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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음악 언론 Ultimate Classic Rock이 2021년 가장 위대한 미국 밴드를 선정한 순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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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치 보이스 | 톰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스 | 밴 헤일런 |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 | 에어로스미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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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즈 | 토킹 헤즈 | R.E.M. | 이글스 | 사이먼 앤 가펑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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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스틸리 댄 |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 올맨 브라더스 밴드 | 너바나 | 라몬즈 | |||||
<rowcolor=#fff>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메탈리카 | 건즈 앤 로지스 | ZZ 탑 | 버즈 | 레너드 스키너드 | |||||
<rowcolor=#fff> 21위 | 22위 | 23위 | 24위 | 25위 | |||||
카스 | 그레이트풀 데드 | 사운드가든 | 앨리스 쿠퍼 | 키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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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아멘트 / 펑카델릭 | 벨벳 언더그라운드 | 스투지스 | 부커 T. & 더 M.G.'s | 하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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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테이션스 | 홀 앤 오츠 | 시카고 | 펄 잼 | 산타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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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틀리 크루 | 프랭크 자파 그리고 마더스 오브 인벤션 | 블론디 | 두비 브라더스 | 칩 트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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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니 | 보스턴 | 제퍼슨 에어플레인 | 픽시즈 | 본 조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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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핫 칠리 페퍼스 | 스톤 템플 파일럿츠 | 캡틴 비프하트 & 히스 매직 밴드 | 플레이밍 립스 | 푸 파이터스 | |||||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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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틀리 크루 Mötley Crü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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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 상단 부터 : 빈스 닐, 토미 리, 니키 식스, 믹 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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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0000><colcolor=#fff> 국적 | 미국 | |||
결성 | 1981년 | |||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 ||||
데뷔 | 1981년 10월 | |||
정규 1집 Too Fast for Love | ||||
해체 | 2015년 | |||
재결성 | 2018년 | |||
멤버 |
니키 식스 (베이스) 존 5 (기타) 빈스 닐 (보컬) 토미 리 (드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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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글램 메탈, 헤비 메탈, 하드 록 | |||
레이블 | 머틀리, 일레븐 세븐 뮤직, 엘렉트라 레코드, 리서, 워너 브라더스 | |||
링크 |
[clearfix]
1. 개요
2014년 사진. 왼쪽부터 믹 마스 (前 기타), 니키 식스 (베이스), 빈스 닐 (보컬), 토미 리 (드럼).
미국의 록밴드. 대표적인 글램 메탈 밴드로서, 가장 미국적인 록밴드로 손꼽히며, 미국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록 밴드 중 하나이다. 전세계 1억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미국 내에서만 2,500만 장의 앨범을 판매하였다.
2. 특징
전형적인 미국식 글램 메탈 밴드의 이미지를 처음 만들어낸 밴드로서, 블루스에 기반한 넘실대는 그루브감과 팝적인 멜로디, 그리고 다소 선정적이고 향락적인 가사가 특징이다. 이름에 다른 록밴드인 모터헤드나 퀸즈라이크처럼 움라우트가 들어가지만, 독일어는 아니고 그냥 멋있어 보여서 붙인 거라고 한다. 처음에는 니키 식스가 밴드 이름을 x-mass로 지을 뻔 하였으나 믹 마스 덕분에 mötley crüe로 결정되었다.밴드 결성 초기부터 1985년 Theatre of Pain 시절까지는 영국의 글램 록과 헤비메탈에 영향 받은 짙은 화장과 섹슈얼하고 화려한 차림을 하고 나왔는데, 이는 나중에 꽃미남 콘셉트를 이용한 글램 메탈의 이미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후 Girls, Girls, Girls 앨범부터는 미국의 전형적인 Bad Ass 콘셉트로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 콘셉트는 비슷한 이미지의 동시대 밴드들과 함께 전형적인 미국 록밴드의 이미지를 형성하였다. 음악적으로는 영국 글램 록 밴드 슬레이드,Sweet[1][2]과 미국 록 밴드 Cheap Trick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특히 Home sweet home 같은 곡의 조용하다가 폭풍처럼 몰아치는 완급 조절은 슬레이드를 kickstart my heart의 도입부분은 Sweet의 Hellraise를 빼다 박았다.
전 멤버인 믹 마스를 빼고는 하나같이 범죄자인 집단으로도 유명하다. 데뷔 초기부터 폭행, 음주, 약물 중독, 기물 파손, 성매매 등 각종 사건 사고를 일으켰으며 이들의 전 매니저가 말하길, 다른 밴드들은 록스타라면 당연히 해야 될 일이라고 해서 소동을 일으킨 반면 이들은, 그냥 이유없이 일으켰다고 한다. 빈스 닐은 하노이 락스의 드러머 래즐과 함께 만취한 상태로 운전대를 잡다가 빗길에 넘어지며 반대에서 오던 차량과의 사고를 통해 래즐을 사망케 했다. 상대 차량 운전자 및 동승자도 뇌가 다치는 중상을 입었으며 이때문에 빈스 닐은 당시 한화로 약 30억 가량의 합의금을 지불하였다. 이후 하노이 락스를 2차 가해하며, 래즐의 사망을 밴드 홍보차원으로 쓰는 등의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다. 감옥에 들락날락 하기도 하고 드러머 토미 리는 전 아내 파멜라 앤더슨과 찍은 섹스 비디오가 유출되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베이시스트 니키 식스는 싸움이 일상이었고 마약을 과용하다가 심정지가 온 적도 있다. 유일하게 얌전한 것 같은 믹 마스 또한 한 성깔하는 편이고 알코올 의존증 때문에 고생을 하기도 했다. 쉽게 말하자면 총기사고만 일으키지 않은 백인 갱스터 그룹이라고 보면 된다. 비슷한 기행을 벌였던 오지 오스본이 마약에 탐닉한 것 외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이쪽은 믹 마스를 제외하면 전원이 전과자다.
믹 마스를 제외한 멤버 전원이 그루피와의 섹스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애초에 라이브 공연 때 무대 위에 클럽에서 야한 춤 출법한 복장의 댄서들(남녀구분 없다)을 세워놓고 춤추고 코러스 넣게 하는 것은 기본이요, 폴댄스같이 하드한 춤도 추게 한다. 궁금하면 2014년 iheartAudio 공연을 보면 된다. 본 공연도 이 정도니 공연 후에는 특히 자서전 The Dirt에선 그런 멤버들의 행각이 아주 상세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재결성 이후 일단은 조용히 살고 있다.
그런 난장판 속에서도 조용히 음악만 하고 비는 시간에 후배들도 돕던 기타리스트 믹 마스의 존재는 정말 이질적이다. 믹 마스야말로 10대 때 발견한 지병 때문에 고생했음에도, 후배들의 존경을 받아오며 현역 생활을 이어갔으니 사고뭉치 이미지로 인해 메탈의 롤링 스톤즈라고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리더 및 작곡자가 밴드의 베이시스트인 니키 식스라 여타 메탈 밴드들과 달리 베이스 음이 상당히 비중있게 들리며, 베이시스트 싱어송라이터 특유의 간결함이 있다. 처음부터 곡을 좀 복잡하고 화려하게 만들어보려는 기타리스트 리더/싱어송라이터들과 달리[3] 베이시스트들은 곡을 쓸 때 가장 심플한 리듬을 기반으로 작곡하며[4] 그 위에, 기타가 적당한 MSG를 뿌리는 식이다.
결성 당시 니키 식스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제대로 된 밴드 경력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빈스 닐은 주로 소규모 파티나 뒷뜰에서 커버 곡을 연주하며 분위기를 띄워주는 밴드 멤버였고, 믹 마스 또한 기타 실력은 프로지만 커리어 대부분을 남의 노래를 커버하며 공연하는 밴드에서 보내거나 인기가 시덥지 않은 밴드에서 보냈다. 토미 리는 클럽에서 자작곡을 연주하는 밴드에서 활동하긴 했으나 오래가지 못하고 해체한 것이 전부일 정도였다. 유일하게 니키 식스만 그나마 클럽 주말 공연을 연일 매진 시킬 정도로 지역에서 인기 있는 자작곡 기반 밴드에서 활동했다.이후 대다수의 다른 밴드들이 멤버들과 언더그라운드에서 몇 년간 인고의 시간을 보낸 것과는 달리 머틀리 크루는 시작과 동시에 LA 지역 클럽의 주요 공연들을 연달아 매진 행진시키면서 인기 몰이를 하더니 결성 2년만에 수만 명이 운집한 페스티벌을 나가거나 대형 공연장에서 공연을 개최 하는 등 결성한지 얼마되지 않은 상태에서 빠르게 미국 전국구에 자신들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다.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니는 희대의 양아치 밴드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개개인의 기본 음악 소양은 매우 탄탄했다는 증거였다.
현지에선 그들이 로큰롤 명예의 전당 입성에 실패한 것에 대해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그들의 음악성이나 영향력, 상업적 성공을 따져봤을 때는 입성에 성공한 다른 밴드들 처럼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지만 역시나 그들이 벌인 수많은 악행들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게 중론. 리더 니키 식스 또한 입성하기를 희망하지만 심사위원들에게 머틀리 크루가 후보로 선정될 일은 없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선봉에서 글램 메탈 전성기를 같이 보낸 동료 밴드들이 입성에 성공한 것을 생각하면 본인들도 참 아쉬울지도 모른다.
여담으로 멤버들 나이가 60대 이상임에도 전원이 풍성한 모발을 자랑한다.
3. 바이오그래피
1981년 1월 17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결성되었다. 다른 밴드에서 탈퇴한 상태였던 니키 식스와 토미 리가 합심하여 믹 마스[5]를 오디션을 통해 영입하고, 토미 리의 고등학교 시절 친구인 빈스 닐[6]을 영입하여 결성하였다.1981년, 첫 앨범 Too Fast for Love를 셀프 프로듀스 형식으로 제작하여 발매했는데, 발매 후 2만 장이 팔리며 셀프 프로듀스 치곤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이후 메이저 음반사인 Elektra Records와 계약하게 된다. 계약 후 리믹스와 리마스터링을 거쳐 재발매된 그들의 데뷔 음반은 1987년에 플래티넘을 기록하게 된다.
1983년,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앨범 Shout at the Devil을 발표한다. 이 시기에 발표된 Shout at the Devil (1983), Theatre of Pain (1985), Girls, Girls, Girls (1987) 세 장의 앨범은 그들의 커리어 하이를 상징하는 앨범들로, 수많은 인기 싱글이 쏟아지며 그들에게 세계적인 인기를 가져다준다. 당시에 불었던 MTV 붐과, 글램 록과 메탈의 이미지를 섞은 그들의 글램 메탈 형식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명실공히 미국 문화를 대표하는 밴드로 자리잡게 된다.
하지만, 밴드의 성공과 함께 찾아온 돈벼락과 그루피는 믹 마스를 제외한 멤버들의 정신 상태를 혼돈에 빠뜨렸고 온갖 사건 사고가 쏟아져 나왔다. 빈스 닐의 음주운전 사고 때 동승했다 사망한 하노이 락스 멤버 래즐의 문제로 법정에 드나드느라 빈스의 상태는 더 엉망이 되고 토미 리도 각종 여자관계 문제를 일으켰으며 그 결정타 격으로 1987년 12월 23일, 니키 식스가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쓰러지고 앰뷸런스에 실려가던 도중 심정지로 2분간 사망 선고를 받게 되지만 앰뷸런스에서 머틀리 크루 팬이었던 간호사가 긴급히 아드레날린을 주사해 겨우 소생시켰다.[7] 그런 풍파를 겪고나니, Girls, Girls, Girls가 400만 장 팔리건 말건 현자타임이 올 수 밖에없었고 이들은 정신이 번쩍들었다. 이미 글램 메탈의 최전성기를 보냈으며 이 자리를 노리고 등장한 건즈 앤 로지스 같은 신예 그룹의 성장[8]으로 1인자의 지위가 위태위태한 판에 저런 상태로 몇년을 보냈으니 마약과 방탕한 생활에 멤버들 모두 회의감을 느끼게 되고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고 새 앨범을 녹음하기 시작하였다. 본 조비의 'Slippery When Wet'의 엔지니어와 믹싱을 담당하던 프로듀서 밥 록은 기존 앨범 제작과정에 비해 아주 섬세한 스타일이었고 이러한 방식과 맞물려 앨범 전체적으로 기존과 다르게 깨끗하고 명확한 소리가 들리게 된다.[9]
1989년에는 그들을 대표하는 앨범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앨범으로 그들의 앨범 중 가장 많이 판매된 앨범인 DR. FEELGOOD을 발매하며 인기의 정점을 찍는다. 이때부터는 기존의 글램 메탈 양아치 컨셉을 버리고 American Badass 컨셉으로 전환했다. 머틀리 크루를 상징하는 앨범은 2-5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당장 이 앨범의 대표곡인 Dr.Feelgood부터 니키가 죽을 뻔 하다가 마약을 팔아 부자가 된 사나이의 흥망성쇠와 비참한 최후를 노래하며 너네들 마약 손대면 나처럼 좆된다고 말해주고 있다.
1989년 싱글 Dr. Feelgood을 필두로 Kickstart My Heart, Without You, Same Ol' Situation, Don't Go Away Mad 등 앨범 거의 절반에 가까운 곡이 빌보드 싱글 차트 상위권에 랭크되고 앨범 역시 600만장을 팔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메탈의 선봉장임을 자처하면서도 준수한 히트작은 많으나 월드와이드로 메가 히트한 앨범은 없었는데 Dr. Feelgood은 본 조비의 ' Slippery When Wet' 건즈 앤 로지스의 ' Appetite for Destruction' 데프 레파드의 ' Hysteria'와 더불어 메탈 씬 최고의 히트작이 되었다.
하지만 1992년 멤버 간 불화로 빈스 닐이 밴드를 떠나고[10] 존 코라비를 영입한다. 존 코라비는 기타리스트로서도 훌륭한 터라 빈스 닐과 다르게 기타와 보컬을 겸임하였다. 곧 이어진 그런지의 유행으로 메탈 장르 전체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밴드 역시도 침체기에 들어갔다. 1994년 셀프 타이틀 앨범 'Motley Crue'를 발매하여 빌보드 차트 8위에 랭크 되었으나 앨범 판매량은 겨우 골드에 그치는 등 상업적으로 실패를 맛보았다. 그래도 다른 메탈 밴드의 상업적 몰락에 비하면 이 정도는 선방한 편이다.
중간에 빈스 닐이 돌아와[11][12] 1997년 'Generation Swine'을 발표하며 빌보드 앨범 차트 4위에 랭크되지만 기존과 크게 다른 스타일의 앨범이라 골수 팬들이 크게 실망하게 된다.[13] 결국 토미 리가 탈퇴하는 등 멤버 교체도 일어나고 예전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한다.
2004년 재결성하여 다시 활발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2008년에는 신보인 Saints of Los Angeles를 발표하며 다시금 미국을 대표하는 록밴드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2012년에는 기아 K5(미국명 옵티마) TV 광고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2015년 12월 31일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해체하였다가, 2019년 다시 재결합을 선언했다. 2019년에 공개된 넷플릭스의 전기영화인 < 더 더트>가 인기를 끌면서 젊은 팬들이 늘어난 것이 이유라고 한다.
2019년 3월 22일 머틀리 크루의 전기영화 더 더트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로 공개되었다. 그들의 악명(?)답게 섹스, 알코올, 약물, 구속, 수감으로 뒤범벅이 된 내용인데 플롯 자체는 상당히 심플하고 실감나게 구성되어 있다. 밴드의 전기 영화로서 완성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2020년에 스타디움 투어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때문에 2022년부터 포이즌, 데프 레파드, 조안 제트와 함께 투어에 나섰다.
2021년 11월 18일, 토미 리와 파멜라 앤더슨의 섹스 비디오 유출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드라마 Pam & Tommy 티저가 공개되었다. # 토미 리의 역으로는 세바스찬 스탠이 파멜라 앤더슨 역으로는 릴리 제임스가 캐스팅 되었으며 2022년 10월 28일, 기타리스트 믹 마스가 건강 문제로 앞으로의 공연 및 투어에서 하차하기로 결정했다. # 그를 대신해 존 5가 기타를 맡아 예정된 투어를 그대로 진행했다.
4. 멤버
5. 음반 목록
5.1. 정규 앨범
발매일 | 제목 | 빌보드 최고순위 | 비고 |
1981 | Too Fast for Love | 77위 | 처음에는 밴드 자체 음반사인 Leathür Records에서 발매되었고, 이후 리믹싱과 부분 재녹음을 거쳐 1982년 엘렉트라 레코드에서 재발매되었다. |
1983 | Shout at the Devil | 17위 | |
1985 | Theatre of Pain | 6위 | 그들이 사실상 록스타가 되게끔 만든 앨범이며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Home sweet Home이 수록된 앨범이다. 허나 빈스 닐이 말하길 Home Sweet Home과 자신이 수록하자고 한 커버곡 Smokin in the Boy Room을 제외한 나머지 곡들은 다 별로라고 한 바 있다. 이 앨범의 성공으로 우리는 대충 하면서 앨범을 내도 몇 백만장 팔 수 있다는 자만심만 커졌다고 한다(...). |
1987 | Girls, Girls, Girls | 2위 | |
1989 | Dr. Feelgood | 1위 | |
1994 | Mötley Crüe | 7위 | 유일하게 빈스 닐이 아니라 존 코라비가 참여한 앨범이다. 믹 마스가 인터뷰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앨범으로 꼽았다. 본인한텐 비틀즈의 화이트 앨범 격이라고. 앨범 아트 타이틀에 움라우트가 빠진 채로 표기되었다. |
1997 | Generation Swine | 4위 | 빈스 닐이 다시 복귀한 앨범. 존 코라비도 일부 코러스와 리듬 기타로 참여하였다. 중요한 건 앨범 순위는 높았으나 머틀리 크루 역사상 최고의 괴작으로 뽑힌다. |
2000 | New Tattoo | 41위 | 토미 리가 탈퇴하고 랜디 카스틸로가 드러머로 참여하였다. |
2008 | Saints of Los Angeles | 4위 |
5.2. 컴필레이션 앨범
발매일 | 제목 | 빌보드 최고순위 | 비고 |
1991 | Decade of Decadence | 2위 | |
1998 | Greatest Hits | 20위 | |
1999 | Supersonic and Demonic Relics | - | 미발표곡과 데모 트랙, EP 수록곡들로 구성되었다. |
2003 | The Millennium Collection: The Best of Mötley Crüe | - | |
2004 | Loud as F@*k | 94위 | |
2005 | Red, White & Crüe | 6위 | |
2009 | Greatest Hits | 94위 | |
2019 | The Dirt Soundtrack | 10위 | 머틀리 크루 전기 영화 "The Dirt" 사운드트랙. |
5.3. EP
발매일 | 제목 | 비고 |
1988 | Raw Tracks | |
1990 | Raw Tracks 2 | |
1994 | Quaternary |
5.4. 박스 셋
발매일 | 제목 | 비고 |
2003 | Music to Crash Your Car to: Vol. 1 | 1 ~ 4집 곡들에 오리지널 믹스 트랙들과 라이브 음원, 데모 트랙 등이 추가 수록되었다. |
2004 | Music to Crash Your Car to: Vol. 2 | 5 ~ 6집과 EP Quaternary, 컴필레이션 앨범 Decade of Decadence, Supersonic and Demonic Relics의 곡들과 보너스 트랙들로 구성되었다. |
5.5. 싱글
발매일 | 제목 |
빌보드 HOT 100 |
빌보드 메인스트림 록 |
수록앨범 | 비고 |
1981 | Stick to Your Guns | Too Fast for Love | |||
1982 | Live Wire | ||||
Public Enemy #1 | |||||
Merry-Go-Round | |||||
1983 | Shout at the Devil | 30위 | Shout at the Devil | ||
Helter Skelter | |||||
1984 | Looks That Kill | 54위 | 12위 | ||
Too Young to Fall in Love | 90위 | 17위 | |||
1985 | Smokin' in the Boys Room | 16위 | 7위 | Theatre of Pain | |
Home Sweet Home | 89위 | 38위 | |||
Keep Your Eye on the Money | |||||
1987 | Girls, Girls, Girls | 12위 | 2위 | Girls, Girls, Girls | |
Wild Side | 14위 | ||||
You're All I Need | 83위 | ||||
1989 | Dr. Feelgood | 6위 | 7위 | Dr. Feelgood | |
Kickstart My Heart | 27위 | 17위 | |||
1990 | Without You | 8위 | 11위 | ||
Don't Go Away Mad (Just Go Away) | 19위 | 13위 | |||
Same Ol' Situation (S.O.S.) | 78위 | 34위 | |||
1991 | Primal Scream | 63위 | 21위 | Decade of Decadence | |
Home Sweet Home '91 | 37위 | 41위 | |||
Anarchy in the U.K. | 10위 | ||||
1992 | Angela | ||||
1994 | Hooligan's Holiday | 10위 | Mötley Crüe | ||
Misunderstood | 24위 | ||||
Uncle Jack | |||||
Smoke the Sky | |||||
Power to the Music | |||||
1997 | Afraid | 10위 | Generation Swine | ||
Beauty | 37위 | ||||
Find Myself | |||||
Glitter | |||||
1998 | Bitter Pill | 22위 | Greatest Hits | ||
Enslaved | |||||
1999 | Teaser | 35위 | Supersonic and Demonic Relics | ||
2001 | Hell on High Heels | 13위 | New Tattoo | ||
New Tattoo | |||||
Treat Me Like the Dog I Am | |||||
2004 | If I Die Tomorrow | 4위 | Red, White & Crüe | 캐나다의 펑크 록 밴드 심플 플랜이 2004년 그들의 2집 앨범 작업 시 작곡했던 곡으로 앨범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고 하여 제외되었던 곡을 프로듀서 밥 록이 구매[14]한 뒤 머틀리 크루에게 들려주었다. 니키 식스는 이 곡을 들은 후 밴드가 레코딩하기 전에 약간의 서정적인 요소를 추가하고 음악에 변화를 주었다. | |
2005 | Sick Love Song | 22위 | |||
2008 | Saints of Los Angeles | 5위 | Saints of Los Angeles | ||
Mutherfucker of the Year | 29위 | ||||
2009 | White Trash Circus | 37위 | |||
2012 | Sex | ||||
2015 | All Bad Things Must End | 32위 | |||
2019 |
The Dirt (Est. 1981) (featuring 머신건 켈리[15]) |
8위 | The Dirt Soundtrack |
5.6. 미디어
1987년 발매 싱글 Girls, Girls, Girls. 그들의 이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라 할 수 있다.[16]
1989년 발매 싱글 Kickstart My Heart. 위에 언급한 기아 K5 광고 삽입곡이자 쟈니 에이스가 테마곡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2020년 스폰지밥 무비: 핑핑이 구출 대작전 예고편 음악으로 쓰였으며 2021년에는 배틀필드 2042의 티저 트레일러에 리믹스 버젼이 삽입되기도 했다.
1989년 발매 싱글 DR. FEELGOOD. 그들의 대표곡으로 꼽히며, 가장 많이 판매된 싱글이기도 하다. 그들만의 그루브감을 유감없이 드러내 보이고 있어서, 웬만한 드러머들도 연주하기 까다로운 곡이다.
그들의 몇 안되는 발라드 곡 중 하나인 Home Sweet Home. 85년에 발매된 후 91년에 재발매되었다. 해당 앨범은 이 곡을 제외하고 전 곡이 금지곡이 되는 바람에 당시에는 국내 발매가 안 되었다. 물론 해적판 LP는 시중에 돌아다녔기에 노래를 신청하면 방송에서 틀어줬다. 존 쿠삭이 주연한 1980년대로 타입 슬립하는 코미디 영화인 욕조 타임머신 엔딩이 이 곡인데, 1985년판 뮤직비디오를 편집해 만들었다. 주인공 세 친구 중 하나 루(Lou)가 니키 식스 포지션인 보컬로 나오는데 헤어, 복장에 문신까지 똑같이 하고 나오며, 당연히 원래 뮤비의 다른 멤버들 연주 장면도 나온다. #
[1]
특히 어린시절 니키 식스는 Sweet을 빅팬을 자처했다.
[2]
니키 식스가 London에서 활동할때 삼촌 찬스를 통해 Sweet 보컬과 통화 할 일이 생겼는데 니키식스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전화를 걸었다 끊었다 반복하다 결국 용기내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니키는 그에게 밴드에 대한 조언과 도움을 구하고 앞으로 당신들과 투어를 다니고 싶다고 말을 하였지만 Sweet의 보컬은 용건이 끝났냐 라고 퉁명스럽게 묻고는 당신들 같은 음악은 절대 성공 할 수 없다고 말해 그때부터 우상에서 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3]
보컬리스트 작곡가도 이런 경향을 보이기도 하지만,
케바케이다.
[4]
밴드 사운드의
척추라고 할 구심점 역할을
베이스 기타 소리가 맡는 까닭에, 베이시스트가 작곡을 하면 대체적으로 곡의
기본 그 자체에 충실해지는 경향이 크다.
[5]
니키 식스와 믹 마스는 서로 머틀리 크루 하기 한참 전에 니키가 어떤 주점에서 알바할 때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손님으로 간 믹은 가게 점원이였던 니키에게 음악 이야기를 하면서 꼰대스러운 언동을 보였고 거기에 열받은 니키는 믹에게 욕설을 난무하였으나 믹은 의기양양하게 '내가 이 근처에서 공연을 하니, 진짜 음악이 뭔지 알고 싶다면 보러오던가'라고 니키를 도발했다. 니키는 잔뜩 열받아서 꺼지라고 했지만 몰래 공연을 보러갔고 믹의 연주에 뻑가버렸다고 한다. 훗날 머틀리 크루 오디션을 통해 둘이 재회했을 땐 둘 다 서로를 기억 못 하였으나 믹의 우스꽝스러운 복장에 폭소를 터뜨린 토미 리와는 달리 그의 연주를 들은 니키는 곧바로 토미에게 '우리가 찾던 게 바로 이 친구야!'라며 강추했다는 것을 보면 기본적으로 니키와 믹은 음악적으로 잘 맞았던 것 같다.
[6]
처음엔 빈스 닐은 머틀리 크루 가입에 대해 회의적이였는데, 당시 본인의 밴드인 Rockcandy가 동네에서 잘나갔거니와 머틀리 크루의 음악을 허접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오디션장도 안 나타나고 피해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뒤 몇몇 멤버들 때문에 공연장에서 제대로 엿먹은 빈스 닐이 팀을 탈퇴해버리고, 마침 만난 토미 리의 재차 권유에 머틀리 크루의 일원이 된다.
[7]
The Dirt에서 이 장면을 아주 상세히 묘사하였다. 여담으로 이 때 구급차를 불렀던 사람이 다름아닌
건즈 앤 로지스의 기타리스트
슬래시와 베이시스트
더프 맥케이건이었다. 니키가 구급차에 실려가는 동안 상기했듯이 간호사가 아드레날린을, 그것도 '심장'에 주사했지만 당시 니키의 마약 중독이 극한에 다다른 때여서 처음 했을 때는 살아나지 않았다. 그래서 간호사가 한 번 더 주사했더니 그 때 살아난 것이다. 그때 니키가 죽다 살아난 경험과 느낌을 곡으로 만든게 5집의 2번째 싱글인 Kickstart My Heart였다.
[8]
건즈 앤 로지스가 처음 결성되고 나서는 머틀리 크루의 공연 오프닝 밴드였지만 머틀리 크루가 이래저래 허덕이는 동안 AFD앨범으로 승승장구하던 건즈는 1989년이 되자 어느덧 동급 수준이 되어버렸다.
[9]
메탈리카의 라스 울리히가 이 앨범을 듣고 후에 밥 록을 영입하여 앨범을 준비한다. 라스가 밥 록 프로듀싱 특유의 그 웅장한 사운드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물이 바로 메탈리카의 대중적 명성을 한단계 끌어올린 명반인 블랙 앨범이다.
[10]
영화에서는 빈스 닐이 자기가 나간 거라고 하고 니키 식스는 너는 해고 당한 거라고 하지만 책에서는 반대로 빈스 닐은 팀이 자기를 해고 했다고 생각을 하였고 니키 식스는 빈스 닐 스스로가 팀을 떠난거라고 생각했다고 밝힌다.
[11]
존 코라비는 Ratt의 기타리스트로 합류한다.
[12]
셀프 타이틀 앨범 Motley Crue의 실패로 인하여 그 동안 함께 했던 스탭들을 갈아치우게 되고 적자를 보게 된 소속사에서도 멤버들에게 존 코라비를 해고하고 빈스 닐을 복귀시키도록 압박한다.
[13]
애초에 이 앨범의 대부분은 코라비 재직 시절에 제작된 것이고, 앨범 제작 도중 존 코라비 탈퇴 후 빈스 닐이 이어 받아서 마저 녹음과정만 마친 것. 그래서 인지 노래를 녹음할 때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14]
밥 록은 심플 플랜 2집의 프로듀서였다.
[15]
영화 The Dirt에서 토미 리 역을 연기하였다.
[16]
여담으로
박철이 SBS 파워FM에서 '2시 탈출'을 진행할 때 썼던 오프닝곡이었다. 그리고 서태지가 이 뮤직비디오를 보고 바이크 운전을 꿈꿔 왔으며 결국은 2019년에 바이크 면허를 취득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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