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옹정황제의 여인
{{{#!wiki style="min-width: 100px; display: inline-block; min-width: 15%" {{{#!wiki style="margin:0 5px; display:inline-block" {{{#!folding [ 등장인물 ] {{{#!wiki style="margin:-5px 0 -10px; word-break: keep-all" |
<tablewidth=100%><tablebgcolor=#000> 주요 인물
|
||||
견환 | 심미장 | 안릉용 | 황제 | 윤례 | |
주요 인물
|
견환의 심복
|
||||
오라나랍 의수 | 연세란 | 완벽 | 최근석 | 온실초 | |
견환의 심복
|
기타 후궁
|
||||
유주 | 제월빈 | 이정언 | 풍약소 | 비운연 | |
기타 후궁
|
|||||
조금묵 | 여영풍 | 부찰 의흔 | 정빈 | 순아 | |
기타 후궁
|
|||||
하동춘 | 과이가 문원 | 여앵아 | 채빈 | 섭란의 | |
기타
|
|||||
홍시 | 홍력 | 롱월공주 | 청앵 | 소배성 | |
기타
|
|||||
전추 | 맹정한 | 마격 칸 | 견옥요 | 교송지 | |
1. 개요
2011년에 방영한 BTV의 중국 드라마 〈 옹정황제의 여인〉의 등장인물을 서술한 문서.드라마로 유명해진 만큼 드라마를 기준으로 설명이 되어있으므로 원작내용은 따로 각주나 문단을 나누어서 설명한다.
2. 주요 등장인물
3. 후비들
3.1. 드라마
후궁은 한군기, 만군기, 몽군기에서 고루 뽑는다. 일단 귀인(貴人)의 숫자를 맞추려는 것으로 보아서는 적어도 쿼터제인 것 같아 보이는데, 이에도 불구하고 작중에서 등장하는 후궁들은 한족[1][2]이 대다수이다. 이건 당연하다. 원작의 후궁들은 모두 한족이니까.[3]확실히 한족으로 밝혀진 것이 주인공 트리오인 견환, 안릉용, 심미장부터 시작하여 이름을 보면 경빈 풍씨(풍약소), 양빈 조금묵, 화비 연세란, 녕빈 섭란의, 묘음낭자 여앵아에 영귀인 채빈까지 다 한족 이름이다. 물론 제비도 한족 출신이다. 모티브인 제비 이씨가 한족인데다, 황후가 "하긴 견환도 자네처럼 한군기 출신이니…"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기본적으로 황후가 기귀인에게 "너와 나, 그리고 부찰 귀인만 만군기고 나머지는 모두 한군기다."[4]라는 말을 한 것으로 보아, 그냥 대부분 한군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실제로 옹정제의 고위급 후궁들은 희비 뉴호록씨나 황후 오라나랍씨를 제외하면 한족출신이 많았으니.
반면 만군기는 황후가 직접 소수라는 말도 했고 실제로 소수이다. 황후야 정궁이니 제외하고, 확실히 밝혀진 만군기는 부찰씨인 부찰귀인과 과이가씨인 기귀인, 순상재[5], 나중에 만주족으로 귀화하는 뉴호록씨인 희귀비 정도이다.
몽군기는 존재감이 더 없어서 작 중 몽군기로 확인되는 인물은 정빈 한 명 뿐이다. 이마저도 뒷설정으로만 그렇다는 것이고, 작 중에서는 박이제길특 귀인과 정빈이 동일인이라는 언급이 없다. 그 외에도 설정상 강 상재가 정빈의 시녀 출신이긴 하나 몽군기 소속인지는 불명.[6] 실제 몽골은 청나라 대대로 굉장히 중요한 위치여서, 실제로는 몽군기 출신 황후와 후궁이 상당히 많았다. 특히나 청 초기는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져서 청태종의 황후와 최고위 후궁 4명이 모두 몽골 출신이었고, 순치제의 정궁 황후들 역시 순치제의 총애와는 관계없이 모두 코르친 몽골 출신이었다. 드라마의 배경은 옹정제 재위 시기이니, 어쩌면 몽군기의 위상이 그 전에 비해 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
후궁의 품계 일람 | ||||||||
황귀비 | 귀비 | 비 | 빈 | 귀인[7] | 상재 | 답응 | 관여자 | |
1명 | 2명 | 4명 | 6명 | 인원수 제한없음 |
설사 서열이 밑이라도 궁에 먼저 들어온 선배이면 친밀도와는 상관없이 "언니"라고 불러주는 것이 관례인 듯하다. 물론 말 놓는 것은 품계가 높은 쪽이 먼저 해야 한다.[10] 단계를 건너뛰거나 할 수 없다고 방약 상궁은 말했으나 실제로 2계급 특진의 예로 섭란의와 단비, 송지가 있어서 별 의미가 없다. 게다가 화비도 비 직위에서 귀비를 건너뛰고 황귀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실제로 청나라에서 황제가 법도 무시하고 몇 계급 올려주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건륭제의 후궁 중에 귀인에서 비가 된 사례도 있다. 강등은 단계없이 가능한 것 같다.[11]
황귀비가 사실상 후궁의 실세라고 한다. 직위는 황후가 더 높지만 황후를 정하는데 정치적인 면이 많이 고려되고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웠고 건국 초기에 복속한 몽골을 우대하여서 귀족 서열이 만군기>몽군기>한군기이기 때문에 출신도 제한된다.[12] 따라서 황제가 마음에드는 사람을 마음대로 황후로 정할 수 있는게 아니다. 하지만 1명만 둘 수 있고 직위도 황후 바로 아래인 황귀비는 오로지 황제의 총애로 결정된다. 화비도 황귀비로 승급할 가능성이 보이자 바로 득의양양해서 황후를 대놓고 무시하는 발언을 해댔다. 견환이 단비를 황귀비로 추천했을 때도 황제는 자신이 가장 총애하는 견환을 황귀비로 임명해 대외적으로도 그 총애를 널리 알리고 싶어했다.
그 외에도 황제의 은총을 받는다면 실질적인 대우와 발언권이 더 높을 수 있으나 어디까지나 암묵룰이기 때문에 은총을 입었다고 대놓고 설치면 인실좆을 당한다.
후궁을 둘 수 있는 숫자는, 귀인 이하는 제한 없이 둘 수 있어서 태후의 말대로 그냥 "널려 있으나", 빈부터는 정해진 숫자가 있다. 빈이 여섯, 비가 넷이고, 귀비가 둘, 황귀비가 하나이다. 또한 빈 이상의 후궁은 한 궁의 최고 책임자이기도 하다. 전자(모자 같은 것)를 쓸 수 있는 것이나[13] 정식 양육권이 있는 것도 빈 이상부터이며, 마마라는 존칭으로 불릴 수 있는 것도 빈부터이니[14] 이렇게 귀인과 빈 사이에는 넘사벽의 구분이 존재한다.
작중에서 빈을 기점으로 고위 후궁, 혹은 실질적 후궁으로 나뉘는 모습이 종종 등장한다. 황제가 처음 견환을 총애하기 시작할 때 태후에게 견환을 소개하려 했으나, 태후는 나중에 빈이 되면 모를까 고작 귀인은 볼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완상재에서 완귀인으로 승급할 때는 호감이 있다는 이유로 즉석에서 승급시키나, 이후 심미장이 가짜 회임인 줄 모르고 회임했다고 생각했을 때는 혜빈으로 올리는 걸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다. 정확히는 미장을 귀인에서 빈으로 승급시키고 싶어하나 황후가 아직 출산도 하지 않았는데 빈으로 올리는 건 시기상조이고, 아들이 태어났을 때 기쁨을 더하기 위해 빈으로 올리자고 하자 동의하고 일단 "혜"라는 봉호만을 내린다. 황귀비의 경우는 부황후 급이라고 작중에서 언급된다.
이론상 최하위 등급은 관여자[15]지만 실질적 최하위는 답응으로, 수녀 간택으로 선발되는 후궁들은 아무리 낮아도 최소 답응으로 시작한다. 궁녀들은 법도상 관여자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교송지는 답응으로 시작했고, 실제 관여자 단계를 겪은 사람은 여앵아 뿐이다.
황후의 말이 "심귀인이 회임한 아이는 황자가 분명합니다."라는 공치사가 아닐 수도 있는 게 이미 딸이 있는 조금묵이 귀인, 유산했으나 회임한 적 있었던 흔상재와 부찰귀인이 각각 상재와 귀인이다. 관여자에서 귀인까지의 승급은 어차피 귀인 이하의 계급이 의미가 없기 때문에 황제 마음대로 할 수 있으나 빈이 되려면 황제도 내명부의 파워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균형을 고려하는 듯. 원래 총애했는데 회임까지 했거나, 황자의 어미이니만큼 체면을 세워줘야 한다는 명분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황후와 공주, 빈 이상의 품계를 지닌 후궁의 1인칭은 본궁(本宮)이다. 견환은 태후가 되었을 때, 의수는 자신이 태후라고 주장할 때 애가(哀家)라는 1인칭을 썼다. 본궁은 한 궁의 궁주이기 때문에 쓰는 표현이고, 한 궁의 궁주가 아닌 낮은 신분의 후궁들은 "본 소주"라고 표현한다.[16] 애가는 남편이 죽어[17] 슬픈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는 표현. 후궁들의 경우 황제황후 앞에서는 황후비빈 구분없이 신첩이고[18], 자기보다 품계가 높은 황후 아래 후궁에게 말할 때는 빈첩이라고 한다. 태후, 황제, 황후 앞에선 황제, 황후, 후궁, 황손 모두 아신(儿臣)이라 칭한다.
후궁은 겉보기에는 화려하나 사실 헬게이트나 다름없는 곳이다. 견환이 첫 입궁하여 완벽과 유주와 더불어 자금성을 보고 "정말 예쁘다, 다들 여기에 오고 싶어하는 이유를 알겠다"며 감탄하지만 이후에 희귀비가 된 그녀는 이 곳을 "어디보다도 답답한 곳", "죽음이 최고의 해탈인 곳"으로 묘사한다. 게다가 비빈의 자살은 큰 죄라 가족들까지 끔살당하기에, 그 죽음마저 자기 원하는 대로 받을 수 없다.
아래 목록은 서열이 워낙 휙휙 바뀌는 옹정황제의 여인 특성상, 등장순서대로 정리하고 등장순서가 겹칠시 최초등장시 서열이 높은 쪽을 먼저 쓴다.
문서 제목은 본명이 아니라 최초 등장시의 품계로 통일한다.(예: 조금묵 x 양빈 x 조귀인 o)
순원황후 | 하상재 | 단비 | 제비 | 여빈 | 경빈 | 조귀인 | |
오라나랍씨 | 하동춘 | 불명 | 이씨 | 불명 | 풍씨 | 조금묵 | |
주유칙 | 하월청 | 제월빈 | 탕정언 | 불명 | 풍약소 | 조금묵 | |
흔상재 | 부찰귀인 | 순상재 | 여답응 | 지답응 | 기귀인 | 녕귀인 | 영귀인 |
불명 | 부찰 의흔 | 순아 | 여앵아 | 교송지 | 과이가 문원 | 섭란의 | 채빈 |
여영풍 | 두패균 등[21] | 방순의 | 여앵아 | 교씨 | 관문원 | 섭란의 | 강심수 |
-
방귀인
한 때 쇄옥헌의 주인이었던 여인. 유산하고 너무 상심하는 바람에 황제의 기분을 해치고 책임을 화비에게 덮어씌우려다 노여움을 사 냉궁으로 쫓겨나게 된다. 견환이 입궁했을 때는 이미 냉궁에 있었는데, 의외의 장면에서 다시 등장한다. 미장이 견환에게 냉궁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 데려갔을 때 미친 여빈의 옆에서 제 몸의 이를 잡아먹는 모습으로 나온다. 방귀인이라고 직접 나오진 않고 임신을 했다가 유산하고 냉궁에 갇혔다는 설명이 있으므로 방귀인으로 추정되는 것.
-
정빈
강상재와 언제나 어울려 다니면서 여기저기 참견하는 성격나쁜 후궁. 견환의 환궁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항목 참조.
-
강상재
맨 왼쪽의 가자두가 빈약한 여인이 강상재이다. 강상재의 거주지는 아마 연희궁으로 추정된다.[22] 견환이 희비로 환궁한 뒤 등장하는 두 후궁 중 하나로, 견환이 출궁했을 때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황제는 수녀 간택은 한 번[23]만 딱 하고 다시는 안 하겠다고 분명히 천명했는데 어떻게 충원된 것인지는 불명이나 기귀인처럼 공신의 딸이거나 영귀인처럼 왕부에서[24] 뽑아올린 여자들인 것으로 추정. 허나 진실은 저 너머에.[25]
편집으로 삭제된 내용이 웹상에 나온적이 있는데 정빈은 박이제길특[26] 귀인으로 몽군기이며 견환과 입궁동기라고 한다.[27] 견환이 감로사로 가기 전까지 총애를 못받다가 견환이 감로사로 간후 견환처럼 꾸며서 잠시 황제의 총애를 받아 정이라는 봉호를 받고 빈으로 승급했지만 자신의 총애가 오래 가지 못할것이라는 걸 알아서 자신의 시녀를 황제에게 바쳤고, 그 시녀가 바로 강상재이다. 이후 안릉용에게 총애를 빼앗겼고 정빈과 강상재가 안릉용을 싫어하는 이유도 그때문이라고 한다.
견환이 희비로 입궁하는 장면에서 이를 맞이하며 "저 사람이 희비라며?", "옛날엔 완빈이었다는데…", "폐하께서 희비라면 희비인거지 뭐"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으로 첫선을 보이며 별달리 세력도 없는 별 볼일 없는 조연이다. 후궁들이 대숙청(…)당한 후 조회에 등장하는 후궁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그냥 의자를 채우는 역할 정도로 보는 것이 좋다. 비중도 없고 총애도 없다.[28]
작중 행적을 보면 긍정적인 면모는 하나도 없고 아군적 가리지 않고 마구 깽판치고 다니다가 방법당하기만 한다. 근석과 소배성 연애 스캔들이 터진 이후 기빈과 같이 견환 뒷담화를 까는 걸 보면 기빈과는 잘 노는 걸로 보이고, 안릉용이 목소리를 잃어 냉대 받을 때 처소에 쳐들어가 부적을 붙이는 등 구박했으며 질낮은 탄을 주다가 황후의 심복 전추에게 걸려 벌을 받았다. 6황자 홍염의 친자확인 사건 때 은근슬쩍 견환을 비방하다가 6개월 감봉 처분을 받는다. 하지만 안릉용도 괴롭히는 걸로 봐선 딱히 황후나 기빈 (기귀인)의 편이라기 보다 그때그때 유리한 쪽에 붙는 것 같다. 특히 멍청하기까지 하다. 강상재는 68화에서 릉용의 아이가 황제의 실수로 유산했고 황제가 슬퍼하던 참에 꽃단장하고 와서 황제를 화나게 만들었다.[29] 다만 항상 같이 다니는 정빈은 의외로 똑똑할지도 모른다. 황후는 견환이 감로사로 간 직후 안릉용과 기귀인을 빈으로 추천해서 빈으로 올렸고 황후 성격상 자기 편이 아닌 다른 후궁이 빈으로 승격하는 걸 가만히 보고 있을리가 없기 때문이며 릉용의 아이가 죽었을 때도 정빈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기빈은 미인이기라도 하지 이 둘은 그렇지도 않다. 그냥 못생긴 기빈이 2개 복제되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듯.
이후 황제가 죽은 후 사지멀쩡하게 등장한 후궁이 단황귀비, 경귀비, 흔빈 뿐이라는 것을 보면 이 둘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지? 일단 모든 후사가 없는 후궁들이 그랬듯이 후사도 없는데다가 옹정황제의 여인에서 나온 멍청하고 성질만 더러운 악역의 말로 법칙을 보자면 비구니가 되어 궁에서 쫓겨났을 걸로 예상이 된다.[30] 심지어 장례식 씬에서도 단비가 황귀비니까 맨 앞에, 그 뒤에 귀비인 견환과 경귀비가 서고 경귀비 바로 뒤에 흔빈이 서 있는데, 그 뒤에 정빈이나 강상재는 보이지 않고 바로 옥요가 있다. 아마 이 때부터 출궁당했던 것 같다.
-
손답응
견환이 희귀비가 되고 나서 윤례가 변방으로 쫓겨나고 3년이 흐르는데 아마 그 사이에 충원된 것 같아 보이는 후궁이다. 지위가 낮은 걸로 보아 아마 왕부의 시녀 출신인 듯 싶다. 사실 등장인물이라고 소개해놨지만 등장하지는 않는다. 견환과 경귀비, 단황귀비의 대화에서 잠깐 언급될 뿐이다. 시위와 사통하는 것을 경귀비가 잡았는데 그 때 마침 손답응의 빨간 속옷이 시위의 허리띠에 걸려 있어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고. 황제는 이 소식을 견환을 통해 전해듣는데, 아마 견환이 자기 재량에서 처리할 수 있음에도 황제의 병세를 더 불릴 심산으로 흘린 것으로 보인다.[31] 황제는 매우 빡쳐서 병상에 누운 와중에도 둘 다 능지처참하라고 한다. 원작에선 견환이 황명을 날조하여 처형이 아닌 폐서인으로 강등하고 출궁시켰다.
어떻게 보면 황제가 후궁들의 배신에 매우 민감하다는 사실을 견환에게 일깨워준 여자. 황제는 어린 시절 자기 어머니가 아버지인 선황제를 배신하고 사통하는 것을 목격한 이후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겼고 손답응의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한 것. 견환은 황제를 가장 빡치게 하는 소재를 얻었고 황제가 임종할 때 후궁들의 배신, 즉 심미장과 자신의 사통을 폭로해 황제가 눈도 못 감고 죽게 만든다.추측이지만 황제가 병상에 눕기 전에 두 답응을 양옆에 끼고 앉아 수수께끼 놀이를 하다 피를 토하는데 그 때 있던 두 답응 중 한 명이 손답응일 가능성이 있다.그 뒤 황제가 임종 직전까지 갔을 때 후궁들이 꿇어앉아 울고 있는 장면이 있는데 이 때 상술한 두 답응이 모두 보인다. 이미 손답응 사통 사건 때 경귀비가 가두어 두었다고 나오며 황제가 둘 다 처형하라는 명이 내린 판국에 둘 중 하나가 손답응이라면 멀쩡히 앉아서 곡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따라서 손답응의 정체는 아직도 미지수.
-
조답응
드라마상에서 편집되어 나오진 않지만 촬영한 사진은 나온적이 있다. 착하고 선량한 인물로 총애를 받은적이 없지만 조용하게 살고 있다가 화비가 죽은 후 화비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 황제의 눈에 띄여 상재로 승진했으며 심미장이 죽은 후 심미장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 견환의 눈에 띄여 견환의 요청으로 귀인이 되고 운귀인이 되었다. 성과 봉호는 원작의 조선혜에게 따왔는데 성격은 반대다.
작중에서 언급만 나오고 등장하지 않은 5황자 홍주의 생모와 옹정제의 왕부 시절 적복진이던 순원황후에게 오만하게 굴다 2시진 동안 꿇어 앉는 벌을 받았던 측복진에 관한 얘기도 짤막하게 나온다. 그 뒤는 어떻게 됐는진 불명이나 작중 옹정제가 등극 후엔 보이지 않는다. 다만 4황자 홍력의 말로 볼 때, 홍주의 생모인 후궁은 생존해 있는 듯하다. 아들과 함께 궁 밖에 사는지도 모른다.
3.2. 원작
후궁 품계 일람 | |||||||||||||||
정1품 | 종1품 | 정2품 | 종2품 | 정3품 | 종3품 | 정4품 | 종4품 | 정5품 | 종5품 | 정6품 | 종6품 | 정7품 | 종7품 | 정8품 | 종8품 |
귀비 숙비 현비 덕비 |
부인 2명 | 비 3명 |
소의 소원 소용 숙의 숙원 숙용 수의 수원 수용 |
귀빈 5명[32] | 첩여 | 용화 |
완의 방의 분의 덕의 순의 |
빈[33] |
소의 소원 양원 양제 |
귀인 |
재인 미인 |
상재 낭자 |
선시 | 채녀 | 경의 |
부인과 비 본래 각각 3명, 4명까지 둘 수 있으나 후반부의 4권에서 견환이 숙비가 된 뒤 궁주의 수를 줄여 2명, 3명이 되었다.
여담으로 부인이나 현비로 봉해진 여인들은 모두 끝이 안 좋았다. 석화부인으로 봉해졌던 모용세란, 사후 공각현비로 추증된 각비 탕정언, 장민부인에서 현비로 봉해졌던 호온용, 잠시 사숙현비로 추존된 선제의 옥액부인까지 모두 안 좋은 결말을 맞았다. 곧 부인으로 봉해질 예정이었던 안릉용 역시도. 유일한 예외는 정일부인 서연의.
본래라면 처음부터 높은 품계로 봉해질 수 있었으나 순원황후와 관련된 덕비 & 현비 사건 이후에는 신분이 높아도 입궁시 낮은 품계로 봉해지며 빈이 마지노선이다.
후궁이 대략 60여명 이상인데, 이 중 40여명이 죽거나 폐출되거나 냉궁으로 쫓겨나거나 미치거나 해서 리타이어한다.
-
덕비 감씨 & 현비 묘씨[34]
주유칙이 황후가 된 후 들어온 후궁들이다. 총애를 받는 순원황후를 질투해 불손하게 굴었고, 의수의 이간질과 부추김으로 더 심해졌다. 결국 폭발한 순원황후가 2시진(4시간) 꿇어앉는 벌을 내렸고 회임 중인 현비가 유산하여 충격받은 순원황후는 쓰러졌다. 현릉은 두 사람을 폭우 속에서 무릎 꿇고 있도록 했고, 순원황후는 자기 때문에 현비가 유산했다며 괴로워하면서 벌을 주지 말라고 말하려 했으나 결국 말하지 못했다. 현릉은 순원황후가 죽은 후에 이들을 순장시켰고 앞으로도 영원히 추존받지 못하게 했다.고대에 질투해서 벌 받은 것은 이해가 가도 아이까지 잃었는데 황후가 멘탈 약해서 쓰러진 책임까지 물으면 어쩌라는건지
-
사이운
종6품 사미인 → 정6품 강(康)귀인 → 종5품 사양제 → 정5품 강빈
견환과 함께 당리궁을 쓴 후궁 중 하나로 순원황후의 코와 닮아 현릉의 총애를 받았으나 곧 잊혀졌다. 드라마에선 흔상재가 여씨에게 해코지를 당하나 원작은 사미인이다. 승급이 느려 견환보다 먼저 입궁했음에도 육궁대봉 때에는 양제가 되었고, 궁에 있는 한 명의 노인이라는 묘사와 함께 겨우 빈이 되었다. 마지막엔 같은 궁에 사는 왕귀인의 회임 소식을 알리러 현릉에게 갔다가 왕귀인이 사통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대신 분풀이 당했다. 현릉은 4개월 전부터 앓아누운 상태였는데, 왕미인은 회임 3개월차였다 게다가 4개월 동안에도 시침한 후궁들 중에 왕귀인은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이 무렵의 현릉은 생식 기능을 잃었다. 그렇기에 견환은 사이운을 현릉 앞에 데려가고 회임 소식을 들은 현릉은 기뻐하다가 기록을 확인하고 열받아 사통한 왕미인 대신 그 소식을 자신에게 전한 사이운의 따귀를 치고 창문으로 뛰쳐가 비를 맞는다. 견환은 남에게 빌붙는 그녀의 태도를 좋아하지 않아 아무 죄가 없음에도 어전에서 무례하였다는 죄목으로 왕미인, 궁주인 조선혜와 함께 궁에 봉쇄시켰다.
-
서연의
정8품 서채녀 → 종6품 서재인 → 정6품 서귀인 → 정5품 서빈 → 종4품 서완의 → 정4품 서용화 → 종3품 서첩여 → 정3품 정(貞)귀빈[35] → 종2품 서숙용 → 정2품 정비 → 종1품 정일부인(貞一夫人) → 정이태비(貞怡太妃)
견환이 환궁한 후 등장한 인물로[36] 현릉은 연의를 총애하진 않아도 중병에 걸릴 때 그녀가 정성껏 간호해 주었기에 존중해주고 책을 읽는 모습이 견환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종종 찾았다고 한다. 외모는 결코 예쁘지 않고[37] 갸냘프며 왼쪽 눈 아래에 눈물점 같은 사마귀가 나있지만 눈은 영롱하다고 묘사된다. 책을 좋아하며 고요한 성정을 가졌으며 오로지 현릉만을 사랑하는 여자로 현릉이 견환을 사랑한다는 걸 알고 견환을 돕고 견환은 2황자 여패를 회임한 연의를 지켜준다. 드라마 후반부에 단비의 행보는 대부분 서연의의 행보이다.[38] 견환은 연의가 현릉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기에 현릉에게 복수하면서 연의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원작에서 친자 확인 때 피검사를 받은 황자는 견환의 아들인 여함이 아니라 서연의의 아들인 여패다. 당시에 서연의는 내전에 있다가 몸이 좋지 않아 자기 궁으로 돌아갔고, 완벽이 독단으로 여함과 여패를 바꿔치기 해 여패가 친자확인을 받는다. 견환이 호갑투에 백반을 숨겼고 현릉과 여패의 피가 섞이게 한다.
연회에서 야생곰이 날뛸 때 홀로 몸을 바쳐 현릉을 지키려고 했고 현릉은 연의의 마음을 깨달아 정일부인으로 봉한다. 인기가 많은 캐릭터라 드라마에서 나오지 않아 원작 팬덤의 아쉬움을 샀다. 안티 없이 인기 많은 캐릭터는 서연의와 섭란의가 유이하다.
견환의 자식들을 아끼며 견환은 그녀에게서 현릉을 사랑했던 과거의 자신을 겹쳐보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견환의 인간성을 상징하는 캐릭터.
-
부여음
종5품 부소의 → 종4품 부완의 → 종3품 부첩여
견환이 출궁할 당시에 들어온 후궁. 처음에는 비천한 출신으로 나왔지만, 수정판에서는 무난한 가세에 기산왕비의 시녀 출신으로 나온다. 순원황후도 약간 닮았지만[39] 견환을 더 닮았고[40] 견환의 대역으로서 가장 총애받은 후궁이었다. 화비에게도 뒤지지 않는 미모이며 속세에 귀양 온 선녀와 같다고 한다. 그러나 머리가 비었고 오만하여 다른 후궁들의 어그로를 샀다. 부여음이 안릉용의 종용으로 오석산을 현릉에게 썼고 이것이 들통나 태후에 의해 사사된다.
-
영적작
종8품 영경의 → 종7품 영선시 → 정7품 여용(余容)[41]낭자 → 정6품 여용귀인 → 정5품 영빈
서연의의 시녀로 화비를 닮은 외모 때문에 현릉의 눈에 띄여 후궁이 되었다. 사실은 화비의 여동생인 모용세작[42]으로 가문이 망한 후 노비가 되었다가 궁녀가 되었다. 견환과 현릉은 화비와 관련있다는 걸 진작에 눈치챘으나 현릉은 화비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 모르는 척했다.[43] 후궁이 된 후 견환을 모함하는 일을 일삼다 결국 견환을 독살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사사된다.
-
조선혜
정5품 운(韵)빈 → 정4품 조용화 → 종3품 조첩여 → 정3품 운귀빈
황후파 후궁 중 한 명으로 친자 확인 사건 때에는 은근슬쩍 기빈 관문원의 편을 들었고, 수녀 선발 후에는 견환에게 늙었다고 디스하며 어그로를 끌었다. 의수가 몰락한 후에는 호온용에게 붙었으나 호온용마저 몰락하고, 현릉이 병석에 눕자 통곡을 하다가 견환의 명령을 받은 소윤자에게 통곡을 멈출 때까지 뺨을 맞는다. 이후 견환이 왕미인의 사통을 꼬투리 삼아 궁주로서의 책임을 물어 궁 자체를 봉쇄해 냉궁으로 만들어 버렸다.
-
유령한
종5품 유양원 → 정5품 신(慎)빈 → 종4품 유덕의 → 정4품 유용화 → 정3품 신귀빈
견환과는 입궁 동기로 초중반 이후에 총애를 잃고 조용히 산다. 온유한 성격으로 황후에 의해 연금된 서연의를 도와주고, 견환과 우호적으로 지낸다. 어류와 사향에 알레르기가 있다.
-
주패
정6품 경(慶)귀인 → 정5품 경빈 → 정4품 주용화 → 종3품 주첩여 → 정3품 경귀빈 → 정2품 경비 → 경공태비(慶恭太妃)
견환이 출궁한 이후에 들어온 후궁. 견환이 환궁할 때까지 총애를 받았으며 당시 귀빈으로 있던 관문원과 궁을 함께 쓰고 있었으나 입궁 동기들이 암투에 희생되고, 관문원이 자신을 멸시하자 견환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요청한다. 이후 관문원이 빈으로 강등되는 빌미를 만들어 궁의 주인이 되며 이후 견환이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첫 대면 때 견환이 현릉의 안목에 감탄할 정도로 매우 예쁘다고 한다.
드라마판 흔상재의 2부 행적이 바로 원작의 주패의 행적이다. 수정판에서는 여영풍과 합쳐져서 등장하지 않는다.
-
두패균
정6품 염(恬)귀인 → 종5품 두양제 → 정5품 염빈 → 정2품 염비
드라마에 나오는 부찰귀인의 원형이 되는 캐릭터 중 한 명으로, 임신했으나 너무 유세를 떨어 다른 후궁들의 어그로를 끌었고 각비 탕정언에 의해 유산된 후 현릉의 총애도 잃어버렸다. 이후 현릉의 생일날을 기념하는 연회에서 섭란의가 표범을 이용하여 현릉을 죽이려고 할 때, 현릉에 의해 모귀인 이씨[44]와 함께 고기방패가 되어버린다. 이로 인해 죽게 되고, 사후에 추존되어 비가 된다.
수정판에서는 시위가 죽고, 팔이 잘린 후궁은 모귀인 이씨에서 춘빈 나석석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두패균은 방의 진씨와 합쳐져서 견환을 모욕했다가 총애를 회복한 견환을 두려워하여 미쳐버렸다.
-
위균
황후 의수가 수녀선발에서 추천한 세 명 중 한 사람으로 견환과 3, 4할 정도 닮았다. 새로 들어온 후궁 중에서 가장 높은 정6품 귀인에 봉호 옥 이름 경(瓊)을 받았다. 그러나 입궁하자마자 거만하게 굴고 건강이 안 좋다며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그런데 밤에 견환을 찾아오고 거절당하자 다음 날 다시 찾아오는데 결국 견환이 만나주고 위균은 건강이 안 좋으니 입선한 후궁들이 황후와 비빈들을 알현하는 자리에 늦는다고 말한다. 다음 날 의수가 데려오게 하는데 처소에 없었고 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위균이 위림의 먼 친척이라 견환이 의심받게 되고 조사를 해보니 견환의 내감인 소회자가 위균을 물을 나르는 나무통에 숨겨 궁 밖으로 빼돌린 것이었고 위균은 자신의 표가(表哥)[45]와 사랑하는 사이였다. 이러니 견환이 심복인 위림을 위해서, 총애를 빼앗을 젊은 후궁을 배제하기 위해서 이런 일을 벌였다고 의심받는다. 위균은 자신의 정인과 살해된 채로 발견되고, 현릉은 견환의 실권을 빼앗는 정도에서 마무리하고 견환은 잠시 총애를 잃는다.
수정판에서는 에피소드 자체가 사라지면서 미인 강씨, 모귀인 이씨와 함께 등장하지 않는다.
4. 심복들
남자로는 태감(고자), 시위(고자 x)가 있으며, 여자는 궁녀들이다.친정에서 데려온 시녀들은 "소저"라고 불리며 나름 특별한 대접을 받는 듯하나[46] 일반 양산형 궁녀들은 대부분 소모품으로 취급된다. 걸핏하면 싸닥션을 맞고,[47] 허무하게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옹정황제의 여인의 시녀들의 특징이 있다면, 절대적으로 충성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배신을 자주 때리거나 해서 지독히도 도움이 안된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리고 수석 시녀들은 대체로 자기 주인의 성격을 닮았다.[48] 시녀들이 자주 보이는 모습은 녹봉 등 필요한 물품을 내무부에 수령하려 다녀오거나, 소주의 팔을 잡거나 해서 높은 굽을 신었을 때도 넘어지지 않게 부축해주거나, 여름이면 부채 셔틀 or 인간 선풍기로 봉사하거나 하는 모습이다. 특히 여름에 회합이 있거나 할 때는 인간 선풍기로 화한 궁녀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또 한 주인을 모시는 쪽수가 좀 많아지면 옷 색깔을 한 색깔로 통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궁녀들의 경우 일반 평민과 비교한다면 정말로 신분이 낮은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전부 기인(旗人)들로, 일반 민인(民人)들과는 달리 국가로부터 여러 혜택을 받는 특권 계층 출신들이다. 특히 태후나 황후처럼 궁중에서도 높은 사람들을 모시는 궁녀들은 팔기 중에서도 상3기에 속한 사람들로만 뽑았다고 한다. 즉 궁녀들도 미장이나 견환, 하다못해 안릉용처럼 팔기라는 특권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었지만, 다만 이들은 일반 팔기 귀족 출신의 후궁들과는 달리 내무부 포의(包衣) 3기 소속이 대부분인데다, 황제의 눈에 들지 못했기 때문에 궁녀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궁에서 일하는 사람을 아무나 뽑아 쓸 수는 없는데다가 황제의 후궁이나 황족의 복진을 충원할 필요성도 있었으므로, 청 황실은 정기적으로 수녀 선발을 통해 청나라의 특권계층인 팔기의 여성들 중 일정 인원을 뽑았다. 이들 중 황제의 눈에 들거나, 혹은 그 중에서도 문벌이 좋을 경우[49]에는 후궁이나 황족의 복진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궁녀로 일하다가 결혼할 나이가 되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출궁한다.[50] 이렇게 출궁한 궁녀들은 궁중의 품위와 예법을 배웠다는 이유로 평판이 좋은 편이었고, 또 궁중에서 일하면서 상류층 사람들과 연이 닿는 경우가 많아 좋은 혼처를 구하기가 조금 더 쉬워진다는 이점이 있었다. 그래서 가난한 기인들 중에서는 이참에 딸이 돈도 벌어오고, 결혼도 잘하도록 입궁을 바라는 경우도 꽤 있었다고 한다.
단 태감들은 전부 신분이 낮은 일반 한족 출신이다. 고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팔기에 속해 있는 귀족들은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한족을 데려와서 쓰는 것이다.[51] 이외에 우리나라의 무수리처럼 허드렛일을 하는 여자 일꾼들은 전부 한족으로 이들은 궁녀들과 생활하는 곳도 다르고 그곳에서 그들 마음대로 결혼해도 상관하지 않았다. 이들은 내관들과 살림을 차려 궁밖에서 출퇴근하기도 했으며 이들이 몰려 사는 동네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이 점은 우리나라의 내시들도 거의 비슷했다. 다만 궁녀들과 태감들이 사통하는 것은 엄금하였는데, 명나라 때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지면서 환관들의 세력이 지나치게 커졌기 때문이었다.[52] 하지만 역시 황제를 모시는 사람들이라 환관의 심기를 함부로 건든 사람들, 특히 인격적으로 모욕한 사람들은 거의 다 뒷끝이 좋지 못하다. 연갱요, 기귀인, 안릉용은 소배성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몰락해서 죽었고[53], 여답응은 소하자에게 보복하였다가 역보복으로 소하자에게 살해, 환관들은 근본없는 놈이라고 광역 어그로를 끌었던 여빈도 미쳐버렸다.
모시는 주인들의 최종 신분이 높은 순서대로 정렬한다.
4.1. 황제의 심복들
-
하예
의외로 첫등장은 상당히 초반이다. 온실초의 처방을 훔친 강씨 태의 형제를 처치하는 일을 황명으로 하며 첫선을 보인다. 물론 비밀부대인만큼 강도로 위장한다. 나름 능력있는 듯 황제가 "네가 이끄는 혈적자 부대가 좋더구나"라는 말도 한다. 그 이후 꽤 오랜 시간 동안 공기로 있다가 갑툭튀하며 견환을 여러 번 엿먹인다. 첫째는 자금성에 온 마격 칸이 희귀비 견환에게 "참으로 대단하시구려, 황제의 동생이랑 사통이라니!"라며 시작한 대화를 엿들어서 황제에게 꼰지른 것이고, 둘째는 과군왕부를 감시하여 윤례가 견환의 가마를 따라가는지를 확인하여 윤례가 변방으로 쫓겨나는 데 일조한 것이다. 극후반부에 소배성이 최근석과의 혼인으로 궁밖에 나가게 되자[54] 그가 황제의 수족이 되는데 홍염이 자신의 핏줄이 맞는지 의심을 하던 황제가 그에게 홍염의 피를 채취하라 명하였고, 이후에 홍염의 발가락에서 피를 빼내는 것을 녕귀인에게 들켰다. 견환이 소윤자에게 명을 내렸고, 소윤자의 손에 의해 죽는다.
-
소하(厦)자
황제를 직접 보필하는 내관. 여답응과는 복수하고 복수당하는 관계로, 황제의 총애를 잃은 여답응이 황제를 알현하려 하자 어명이 있으니 안된다고 거부해서 원한을 샀고, 황제의 총애를 되찾은 뒤 보복 차원에서 소하자에게 맨손으로 호두를 까라고 시켰다. 하여 소하자는 호두를 까느라 손에 피가 났고, 황제를 제때에 깨우지 못해서 스스로 뺨을 때리는 벌까지 받았다. 결국 여답응이 다시 몰락하자 안릉용의 지시로 소하자가 목졸라 죽였다.[55] 소배성이 근석과의 스캔들이 터져서 신형사로 끌려갔을 때, 소배성 대신 황제의 시중을 들었지만 차 온도도 못맞춰서 황제는 굉장히 못마땅했다. 사실 여기저기에서 황제와 후궁 사이의 연락셔틀 역할로 많이 등장하기에 자주 보인다. 자주 하는 대사는 "소주(마마), 곧 폐하가 오실 테니 어서 준비하세요!" 여담으로, 특별히 나쁜 마음을 먹거나 특정 파벌에 빌붙는 사람은 아니지만 은근히 입이 싸고 촐랑대는 게 상당히 뇌가 맑다. 여앵아를 목졸라 죽인 뒤 깔끔하게 처리했답시고 견환과 심미장을 쪼르르 찾아와 별별 이야기를 다 나불댔으며,[56] 심미장이 혜 귀인으로 복위 되었을 때에도 안릉용에게 금세 말을 전하며 '이제 누구(화비)는 벼락 맞는다'고 했다. 완빈이 화비의 복위를 주청한 이야기가 새어나간 것도 소하자가 말을 흘렸던 것이니, 가만 보면 입이 상당히 가볍고 눈치가 좀 없다.
4.2. 견환의 심복들
친정에서 데려온 완벽과 유주[57]를 제외하면 모두 이름에 꽃이 들어가 있다.-
비문
희비 뉴호록씨로 돌아온 견환의 밑에서 일하게 된 시녀이다. 견환이 쌍둥이를 출산한 뒤, 비문이 문을 열어둔 탓에 기침을 하자 황제가 따귀 20대를 때리라는 명령을 내렸고 소윤자는 스스로 따귀를 때리라고 지시한다. 사실 소설판에서 견환은 그때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다. 황제에게 둘러대느라고 밖에서 찬바람이 불어와서 집중을 못했다고 이야기 한 것. 소윤자 역시 비문이 잘못은 없는 걸 알지만 황제의 비위를 맞춰야 하니 벌을 받으라 했고[58] 그 일로 비문은 원한을 품는다. 다만 그냥 아무 말 없이 문을 닫았으면 그냥 불호령으로 끝났을 일을 산파가 시킨 일(환기를 위해)이라고 감히 황제에게 말대꾸해서 일을 키운 것도 있다. 거기에 왜 자길 벌하냐고 툴툴대서 소윤자한테 입조심하라는 면박을 들은 걸 보면 심하게 조심성이 없는 듯.
나중에 황후가 견환과 황제를 만났다가 나왔을 때 얼굴이 붉게 된 비문을 보고 전추에게 지시를 내려 회유한다. 이후 견환을 계속 감시한 모양인지, 온실초와 견환이 같이 있는 것을 보고 잠시 놀라고 급히 나가는 묘사가 나오는데 이 때 황후에게 꼰질러버린 듯하고 황후는 이걸 소재로 썼다. 하지만 헛다리였다.
이후 옹정황제의 여인의 시녀들답게 홍염친자확인 사건때 견환을 배신 때리고 모함을 했다. 하지만 홍염친자확인 사건이 견환에게 누명을 씌울려고 한 기 귀인과 감로사의 정백의 거짓이였음이 들통나자 분노한 견환이 처형하라고 명령을 해서 결국 궁인들에게 끌려가 처형당했다. 처음에 기세등등할 때 희비마마 밑에서 일하기 싫다[59]는 싸가지 없는 말을 했지만 모함이 거짓으로 들통나자 견환에게 "잘못했으니 제발 살려달라"고 말하는 걸 보면 엄청난 소인배에 찌질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게다가 좀 멍청한 듯하여 일단 온실초×견환은 헛다리였을 뿐 아니라 견환과 근석의 낚시에 걸려서 비웃음당하기도 했다.[60]
-
품아
완빈 시절까지 견환을 모신 궁녀. 이후 견환이 출궁하자 그녀의 명으로 경비에게 간다.
-
소윤자
견환이 황제의 시침을 피하느라 후궁 대접을 못 받을 무렵, 다른 환관은 다 떠났으나 끝까지 남아 견환에게 충성을 다한다. 소윤자의 형이 아픈데도 궁을 떠날 수 없어 슬퍼하고 있을 때, 견환이 흔쾌히 보내줬을 뿐 아니라 온실초에게 부탁하여 병치료까지 해주고, 소윤자의 근무 환경도 개선시켜주었기 때문이다. 결초보은의 좋은 예. 이후 황제가 견환에게 관심을 돌리면서 수령 태감의 자리가 비었다는 것을 알고 궁에서 베테랑을 차출하려 하지만 견환의 제안으로 소윤자가 발탁된다.[61] 참고로 이후에 견환에게 다짐한 충성의 맹세가 은근히 웃기다.
처음에는 어리버리하고 어리숙해 보이지만 숨은 인재였다. 여답응, 여빈, 안릉용은 얘가 없었으면 못 깼다. 첫째, 무공이 뛰어나다. 여답응의 사주를 받아 독약을 주고받던 태감이나 불 지르러 온 숙희를 때려잡는 건 기본이고, 나중에 가면 황제가 운영하는 비밀부대 혈적자를 이끄는 하예를 때려잡아 버릴 정도이다(!).[62] 둘째, 손재주 역시 제법 좋다. 먼저 완상재 시절 견환과 완벽을 닮은 종이조각을 만들었다. 이것은 견환이 소원을 빌기 위해 의매원 매화 가지에 끼웠고, 윤례의 손에 들어갔으며, 그가 견환을 그리워하기 위한 증표로 지니고 있다가 완벽의 계략으로 윤례와 완벽이 혼인하게 되는 빌미가 되었다. 엄청난 나비효과 아이템. 뿐만 아니라 희귀비 시절에는 홍염과 학을 접는다는 묘사도 나왔다. 손재주가 좋기에 무언가를 슬쩍하는 것도 잘 하는 듯, 견환이 안릉용을 몰락시킨 것은 소윤자가 안릉용의 창고에서 몰래 집어온 향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셋째, 안릉용이 해 준 귀신분장을 하고 여빈을 실성하게 만든 전적도 있는 걸로 보아 연기도 출중하다.
견환이 출궁했던 당시에는 심미장의 태감으로 일하다가, 돌아온 뒤에는 심미장이 기꺼이 보내주어 다시 견환을 섬기면서, 끝까지 살아남아 황태후가 된 견환 곁에 남아 있는다.
견환과 황후의 마지막 독대에서 견환을 가드하던 사람도 소윤자였고, 세월이 흘러 근석마저 죽고 없는 노년의 견환[63] 곁에 남아있던 유일한 사람 또한 소윤자였다.
4.3. 태후의 심복들
-
방약 상궁
견환과 릉용이 입궁하기 전 예법을 가르친 상궁이다. 견환이 완벽을 이용하여 화비를 낚았던 사건 당시 몰래 심미장과 만나도록 도와주었고, 이후 견환이 롱월을 임신한 채로 연금되었을 때도 쇄옥헌에 드나들며 잘해준다. 이후에도 황제가 집무를 보는 양심전에서 일하고 있었으나 견환이 총애를 잃으면서 태후궁으로 옮겨간다. 견환이 황제의 총애를 잃었을 때 지나치게 엄하게 가르친 자신의 탓이라 생각하며 견환에게 잘해준다.
참고로 한때 순원황후를 모셨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순원황후가 잘 사용했다는 원산대 기법으로 눈썹을 그릴 줄 안다고. 심미장의 거짓 회임 사건 때 견환은 방약상궁에게 페르시아 눈썹먹을 줘서 그걸로 눈썹을 그리게 해 황제에게 말을 좀 잘 해 달라고 부탁한다. 심미장의 이름은 중국어로 '눈썹을 짙게 화장하다'라고도 들리는 것을 이용한 것으로[64], 국내 팬들은 뭔 소린지 잘 모르는 부분. 깊을(짙을) 심, 눈썹 미, 꾸밀 장으로 한자로만 따지면 이해는 간다. 원작에선 견환에게 화비의 환의향이 같은 궁을 쓴 다른 후궁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혔음을 알려준다.
사실 원래는 어전 상궁이었지만 견환과 얽혀있다보니 황제가 보기를 껄끄러워해 태후를 모시라고 보낸다.
-
죽식 상궁
태후의 심복이다. 성은 손씨.[65] 사실 황후를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고 황후의 악행도 모두 알고 있지만 태후를 위로하기 위해 모든 것을 태후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준다.[66] 또한 화비의 불임에 대해서도 진상을 알고 있었고 이 진상에 대해 입조심할 것을 외부에서 화비를 진찰하러 온 사제 의사에게 경고한다.
이후 황후의 악행이 밝혀졌을 때 나타나 미리 태후가 사망 전 황후를 보호하기 위해 작성해둔 교지를 공개한다. 이게 마지막 등장이었는데, 이 때 "소인이 태후를 따라가지 않은 것은 이 교지 때문입니다"라는 대사를 하는 것으로 보아 이 이후 임무를 다한 것으로 보고 자살한 듯하다. 비록 상궁의 신분이지만 상당히 존중을 받고 있는 듯하여 황제도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정황상 태후가 입궁할 때 데려온 시녀인 듯. 융과다와 태후의 일도 다 알고 있는 눈치.
-
춘모
태후를 모시는 젊은 궁녀. 견환이 처음 임신하고 황후와 태후가 빈으로 책봉하는 것을 의논할 때 이름이 나왔다.
4.4. 황후의 심복들
시녀들 이름에 계절이 들어있다.-
강복해
황후의 심복으로 경인궁의 수령 태감이다. 신형사에서 같이 고문받았는데 전추는 끝까지 입을 다문 반면 이 양반은 줄줄 불었다. 고문을 받다가 황후가 순원황후를 죽였다는 것을 줄줄 불어서 황후에게 막타를 날린 장본인이다. 그래서 전추만큼 충성스럽지는 않은 듯하지만 그래도 전추가 견환을 죽이기 위해 극약(학정홍)을 부탁할 때 실패하면 본인까지 죽을 줄 알면서도 극약을 구해 주었다는 점에서 아예 충성심이 없는 것도 아닌 듯하다.[67]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은근히 사람 속을 잘 긁는 말을 웃는 낯으로 부드러운 말투로 잘도 한다는 것이다. 화비의 속을 긁을 때 특히 돋보였다. "마마, 따가운 태양볕 아래 계셔서 그런지 땀범벅에 흥분하셔서 목소리가 높아지셨네요. 안귀인의 피부는 옥과 같고 미소는 꽃과 같으며 목소리도 참 아름답지요. 그러니 과연 황샹이 지금 너님을 만나고 싶어하실까요? ^^" 이러는 등. 또한 화비에게 연갱요의 몰락 소식을 전해 주면서 비꼬고 속을 긁을 때도 더할 나위 없었다! 그러나 화비 외의 인물에게는 그다지 이런 면모를 보이지 않아서 화비에게는 당한 게 하도 많아서 일부로 그러는 것일 확률이 높다.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화비는 임신이 안 되자 태의가 아니라 일반 의사를 궁밖에서 데려오는데, 그 의사를 궁에서 안내한 것이 바로 강복해이다. 주녕해가 아니라.
-
회춘
황후의 시녀로, 전추 말고 이름이 밝혀진 시녀는 얘가 유일하다. 황후가 꾸민 일에 실수를 빙자해서 잘못을 뒤집어쓰는 기믹이 있다. 순원황후 예복 사건 때 순원황후의 옷을 수선하기 위해 내무부에 맡겼다가 깜빡하고 방치했다며 자백하지만 이때에는 황후의 책망만 듣고[68] 다른 처벌은 안 당한다. 친자 확인 사건 때 황후가 견환을 몰락시키려 물에다 백반을 탄 것이 발각되자,[69] 회춘이 자진해서 나서서 백반이 섞인 것은 황후의 지시가 아니라 자기 실수라고 고백해서 황후에게 결정타가 가는 것을 막고(전추도 그렇고 참 충성스럽다.) 대신 자신은 신형사에 끌려가게 되어서 리타이어. 나름 네임드 시녀였는지 이름을 밝히지 않았는데도 황제가 안다. 그 외에도 안릉용에게 피임탕을 먹이는 일도 얘가 전담했다. 사실 이 사건들 말고도 약방에 감초처럼 종종 언급되지만 그냥 지나가는 역할. 사실 1화부터 꾸준히 지나가는 역할로 나오고 있었다.
4.5. 화비의 심복들
화비를 모시는 익곤궁의 사람들. 이래저래 화비의 주변에는 제대로 된 사람은 없지만 충성심만큼은 강한 사람들이 꽤 있는 것을 알 수있다. 화비도 이를 알고 있기에 고문받는 주녕해의 비명을 들으며 "주녕해가 고문에 못이겨 자백하더라도 책망하지 않겠다..."라고 말한 바 있으며, 끝까지 자신을 따르는 송지에게는 "네가 고생이 많구나..."라는 지극히 화비답지 않은 말을 했다.[70]-
주녕해
강일명 役. 익곤궁 태감. 젊고 비교적 잘생긴 남자이다. 특징이라면 한쪽 발을 절뚝거리는 절음걸이이다.[71] 원작에서는 멀쩡했는데 배우가 발에 부상을 입어서 아예 절름발이로 설정한 거라고... 폐기된 설정에 의하면 화비를 구하다가 다친 것으로 하려 했으나 결국 찍지 못했다고 한다.[72] 나름 무공도 뛰어난 듯 온갖 몸을 쓰는 일(?)은 전담한다. 길상을 발길질한다던가, 복자를 죽인다던가, 순상재를 물에 빠뜨려 죽인다던가 하는 일들은 모두 그가 한 일이다. 이걸 봐서는 태감(고자)인데도 시위(일반 남성)보다 힘이 센 듯 하다. 위의 소윤자처럼 무공에 뛰어난 케이스일지도. 평소에는 궂은 일도 마다 않는 화비의 충실한 심복으로 있다가 화비가 마지막에 위기에 몰릴 때 조언도 해주고 화비를 달래주었다. 너무 늦어 화비의 말로를 바꿀 수는 없었지만 작중 유일하게 화비가 자신은 뒤로 물러서고 남을 앞세우게 만들었다. 조귀인 같은 지략가는 아니지만, 화비의 심복들 중에서는 그나마 화비의 성질머리를 제어해줄 수 있는 인물.[73] 화비 역시 유일하게 주녕해에게는 막 대하지 않는다.[74]
나중에 화비의 악행이 조귀인에 의해 까발려져서 두 번 혼절하는 등 심한 고문을 겪었다. 화비의 말로를 생각하면 이쪽도 죽었다고 생각하면 무방한 듯.
-
숙희
주녕해가 죽은 후(혹은 리타이어한 후) 숙희가 새 익곤궁 태감으로서 바톤 터치를 한다. 이 양반의 행적이라면 쇄옥헌 방화사건의 주모자라는 것. 이미 연갱요도 세력을 잃고 화비도 답응으로 강등되어 더 이상 희망이 없음에도 화비를 위해 일을 저질렀다. 다만 원작에 의하면 단비가 몰래 준비한 사람(暗中安排的人), 즉 스파이라고 한다.
-
영지
송지가 없을 때 화비를 모신다. 화비판 회춘이라고 보면 될 듯.
-
복자
1화에 등장하여 짧고 굵은 존재감을 어필한 궁녀. 황후가 화비에게 내려주었다. 후일 강복해의 말에 따르면 내무부에서 뽑은 지 며칠밖에 안 된 뉴비였다고. 그러나 화비는 황후가 자신을 감시하기 위해서 보낸 스파이 정도로 여겼으며, 여기에 더해 황제가 익곤궁에 들었을 때 그녀를 눈여겨보면서 나이를 묻고 예쁘다고 칭찬하자 분노 MAX 상태가 되었다. 결국 화비의 머리카락을 빗다가 화비가 발끈하며 고개를 돌린 서슬에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버려서 임계점 돌파. 화비의 심중을 헤아린 송지가불꽃싸대기와 함께무언의 명령을 내려, 주녕해가 끌고 가서 기절시킨 뒤 어화원의 우물에 빠뜨려 죽인다. 그녀의 시신은 몇 화 뒤 어화원을 관리하던 태감과 궁녀들에게 발견되고, 정줄을 놓은 그들을 이상하게 여긴 견환이 직접 우물을 들여다보고는 목격하고 만다. 바로 직전의 하상재 일장홍 사건과 함께 견환에게그리고 팬들에게후궁이라는 잔혹한 세계를 뼈져리게 알려주었다.
황후는 복자의 죽음을 철저하게 조사하도록 지시하여 황제에게 알렸으나, 황제는 한창 승승장구하는 연갱요때문에 결국 진상을 묻어버리고 말았다. 참고로 복자가 죽었을 때 나이는 겨우 17세로, 견환과 동갑이었다.
4.6. 안릉용의 심복들
시녀들의 이름에 새가 들어있다.[75]-
보견
안릉용의 심복. 시녀를 하나밖에 거느릴 수 없는 답응 신분이었던 안릉용의 첫 시녀이다.[76] 배신이 판을 치는 옹정황제의 여인에서 친정에서 데려온 시녀가 아니었기에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부정적으로 곡해된 발언을 자주 하여 릉용의 의심과 열등감을 부추겨서 흑화시키고 릉용이 화비를 저주한 걸 황후에게 귀뜸을 하는 바람에 황후에게 약점을 잡히고 결국 황후 편에 속하게 되어 견환과 척을 지게 만든다. 나중엔 기귀인이 보내온 목을 상하게 하는 약을 안릉용에게 먹이기까지 한다. 다른 후궁들처럼 악의는 없었지만 본성이 시커멓기 때문에 안릉용의 몰락에 일조한다.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만 살았으나 결국 제 한몸 몸보신 못하고 안릉용이 연희궁에 유폐되었을 때 곤장에 맞아죽는다. 배우가 원래 황후의 첩자라 말했다 카더라.[77] 존재감도 없던 일개 답응에게 처음부터 첩자를 심었을 가능성은 낮고, 화비에게 불려가 노래를 부른 뒤로 황후가 관심을 가지면서 비문처럼 포섭했을 가능성이 높다.
-
보작
안릉용은 보작을 시켜 미장에게 "6황자가 온실초의 아들이라 의심받고 있다."는 말을 전해줘서 미장을 위험하게 만든다.(친자 의혹 소식만 들었지만, 그 말을 듣고 미장이 경인궁으로 오는 바람에, 온실초의 셀프 고자라니 소식을 직접 듣게 되고 충격으로 쓰러져 난산.) 이후 자기가 그러지 않은 척 하고 보작을 매정하게 쥐어팬다. 여기까지라면 불쌍한 시녀의 모습... 이었겠지만 그 이후 황제가 들어와서 하는 말이 절정이고 옹정황제의 여인, 아니 궁정에서 시녀의 위치를 잘 보여준다. 황제 가라사대 궁녀가 잘못했으면 소란 피울 것 없이 조용한 데로 끌고 가서 죽이면 된다.[78] 결국 환관들에게 끌려내려가졌다.
-
국청
원래 견환의 시녀였으나, 힘든 궁 생활 초창기였던 안릉용은 직접 모시는 시녀가 보견 한 명 뿐이고, 나머지 2명도 14살로 어려서 무엇을 시켜야 좋을지 모를 정도라 이를 딱하게 여긴 견환이 안릉용에게 보내 준다. 이 때 견환은 선의였으나, 나중에 견환과 안릉용의 사이가 틀어지게 됨에 따라 안릉용이 국청을 견환의 스파이라고 오해하게 된다. 결국 견환이 출궁하게 된 도중, 안빈에게 독살당해 죽게 된다. 패아가 국청의 시신에서 그녀가 독살당하게 된 것을 신분세탁을 하여 다시 입궁한 견환에게 알려주게 된다.
후에 안릉용이 유폐된 후 측근 시녀들이 모두 사형당했으니, 그녀와 함께 있는 이상 이래저래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듯.
-
소귀자
쇄옥헌에 임신한 채로 갇혀 있던 견환에게 견원도 및 친정 가족들의 몰락을 전해주어서 견환에게 충격을 받게 했다. 견환이 조산한 이유를 만든 일등 공신.[79] 또 견원도가 갇혔던 감옥에 페스트 걸린 쥐를 푼 것도 이 사람이다. 물론 안릉용이 시킨 일이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거들먹거리는 성격을 지녔는데, 견환이 환궁하고 안릉용이 몰락하여 죽었으니 소귀자 또한 당연히 처형당하게 된다.
4.7. 기타 심복들
-
길상
단비의 심복. 그런데 단비 시녀가 얘 하나밖에 없는지라 수석 상궁인데도 혼자 별 잡일을 다한다. 단비를 미워한 화비의 횡포로 다른 하인들은 다 내보내고 궁녀가 길상밖에 없었다. 게다가 빨래도 해주지 말라고 화비가 지시했으니 혼자 빨래, 청소 등등을 다 소화하고 있었을 듯. 후궁이 사는 궁궐들은 벽은 물론이고 바닥까지 기본적으로 진흙으로 구워 만든 벽돌로 되어 있어 먼지가 아주 잘 붙는다고 한다. 궁녀들은 매일 하나하나씩 다 닦았어야 했는데 길상은 비의 궁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전부 했어야 했다.
단비의 처소를 방문한 (화풀이하러 온) 화비에게 발로 차이는 등 수모를 겪는다. 황제나 태후가 몰랐을 리 없는데 화비 때문에 어의도 보내지 않고 이것도 그냥 눈감아 준 듯하다.
-
아진
윤례의 심복. 상당히 솔직한 성격이라고 견환이 평했다. 초반에는 투덜거리는 역할로 연갱요가 윤례를 무시하거나 완벽이 어려운 일을 부탁하러 왔을 때 궁시렁거려 윤례가 달래거나 면박을 주거나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견환의 첫 회임 때 화비에게 벌을 받자 완벽이 태후의 처소로 달려와 구명을 요청하는데, 수강궁의 시위들은 윽박지르며 내쳤지만 때마침 아진이 윤례와 연결해줌으로서 견환을 구하는 데에 일익을 담당했다. 견환이 출궁한 후 열이 많이 올랐을 때 윤례가 청량대로 옮겨온 후 눈밭과 견환을 오가며 안아가며 열을 내려준걸 견환에게 일러바치며 상사병에 걸렸다고 말해버린다. 이후 황제의 병 때문에 윤례가 궁중에서 나오지 못하자 윤례와 견환이 편지를 주고받는 것을 중간에서 배달부 역할을 한다. 과친왕이 된 윤례가 독살당할 때까지 꾸준히 등장한다. 그 이후 행적은 불명.
완벽에게 툴툴거리긴 했지만 실은 마음이 있었던 모양으로, 윤례가 견환을 설득하는 시기에 완벽에게 아진과 결혼하는게 어떻냐고 제안했을 때 그다지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완벽이 딱 잘라 거절한다. 그 후로도 완벽이 부탁하니까 여러 고전 서적들을 구해다주는 등 꽤나 잘해주었지만...아진까지 감안하면 윤례와 완벽의 결혼은 더블 네토라레. 아진의 경우엔 애초에 맺어진 건 아니었지만.
-
황규전
황실의 살림을 담당하는 내무부의 총관.
목소리의 억양이 간드러지는 게 아주 독특하다. 그 덕분에 더 간사하게 보이기도. 화비와 친척이어서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선물용 금박 종이 같은 황실에서 상용하는 물건들을 화비가 지나치게 요구하는 바람에 곤란해하기도 한다. 송지가 금박을 입힌 종이를 달라고 요구했을 때, 황규전이 살짝 난색을 표하니깐 "황 총관, 새 직장을 구하고 싶으신가봐요? 우리 화비마마 덕분에 그 자리에 있는 거 잊으셨나요?"라는 말에 한 마디도 대꾸 못하고 벌벌 기는 걸 보면.
화비의 친척이지만 화비파라기보다는 권력따라 이리붙고 저리붙는 성격으로, 견환과 릉용이 총애를 못 받을 무렵에는 질 나쁜 일용품을 보내줬지만 견환이 유례 없는 총애를 받게 되자 기겁해서 견환에게 굽실거리고 화비에게 뇌물을 바치는 등 자리보전하려고 애쓴다. 거짓회임사건으로 심미장이 연금당한 뒤에는 심미장의 파벌, 즉 견환과 릉용의 궁에 시들어빠진 석류화를 보내거나 고급 가구를 빼버리면서 또 다시 박대한다. 견환이 초조한 마음을 참아가면서 증거를 찾아낼 때까지 미장의 구명을 미루고 황제를 잘 모신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황제가 석류화를 보고 분노. 황규전을 신형사로 보내버렸다. 그리고 화비가 몰락하니 자연스럽게 숙청당했다.
-
강충민
황규전의 뒤를 이어 내무부의 총관이 된 사람. 화비는 못마땅해했지만 이후 부총관 강충민이 뒤를 이었다. 이쪽은 사리분별이 있어 후궁들이 모두 탐내는 페르시아먹이 적게 조공되어 오자 황제에게 분배를 상주할 정도였으며, 견환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했는지 견환이 유산 후 황제에게 총애를 잃었을 때에도 견환에게 생활용품을 넉넉하게 보내주었다. 그러나 황후가 순원황후 예복사건으로 견환을 몰락시킴과 동시에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웠고 결국 황제의 명에 의해 맞아죽었다. 견환파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실은 황후파라는 정황적 증거도 은근히 보여진다.[80]
-
구 총관
순원황후 예복 사건으로 처형당한 강충민의 뒤를 이은 내무부 총관으로, 이름은 안 나왔다. 황제의 명령으로 쇄옥헌에 갇힌 견환을 과도하게 핍박하다가[81] 유주가 사망하고 임신한 견환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등의 사고를 터뜨린다. 이후 황제 구 총관을 처리했다고 언급하는데 단순히 신형사로 보낸 것인지 아니면 처형했는지 자세한 사항은 불명.
-
양다서
작 중 네 번째로 등장하는 내무부 총관으로, 구 총관의 뒤를 곧바로 이은 것인지 아니면 중간에 다른 총관을 거친 것인지는 불명. 견환이 궁에 돌아온 뒤에 등장하며, 안릉용이 비로 봉해질 때 좋은 봉호를 추천했던 환관 둘을 신형사에 보내버리고 앞으로 누구한테 아부할지 눈치를 잘 보라며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한다. 내무부 총관들 중에서 유일하게 무사한 인물.
-
서진량
내무부 내관. 황제가 잠자리에 들 때, 시침 들 후궁을 정하도록 후궁의 이름이 적혀진 패를 바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초중반에는 정무에 몰두하거나 후궁의 일로 마음이 상하거나 해서 황제가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안 가시려면 말든가'하고 물릴 수 있는 군번도 아니라서 인간 받침대가 되어 언제까지나 패를 들게 되는 불쌍한 역할.니가 고생이 참 많다.
-
여의
후속작인 후궁여의전의 주인공과 이름이 같다
경빈의 시녀. 비중은 공기. 한 일이 있다면 1부에서 화비가 한월각(심미장이 연금된 곳)에 난입해서 난리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황제에게 알린 것, 2부에서는 3황자가 영귀인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를 인터셉트한 것 정도?
-
함주
경비의 또다른 시녀. 여의보다도 비중이 더 공기로, 안릉용이 유산했을 때 롱월공주를 돌보라며 이름이 딱 한번 언급된다.
-
채성 & 채월
심미장이 친정에서부터 데려온 심복. 이름 때문에 자매가 아니냐는 추측도 있지만 하인/하녀 이름이 같은 돌림자를 쓰거나 세트구성인 건 자주 있는 일이라[82] 딱히 근거로 삼을만한 사항은 아니다. 정말 의외지만 아직 안릉용이 흑화하지도 않았던 4화에서 안릉용의 뒷담을 깐다.[83] 주인 안 닮은 듯.
-
소시
심미장을 모시는 환관. 아마 수령 태감으로 추정. 비중은 공기.
-
취과
제비의 심복. 황실에 있다 보니 본의 아니게 더러운 일을 많이 했지만(견환에게 협죽도 떡을 가져다 주고, 녕귀인을 불임으로 만든 대추탕을 가져다 주는 등) 심성 자체는 착하다. 너무 착한 나머지 벌을 받는 견환 앞에서 제비마마가 원래 이런 분이 아닌데;; 하면서 제비의 실드를 친다.[84] 부찰귀인과 제비가 완빈의 따귀를 때리라고 했을 때도 한참 주저하다가 신형사로 보낼거라고 하자 겨우 때리고야 근데 너무 쎄한 시진을 꿇어 있으라는 명을 받았을 때 제비가 떠나가자 비밀을 지켜줄 테니 일어나라고 말했고, 시간이 다 되자 힘들어하는 견환을 부축했다. 이 때 견환은 넌 착하니 복을 받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이게 생존 플래그가 될 거라고 생각했으나 제비가 자살한 뒤에 황후가 입막음을 위해 살해한다.
그래도 주인인 제비보다는 똑똑해서 녕귀인 불임사건당시 태후에게 가서 제비와 황후 사이의 대화를 전부 말했다. 태후가 황후 편이었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었지만 일개 궁녀인 그녀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
강록해
원래는 단비를 모시고 있었다. 극초반에 견환이 쇄옥헌에 있었을 시기의 태감이었는데 생긴 것도 그렇고 확실히 탐욕스러운 인상. 갓 궁에 들어온 견환이 온갖 못볼 꼴들을 다 보게 되어 2달간 드러눕게 되어 황제의 총애를 얻지 못하자 다른 궁의 내관들과 시녀들이 강록해를 우습게 여겼고, 특히 자신보다 항렬이 낮은 소유자[85]가 자신과 형님동생 하면서 말을 놓자 단단히 열받아서 그대로 자신을 따르는 내관들과 시녀들을 이끌고 견환을 배신하고 여빈을 새로운 주인으로 모셨다. 가기 싫은 척 징징거려서 견환에게 은자까지 받아내는 처세술을 선보였다. 하지만 견환은 강록해가 소인배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견환 뿐 아니라 조귀인도 그 본성을 알고 있는지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간단히 평한다.
견환이 귀인이 되고 황제의 엄청난 총애를 받자 견환에게 다시 충성을 맹세하려 했지만 당연히 거절당한다. 이걸 여빈에게 들켜서 경을 치를 뻔했으나 견환이 좋은 말로 여빈을 달랜 덕분에 당장의 목숨은 붙어 있게 되었다. 어쨌든 견환도 받아주지 않고 여빈에게도 밉보였으니 앞날이 깜깜한 것은 당연지사.
그의 제자 중 소인자는 스승이 그런 신세가 되고 자신도 끈 떨어진 두레박 꼴이 나자, 여빈의 명령에 의해 여답응을 모시고 그녀의 사주를 받아 견환에게 먹일 독을 전달하는 일을 했다. 물론 들켜서 소윤자에게 떡이 되도록 맞고, 종국에는 처형. 또다른 제자로는 소하(荷)자가 있는데, 위의 둘처럼 떠나겠다는 얘기를 스스로 꺼내지는 않고, 떠날 사람이 더 있으면 지금 떠나라는 견환의 말에 머뭇거리다가 나선다.
-
아록
녕귀인의 시녀. 홍염친자확인 사건 때 녕귀인의 명령으로 영수궁에 있는 완벽과 옥요에게 사정을 알려준다. 그리고 녕귀인에게 푸른색 계통의 옷 말고 붉은색 계통의 옷도 잘 어울릴거라고 입으라고 권유하지만 녕귀인은 매번 씹었다.
-
패아
원래 견환의 시녀였다. 극 초반부터 등장하며 방귀인이 쇄옥헌에 거주하던 시절 누군가가 묻어둔 사향 단지를 발견한다. 견환이 출궁한 후 저수궁 (기빈과 흔귀인의 처소)으로 보내진다. 그 중 흔귀인을 시중 들었고, 흔귀인을 섬기면서도 견환에게 여전히 충성해 스파이 역할을 하며 흔귀인이 정말 견환의 편인지 아닌지 밝혀내는 데 일조했다.[86] 저수궁의 주인이 기빈이었고 기빈은 견환을 미워했으므로 매일 견환의 전 시녀였던 패아를 두들겨패는 것으로 낙을 삼았다. 흔귀인은 그래도 자신의 시녀라고 두둔하려 했지만 계급상으로 아래이다보니 오히려 그럴 때마다 화풀이로 더 때렸다. 그래서 좀 여윈 것을 견환도 눈치챘고, 기빈에게 맞아서 생긴 멍을 발견해 직접 약을 발라주기도 했다. 아무튼 그래도 죽지는 않았고, 흔귀인이 궁의 주인이 된 이후로 좀 삶이 나아졌으리라 보인다. 참고로 패아도 극초반에 견환의 시녀였을 당시에 견환이 황제의 총애를 얻지 못하여 내관들과 시녀들 모두 농땡이나 피워서 유주에게 갈굼받다가 오히려 대드는 등의 무개념한 행태를 보인 적이 있었다.기귀인을 만나서 허구헌 날 얻어터지는 것도 이 날의 응보
원작에서는 견환이 출궁한 후, 롱월제희에게 견환을 언급했다가 황제에 의해 처형당했다고 한다.
-
상아
부찰귀인의 시녀인데, 엄청나게 무능/멍청하다. 부찰귀인 본인은 "우리 상아가 얼마나 총명한 아이라구요"라면서 높이 평가하는 모양이지만... 현실은 시궁창. 이 시녀가 대사를 치는 장면이 딱 두 번 있는데, 첫 번째는 견환의 귀신소동에 감쪽같이 속아넘어가서 분명히 서늘함과 썩은 냄새가 느껴졌다며 귀신이 맞다고 공포에 떨면서 증언하는 장면이고 2번째는 견환이 들려준 사람돼지 고사 때문에 정신이 나가버린 부찰귀인을 문병온 제비가 얘 왜 이러냐고 묻는 장면이다. 이 때 견환이 들려준 고사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될 것을, 고작 한다는 말이 "조귀인, 완빈과 함께 담소뭐?를 나누다가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이러니 제비가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제비에게 이 말만 전해도[87] 적어도 견환을 관광까진 아니더라도 타격을 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88].쌍으로 무능한 주인과 그 시녀심지어 귀신이 나타났을 때는 주인인 부찰귀인을 버려두고 귀신이야~~를 외치며 자기가 먼저 부리나케 도망가버렸다. 충성심도 제로 수준인 듯.
-
분아
견씨 가문의 시녀였지만, 견원도가 영고탑으로 유배가며 견부가 망하자 남편과 더불어 기귀인 집안으로 팔려간다. 6황자 친자 확인 사건 때 기귀인이 내세워 견환이 간택 이전 온실초로부터 프로포즈를 받았다는 증언을 한다. 이후 사통 증거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기귀인이 남편을 시켜 때리며 핍박하는 바람에 거짓 증언을 했다고 자백하며 자기도 얻어 맞은 상처를 보여주고 원래부터 온실초와 견환은 왕래하는 사이였을 뿐 결백하다고 증언하여 목숨을 건진다.[89] 이후, 완벽이 윤례의 측복진으로 들어가자 그녀의 전속 시녀가 된다. 사실 잘 보면 1화에서부터 등장하고 있으며, 나중에 견원도와 희귀비가 된 견환이 재회할 때 뒤에 있거나, 완벽이 시집간 뒤 과군왕부 등에서 간혹 보인다. 여기까지 보면 알겠지만 얘가 가는 곳마다 가문이 한 번씩은 박살난다. 견씨 가문이 망한 후 기귀인의 과이가 가문에 갔지만 과이가 가문도 과거의 죄가 들통나 망하고, 친자확인 사건 이후 과군왕부에 들어갔지만 과군왕 본인+두 측복진이 모두 사망하고 유일하게 남은 세자도 신군왕에게 입양되며 가문이 공중분해 되었다가 홍염을 입적시키면서 겨우 명맥을 유지했다.
-
우아
순상재의 친정 시녀. 그런데 정작 순상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전혀 비중이 없다가 그녀가 죽은 후에야 그녀를 위해 지전을 태우는 모습을 완빈과 근석이 보게 되며 첫등장한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견환은 순상재가 죽은 것이 발이 미끄러진 단순 사고사인 줄 알았으나...그녀가 말하길 순상재는 살해당한 것이라고. 순상재는 물가에서 자라 물장구를 치며 놀기도 했으니 익사할 리가 없다고(조귀인이 사람을 시켜보낸 것) 말하자 진실을 알게 된 견환은 순 상재의 죽음이 화비의 짓이라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
화수
여답응을 모신 시녀. 어화원에서 여답응과 완상재 견환이 처음 마주칠 때 첫 등장을 한다. 여답응처럼 의기양양하는 기질이 있어 견환을 보고 넌 누구인데 우리 소주에게 인사를 올리지 않느냐고 다만 견환을 보고 " 저 분이 소주보다 높은 상재"라고 알려주는 등 여답응보다는 나름 개념이 박혀 있는 걸로 나왔다. 이후 여씨가 관여자로 강등되어 쫓겨났을 때 여씨의 화풀이 대상이 되어 마구 꼬집히다가, 여빈의 언급에 의하면 결국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한 여씨가 쫓아낸 듯. 그러자 귀인으로 올라온 견환의 시녀로 편입되어 주방을 담당한다. 견환을 중독시키려고 뚜껑에 독약을 삶아낸 약탕기를 사용한 주범이다. 일이 발각되자 줄줄 분 후 처형당한다.
-
복령
화비 일파가 심미장에게 심은 첩자. 피 묻은 속옷을 처리하려다가 황제에게 들킨척 심미장을 모함한다. 하지만 분노한 황제에 의해 본인도 사형이 내려진다. 사후 화비의 언급에 의하면 설사 이 일로 죽임을 당하더라도 화비가 가족들의 부귀영화를 보장한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
성쌍
엔딩 크레딧에서만 이름이 나오는 정체불명의 인물. 배우 정보로 검색해서 나오는 사진을 보면 궁녀인 것 같은데 분량 삭제 때문에 이름이 제대로 안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
5. 황실 사람들
5.1. 서태비
원작에서의 이름은 완언연. 본명은 이광. 윤례의 생모이자 강희제가 생전에 가장 총애했던 후궁. 극중 설정에서 강희제는 그녀를 각별히 사랑하여, 그가 가장 아끼는 행궁인 창춘원에 동화대[90]라는 화려한 궁[91]을 지어주었고, 그녀가 좋아하는 꽃이자 부부의 금슬을 상징하는 자귀꽃을 동화대의 창문마다 새겨넣었다. 또 그녀가 입궁했을 때는 장상사(長相思)라는 금과 장상수(長相守)라는 피리[92]를 하사했는데, 그녀의 회상에 따르면 본인은 금을 타고 강희제는 피리를 불면서 함께 합주를 하곤 했다고 한다. 후일 안릉용이 노래를 부르고 상으로 받은 금루의 역시 본래는 강희제가 서태비에게 선물한 옷으로, 세상에 단 두 벌 뿐인 것을 서태비가 출가하면서 한 벌 가져가고 남은 것이었다.본격적으로 출연하는 것은 견환 출궁 시점. 선황 사후에는 출가하여 충정이라는 법명으로 감로사(정확히 말하면 감로사 근처 안서관)에서 지내다가, 나무를 해오다 물 한 잔 얻어마시려고 우연히 방문한 견환(당시 막수)과 만나게 된다. 견환이 옹정제의 후궁이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들인 윤례와 사랑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는 대인배. 아들의 죽음(?) 소식을 듣고서 3일간 식음을 전폐했을 정도로 아들을 사랑했다. 윤례가 생사불명 상태일 때 환궁하려는 견환에게 배신하는 거냐고 화를 내기도 했으나, 황제에게 복수하고 아이와 가문을 지키려하는 견환의 굳은 각오를 보자 결국 막지 못한다. 견환의 뱃속 아이가 윤례의 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파란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결국 아들에게 사실을 밝히지 못한다. 원작에선 견환이 환궁하기 직전에 태후의 사통을 견환에게 알려준다.
적운이라는 하녀를 데리고 다닌다.
원작에선 파이족 출신 노비였다가 입궁 후 후궁이 되었으나 황후와 태후의 견제로 궁 밖에서 지냈다. 태후가 죽고 황후가 폐위된 후 환궁하였다. 후궁 시절 임비 주성벽과 친했으나 사실은 주성벽이 그녀를 이용한 것 뿐이었다. 태후에게 현청을 빼앗기고 어쩔 수 없이 출가했는데 권력이 없어 아들을 지키지 못한 것에 미련이 있어 견환이 환궁할 때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려면 권력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해준다. 견환이 서태비를 만났을 때의 외모 묘사에 따르면 나이는 들었지만 매우 아름답다고 한다. 사후 소서태후로 높여지고 선제와 합장되었다.
5.2. 항친왕 윤기
옹정제의 이복동생이자 강희제의 5남. 어머니는 의비 곽락라씨로, 화비가 사는 익곤궁의 이전 주인이었다. 황후가 화비의 속을 긁기 위해 의비는 아들이 많아 총애를 독차지했다며 언급한 바로 그 인물이다. 이 말을 듣고 화비는 나오면서 "아들이 많으면 뭐해? 자식 농사를 잘못 짓는 바람에 아들내미가 반역을 하고 의비 본인까지 연루되었는데."라며 성질을 부렸다. 당연히 반역했다는 의비의 자식은 윤기의 친형제, 바로 9황자 윤당이다.실제 역사 속에서는 강희제에게 심성이 착하고 순후하다는 평을 들은 인물이고, 극중에서도 패아의 말에 따르면 궁녀들에게 종종 농담도 걸 만큼 쾌활하고 좋은 사람이라고는 하는데 견환과는 그야말로 상극이다. 하지만 마냥 적대적인 건 아니고, 조귀인의 계략으로 견환이 경홍무를 춰야 할 상황[94]에서 얼굴만 예쁘면 되지 굳이 춤재주까지 좋아야 하냐며 퉁치려 했다.
하지만 견환의 환궁 때 신료들과 함께 "폐비의 재입궁은 말도 안 된다. 게다가 견환 때문에 처소를 이렇게 사치스럽게 꾸민다니! 견환은 내명부의 화근이 틀림없다."고 주장하며 견환의 환궁을 반대했다.[95] 후일 연회에서, 윤례의 종이 공예가 떨어져 윤례와 견환이 위기에 빠졌을 때는 "어? 그 종이 공예는 꼭 희귀비같이 생겼네?"라며 눈치 없이 한 술 더 보탬으로써 분위기를 더 쎄하게 만들기도 했다.[96] 심지어 옹정제 사후에도 "희귀비는 황자의 생모이니 후계 논의에 끼어들 수 없소! 보나마나 6황자 홍염을 황위에 올리자고 할 텐데 어린애가 등극하면 누가 따르겠소? 지금 순치제 때처럼 도르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강희제 때처럼 오배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오?"며 견환에게 시비를 걸었다. 이 때 견환은 "미안하지만 제 말 끝까지 듣고 얘기하시죠? 선황께서는 4황자 홍력을 후계로 정하셨거든요."이라고 응수했는데, 끝까지 "보위에 관한 일인데 희귀비 말만 믿을 수는 없어요!"라며 태클을 건다.[97]
견환의 적들 대부분은 결국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점, 그리고 항친왕이 태클을 건 바로 그 4황자가 결국 옹정제의 뒤를 이어 즉위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래가 심히 걱정되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실제 역사에서 항친왕은 옹정제보다 먼저 사망했다.
별로 중요한 얘기는 아니지만 복진과 사이가 꽤 좋아보인다. 항친왕보다 상당히 젊어보이고 붉은 꽃으로 장식한 대랍시를 쓰고 있는데, 13화에서 견환의 말에 따르면 측복진이라고 한다. 적복진이 일찍 사망해서 측복진만 남은 것일지도. 아무튼 이 측복진을 거의 항상 연회에 데리고 다니고, 언뜻언뜻 지나가는 장면들에서 함께 마주보며 환하게 웃고 건배를 하는 등 꽤 다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돈친왕과 좀 비슷한 면이 있는 지 머리를 쓰는 복잡한 것을 싫어한다. 마격 칸이 옥환을 풀라고 가져오자 펄쩍 뛰면서 저리 치우라고 했다.
5.3. 돈친왕 윤아
이때문에 윤례에게는 "너네 엄마가 한인이라서 너한테 쓸데없는 거나 가르쳤나 보지?"라는 헛소리를 날리고, 조회에 무장을 하고 들어왔다가 어사가 자신을 탄핵하자 그 어사를 두들겨 패서 기절시키기도 한다. 심지어 연갱요와 붙어서 자기 어머니의 품계를 올려 달라는 등, 온갖 오만방자한 짓을 행하다가 훗날 분노한 황제에 의해 아내와 아들, 딸과 같이 평민으로 강등당한다. 그래도 황족인지라 돈친왕부에서 계속 사는 것 정도는 봐준 듯.[99] 황제가 돈친왕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견환과 안릉용이 냉궁 Mk.2로 여겨지는 봉래주로 가기도 한다.[100]
의외의 면모도 있다. 무골인데다가 멧돼지같은 외모에 비해 의외로 순정남인지라, 아내도 하나만 들이고 첩 하나 없이 그 아내만을 끔찍이 여기는 애처가이다.[101] 돈친왕의 아내(복진)은 견환 생일 파티에 유행하는 화장인 '교리장'(황제가 견환 이마에 배꽃을 그려 준 화장)을 하고 온 모습으로 첫선을 보였는데 이 때 몸이 안 좋아 견환의 도움을 받았고,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유산 후 슬퍼하다가 황제에게 냉대받는 견환을 문병와줄 정도로 착한 데다가[102] 남편의 막나가는 행동에 태클을 걸어주는 상식인이다.
극중에선 자식으로 1남 1녀가 있는 설정이다.[104] 딸이 첫째고 아들이 둘째. 딸은 경성군주에서 화석공정공주로 렙업했다가 폐서인되었고, 아들 홍훤은 패자의 작위를 받았으나 폐서인되었다가 견환이 황제에게 부탁하여 다시 작위를 받았다. 착한 돈친왕 복진을 위해서였다고.
견환이 희귀비로 환궁했을 때 신분세탁을 거치면서 새로 얻은 성이 바로 돈친왕의 친어머니의 성인 뉴호록씨인데 만약 이 사실을 돈친왕이 알았다면 그야말로 속이 뒤집혔을 것이다. 견환은 만주족이 아니라 한족이기 때문에 그런 영예로운 성씨를 얻는 것 자체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니...
5.4. 신패륵, 신군왕 윤희
원작에서의 이름은 현분(玄汾). 황제와 윤례의 이복동생. 어머니는 희태빈인데 후궁이 되기 전에는 신분이 낮은 침모였다고 한다.[105] 살기 위해 한량인 척 몸을 사리는 윤례에 비해 있는 모습 그대로는 보이는 솔직하고 순수한 성격이다. 하긴 윤례만큼 선황제의 엄청난 총애를 받은 것도 아니고 형제들과의 나이 차이도 많이 나서[106] 지금의 황제가 형제들과 권력투쟁을 벌일 당시에는 어린 아이라 싸움에 낄 일도 없었을 테니, 윤례와는 달리 황제의 의심이나 견제를 받지 않아서 있는 모습 그대로 사는 게 가능했던 것인지도. 게다가 의외로 근성가이이다. 겨울에도 의지가 약해지지 않기 위해 옷을 얇게 입는다고.황제나 윤례처럼 예술에 조예가 있는데 그의 경우에는 그림의 주요 타깃. 그림을 인연으로 하여 견환의 동생인 옥요와 사랑에 빠져 그녀를 적복진으로 들인다. 훗날 두 사람 사이에 딸 한 명밖에 태어나지 않아 윤례가 측복진 맹정한과 사이에서 낳은 아들 원철을 양자로 들인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견환이 6황자 홍염을 윤례의 양자(사실은 친자)로 보내는 아주 좋은 구실을 만들어준다.
견환이 쌍둥이를 낳은 직후에 홍염이 황제의 친자가 맞는가에 대한 스캔들이 터지자 옥요가 "우리 언니를 구해야 해요!"하고 울음을 터트리자 옥요가 걱정이 되어 황제에게 견환을 변호해준다. "나중에 홍염이 자라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얼마나 큰 마음의 상처를 가지겠어요? 친자 확인을 했다는 것 자체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구요! 홍염에 대한 기대가 크다면 친자 확인은 옳지 않아요!"라고 말이다.
나중에 윤례가 견환을 위해 준가르의 왕 마격을 상대로 군사를 일으켜서 과친왕으로 신분이 상승될 때, 신패륵 또한 신군왕으로 신분이 상승하였다. 옹정제의 장례식 때 항친왕 뒤에서 등장하는데, 4황자를 옹립하려는 견환의 주장에 적극 동조하며 바람을 잡아주었다.
연기자인 강복진(康福震)은 87년생으로 88년생인 3황자 홍시 역의 우입붕이나 4황자 홍력 역의 왕문걸보다 고작 1살 더 많다
원작에선 드라마보다 성격이 강한 편으로, 수방 궁녀 출신으로 정5품 빈에 불과한 생모의 출신 때문에 무시당하고 자랐으며, 현청이 돌봐주지 않았다면 비뚤어졌을 거라고 한다. 어느 정도냐면 친자 확인 사건 때 관문원을 디스하고 나서 따귀를 때렸다! 직후 현릉에게 죄를 청했는데, 현릉은 네 탓을 안 한다고 말하며 신경도 쓰지 않는다. 현릉이 죽고 나서 태자 여윤이 새 황제로 즉위하는데 태후가 된 견환이 수렴청정을 거절하면서 정무를 보좌하는 직책을 얻게 되었다.
5.5. 1황자, 2황자, 5황자
1황자는 홍휘, 살아 있었다면 적자이고 장자여서 누구보다 고귀할 아들이 되겠다. 이 부분은 조금 복잡하긴 한데, 만주족은 본래 적서의 구분이 없이 능력 있는 자를 후계자로 삼지만 청나라가 강희제 이후로 유교를 숭상하는 나라가 되면서 장자 승계 원칙을 중시하게 됐기에 적장자 라는 것은 상당한 어드벤티지가 된다.(홍시를 중시했던 것도 그런 이유다.)당시 왕부의 측복진이었던 오라나랍 의수의 아들인데 총명해 2살 때부터 글자를 배웠다는 언급이 나온다. 하지만 몸이 약해 곧 죽고 말았다.[107] 이 때 의수는 매우 슬퍼했으나, 황제는 적복진인 순원의 임신에만 관심을 쏟고 있었다. 원작의 외전에서 자세히 나오는데, 황제는 의수의 아이가 죽을 때 얼굴도 안비치다가 순원황후의 회임을 기뻐하면서 의수에게 " 당신의 아이가 죽은 대신 당신 언니가 아이를 가졌으니 그 애는 당신의 아이"라고 말해[108][109] 의수는 언니 뱃속의 아이가 자신의 아이를 죽였다고 받아들여 흑화하였다. 또한 원래는 황자를 낳으면 의수를 적복진으로 올려주겠다고 했으나 순원이 적복진으로 오는 바람에 없던 이야기가 돼버리기도 했고. 그가 비오는 날 죽었기 때문에 황후는 비 오는 날만 되면 히스테리성 두통에 시달리게 된다.
2황자는[110] 태어나자마자 죽은, 내지는 사산된 순원의 아들이다. 의수가 교묘하게 약을 먹여서 산모와 태아를 동시에 죽였다고. 온몸이 푸른 점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어의는 "숨이 부족해서 그리 된 것."이라고 진단했지만 몰래 시신을 엿본 단비의 눈에는 수상해보일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1황자가 죽은 상태에서 2황자가 살아있었다면 사실상 이 녀석이 적장자가 되니 다른 황자들과 비교해 넘사벽의 입지를 지녔을 것이다.[111] 무엇보다도 황제가 가장 사랑했던 순원의 아이인데다가 순원이 사실상 의수의 지위와 입지까지 뺏어간 상태에서 낳은 아들이었으니.
5황자는[112] 등장하지는 않지만 있다고는 언급된다. 초반 부분에 "왜 5황자는 안 왔냐?"라고 물으니 "감기에 걸려서..."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있었다. 후반부에서 황제가 태자를 정하려고 신하들과 이야기할 때, 4황자, 5황자, 6황자 아들 셋 뿐인데[113] 이 둘 중 2명이 다 희귀비의 자식이고 5황자는 방탕하여[114] 차기 황제의 그릇이 아니라고 말한 점으로 보아 출생이 미천해 흑역사 취급받은 4황자보다 더 황제에게 천대받고 있을 수도 있겠다. 궁에서 자란 아들은 3황자 뿐이라고 제비가 말했는데, 당시 6황자는 태어나기 전이었고 4황자는 태생이 미천해 그랬다지만 5황자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 일단 병약하다는 언급은 곧잘 나오는 것을 봐서 몸이 상당히 부실한 듯. 생모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극중 시점에서 등장하는 후궁 중에는 없다. 미장과 견환이 냉궁으로 갔을 때 거기에는 6명 정도의 여자가 마당에 있었는데, 마당에 그만큼 있었으면 건물 안에는 얼마나 있었을까? 그녀들 중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다만 4황자가 "5황자는 어머니가 있지만 난 없어요."라는 말을 했으니, 일단 생모가 살아있다는 건 확실한 것 같다.[115]
5.6. 6황자 홍염
원작에서의 이름은 여함(予涵). 윤례와 견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그러나 견환의 계략으로 공식적으로는 황제의 친자인 6황자가 된다. 친자확인 사건에 휘말렸을 때에도 윤례의 아들이란 사실이 발각되지 않고 무사히 살아남았으나, 의심을 거두지 않았던 황제가 직접 친자확인을 해보려고 하예를 시켜 몰래 홍염의 피를 채취하는 바람에 녕빈이 황제를 독살하는 계기가 되었다.찌질한 3황자나 실수로 생긴 4황자와는 달리, 황제가 가장 총애하는 견환에게서 태어난 건강하고 똘똘한 황자이기 때문에 유달리 황제의 총애를 듬뿍 받았고, 황제가 늘 태자로 세울 뜻을 내비쳤었다. 그러나 견환은 홍염이 장난이 심하다는 구실을 대어 어떻게든 막으려고 한다. 황제가 되면 필연적으로 궁중 암투에 휘말릴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드라마판 기준으로는 마지막 황후와의 대면에서 "왜 네 아들을 황제로 만들지 않았냐"는 황후의 질문에 대해 "황후 당신 같은 여자를 만나 대가 끊길까 두렵다"고 쏘아붙였다.
그래서 윤례의 사후 양자로 들어가 사실상 친아버지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도 과군왕 일가가 전멸하고 과군왕부라고 할 것이 남아있지 않아서인지 응휘당에 머물고 있었으며, 응휘당을 찾아온 견환에게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로 '훌륭했다는 17황숙'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 시점에서 이미 패륵의 칭호를 받아 6패륵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열심히 책을 읽는 모습으로 나왔으니 이쪽도 똑똑할 듯. 실제로 4황자가 칭찬하기도 했고...
중국 드라마 팬들 사이에서는 '환주격격(한국명 황제의 딸)'에 나오는 청아 공주[116]가 바로 홍염의 딸인 것이 아닐까 하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견환의 미래 모습인 부처님(태후)이 청아를 유독 아낀 데는 그 이유가 있지 않겠냐는 것. 다만 설정 상 청아는 유친왕의 딸로 나오므로 과공군왕인 홍염의 딸일 수는 없다. 일단 청아는 가상인물이기도 하고.
참고로 황제의 말에 따르면 이마와 턱이 견환을 닮았고, 피부도 견환을 닮아 하얗고 부드럽다고 한다. 다만 자라서 사냥과 말타기를 즐기다 보면 피부가 점차 상할지도
실제 역사에서의 홍염은 옹정제와 후궁 겸비 유씨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며 2살때 옹정제가 죽고 5살 때 윤례의 양자로 편입되었다. 기록에는 손버릇이 안 좋아 물건을 훔치고 몰래 팔고 태후에게 불손하게 행동했다는 이유로 형인 건륭제에게 들켜 패륵으로 강등되고 시름시름 앓다가 33세에 요절했다고 한다.
5.7. 온의공주
원작에서의 아명은 양옥(良玉). 황제와 조귀인의 딸. 황손이 적은 탓에[117] 황제의 총애를 받았기 때문에 화비가 황제의 환심을 살 생각으로 많이 이용한다. 친모랑 떨어져서 화비에게 맡겨졌다가 수면제를 먹여진다든가, 마니옥 죽을 먹고 배앓이를 한다든가...게다가 화비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어머니 조귀인의 옆에 있다가 화비가 격노하는 것을 보고 울어버려서 손찌검을 당하고, 직후에 자신에게 이런 아이가 있었으면 황제가 이렇게 박대하진 않았을 거라고 펑펑 우는 화비에게 부둥켜안기기도 했다. 지켜보면서 혼비백산한 조귀인의 표정이 백미.
심지어 화비가 죽고 나서도 고난이 끝나지 않아서 견환이 출궁했을 때 미장이 견환을 만나기 위해 온의에게 약을 먹여 아프게 해서 온의의 건강을 위해 급사한 비빈들의 위패를 자신이 감로사로 옮긴다는 핑계로 이용되기까지...[118] 이래저래 고생이 많은 공주. 조귀인이 죽은 뒤엔 단비가 키운다. 특징이라면 낯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마 한 번도 안 봤을 단비에게 잘 뽀뽀해주고 하는 걸 봐서.
여담이나 돌잔치 상황을 보면, 생일은 초여름으로 추정된다.
5.8. 영서공주
원작에서의 아명은 온환(韫欢). 윤례와 견환 사이에서 태어난 딸. 6황자 홍염과는 쌍둥이 남매이고, 눈매가 특히 견환을 닮았다고 한다. 친자확인 사건에 휘말린 홍염과는 달리 딱히 큰 비중은 없다.순원황후와 현 황후(의수) 자매의 비밀을 밝혀내는 데, 정확히는 안릉용의 유언을 해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견환, 단비, 경비가 한 자리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한담을 나눌 때, 몇 살 많은 언니들이 쫓고 쫓기며 장난치는 것을 보고 "언니가 언니를 쫓네!"라는 말을 한다.[120]물론 어린 아이가 별뜻없이 한 말이지만, 견환은 그 말을 듣고 안릉용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안릉용이 한 "황후가 황후를 죽였다"는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말 속의 두 황후가 동일인물이 아님을 비로소 깨닫게 되어, 현재의 황후가 순원황후를 죽였음을 의미한다는 걸 알게 된다. 중국어의 어순구조를 잘 모른다면 이 장면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데, 황후 죽이다 황후 이런식의 영어 어순구조와 비슷하다고 보면된다. 견환은 처음에 황후(목적어)를 죽여.. 황후를.. 이런식으로 이해했다면 나중에는 황후(주어)가 황후(목적어)를 죽였다 라는 식으로 제대로 깨닫는다
후에 견환과 산책 중에 꽃 이야기를 하다가 친부인 과친왕을 만난다.
원작에선 자라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그게 하필이면 이복동생이자 청하왕(과군왕=윤례)의 아들인 여철. 그러나 어머니 견환은 당연히 두 사람 사이를 반대했고[121], 나중에 여철이 죽자 그 일로 충격을 받아 시집을 가지 않은 채 다시는 어머니를 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5.9. 정화공주
온실초와 심미장 사이에서 태어난 딸. 술에 취해 온실초와 하룻밤을 지내는 바람에 생긴 아이로, 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 미장이 다시 황제를 받아들인 척 하여 황제의 아이라고 속인다. 난산 끝에 태어나지만 미장은 죽고, 견환이 대신 키우게 된다. 원래 태후가 이름을 지어주려 했으나[122] 미장의 유언으로 견환이 이름을 붙여준다.[123]원작에서의 이름은 여윤. 아들, 즉 황자로 나오며 황제가 죽자 황위를 이어받아 차기 황제가 된다.
5.10. 원철
원작에서의 이름은 여철(予澈). 윤례와 맹정한의 아들. 어른들의 복잡한 사정 때문에 어린 나이에 친모, 친부, 계모 전부를 잃고 혼자 남은 불쌍한 아이다. 부모가 죽은 뒤에 신군왕 부부가 맡아 키우다가 아예 신군왕의 양자로 들어간다.그런데 공식적으로는 사촌이지만 실제로는 이복형제인 홍염과 외모가 너무 닮아서, 황제가 홍염의 출생을 다시 의심하는 계기가 된다. 홍염과 매우 닮았다는 설정 때문인지 3년 전 홍염과 배우가 같다.
원작에서의 여철은 사촌지간인 영서공주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사실 두 사람은 이복남매 사이이기 때문에 견환이 둘 사이를 반대했다. 여철이 죽고 영서가 시집가지 않았다는 정도만 나오고 자세한 것은 나오지 않는다.[124]
초기 설정에는 완벽의 친자식이었지만 설정변경으로 맹정한의 자식이 됐다.
6. 원작에서
- 본문에 기재되지 않은 원작에서만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다룬다.
-
설백(雪魄)[125]제희
원작에서만 나오는 견환과 현청의 막내딸. 아명은 천우(芊羽). 견환이 혁혁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진 아이다. 견환을 닮아 굉장한 미인인 듯하지만 엄마인 견환의 평가라서 분명하지는 않다.하지만 견환이 프로팩폭러임을 고려할 때 예쁠 가능성이 크다.견환이 말하길 현청의 자식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궁에서 막내뻘이라 그런지 견환은 물론이거니와 정이태비 서연의, 경덕태비 풍약소에 이복오빠사실 피가 전혀 섞이지 않았다. 여윤은 온실초와 심미장의 자식이니...인 정장제[126]까지 모두 이뻐한다. 경빈의 속내를 꿰뚫고 무비의 마음을 떠보는 등 정치적 감각도 있으나 아무래도 애지중지 금지옥엽으로 자라서 세상물정을 모르고 좀많이아빠의 철없음+엄마(원작)의 오만함재수 없다. 근비가 황후에 어울린다는 말을 듣고 출신이 한미하니 될 리 없다고 생각한다든가(견환의 설명을 듣고 납득하지만) 누귀원에게 혼사를 물릴 것을 요구할 때에도 자신은 가장 존귀한 제희이니 당연히 자기 말을 들어줄 거라고 자신만만해한다든가... 그 철없음과 오만함은 결과적으로 그녀에게 뼈아픈 현실로 되돌아온다.
번외편 옥점추(玉簟秋)의 주인공. 작품 시작 즈음 나이가 차서 부마를 간택하는 봉대선서에 나간다. 그러나 그저 그런 인물들이 줄을 짓자 지루해하며, 진심으로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선택할 수 없고, 그저 부마 후보로서 뽑힌 사람들 중에서 한 명을 선택할 수 있는 정도의 자유밖에 없다며 현자타임을 느낀다. 결국 부마 후보들 머리 위로 냅다 화살을 쏘아 그걸 잡아챈 누귀원을 선택하지만 그가 자신의 신분 때문에 혼인하려 할 뿐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고 여겨 혼인을 내키지 않아한다. 견환의 명으로 현청의 제를 위해 청량사에 갔다가 송역풍(법명 지일)을 만나는데, 그의 희망을 이루어 출가하도록 어시스트 했다가 속세를 떠난 고아한 분위기가 감도는 그에게 제대로 반한다.[127] 궁에 돌아와서도 다시 지일을 만나기 위해 구실을 대어 청량사에 머물지만 근비의 출산을 이유로 돌아오라는 견환의 명을 받고, 꾀를 내어 근비의 복을 빌기 위해서라며 지일을 초빙한다. 지일에게 마음을 고백하나 거절당하고 몹시 낙심하지만 견환이 황후가 된 사윤, 천우와 함께 지일의 강경을 듣고 있던 중 독살 시도로 연금당한 경빈이 빠져나와 칼을 휘두르며 황후를 죽이려 하는 변고가 벌어진다. 이때 경빈은 첫타가 실패하자 천우를 인질로 잡는데 지일이 경빈을 제압하고 구해내어 지일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눈치 챈다.[128] 천우는 누귀원을 설득해 혼사를 취소하고 지일을 환속시킨 뒤 혼인하려 했으나 누귀원이 따르지 않고 지일은 출가인이라는 이유로 거절한 데다 견환이 눈치 채버렸다. 견환은 중과 제희가 혼인할 수 없다고 반대하나 천우는 고집을 피우는데.....[129] 지일은 천우에 대한 마음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신앙을 포기하려 하지 않아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궁을 떠나 사라진다. 천우는 폭우를 맞으면서 견환에게 출가하겠다고 청하고 결국 견환은 어쩔 수 없이 허락한다. 이후 경성 동쪽 차아봉에 그녀의 수행을 위해 세워진 암자에서 지일을 그리워하면서 조용히 살아간다는 결말.
-
지일
속명은 송역풍. 성은 어머니의 것을 따랐다. 어머니는 선선대 황제의 제희의 시녀였는데 그녀가 출가하자 따라갔다가 누군지 모를 남자와 사통을 하고는 아들을 낳고 쫓겨났다. 송역풍은 어머니로부터 불교의 이치를 배운 한편 잘생기고 재주가 뛰어나 사람들로 하여금 송낭군이라고 칭송받을 정도였는데, 세상이 뒤에서 자신의 출신을 비웃는다는 것을 일찌기 깨달아 속세에 대한 미련을 버린다. 그리하여 청량사에 가서 출가를 청했는데 워낙 소문난 인재인지라 주지가 부담스럽다고 거절한 탓에 산문에서 3일이나 버티고 있다가 천우를 만난 것. 천우가 말을 거들어 겨우 출가가 받아들여졌는데 돌아보면서 감사 인사를 하는 순간 천우가 그대로 반한다.... 천우가 불러들이자 불법을 논하거나 천우의 고민을 들어주거나 작은 연꽃을 선물하는 등 부드럽게 대하지만, 그녀가 마음을 고백하자 단호하게 거절한다.갑분싸그대로 인연이 끊어질 듯했으나, 천우가 경빈의 습격을 받아 위기에 처하자 뛰어들어 구해내는데 자비를 실천해야 할 승려가 경빈의 손뼈가 부러질 정도로 거세게 제압하는 바람에 천우를 사랑하는 마음이 들켜버린다. 그러나 천우가 누귀원을 설득하려고 들거나 모후와 대립하는 데에도 혼인을 거부하는데, 어머니가 신앙을 버리고 사랑을 택한 일이 잘못이라 여겨 선대의 잘못을 또 다시 되풀이해선 안 된다고 천우를 타이른다.[130] 결국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며 떠나버린다. 속세를 떠난 분위기도 그렇지만 눈매가 현청을 꼭 닮아서 견환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
근비 사씨
본명은 사윤. 정장제[131]의 총비로 한미한 가문임에도 정 2품 비의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번외편인 옥점추에서 회임 중인 상태로 등장하는데, 비록 빼어나게 아름다운 편은 아니나[132] 덕이 깊고 기품을 잃지 않아 태후인 견환과 정장제의 총애를 받는다. 옥점추 초반, 제희를 출산하여 정1품 귀비로 진봉되고[133] 얼마 지나지 않아 황후의 자리에 오른다.[134] 매사 단정함과 기품을 잃지 않는데, 경빈에 의해 독살당할 뻔했을 때도 비수로 찔려 죽을 뻔하였을 때도 놀라거나 흥분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면 멘탈이 대단해 보인다. 황후로 봉해진 후 황자를 출산하였다. 정장제가 여색을 탐하지도 않는데다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고 후궁이 많지도 않으니[135] 행복한 황후로서 살아갈 듯하다.
-
무비 은씨
본명은 은월경으로 세력가의 딸이다. 본편에서 황태후가 된 견환이 태비들과 대화를 나누며 언급했고, 번외편인 옥점추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근비와 함께 황후가 없는 내명부의 가장 높은 자리를 차리하고 있었으며 명문가의 여식이었기 때문에 총애를 받지 못함에도 궁인들로부터 대우받았다.[136] 빼어난 미모의 명문가 자제라는 점이 화비와 비슷하다 볼 수 있겠으나, 화비와는 달리 신중하고 사려 깊어 황제가 진심으로 근비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욕심을 부리지 않고 본분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아이가 없고 총애가 깊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지위에 올라 평온한 삶을 사는 경덕태비[137]가 롤모델이라고 한다.
-
경빈
본명은 언급되지 않았다. 근비와 함께 입궁한 후궁이며, 황제의 첫 자녀인 경복제희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행동에 기품이 없고 경박하여 황제의 총애를 받지 못해 정 5품 빈에 머무르고 있다. 옥점추에서 태후인 견환에게 문안하는 장면으로 처음 등장하는 데, 황제가 자신의 처소에 머무르지 않고 어차피 시침을 들 수 없는 근비에게만 간다며 하소연 한다.[138] 하지만 경빈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견환이 그저 그런 반응을 보이자 황제의 첫 아이를 낳은 자기는 겨우 빈인데 근비는 출산 후 적어도 종 1품 부인에 올라 모든 후궁의 위에 설 것이니 그 기세를 어찌 감당하겠냐며 황후가 되고 싶은 야욕을 보인다. 근비가 근귀비로 책봉되자 이를 시기하여 비상을 탄 제비집을 보내는데, 근귀비의 시녀가 대신 먹어 실패하였으며 본인은 궁에서 근신하게 된다.[139] 얌전히 있었으면 제희의 생모이자 기산왕숙의 어머니인 태황숙태비의 비호를 받는 몸이기에 어느 정도 자비를 바랄 수 있었겠지만, 사윤이 황후가 되는 걸 보고 빡돌았는지 황후를 죽이러 이녕궁[140]에 쳐들어갔으나 황후를 죽이지 못하고 천우만을 인질로 잡는다. 하지만 천우를 구하기 위해 나선 지일에 의해 손뼈가 끊어지고 빡친 견환이 교살을 명령한다.
-
누귀원
영주도독의 장남이자 정2품 가주방어사다. 봉대선서에 참가했고 유일하게 설백제희 천우의 화살을 잡는다. 그러나 천우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보다 나은 인물도 없어 그를 부마로 선택한다. 천우가 지일에게 반한 후 누귀원에게 혼사를 물리도록 종용하나 누귀원은 거부한다.[141] 천우가 출가하자 황제가 화목제희를 적출공주와 같이 대우하여 누귀원과 혼인하게 하고 잘 지낸다고 한다.
-
화목제희
원작에서만 등장하는 호온용의 딸. 호온용은 화목제희를 낳은 후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어 호온용과 황제의 유일한 아이이다.[142] 화목제희는 옥점추 결말부에 천우에게 차인 누귀원과 결혼해서 잘 산다고 한다. 참으로 자기 어머니 호온용과 대조되는 결말.
-
주천위
의수의 당질녀. 1황자 여리의 정비 간택에 참여하나 박색[143]인데다 롱월이 자기 옷을 만지자 털어내어 여리가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허이인과 최종 후보가 되나 롱월이 현릉에게 자신이 당한 일을 고자질하고 여리가 허이인을 택해서 탈락했다.
-
허이인
수국공부인의 양녀. 호온용이 현릉에게 바치려 했으나 여리의 마음에 들었다. 여리가 현릉에게 말하고 롱월과 견환의 도움으로 허이인을 정비로 택한다. 수정판에선 에피소드 자체가 삭제되어 등장하지 않는다.
-
화의
본명은 아노(阿奴). 막언의 큰딸로 뱃사공이다. 현청과 견환이 그녀의 배를 타고 노래를 듣는 게 첫등장이다. 견환이 궁에 돌아가기 1년 전에 윤간당하나 가해자가 너무 많아서 관아에 신고도 못하고, 더는 뱃사공 일을 할 수 없는데다가 더럽혀진 몸이라며 감로사에서도 거부당해 막언이 궁에 돌아가려는 견환에게 딸을 부탁한다. 견환이 화의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시녀로 데려간다. 소윤자가 릉용의 향을 빼돌린 활약은 원래 화의의 것이다. 수정판에선 아노는 있지만 첫 등장 장면에서만 나오고, 화의의 역할은 품아가 대신한다.
-
견원도의 첩
견환 남매에겐 서모라는 뜻의 이랑이라고 불린다. 본래 강남 출신으로 운신라가 첩을 들이자고 해 견원도가 샀다. 춤과 악기 연주에 능해 견환에게 전수해준다. 이렇게 다재다능한 미녀지만 견원도는 관심이 없어 일년에 몇번 정도 밖에 찾지 않는다. 견씨 일가에겐 장식품 취급을 받고 있다. 이런 처지라 스스로 자처해 운신라의 시녀 노릇을 하고 있다.
-
수하
주의수의 시녀로, 회춘과 전추와 같이 고문을 받았으나 전추처럼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자백했다. 특이하게도 후속작인 여의전 드라마판에서 등장하는데, 의수 사망 후 주인을 따라 자결했다고 한다.
-
염동
주의수의 시녀로, 친자확인 사건 때 백반 관련 문제를 뒤집어썼다.[144] 드라마판 회춘과 같은 포지션이지만 회춘처럼 신형사에 끌려가지는 않고 그냥 궁에서 쫓겨났다. 의수의 네 시녀 중에서 유일하게 드라마에 등장하지 못한 인물로 남았다.
7. 태의들
-
강 태의 형제
형은 강성, 동생은 강신이다. 화비가 뒤를 봐주는 의사들로, 화비의 주치의를 맡고 있고 그 중 동생 강신은 조귀인과 온의공주 역시 담당하고 있다. 둘 다 부인과 전문으로, 화비의 환의향에 대한 비밀을 알지만 입을 다물고 있다. 등장은 꽤 이른데, 심미장의 거짓 회임 사건 때 심미장의 명령으로 월경을 늦추는 약을 처방했다는 진술을 해서 그녀가 회임이 아니라는 최종진단에 쐐기를 박은 사람이다. 나중에 조작에 가담했던 유분이 잡혀와 화비가 핀치에 몰리자 목이 달아날 위기에 처했으나, 조귀인의 책략에 따라 이 둘은 온실초의 역병 처방을 훔쳐와 공을 가로챈다. 그러나 둘 다 인성은 별로였던 듯, 돈을 내는 사람들을 먼저 치료하다가 때를 놓쳐 죽는 사람이 생기는 등 각종 사고를 터뜨리고 견환이 그 처방이 원래 온 어의 것이었다고 황제에게 밝혀, 분노한 황제에 의해 하예에게 암살당한다.
이복형제라고 한다. 한때 심미장은 강 태의 형제는 어머니끼리 사이가 좋지 않아 형제 사이 역시 나쁘다고 믿었으나 실제로는 둘 다 화비파였다. 다만 어느 정도 견해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인데, 강신은 화비가 어째서 불임인지를 알고 있으나 강성은 모르고 있으며, 그래서 상황파악을 못하는 강성에게 강신이 짜증을 내며 입조심 하라고 경고하는 장면이 있다.
-
유분
심미장이 처음 입궁해 총애를 받았을 때 그녀의 주치의를 맡았다. 제주 사투리를 써서 심미장은 자기와 동향인인 줄 알고 순진하게 모든 것을 밑고 맡겼으나, 사실 모든 것이 페이크라는 복선은 꽤 예전부터 있었다. 심미장이 제주의 떡을 하사했을 때, 그 떡집은 오래전에 문을 닫았는데도 아직 영업중이라는 뉘앙스로 말한 것.
심미장의 거짓 회임이 밝혀지자 바로 처소에서 몸을 감춘다. 사실은 화비의 지시로 심미장을 올가미로 빠뜨리는 데 일조를 한 사람으로, 심미장에게 약을 써 월경을 늦추고 속을 메스껍게 하는 등의 착각을 일으키고 결정적으로 임신 진단을 내렸다. 처소에서 사라진 그는 화비의 사람에게 약속된 돈을 받는데, 화비의 사람은 그를 아예 죽여 입막음을 하려 했으나 유분은 오히려 칼을 들고 덤벼든 자객을 옆에 있던 대나무 장대(!)로 쥐어패어 제압하는 비범함을 보이고 도주한다!
심미장의 누명을 밝혀낼 결정적인 증인이기에 양측 모두 유분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는데, 심미장과 견환의 친정까지 나서서 수색한 끝에 결국 붙잡혀서 비참한 몰골로 황제 앞에 끌려와 화비의 음모에 대해 줄줄 분 뒤 처형당한다.[145]
참고로 돈 씀씀이가 꽤 컸던 듯, 엄청난 돈을 화비의 사람에게서 보수로 받고도 "이 정도 가지고는 반년밖에 못 쓰겠다"며 투덜거린다.
-
장 태의
이름은 장미. 환갑이 넘은 아주 늙은 태의로 근석이 그의 실력을 인정하는 발언이 나왔고, 연갱요가 태의들을 사사로이 데려간 사건에서 "고명한 의사가 필요하다"라며 장 태의를 다시 불러들이는 걸로 봐서 고명한 축에 끼는 듯하다. 역병 창궐 시점에서 내의원 수장이었다.
이후 화비가 민간에서 의사를 불러왔을 때 그 의사(이름은 진 의원)에게 화비의 진료 기록을 보여주는 걸로 봐서는 이쪽도 강씨 형제와 마찬가지로 화비의 비밀을 알고 있는 듯하다. 하긴 화비는 내의원에서 20명 넘는 의원들이 진맥했으니 수장인 장태의가 모르는 게 이상하지만 이후 견환이 완빈 시절 첫 임신했을 때 견환의 주치의를 맡는다. 견환의 주치의는 온실초였으나 이 때 온실초는 강씨 태의 형제가 갑자기 죽는 바람에 역병을 총괄하느라 도저히 짬이 안 났고 게다가 기우제를 지내는 황제를 따라갔기 때문에 견환을 돌봐줄 수가 없었다. 그래도 견환은 장태의의 처방전을 꼬박꼬박 온실초에게 보이는 등 경계를 아끼지 않는다. 견환이 유산하자 갑작스럽게 사직하고 고향으로 간 걸 봐선 황후가 매수해서 방관했을 가능성이 있디. 화비에게 견환이 "안정기에 들어서 1시진 꿇어앉는 건 괜찮다"고 하거나 아무리 실력이 떨어져도 사향 증세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건 이상하기 때문.
이후 안릉용이 리비가 되었을 때 그녀의 주치의를 맡는 의사는 다른 인물인 허 태의다.둘 다 늙어서 구분이 좀 어렵다
-
위림
온실초의 제자. 온실초가 고자가 된 이후 견환의 주치의를 담당한다. 견환 뿐 아니라 황제의 건강도 돌보는 듯하다.[146] 녕귀인이 쓰는 주사에 대해 다른 어의들은 모르지만 위림만 아는 부분도 있고. 의술 뿐 아니라 상당히 지혜로워 견환의 눈치를 잘 살핀다. 견환이 곤란할 때 황제에게 둘러대서 황제의 의심을 가라 앉히기도 했다.[147] 실력은 괜찮긴 하지만 스승을 못 따라가는 듯. 영귀인이 3황자의 일로 죽은 이후에 견환이 아이를 임신했는데(결국 유산되는 아이) GG를 치고 온실초에게 SOS를 친다. 어차피 아이가 너무 약해서 온실초도 이 아이를 살리지 못했다.
초반부 온태의가 자주 해결해내던 후궁 내의 각종 약이나 향 관련 미스터리를 푼다. 스승보다 의술은 딸리는 대신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편이라 견환파의 궁중 암투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안릉용이 쓰는 일랑일랑(최음제)을 알아차리고 리비를 몰락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견환이 최음향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 위림을 불렀을 때 손바닥에 올려놓고 물에 개서 향을 맡자마자 뿅 간 표정이 압권. 이상함을 눈치 챈 견환이 근석에게 물을 뿌리도록 해 위기를 모면한다. 또한 황제의 앞에서 견환이 안릉용을 두둔하는 척하며 사향이 다량 들어있는 상처 연고를 꺼냈을 때 대기타고 있다가 막타를 날린다.
견환의 묵인 아래 녕빈에게 계속 주사를 갖다 준 것도 이 사람이다. 녕빈이 주사를 구해 달라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은밀히 물어보는데, 견환은 '필요하면 알아서 구해 쓰겠지'라고 말하며 수수방관한다. 사실상 '필요하면 어떻게든 구하고 말테니 그냥 줘라'라는 말이었다.
8. 감로사 사람들
-
정안
감로사의 비록 명목상 1인자지만 일은 대부분 정백에게 맡기고 있다. 견환에게 법명이라는 이유로 막수라는 이름을 지었다. 막은 (제자들이 쓰는) 돌림자 같은 거고 수는 미간에 근심이 있다고 수자를 썼다. 견환의 말로는 사람이 착하지만 나약하다고... 그래서 정백 일행이 병든 견환을 쫓아내려 할 때에도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궁의 입김을 고려해야 한다는 정백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대신 거주할 처소를 가르쳐준다. 견환이 희비로 환궁할 때 마지막에 별 터치 안하고 오히려 자신이 베낀 경전 2권을 하사한다. 심지어 자신을 바지사장으로 만든 정백을 끝까지 구명하려 했고, 견환도 그 청을 들어준다.
-
정백
감로사의 비구니로 겉으로는 인자한 스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쪽도 한 성깔하는 사람이며 실질적인 감로사의 실세이기도 하다. 감로사로 거처를 옮긴 견환을 심하게 괴롭힌다. 견환을 괴롭히는 건 본인의 의지가 아닌 기귀인의 사주를 받은 것인데 이후 이 기귀인과의 관계가 자신의 목을 조르게 되는 날이 오고 만다.
폐비라지만 엄연한 전 후궁인데도 불구하고 처소를 엉망인 곳으로 배정하고 견환에게만 숯을 주지 않는 등 학대하는데, 견환에게 한겨울에 땔감을 구하게 하거나 땔감을 구하자 마자 절 청소 및 엄청난 노동을 바로 시키고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견환에게 윽박질러, 보는 사람 입장에서 욕이 나올 정도로 괴롭힌다. 게다가 견환은 롱월을 낳자마자 바로 감로사에 왔는데 산후조리도 안된 산모에게 그런 험한 짓을 다 시킨 것이다. 그 괴롭힘은 절정에 견환이 폐병에 걸렸다는 거짓말로 전염병환자로 만들어 감로사에 쫓아내려다가 윤례에게 제비집을 얻은걸로 도둑질 누명을 씌워[148] 감로사에서 쫓겨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심미장이 찾아왔을 때는 견환한테 못 가게 하려다가 심증을 잡은 심미장에 의해 혼자서 눈 치우는 벌을 받기도.
결국 견환이 희비 뉴호록씨로 환궁하게 되자 곤장 20대를 맞는다. 그러나 반성을 하긴 커녕 홍염친자사건 때 또 다시 기귀인의 사주를 받아 온실초와 사통했다는 거짓 증언 및 견환이 오만방자하여 제대로 일을 안했다는 거짓말을 하였지만 끝내 녕귀인에게 역공당한다. 녕귀인은 정백에게 "절에 시주하여 등을 밝히려면 얼마를 내야 하냐??"고 물었는데, 정백은 그녀가 귀인인 걸 대번에 알아보고 그녀의 신분에 상응하는 값을 말했다. 녕귀인은 이것을 토대로 정백이 궁안의 누군가에게 사주를 받고 이 일을 꾸몄다는 걸 알아냈다. 2년간 절에만 있던 스님이라면 당연히 후궁들 신분을 몰라야 정상이지만, 정백은 처음 보는 녕귀인의 신분을 알고 있었으니 의심하는 것은 당연. 결국 녕귀인이 부른 막언 스님의 증언과 홍염이 온실초의 소생이라는 주장이 완전히 거짓이라는 게 탄로나자 궁인들에게 끌려가 혀를 잘린다. 이는 안릉용이 제안한 것으로, 안릉용도 그때 견환을 입돌리기식으로 모함했지만 음모가 실패하자 후환이 두려워 그걸 알고 있는 정백을 제거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사람은 혀를 잘라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결국 견환의 명령으로 처형[149]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사이다. 해냈다! 복수성공! 인과응보, 자업자득, 뿌린대로 거둔다
성격이 더럽고 오만방자하며 약자를 괴롭히면 반드시 안 좋은 꼴을 맞이하는 옹정황제의 여인 악역답게 그 본보기로 처형당한 사람.
-
막언
감로사의 비구니로 겉으론 무뚝뚝하고 까칠해보이지만 사실은 츤데레성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견환이 정백에 의해 엄청난 고생을 할 때 산후조리를 위한 설탕을 가져다주는 등 여러모로 도와주기도 했다. 견환이 폐병이 들었다는 누명을 써 감로사에서 쫓겨날 때 끝까지 혼자 견환을 감싸기도 했다. 이후 견환이 희비가 되어 재입궁할 때, 감로사의 모든 일을 맡게 된다.
홍염친자확인 사건 때 견환에게 엄청나게 유리한 증언을 했다. 즉 "정백이 견환에게 험한 일을 시켜 하지 않으면 때리고, 제비집을 훔쳤다는 누명을 씌워 능운봉으로 내쫓아내는 바람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고, 능운봉은 외지고 들고양이가 자주 출몰해서 온실초와 정말로 사통했으면 도망을 갔지 왜 거기서 고생하겠냐"고 말한다.[150] 그래서 정백과 기귀인을 몰락시키는데 큰 도움을 준다.
견환에게 "그딴 남자의 아이를 왜 낳아줌?"그딴 남자는 황젠데과 윤례에게 "남자는 믿을 수 없소."라는 말까지 한다. 이는 원작 설정 때문인 듯한데, 원작에선 아들을 못 낳고 딸만 둘 있다는 이유로 남편이 작은딸을 물에 던져 죽여버리고 새장가를 들었다. 그래서 큰딸과 함께 출가한 것. 더군다나 큰딸은 여자의 몸으로 뱃사공 일을 하다 집단 강간까지 당했다.[151] 이쯤 되면 남혐이 생길 만도. 나중에 그 딸은 견환이 자기 시녀로 데려간다. 충격적인 설정이기도 하고 분량상의 문제도 있어서 잘린 듯.
9. 신하들
-
동가 융과다
효의인황후의 동생이자 옹정제의 의붓 외삼촌.[152] 극 중에서는 안 나오지만 강희제의 생모이자 옹정제의 친할머니인 효강장황후의 조카이기도 해서 옹정제에겐 오촌 숙부로 실제 핏줄상으로도 친척이 맞다. 원래 옹정제의 친모인 태후 오아 성벽의 첫사랑이었지만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태후를 선황 강희제의 후궁으로 입궁시켰다. 정작 그 뒤로도 둘이 불륜을 저질렀다. 연갱요와 함께 옹정제의 즉위를 도운 양대 공신이고, 연갱요를 무너뜨리는데도 동참했지만 태후와의 불륜관계를 아는 옹정제는 융과다를 연갱요 못지 않게 싫어했으며[153] 결국 연갱요가 숙청된 뒤 태후에게 시켜서 융과다를 독살하도록 한다.
-
과이가 악민
기귀인의 아버지로 견원도에 의해 발탁되었으며 연갱요를 무너뜨리는 데 기여한다. 하지만 연갱요가 숙청당한 후 자신을 천거했던 견원도까지 모함한다. 결국 견환이 복위된 이후 딸 기귀인이 친자확인사건으로 폐서인이 되어 냉궁에 유폐되자 후궁의 아버지라는 뒷배를 잃게 된다. 게다가 본인도 딸처럼 처신을 제대로 못하는지[154] 그동안 저지른 죄로도 모자라, 황제가 가장 혐오하는 부정부패까지 저지른 게 들통나면서 바로 하옥되어 감옥에서 자살한다. 사후 딸 기귀인도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과이가 가문의 성인 남자들은 전부 처형되고, 노인들과 어린이들은 유배를 가고 여자들마저 노비로 팔려가면서 가문도 완전히 작살난다.
-
장정옥
그렇다 할 개인 서사는 없지만 은근히 약방의 감초처럼 자주 등장하는 신하. 초반부터 융과다와 연갱요를 주의하라고 진언했고, 전명세 개새끼 해봐에 참여하지 않은 견원도에게 죄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딱히 파벌이 있는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나이가 어린)6황자를 후계자로 하겠으면 친모인 견환을 죽여서 휘둘리지 않게 해야 한다는 위험한 주장을 한 적도 있다. 극 중 네임드 신하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숙청당하지 않고 살아남았는데, 실제 역사에서 장정옥은 다소 불명예스런 일을 겪긴 했어도 건륭제 시절까지 숙청당하지 않고 사후 태묘에까지 모셔진 처세술의 달인이다.
-
계유생
흠천감의 부사였으나, 앞서 정사가 말했던 견환과 관련된 불길한 징조를 부정하고, 반대로 안릉용이 불길하다는 뉘앙스로 황제에게 진언하여 정사가 된다.
10. 그 외
-
운신라
견환의 어머니. 드라마에서 큰 비중은 없다. 원작에선 순원황후 회임 축연에 참여하여 자신이 순원황후를 닮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후 견환이 후궁이 되자 견환이 순원황후를 닮아 총애받고 있음을 알고 입궁을 되도록 하지 않으며 현릉과의 만남을 피했다. 견씨가 몰락한 후 견원도와 서로 공경하기만 할 뿐인 관계에서 서로 의지하는 부부로 발전했다. 사실 완벽이 견원도의 사생아임을 알고 있다. 드라마에선 불명.
-
손묘청
수녀 간택 때 견환의 뒤에 서있었던 수녀로, 소주 직조 손주합의 동생이라고 언급된다. 견환의 차례가 왔을 때 내심 탐탁치 않게 생각하던 태후가 트집을 잡기 위해 차를 바닥에 뿌리고 고양이를 풀었지만[155] 견환은 침착함을 유지하고 그 뒤에 서있었던 손묘청이 놀라서 소리를 지른다. 이에 옹정제는 손묘청이 추태를 보였으면서 수녀 간택 참가 자격을 영구적으로 박탈하는데, 정황상 자신이 마음을 주고 있는 견환에게 트집을 잡으려 한 태후에 대한 불만으로 화풀이를 한 것으로 보인다.[156]
-
유연자
수녀 간택 때 안릉용과 같은 차례에 있었던 수녀. 삭제된 부분 중 수녀 간택에서는 떨어지지만, 그녀의 오라버니가 몽골 귀족들에게 한문 교육을 담당한 관원이라는 것을 황제가 알아보고 지명하여 몽골 친왕의 아들에게 시집보낸다. 엑스트라 치고 뭔가 쓸데없이 분량을 할애한 듯 한데... 이 캐릭터의 진상은 원작 작가인 류렴자의 오너캐다. 연기도 본인이 했고 이름도 중국어 발음으로 류렴자와 같은 말장난이다. 결혼 상대의 이름도 현실 남자친구에게서 따왔다.
[1]
정확히 말하면
한족 중에서도 한군 팔기.
청나라가 한족의 문화를 받아들인 이후 황제들은 대개
만주족보다 한족 여자를 더 총애했는데, 한족 여자들이 기본적으로 지식이 많고 똑똑하여 황제의 말상대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만주족은 굳이 글자를 배우지 않아도 잘 살았기 때문에, 여자들도 굳이 배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2]
드라마판에서는 태후가 "황손을 번창케 하기 위해서 수녀 선발을 해야 한다"고 하도 황제를 갈궈대서, 결국 황제는 한숨을 내쉬면서 "그럼 이번 수녀 선발을 끝으로 다시는 이런 거 하지 마요, 엄마. 그리고 이번 후궁 간택은 만주족과 한족 두 인종 간의 화합을 보여주기 위해서 한족 여자들을 최우선적으로 뽑을 테니까 이 이상 토달지 마세요."라는 이유로 한족 후궁들이 다수가 된 것.
[3]
하지만 한족이라도 그냥 한족은 아니고 팔기군 소속의 한족만이 가능하다. 작중에서 팔기군에 소속된 한족은 한군기, 평범한 한족은 한인이라고 구분하여 부른다.
[4]
이 발언으로 보아, 만군기임이 밝혀지진 않았으나 만군기 가능성이 있는 것이, 기귀인 이전에 리타이어한 여빈 정도이다.
[5]
순상재는 2화의 수녀 명부에서 만군기라고 적혀있기도 하고, "만몽이 먼저
한족은 나중"이라는 법도에 따라 견환보다 먼저 입궁하기도 했으므로 확실히
만주족이다. 보통 봉호가 없는 후궁들은 성씨+직위로 호칭되기 때문에 평소 순아라고 불리는 순상재가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보통 이름 뒤에 兒를 붙인다), 교송지 역시 교답응이 아닌 지답응으로 불려졌으므로 순상재 역시 이러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원작 소설에서는 방의순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므로, 순은 성씨가 아니라 이름이다. 다만 민족이 만주족으로 바뀌었으므로 성씨는 원작과 다를 것이다.
[6]
편집으로 삭제된 내용에 의하면 견환의 입궁 동기로 초반에 언급되는 박이제길특 귀인이 바로 이 정빈이다. 견환이 감로사로 가기 전까지 총애를 못받다가 견환이 감로사로 간 후 견환처럼 꾸며서 잠시 황제의 총애를 받아 정이라는 봉호를 받고 빈으로 승급했지만 자신의 총애가 오래 가지 못할것이라는 걸 알아서 자신의 시녀를 황제에게 바쳤고 그 시녀가 바로 강상재이다. 이후 안릉용에게 총애를 빼앗겼고 정빈과 강상재가 안릉용을 싫어하는 이유도 그때문이라고 한다.
[7]
수녀선발에서 뽑힌 후궁이 받을 수 있는 가장 높은 품계. 실제
청나라 후궁들 중에는 수녀 선발에서 뽑힌 후궁임에도 불구하고 빈이나 비가 되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극중에서는 수녀로서 귀인보다 높은 품계를 받은 경우는 없다.
[8]
예를 들어 대랍시에 드리우는 술이 1개나 2개냐의 차이.
[9]
안릉용과 기귀인이 둘 다 귀인, 빈일 때 기빈이 좀 더 윗자리에 앉았는데 이는 안릉용이 봉호가 없어서 그랬다. 참고로 기빈이 귀인으로 강등당한 뒤로는 당연히 안릉용이 더 윗자리에 앉게 되었다. 황후-안릉용-기빈 3명이 모인 상황에서 볼 수 있다. 또한 봉호를 박탈당한 연세란은 "난 이제 제비, 단비보다도 아래인데 무슨 낯으로 나다니냐"라는 말도 했다.
[10]
완빈과 조귀인이 이런 관계였다.
[11]
심미장의 가짜 회임 사건이 연세란의 짓이라는 걸 안 황제가 화비 → 연귀인으로 강등시키려다가 빈으로 참았다. 물론 화비가 역병 처방전을 온실초한테 훔쳐와서 말짱 없었던 일이 되지만.
[12]
일례로 건륭제의 말년에 가장 총애받았고 가경제를 낳은 위가씨는 순수 한족 출신이 탓인지 황귀비에 올라 계황후 호이파나라씨를 대신해 후궁을 통솔했지만 죽은지 20년이 지난 후에야 황후로 추존되었다.
[13]
근데 조귀인은 양빈이 되기 전에 연회에서 쓴 적이 있다.
공주의 생모라 특별히 쓴 듯.
[14]
그 외는 그냥 작은 주인이라는 뜻의 "소주"로 불린다. 하지만 엄격히 말해 궁의 주인은 황제 부처와 태후 이렇게 3명밖에 없으므로 마마로 불리울 수 있는 건 황후와 태후 뿐이고, 원래 후궁들은 전부 그냥 소주라고 방약 상궁이 1편에서 견환들에게 가르쳐준다. 빈 이상이라도 마마라고 부르는건 그냥 높여 불러주는 것 뿐이다. 황자나 공주들은 자신들의 서모라서 그런지 빈 아래의 후궁들에게도 마마라는 호칭을 쓴다.
[15]
황제의 시침을 들 자격이 있다는 걸 제외하면 일반 궁녀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16]
예를 들어 여답응은 견환 앞에서 본 소주라고 스스로를 지칭했다.
[17]
남편인 황제가 죽어야 태후가 된다.
[18]
실제로 쓰인 적이 없는 사극전용 단어이다. 실제로는
소첩 혹은
첩, 첩신 등을 사용했다.
[19]
이 둘이 자살을 한 것도 이미 친정 가문이 몰락했기 때문이다. 제비의 경우 부친이 뇌물수수로
강희제(선대 황제) 때 이미 유배를 갔으며, 안릉용이 자살할 때도 이미 안비괴는 감옥에서 자살했다.
[20]
정치적 이유에서건, 얀데레적 이유에서건.
[21]
원래는 병풍 캐릭터로 설정했지만 원작의 잡다한 캐릭터들을 모두 구현하기 뭣해서 부찰귀인 한 명에게 몰아넣었다고 한다.
[22]
안릉용을 갈구면서 킥킥거리던 강상재를 보고 안릉용은 "연희궁의 윗전으로서 명령한다!"라고 말한다.
[23]
견환과 안릉용, 심미장이 들어온 그 때
[24]
돈친왕, 항친왕 등 많으니까
[25]
아마 공신의 딸일 가능성이 높다. 왕부 시녀 출신 여자들은 "답응"으로 커리어를 시작한다. 이 둘은 별 총애도 못 받는데 답응에서 빈까지 올라가는 긴 여정을 그렇게 단시간에 달성할 리가 없다. 공신의 딸이면 단번에 귀인, 상재로 시작하니까 비교적 가능성이 있다.
[26]
칭기즈 칸의
보르지기트를 한문으로 변형하여 사용한 것으로 당연히 칭기즈 칸의 후손이라는 뜻이 된다!
[27]
2화에서 한 번 언급됐는데, 화비가 새로 들어오는 후궁들의 배정된 처소 명단을 들을 때 종수궁에 지정된다.
[28]
총애가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 이 둘의 후배인 영귀인이 승진할 때 강상재는 정빈과 나란히 승진을 못하는 뒷전이 된다.(…)
[29]
다만 이 상황 전에 전추와 황후가 "릉용이 쓸모 없어졌다, 이제 다른 사람을 써야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 것으로 봐서 아마 그게 강상재였던 듯 하다.
[30]
중국과
조선은 후사가 없는
후궁은 궁을 비우고
절로 출가해야 했으며, 자식이 있는 후궁은 자식의 거주궁에서 살아야 했다. 경귀비와 흔빈, 단황귀비는 견환의 편이자 측근들이며 경귀비와 단황귀비는 자신들이 직접 낳은 아이는 없지만 롱월공주와 온의공주를 양녀로 들였으므로 자식이 있다고 보면 되겠다. 흔빈은 밝혀진 바가 없다. 사실 이 제도는 엄청 무시무시한 뒷배경이 있는데, 원래는 선황이 죽으면 자식이 없는 선황의 후궁은 전부
순장이다. 다만 시대가 흐르면서 지나치게 잔인하다 하여 절에서 내세의 덕을 쌓는 것으로 배려하게 된 것. 자식이 있는 선황의 후궁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자식의 왕부 (자식이 성년이 될 즈음 왕이 되므로)로 가서 태비(태복진이라고도 한다)가 된다. 다만 극 중 윤례의 어머니 서태비의 경우 황태후가 좋게 여기지 않아 눈치껏 자진해서 도닦으러 출가한 케이스.
[31]
손답응이 사통했다고 간단하게 보고한 것도 아니고 둘이 꽃밭에서 헐벗고 하늘과 땅도 모르며 뒹굴더라며 내가 갔을 때 둘이 땀투성이가 되어서 꽃밭에 있더라고 자극적인 워딩으로 황제의 성질을 제대로 긁었다.
[32]
이 때부터 궁주이며 주자나 마마라고 불릴 수 있게 된다.
[33]
드라마의 귀인처럼 갓 입궁한 후궁이 받을 수 있는 마지노선 품계.
[34]
본편의 표기. 외전인 야심침에서는 거꾸로 현비 감씨, 덕비 묘씨라고 나온다. 유산한 쪽이 누구인지는 작가 본인도 헛갈리는지 감씨라고 했다가 현비라고 했다가 왔다 갔다 한다.
[35]
처음에는 순(順), 공(恭), 진(珍) 자가 올려졌고, 견환이 진(珍)으로 하는 게 어떻냐고 하자 현릉은 연의가 자신에게 황자를 낳아줬지만 내 마음의 보배는 아니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이에 견환이 곧을 정(貞)자를 제안하고 현릉이 이를 받아들인다.
[36]
다만 견환이 출궁하기 전 서채녀가 지나가듯이 언급된다. 본격적으로 언급되는 건 출궁 이후고 견환이 직접 대면한 건 환궁 이후다.
[37]
추녀는 아니고 중상 정도로 묘사된다.
[38]
근석의 스캔들 때 맹자를 인용해 도와주거나, 드라마 최종회에서 황제의 죽음에 슬퍼하느라 몸져누웠다는 언급 등
[39]
묘사상으로는 6, 7할 정도
[40]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으나 현릉이 직접 "여음이 널 얼마나 닮았는지 아느냐?"라고 하고 미장도 많이 닮았다고 하며 견환이 출궁한 후 들어온 후궁들이 견환을 보고 매우 놀랐다.
[41]
작약의 다른 이름
[42]
화비가 좋아하는 꽃인 작약에서 따온 이름이다.
[43]
심지어 우대하기도 했는데, 원래 궁녀 출신은 한 계급 한 계급 진봉할 수밖에 없는 것이 관례이나 적작은 두 단계씩 진봉하곤 했다.
[44]
이때, 팔이 짤려 위로 차원으로 첩여에 봉해진다.
[45]
친사촌을 제외한 모든 친척 오빠를 이른다.
[46]
밑에 서술되듯
궁녀들이라도 팔기 출신으로 엄격하게 신분을 고려하여 뽑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친정에서 몸종을 데리고 입궁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고 한다. 아마도 중요 등장인물 중 하나인 완벽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사실 왜곡인 듯.
[47]
다만 실제로는 아무리
궁녀라도 얼굴은 가급적 때리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하지만 얼굴 외의 부위는 그냥 마구 팼다고 한다.
[48]
전추는 황후의 자애로운 가면을, 송지는 화비의 거만함을, 길상은 단비의 돌부처같은 생존력을, 상아는 부찰귀인의 멍청함을, 조귀인의 시녀는 자기 주인의 영악함을, 안릉용의 시녀 보견은 제 주인보다 더한 곡해력을, 기귀인 시녀는 자기 주인의 싸가지를 닮는 등, 채월-심미장처럼 좀 애매한 경우도 있고 취과-제비처럼 전혀 안 닮은 경우도 없는 건 아니다.
[49]
특히 가족 중 이미 황족의 복진이나 후궁이 있을 경우, 혹은 부친이 높은 벼슬을 지낼 경우에는 선발의 우선 대상이 되었다.
[50]
보보경심에 보면 주인공인 약희가 4황자와 8황자 때문에 다행히 간택은 되지 않았지만 궁녀로 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약희는 8황자의 처제이자, 정 2품 총병을 지내고 있는
만주족 귀족의 딸로, 상당히 높은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궁녀로 일하고 있다. 또한 근석이 말하길 25살이 넘은 궁녀들은 출궁할 수 있다고.
[51]
단 입궁 후 태감이 되면 팔기에 소속되었다.
[52]
명나라 때 환관만 최대 10만명에 달했다고 하며, 명나라의 정치 자체가 대신세력과 환관세력의 대립으로 해석되기도 한다(후기로 가면 환관이 왕을 좌지우지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드라마 중에서도 황후가 이 일을 언급하며 "청 왕조에서는 이런 일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한다.
[53]
연갱요와 안릉용은 환관들을 고자라며 모욕했고, 기귀인은 친자확인 사건 때 소배성의 아내인 최근석에게 모진 고문을 가해 자백을 받아내야 한다고 제안했었다.
[54]
그러나 드라마 기준에는 소배성은 최근석과 혼인했어도 끝까지 황제의 곁을 지킨다. 황제의 장례식에서 주례(?)를 맡는 장면에까지 얼굴을 비춘다.
[55]
이때 여앵아에게 원한이 깊었는지, 죽었을 때 목이 반쯤 잘렸다고.
[56]
다만 이때는 안릉용이 견환의 사주를 받아 냉궁에 찾아왔다고 알고 있었으니, 견환이 여앵아를 죽이라고 지시한 줄 알고 있었다.
[57]
이들은 벽색과 주홍색, 즉 색상이 이름에 들어있다. 이들의 이름은
천룡팔부에서 등장하는 모용복의 시녀인 아주와 아벽에게서 따온 걸로 보인다.
[58]
자신은 힘조절을 못하니 스스로 때리라고 적당히 봐주긴 했다.
[59]
드라마에서는 "어느 궁, 어느 소주를 섬기더라도 충심을 다할 것입니다"라는 대사로 순화되었다.
[60]
"책상 위에 있던 유리 화병은 닦고 나왔나?" "네" "ㅋㅋㅋ 아닌데? 유리 화병이 아니라 청옥화병인데?" "아 잊을 수도 있죠. 청옥 화병이 맞습니다" "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 내 책상 위에는 화병이 있었던 적이 없다!" "..."
[61]
정황상 견환은 외부인보다는 소윤자가 더 믿음직했을 것으로 보인다. 견환이 제안을 하기 바쁘게 황제가 뭐라고 할 새도 없이 소윤자는 성은이 망극하다며 인사를 올려서 기정사실로 만들고, 황제도 굳이 기각하기는 뭣해서 인정해 버린다.
[62]
하지만 이는 견환의 힘도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황제가 쓰러져 사실상 궁의 거의 모든 부분을 장악한 견환이기에 견환의 심복인 소윤자의 말에 따라 내관들이 궁을 수색해서 하예를 잡는 건 일도 아니었을 듯.
[63]
극장판 수록분 기준
[64]
심미장의 이름을 암시+순원황후 카드+(견환)날 생각해서 좀 봐주세요의 콤보를 날린 것이다. 이 때 견환은 순원왕후에 대해 잘 몰랐지만 방약이 마침 원산대를 그릴 줄 알았기에 나비효과가 된 것. 원산대가 나이 많은 사람에게 어울리거나 흔한 화장기법은 아닌지, 황제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65]
엔딩 크레딧에서 손죽식이라고 나오는 걸 보면 죽식은 본명인 것 같다.
[66]
태후가 의수를 세운 것을 후회하자 태후께서 타일러도 안 듣는 걸 어쩌겠냐고 발언
[67]
애초에 신형사의 고문은 소배성의 말마따나 결백을 입증해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만큼 가혹한 거라 그걸 버티며 불지 않는 전추가 대단한 거다. 화비도 자신의 측근인 주녕해가 신형사에 끌려갔을 때도 주녕해가 자신을 불어도 탓하지 않을 것이라며 체념할 정도. 즉 신형사 고문에 굴복하는 건 배신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68]
물론 모든 게 황후가 꾸민 일이었으니 그냥 연기.
[69]
물에 백반이 섞이면 생판 남이라도 피가 섞여 혈육 관계로 오해받을 수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친자확인검사는 같은
혈액형끼리 섞일 수도 있기 때문에 사극에서만 통하는 검사법. 다시 말해서 정확한 검사법이 아니다.
[70]
물론 이 뒤에 송지는 "어려서부터 소주를 모셨는데 당연히 끝까지 따라가야죠"라고 대답한다.
[71]
이 걸음걸이 때문에 한 번은 급히 들어오다가 문턱에 걸려 콰당 넘어졌고 화비는 그걸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물론 그 다음에 그가 전한 소식이 황제가 온다는 소식이어서 기뻐했지만.
[72]
이 설정대로라면 화비가 주녕해를 막대하지 않는 것이 설명되긴 한다.
[73]
화비가 송지에게 화를 내며 빗을 집어던지려 했을 때 그 빗이 싫으면 저한테 하사해 달라며 능청을 떨며 말렸고, 그 다음 황제에게 질투심을 보이면 안된다고 설득했다.
[74]
조귀인이나 송지는 뭔가 수틀린다 싶으면 화비한테 갈굼, 폭행당하지만 주녕해는 유분의 입막음에 실패했을 때도 별다른 책망을 듣지 않았다.
[75]
후에 안릉용이 "꾀꼬리" 리비가 될 거라는 복선이었을지도?
[76]
안릉용은 렙 1 답응으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답응은 시녀를 한 사람만 가질 수 있다.
[77]
릉용이 결정적으로 황후에게 약점을 잡힌 상황에서 황후가 너와 자매같은 사람에게 들었다는 의뭉스러운 말을 한다. 릉용은 그것이 당연히 견환이라 생각하는데, 견환은 확실히 아니었으므로 남는 사람은 보견 뿐이다.
[78]
정백과 비문의 케이스처럼 이 부분도 제대로 번역이 되지 못했는데, 역시 그냥 곱게 죽이는 것도 아니고 곤봉으로 매질해서 죽였다.
[79]
견환이 충격을 받아 유산하게 하려고 했으나 조산에 거쳤다. 그런데 보작의 케이스로 봤을 때, 유산시키는 데 성공했다면 얘도 처형당할 가능성이 높다.
[80]
1.황후가 추천한 인물이고 2.아는 게 너무 많아서 죽어야 한다는 황후의 언급이 있다. 게다가 주녕해가 고문을 받고 화비파의 죄행들을 자백할 때 유독 심미장 독살 시도 관련으로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딱히 이것만 숨길 이유도 없고, 내무부의 누군가가 한 일인 건 분명하니 황후파인 강충민이 한 일이라고 추측한다면 얼추 아귀가 맞는다.
[81]
상한 음식을 제공하고, 숯과 같은 물자도 제대로 주지 않았으며 쇄옥헌 사람들이 병에 걸렸는데도 치료받지 못하게 막았다.
[82]
과군왕부의 시녀인 채빈/채람, 화비의 시녀인 송지/영지가 같은 돌림자를 쓰는 케이스이며, 황후의 시녀인 전추/회춘(계절), 견환의 시녀인 유주/완벽(물+색상)은 세트구성인 케이스다.
[83]
원문 대사: 황제폐하는 소주를 정말 총애하세요 (중략)
어떤 답응은 시침도 못 들었는데 (후략)
[84]
사실 틀린 말은 아닌 게, 이 때 제비는 견환을 싫어했어도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려 했는데 옆에서 부찰귀인이 충동질한 것이다.
[85]
부찰귀인의 태감.
[86]
누군가가 견환을 모시는 가마가 지나갈 길에 미끄러운 자갈돌을 놓아서 넘어질뻔 하게 하였다. 동기로 따졌을 때에는 기빈의 짓이겠지만 그 돌의 출처가 하필이면 흔귀인의 화분이었다. 이때문에 흔귀인을 시험해보기도 했으나 견환도 결국은 확신하지 못했다.
[87]
하지만 여기에 반론도 있는데, 일부러 모르는척 했다는 것이다. 견환이 인간 돼지 이야기를 할 때 고사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게 직관적으로 얘기했기 때문에 상황파악을 못했다고 보긴 그렇고, 상아가 제비한테 말할 때 같이 있었던 조귀인은 아무 일 없었다며 은연중에 견환의 쉴드를 쳤기 때문. 게다가 귀신소동 때는 없는 부분까지 부풀려 말했는데 이번 사건은 오히려 단순하게 말했다. 후술하듯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없었기 때문에 긁어 부스럼을 만들기 싫어서 모르쇠를 놓은 것일 수도 있다.
[88]
그런데
그간의 제비의 행적들을 보았을 때, 제대로 사실을 전달받았다 하더라도 과연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을지도 미지수이다.
[89]
다른 증인이었던 비문과 정백은 순전히 사심으로 한 짓이라 자비를 베풀 필요도 없이 바로 죽였다.
[90]
동화=오동나무 꽃, 근석에 따르면 오동나무는 사랑과 정절을 뜻한다고 한다.
[91]
태후는 동화대를 싫어했기 때문에, 결국 강희제 사후에는 황량해지고 말았다고 한다.
[92]
후일 장상수 피리는 윤례의 소유가 되었고 장상사 금은 견환의 소유가 되었다.
[93]
다시 강조하지만 실제 역사에서의 옹정제는 8황자당을 제외하고, 자신을 지지해준 형제들에게 아주 잘해줬다.
[94]
못 추면 당연히 문제지만 잘 춰도 감히 순원황후를 모방했다고 트집이 잡힐 상황이었다.
[95]
사실 이때는
황후의 선동도 한 몫했다. 황후는 견환의 명망을 떨어뜨리기 위해 영수궁을 지나칠 정도로 사치스럽게 수리하고, 조정의 여론을 조장했다.
[96]
다만 악의는 아니었는지 황제가 완벽의 신분을 올리고 과군왕에게 시집 보내겠다고 할 때, 노비 신분인 완벽에게 뉴호록이라는 고귀한 성을 하사했음에도 반대하지 않는다. 되려 완벽과 과군왕을 측복진과 활짝 웃으며 축하해준다.
[97]
호적이 파였다지만 선황제의 핏줄인 홍시가 양자라서 황제 자리에 앉히고 싶은 게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
[98]
화비처럼 성격이 오만하고 더러웠는데 화비랑 똑같이 온화하고 정숙하다는 의미인 온희라는 시호로 추존되어 태후가 어이없어하는 장면이 있다.
[99]
실제 역사에서의 돈친왕도 작위를 박탈당했으나 그의 외숙모가 옹정제의 친이모라서 더 이상의 처벌은 없었다. 옹정제가 자신의 정적이었던 8황자 윤사, 9황자 윤당을 종인부에 감금시키고 각각 아키나, 서스허(만주어로 개, 돼지란 뜻)로 개명시키고, 14황자 윤제는 강희제의 능참봉으로 강등시킨 것에 비하면 관대한 처분이였다.
[100]
견환은 안전을 위해 보내 준 것이고, 안릉용은 황후가 견환을 감시하기 위해 우정의 명목 아래 자원하도록 시켰다.
[101]
처첩간의 관계가 완전히 작살나기 직전인 황제와는 대비되는 부분이다.
[102]
이 덕분에 적들에게 무방비이던 견환이 마음을 다잡는다.
[103]
옹정제의 말에 의하면 황제와 연갱요에게만 진상되는 물건이고 돈친왕에게는 하사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즉 연갱요와 돈친왕이 결탁했다는 것.
[104]
실제 역사 속 돈친왕인 돈군왕은 슬하 6남 3녀가 있으나 그 중 6명이 죄다 요절했다. 적복진 소생 자식은 홍훤이 유일
[105]
아들의 옷을 모두 손수 꿰매줬다고 한다. 옥요와 결혼할 때 황제가 명을 내려 희태비로 품계를 올려준다.
[106]
정황상 3황자 홍시보다도 더 어리다. 윤희가 처음 등장했을 때 아직도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는데 그 이전에 황제가 제비를 찾아갔을 때 3황자는 이미 성인이라는 언급이 있기 때문.
[107]
풍질(風疾)에 걸렸다고 한다. 열이 펄펄 끓어오르고는 손쓰지 못하는 사이에 죽었다고.
[108]
현릉이 얼마나 의수에게 관심이 없고 순원에게만 빠져있었는지, 그리고 현릉 특유의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정서에만 신경쓰는 측면도 드러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의수는 아들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보다 뒤늦게 남편 눈에 띈 언니에게 자리를 가로채여진 상황이었기에 언니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근데 아들이 죽은 상태에서 남편이 하는 말이 니 애 죽었으니 안 됐다는 빈말섞인 위로조차 아니었고, 니 애 죽었는데 니 언니가 아들 가졌으니 그 애라도 당신 애로 여겨 하는 식의, 위로도 뭣도 아닌 개소리인데다가 까고 보면 '니 언니가 애 가졌으니 축하해줘라'하는 의미도 품은 발언이었다. 즉, 황제는 의수의 아이가 죽던 말던 순원이 애 가졌다는 것에만 푹 빠져서 의수의 아이의 죽음과 그로 인한 의수의 슬픔에는 별 관심도 안 가졌다는 걸 이 언행으로 증명했던 거다. 그러니 이 말을 들은 의수는 언니 때문에 황제의 자기와 황제 사이의 아들(그것도 무려 장자)에 대한 관심마저도 다 빼앗겼다고 볼 수밖에... 게다가 의수의 아들 이전에 1황자는 황제 자신의 아이자 그것도 자신의 첫 아이이며 첫째 아들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딴 거 다 씹고 황제는 순원 애만 좋아~ 순원만 좋아 상태에 푹 빠져있었기에 의수와 자기 아이가 죽은 것에 대해 내 알바 아니라는듯 대충 말하고 넘어갔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최소한 1황자가 자기 아이라는 인식이 강했다면 분명 슬퍼했을거다.
[109]
원작에서 의수의 아들은 만 세살이 되도록 이름도 없었고 정식으로 황자 책봉도 못 받았다. 현릉이 얼마나 관심도 없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110]
원래 역사대로의 이름이라면 홍윤이다.
[111]
즉 순원의 아들인 이 2황자가 빼박 후계자가 되고, 2황자가 무사히 살아있는 한 그 손윗아래의 황자들은 손만 빨 수밖에 없다는 것. 다만 이 아이도 작중에선 1황자와 함께 일찍 죽었기에 황위 계승싸움에 끼지도 못했기에, 실제로는 궁녀 어머니를 둔 4황자 홍력이 황위에 오르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112]
원래 역사대로의 이름이라면 홍주며 어머니가 한족 출신이다.
[113]
당시 3황자는 제명되었다.
[114]
실제 역사에서도 홍주는 정말 개망나니였다고 한다. 군기대신인 눌친을 구타하고, 갑자기 자기 장례식을 꾸미는 등, 여러 차례 말썽을 일으켰다. 다만 형인
건륭제가 끝까지 비호해준 탓에 홍주는 건륭 30년까지 무사히 잘 먹고 잘 살다가 사망하였다.
[115]
역사엔 생모는 유비 경씨로, 옹친왕부 시절에 격격이였다가 옹정 등극 후에 빈이 되었다. 옹정 사후에도 유독 오래 살아 18세기에 무려 만 95살까지 장수하여 황귀태비로 존숭되어 사후 순각황귀비에 봉해졌다. 아들이 하나 있단 점과 건강이 부실하단 점에서 원작에 정비 서연의와 여패가 원 인물일 수도 있다. 끝까지 등장은 안하지만 후반부에 안릉용이 비에 봉해지자, 황제가 '4명의 비를 모두 채운 경사'라고 언급하는데 이때 작중 등장하는 비는 3명 뿐이라 1명은 불명인데 아마 그 사이에 궁에 들어왔거나 아직 궁 밖에 사는지 모르는 5황자 홍주의 생모인 유빈이 그새 유비가 돼있던 상태를 포함해 말하는 지도 모른다.
[116]
황제의 딸 2에서 제비와 자미를 많이 감싸주고 이강과 묘한 분위기가 흘렀던 바로 그 청아 공주.
[117]
온의가 아기였을 무렵엔 3황자와 4황자, 그리고 궁궐 밖에서 자라고 있었던 5황자를 제외하면 황제의 자식이 온의밖에 없었다. 다만 온의 외에 흔상재가 낳은 공주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157] 정확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118]
이 사건 때문에 심미장을 싫어하는 안티들도 있다. 죄없는 어린아이를 고생시키며 이용했다는 점에 있어서 화비와 다를 바가 없는데다, 이 시점에서는 단비가 온의공주의 양모로 되었는데 단비는 주인공 견환에게 도움을 줬던 선역이라 졸지에 견환파에게 통수를 맞은 것이다.
[119]
홍염은 황위계승권이 있는 황자이기 때문에 궁중암투가 주 내용인 본작에서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지만, 영서는 공주인데다 이미 언니에 해당되는 두 공주(온의공주, 롱월공주)가 존재하고 있어서 딱히 비중을 둘 만한 이유가 없기도 하다.
[120]
중국어 문장이라 한국어 문장으로 옮기기가 난해하다. 풀이해 보면 앞에 언니는 온의공주이고, 뒤에 언니는 롱월공주를 의미한다. 즉 영서공주 입장에서 작은 언니인 롱월공주가 큰 언니인 온의공주를 쫒는다는 의미.
[121]
사실 출생의 비밀이 없었어도 둘은 친사촌이라 근친혼이다.
[122]
홍염, 영서의 이름을 각각 황제와 견환이 지었다는 걸 안 태후가 당시 임신한 미장의 아이 이름은 자기가 짓겠다고 했다.
[123]
고요할 정(靜)에 화목할 화(和). 견환과 미장이 원하던 삶이었다.
[124]
원작에서 견환이 "어쨌든 여철 때문에 필사적으로 싸워야 했다"고 언급하는 걸 보면 딸을 근친혼시키지 않으려고 견환이 여철의 죽음에 관여했다고 볼 수도 있다.
[125]
피부가 눈처럼 희다는 뜻으로 붙였다.
[126]
완결전에 쓴 외전이라서 설정이 다르다. 이 황제는 견환의 아들 여함이다.
[127]
지일의 눈이 현청과 닮았다는 암시가 나온다. 언니인 영서도 현청의 아들 원철과 사랑에 빠졌다 비극적 결말을 맞이했다는 걸 생각해보면, 자매가 둘 다 아빠 닮은 남자에게 반해서 망한 듯(....). 견환도 현청과 엮여서 온갖 평지풍파 다 겪었으니 그냥 이 집안 남자들이 죄다 이상한 것 같다
[128]
위기에 빠진 자신을 볼 때의 표정이 절대 세속에서 초탈한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고.
[129]
이 때 모후라면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살 수 있겠냐고 따져물으며 자기는 그렇게 못 산다고 바람에 견환의 역린을 제대로 건드린다. 비록 천우는 눈치 채지 못했지만...
[130]
지일은 알 리 없었지만 혼인한 남편이 있는 데도 다른 사람을 사랑한 견환의 잘못을 천우가 되풀이해선 안 된다고도 들을 수 있다.
[131]
심미장과 온실초의 아들, 후에 견환의 양자가 되어 황제에 오른다. 옥점추를 쓸 때와 완결 시점의 설정이 다른데, 옥점추의 황제는 견환의 아들이다.
[132]
작중에서 중상 정도의 외모로 묘사되며 가문과 미모에서 무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한다.
[133]
정장제가 근비가 황자를 출산하지 못했음으로 법도에 어긋나긴 하나 모후(견환)께서 적어도 현비로 올리라고 하셨음으로 귀비에 봉하고 싶다고 하자 견환은 귀비 자리를 주길 원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이에 놀란 정장제가 그럼 숙, 덕, 현 중 하나를 골라 주겠다고 하자 견환은 그 착한 아이를 서운하게 하진 않는다며 황후의 자리가 어떻냐고 제안한다. 이에 정장제는 근비를 대신하여 감사를 표하고 먼저 근비를 귀비에 봉한 후 황후로 진봉시킨다.
[134]
정장제는 그 전에 황후를 들이지 않았었다.
[135]
후궁 중 무비는 총애를 제외한 다른 모든 면에서 그녀를 견제 가능한 인물이다. 그러나 무비 스스로 총애받지 않아도 높은 자리에서 평온하게 사는 삶을 노리기 때문에 굳이 경쟁할 이유도 없다.
[136]
대주의 황후는 모두 명문가의 자제였음으로 출신이 한미한 근비보다 황후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 하지만 태후 견환은 온유황후(주의수)나 화비(모용세란)가 권세를 휘둘러 문제가 많이 일어난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오히려 명문가인 무비는 경계하고 근비를 어시스트했다.
[137]
화경덕태비 풍약소, 드라마의 경귀태비
[138]
근비는 당시 만삭이라 시침을 들 수 없었다.
[139]
근귀비를 아끼던 정장제가 바로 죽이자고 하였으나 황후를 책봉하는 길일을 앞에 두었으니 나중에 처리하자는 견환에 의해 금족령만 받는다. 감히 직접 비상을 쓰는 허술한 술법을 썼다며
온유황후(주의수)와
리비 시절이었다면 이가 빠지도록 웃었을 거라는
경덕태비(경귀비)와 견환의 반응이 압권
...
[140]
태후인 견환의 처소, 당시 황후 사윤과 설백제희 천우, 태후 견환이 함께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141]
천우는 처음부터 부마 간택을 맘에 들어하지 않았고 누귀원도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하기보단 공주랑 결혼하는 게 목적인 속물남으로 봤다.
[142]
그녀의 혈통 자체는 황가와 가장 가깝다. 호온용과 황제가 6촌간이다.
[143]
수정판에서는 미색으로 바뀌었다.
[144]
참고로 원작에서 물에 백반이 들어간 건 견환의 자작극이다.
[145]
안릉용의 친정은 당시 한미한 가문이라 별 도움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자기까지 연루될까 전전긍긍한 모습을 보였다.
[146]
견환의 언급에 따르면 내의원 수장이 되었다는 듯.
[147]
견환이 윤례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진 당시 황제에게 견환이 슬픈 이유는 완벽 때문이라고 둘러댄다. 황제는 완전히 의심이 가라 앉지는 않았으나 위림에게 희귀비를 잘 돌봐주라고 말 한다.
[148]
제비집은 자신과 주지 둘만이 먹을 수 있다고 하는데, 제비집은 고급 식재료다. 절에서 수행이나 해야 할 스님이 이런 사치나 부리고 있었다는 것. 정작 견환에게는 여기가 호의호식하는 곳이냐며 구박했다.
[149]
심지어 곱게 죽은 것도 아니다. 한국어 자막에서는 "비문, 정백은... 죽여라."로 나오지만, 해당 대사의 원문을 보면 "杖毙", 그러니까 곤장에 맞아 죽었다. 어찌 보면 이 일로 완전히 몰락한 기귀인도 둘과 같은 최후를 맞은 셈.
[150]
그래도 정백이 말한 건 부분적으론 사실이다.(본인은 모르겠지만) 다만 견환이 고생하다 동상이 심하게 걸려(롱월
임신 중 연금 때부터 걸려있긴 했다) 겨울마다 재발하는 걸 알고 안부차 물어본 덕분에 황제가 막언의 말을 한 방에 믿었다.
[151]
견환이 "관아에 신고 해봤냐"고 묻자 "셀 수 없이 많아서 못 했다"고 한다.
[152]
효의인황후는 옹정제의 황자 시절 양어머니로 그를 친자식처럼 사랑하며 양육했고 강희제의 눈에 띄어 총애를 받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그녀의 동생인 융과다도 옹정제의 황제 즉위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153]
오죽하면 연갱요가 숙청된 후 연갱요와 결탁했다는 죄명까지 조작했을 정도다. 참고로 융과다와 연갱요는 앙숙 관계로 초반에는 융과다가 연갱요의 죄명을 밝히며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황제가 융과다에게 연갱요와 교류하며 잘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고 연갱요의 장자를 융과다의 의붓아들로 만들어 주는 등 둘 사이를 중재하였다. 융과다는 황제의 지시대로 연갱요와 교류하고 연갱요의 의견에 동조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는데 이게 연갱요와 결탁했었다는 증거로 사용되었다.
[154]
과이가 악민이 옥중에서 자결했다는 소식을 들은 견환도 기귀인이 경망스러우니 그 부친도 마찬가지라고 비웃었다.
[155]
여기에서 견환이 놀라서 추태를 보이거나 하면 그걸 구실삼아서 탈락시키려던 참이었다.
[156]
이후 견환이 언급하길, 손묘청은 겁을 먹어서 그렇지 큰 잘못은 저지르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