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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제2차 암흑기/원인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제2차 암흑기
1. 개요2. 선수단의 문제
2.1. 판타지스타의 부재2.2. 골키퍼와 크랙을 제외한 모든 포지션의 세대 교체 실패
3. 이탈리아 축구 자체의 문제4. 감독의 패착5. 외부 요인
5.1. 규칙 판정의 방향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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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0년 이후 아주리 군단의 2차 암흑기에 해당하는 원인을 다룬 문서다.

결론적으로 이탈리아 축구 선수단과 감독, 협회, 리그, 수뇌진 등 모든 부분에 문제가 고루 있으며 이런 문제들이 겹치고 겹쳐 이탈리아는 2006년까지의 영광이 무색하게 2010년과 2014년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고 2018년과 2022년에는 아예 지역예선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돌이켜 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스타급 선수들을 내놓던 과거의 이탈리아는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인데, 축구 스타가 즐비하던 이탈리아 축구의 최전성기는 2006년 노장들의 마지막 투혼을 끝으로 종말을 고한 상태다.

2. 선수단의 문제

2.1. 판타지스타의 부재

이탈리아는 전통적으로 카테나치오라는 수비 축구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수비만으로 세계 정상권까지 올라갈 수는 없는 만큼 공격수들 역시 월드클래스의 위상을 자랑했다. 그 중심에 있던 선수들이 바로 판타지스타로, 이른바 9.5번 위치에서의 플레이스타일로 세계 정상에 서는 플레이스타일 의미의 판타지스타는 물론, 전형적인 스트라이커나 윙포워드 자리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승리를 견인하는 이른바 크랙 스타일의 선수들도 존재했다. 덕분에 이탈리아 대표팀은 단단한 수비 축구를 구사하면서도, 전방에서는 화려한 슈퍼 플레이를 펼치는 판타지스타를 중심으로 건실한 공격진이 힘을 보탰기에 대략 70년대부터는 월드컵 우승후보의 반열에 있었다.

주세페 메아차 실비오 피올라 산드로 마촐라& 루이지 리바 파올로 로시 살바토레 스킬라치 로베르토 바조 알레산드로 델피에로& 프란체스코 토티로 이어진 이 '판타지스타'들의 계보는 이탈리아의 축구의 역사 그 자체였으며, 월드클래스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명선수들이었다.[1] 이외에도 플레이스타일 때문에 판타지스타로는 잘 불리지 않긴 했으나 훌륭했던 공격수들은 차고 넘쳤는데, 전성기는 그리 길지 않았으나 월드컵에서만 9골을 넣어준 애국자 크리스티안 비에리, 월드컵에서는 활약상이 저조했으나 A매치에서는 그래도 괜찮았던 필리포 인자기, 이들보다 명성은 조금 부족하나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는 주전 스트라이커로 맹활약을 펼친 루카 토니 등이 있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서 마지막 세대라고 할 수 있는 토티와 인자기가 은퇴하고, 토니는 전성기가 일찍 지면서 밀려난 가운데 그 뒤를 이어줄 선수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리하여 현재의 이탈리아 대표팀에는 강팀을 상대로 골을 넣어줄 공격 자원 자체가 씨가 말라버린 탓에, 탄탄한 수비 조직력에 비해 항상 전방에서의 지독한 골결정력 부재때문에 늘 변비축구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장 자국의 프로 1부 리그인 세리에 A만 봐도 최근 10년간 이탈리아 선수가 득점 랭킹 상위에 있는 경우가 전성기 기준의 치로 임모빌레 파비오 콸리아렐라 정도였으며, 정말 넓게 쳐줘도 안드레아 벨로티, 도메니코 베라르디 정도가 끝이다. 심지어 다른 최상위리그인 PL이나 라리가, 분데스리가에는 이탈리아 국적의 공격수 자체가 아예 씨가 말랐다. 더 심층해 보자면, 자국의 프로 1부 리그인 세리에 A는 물론이고 분데스리가, 프리미어 리그, 라리가라는 빅4, 유럽에 비해 조금 떨어지는 측면이 있긴해도 세리 A, 리가 프로페시오날이 있는 남미 리그에서 마저도 득점왕을 차지한 이탈리아 출신 선수들이 없다.[2]

이정도로 최전방과 2선 공격수가 모두 빈약한 국가는 유럽과 남미를 통틀어 찾기 힘들다. 같은 5대 리그 안에 속한 국가들 중 프랑스는 모든 포지션에서 우수한 자원들이 쏟아져 나오는 데다 그냥 킬리안 음바페 하나면 설명이 끝난다.[3] 잉글랜드는 해리 케인이라는 월드클래스 중앙 공격수가 있으며, 2023-24 시즌에는 필 포든 주드 벨링엄이 완전히 각성하여 강력한 2선자원들까지 갖추게 되었다.[4]

그나마 독일과 스페인이 최전방 공격수의 부재로 다소 부침을 겪고 있지만, 이쪽은 측면이나 2선 자원이 탄탄하다. 독일 역시 대략 7~8년간 공격자원의 질이 하락하여 월드컵과 유로 잔혹사를 겪었으나, 2023-24 시즌 기준으로 자말 무시알라 플로리안 비르츠라는 환상적인 2선자원을 얻으며 굉장히 강력한 2선을 갖추게 되었다. 최전방 자리도 아스날 이적 후 다시금 자리를 잡은 카이 하베르츠, 늦깎이에 포텐셜을 터뜨린 니클라스 퓔크루크, 팀 클라인딘스트, 데니스 운다브 등 어느정도 가뭄이 해소된 상태이다.[5] 스페인은 다니 올모, 미켈 오야르사발, 니코 윌리엄스, 예레미 피노, 페란 토레스 등 재기발랄한 젊은 2선/측면 자원들이 꾸준히 배출되고 있고, 알바로 모라타라는 그래도 1인분은 할 수 있는 건실한 톱 자원도 있으며 최근에는 사무 오모로디온이라는 차세대 주전 스트라이커가 탄생했다. 국대에서 크게 두각은 나타내지 못해도 이아고 아스파스, 제라르 모레노, 보르하 이글레시아스, 호셀루 등이 꾸준히 라리가 득점 최상위권에서 얼굴을 비추는 등 세리에보다는 사정이 낫다. 무엇보다, 2007년생 라민 야말이 엄청난 재능으로 라리가와 국대에서 모두 두각을 드러내며 급격하게 2선이 강해졌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최전방과 2선 모두 월드 클래스라고 당당하게 이름을 내밀 수 있는 선수가 거의 없었으며, 지금도 키에사 정도를 제외하면 사실상 전무하다. 치로 임모빌레는 자국 리그에서의 대단한 활약상과 달리 국대만 오면 삽질하기 바빴고, 어릴때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았던 초신성 마리오 발로텔리는 워크에식 문제로 전성기가 일찍 끝나버렸다. 도메니코 베라르디는 중하위권인 소속팀을 먹여살리고 있으나 종합적으로 유망주 시절에 기대했던 것보다 아쉬운 선수라는 것이 중론이며, 국대에서도 슬슬 삽질을 시작하고 있다. 안드레아 벨로티도 비슷하게, 유망주 시절 비에리의 후계자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리그에서의 성장세가 미미하고 국대에서도 별 활약을 못 했다. 가진 잠재력을 다 보이지 못하고 폐급 2선 자원이 되어버린 페데리코 베르나르데스키는 덤. 그나마 로렌초 인시녜가 고군분투하며 나름대로 월드클래스 소리를 들을 만한 활약을 했으나 아무래도 선배들의 임팩트를 넘기는 어려운 편이다. 그 인시녜마저 2022년 즈음부터는 에이징커브로 인해 국대에 소집되지 않으며,오죽하면 2022년 월드컵 지역예선 플레이오프 때 만치니 감독이 과거 맨체스터 시티 FC 감독 시절 어르고 달래가며 기용하였던 발로텔리를 불러들일까 고민했을 정도였다.[6]

젊은 세대로 넘어와도 가능성은 있어도 아직까지 실력을 확실히 보여준 선수는 드물다. 00년생의 모이스 킨은 여전히 성장세가 좋지 못해 점점 국대에서 멀어지고 있고, 99년생 잔루카 스카마카 마테오 레테기도 유로 2024까지 승선할 정도로 성장하긴 했으나 아직 보여줘야 할 부분이 아주 많으며, 윌프리드 뇬토는 아예 PL도 아니고 EFL 챔피언십 소속이다. 00년생의 자코모 라스파도리 역시 두드러지는 성장세를 보이며 국대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하는 중이나, 유로 2024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며 여전히 확실한 눈도장은 받지 못한 상태. 2024년 현재로써는 키에사를 주축으로 라스파도리나 스카마카 등 중앙에서 뛰는 선수들이 빠르게 폼을 끌어 올리는 것을 기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키에사 조차 2026년 월드컵에서는 28세로 그리 젊은 나이가 아니며[7], 2030년 월드컵에서는 32살로 에이징커브가 다가올 시점이라 예전만큼의 활약은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설령 키에사가 은퇴하게 되면 당장 키에사의 후임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8].

유로 2024에서 이탈리아가 졸전끝에 16강에서 탈락하며, 공격자원은 여전히 빈약하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게 더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동안 이탈리아 축구의 자랑이었던 카테나치오가 사라진 상황인지라 실점은 곧 패전으로 귀결되는 공식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고만고만한 팀과 상대해서는 뒤집거나 비기기라도 할 수 있겠지만 여타 유럽의 강호들과 대결했을 경우, 역전은 커녕 무승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이미 이번 유로 2024에서도 드러났듯이 16강도 가까스로 진출한 것에 불과했고 조별리그 경기 역시 3경기 모두 실점을 기록했다. 세대교체도 안되고, 무엇보다 여타 다른 유럽의 강호들에 비해 스트라이커 조차 부재인 이탈리아가 차후 있을 A매치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둘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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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골키퍼와 크랙을 제외한 모든 포지션의 세대 교체 실패

이탈리아 선수단의 문제점은 판타지스타만이 아닌데 센터백 중에서도 세계적인 유망주가 없다. 특히나 현대 축구에서 센터백이 지닌 위상을 생각하면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데다, 이탈리아 축구의 상징과도 같은 카테나치오를 팀의 기본 전술로 삼는 팀에게 그 카테나치오의 중심이 되는 센터백 인재의 부족은 전술 자체의 기반을 부정하는 중대한 상황이다. 이처럼 아주리 군단은 최전방부터 센터백까지 모두 세대교체의 부진함이 가장 큰 문제이다. 즉, 최근에 들어 이탈리아에서 축구 재능의 씨앗이 마른 상태다.

이탈리아는 1982년 스페인 월드컵우승 이후 2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세대교체가 비교적 잘 이뤄진 팀이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비록 16강에서 탈락했으나, 1990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는 3위의 호성적을 거두었고,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12년 만에 결승에 진출해 최강 브라질을 상대로 승부차기에서 패배하여 준우승을 기록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지네딘 지단이 있는 개최국이자 당해 우승국인 프랑스를 만나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8강에서 탈락했다. 즉, 90년대의 세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는 마라도나, 카니자, 고이코체아가 있는 아르헨티나, 호마리우, 베베투, 카푸, 둥가, 호나우두가 있는 브라질, 지단, 데샹, 트레제게, 앙리가 있는 개최국 프랑스에 승부차기에서 잇달아 패배한 것이다. 특히 90년대에 세리에A가 크게 발전하며 뛰어난 자국 선수들도 많이 배출되었으며, 이들은 이탈리아를 유럽의 강호로 만드는 주역이 되었다.

유로 2000에서도 이탈리아는 극강의 카테나치오를 선보이며 준우승을 달성하며 지속적인 황금세대를 이어나가는 듯 했다. 그러나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개최국인 대한민국에 역전패하였고, 급기야 유로 2004에서는 3위로 조별리그를 탈락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2000년대 초반 이탈리아는 골키퍼에 프란체스코 톨도 잔루이지 부폰, 수비에 알레산드로 네스타, 파올로 말디니, 파비오 칸나바로, 중원에는 알레산드로 델피에로, 젠나로 가투소, 공격에는 크리스티안 비에리, 필리포 인자기, 로베르토 바조, 프란체스코 토티 등 젊은 선수들로 들어선 화려한 스쿼드를 자랑했으나, 정작 이들은 유로 2000이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월드컵 직전에 칼초폴리가 터졌다. 그렇게 맞이한 2006년 월드컵에서 황금 세대들은 어느덧 20대 중후반~30대초반의 베테랑이 되어 있었으며, 이들은 그동안 실망이 컸던 이탈리아 팬들을 위해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며 우승한 것이다. 즉, 이탈리아는 2000년대 초반을 제외하면 꾸준히 월드컵에서 성과를 보여줬던 팀이며, 20년이 넘는 기간동안 많은 레전드 선수들이 국가대표를 빛내왔고, 2006년의 우승은 그 세대교체가 정점을 찍고 막 내려오는 과정에서 이뤄낸 것이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이 우승의 주역들을 성공적으로 대신할 자원을 성공적으로 찾아내지 못했다. 이탈리아를 우승으로 이끈 마르첼로 리피 감독은 박수칠 때 떠났으나, 후임 감독인 로베르토 도나도니가 삽질을 해서 원치 않게 다시 국대 감독을 떠맡아야 했으며, 신예 선수들이 잘 성장하지 못한데다 급하게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준비하느라 2006년 기준으로도 노장인 선수들의 상당수를 그대로 써먹었다. 그 결과는 희대의 개꿀조에서 파라과이, 뉴질랜드와 무승부를 거두고 슬로바키아에 져서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무승 조별리그 광탈이라는 유례없는 치욕이었다. 물론 여기까지는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 징크스처럼 다른 국대들이 전략을 파해할 방법을 4년 간 연구했다는 뻔한 변명의 여지라도 있었다. 당장 82년에 이탈리아가 우승하고도 86년 월드컵에서 16강에서 광탈한 전적이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약 10년 가까이를 더 헤매야 했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고, 유로 2012에서 다시 한번 준우승을 기록하며 암흑기가 끝나는가 싶었다. 실제로 이 당시에는 조르조 키엘리니, 다니엘레 데로시, 티아고 모타,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 리카르도 몬톨리보와 같은 젊은 좋은 자원들이 많았고, 공격진에도 늦깍이에 전성기를 맞이한 안토니오 디나탈레나 초신성 마리오 발로텔리까지 밸런스가 괜찮았다. 그러나 과거 선배들만큼 성장한 선수는 없었고, 이는 결국 뒤이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또 한번 조별리그 탈락으로 이어지더니, 뒤이은 유로 2016에서도 8강 탈락, 그 뒤에는 모두가 잘 아는 두 번 연속 월드컵 최종예선 탈락이라는 초유의 대참사를 겪었다. 물론 유로 2020을 우승하며 마침내 암흑기가 끝나는가 싶었지만, 페데리코 키에사가 없는 이탈리아는 빛좋은 개살구일 뿐이었다. 그리고 유로 2024에서 무려 스위스에게 16강 탈락을 당하며 암흑기는 끝을 모르고 달려가고 있다.

어찌나 세대교체가 느렸냐면 84년생의 조르조 키엘리니와 87년생의 레오나르도 보누치 유로 2020 우승 당시 국대의 주전 센터백 듀오였으며, 냉정하게 키엘리니 정도를 제외하면 통곡의 벽이라 불리던 과거 선배 수비수들의 아성에는 근접조차 하지 못했다고 평가받는다. 중원 역시 마르키시오가 짧은 전성기를 보낸 것에 비하면 상술했듯 가투소와 피를로가 있었던 시절과는 비교자체가 실례일 정도로 클래스 차이가 컸다. 공격 자원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거의 망한 상태다. 그나마 2006년 월드컵 이후 클래스가 떨어지지 않고 유지되었던 건 실질적으로 잔루이지 부폰이 있던 메인 골키퍼 포지션과 기동성은 잃었으나 클래스는 여전했던 안드레아 피를로가 고작이었다.

그나마 메인 골키퍼와 크랙으로 불리는 공격수인 잔루이지 돈나룸마, 페데리코 키에사로 완벽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지만, 문제는 현재 이탈리아를 대표할 수 있는 선수들은 정말로 그 잔루이지 돈나룸마 페데리코 키에사 둘 뿐인 게 문제다.[9][10] 물론 바스토니, 바렐라 등 젊은 자원들 역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지만, 월드컵을 두 번이나 놓쳐버린 탓에 국제 대회 경험이 부족해졌고 또한 다음 월드컵이 될 때 쯤이면 나이가 차버린다는 것.... 현재 이탈리아 차세대 유망주 가운데 2000년대 태생으로 '뭔가 될 거 같다'고 보이는 선수가 많지 않다는 게 문제다. 모이스 킨, 자코모 라스파도리, 리카르도 칼라피오리 등이 '그나마 좀 봐줄만 하다'라고 보여지는 선수들이고 킨조차도 대성할 스타로 구분되기는 힘들다. 이탈리아 축구계에 있어서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다른 월드컵 우승국들 역시 다음 대회에서는 철저하게 몰락한 경우가 몇몇 있었으나, 이탈리아를 제외하면 대략 10년정도면 다음 세대들을 완벽하게 발굴했다는 점에서 이탈리아와 대비된다. 메이저 대회 3연패를 달성한 스페인은 2014년 월드컵 조별예선 탈락을 시작으로 거의 5년가까이를 헤메다 유로 2020 4강에 유로 2024 우승으로 과거의 명성을 되찾았고, 2014년 월드컵 우승국인 독일도 월드컵 2회연속 조별리그 탈락에 유로 2020 16강이라는 최악의 시련을 연이어 겪었으며, 유로 2024에서는 8강에서 탈락했어도 전력자체는 상당히 강력하다고 평가받았던 만큼 선수 자체가 구린 이탈리아와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2002년의 브라질 역시 2004년 코파아메리카 우승으로 정점을 찍고 2010년대에 들어 그닥 성과를 못 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월드컵 8강은 진출한다는 점에서 역시 이탈리아와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반면 이탈리아는 아직도 월드컵 토너먼트 마지막 승리가 2006년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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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탈리아 축구 자체의 문제

3.1. 칼초폴리

이탈리아 축구계를 뒤흔든 최악의 승부조작 스캔들인 칼초폴리 사건으로 1990년대 전성기를 누리던 세리에 A의 명예를 크게 추락시키고 여기에 2008년 남유럽 경제위기까지 겹치면서 자금난 등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상황이 이러면서 세리에 구단의 전반적인 위상은 침체되었고, 자연스럽게 세리에 소속 선수들과 신진 선수들의 수준은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니 이탈리아 축구 유망주 육성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축구선수로 활약하기 어렵고 은퇴 시기가 넘은 연령인 40대에 가까운 나이의 노장들이 계속 선수로 뛰는 상황이 잦아지고, 실력이 예전만 못하니 자연스럽게 소속 클럽들의 위상도 전반적으로 하락세를 걸었으며 자연스럽게 리그 수준이 떨어지고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의 경쟁력은 하락했으며, 자연스럽게 자국 선수들의 수준 역시 예전에 미치지 못했고 영건들 역시 기대치만큼 성장하지 못하면서 이탈리아 축구계의 미래를 더더욱 어둡게 하는 전조가 되고 말았다.

사실상 이탈리아가 지금의 암흑기를 걷고 있는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이 칼초폴리다.[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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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이탈리아 축구 연맹의 무능과 부패

당장 클럽 지도자 경력조차 변변치 못한 잔 피에로 벤투라를 무려 국대감독으로 선임했다는 데에서 이탈리아 축구 연맹의 무능과 부패를 알 수 있다.

이탈리아 축구 연맹의 부패가 대두된 것은 잔카를로 아베테(Giancarlo Abete)가 회장이 된 2007년이었는데, 이 인물은 축구와는 거리가 먼 정치인이었고, 그가 회장이 된 이후부터 이탈리아 축구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가 재임한 기간 동안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UEFA 유로 2012 준우승을 제외하면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고, 그 준우승마저 2승 3무 1패 및 결승전의 참패를 생각하면 그렇게 좋은 성적은 아니었다. 또한, 그가 재임한 기간에 열린 두 번의 월드컵에서는 모두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그 후 2014년에는 체사레 프란델리 감독과 함께 동반 퇴진했다.

그런데 2014년에 이탈리아 축구 연맹의 신임 회장으로 당선된 것은 73세의 노쇠한 정치인인 카를로 타베키오(Carlo Tavecchio)였는데, 전 AC 밀란과 이탈리아 대표팀 출신의 후보자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13]를 지지했던 팬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선거 결과였다. 타베키오는 20여년 간 한 마을의 시장을 역임한 뒤 이탈리아 재정경제부와 복지부 상임고문을 지냈을 뿐 선수나 감독 경험도 없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2014년 유벤투스 FC 소속이었던 폴 포그바에게 가한 끔찍한 인종차별, 탈세, 국민연금 미납 등으로 문제가 되었다.

그렇게 타베키오가 재임한 기간 동안에도 이탈리아 축구는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UEFA 유로 2016에서 강호 벨기에[14]를 격침시키며 8강까지 진출하고 독일에 승부차기로 석패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으나 이는 순전히 안토니오 콘테라는 명장의 덕을 본 것이고, 콘테가 계약 만료 후 첼시 FC의 감독으로 부임해 대표팀을 떠나자 이탈리아는 한없이 추락했다. 콘테의 후임자로 낙점된 잔 피에로 벤투라는 애초에 리그에서부터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던 감독이었고, 그나마 부임 직전까지 토리노를 중위권에 안착시키며 나름대로 결과물을 냈으나 대표팀 감독을 맡기에는 그릇이 작았다. 결국 벤투라는 2018 FIFA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스페인에 대패를 당하고, 플레이오프에서 스웨덴에 0 : 1로 패배해 지역예선에서 떨어졌다. 게다가 다 잘했는데 이 경기만 망친 것도 아니었는데 한 수 아래의 이스라엘, 알바니아, 마케도니아를 상대로도 상당히 고전했다.

이런 부패하고 무능한 인물이 회장이 되었으니 당연히 이탈리아 축구 연맹의 행정력은 바닥을 치게 되었고, 잔 피에로 벤투라라는 역대 최악의 졸장 선임과 러시아 월드컵 예선 탈락은 그 연장선상인 것이다. 게다가 축구협회의 부패는 함부로 건들지도 못하는 것이, 정치권이 여기에 잘못 개입하면 FIFA에게 경고를 듣고, FIFA 주관 대회의 참가 자격을 박탈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치권이 다 해결해 줄 것이라는 보장도 없는게 부패인식지수를 통해 드러나듯 애초에 이탈리아의 정치부터가 상당히 부패했는데 축구 연맹이라고 각종 부패에 연루되지 않았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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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감독의 패착

4.1. 마르첼로 리피의 패착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탈락은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선수 선발에 있었다. 이 대회 이탈리아 선수단 전체 평균 연령은 만 28.3세로 잉글랜드(28.7세), 브라질(28.6세), 호주(28.4세) 다음으로 가장 나이가 많았다. 그리고 이 23명의 엔트리 중 9명이 2006년 독일 월드컵 우승 멤버들이었다. 그런 데다 더 심각한 건 최후방 수비진과 최전방 공격진의 노쇠화였다. 우선 이탈리아의 선발 라인업을 살펴보면 이탈리아의 주장이자 주전 센터백인 파비오 칸나바로는 당시 만 36세였다. 그나마도 생일이 안 지나서 36세였을 뿐 실상 만 37세나 다름없었다. 또 라이트백 잔루카 참브로타 역시 만 33세였고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젠나로 가투소 역시 만 32세였다. 그 뿐 아니라 최전방 공격진의 빈첸초 이아퀸타도 만 31세였고 안토니오 디 나탈레 역시 만 33세였다.

즉, 엔트리의 절반이 만 30세 이상의 노장들로 구성된 셈이다. 이렇게 늙은 선수들이 대거 선발된 이유는 리피 감독의 "나이가 많다는 것은 큰 경기 경험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분명히 나이가 많은 것이 큰 경기 경험이 많다는 것은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 나이 많은 선수들이 엔트리의 절반에 이르다 보니 이탈리아는 체력과 기동력에서 저하를 보이며 매 경기 답답한 모습을 보였다. 즉, 이 선수들은 머리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다 그림이 그려지는데 몸이 안 따라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리피 감독은 그 사실을 간과했고, 그 결과 이탈리아는 이번 대회에서 공격과 수비에 심각한 문제점을 보였다.

지난 독일 월드컵 당시 이탈리아는 7경기에서 단 2실점만을 기록해 카테나치오의 악명을 제대로 보여주었다.[15]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는 3경기에서 무려 5실점이나 기록하며 녹슨 빗장으로 전락했다. 또 매 경기마다 실점을 하며 단 1경기도 무실점을 기록하지 못했다. 4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선수들이 노쇠화되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이번 대회 아주리 군단의 수비진은 무기력하고 허술했다. 그렇다고 젊은 선수들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파비오 칸나바로에겐 분명히 레오나르도 보누치라는 훌륭한 대체자가 있었다.[16] 그리고 라이트백 잔루카 참브로타에게도 크리스티안 마지오라는 젊은 대체자가 있었다. 그러나 리피 감독은 선수 선발에 있어서 매우 보수적이었고 과감하게 젊은 선수들을 발탁하기보다는 자신이 잘 알고 이미 능력이 검증된 베테랑 선수들만을 기용했다. 결국 리피 감독의 그 판단은 큰 패착으로 되돌아왔다.

공격진의 문제는 매우 심각했다. 중앙 공격수 빈첸초 이아퀸타는 190cm의 장신에 활동량이 왕성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의 장점은 정말 딱 그것 하나 뿐이었다. 스트라이커의 최고 덕목은 뭐니뭐니해도 득점인데 이아퀸타는 골 결정력이 형편없는 공격수로 악명높았다. 이번 대회에서 이아퀸타는 리피 감독의 신임을 얻어 3경기 내내 선발 출전을 했지만 기록한 골이라고는 뉴질랜드전 페널티킥 골 딱 하나에 불과할 정도로 개떡 같은 활약을 보였다. 안토니오 디 나탈레도 문제였다. 그는 세리에 A의 득점왕을 차지하긴 했지만 아주리 군단 유니폼을 입고서는 2년째 득점을 하지 못한 선수였다.

또 해당 대회 이탈리아에는 소위 말하는 크랙과 플레이메이커가 없었다. '악마의 재능'이라고 불리는 안토니오 카사노는 비록 멘탈에 문제가 있는 선수였지만 재능은 정말 뛰어난 선수로 이탈리아의 막힌 공격력을 풀어줄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는 선수였다. 그러나 리피 감독은 카사노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 이유만으로 카사노를 발탁하지 않았다. 파브리치오 미콜리는 칼치오폴리 스캔들이 터졌을 때 前 유벤투스 단장이었던 루치아노 모지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배은망덕한 선수 취급을 하며 또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반면, 젠나로 가투소 같이 한물 간 늙은 선수들은 자신과 친하다는 이유로 발탁했다. 한마디로 축구 역사상 최악의 감독이라는 낙인이 찍힌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과 유사한 행보를 보인 것이다.

어쨌든 이런 리피 감독의 노장 중용은 결국 처참하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이번 대회에서 이탈리아는 매 경기마다 상대 팀에 선제골을 내주고 시작하는 불리한 경기를 해야 했다. 이 대회에 출전한 이탈리아 공격수들 가운데 제대로 밥값이라도 한 선수는 냉정하게 말해서 슬로바키아전 후반전 45분만 뛰었던 파비오 콸리아렐라밖에 없었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 공격수들은 모두 형편없었다. 이아퀸타는 그저 쓸데없이 활동량만 높았을 뿐이었고 알베르토 질라르디노는 끝까지 한심하고 우스꽝스러운 개인기만 연발했다. 잠파올로 파치니 역시 그를 뒷받쳐줘야 할 안토니오 카사노가 없었기에 제한된 활약을 했을 뿐이었다. 안토니오 디 나탈레 역시 슬로바키아전에서 기록한 줏어먹기 골을 제외하면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다.

슬로바키아전 45분만 뛰었던 콸리아렐라가 이탈리아 공격수들 가운데 최고의 활약을 보였다. 운이 조금만 따라주었다면 콸리아렐라는 이 경기에서 단 45분만 뛰고도 해트트릭을 달성할 수도 있었다.[17] 콸리아렐라보다 더 뛰어난 활약을 한 선수는 정말 아무도 없었다. 왜 리피 감독이 콸리아렐라를 선발로 내보내지 않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러한 리피 감독의 보수적인 선수 선발은 막힌 이탈리아의 경기력을 풀어주지 못했고 이는 결국 조별리그 무승 탈락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돌아왔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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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잔 피에로 벤투라의 패착

다른 감독들도 문제가 많기는 했지만, 러시아 월드컵만큼은 함량 미달의 감독을 선임한 것이 독보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잔 피에로 벤투라 감독은 분명 세리에 무대에서 오랫동안 감독 생활을 해온 잔뼈가 굵은 감독이지만, 성공했던 시기보다 실패했던 시기가 훨씬 많은 감독이었다. 레체, 바리, 토리노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그것도 한 두 시즌에 그쳤고, 그 외의 시즌에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가 경질되거나 사퇴하기 일쑤였다. 전형적인 저니맨 감독이었던 것. 그렇다고 즈데넥 제만처럼 하위권을 전전하면서도 전술적인 임팩트를 남겼거나 유망한 선수들을 발굴한 것도 아니고,[19] 위건 시절의 로베르토 마르티네스처럼 강등권 팀을 살려내는 데에 능했던 것도 아니었고,[20] 훌렌 로페테기처럼 커리어나 역량은 아쉬워도 선수단 장악 능력이 좋았던 것도 아니었다.[21] 하다 못해 디에고 마라도나처럼 선수시절에 위엄쩌는 활약을 했던 것도 아니었다. 물론 당시 로페테기나 마르티네스 같은 중량감 떨어지는 감독들이 국가대표팀에 부임하는 등 국가대표팀 감독이라는 자리 자체의 무게감이 다소 하락한 감도 없지 않으나, 적어도 로페테기나 마르티네스는 과거에 약간이나마 업적이 있고 인지도가 있는 감독들이었다. 심지어 감독들이 비선호하는 아시아권 팀들을 봐도 대한민국의 파울루 벤투, 사우디의 에르베 르나르 등 벤투라보다 높은 급의 감독들은 널려 있었다.

그 결과 이탈리아는 조별예선에서 7승 2무 1패라는 성적을 거두었으나, 이는 같은 조에 있던 상대들이 스페인을 제외하면 이스라엘,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리히텐슈타인 등 이탈리아에 비해서는 클래스가 크게 떨어지는 팀들을 상대로 양학을 하면서 승점을 많이 쌓아와서 그런 거지 정작 스페인을 상대로는 홈에서 1:1로 비기고 원정에서 0:3으로 패했다. 거기에 이런 약체들을 상대로 10경기 21골을 기록하면서 아쉬운 득점력을 보여준 건 덤.[22] 상황이 이러다 보니 대다수 축구인들의 예상과는 달리 스웨덴을 만난 시점에서 이탈리아의 본선 진출 확률은 크게 떨어졌다. 기실 이 상황에서 이탈리아가 스웨덴보다 나은 거라고는 월드컵 4회 우승이라는 위엄쩌는 기록이 전부였다.[23] 공격력이 잘 따라주지 않는 팀이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있는 조에서 10경기 9실점만을 기록할 정도로 수비력이 탄탄한 팀을 만났으니 득점이 제대로 나올까? 아니나 다를까 이 우려는 그대로 현실이 되었고, 이탈리아는 2경기 내내 답답한 경기력만을 보여주면서 결국 본선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물론 스웨덴은 선 수비 후 역습 전략을 철저하게 고수하는 팀으로, 이 전략이 그동안 성공적으로 먹혀온 만큼 이를 파훼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이탈리아가 역습 전략을 택해 스웨덴의 전술을 꼬아두고 세트피스를 활용하거나 후반전에 승부수를 걸어 일거에 수비진을 무너뜨리는 것이 좋을 수 있으나 스웨덴이 이미 1승을 챙긴 상황에서 벌어진 2차전은 이탈리아가 무조건 공격적으로 나서야만 했다. 이미 리드를 챙긴 상황에서 스웨덴이 꺼내든 전술은 선 수비 후 역습이 아니고 그냥 수비라고 할 정도로 극단적인 수비 전술이었다. 이런 스웨덴을 상대로 미진한 공격력으로 일관한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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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로베르토 만치니의 패착

벤투라가 해임되고 들어온 만치니는 극초반에는 불안하긴 하지만, 이후 리빌딩에 성공하여 37경기 연속 무패, 유로 우승[24] 등 이탈리아가 확실하게 부활했다고 생각했다. 월드컵 재진출은 물론이고 심지어 유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될 만큼 팀이 강력해졌다.

그러나 만치니의 이탈리아는 네이션스 리그 파이널 이후 갑자기 무너지면서 유로 우승이 오히려 이탈리아 대표팀한테 저번 참사를 잊게 만드는 독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말았다.

차라리 유로 우승을 안 했더라면 지난 참사를 잊기 위해 월드컵 지역예선을 악으로 깡으로 뛰었을 지도 모른다. 허나 만치니는 전임 감독 잔 피에로 벤투라와 다를게 없었는데 리투아니아전에서 2골을 넣었던 모이스 킨을 넣지도 않았고, 조르조 키엘리니 레오나르도 보누치를 선발 기용을 하지도 않고 키엘리니만 교체 멤버로 넣었다는 것은 북마케도니아 정도는 키엘리니나 보누치 없어도 이길 수 있다라는 방심 및 자만 외에는 설명이 어렵다. 오히려 4백에 키엘리니-보누치-플로렌치를 모두 기용시켜 어떻게든 수비를 했어야 했고 동시에 모이스 킨,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마리오 발로텔리마저 소집하는 강수를 띄웠어야 했다. 인시녜와 임모빌레가 부진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카타르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독일이 북마케도니아한테 패배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에 대한 교훈과 그에 따른 대비도 했어야 했다. 월드컵을 우승하고도 왜 프랑스가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카림 벤제마를 복귀시켰는지, 그리고 16강에서 탈락하긴 했지만 벤제마의 활약으로 인해 죽음의 조[25]를 뚫고 토너먼트에 진출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네이션스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는지 누구나 알고 있다. 결국 공격수의 부재도 아쉽지만 만치니의 판단에서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후반전 추가 시간 전, 교체 선수로 투입되었다. 하지만 키엘리니는 트라이코프스키의 중거리슛을 저지하지 못하는 바람에 그게 실점으로 이어졌다. 어차피 경기 종료까지 6분밖에 안 남은 상황이고, 그럼에도 체력 문제로 교체가 필요했다면 폼이 좋거나 압박에 적극적인 선수로 교체했어야 했으나 키엘리니를 투입했고, 그게 실점과 패배로 이어진 것이다. 만치니는, 이게 조별리그 초반이었으면 남은 경기가 많아서 이래도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 경기가 지면 바로 지역예선 탈락인 플레이오프였다는 것이다. 만치니는 상황을 보지 않고 상대를 본 것이다. 아무리 산마리노 같은 허약한 팀을 만나도, 여기까지 몰렸으면 정말 무슨 짓이든 다 해야 했다. 하지만 만치니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체감하지 못했고 그 결과는 유로 2020을 우승하고도 2022년 월드컵에 오지 못한 것이었다.

다만 키엘리니는 부상으로 폼 회복이 덜 된 상태였고 보누치 역시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를 통해 만치니를 비난하기에는 다소 가혹한 측면이 있다. 물론 패배하긴 했지만 실점하기 전까지 키엘리니와 보누치 없이도 북마케도니아의 역습을 잘 차단하고 있었던 상황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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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루치아노 스팔레티의 패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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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외부 요인

5.1. 규칙 판정의 방향

말이야 많은게 심판 체계의 불합리한 변수들이 있지만, 어쨌든 역사가 거듭되면서 규칙 판정이 점차 발전하고 있다. 20세기 당시만 해도 축구 체계가 제대로 안 잡혀있다 보니 심판의 판정이 유했고, 경고 카드가 생긴 것도 1970년대 즈음에서야 생겼으니 말 다했다. 당장 펠레의 국가대표 경력 문서만 봐도 에이스 선수에 대한 고의적인 공격에 대한 기록이 다분했다. 그 사이 먼저 대회에 발돋움한 이탈리아는 발전이 덜된 축구의 규칙 체계를 이용해 이탈리아가 우선적으로 창의적인 자율성을 발전시켜나갔다. 이를 기반으로 스포츠의 외적 요소에서 튼튼히 쌓아둔 집단 지성을 통해 우세한 지식을 겸비한 팀적 축구 체계로써는 이탈리아의 튼튼한 체계가 유럽 전역을 지배할만 했다.

하지만 축구 역사의 규칙은 계속 해서 추가되고 있었다. 그리고 판정이 엄격해지거나 예민해지면서, 축구 메타는 현재에 들어서 선수의 자율화보다 포지션 규격화에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과거의 영광에 도취되었는지 계속 고전적인 방식을 채용하고 있었고, 이는 먼저 완성시킨 수비 전략에서 벗어나지 못해 공격 포지션이 발전되지 않고 고립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갈수록 파울 판정이 엄격해지면서 공격수가 파울 유도를 일으키기 쉬워졌다. 과거에 과격한 몸싸움이 21세기에 들어서 오히려 수비수들에게 역효과를 작용하고 있다. 대회의 규칙은 집중적으로 공격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판정을 주고 있기에 더더욱 수비 측면에서 불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렇다 보니 체계적인 패스 전략을 통해 날카로워진 공격수의 발전으로 더더욱 키 패스 루트가 다양해지고 있다. 이는 강한 팀일수록 텐백 전략 같은 노골적인 수비 전략을 파훼하는 전략의 수가 많아지면서 공격수들의 체급이 수비수에 비해 강해지고 있다.

6. 관련 문서



[1] 피올라와 마촐라가 있는것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피올라는 2차 세계대전으로 중단된 리그와 A매치로 인해 커리어에 더 좋은 성적을 올릴 수가 없었으며, 마촐라는 당시 암흑기였던 이탈리아의 마지막 희망으로 국가대표에서 22골이나 기록했다. 이탈리아의 국가대표 최고득점자 1~3위가 메아차, 피올라, 리바의 30골대이니 마촐라의 활약이 대단했다고 볼 수 있다. [2] 당장에 이탈리아가 월드컵에서 4강 이상에 들었던 월드컵에서 적어도 1명 정도는 득점왕이 있었다. [3] 그렇다고 중앙 공격수가 약한 것도 아닌 것이, 올리비에 지루가 꾸준히 궂은 역할을 담당하여 2선자원인 음바페와 그리즈만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다. [4] PL도 사실 득점 상위랭킹에 있어 외국인의 비중이 컸으나 그래도 꾸준히 득점 최상위권에 웨인 루니와 같은 공격수들이 있었으며, 특히 22-23시즌에는 해리 케인에 이어 아이반 토니 칼럼 윌슨까지 득점 랭킹 5위안에 세 명이나 자국 공격수들이 들어오는 성과를 맞았고, 2023-24 시즌에는 한 술 더 떠서 득점 공동 4위 이내인 6명 중 4명이 자국 선수들이다. 물론 잉글랜드는 선수들의 질과는 별개로 항상 답답한 변비축구를 구사하여 실적이 잘 안나오기로 유명한 국가라 이탈리아와는 좀 다른 방향의 문제점이 있다. [5] 카림 아데예미, 브라얀 그루다, 유수파 무코코와 같은 다음 세대도 기대할만한 자원들이 있다. 이 둘은 어린 나이에 이미 자국리그에서 경험치를 엄청나게 쌓고 있다는 점에서 플러스 요인이다. [6] 당시 발로텔리는 쉬페르리그에서 리그 베스트 11에 뽑힐 만한 활약을 펼치고 있던 만큼 아주 뜬금 없는 고민은 아니었다. 참고로 발로텔리의 경우 전성기였던 2014년 월드컵 예선에서 제 몫을 해내며 이탈리아의 월드컵 본선행을 이끈 바 있으며, 월드컵 본선 마지막 득점자도 발로텔리였다. [7] 프란체스코 토티가 2006년 월드컵 당시 28살이었으며, 토티는 독일 월드컵 이후 소속팀에 집중한다는 이유로 이른 나이에 국대를 은퇴한다. [8] 더구나 키에사 역시 잦은 부상으로 인해 기량이 저하된다고 우려를 사는 실정이다. [9] 그 돈나룸마도 2022년 현재 23세다. 한창이고 절정의 나이이지만 문제는 국대가 월드컵 본선 진출을 무려 연속으로 2회나 실패한 탓에 큰 무대를 경험할 기회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2026년에는 27세가 되기 때문에 정점에 서기 전에 월드컵에 나가 국제무대 경험도 쌓아야 한다. 그러기 전에 먼저 이탈리아가 월드컵에 복귀하는 게 우선이지만... [10] 크랙의 잠재력이 보이던 키에사 마저도 잦은 부상 때문에 기량이 하락세다. [11] 지금은 AS 로마 등 과거 칠공주의 일원이던 팀들과 SSC 나폴리 등 신흥 강호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키고 있고 AC 밀란,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등 전통의 명문팀 역시 유벤투스의 독주를 끊어내며 세리에의 재기를 주도한다. 그러나 여전히 유럽 4대 리그 가운데 가장 약세인 것은 사실이다. [12] 심지어 유벤투스는 정신을 못 차리고 다른 사건에까지 연루되면서 이탈리아 축구의 암흑기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13] 알베르티니 본인이 밀란 제네레이션 핵심 선수 중 한 명이기도 했고 축구 선수로서의 활약도 좋은 편이었다. 2006년 세리에 A에서의 스캔들인 칼초폴리 사태를 조사하기도 했다. [14] 사실 벨기에는 황금세대 소리를 듣긴 했어도 풀백 자원의 부재와 선수단 조직력 문제 때문에 리스크가 적잖은 편이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감독이 졸장 마르크 빌모츠였다(...). [15] 그 2실점도 1개는 자책골이었고 나머지 1개는 페널티킥이어서 단 하나의 필드골 실점도 없었다. [16] 실제로 보누치는 칸나바로가 은퇴한 이후 아주리 군단의 주전 센터백으로 도약해 2018년 현재도 활약하고 있다. [17] 후반전 교체로 출전하고서 이탈리아의 공격진을 이끌었지만 슬로바키아의 수비수에 의해 애매하게 골라인에 걸친 걸 심판들이 논의한 끝에 골로 인정하지 않았고 후에 골을 집어넣긴 했지만 오프사이드로 취소되었다. 결국 후반 추가시간 로빙슛을 성공시켰지만 스코어를 뒤집긴 너무 늦어버렸다. 이때는 골 라인 판독기와 VAR도 없었기에 심판의 판정도 굉장히 말이 많았었다. [18] 이후 2014년 스페인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과 2018년 독일 요아힘 뢰프 감독도 이와 비슷하게 보수적인 선수 선발을 하다가 조별리그 탈락의 쓴맛을 봤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이 두 팀은 그래도 1승은 거뒀다는 점이다. [19] 4-3-3 전형을 기본으로 선수들에게 엄청난 활동량과 공격을 요구하는 전술인 닥공 전술이었다. 빈공간이 많이 나오고 수비도 약해져서 엄청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지만, 카테나치오, 즉 수비를 중요시하는 이탈리아의 리그 세리에 A에서 사용하여 큰 임팩트를 준 전술이다. [20] 위건에서의 마지막 시즌 때는 결국 강등당했지만, 기적적으로 FA컵에서 우승하며 구단에게 첫 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 트로피를 안겼고 UEFA 유로파 리그까지 진출시켰다. [21] 로페테기는 포르투,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레알 마드리드 등을 거치면서 모두 불명예스럽게 팀을 떠났으나 선수단과는 언제나 관계가 좋았다. 다니엘 카르바할이 지금도 그는 좋은 감독이며 최고의 감독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전술적이나 인격적으로는 훌륭하고, 레알에서는 그다지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말하며 선수단과의 관계가 굉장히 좋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로페테기는 리더십이나 인성 면에서 호불호가 심히 갈릴지 언정, 전술적인 면이나 선수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재능은 매우 확실한 감독으로 스페인 국대 시절에도 부임 후 14승 6무로 무패 행진을 달리고 있었으며 이후 세비야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레알 마드리드 시절의 졸장 이미지를 꽤 탈피하여 벤투라와의 비교가 로페테기에게 굴욕이 될 정도이다. [22] 경기당 2골이 왜 아쉽냐면 같은 시기 스페인은 이들을 상대로 10경기 36골을 때려넣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시기 스페인은 당초 기대했던 최전방 공격수 자원들이 다들 어딘가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던 시기였는데도 이런 득점력을 보여주었다. [23] 대다수의 축구인들은 이것 때문에 이탈리아가 스웨덴을 누르고 올라간다는 희망고문을 갖고 있었다. 월드컵에서 우승을 한 팀이 실제로도 다른 팀들에 비해 저력이 강해 허약한 스쿼드로도 어떻게든 뚫어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 예시가 1990년 월드컵에서 디에고 마라도나로 뚫어내고 결승에 올라간 아르헨티나, 2006년 월드컵에서 지네딘 지단으로 똟어내고 결승에 올라간 프랑스 등이 있다. [24] 심지어 독일 월드컵 16강 때 호주에게 논란이 있는 승리가 있었으나 유로 2020은 단 한 건의 논란조차 없었다. [25] 독일, 포르투갈, 헝가리와 같은 조에 편성되었지만 조 1위로 통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