의 레전설"로 포장됨에 있어히데의 영향력이 전파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생전 활약/업적에 비해서, 아무리 이미 죽어버린 스타에 대한 그리움이 크더라도, 과도하게 (상업적 필요에 의한) 신격화 되어가는 모습도 보인다.
4. 장비
4.1. 기타
Fernandes MG-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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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int"
89년 메이저 데뷔부터 93년경 까지 히데의 메인 기타. 히데가 직접 그린 화려한 무늬가 그려져 있다. 넥 픽업에
디마지오 DP-101, 브리지 픽업에
EMG-81이 장착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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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erry Sunburst''
히데가 93~95년경까지 사용한 기타. 후술할 히데의 깁슨 레스폴의 소리와 구조를 지향하여 만들어진 기타로, 이 때문에 이전의 기타들보다 바디의 구조가 약간 복잡해졌다고 한다. 이모델 이후로나온 모든 사양의 MG-X의 기본형이 되었으며, 픽업으로 페르난데스의 VH-401과 페르난데스제 서스테이너를 채용하였다. 이 기타는 여러대가 존재하며, 첫 모델은 42mm의 바디 두께를 가지고 있으며 넥의 쉐잎이 U 형태이다. 이후 하얀색으로 재도장되어 1994년 하얀밤 라이브에서 사용 되었으며 두번째 모델 부터는 넥의 쉐잎이 V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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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on Drop"
위의 기타와 마찬가지로 레스폴의 소리를 지향하여 만들어 졌으며, 이 모델은 45mm의 바디 두께를 가지고 있다. 픽업은 위의 기타와 동일하게 페르난데스 사의 VH-401픽업과 서스테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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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llow Heart"
히데의 96~98년간의 메인 기타. 서스테이너 픽업이 장착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
더 라스트 라이브'에서
ENDLESS RAIN과
쿠레나이를 연주할 때 사용하였다. 앞면을 자세히 보면 영어로 "Love me", "Lick me", "Suck me", "Spank me"라고 적혀있다. 뜻은 "날 사랑해라, 핥아라, 빨아라, 찰싹 때려라"로 다소 외설적인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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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 Heart"[34]
'
더 라스트 라이브'에서
Rusty Nail과
THE LAST SONG 연주에 사용된 기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두 '옐로우 하트'로 연주했다고 잘못 알고 있거나 아예 이 기타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 이는 색상이 초록색이 아니라 노란색에 가까운 연두색이여서 '옐로우 하트'와 구별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발생한 일이다. 자세히 보면 '엘로우 하트'와 색상 뿐만 아니라 하트의 패턴 모양도 조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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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ban”
- MG-85C CN
- MG-100X BLK
- MG-115C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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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rny H-65
- Burny H Custom
- JG-h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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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 D-18
히데가 주로 홈 레코딩이나 작사, 작곡등에 사용 하였던 기타로, 히데의 관에 같이 납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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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 Paul Standard [35]
비교적 보기 쉬운 편인 리이슈 제품이 아닌, 1959년도에 생산된 개체이다. 파타가 소유한 레스폴을 연주해 본 것을 계기로 구입한 기타로, 주로 스튜디오에서 녹음 하기 위하여 93년경에 구입한 기타이다. 93년의 연말 콘서트에 딱 한번 들고나와 Joker를 연주한적이 있다. 1993년 Joker를 녹음하는데 사용 되었으며, 머틀리 크루의 기타리스트 믹 마스가 소유한 이력이 있는 기타이다.
4.2. 이펙터
- Vox V846 Wah
- DigiTech Whammy Pitch-Shifting Pedal
- Digitech DHP-33
- Boss OD-1 OverDrive
- Rocktron Hush Pro
- MXR Phase 100 Script Logo Vintage
- MXR M117 Flanger
- Guyatone Flanger
4.3. 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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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HT Classic Power Amplifier
더 라스트 라이브에서 사용하였다.
- Hiwatt Custom 100 Amplifier Head
- Engl Savage 120
- Marshall 4x12 Cab with V30 speakers
- Hiwatt 4x12 Cabinet
- Hiwatt SE4123 Speaker Cabinet
5. 여담
- 좋아하는 음식 : 일본주
- 좋아하는 패션 : 파충류 느낌의 패션.
-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 : 술, 담배를 배운 것[37]
- 벌레를 싫어한다.
- 꽤나 허약체질인지 콘서트 중 관객에게 기타를 뺏길뻔했는데 죽기살기로 곤혹을 치렀다. 키는 그렇다쳐도 몸이 워낙 말랐으니...
- 늑간 신경통이 있었다. 실제로 늑간 신경통 때문에 리허설 때는 복대를 차고 있었다.
- 심각한 저혈압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무리하게 체중 감량을 하다 보니 이로 인해 생긴 영향인 듯싶다. 이로 인해 체력도 굉장히 안 좋은 편이었다고 한다.
- 상당한 헤비스모커로 항상 담배를 달고 다녔다. 즐겨 피우던 담배는 마일드 세븐 슈퍼 라이트. 보통 하루에 반갑에서 40개피 줄담배를 피웠다. 심지어 레코딩할 때는 3갑도 거뜬히 피웠다. 자기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이 바로 술과 담배를 배운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담배는 끊을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 악기에 관심이 많아 기타, 베이스, 드럼 모두 다 연주가 가능했으며 솔로활동 시에도 기타리프, 베이스라인, 드럼 악보까지 밴드곡으로서 필요한 모든 걸 자기자신이 직접 작곡 편곡하였다.
- X의 캐치프레이즈였던 "Psychedelic Violence Crime Of Visual Shock"은 히데가 만든 말이다.
- X 초창기 시절, 돈이 없어서 음식을 훔쳐 먹는 등 꽤나 눈물 나는 삶을 살았었는데 어느 날 너무 배고파서 멤버들과 같이 레스토랑에 들어가 닥치는대로 음식을 먹고, 돈을 내지 말고 히데가 곧바로 튀자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히데가 워낙 저질체력이다 보니 중간에 타이지가 업고 도망쳤다고 한다.
- 잠을 자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침대에 누워 잠을 자려고 노력하는 편이 아니라 침대에 누웠을 때 바로 쓰러질 정도로 졸리지 않으면 애초에 잠을 자지 않는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날 때도 침대에 오래 머무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 아이들을 매우 좋아하고 귀여워했다. 히데 본인도 19살 때부터 아이가 갖고 싶었다고 인터뷰한 적도 있다. 하지만 정작 결혼해서 아이를 가질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결혼해서 아이를 가지면 자신은 어떤 일도 못하고 아이랑만 지낼 거 같아서.“
- 집안이 대대로 미용실을 했었고 히데 본인도 미용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다. 가수 데뷔 전까지 견습 미용사로도 일했었다. 히데는 훗날 자신이 가수로 데뷔를 하지 않았다면 미용사로 살았을 것이라 회고했다.
- 그가 미용사 일을 하고 있던 시절에 황당한 일이 생긴 적이 있다. 그의 단골 손님이었던 야쿠자의 딸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는데, 하필이면 그 여자의 일기장 마지막 페이지에 히데의 본명인 '마츠모토 히데토(松本 秀人) SAVER TIGER'라는 메모가 있어서 의심을 받게 된 것이다. 히데는 야쿠자들에 의해 주카이 숲까지 끌려가서 자백을 강요받았지만 계속 모른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나중에서야 오해가 풀리자 야쿠자들이 집에 데려다 줬다고 한다.
- 스스로를 "그랜마보이"라고 칭할 정도로 가족들 중에선 유독 할머니와 사이가 좋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자신의 첫 악기인 깁슨 레스폴 디럭스도 할머니가 사준 선물이었고, 처음 밴드를 시작하면서 염색을 한 것에도 부모님의 반대와 달리 할머니는 자신의 편이 되어 줬다.
- 히데는 패션의 아이콘으로 통했다. 독특하고 화려한 색상 조합의 의상과, 짙은 화장에 빨간 머리는 당시 기성세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현재까지도 세련된 감각으로 평가 받는다.
- X JAPAN의 BLUE BLOOD 활동 당시 입었던 의상은 자신의 할머니가 가지고 있었던 인도 여성용 전통 의상 사리를 개조한 것이다.
- 히데가 미용사 지망생이었기 때문에 X 멤버들의 헤어 스타일을 도맡아 했다는 얘기가 있지만, 사실 밴드 초창기의 멤버 비주얼 담당은 타이지였다. 그 유명한 노발(빗자루 머리)의 창시자도 타이지다.[38]
- 다만 BLUE BLOOD 활동 당시 사진에서 자주 볼 수 있던 금발 앞에 섞여있는 빨간색 머리는 파타가 모히칸 헤어를 하면서 밀었던 부분을 자기 머리에 붙인 것이라고 한다. #
- 타이지 자서전에 의하면 X 초기에는 히데가 합주 중에 실수한 걸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또한 그 타이지가 디멘시아에 재직시절 '요코스카 사벨 타이거'의 공연을 보고 디멘시아가 발렸다고 생각했다고 하니 상당히 합주연습을 강하게 밀고 나갔던 모양이다.
- 타이지와 음악성이 잘 맞았다. 둘 모두 발라드 곡을 연주하는 것을 안 좋아했다고 한다. 히데는 장르를 잘 가리지는 않지만, 음악생활 초기에는 주로 아메리칸 하드락을 좋아해서 LA메탈을 좋아했던 타이지와 잘 맞았던 모양이다.
- 한창 솔로 활동 중이던 90년대 중반 때부터 인터넷을 시작하여 개인홈페이지를 만들고, 이곳에 자신의 일기를 꾸준히 올리며 라이브 방송을 하기도 했다. 게시판에서 직접 팬들의 코멘트를 보는 등 팬들과의 소통을 넓히기도 했다.
- 팬에 대한 애정이 깊어서인지 "팬들에겐 콘서트 티켓 값도 비싼데 굿즈 값마저 비싸면 안된다"라며 콘서트에서 파는 굿즈를 5천엔 이상으로는 팔지 말라 했다. 덕분에 히데의 생전 콘서트 내내 상품의 가격이 이대로 책정되었다.
- 팬에 대한 사랑으로 많이 알려진 것이 불치병 소녀 키시 마유코(貴志真由子)와의 에피소드다. 자신을 만나고 싶다는 마유코의 편지를 받고 DAHLIA 투어의 일환으로 개최된 1995년 도쿄 돔에서의 연말 콘서트 때 공연이 끝난 뒤 만남의 자리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1996년에는 마유코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자 모든 일정을 캔슬하고 병원으로 달려갔을 정도. 또 이 소녀를 위해 만든 곡이 'Misery'이다. 마유코는 선천성 체세증이라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유형의 백혈병에 걸려있는데 이런 난치병 환자들을 돕는 메이크어위시 재단의 소개로 히데와 만나게 되었다.[39] Make a wish 재단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마지막 선물'이라는 책이 있는데 한국에서도 발매되어있다. 마유코와의 에피소드는 어느 네티즌에 의해 만화로 그려져서 좀 더 많이 알려졌다.[40] 실화의 주인공인 마유코는 2009년 10월 2일에 히데를 따라 천국으로의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41] 하지만 일본에서 보도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국내에 만화로 그린 것에서는 상당한 왜곡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히데가 마유코를 대한 모습은 보도 상으로 알려진 모습 그 자체만으로도 유명하고 모두가 인정하는 선행이다. 여기에 미화나 없는 내용을 끼워넣게 되면 인물의 행적을 오히려 욕 보이는 행동이 된다. 히데 사후에는 요시키가 히데를 대신하여 마유코를 챙겼으며 자신의 스튜디오와 집에도 초청한 적이 있다. 요시키는 히데와 마유코의 인연을 시작으로 자선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 꽤나 짓궂은 면모도 있었다고 한다. 히데가 멤버들에게 카레를 해줄 테니 집에오라고 초대를 했었는데, 멤버들이 모두 술먹고 뻗어있느라 히데의 집에 가질 못했고, 결국 멤버들은 일주일 동안 히데의 무자비한 공격을 받아야했으며 LA 체류 당시 신입이 방문하면 동성애 거리 한복판에 차를 세우곤 맥주를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키고 한블럭을 돌아서 패닉 상태의 신입을 다시 태우는(...) 악행을 저지르곤 했다.
- 홋카이도 투어 때 호텔에서 새벽 2시~3시경에 타이지가 아래층에서 나는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주의를 주려고 내려갔다고 한다. 근데 내려가보니 로비 프론트에서 만취상태의 히데가 프론트 남직원과 언성을 높이고 있었고 히데는 갑자기 주먹을 들어 검지와 중지를 들어서 프론트 남직원의 콧구멍에 쑤셔박았고 놀란 타이지는 바로 말리러 갔다. 무슨 원인때문에 그런 일이 났는지는 모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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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버릇은 꽤 고약했던 거 같다. 위의 홋카이도 투어썰에도 나와있다시피 술만 먹으면 꽤 성질이 사나운듯 싶다.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친 다음날에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주변인들에게 "어제 나 무슨 짓 했어?"라고 물으며 자신이 벌인 추태에 대해 거듭 사과를 했다고 한다.
- 사망 직전 마지막 TV 인터뷰에서 밝혔던 또 하나의 썰로는 술을 먹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몸이 엄청 아파서[42] 병원에 갔다고 한다. 이 때 병원에서 내린 진단은 다리의 골절이었다고. 당연히 본인은 어떤 경위로 골절상을 입게 되었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났다고 했다. INA는 이런 히데의 모습을 히데라(히데+고질라)라고 자신의 저서에 기재했으며 술이 들어가거나 하면 '아 스위치가 들어가겠구나...'라고 체념했다고 한다.
- 언제는 멤버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전날 밤 요시키와 함께 잠들었는데, 아침에 요시키가 하도 안 일어나길래 직접 깨우고, 멤버들과 만나서 그 얘기를 해주니 멤버들이 매우 놀라워했다고 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자는 것을 깨우면 매우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요시키가 순순히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성격이 괴팍한 요시키가 유일하게 히데에겐 공손하게 대했다고 한다. 얼마나 히데가 주변사람들에게 인상이 좋은지 알 수 있는 부분.
- X JAPAN에 애착이 깊었는지 토시가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어 밴드를 탈퇴하고 싶다고 말하자 갑자기 '토시의 목소리 없는 X JAPAN은 상상할 수 없다'며 밴드를 해체한다는 기자회견을 연 요시키에게 반발하며 밴드의 완전 해체를 끝까지 막으려고 한 멤버이기도 했다.
- 히데는 일본 음악계에서 대표적으로 마음씨 좋고 인성도 좋은 걸로 유명했던 사람이다. 평소에도 라이브하우스에서 실력과 재능이 출중한데 기회가 없어서 묻혀가는 후배들을 발굴하였는데 그 중 가장 성공한 것이 ZEPPET STORE이다.
- 엑스터시 레코드에서 가장 출세한 LUNA SEA와 GLAY는 히데가 설득해서 계약시킨 밴드이다. LUNA SEA를 히데가 직접 발굴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지만, LUNA SEA의 멤버 전원이 히데와 각별한 사이라 유닛 활동이나 피쳐링 등을 한 적도 있다.
- 호테이 토모야스와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깊은 친분으로 이어졌다. 1994년 어느 날 요시키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서 호테이와 요시키의 충돌이 발생한 적이 있는데, 이 사건 이후에 히데가 호테이의 숙소로 찾아와서 대신 사과를 한 것이 계기였다.[43] 이때부터 호테이는 히데와 알고 지내게 되었고, 자신의 콘서트에 히데를 게스트로 초청하거나, 히데는 자신의 베이시스트 멤버를 호테이에게 소개해주는 등 깊이 있는 교류를 가졌다. 히데의 사후 호테이가 나레이션[44]이 들어간 'Rocket Dive'가 실린 추모 앨범에 참여하기도 했다.
5.1. 히데를 오마주한 가상인물
- 2000년에 출간된 <악마로소이다>라는 만화의 남 주인공[45]이 히데를 모티브로 나왔다. 작가가 그의 팬이기 때문에 모티브로 삼았다는 말이 나온다. 당연하게도 남자 주인공의 머리색은 빨간색.
- 2013년부터 발매된 게임인 < 슈퍼 단간론파 2 -안녕히 절망학원->의 등장인물 소우다 카즈이치[46]가 히데를 모티브로 나왔다. 시나리오 라이터 코다카 카즈타카가 히데의 팬이여서 그렇다고 한다. 그 때문에 단간론파 스토리를 다룬 애니메이션 < 단간론파 3 -The End of 키보가미네 학원-> 최종화에서는 ever free가 타이틀 곡으로 재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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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부터 방영한 애니메이션
오소마츠 상의 등장인물인
마츠노 이치마츠가 히데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작중 직접적으로 언급한 대사는 없지만, 옷차림이며 헤어스타일이며 기타는 누가 봐도 히데다.[47]
참고로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다며 저 옷을 골랐다2018년 히데의 20주기를 맞아 오소마츠 상의 공식 굿즈에서 히데 관련 상품을 출시했다.
5.2. 옐로우 하트의 행방
2002년, 서태지가 개최한 록 페스티벌 "ETPFEST 2002"에서 hide with spread beaver를 섭외하였는데,[48] 이때 히데의 부모님은 해외 진출을 열망하던 히데의 꿈을 이루어준 서태지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히데의 메인기타였던 옐로우 하트를 선물했다. 일종의 바톤 터치의 의미라고도 하고, 박물관에 있느니 좋은 음악인에게 연주되길 히데도 바랄 것이라는 말과 함께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하지만 현재 요시키가 LUNATIC FEST에서 진짜 옐로우 하트를 들고 나오면서 돌려준 것이 확인되었다.[49] 서태지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보다 스프레드 비버 멤버나 엑스 멤버가 가지고 있는게 훨씬 어울릴거라 생각한 듯.
6. 음반 목록
본 문단에서는 솔로 활동 중 발표된 것만 서술합니다. X JAPAN 시절의 정보는 해당 문서로.6.1. 싱글
발매일 | 타이틀 | 주간 | 판매량 | 비고 | |
1 | 1993.08.05 | EYES LOVE YOU | 3위 | 247,374장 | [50] |
2 | 1993.08.05 | 50%&50% | 6위 | 195,436장 | [51] |
3 | 1994.01.21 | DICE | 6위 | 259,035장 | |
4 | 1994.03.24 | TELL ME | 4위 | 228,834장 | |
5 | 1996.06.24 | MISERY | 3위 | 214,265장 | [52] |
6 | 1996.08.12 | Beauty&Stupid | 4위 | 203,595장 | [53] |
7 | 1996.12.18 | Hi-Ho/GOOD BYE | 8위 | 122,480장 | [54] |
8 | 1998.01.28 | ROCKET DIVE | 4위 | 691,615장 | [55] |
9 | 1998.05.13 | PINK SPIDER | 1위 | 1,038,701장 | [56] |
10 | 1998.05.27 | Ever Free | 1위 | 843,154장 | |
11 | 1998.10.21 | HURRY GO ROUND | 2위 | 610,336장 | [57] |
12 | 2000.01.19 | TELL ME | 2위 | 291,120장 | |
13 | 2002.07.10 | In Motion | 4위 | 95,770장 | |
14 | 2014.12.10 | 子 ギャル | 2위 | 57,897장 | [58] |
6.2. 정규 앨범
Discography |
||
HIDE YOUR FACE | PSYENCE | Ja, Zoo |
발매일 | 타이틀 | 주간 | 판매량 | |
1 | 1994.02.23 | HIDE YOUR FACE | 9위 | 218,580장 |
2 | 1996.09.02 | PSYENCE | 1위 | 401,370장 |
3 | 1998.11.21 | Ja, Zoo | 2위 | 1,408,370장 |
6.3. 정규 앨범 (Zilch)
6.4. 라이브 앨범
6.5. 트리뷰트 및 커버
[1]
히데 생전 매니저를 담당하였으며, 현재도 히데의 사무소인 HEADWAX ORGANIZATION의 사장이다.
[2]
hide with spead beaver 명의의 히데 생전 마지막 싸인이다. 자세히 보면 날짜가 사망 2일 전이다.
[3]
음악적 지주이자 실제 리더는
요시키지만 멤버간의 유대를 다지고 분위기를 이끌었던 사람은 히데였다.
요시키도 히데를 항상 존경했다.
[4]
기타까지 사줄 정도였던 것으로 보면 밴드 활동에 대해 집안 반대는 없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내성적인 성격이 어느 정도 고쳐지면서 긍정적으로 본 모양이다.
[5]
돈이 없었을때 팔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6]
영어 이름이
SABER TIGER로 잘못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SABEL TIGER라는 밴드는
홋카이도의 메탈 밴드로 히데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밴드이다. 참고로 히데가 소속되어 있던 SAVER TIGER도 원래는 SABEL TIGER였으나 홋카이도에 자신의 밴드와 동명(同名)의 밴드가 있다는 것을 알고 'B'를 'V'로, L을 R로 바꿨다. 최종적으로 밴드명은 '요코스카 사벨 타이거'가 되었다.
[7]
X의 다큐멘터리 영화 <We are X>에서 "
요시키를 처음 만났을 때 음악을 관두려던 참이었다.", "그때 X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미용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라는 히데의 인터뷰가 공개된다.
[8]
참고로 루머로 '
요시키의 밴드 가입 권유는 사실이지만 히데가 음악을 접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었다. 근거로는 일본에서 발매하는 잡지인 <롹킨에프>
1998년 11월호에서 사벨 타이거에서 같이 활동했던 멤버 키쿠치(드럼)와 쿄(보컬)의 인터뷰를 드는데, 이를 보면 당시 히데는 '단지 해당 밴드를 그만두는 것이었지 음악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다른 밴드를 알아보는 중이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후 일화로는 히데가 사벨 타이거 활동 종료 이후에도 사벨 타이거 시절을 회상할 때 "언제나 가슴을 펼 수 있고 자랑스러운 밴드였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며 '히데가 음악을 접으려는 것을
요시키가 설득했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이다.'라고 내용이 퍼진것이다. 하지만 이 인터뷰는 어디까지나 히데가 아닌 샤벨 타이거의 멤버의 인터뷰일 뿐이고, 결정적으로 히데가 살아생전 한 인터뷰가 나옴으로써 이 루머는 사실이 아닌 것이 밝혀졌다.
[9]
가입 초기부터 요시키가 트윈 기타를 고집하였고, 타이지의 클래식 기타리스트 경력을 들먹이며 기타로 포지션을 바꿀 것을 요구했는데, 타이지는 이미 베이시스트로 명성을 얻고 있어서 이에 대한 반발이 심하여 밴드를 탈퇴했다.
[10]
혼자서 2배를 넘게 받는 인세 등.
[11]
나중에
요시키가 밝힌 후일담에서는 오랫동안 알았던 토시의 눈빛이 그때만큼은 진심으로 보여서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12]
'얼굴을 숨긴다'라는 뜻과 동시에 히데 자신의 이름의 중의적 표현을 지닌다. 에일리언으로 유명한 H. R. 기거의 작품을 앨범 커버에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때 커버에 있는 눈은 히데의 눈이다.
[13]
I.N.A, Kiyoshi, Chirolyn, Kaz, Joe, Die 여기서 Kiyoshi는 솔로 1집 투어 참석 멤버였던
BLIZARD의 마츠카와 토시야가 건강 사정으로 하차하자 2집부터 참석한 멤버이고, Kaz는 hide with spread beaver의 활동이 정해지고 기존 솔로 투어 참석 멤버였던
X JAPAN의
PATA를 대신하여 들어온 멤버이다.
[14]
해당 곡은 doubt라는 곡으로, 과거 1993년 Hide With L7 (Zilch Ver.) 명의로 공개했던 곡이다. 이후 Spread Beaver 활동을 하면서
드럼 앤 베이스,
재즈 요소를 가미한 리믹스를 했는데, 위 영상은 그 리믹스 버전인 "Doubt'97 LEMOMed JELLY MIX". 현재 기준으로도 상당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곡이다.
[15]
방송 당시에는 발매되지 않았었다. 히데 사후 발매.
[16]
당시 방송에서 웃으면서 "새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자신은 바퀴벌레를 엄청 싫어하는데, 뮤직비디오 연출에서 몸과 얼굴에 벌레를 붙이고 찍어야 했기 때문에 어떤 기분으로 촬영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라는 얘기를 농담으로 하기도 했다. PV의 곡은 'Electric Cucumber'.
[17]
재부검을 했다고 하는 일부의 헛소문도 있으나, 유족의 반대로 시신에 칼을 대지 못하고 검안만 했다.
[18]
언론에도 밝혀졌듯 히데의 저혈압은 상당한 중증이다. 원래 그 정도라면 술, 담배는 입에도 대면 안되는 수준이다. 심지어 본문에서 후술한대로 장시간 고온 목욕도 불가능하다.
[19]
데샤비에(Deshabillz)의 베이시스트 우츠쿠시이 이비츠(美歪, 향년 21세)와 마데스 그레이르(Madeth gray'll)의 기타리스트 히즈미(歪, 향년 22세)
[20]
참고로 이 페스티벌에 파타와 히스도 Dope Headz라는 밴드의 멤버로 출연했다.
[21]
이때가 스테인버그사의 보컬로이드 프로그램 프로토 타입 초안이 나왔을 시기다.
[22]
프로젝트 시작 당시 히데 목소리 데이터 수집과 복원 성공의 가능성은 30%도 채 안 되었다고 한다. 보컬로이드 엔진 V.4.0이 나온 16년만에야 겨우 완성되었으며 그것도 평범한
키보디스트에서부터 일본 락씬 내에서 손꼽히는 음향 엔지니어가 된 INA가 거의 10년 넘게 작업에 달라붙어서야 겨우 완성됐으니까…
[23]
TELL ME~히데와 함께 본 경치~
[24]
히데의 사망 직후라서 앨범발매에 이르기까지 트러블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히데의 사망직전까지 매니저로서 히데를 보좌하는 모습과, 히데의 사망 직후 앨범발매를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히로시의 모습 주된 스토리가 된다.
[25]
참고로 일반 기타에서는 이 소리를 내지 못하여 '
더 라스트 라이브' 공연에서 이 곡을 연주할때는
파타역시 자신이 원래 애용하던
깁슨
레스폴이 아닌
페르난데스 기타를 가지고 연주한다.
[26]
zilch 소속으로 낸 앨범 '3, 2, 1' 의 첫 트랙 'Electric cucumber' 의 인트로. 본인의 육성이다.
[27]
일어 원문 : さらば、赤い髪のエイリアン。君の作ったロケットに、愛を込めて、アディオース… アディオース、アミーゴ… アディオース。
[28]
트리뷰트 앨범 2번 트랙 'ROCKET DIVE'의 마지막 부분에 삽입된
호테이 토모야스의 나레이션.
[29]
히데 본인도 첫 솔로 준비 당시 보컬로서 부족한점을 본인도 인지하여 HIDE YOUR FACE 시절 자신의 보컬 담당을 Vocal이 아니라 Voice로 표기한 데서 드러난다. 하지만 Psyence 앨범부턴 자신의 보컬에 자신감을 갖게 되어 다채로운 운용법을 익히게 된다. 이는
파타의 후일담에서도 잘 언급된 부분.
[30]
다만 타이지 자서전에 따르면 발라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31]
실제로 그가 죽기 몇 시간 전만해도 라이브에 서고 뮤직비디오를 찍는 등 죽기 직전까지도 음악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있었다
[32]
비주얼계하면 생각나는 무시무시한 화장등은
키스(밴드)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33]
실제로 한국가수들 중에서도 히데에게 영향을 받았거나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다수 존재한다.
[34]
사진 속 기타는 실제 히데가 사용했던 기타는 아니고 미니어쳐 복제품이다. 다만 실제와 큰 차이는 없어서 참고용 사진으로 쓰기에 무리는 없다.
[35]
색상은 체리 썬버스트. 시리얼 넘버 9 0297. 아래 사진 속 모델은 1959년도 사양을 복각, 재현한 리이슈 모델로, 실제 히데가 사용했던 모델은 아니다.
[36]
그의 기타에 있는 무늬는 손수 페인팅했거나 직접 디자인 한 것이 많다.
[37]
공교롭게도 히데의 사망 원인 또한 중증 저혈압인 상태에서 술담배를 끊지 않은 것이라는 게 유력하다.
[38]
타이지 자서전 수록 내용.
[39]
참고로 X JAPAN The last live 영상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엔딩 크레딧에 마유코의 이름이 나오기도 한다.
[40]
과거에는
네이버 붐에 올려진 것이 링크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네이버 붐 서비스가 종료된 관계로 다른 블로그에 올려진 것을 링크.
[41]
당초 20살까지 살 수 있으면 기적이라고 진단받았는데 28살까지 살다 세상을 떠났으니 이 또한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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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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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이후로
호테이와
요시키의 관계가 개선되었는지 불명했지만,
2022년에
요시키가 일본에 돌아왔다는 트윗에
호테이가
Welcome Home이라는 리플라이를 달고
요시키도 거기에 '호테이상, 감사합니다!'라고 답장하는 등 현재는 갈등의 응어리가 풀린 것으로 보인다. 이를 본 팬들도 답글에서 히데가 좋아할 거라며 기뻐하고 있다.
[44]
"잘 가, 붉은 머리의 외계인. 네가 만든 로켓에 사랑을 담아, 아디오스... 아디오스, 아미고… 아디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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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고인이 된 히데는 영상으로만 볼 수가 있었고 SPREAD BEAVER 멤버들이 공연을 펼치는 정도였지만 이는 히데의 첫 해외 공연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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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키 - (옐로우 하트를 들고 나오면서) "진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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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ES LOVE YOU와 50%&50%는 동시 발매가 되었는데 자켓사진의 색상이 다르게 해서 서로 맞대는 전략으로 자켓을 구성했는데 발매당시인 1993년 당시에 일본에서 매직아이가 유행을 했기에 그에 흥미를 느낀 히데는 이 방식을 두 앨범 자켓에 적용하고 레코드사 마케팅에 '두 앨범 포스터가 같이 배치되도록' 주문했다고 한다.
[51]
EYES LOVE YOU와 50%&50%는 동시 발매가 되었는데 자켓사진의 색상이 다르게 해서 서로 맞대는 전략으로 자켓을 구성했는데 발매당시인 1993년 당시에 일본에서 매직아이가 유행을 했기에 그에 흥미를 느낀 히데는 이 방식을 두 앨범 자켓에 적용하고 레코드사 마케팅에 '두 앨범 포스터가 같이 배치되도록' 주문했다고 한다.
[52]
거주중인 아파트에서 15분 거리의 CD샵에서 음악을 고르던 히데가 본 곡을 떠올리고 음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달려와서 만든 음악이기도 하다.
[53]
INA의 말에 따르면 당시에 잔상효과에 매력을 느꼈던 히데는 본 곡의 뮤직비디오에서 잔상효과를 대대적으로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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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컷 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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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 <AWOL -Absent Without Leave->의 오프닝으로 차용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에 대한 반응이 별로 안 좋은 건지, 노래가 아깝다, 이건 너무 심했다, hide를 모독하지 말라는 반응이 심심찮게 있다.
예시 그야말로 전형적인
OST는 좋았다의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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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의 유일한 밀리언셀러 싱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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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 제목이
바람의 검심 -메이지 검객 낭만기- 251막의 타이틀로 인용되기도 했다.
와츠키 노부히로가 단행본에서 밝힌 작가의 말에 의하면, 이 곡의 가사 중 "다시 봄이 되면 만납시다." 라는 부분이 작품과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작업 중에 곡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여기에 히데가 요절한 점을 안타까워하며 그를 추모하는 의미를 더해서 제목을 인용한 것.
[58]
히데 50번째 생일 기념으로 제작된 싱글. 히데가 생전에 녹음했던 미수록 발표곡인데 기존 히데 육성을 빅테이터로 분석한 뒤 복원하는 일종의
보컬로이드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참고로 싱글이라기에 보기가 좀 애매한 게, 초회한정판 기준 子 ギャル와 그 데모곡(히데가 살아 생전에 녹음한 거다!)을 빼고도 싱글 타이틀 곡과 2002년에 hide SINGLES ~ Junk Story ~에 뒤늦게 수록된 Junk Story까지 총 15곡을 수록한 베스트 앨범 격의 음반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 일본 위키피디아에서는 베스트 앨범으로 분류되어 있다. 무엇보다 히데의 인터뷰 음성을 삽입한 연주곡 Comment를 빼고 그 대신에 코갸루를 넣었으니 리패키지로 봐도 할 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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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믹스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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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rry Go Round 보컬 Take2가 수록되어 있다. 히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중 I.N.A가 발견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