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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27:27

신첩



1. 개요2. 역사적 쓰임

1. 개요

. 현대에서 사극에서 왕비, 후궁과 같은 비빈들이 임금에게 스스로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여자가 임금을 상대하여 자기를 낮추어 이르던 1인칭 대명사' 또는 '신하가 임금을 상대하여 자기를 낮추어 이르던 1인칭 대명사'를 뜻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실제로는 후자에 가까우며 전자의 의미로 쓰인 경우는 거의 없다.

2. 역사적 쓰임

(妾)은 원래 여자 노비를 뜻하는 말이었다. 높은 신분의 여성 또한 군주 앞에서 자기를 첩으로 지칭하며 낮춰불렀다. 첩의 반대말은 남자 노비를 뜻하는 신(臣)이다. 그래서 신첩(臣妾)은 남자 백성과 여성 백성을 합친 신하를 강조하는 백성을 뜻하는 말이었다. 신민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조선왕조실록부터 구한말의 기록까지 실제적으로 신첩은 이러한 뜻으로 쓰였다.

흔히 왕비나 후궁이 중국 사극에서 군주 이상에게 신첩을 쓰고, 한국 사극에서는 군주에게 쓰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극에서 쓰이는 법칙 중 하나일 뿐이며, 신첩은 사극에서 쓰는 것처럼 일상에서 쓰이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는 여성이 임금에게 첩, 소첩, 첩신(妾身), 일반 여성은 조선의 성종실록 중종실록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신녀(臣女) 등이 주로 쓰였다. 고려시대의 기록인 동국이상국집에서도 왕족 여성이 군주 이상(태후, 왕후, 왕)에게 첩으로 자신을 지칭하며, 조선왕조실록에서도 국역 버전에서 여성이 자신을 임금에게 신첩(臣妾)으로 지칭할 때 원문을 보면 왕비는 첩(妾), 일반 여성은 신녀(臣女)로 되어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신첩'을 검색해보면 태조~순종 때까지 일관되게 신민, 신하의 뜻으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백관들(남자)이 '우리 신첩이~'(저희 백성은, 저희 신민은~)이라며 자칭하는 것을 알 수 있다. #
(중략) 종정이 책문(策文)을 읽고 나자 황후가 신첩(臣妾)이라 일컬으면서 황제 만세를 부르고 위(位)에 앉았다. 태위 교가 옥새와 인끈을 주니 중상시(中常侍) 초(超)가 길게 꿇어앉아 옥새와 인끈을 받아 전(殿)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여사(女史)가 첩여(婕妤)에게 주니 첩여가 길게 꿇어앉아 받아가지고 소의(昭儀)에게 주었고, 소의는 길게 꿇어앉아 받아가지고 황후에게 둘러주니 황후는 엎드렸다 일어나 절하고 신첩이라고 일컫고 황제 만세를 불렀다.
宗正大長秋西向。太尉往蓋下東向宗正。大長秋西向宗正。讀策文畢。皇后稱臣妾。皇帝萬年畢。住位。太尉喬授璽緩。中常侍超。長跪受璽綬。奏于殿前。女史授婕妤。婕妤長跪受。以授昭儀。昭儀長跪受。以帶皇后。皇后伏起。拜稱臣妾。皇帝萬年。

『오주연문장전산고』 경사편 4, 사적잡설(史籍雜說), 한(漢)의 잡사비신(雜事祕辛)에 대한 변증설 (고려간행회본 권27)
물론 왕실 여성이 자신을 신첩(臣妾)으로 칭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의하면, 한 환제의 제1황후인 의헌황후 양씨가 자신을 신첩(臣妾)이라고 일컫는다고 원문에도 적혀 있다. 다만 해당 기록 외에 왕실 여성이 자신을 직접 신첩이라고 일컫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기에 전술하였듯이 '신첩'보다는 '첩'을 쓰는 경우가 보편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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