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목업 모델은 1938년 4월 11일
제노바에 위치한 안살도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가솔린 엔진, 2개의 8mm 기관총, 4명의 승무원, 4륜 구동에 독립된 서스펜션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프로토타입은 1939년 5월 5일 생산되었고 이 차량은 군과
식민지
경찰의 요구에 맞게 각각 다르게 개량된다.[1] 프로토타입은 1939년 6월에
로마에서 테스트를 받았고 이후 6월 3일 기술자들은 흙받이의 형태를 단순하게 하고 조종석의 제한된 시야문제를 개선하는 등의 개량을 가했다. 그리고 차량은 다시 테스트를 받게 되는데 9월 12일 13,000 킬로미터를 주행하는 시험에서 어려운 기상 조건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만한 성능으로 통과한다. 몇가지 보고를 통하여 차량은 조종석 개량과 라디오 안테나, 대공 기관총을 설치하고 이 차량은 AB6라는 명칭을 얻지만, AB40이라는 명칭으로 군용과 경찰용 두 버전이 통합되고 1940년 3월 18일에 생산 승인이 된다. 초기에
유고슬라비아가 이 차량을 185대 주문한다.
생산은 1941년 1월에 시작되고, 첫번째 AB40은 3월에 완성되며, 1941년 7월 17일 차량화 사단에 전송된다. 그리고 1941년 1월에서 1942년 2월 사이 14개월 동안 장갑차 생산량 343대 중 320대가 군에 전달되었다.
1940년 11월에 AB40에 새로운 포탑이 개발되었다. 여기에는 더 강력한
브레다 20/65 기관포와 두 쌍의
브레다 M38을 장착하기로 계획했다. 몇 개의 시험품을 기병대 학교에서 만들고, AB40을 AB40/41로 개조하기로 한다(일부 AB40은 포탑을 유지하여 개조되지 않았다). 많은 회사들이 AB40/41의 개조계획에 참여하였고 광학장비와
기관포를 공급해 주었다. 1941년 12월 31일에 250대가 새롭게 변경되었다. 하지만 1942년 북부의 도시들이 폭격을 받으면서 생산량은 감소한다. 그래도 1943년 이탈리아가 항복하기 전인 7개월 동안 계속 생산하였고 독일이 점령한 후에도 독일군도 만족한 성능이라서 계속 생산하게 된다.
장갑은 강판을 리벳방식으로 조립하여 만들어서 좋은 방호능력은 제공되지 않았고 차량의 높은 크기에 혜택이 있었지만 광대한 사막에서 쉽게 발견될 수도 있었다. 장갑차는 앞 뒤쪽에 두개의 바퀴를 서로 역방향으로 방향을 변경하여 유턴을 그릴 필요 없이 작은 공간만으로도 돌 수 있도록 만들어졌으며 전면 조종석에서는 6단 변속기를 사용하여 차량을 조작하고 조종사 전용 해치가 있어서 손쉽게 탈출할 수 있었다. 엔진은 뒤쪽에 위치해 있었으며 냉각수와 공기 필터를 통해서 사막에서도 엔진을 지킬 수 있었다. 보조 연료 탱크는 적의 공격에 쉽게 노출될 수 있었기 때문에 내부 연료 탱크를 확장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AB40의 원래 무장인 8mm 브레다 기관총 2개는 AB 41로 개조되면서
브레다 20/65 기관포와 브레다 38 기관총으로 변경되었고 무기는 상하 -10 ° + 20 °로 움직일 수 있었고 광학장비를 통해서 적을 조준했다. 포탑은 작은 밸브를 통해서 360 °회전이 가능했다. 환풍구 보호를 위해서 직사각형의 판을 포탑에 2개 박아 놓았으며 무전기는 Marelli RF 3 M 38W를 사용, 조종실 오른쪽에 장착하였고 안테나는 7미터 길이였으며 차량은 25~35킬로미터까지 통신할 수 있었다. 일부 차량은 RF 2 CA 무전기를 갖추고 있었다.
최초의 실전 투입이다. 1941년 10월에 카발레리아 3소대와 함께 리비아로 보내진다. 1941년 후반에 각 기갑 사단에 정찰 차량으로 사용하도록 명령한다. 하지만 보병사단에도 배치되기도 하였다. 1942년에는 카발레리아 3사단,
아리에테 사단, 트리에스테 사단에 각각 공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