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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2010 벤쿠버 올림픽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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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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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2
미정
2046
미정
* 1940, 1944년 올림픽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
역대 하계올림픽 / 역대 하계패럴림픽 / 역대 동계패럴림픽
Citius, Altius, Fortius! - Communiter 더 빠르게, 더 높게, 더 힘차게! - 다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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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fff 제21회 동계올림픽 경기대회
XXIes Jeux olympiques d'hiver
XXI Olympic Winter Games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대회
Olympic Winter Games Vancouver 2010
Les Jeux olympiques d’hiver de 2010}}}
파일: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로고.svg
파일:external/colorlib.com/2010_vancouver-olympics2.jpg
대회기간 2010년 2월 13일 ~ 3월 1일[1]
개최국 캐나다/ 밴쿠버
슬로건 With glowing hearts
Des plus brillants exploits[2]
(빛나는 마음으로
가장 위대한 업적)
마스코트 미가, 콰치, 묵묵, 수미[3][4]
주제가 One Dream
참가국 82개국
참가선수 2,576명
경기종목 15개 종목 - 86개 세부 종목
개회선언 미셸 장
캐나다 총독
선수 선서 헤일리 위켄하이저
아이스하키
심판 선서 미셸 베롤
성화점화 카트리오나 르메이 동
스티브 내쉬
낸시 그린
웨인 그레츠키
개·폐회식장 BC 플레이스

1. 개요2. 대회 상징
2.1. 엠블럼2.2. 마스코트2.3. 메달 디자인
3. 유치4. 종목5. 개·폐막식6. 대회 진행
6.1. 1일째 (2월 12일)6.2. 2일째 (2월 14일)6.3. 3일째 (2월 15일)6.4. 4일째 (2월 16일)6.5. 5일째 (2월 17일)6.6. 6일째 (2월 18일)6.7. 7일째 (2월 19일)6.8. 8일째 (2월 20일)6.9. 9일째 (2월 21일)6.10. 10일째 (2월 22일)6.11. 11일째 (2월 23일)6.12. 12일째 (2월 24일)6.13. 13일째 (2월 25일)6.14. 14일째 (2월 26일)6.15. 15일째 (2월 27일)6.16. 16일째 (2월 28일)6.17. 17일째 (3월 1일)
7. 메달 집계8. 명경기9. 사건10. 논란
10.1. SBS 단독 중계 논란
10.1.1. 제갈성렬의 해설 자질 논란
10.2. 그 외
11. SBS 중계진12. 기타

[clearfix]

1. 개요


2010년 2월 14일부터 3월 1일까지 캐나다 밴쿠버에서 개최된 제21회 동계올림픽. 총 82개국에서 2629명의 선수가 참가하였다. 캐나다에서는 1988년 2월에 열렸던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이후 22년 만에 개최한 동계올림픽으로, 1976 몬트리올 올림픽까지 포함하면 3번째로 개최한 올림픽이다.

2. 대회 상징

2.1. 엠블럼

파일: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로고.svg 파일:2010 밴쿠버 동계패럴림픽 로고.svg
<rowcolor=#ffffff>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엠블럼 2010 밴쿠버 동계패럴림픽 엠블럼

2.2. 마스코트

파일:Miga,_Quatchi,_Sumi_and_Mukmuk.svg.png
<rowcolor=#ffffff>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총 4명의 마스코트가 있다. 미가(전설의 바다곰. 형상은 곰+범고래)와 콰치(사스콰치), 수미( 패럴림픽)와 무크무크(사이드킥) 등이 있으며 모두 같은 날 발표되었다.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마스코트가 동시에 발표된 것은 물론 같이 모습을 보이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공홈에 들어가보면 알 수 있듯이 얘네들 귀여움이 장난 아니다. 이는 이들을 그린 사람들 Meomi(미오미)가 원래부터 귀여운 캐릭터를 만드는 디자이너 듀오라서...[5][6]

파일:external/quatchiwatch.files.wordpress.com/quatchimeomituckcrop.jpg

홈 스테이 프로그램에 쓰인 그림.

파일:external/farm5.static.flickr.com/4319487705_5dbd5b0309.jpg

매표소 ( 다른 사진)

파일:external/quatchiwatch.files.wordpress.com/quatchizamboni2.jpg

파일:external/farm5.static.flickr.com/4362224382_90fa77f503.jpg

이 모든 것을 주도한 건 바로 디자인 총감독으로 참여한 레오 오브스트바움(Leo Obstbaum)이다. 그는 이번 올림픽의 배경 그림은 물론 포스터, 픽토그램, 성화봉, 메달 등 모든 분야의 디자인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들어가보자. 2009년 8월에 세상을 떠났다.



Leo and colleague working hard on perfecting the mascot plush toys(왼쪽이 레오).

관련 상품도 잘 팔렸고 폐회 이후에도 인기가 좋은 편이다. 성공적인 올림픽 마스코트를 꼽으면 반드시 꼽힐 정도.

2.3. 메달 디자인

파일:밴쿠버 동계올림픽 메달.jpg
<rowcolor=#ffffff>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메달
파일:밴쿠버 동계올림픽 메달 2.jpg
<rowcolor=#ffffff>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메달

3. 유치

캐나다올림픽위원회 내에서 밴쿠버, 퀘벡( 몬트리올), 캘거리 중에서 2차투표에서 밴쿠버가 결정되었다.

동계올림픽 개최에 나선 도시는 밴쿠버(캐나다), 평창군( 대한민국), 잘츠부르크( 오스트리아), 베른( 스위스), 안도라라 라벨라( 안도라), 하얼빈( 중국), 자카( 스페인), 사라예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7] 등이었다.

이 중 IOC에 의해 선정된 최종후보지는 밴쿠버, 평창, 잘츠부르크, 베른이었지만, 스위스 내부의 국민투표에서 베른 시민의 대다수가 거부함에 따라 베른은 자진 포기했다.

2003년 7월 2일 체코 프라하에서의 제115차 IOC총회에서 최종 결정되었는데......
1차 투표 결과 득표수
평창 51표
밴쿠버 40표
잘츠부르크 16표
무효 4표

이때 1차 투표에서는 한국의 평창이 51표, 캐나다의 밴쿠버가 40표,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가 16표를 받아 유효표 과반(54명/107명)을 불과 세 명 남겨놓은 상황이었다. 평창의 우세는 당시 예측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IOC 자크 로게 위원장이 잠깐 놀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거의 선정된 것 같은 반응이 나왔지만... 결과는 뒤집혔다.
2차 투표 결과 득표수
평창 53표
밴쿠버 56표
무효 3표

이어 열린 2차 투표에서 잘츠부르크의 표를 흡수한 밴쿠버가 56표로서 53표에 그친 평창을 제치고 유효표 과반(55명/109명, 탈락한 오스트리아 IOC 위원 한 명+무효표 안 던진 한 명)을 넘겨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평창의 3수 전설이 시작되었다.[8]

평창이 본 경선에서 탈락하자 평창이 지역구였던 김용학과 당시 강원도 지사였던 김진선은, 김운용 IOC 부위원장이 투표 당시 ' 평창군을 찍지 마라\'라고 로비를 했다는 의혹을 강력하게 제기하였다. 즉, 김운용이 2014년 무주 개최를 밀어주기 위해 위원들에게 로비를 했다는 것이다.[9] 혹은 사마란치 이후 자크 로게와의 권력투쟁에서 밀리면서 자신의 IOC부위원장을 지키기 위해서 평창 유치전에 소극적이었다는 버전도 있다.

결국 무주는 평창의 3수 도전과 함께 2014년[10], 2018년 올림픽 유치에도 결국 나오지 못했다. 유인촌 문화체육부장관이 '평창의 2018 동계올림픽 유치 여부를 확인할 때까지 국제대회 유치는 없다\'고 발언하면서 그 꿈은 더 멀어지게 되었다.[11] 게다가 이젠 평창이 동계 올림픽을 유치해버렸으니... 지못미. 하지만 사실 무주에서 동계 올림픽 유치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고 한다. 당시 규정으로는 알파인 활강 스키 종목을 치르기 위해서는 상당히 높고 급경사를 가진 경기장이 필요 한데, 이러한 경기장 규격을 만족 시키기 위해서는 무주의 지형 특성상 산 꼭대기에 50층 높이의 건물을 세워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조건 때문에 불가능했다는 것. 이후 IOC에서 규정이 개정되어 낮은 경사로를 2번 뛰어 합산 거리로 기록을 측정 할 수 있게 변경 되었지만,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해 강원도가 그동안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 부어 조성한 알펜시아 리조트 때문에라도 무주의 동계 올림픽 유치는 사실상 먼 이야기가 된 셈.[12] 저런 시설을 평창과 무주 두 군데 중복투자를 하는 것은 어려우니... 어찌되었든 평창이 유치에 성공하면서 무주는 동계 올림픽 유치는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되었고, 대신 보상 차원에서 태권도 공원 유치 사업의 유력한 후보지로 꼽히던 경주나 춘천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던 무주군이 태권도 공원을 유치하는데 성공하였다.[13]

4. 종목


시간은 캐나다 현지 날짜이다. 괄호 안에 있는 것은 세부종목 개수. 기상상황으로 인해 특히 스키 부분에서 원래 계획된 것과 다른 일정으로 치러졌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때 정식 종목이 된 종목들이 모두 들어가있으며 거기에 프리스타일 스키 세부종목으로 스키크로스가 신설되었다. 여자 스키점프도 들어갈 듯 말 듯하였으나 결국 소송에서 패배함으로서 들어가지 못 하였으나, 결국 4년 후인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대한민국 선수들의 참가종목이다. 한국 대표팀의 경우 선수단 46명(남 27, 여 19)+경기임원 18명+선수단장을 합해 총 83명이었다.

* 스피드 스케이팅 16명
* 쇼트트랙 10명
* 피겨 스케이팅 2명
* 스키 총 10명
* 루지 1명
* 봅슬레이 4명
* 스켈레톤 1명
* 바이애슬론 2명

15개 종목 중 12개 종목에 출전하여 당시까지 한국의 동계 올림픽 참가 사상 가장 많은 종목에 가장 많은 선수가 출전했다. 봅슬레이는 역대 최초 출전이며 강광배 선수는 썰매 전종목 올림픽 출전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봅슬레이는 원래 2인승도 출전이 가능하다고 통보가 왔었으나 오스트리아의 생떼 막장 행정으로 인해서 종합 랭킹에서 밀리게 되었고 결국 4인승만 출전하게 되었다. 노르딕복합, 아이스하키, 컬링은 출전권을 얻지 못해 불참.

대회 전의 목표는 금메달 6개 이상 획득을 통한 국가별 종합순위 10위권 이내 유지였다.

지난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는 금 6, 은 3, 동 2의 성적을 거두었다.

결론적으로 금 6, 은 6, 동 2의 성적을 거두었다. 세부종목별로는 쇼트트랙 금 2(남 1000, 남 1500), 은 4(남 500, 남1500, 남계주 5000, 여 1500), 동 2(여 1000, 여 1500)/스피드 스케이팅 금 3(남 500, 남 10000, 여 500), 은 2(남 1000, 남 5000)/피겨 금 1(여자 싱글).

금메달 개수를 우선하는 국제식 계산으로는 5위, 전체 메달로 순위를 매기는 미국식 방식으로는 14개로 종합 7위다. 참고로 메달 순위 집계 방식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2008 베이징 올림픽 때부터 문제가 되어왔다고 한다.)

어쨌든 한국은 금메달 숫자는 전 대회와 똑같지만 메달 수(14개)로 보나 성적(국내식으로 하면 5위)으로 보나 역대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였다.

초반 스피드 스케이팅의 선전으로 예상보다 많은 메달을 딸 것 같아보였지만(금메달 10개라는 설레발이 나오기까지 했다) 여자 쇼트트랙의 경우 중국의 벽에 막혀 예전보다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지만, 실제로 노골드에 그치면서 큰 아쉬움을 남겼다. 여자 계주의 경우 다 잡은 금메달을 막판의 제임스 휴이시의 해외언론에서도 애매한 답변을 내놓을 정도로 이유를 모를 판정으로 놓쳐 더욱 안타까움을 더했다. 다행히 남자 쇼트트랙의 경우는 무난하게 목표를 달성하였고 무엇보다 스피드 스케이팅의 예상을 넘은 큰 쾌거로 한국이 더 이상 "쇼트트랙만 잘 하는 나라"가 아닌 "빙상 강국" 으로 도약했음을 알렸다. 스피드스케이팅 3남매(이승훈, 이상화, 모태범)의 금메달과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부문 금메달을 합치면 빙상 그랜드슬램이라고 하는데, 빙상 3개 종목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낸 것. 한 동계 올림픽 대회에서 이런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나라는 한국, 미국, 캐나다밖에 없다.[14]

하지만 '눈과 얼음의 축제'인 동계올림픽에서 여전한 설상(눈)종목의 부진은 다음 과제로서 남겨졌는데, 썰매 종목에서 사상 첫 출전에서 결선 진출을 이뤄낸 봅슬레이 4인조 대표팀의 성과는 결코 작지 않은 진전이었으며 향후 전망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였으며[15] 빙상 종목이 아닌 동계올림픽 종목들에 대해서도 걸맞은 투자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5. 개·폐막식

6. 대회 진행

한국을 비롯하여 캐나다, 미국, 중국 등은 동계올림픽 참가 사상 가장 많은 금메달을 얻으며 분위기가 좋았던 반면, 러시아, 일본, 이탈리아, 핀란드 등은 부진한 성적에 울상.

개최국 캐나다는 금메달만 14개를 획득하여, 이전에 2차례 치렀던 올림픽에서 노골드 징크스를 단번에 깨뜨릴 수 있었다. 금 14, 은7, 동5로 총 26개의 메달을 획득. 단일 동계 올림픽에서 한 국가가 14개의 금메달을 얻은 것은 사상 최고의 성적이었다. 금메달 수 기준으로 캐나다가 종합 1위를 차지하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처럼 총메달을 기준으로 메달 순위를 매기던 캐나다 언론에서는 금메달을 우선시하여 메달 순위를 집계하면서 캐나다가 종합 우승을 했다고 한다. 빙상, 썰매, 스키 종목에서 고루 강세를 보였지만, 아이스하키에서 남녀 모두 금메달을 딴 것이 캐나다에서는 가장 기쁜 일이었다. 시드니 크로스비의 연장전 골든골로 미국을 꺾은 남자 아이스하키가 대미를 장식했다.

미국은 금9, 은15, 동13개로 총 37개의 메달을 얻었으며 메달총계 기준으로는 1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미디어에서는 자국에서 열린 1932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이후 78년만에 종합 우승했다고 엄청나게 자랑스러워했다.[17] 아폴로 안톤 오노는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은 없었지만, 은1과 동2을 추가하여 동계올림픽 통산 메달 8개를 기록, 미국 동계올림픽 참가 선수 중 가장 많은 메달을 딴 것도 화제였다. 노르딕 복합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그동안 유럽 국가들이 주도하던 노르딕 스키에서 미국 선수가 사상 처음으로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도 주목을 받았다.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는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미라이 나가수가 종합 4위를 차지했다.

중국은 금메달 5개를 따며, 동계 올림픽 참가 사상 처음으로 톱10에 진입했다. 여자 쇼트트랙 4개의 금메달을 싹쓸이하고, 피겨 스케이팅에서도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땄다. 프리스타일 에어리얼 강국답게 여기서도 메달을 따고, 처음 참가한 여자 컬링에서도 동메달을 얻었다.

지난 대회 금2 은8 동9로 부진한 노르웨이[18] 금메달 9개, 은메달 8개, 동메달 6개로 다시 부활한 모습을 보여줬다.

반면에 러시아는 이례적으로 크게 부진하여 차기 개최국으로서의 체면도 서지 않게 되었다. 소련 시절까지 합쳐서 금 3, 은 5, 동 7로 역대 최소 금메달 수를 기록했고, 종합 11위를 기록하여 처음으로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성적 부진에 화가 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동계올림픽 예산 사용내역을 감사할 것을 지시하는가 하면, 체육부 장관 해임까지 거론될 정도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 그래서 2014년에 그딴 짓 벌인 거냐?

일본 피겨 스케이팅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은3, 동2을 땄다. 총 메달 수는 금메달 1개만 땄던 전 대회에 비해 늘어나서 본전은 뽑았다는 분위기도 있지만, 기대에 훨씬 못미치는 성적이라는 것이 중론. 자국에서 열렸던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이후 가장 많은 종목에 가장 많은 선수단을 파견했으나, 선수단 규모와 참가종목 수가 적은 한국 중국에 밀리면서 "종목은 다양한데 최고는 없다"는 자조 섞인 반응도 나왔다. 일본은 그전까지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은 적지만, 다양한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에 총 메달 획득 개수만큼은 한국과 중국보다 많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이번 대회를 기점으로 총메달 개수마저 한국과 중국에 밀리게 되었다. 많은 선수를 파견한 만큼, 다양한 종목에서 큰 기대를 했으나, 아쉬운 차이로 메달을 놓친 경우가 많았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에서 4위를 하여 기대를 모았던 미나가와 겐타로는 이번에는 미끄러지면서 실격되어 버렸고, 미나가와의 부인이자 프리스타일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여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히던 우에무라 아이코는 이번에 4위로 메달을 놓쳤다. 노르딕 복합과 스키점프 단체전에서도 메달이 유력시되기도 했으나, 각각 6위, 5위로 메달을 못 땄다. 피겨 스케이팅에서는 아사다 마오가 은메달을 딴 것이 아쉽다고도 하지만, 김연아의 실력이 워낙 넘사벽이다 보니 체념하는 듯 하고, 대신 다카하시 다이스케가 남자 싱글에서 처음으로 메달을 딴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스피드 스케이팅에서는 남자 500m에서 은, 동을 한꺼번에 따고, 여자 단체 추발에서 예상 외의 은메달을 딴 것으로 만족하는 분위기.[19] 다만, 일본 선수가 메달을 딸 때,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딴 경우가 특히 두드러지게 보여 분위기가 더 저조했다고도 한다. 일본 선수가 시상대에 오른 것이 4차례인데[20], 그 중 2차례는 금메달을 한국 선수들이 얻어 시상식에서 애국가가 울러퍼졌다.

이탈리아는 지난 대회보다 힘이 빠져 금 1, 은 1, 동 3으로 16위를 기록했다. 핀란드는 두 대회 연속으로 노 골드를 기록했다.

6.1. 1일째 (2월 12일)

6.2. 2일째 (2월 14일)

6.3. 3일째 (2월 15일)

6.4. 4일째 (2월 16일)

6.5. 5일째 (2월 17일)

6.6. 6일째 (2월 18일)

6.7. 7일째 (2월 19일)

6.8. 8일째 (2월 20일)

6.9. 9일째 (2월 21일)

6.10. 10일째 (2월 22일)

6.11. 11일째 (2월 23일)

한국 선수 출장 경기 없음

6.12. 12일째 (2월 24일)

6.13. 13일째 (2월 25일)

6.14. 14일째 (2월 26일)

올림픽에서만 본인이 세웠던 세계신기록들을 세 번이나 갱신하며 여자 싱글 피겨스케이팅 사상 최초로 쇼트프로그램 75점대, 프리스케이팅 135점대, 140점대, 145점대, 150점대, 총점 200점대, 205점대, 210점대, 215점대, 220점대 225점대를 달성한 선수가 되었다.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김연아 선수는 세계 신기록을 달성했다. 점수는 쇼트, 프리, 총점 모든 분야에서 월드 베스트. 2위인 아사다 마오와의 점수 차이가 23.06점이다.
곽민정 선수의 순위도 김연아를 제외한 역대 한국 피겨 역사상 최고 순위.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6.15. 15일째 (2월 27일)

6.16. 16일째 (2월 28일)

6.17. 17일째 (3월 1일)

7. 메달 집계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메달 집계
최종 집계
<rowcolor=#00a551,#ffffff> 순위 국가 메달 합계
<rowcolor=#000000>
1
[[캐나다|]][[틀:국기|]][[틀:국기|]]
14 7 5 26
2
[[독일|]][[틀:국기|]][[틀:국기|]]
10 13 7 30
3
[[미국|]][[틀:국기|]][[틀:국기|]]
9 15 13 37
4
[[노르웨이|]][[틀:국기|]][[틀:국기|]]
9 8 6 23
5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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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스위스|]][[틀:국기|]][[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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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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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프랑스|]][[틀:국기|]][[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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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틀:국기|]][[틀:국기|]]
0 1 0 1

7.1. 대한민국 동계올림픽 성적

■ 2010 21회 벤쿠버 동계올림픽 (2010 Winter Vancouver Olympics)

대한민국은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2개로 종합 5위의 성적을 거뒀다. 역대 대한민국의 동계올림픽 최고 성적. 앞선 대회에서도 금메달 6개를 따냈지만 모두 쇼트트랙에서 따냈고 전체 메달을 따져도 동메달 1개를 제외하곤 나머지가 모두 쇼트트랙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는 그런 쏠림현상이 완화되면서도 더 좋은 성적을 거뒀다.

8. 명경기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는 스캔들로 얼룩졌던 전전 대회와 지루한 경기로 끝났던 전 대회와는 달리 피겨 스케이팅에서 여러 명경기들이 펼쳐졌다. 당시 캐나다 및 북미의 피겨스케이팅 열기는 다른 동계올림픽 종목들에 밀리며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이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조아니 로셰트가 인터뷰에서 " 캐나다에서는 비인기 종목인 피겨 스케이팅에 대한 호응이 한국에서는 커서 놀랐다"고 하였을 정도다. 그렇기는 하지만 개최국인 캐나다가 페어 종목을 제외한 세 종목에서 메달권을 기대해 볼 수 있었기에 나름 주목을 받았다.

그간 피겨 스케이팅의 불모지였던 한국이지만 벤쿠버 올림픽만큼은 피겨 경기가 큰 관심을 받았는데,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나온 피겨천재 김연아 선수 덕분이었다. 당시 김연아 선수의 훈련지가 캐나다에 있었고 캐나다 출신인 브라아언 오서 코치의 지도를 받았기에, 캐나다 언론에서도 김연아에게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24]

피겨 스케이팅 남자 싱글의 경우 '별들의 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우승 후보가 많아서 그 누구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엔트리만 해도 전시즌 월드챔피언인 에반 라이사첵, 수식어가 필요 없는 전설 예브게니 플루셴코, 토리노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스테판 랑비엘, 일본의 다카하시 다이스케, 캐나다의 패트릭 챈, 미국의 조니 위어, 2007 세계선수권 우승자인 브라이언 주베르,세계 랭킹 1위 토마스 베르너, 그랑프리 파이널 준우승자 오다까지 있어 포디움을 예상하기도 힘들었다. 월드챔피언 라이사첵 조차 스포츠 도박사이트의 배당률이 1:6에 달했을 정도였으니 그만큼 남자싱글은 별들의 각축전이었다.

결과적으로 남자 싱글에서는 수많은 별들 중 미국의 에반 라이사첵이 왕좌에 올랐다. 전설 예브게니 플루셴코백금메달 은메달 리스트가 되었으며 일본의 다카하시 다이스케가 동메달 리스트가 되면서 일본 남자 싱글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을 얻었다.

여자 싱글에서는 대부분이 전 시즌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우며 피겨 여왕으로 불린 김연아의 압도적 우세를 점쳤다. 일본 빼고 특히 김연아는 올림픽시즌 초부터 자신이 세운 세계신기록을 자신이 갈아치우며 전설을 쓰고 있었다. 전세계적으로 김연아의 올림픽 우승에 대해 이견이 없었지만, 유난히 일본에서는 아사다 마오의 우승을 점치는 설레발이 많았고 한국의 기자들은 클릭수 유발 및 흥미와 긴장감 조성을 위해 이를 퍼다 나르며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보란듯이 여자 싱글 올림픽 쇼트에서 김연아 선수가 1위에 오르자 북미 언론이 걱정한 유일한 것은,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이래로 여성 쇼트 1위가 우승을 하지 못한 징크스를 김연아가 깰지 말지였다.

결국 여자 프리에서 김연아가 종전에 자신이 세웠던 세계신기록을 또 예상대로 경신하며 압도적인 기량으로 올림픽 챔피언이 되었다. 쇼트, 프리, 총점 모두 신기록을 세운 완벽한 1위였다. 김연아의 총점은 228.56점으로 2위인 아사다 마오보다 무려 23점이나 높은 점수였다. 이 대회에서 보여준 전설적인 연기로 김연아는 단순히 피겨퀸의 자리를 넘어 피겨 전설[25]이 되었으며, 김연아의 프리프로그램인 '조지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은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역사에 길이 남을 프로그램이 되었다. 자세한 것은 김연아 선수 문서 참조.

동메달을 차지한 캐나다 조아니 로셰트는 1988년 캘거리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였던 엘리자베스 맨리 이후 처음으로 조국 캐나다에 올림픽 여자 싱글 메달을 가져다준 선수가 되었다. 김연아 선수와 함께 출전한 한국의 곽민정 선수는 16세라는 어린 나이에도(이 대회에 참가한 모든 피겨 스케이터들 중에서 두번째로 어린 나이였다) 침착한 연기를 선보여 13위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기록했다. 김연아와 곽민정 이전에 한국이 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 거둔 성적 중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당시 정성일 선수가 남자 싱글에서 기록한 17위를 뛰어넘은 역대 최고 성적이다.

아이스 댄스에서는 홈팬들의 열광적인 응원 속에 캐나다 테사 버츄 / 스캇 모이어 조가 북미 더비 라이벌인 미국의 메릴 데이비스 / 찰리 화이트 조를 넘어 금메달을 조국에 보탰다. 아이스 댄스 종목에서 전통적 강자인 유럽이 아니라 북미가 최초로 차지한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게다가 테사 버츄와 스캇 모이어는 둘 다 이십대 초반으로 아이스 댄서로서는 어린 나이에 올림픽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이 올림픽 이후로 버츄/모이어와 데이비스/화이트는 4년 동안 세계선수권에서 1, 2위를 번갈아 해먹으며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또 다시 우승을 놓고 겨루게 되었다.

페어에서는 중국 선쉐 / 자오훙보 조와 팡칭 / 퉁젠 조가 나란히 금메달과 은메달을 획득하며,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사상 중국도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지난 두 번의 올림픽에서 두 개의 동메달에 그친게 전부였던, 쉔/자오 부부는 은퇴까지 번복하고 돌아왔으며 결국 중국에 금메달을 안겼다. 독일 알리오나 사브첸코 / 로빈 졸코비 조가 동메달을 따고, 러시아의 유코 카바구티 / 알렉산더 스미르노프 조가 4위를 기록했다. 이로써 중국은 신흥 페어 강국의 자리에 오른 반면, 러시아( 소련 포함)의 12회 연속 올림픽 페어 스케이팅 금메달 기록은 끝을 맺었다.

개최지가 북미인 걸 감안해도 피겨 스케이팅에서 동구권 및 유럽이 유난히 부진하고, 북미와 아시아 등 비유럽 국가들이 선전한 대회였다.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종목에서 동구권 및 유럽 국가들이 금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한 것은 1960 스쿼밸리 동계올림픽 이후 50년 만의 일이다. 그래도 1960년에는 은메달은 모두 동구권 및 유럽 선수들이 가져갔지만, 이번에는 은메달도 남자 싱글에서 러시아 선수가 얻은 것이 전부였으며, 페어에서 독일, 아이스 댄스에서 러시아가 동메달을 따서 동구권 및 유럽 국가들은 피겨 스케이팅에서 은메달 1개와 동메달 2개를 가져가는 데 그쳤다. 특히 피겨스케이팅이 관심을 잃어가고 있는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아직 피겨스케이팅에 대한 관심이 상당한 러시아의 충격이 컸을 것이다. 불과 4년 전 올림픽에서 피겨 스케이팅 종목에서만 금메달을 3개나 쓸어간 데 비해 이번에는 금메달은 없고 은메달 1개와 동메달 1개에 그친 것이다.

전반적으로 유럽 국가들이 부진했던 반면, 아시아 국가들은 가장 화려한 성적을 거두었다. 피겨 스케이팅 변방국에 불과했던 대한민국은 올림픽에서 딴 최초의 피겨스케이팅 메달을 금메달로 장식했다. 4년 전 출전권을 얻지 못해 토리노올림픽에 단 한 명의 피겨스케이터도 내보내지 못했던 나라에서 올림픽 챔피언이 탄생한 것이다. 한편 그동안 은메달과 동메달만 땄던 중국도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첫 금메달의 감격을 맛봤다. 전대회에서 처음으로 여자 싱글에서 금메달을 땄던 일본은, 이번에는 금메달은 따지 못했으나 여자 싱글에서 은메달을 따고, 남자 싱글에서 사상 첫 메달을 획득하였다. 캐나다는 아이스 댄스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으며, 여자 싱글의 조아니 로셰트는 대회 직전에 모친을 잃는 슬픔 속에서도 선전을 펼쳐 감동을 주기도 했다. 이와 같이 비유럽권 국가들이 피겨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외신들도 유럽 국가의 부진과 아시아 국가의 선전을 조명했다.

총평을 내리자면,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의 뒤를 이어 피겨스케이팅 역사에서 좋은 의미로 두고두고 회자될 올림픽이다. 남자 싱글을 제외한 세 종목에서 역대급 퍼포먼스들이 나왔으며, 남자 싱글도 화려한 엔트리로 별들의 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출중한 선수들의 경기를 볼 수 있었다. 특히 네 종목 모두 골고루 화젯거리[26]가 많았던 점도 특징이었다. 선수들의 기량 또한 전 대회보다 상향화된 대회였다.

9. 사건

10. 논란


정확하게는 두 나라 해설 모두 미국 조니 위어 선수를 꼬집어 말한 것이다. 사실 이 선수는 예전부터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이미지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선수였다.[33] 여성스러움은 컨셉이 아니라 빙판에서 내려와서도 사람이 똑같으며 시즌 갈라쇼에 레이디 가가를 들고 나오는 용자. 이런 자유분방한 태도 때문에 심판들에게 미운 털이 박힌 걸로도 유명하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점수가 너무 낮다는 논란이 나왔고 납득하지 못할 점수에 야유하는 관중들을 키크존의 선수 본인이 진정시켜야 했다. 아쉽지만 나이가 있어서 이번 올림픽이 마지막일 텐데 안타까울 뿐이다.

파일:external/farm3.static.flickr.com/4039595636_1f9f5a0792.jpg
이번 올림픽에 입고 나온 쇼트 프로그램 코스튬. 프리 프로그램에선 좀 정상적인 옷을 입고 나오나 싶더니 키크존에서 머리에 꽃 꽂은 남자가 되면서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국제적 논란이 될 수도 있었지만 위어 선수 본인이 기자회견에서 다소 불만을 표시하는 것 외에는 더 일이 커지지 않고 슬쩍 넘어갔다. 실수 없이 잘했어도 아쉽게 포디움엔 못 들어서... 라기보다는 나중에 터진 예브게니 플루셴코의 신채점제에 대한 불만제기 건[34]이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의 최대 이슈로 부상해버리는 바람에 이 사건은 묻혀버린 듯.

한국은 쇼트트랙 중국팀과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9바퀴 돌 때까지 중국에 2위로 밀렸다 앞서간 한국은 다시 중국에 선두를 내줬지만 4바퀴를 남기고 재역전에 성공해 결국 결승선을 1위로 통과했는데 5바퀴 남은 가운데 터치를 받은 김민정이 선두로 코너를 돌다가 오른쪽 팔이 바짝 뒤따라 오던 중국 쑨린린의 얼굴에 부딪친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 자연스러운 움직임 속에서 이뤄졌다고 볼 수도 있으나 심판진의 지적으로 인해 실격 사유가 되었다. 손이 얼굴을 치거나 얼굴 부위까지 올라와서 시야를 가리는 것은 규정상 실격 사유라고 한다. 실제로 날도 부딪쳤긴 하지만 심판진이 지적한 것은 손 부분이었다.[35]

결국 여자 계주에서 중국에게 자리를 내주자 태극기를 들고 빙판을 돌면서 기쁨의 눈물을 쏟았던 한국 선수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렸고 김기훈 쇼트트랙 대표팀 감독 등 코치진은 격하게 항의하기까지 했다.

방송에서 계속 중국 선수가 얼굴에 피가 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는 중국 선수들끼리 금메달 확정 후에 좋아하다가 일어난 사건이며 애당초에 피가 난 선수는 문제가 된 쑨린린(111번) 선수가 아닌 장후이(113번)다. 결론은 팀킬 아닌 팀킬.

해외에서도 도저히 어떻게 말할 처지가 안되는지 애매하게 평가를 하고 있으며 출전했던 중국 선수들조차 "왜 실격인진 모르겠지만 반칙이 있었던 것 같다"라고 할 정도로 정당한 싸움이었다고 하는데 왜 혼자서 실격 처리했는지는 아직도 의문.

그리고 더 석연치 않은 점은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 때 김동성의 금메달을 아폴로 안톤 오노에게 넘긴 제임스 휴이시 심판이 이 시합의 심판을 맡았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계속 발굴(?) 중이라고 할 정도로 그가 내린 석연치 않은 한국 선수 실격 판정이 속속 알려지고 있다.

휴이시 심판은 자신이 심판을 맡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고 예정대로 여자부 1000m 결승까지 심판을 볼 것이라 했었으나 마지막 날인 27일 결국 독일 심판으로 교체되었다.[36]

여기서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이 같은 날 열린 중국이 금메달 따는 게 확실했던 프리스타일 여자 에어리얼 종목에서 호주 선수에게 통한의 일격을 당하면서 금메달을 놓쳤다. 쇼트트랙의 그 휴이시 심판의 국적은 호주이기 때문에 혹자는 이걸 보고 '이것이 올림픽'이라고 하기도... 어쨌거나 이 일 덕분에 중국은 여자 쇼트트랙 모든 종목에서 금메달을 싹쓸이했으며 2관왕 3관왕 선수를 배출했다.[37]

동계올림픽 당시 여자 대표팀 멤버였던 김민정 선수는 이 일에 여러 모로 상처를 많이 받았는지 올림픽이 끝난 후 있었던 인터뷰에서 "휴이시 심판에게 복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휴이시 심판을 욕하면서도 자신들을 응원해준 네티즌들의 도움이 위로가 많이 되었다고. 그리고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결국 설욕에 성공했다.[38]

10.1. SBS 단독 중계 논란

2010년 경기부터의 올림픽 중계권을 독점구매한 SBS로 인해서 KBS, MBC 등은 동계올림픽 방송을 못하게 되었다. 실제로 개막식 날 MBC는 메인뉴스에서 개막식 관련 소식은 단 15초만 보도하였다. KBS와 MBC가 방송권 공유로 낸 방송통신위원회에 낸 분쟁조정신청을 SBS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제 방통위도 더이상 개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KBS, MBC가 소송을 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SBS는 현지 중계권 독점만이 아닌 영상 전송마저 거부하고 있으며 SBS 측은 "KBS, MBC는 지금까지 협상 태도가 무성의했고 이제 와서 무임승차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자세한 것은 이것을 참조하자. 김연아 선수 경기를 단독 중계하기 위해서 그렇다는 주장도 있다.[39]

올림픽 팬들은 KBS, MBC 보지 말고 SBS에 채널을 고정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히려 잘 됐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동안 대형 스포츠 행사를 중계할 때 방송 3사가 같은 경기를 중계함으로서 벌어지는 전파 낭비 논란과 그에 의한 시청자들의 프로그램 선택권 박탈 등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논리인데 그렇다고 해서 한 방송사가 대형 스포츠 행사의 중계권을 독식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교차중계/순환중계라는 윈윈 대안도 있음을 알아두자.

그렇게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이목이 집중되었지만, 중계 내내 크고 작은 중계사고가 있었다.
이렇듯 논란이 많았던 단독 중계였지만 SBS(자회사 SBS Sports 포함)는 이후 역량이 쌓이면서 동계 스포츠 중계의 강자로 군림하게 된다.

그후 JTBC가 단독으로 올림픽 중계권을 얻어 독점으로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을 중계해 2010년의 SBS의 상황이 다시 일어날 수 있지만 JTBC는 올림픽 중계 할수 있는 역량이 없고 단독으로 중계했다가는 SBS 이상으로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다시 중계권을 재판매할 가능성이 높다.

10.1.1. 제갈성렬의 해설 자질 논란

스피드 스케이팅 SBS 해설위원을 맡고 있는 제갈성렬이 '샤우팅 해설'로 논란이 되었다. 참고. 그의 해설에 대해선 같이 흥분을 느낄 수 있어서 괜찮다고 보는 사람과 전문적인 내용이 별로 없다고 비판하는 사람 둘로 나뉘었다.

다행히 큰 문제가 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으므로 이대로만 끝났으면 심권호 해설의 사례처럼 '감정적인 해설' 정도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지만 2월 24일에 사고를 한 번에 2개나 일으켰다. 자세한 건 제갈성렬 문서를 참고.

그나마 크라머 선수의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한 걸 순순히 인정했으면 좀 나았겠지만 24일 재방송을 보여주기 전에 스튜디오에서 '실격인 줄 알고 있었으나 심판 판정이 나지 않았기에 자제하고 있었다' 라는 거짓 해명을 하여 추가적인 까임거리를 제공했다.

또한 해명 이후 재방송 때 원래 내용을 덮어씌워서 더 까였고 결국 25일에 자진하차를 했으며 해설 문제도 있지만 기독교드립 덕분에 조계종에서 태클 먹은 게 가장 크다고...

10.2. 그 외

캐나다 공식 중계 방송사인 CTV와 CBC의 폐막식 방송에서 모든 참가국 선수들이 입장하는 장면에 각 세계 선수들을 차례대로 카메라에 담으면서 대한민국 선수들만 아예 하나도 화면에 찍어 내보내지 않는 만행을 저질렀다. 심지어 지네 나라 기수를 수많은 금~은메달리스트들 놔두고 하필 여자 피겨 동메달리스트인 조애니 료셰트를 세워 내보내며 정작 금메달리스트인 김연아는 전혀 코빼기도 안 비췄다. 4년 뒤 러시아와 완전 도찐개찐

11. SBS 중계진

12. 기타



[1] 한국시간 기준. 현지기간이면 하루씩 빼면 된다. [2] 캐나다 국가(國歌)의 가사에서 따왔다. [3] 이 중 묵묵은 올림픽과 패럴림픽 양 대회의 마스코트이다. [4] 2008 베이징 올림픽의 마스코트 다음으로 많은 마스코트이다. [5] 참고로 이 둘은 바다탐험대 옥토넛의 원작자다. 시기상 이게 먼저지만. [6] 출발 드림팀에 나온 내용을 잘못 들은 경우가 있을 텐데, 거기 나왔던 한국인 두 명은 마스코트 인형을 만들었지 마스코트를 만든 게 아니다. [7] 사라예보는 유고슬라비아 하에서 이미 동계를 개최한 바 있다. [8] 참고로 이 때와 같은 1차 투표 유럽 분산 후 2차 투표 유럽 단결 현상은 평창이 두 번이나 떨어지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9] 2010년 올림픽 국제 경선에 앞선 국내 선정과정에서 평창과 무주가 경쟁하였는데, 결국 평창으로 나가기로 결정이 되었다. 무주는 이에 반발하였고 정부 차원에서는 이를 달래기 위해 양해각서를 체결하였다. 즉, '2010년 평창'으로 경선에 떨어진다면, 2014 동계올림픽 무주 개최로 재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10] 평창이 2010년 대회를 유치하지 못하면 무주가 유치전에 뛰어들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으나, 국제스키연맹 실사 결과 무주는 올림픽을 개최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이 판명되어 대회 유치 자체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전북 전주시, 무주군, 익산시, 군산시는 물론 심지어 무주와 접경지인 경북 김천시에서 단체로 항의까지 했지만 애당초 무주는 부적격으로 판명났기 때문에 소용이 없었다. 김천시의 경우 김천-전주철도 건설에 사활을 건 상태였기 때문이다. [11] 이때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이철우 의원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무주가 지역구였던 정세균 의원은 입에 오바로크를 쳤을 정도로 조용했다. [12] 하지만 개정된 규정에도 불구하고 평창에선 가리왕산을 밀어서 스키장을 짓는다는 참으로 놀라운 발상을 실천으로 옮기면서 엄청난 비판받고 있다. 자세한 건 가리왕산 문서 참조. 이 때문에 동계아시안게임 유치 여론이 매우 안 좋다. 일본 삿포로에 줘버리든지 하려면 전국적으로 접근성이 좋은 무주-전주에서 하라고 난리다. [13] 그나마 경주는 한수원 본사 이전+ 문무대왕1터널+ 토함산터널이라는 3종 종합선물세트를 받으면서 묻혔다. [14] 일본은 스피드 스케이팅과 쇼트트랙은 1998년 대회에서, 피겨 스케이팅은 2006년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서 한 대회에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15] 그리고 설상, 썰매 종목은 8년 뒤 모국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16] 이러한 셀프디스 폐막식은 2014 소치 올림픽의 개막식에서 오륜기가 제대로 펴지지 않은 사륜기 사건을 폐막식에서 셀프디스하여 사륜기가 다시 펴져서 오륜기가 되는 형식으로 재현된다. [17] 올림픽 국가순위 집계방식에 대한 기준은 없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우리나라처럼 금메달 수 기준으로 순위를 집계한다. 하지만 사실 애초에 올림픽은 올림픽 출전 선수들 개개인의 경쟁일 뿐 공식적으로 국가순위에 대한 개념은 없다. [18]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금메달 13개로 금메달 수 1위를 한 나라다! [19] 대진운도 상당히 좋았다. [20] 남자 500m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동시에 획득. 모태범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한 바로 그 경기다. [21] 이 당시 모태범은 출전한 3명의 한국 선수들에 비해 국제적인 대회에서의 랭킹이 낮은 데다 500m는 그의 주종목이 아니라서 주목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22] 1차 레이스가 끝나고 빙상을 정리하는 중 잠보니가 고장나서 경기가 1시간 이상 지연되는 사태가 벌어졌고 최악의 상황에서는 경기가 지연될 수도 있었던 상황이 벌어졌다. 어찌어찌 경기가 재개되었으나 좋은 기록을 내기에는 빙질이 매우 떨어진 열악한 상황. 어쩌면 이런 요소들 때문에 상위 랭커보다 다크호스가 금메달을 수상했는지도 모른다. [1차] 레이스와 2차 레이스의 기록을 합산해서 세계기록을 보유한 선수이다. 은퇴한지 4년이 넘었는데 이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이상화의 시상식때 해설위원들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스피드스케이터라고 말했다. [24] 반대로 아사다 마오는 코치가 러시아의 피겨 대모인 타라소바였고 전지훈련지도 주로 러시아였다. 대충 알렉세이 야구딘 예브게니 플루셴코의 구도와 비슷했다고 보면 된다. 야구딘이 북미에서 훈련했고 스타일도 소위 말하는 북미 스타일이었기에 북미 언론이 무척 우호적이었는데, 김연아도 이 경우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25] 김연아는 2008-2009시즌, 여자 선수로서는 최초로 남자선수의 영역대였던 총점 200점을 깬 시점에서 이미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거기에 밴쿠버 올림픽 우승으로 화룡점정을 찍은 것이다. [26] 남자 싱글은 별들의 전쟁이었고, 여자 싱글은 한일전이었으며(해외 해설자들도 경기 시작 전 한일 양국의 역사적 배경을 들어 설명했다), 페어는 중국 vs 중국, 아이스 댄스의 경우 캐나다 vs 미국이었던 데다 두 조 모두 코치가 같아서 함께 훈련하는 등 비화가 많았다. [27] 2인승 때도 전복 사고가 일어났는데 하물며 그것보다 크기가 더 큰 4인승에서 안 일어나라는 법도 없다. 애초에 개조했던 이유가 2인승에서 전복 사고가 나왔기 때문에 4인승에서는 속출할 거라 예상하고 코스를 개조했다. [28] 2인승에서도 똑같은 불안요소가 생겼다. 결국 DNF가 속출. [29] 당연한 거지만 검열삭제가 연상되는 장면이다. [30] 심지어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에도 저 머리를 하고 등장하였다. 저 머리가 맘에 들었나 보다. 그러나 마지막에 나갔던 2018 평창 올림픽에서는 다시 흑발 스포츠 머리를 하고 등장하였다. [31] 해외 웹사이트에서 그 눈밭에 안보이는 선수 뭐죠? 라고 알려진 짤의 사진 원본이다. [32] 요르헤임 에릭센의 짧은 노란색 모히칸 머리는 외국에서 특이한 올림픽 헤어스타일에 오르기도 했다. [33] 올림픽 이후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커밍아웃했다. [34] 한국에선 처음엔 메달에 관한 논쟁인 걸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신채점제에 대한 불만제기였고 이에 관한 것이 언론의 왜곡 등으로 인해 복잡하게 얽혀버린 것이다. 플루셴코 항목을 참고. [35] 중국 신화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무리한 추월 과정에서 생긴 반칙으로 인해 실격을 줬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이 앞서있었는데? [36] 그 바람에 아폴로 안톤 오노가 500m에서 다른 선수를 밀다가 이게 들켜서 실격당했다. [37] 반면 남자 쪽에서는 캐나다와 한국 선수들에게 밀리면서 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했다. [38] 그리고 중국은 2회 연속 올림픽 여자 계주에서 실격당했다. [39] 실제로 메달리스트 배경음악도 김연아만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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