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브게니 플루셴코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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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예브게니 빅토로비치 플류셴코[1] Евгений Викторович Плющенко Evgeni Viktorovich Plushenko[2]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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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2년 11월 3일 ([age(1982-11-03)]세) |
소련 러시아 SFSR 볼고그라드 | |
신체 | 178cm |
종목 | 피겨 스케이팅 |
가족 |
前 배우자 마리아 에르막 (2005년 6월 18일 결혼-2008년 이혼) 現 배우자 야나 루드코브스카야 (2009년 9월 12일 결혼-현재) 장남 이고르 플루셴코 ([age(2006-09-15)]세)[3] 차남 알렉산더 플루셴코 ([age(2013-01-06)]세) 삼남 아르세이니 플루셴코 ([age(2020-09-25)]세) |
은퇴 | 2017년 3월 31일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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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의 前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며 일리스 그라프스트룀(금메달 3개/은메달 1개)과 올림픽 메달 개수에서 타이를 이룬 선수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 그리고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단체전 금메달리스트로, 역대 2번째로 올림픽 4회 연속 메달(금 2/은 2)를 획득한 선수가 되었다.2. 선수 경력
자세한 내용은 예브게니 플루셴코/선수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3. 평가
"플루셴코는 큰 업적을 남겼고 현대 스케이팅에서 상상하지 못할 탁월한 수준에 도달했다. 3번의 올림픽 경기에서 연속으로 메달리스트가 된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성취다. 거기에 더해 최초의 단체전 우승은 피겨 스케이팅 역사에서 누구보다 우수한 챔피언으로서의 그의 위치를 공고히 할 것이다. 그는 영웅이고 나는 이 스포츠를 사랑하는 우리 모두에게 그가 이제까지 준 것들을 축하한다."
- 스캇 해밀턴( 1984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남자 싱글 금메달리스트)
- 스캇 해밀턴( 1984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남자 싱글 금메달리스트)
"러시아 국민들이 개인전에서 기권했다고 플루셴코를 비난하는 건 넌센스다. 시간이 지나면 오직 그의 훌륭했던 경기와 그가 어떻게 사랑하는 조국을 대표했는지만 기억하게 될 것이다."
- 브라이언 보이타노(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남자 싱글 금메달리스트)
- 브라이언 보이타노(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남자 싱글 금메달리스트)
"플루셴코의 긴 선수 생활은
피겨 스케이팅 뿐만 아니라 다른 스포츠들과 비교해도 믿어지지 않는다. 나는 그가 복귀하고 단체전 경기를 수행하고 결국 금메달을 획득한 것에 큰 감명을 받았다."
- 에반 라이사첵(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자 싱글 금메달리스트)
- 에반 라이사첵(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자 싱글 금메달리스트)
"플루셴코의 긴 커리어는 비현실적이고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나는 4번의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했지만 그것은 훨씬 짧은 기간이었다. 그는 4번의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다. 각각의 올림픽 사이에는 4번의 크리스마스가 있는 (긴 시간인) 것이다. 그것이 그의 성취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이유이다. 거기에는 어떤 비난도 있을 수 없고, 설령 있다해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새끼 고양이가 타이타닉에 흠집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 커트 브라우닝(1989, 1990, 1991, 1993 세계선수권 남자 싱글 우승자)
- 커트 브라우닝(1989, 1990, 1991, 1993 세계선수권 남자 싱글 우승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면 경기장에서 플루셴코의 목에 메달 3개를 다 걸어준 다음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했을 것이다. 그가 경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가 완벽한 모습으로 4번째 올림픽에 출전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격적이었다. 그는 이전보다 못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다른 수준이라고 말하겠다. 3번의 올림픽에서 그는 평범한 선수였다. 그가 토리노에서 우승했음에도 나는 그를 전문적이지 않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이제는 진정 전문적이다."
- 라파엘 아르투니안( 아르메니아 출신 미국의 피겨 스케이팅 코치)
남자 싱글 부문에서 유럽선수권 7회 우승은
울리히 살코(9회),
카를 섀퍼(8회) 이후 최다 기록[4]이다. 그러나 저 선수들이 유럽선수권을 우승한 시기는 싱글 점프가 갓 개발되기 시작하고 극소수의 선수들만이 참여하던 피겨 스케이팅 초창기에 이루어진 것임을 감안하면 그의 화려한 커리어는 피겨 역사상 비견될 선수가 없는 전무후무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지도와 인기가 어마어마하지만 압도적인 온아이스의 존재감이나 직설적인 인터뷰들, 러시아 특유의 싸늘한 이미지 때문에
안티도 많다. 덧붙여 안티가 만들어지는 데엔 그에게 적대적인 북미 피겨계와 북미 쪽 언론이 크게 기여하고 있다. 대부분 북미 쪽을 통해 그의 소식을 얻는 한국 언론에서 곡해한 적도 많다.- 라파엘 아르투니안( 아르메니아 출신 미국의 피겨 스케이팅 코치)
4. 논란 및 사건사고
- 러시아 피겨계에서 학대로 유명하다. 코치로 있으면서 아이들을 패며 교육하는 걸로 말이 많다. 심지어 자신의 어린 아들까지 직접 패면서 교육시켰다는 사실과 방송에서 피겨하기 싫다는 아들 벽장에 가둔 것을 부인이 자랑스럽게 얘기할 정도였다. 또 다른 학대 사례도 있다.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인한 스포츠계의 제재에 대해 '스포츠와 정치를 혼동해 선수들의 경쟁할 권리를 빼앗아선 안 된다', '이번 제재는 부적절하고 정치적이다', ‘나는 우리 대통령을 믿는다’고 발언하였으며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노골적으로 푸틴을 지지하면서 "러시아 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것은 필수적인 작전이다. 양국 스포츠계는 정말 복잡하다"라는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올렸다가 반발을 받자 삭제했다.[5] 게다가 본인이 주도하는 아이스쇼에 나온 선수들에게 상의도 하지 않고 전쟁 지지 의사를 표명하는 티셔츠를 입혀 논란이 되었다.[6]
5. 기타
5.1. 여담
- 대조국공훈훈장 4급 수훈자다.
- 별명으로는 외계인[7], 제냐[8], 차르[9], 플루시, 피겨 스케이팅의 황제가 있다.
-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이후 사실상 은퇴 상태로 대회에는 나오지 않고 주로 아이스 쇼를 하며 보냈다. 이 기간 중 피겨 학교를 세우기 위한 예산을 얻기 위해 잠시 정치계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의원에 당선되어 가끔 농담 섞인 애칭으로 '의원님'이라고 불릴 때가 있다. 2011년에 복귀 준비에 집중하기 위해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 바이올리니스트 에드빈 마톤과는 니진스키 이후 그 이상 죽이 잘 맞을 수 없는 친구 사이가 된 듯 이후 모든 프로그램의 음악은 마톤이 맡았다. 휴식 기간 중에는 마르톤과 함께 아이스쇼 공연을 했으며 러시아의 국민 가수 지마 빌란과 그룹을 이루어 2008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출전하기도 했다. 뭐 결국 유로비전 50년 역사상 처음으로 러시아가 우승하는 쾌거를 이룩하긴 했지만, 사실 진정한 플루셴코 금지 영상은 이쪽이래야 마땅할 정도로 손발이 오그라지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역시 그를 니진스키로 기억하고 싶다면 결코 봐서는 안 될 영상이다.
- 점프, 스텝, 연기가 모두 초일류인 굇수지만 유일한 약점으로 지적받는 부분이 스핀인데 선천적으로 반고리관이 약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에는 버스도 제대로 탈 수 없어서 중간에 내려가며 몇 번씩 갈아타야 했을 정도. 훈련을 거치며 많이 호전되었으나 역시 그 때의 영향인지 '조금만 사랑하는 요소' 로 스핀을 꼽았다. 그러나 구채점제부터 훌륭한 포지션의 비엘만 스핀과 베이글 스핀을 구사하였고 특히 카멜계 스핀을 아름답게 구사한다. 신체점제에서는 무릎이 영 좋지 않아 고난도 싯스핀 시전 불가에도 불구하고 엣지 체인징을 잘하고 센터링이 좋아 레벨을 챙긴다.복귀 후에도 꾸준한 연습 덕인지 스핀이 많이 좋아졌다.
-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이후 하뉴 유즈루의 새로운 코치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 2014년 10월 러시아 교육부의 요청으로 학교 체육수업에 쓸 교수법 프로그램을 만드는 중이며 또한 10월 23일 중국 하이난에서 개최하는 2014 미션힐스 월드셀러브리티 프로암 골프대회에 참가했다.
- 2015년 1월 16일 일본에서 열린 ISU 공인 프로 대회인 메달 위너스 오픈 경기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이 대회 2위는 오다 노부나리, 3위는 제프리 버틀, 4위는 조니 위어, 5위는 에반 라이사첵, 6위는 혼다 다케시가 차지했다.
- 은퇴 이후에는 코치로서도 종종 모습을 드러냈으나, 가르치던 선수들의 실력이 뛰어나지 않아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2020-21 시즌 알렉산드라 트루소바와 알료나 코스토르나야를 영입하면서 브라이언 오서처럼 전직 선수 출신 코치로서 명성을 얻게 될지 주목을 받았었다.[10] 하지만 2020-21 시즌이 끝나고, 둘 다 모두 원래 코치에게로 돌아갔다.
5.2. 연기
역대 최고라고 불리울 만큼 압도적인 점프 컨시[11], 남자로서 하기 힘든 비엘만과 스파이럴, 도넛 스핀 등 유연성 겸비, 4-3-2, 4-3-3 같은 비인간적 콤비네이션 점프도 너끈히 소화하는 등 기술적인 면으로도 세계 최고의 기량을 보유한 선수지만 예술성도 결코 그에 뒤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정한 먼치킨이다.플루셴코의 연기는 주로 날카롭고 서늘하며 우아하며 힘이 있다. 음악을 타는 감각은 천부적이며 풍부한 표정 연기와 섬세한 신체적 표현력, 싸늘하고 압도적인 빙판에서의 존재감과 카리스마, 관중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빙판 장악력은 가히 차르라는 별명에 손색 없는 수준이다.
어린 시절 러시아 발레의 양대산맥 중 하나인 마린스키 국립극장에서 러브콜을 받고 진지하게 진로 고민을 했을 정도로 발레에 재능이 있는 플루셴코는 손끝에서 발끝까지 예리하게 라인이 살아있는 뛰어난 바디컨트롤과 아름다운 포지션을 자랑한다. 발레풍의 프로그램은 의외로 니진스키 헌정과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정도로 많지 않지만 그 이외의 프로그램들에서도 그의 발레적 재능이 자연스레 발휘되어 동작 하나하나에서 섬세하고 우아한 발레의 풍취를 발견할 수 있다.
니진스키의 헌정은 러시아의 전설적인 안무가 겸 발레리노 바슬라프 니진스키에게 헌정하는 프로그램이며 플루셴코의 프로그램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프로그램으로 평가를 받는다. 음악은 헝가리 바이올리니스트 에드빈 마르톤, 안무는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노 유리 스메카로프가 맡았으며 중간중간 니진스키의 오리지널 안무 동작들이 들어가 있다. 특히 절정 부분에 보여지는 장미의 정령은 니진스키에의 헌정 중에서도 백미다. 플루셴코와 스메카로프는 이 프로그램을 위해 직접 박물관을 찾아 니진스키의 일생에 대해 조사했다.
2003-04 시즌 연기된 많은 니진스키 중에서도 '가장 기술 및 예술적으로 완벽한 니진스키' 로 회자되었던 것이 2004 러시아선수권 니진스키였다. 실제로 예술점수 전원 만점이라는 피겨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으며 플루셴코 본인은 관중들의 기립박수에 답하느라 키스 앤 크라이 존에 가지도 못하고 빙판에 선 채로 점수 발표를 들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몇 년 전까지는 다 일그러진 저화질 영상으로밖에 구할 수 없어 피겨 팬들의 애간장을 태운 경기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발레리노 니진스키의 춤이 사진과 기록으로만 남아있듯 가장 아름다운 니진스키는 이런 화질로밖에 볼 수 없는 것' 혹은 '신이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것을 금지했다' 라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다행히 관대하게도 2008-09 시즌 러시아선수권 방송에서 남자 싱글 경기 후 재방송을 하여 지금의 그나마 개선된 화질로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12]
야구딘이 프리에서 3위 이하, 본인이 프리에서 1위를 하지 않으면 우승할 수 없는(즉 거의 게임 끝난) 상황이었으나 도리어 그런 상황에 버프를 받았는지 새파랗게 독 오른 열연을 펼쳤다. 팬들 사이에서는 독기 카르멘으로 불리며 사랑받았다.
올림픽에서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4-3-3을 시도한 데다[13] 한 프로그램 안에서 콤비네이션 포함 쿼드러플 토룹 두 번에 트리플 악셀-하프 룹-트리플 플립을 넣는 등 기술적으로 이미 인간 한계를 초월한 구성의 프로그램. 거기다 잘 보면 돈 호세와 에스카밀로에 이어 남자 주제에 카르멘까지 연기하고 있는데 그게 또 환상적으로 어울린다
일부 유명 프로그램에서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플루셴코는 기술성과 예술성의 완벽한 조합과 특유의 오만함에 가까운 카리스마로 심판과 관객들을 열정적으로 사로잡는다.
니진스키와 카르멘 외에도 아다지오, 상트페테르부르크 300, 탱고와 플라멩고, 토스카, 대부 등 대부분의 쇼트와 프리 프로그램들이 팬들에게 두고두고 사랑받고 있다. 특히나 대부는 매 경기마다 다른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팬이라면 모든 경기는 필견이다.
5.3. 갈라
경기 때 압도적인 아우라를 내뿜던 모습과 비교하면 억만 광년의 괴리감이 느껴지는 4차원적 갈라쇼로도 유명하다. '갈라쇼 하려고 대회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사실 팬이 아닌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갈라가 더 유명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플루셴코가 출전했다고 하면 팬들 중에도 갈라쇼가 어떨지를 더 기대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만 18세의 나이로 인생 첫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을 한 후 갈라 프로그램으로 섹스밤을 선보였다. 이런 짓을 했다. 이런 인간에게 금메달을 빼앗긴 다른 선수들이 살짝 불쌍해질 지경인데 쇼트와 프리에서의 차갑고 냉정한 모습은 어디가고 느끼한 살인미소와 천연덕스러운 개그 연기가 이미 초월자 수준인 데다 근육 수트에 황금 팬티 바람으로도 점프는 환상적이다.[14]
이 프로그램은 첫 공개 이후 하도 센세이셔널한 인기를 끌어 2008년까지도 아이스 쇼에서 꾸준히 우려먹혔는데, 아기로 분장하고 나와 형언할 수 없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변형판도 있다. 통칭 베이비 섹스밤으로 피겨 스케이팅 갤러리의 3대 금지 영상 중 하나였다.[15] 5ch의 혹자는 '인간의 존엄성이란 무엇인가 묻는 프로그램' 이라는 평을 남겼다. 그를 니진스키로만 기억하고 싶다면 보지 않는 것이 좋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단 하나의 프로그램으로만 기억된다면 '토스카가 좋겠다' 고 발언한 바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일반인은 대부분 섹스밤으로 기억하는 상황이다. 사실 처음부터 본인이 제일 즐기고 있었다는 것이 가장 문제다.
2001 세계선수권 우승 후 갈라인 섹스밤을 포함해 2003 세계선수권 우승 후 온리유, 2004년 세계선수권 우승 후의 아시사이 갈라는 모두 초연으로 충공깽을 선사하는 명작이다. 특히 아시사이의 자웅동체 연기는 압권으로 처음 노출시의 격뿜을 넘길 수만 있다면 플루셴코의 연기자로써의 재능에 감동하게 된다. 혹자는 미쉰의 취향이라는 사람도 있다.
만 15세였던 1998 세계선수권 갈라쇼에서 러시안컨트리 댄스는 그의 싹수를 미리 엿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갈라 무대에서 무릎으로 기어 심판석 앞으로 들이댄 후 유사품으로 빙판 위에 엎어져 날갯짓을 하며 온몸으로 미친 새를 열연하는 이팔청춘 16세의 미친 새가 있다.
2010 유럽선수권에서 6번째 우승을 차지했을 때는 첫번째 우승처럼 좋아하고는 얼음 위에서 혼자 러시안 뽕짝에 미친 듯이 몰입해서 처절한 연기를 펼쳤는데, 가사의 번역이 스베차가 나오자 한국 팬들에게 '이번 시즌 끝나고 죽을 거냐'란 원성 섞인 찬사를 들었다. 시청자들은 처음에 의외로 평범해서 실망했으나 그야말로 열연을 펼쳐서 화제가 되었다. 일단 곡 이름부터 'Je suis malade(나는 마음이 아파요)' 에 관중을 휘어잡는 타고난 아우라와 마음을 흔드는 처절한 연기력, 끝에 가서 빙판에 벌렁 자빠지는 것까지 예술적인 나 죽었뜸 마무리(가사에 따르면 죽은 새를 뜻한다)까지 빙판을 말 그대로 지배했다. 밴쿠버 올림픽 갈라쇼에서 플루셴코는 가장 큰 환호와 유일한 기립을 이끌어내며 적지의 심장인 북미 올림픽에서 갈라쇼를 지배해 버렸다. 그가 두 번째로 복귀한 2011-12 시즌에서는 아쉽게도 예전 갈라를 재탕하는 수준에 그쳤다. 'Je suis malade'가 명갈라긴 한데 너무 많이 우려먹는 것 같다.
5.4. 코치와의 관계
플루셴코와 알렉세이 미신 코치의 관계에 대하여 설명하자면 나무위키 페이지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절대적인 신뢰와 애정관계를 자랑하는 사제 관계이다. 이 두 사람의 인생에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사이이며 20년 간의 사제 관계는 뉴비들이 넘볼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유대관계를 자랑하고 있다. 어린 나이에 고향과 가족을 떠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훈련해야 했던 제냐에게는 미쉰이 아버지 같은 존재였고 미쉰 코치 역시 재능과 노력을 갖춘 그의 뮤즈에게 그만큼 사랑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팬들 사이에서는 부인인 야나보다 더 질투의 대상이다.2011년 3월에는 미쉰 코치의 칠순을 기념하는 아이스 쇼를 열었다. 미쉰 코치의 제자들이 모두 모여 영감님의 생신을 축하하는 자리였는데 정작 미쉰 영감의 가장 큰 제자인 제냐는 그날 감기에 걸려 열이 끓는 바람에 원래 세 개를 할 예정이었던 프로그램을 하나밖에 하질 못했다. 미쉰 코치를 향한 플루셴코의 애틋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일명 미쉰 코치 생일 기념 아이스 쇼에서 보여준 카루소다. 아다지오 스텝을 활용한 우아하면서 애절한 연기가 아름답다. 이 날 플루셴코는 그의 코치에게 한쪽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당신을 아버지처럼 사랑합니다' 라고 말했고 미쉰 또한 '나도 너를 아들처럼 그 이상 사랑한다' 라고 화답했다고 한다. 2014년 5월 미쉰 코치의 손자가 태어났는데 플루셴코에게 누구보다 먼저 그 사실을 전했다고 미쉰이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다.
[1]
러시아어 표기체계에서 ю 자는 /ju/ 발음을 나타내며 한글로는 ㅠ에 가깝다.
현행 러시아어 표기법도 '플류셴코' 로 적도록 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플루셴코' 를 항목명으로 한다.
[2]
영미권에서 쓰이는 러시아어 라틴문자 표기방식인 BGN/PCGN에 따르면 'Yevgeny Viktorovich Plyushchenko'로 표기하는 것이 옳으나 해외 활동의 편의를 위해 전자의 표기로 통일했다고 한다. 아직도 가끔 이런저런 곳에서 표기가 혼동되어 쓰이는 일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표준식 이름으로 나왔다.
[3]
前 배우자 사이에서 얻은 아들이며 나머지 두 아들은 現 배우자 사이에서 얻은 아들이다.
[4]
2019년
하비에르 페르난데스가 유럽선수권 7연패를 달성했다.
[5]
이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른
우크라이나의 여자 싱글 선수인
아나스타샤 샤보토바는 우크라이나 국가대표 명단에서
제명됐다.
[6]
이 아이스쇼에 참여했던 선수 중
옐리자베타 툭타미셰바와
알료나 코스토르나야는 해당 티셔츠와 문구는 선수 당사자들과 상의되지 않은 것이라는 글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지만 곧 삭제했다.
[7]
주로 일본에서 불리는데,
굇수급의 컨시와 함께 트레이드 마크인 바가지 머리 때문이다.
[8]
예브게니(남)/예브게니야(여)의 애칭. 남녀 공용이다.
[9]
Царь, 세계 팬들은 나라에 따라 Czar, Tsar, Tzar, Zar 등 다양하게 표기하여 부른다.
[10]
사실
러시아 피겨계에서는 플루셴코가
에테리 투트베리제 제자들을 탐내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던 편이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금메달리스트인
알리나 자기토바에게도 영입 제안을 한 적이 있어서 이로 인해 투트베리제와 플루셴코의 사이가 악화되었다는 소문도 돌은 적이 있었다.
[11]
회전축이 빗나가도 어떻게든 랜딩했다.
[12]
당시 플루셴코의 니진스키에의 헌정과 알렉산더 압트의 볼레로가 방송되었다.
[13]
마지막 트리플 룹에서 스텝아웃되는 바람에 공식 인정되지는 못했다. 공식 인정은 그 해 2002 컵 오브 러시아 프리 경기다.
[14]
2001년에도 갈라 영상에 보면 앙코르 요청을 받은 후 이 근육 수트 차림으로 3-3-2를 뛴다.
[15]
3대 금지 영상 중 가장 파괴력이 크다는 평가도 있다. 일단 다른 두 영상들은 그 선수 커리어에서 '10대 소년의 재롱' 으로 넘길 수 있는 어린 시절의 영상이나 저때 제냐는 이미 이룰 걸 다 이룬 탑싱이었는 데다가, 당시 애 아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