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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13 16:14:32

잭 찰튼

잭 찰튼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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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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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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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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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찰튼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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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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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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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前 축구인
파일:-1x-.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잭 찰튼 OBE
Jack Charlton OBE[1] DL[2]
본명 존 찰튼
John Charlton
출생 1935년 5월 8일
영국 잉글랜드 노섬벌랜드 주 애싱턴
사망 2020년 7월 10일 (향년 85세)
잉글랜드 노섬벌랜드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직업 축구 선수 (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은퇴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리즈 유나이티드 FC (1952~1973)
감독 미들즈브러 FC (1973~1977)
셰필드 웬즈데이 FC (1977~1983)
미들즈브러 FC (1984 / 감독 대행)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1984~1985)
아일랜드 대표팀 (1986~1996)
국가대표 35경기 6골 ( 잉글랜드 / 1965~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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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colcolor=#000000> 등번호 리즈 유나이티드 FC - 5
가족 동생 바비 찰튼
외당숙 재키 밀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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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이자 축구 감독. 보비 찰튼의 형이자 축구 역사상 최고로 성공한 형제 선수로 알려져 있다. 동생이 워낙 훌륭한 선수라서 상대적으로 빛을 보진 못했으나 리즈와 아일랜드에서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보비 무어와 함께 단단한 수비를 구축해 잉글랜드의 1966년 월드컵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2. 클럽 경력

2.1. 리즈 유나이티드 FC

파일:external/www.whoateallthepies.tv/PA-1999003.jpg
파일:external/imgc.allpostersimages.com/leeds-united-s-jack-charlton-in-action-against-southampton-during-their-league-match-c-1968.jpg
1935년 4월 8일에 잉글랜드 노섬벌랜드 주 애싱턴에서 태어났다. 그도 동생인 보비와 마찬가지로 조부에게 축구를 배우다가 15살 때인 1950년부터 리즈 유나이티드의 산하 유소년 팀에 입단하여 리즈와 인연을 맺기 시작, 그는 17세 때인 1952년부터 프로 데뷔를 시작했다.

당시 리즈 유나이티드는 2부 리그에 있었기 때문에 선수 초기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으나 그는 주전 수비수로 맹활약하여 1955/56 시즌에 2부 리그 준우승으로 1부 리그 승격을 이루어냈지만 중위권을 전전하다 1959/60 시즌에 4년만에 강등을 당했다. 그 와중인 1958년에 맨유에서 막 활동하던 동생 보비를 뮌헨 비행기 참사로 잃을 뻔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다행히 동생은 목숨을 건졌지만...)

그러다가 1961년부터 선배인 돈 레비가 선수 겸 감독으로 부임하며 부진했던 리즈의 전력을 점차 강화하자 재키는 1960년에 데뷔한 미드필더 빌리 브렘너와 호흡을 맞추어 1963/64 시즌에 2부 리그 우승으로 1부 리그로 승격하는데 공헌했다. 이후 1부 리그 승격에 만족하지 않은 재키의 팀은 리그 우승 1회(1969), FA컵 우승 1회(1972), 리그 컵 우승 1회(1968), 인터-시티 페어스컵 우승 2회(1968, 71)까지 이루었다.

파일:external/www.mightyleeds.co.uk/19650327riot.jpg
이러한 업적 말고도 유명한 사건은 바로 1964/65 시즌 FA컵 준결승 1차전에서 벌어졌던 데니스 로와의 주먹다짐이었는데, 당시 리즈는 같이 전성기를 누리던 강호 맨유와의 장미전쟁이 일어났던 때였다. 사건의 경과를 보면, 이 사건의 실마리는 리즈의 빌리 브렘너가 동생인 보비에게 손바닥으로 내리친 게 발단이 되었는데, 침착한 성격인 보비 역시 브렘너를 가리키며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이어 브렘너의 파울이 계속되자 맨유의 선수들을 빡치게 만들어 위에서 언급한 재키와 로의 싸움으로 번지게 되었다.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지만 로는 잭 찰튼을 비롯한 6명의 선수들에 의해 유니폼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후 2차전에서 브렘너의 결승골로 리즈가 이겨 FA컵 결승까지 오르지만 이는 리즈와 맨유 간의 관계는 최악으로 변했다. 더군다나 리즈와 맨유는 리그에서도 선두를 다투었는데 양팀 모두 승점 61점을 기록했지만 골득실차로 맨유에게 밀려 리즈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리즈와 맨유는 컵대회건 리그건 치열하게 격돌했고 팬들 간에도 치열했다고 한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선수생활을 겪은 재키는 1972/73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3. 국가대표 경력


리즈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1965년에 30세라는 늦은 나이에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재키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 바비 무어와 수비 콤비로 맹활약했다. 모든 경기에 출전했고, 특히 프랑스전에서는 오버래핑한 상태에서 헤더 슈팅으로 골대를 맞히며 로저 헌트의 쐐기골에 큰 부분 공헌하기도 했다. 4강 포르투갈전 경기 82분 에우제비우에게 PK실점을 내줄 때까지 잉글랜드의 월드컵 442분 연속 무실점에 크게 공헌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PK를 내준 것이 본인의 핸들링 파울 때문이었다는 것이 옥의 티이다. 좀 뜬금없는 핸들링이었다. 결승전에서도 서독을 상대로 탄탄한 수비를 펼쳐 쥴리메컵을 들어올렸다.

유로 1968, 1970년 월드컵에서도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22인에 선발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기본적인 수비 능력이 당대 최고 수준에 달했던 파이터형 수비수이다. 비교적 최근의 선수 중에서는 야프 스탐과 비슷한 스타일이라고 보면 된다. 강력한 플레이로 상대 공격수를 묶어냈으며 발도 빨랐다.

189cm의 큰 키를 이용한 공중볼 다툼에 능했으며 이는 파트너 무어의 약점을 잘 커버해주었다. 순간적인 오버래핑으로 찬스를 만드는 데에도 능했던 수비수이다. 1966년 월드컵 때에는 바비 무어와 번갈아가며 오버래핑하며 상대 수비진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무어는 오버래핑했을 때 플레이 메이킹을 주로 했고, 찰튼은 직접 페널티 박스까지 들어가 슈팅을 노리는 경우가 많았다.

5. 감독 경력

5.1. 미들즈브러 FC 1기

파일:external/i3.gazettelive.co.uk/h_0024597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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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i2.gazettelive.co.uk/3F10A54F-B578-24DF-C8AA026D0F7EE11C.jpg
1973년부터 그는 은퇴하자마자 당시 2부 리그 소속이던 미들즈브러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당시 보로는 줄곧 하부 리그에만 있어서 축구 팬들로부터 "Boring, Boring Boro(지겹다, 지겨워, 보로!)" 소리를 들어왔던 약체팀이었다.

이런 팀을 재키는 전력 강화를 위해 셀틱 FC의 감독인 조크 스타인의 제안에 따라 셀틱의 프랜차이즈 선수인 바비 머독을 영입하여 머독과 함께 기존의 스튜어트 봠, 그레이엄 수네스, 앨런 포곤, 존 힉튼, 데이비드 밀스 등을 중심으로 전열을 정비해 급속히 전력을 강화시켜 1973/74 시즌에 파죽지세로 2부 리그를 씹어먹고 우승하여 1부 리그 승격을 확정지었다. 이후 3년 내내 리그에서 중위권을 유지하며 1975/76 시즌에는 앵글로-스코티시 컵 결승에서 풀럼 FC를 꺾고 우승하기도 했다.

5.2. 셰필드 웬즈데이 FC


파일:external/www.owlspics.co.uk/jack-charlton-and-maurice-setters-8428159.jpg
코치인 모리스 세터스와 함께.

1977년 10월에 3부 리그 팀인 셰필드 웬즈데이의 감독인 렌 애셔트가 갑자기 사임하자 감독으로 즉시 부임하여 1978년부터 토미 타이넌을 팔고 믹 피커링, 케빈 테일러, 멜 스털랜드 등을 먼저 영입한 뒤 1978/79 시즌 FA컵 3라운드에서 강호 아스날 FC와 5차전까지 끌기도 했고, 1979년에 크리스 터너를 팔고 테리 커랜, 앤드류 매컬로, 피터 시틀리프 등을 영입하여 기존 선수인 밥 볼더, 마크 스미스 등을 가세시켜 전력을 강화하여 1979/80 시즌에 3위로 2부 리그 승격을 이끌어냈고, 1980년부터 케빈 테일러, 마크 스미스, 피터 시틀리프, 멜 스털랜드 등을 주전으로 정착시켜 1982/83 시즌에는 FA컵 준결승까지 올랐으나 1부 리그 팀인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에게 패했다. 이후 재키는 1982/83 시즌 막판에 사임했다.

5.3. 미들즈브러 FC 2기

1983/84 시즌 도중인 1984년 3월에 미들즈브러 감독인 말콤 앨리슨이 갑자기 쫓겨나자 미들즈브러의 감독을 다시 맡아 3부 리그 강등 위기에 있던 팀을 살려 17위로 2부 리그에 잔류시키기도 했다.

5.4.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파일:external/i3.chroniclelive.co.uk/JS61253774.jpg

1984년 6월에 뉴캐슬의 레전드이자 친척인 재키 밀번의 설득을 받고 당시 1부 리그로 갓 승격된 뉴캐슬의 감독으로 취임, 그 해에 은퇴한 케빈 키건 대신 테리 맥더모트를 붙들어두려 했지만 맥더모트가 뉴캐슬을 떠났고, 대신 피터 비어즐리, 크리스 워들, 폴 개스코인, 조지 라일리 등을 중심으로 1984/85 시즌에 14위로 잔류에 성공했으나, 결국 바로 사임했다.

5.5.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파일:external/i.telegraph.co.uk/JackCharltonIrelan_2853443k.jpg

뉴캐슬을 떠난 그는 1985년 12월부터 아일랜드 공화국 축구협회의 부름을 받고 아일랜드 국대 감독으로 취임했다. 재키가 부임하기 이전의 아일랜드는 월드컵이건 유로 대회건 예선에만 나가면 늘상 탈락하는 유럽의 약체팀 중 하나였다. 그런 팀을 재키가 팀을 잘 추스려 재키의 스타일인 견실하고 단순한 축구를 아일랜드에 주입시켜 강해진 팀은 유로 1988 예선을 1위로 통과하고 조별리그에 출전하여 1승 1무 1패로 탈락했지만, 이때부터 아일랜드가 강팀의 싹을 보이기 시작하여 1990 이탈리아 월드컵, 1994 미국 월드컵 진출을 이끌었다. 특히 1990년과 1994년 월드컵에서는 각각 8강, 16강까지 진출했으며, 1993년에는 FIFA 랭킹 6위까지 올랐다. 이로써 그는 아일랜드 국민들로부터 '빅 잭(Big Jack)'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로이 킨도 그가 처음으로 대표팀에 발탁했다.

그러나 재키는 유로 1996 예선전에서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탈락한 뒤 9년간의 국대 감독에서 은퇴했고, 23년에 걸친 파란만장한 감독 생활은 끝이 났다. 이래나 저래나 한국의 히딩크처럼 아일랜드에서는 국민영웅으로 대접받는 잉글랜드 출신의 축구인이다. 아일랜드와 영국의 역사적, 정치적 관계를 보면 알겠지만, 영국인 중에서 진짜 예외적으로 아일랜드에서 국민영웅 급으로 대단한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다. 오죽하면 "모국인 영국보다 아일랜드에서 더 사랑받은 유일한 영국인" 혹은 "아일랜드 땅을 밟은 영국인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 실제로 이를 증명하듯 그가 죽은 이후 수많은 아일랜드인들이 애도했다.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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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4년 수훈, 4등급 대영제국 훈장 Officer of Order of the British Empire [2] 명예 영국군 중위 Deputy Lieuten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