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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8 00: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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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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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권 ~ 22권은 표에 해당, 23권 ~ 30권은 서에 해당. 사기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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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漢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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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정군 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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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미치광이 서생2.2. 구상유취 백직2.3. 육국의 후예를 봉하려 하나 실패하다2.4. 형양, 성고의 재탈환을 간언하다2.5. 제나라 설득과 최후
3. 후대4. 평가5. 미디어의 역이기

1. 개요

酈食其
기원전 268년 ~ 기원전 204년

진(秦)나라 말기와 전한(前漢) 초기의 모사. 진류현 고양 사람.(현 허난성 카이펑시 일부) 유방을 섬겼다.

역생(酈生)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生은 '선생님' 정도의 의미로 '역 선생' 정도의 뜻이다. 사기에도 그의 열전이 육가와 함께 역생육가열전(酈生陸賈列傳)에 들어가 있다. 공자처럼 본명이 아닌 한자 때문에 '역식기'라고 읽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잘못. 역이기가 맞다. '食'자는 물론 '밥 식'이지만 사람 이름으로 쓰일 때는 '이'라고 읽는다. 같은 공신이면서 이름까지 똑같은 심이기(審食其)[1] 역시 마찬가지.

2. 생애

2.1. 미치광이 서생

어려서부터 독서를 즐겼고, 집안이 가난해서 궁핍하고 추레한 생활을 보냈음에도 이렇다 할 생업이 없었다. 그나마 문지기 노릇을 하는 관리로 있었는데, 문지기란 게 이렇다 할 파워가 없는 직책임에도 현인이나 유력자가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해서 온 마을 사람들이 역이기를 미치광이라고 불렀다. 반골 기질이 강했던 모양. 유방과의 첫 만남도 그렇고, 괴팍한 노인으로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진승, 항량 등이 일어나 천하를 다투자 역이기의 고향이었던 고양에도 수십 명의 장수들이 오갔지만, 역이기는 모두 별 것도 아닌 예절 챙기는 것이나 좋아하지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자신을 숨기며 가만히 있었다. 어느 날 패공 유방이 진류 교외를 공격한다는 소문이 들렸는데, 마침 유방 휘하의 기병 하나가 바로 이 고양 출신이었다. 유방이 시시각각 현인과 호걸을 찾아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자 역이기는 고양 출신의 기병에게 얘기 좀 잘 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내가 듣기로 패공은 오만하지만 웅대한 지략이 있으니 내가 진실로 패공을 따르려고 한다. 그런데 나를 선뜻 소개해 줄 사람이 없다. 네가 혹시 패공을 만나거들랑 “신의 마을에 역생이란 사람이 있는데, 나이는 60을 넘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미치광이라고들 부르지만 그 서생은 자기가 미치광이가 아니라고 합니다.” 라고 말해라.
그런데 시정 잡배 출신이던 유방은 유학자들을 싫어했기에[2] 고양 출신의 기병은 우려를 표한다.
패공은 유학자들을 좋아하지 않아서, 유자의 관을 쓰고 오는 방문객이 있으면 관을 벗겨서 그 안에 오줌을 쌉니다. 게다가 남과 얘기할 때는 항상 욕지거리를 합니다. 유생이 패공을 설득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유방이 유학자들만 보면 오줌을 갈기는 충격적인 태도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고 나서도 역이기는 굴하지 않는다. 결국 유방과 역이기의 만남은 성사된다.

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나는지는 기록에 차이가 있다. 사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정작 유방이 불러서 찾아가 보니 유방은 시녀들과 발 닦으면서 희희낙락하고 있었고[3] 역이기는 노인 대하는 태도가 돼먹지 못한 걸 보고 절하지 않고 뜬금없는 소리로 유방의 속을 긁는다.
족하께서는 진을 도와서 제후들을 공격할 생각이십니까, 아니면 제후들을 통솔해 진을 멸할 생각이십니까?
이 이야기를 들은 유방은 과연 유자를 싫어하는 그답게 바로 욕을 하고(...) 역이기는 유방의 무례함을 꾸짖는다.
“모자란 유생 놈이! 천하가 진에게 고통받은 지 오래되었기에 제후들이 서로 이끌어서 진을 공격하고 있는데 어떻게 진을 도와서 제후들을 공격한다는 말을 한단 말이냐!”

역이기가 말했다.

“반드시 의병을 이끌어 무도한 진을 정벌해야겠다면, 나이 든 사람을 맞이하면서 거만하게 굴지 말아야 합니다.”
유방은 행색도 초라한데다 나이까지 예순을 넘긴 역이기를 질시했지만 오히려 그 당당함에 반해 발 씻는 것을 멈추고 옷도 똑바로 차려 입는다. 역이기가 옛날 6국의 합종연횡에 대해 논하자 기뻐하며 잔칫상을 대령하고 계책을 물어보았다. 이것이 유방과 역이기의 첫 만남이다.

태도를 공손히 하고 전략을 물어보는 유방에게 역이기는 진류를 공격하라고 진언한다. 병사도 얼마 없어서 진과 당장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진류는 교통의 요충지이며 식량도 많고 자기가 진류 현령과 아는 사이기도 해서 일단 항복을 권해 보겠는데, 잘 안 되면 내응할 테니 군대를 이끌고 진류를 치라는 내용이다. 과연 유방은 군사를 이끌어 진류를 취할 수 있었다.[4] 이에 역이기를 광야군으로 호칭하였다.

당나라 때에 사마정(司馬貞)이 사기에 주석을 단 사기색은(史記索隱)에서 설명하는 두 사람의 만남은 살짝 차이가 있다.[5] 유방이 군사를 이끌고 진류 근처를 지날 때에 직접 유방을 찾아와서 계책을 말하고자 했다. 유방 본인이 아니라 유방의 군영에 있던 사자가 나와서 응대했는데, 마침 역시 발을 닦고 있던 유방은 누가 왔냐고 사자에게 물어 봤다. 행색이 딱 유학자라는 얘기를 듣자 유방은 역이기를 쫓아보낼 생각으로 말한다.
나는 천하의 일을 하느라 바빠서 유자를 만나볼 시간이 없다고 전해라.
이 말을 전해들은 역이기는 눈을 부릅뜨고 검을 만지작거리며 호통을 친다.
가서 패공에게 전해라! 나는 유자가 아니라 고양의 술꾼일 뿐이다!
다짜고짜 칼을 들고 위협하는 역이기의 패기에 놀라 명첩까지 떨어뜨린 사자는 유방에게 그대로 달려가 역이기를 천하의 장사라고 추켜세워주었고, 그 덕에 유방은 황급히 발을 다 씻고 역이기를 만난다. 이 자리에서 역이기는 유방에게 갖은 디스를 한다.
족하께서 고되게 햇볕을 견디고 이슬을 맞아 가면서 병사들이 초를 돕도록 하고 불의한 자들을 토벌하면서도 어찌 자신을 아끼지는 않으십니까? 신이 일 때문에 뵙자고 해도 천하를 도모하는 일 때문에 바빠서 유학자를 볼 일이 없다고 하셨는데, 천하의 대사를 일으키고 천하의 큰 공을 이룬다면서 겉만 보고 경솔하게 판단하니 천하의 선비들을 잃으실까 걱정입니다. 이걸 보아하니 족하의 지혜는 저만 못하고 용기도 저만 못한데 말로는 천하를 취한다고 하면서 정작 만나보지 않는다면 족하께서 무엇을 이루겠습니까?
이에 유방은 "아까는 선생의 용모만으로 판단했지만 지금은 선생의 뜻을 보았습니다." 라며 자세를 낮춘다. 용모만 보면 비루한 유자였다는 뜻이다

진류를 공략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것도 사마천의 묘사와 유사하지만 사기색은의 주석에서 역이기는 진류 현령이 말을 듣지 않으면 유방더러 군대를 끌고 오라고 조언하는 대신 자신이 직접 현령을 죽여 진류를 항복시키겠다고 주장한다. 사마천의 서술과 동일하게 진류 현령은 역이기의 구슬림을 물리친다.
“진은 무도하여 천하가 등을 돌렸습니다. 지금 족하께서 천하의 대세를 따른다면 커다란 공을 세우는 것입니다. 망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진을 위하여 홀로 성을 견고히 수비해 봤자 위태로워질 뿐입니다.”

진류 현령이 말했다.

“진의 법은 엄중하오. 함부로 망언하지 마시오. 망언을 하는 자는 멸족될 것이오. 나는 선생의 말을 따를 수 없소. 선생께서는 신하된 자로서 할 수 없는 말로 신하인 나를 가르치려 하고 있소. 다시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기를 바라오.”
나름대로 진의 충신이라고 할 수 있을 진류 현령이 워낙 완강하게 나오는 바람에 역이기는 밤중에 현령의 목을 베어 유방에게 급히 나아가 알렸다. 유방은 긴 장대에 현령의 목을 꽂고 병력을 인솔해 진류를 공격했다. 현령이 죽은 것을 안 진류 사람들은 항복했다.

위와 같이 사료에 따라 세부적인 면에서는 차이를 보이지만, 어쨌거나 유방은 진류를 근거지로 해 진과 대적할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2.2. 구상유취 백직

팽성대전에서 유방을 중심으로 한 56만의 대군이 항우의 3만 병력에게 처참하게 박살이 나자 항우의 압도적인 기세에 놀란 제후들은 유방 편에서 이탈하게 된다. 그중 서위왕(西魏王) 위표는 어머니 병이 심하다는 핑계를 대면서까지 항우에게 붙었다.[6] 이때 역이기는 위표를 다시 설득하기 위해 사자로 파견되었는데, 위표는 "유방이 평소에 너무 욕을 많이 하고 제후들과 신하들을 노예나 되는 것처럼 나무라니, 나는 그런 사람하고는 일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회유를 거절한다.[7]

역이기는 결국 설득에 성공하지 못하고 돌아오지만 위표의 진영에 있으면서 중요한 정보를 빼내는 스파이 역할만큼은 충실히 수행했다. 위나라에서 돌아온 역이기에게 유방은 적의 대장이 누구인지 물어보았고, 역이기는 백직(栢直)이라고 답했다. 그 말을 들은 유방은 백직은 젖비린내나는 애송이일 뿐이라 한신의 상대가 못 된다면서 크게 기뻐하고 웃었다. 바로 구상유취의 유래다. 군대를 이끌고 위를 정벌하러 가던 한신 역시 주숙(周叔)이라는 자를 경계하고 있어서 역이기에게 혹시 위표가 주숙을 대장으로 삼지 않았냐고 물었고, 그러자 역이기는 위표가 주숙이라는 인물 대신 백직을 대장으로 삼았다고 재차 답해주었다. 한신 역시 "어린 놈일 뿐이군!"이라고 말하며 좋아했다. 한신의 경우 유방처럼 백직을 깐 것인지, 그런 백직을 대장으로 삼은 위표를 깐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과연 안읍 전투에서 한신은 위표를 대파한다.

2.3. 육국의 후예를 봉하려 하나 실패하다

항우를 압박하기 위해 6국의 후예에게 봉토를 내려 공격하자며 봉건제를 주창하지만, 장량 젓가락 설교에 당해 포기하게 된다.
유방은 어느날 역이기를 불러 어떻게 항우의 전략에 대처하는 게 좋은지 의견을 물었다.

“옛날에 은나라의 탕왕은 하의 걸왕을 정벌하고 걸의 후대를 기(杞)에 책봉하였고, 주나라의 무왕은 은나라의 주왕을 멸하고 은나라의 후대를 송(宋)에 책봉하였습니다. 이제 진이 덕을 잃고, 의를 버리고 제후들을 침략하여 토벌하고 그 사직을 헐어버려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게 하였습니다.
폐하께서 진실로 능히 육국의 후예들을 회복시킬 수가 있다면 그 군신(君臣)과 백성들은 모두 폐하의 덕을 머리에 일 것이고, 풍문을 듣고 의를 사모하여 신첩(臣妾)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덕과 의가 이미 시행되면 폐하께서는 남면하시고 패자를 칭하시면 초는 반드시 옷깃을 여미고 조회에 나올 것입니다."

유방이 말했다.

“훌륭하오. 그대는 육국의 도장을 가지고 육국 제후의 후대를 찾아 나의 명의로 그들을 왕에 봉하도록 하시오.”

역이기가 육국 제후의 후예에게 유세를 하기 위해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을때, 장량이 밖에서 와서 알현하였다. 유방이 식사를 하면서 말했다.

“자방(子房), 어서 오시오. 손님 가운데 나를 위하여 초의 형세를 꺾을 계책을 마련한 사람이 있소.”

유방이 역이기의 말을 장량에게 일러준 후에 물었다.

"어떻소?"

장량이 소리쳤다.

“누가 폐하를 위하여 이러한 계책을 냈습니까? 폐하의 일은 끝나버립니다.”

유방이 말했다.

“무엇 때문이오?”

장량이 탁자에 있는 젓가락을 집어 올리며 말했다.

“옛날 은 탕왕과 주 무왕이 하 걸왕과 은 주왕의 후대에게 봉지를 내린 것은 그들의 세력이 미미하고 보잘 것 없어 충분히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왕께서는 지금 항우의 세력을 통제할 수 있습니까?”
장량은 유방의 앞에서 젓가락 하나를 분지르며 계속 말했다.

“천하의 명사(名士)가 대왕의 곁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조금이라도 공을 세워 한 뼘의 땅이라도 봉지로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대왕께서 육국 제후의 후대에게 왕위를 내려준다면 그들은 자신의 조국을 찾아 모여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대왕을 따르겠습니까?”

장량은 다시 젓가락 하나를 분지르고 계속 말을 꺼냈다.

“현재 제후의 세력 중에서는 초(楚)나라가 가장 강성합니다. 만일 대왕께서 육국의 후예에게 땅을 내려주고 왕으로 봉한다면 그중에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초패왕 항우에게 항복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항우의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대왕의 생각은 근본부터 어긋나고 맙니다.”

장량은 쉼없이 제후의 후대에게 땅을 내려서는 안되는 여덟가지 이유를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여덟번째의 젓가락을 분지른 장량이 말했다.

“진실로 객(客)의 꾀를 채용하시면 폐하의 일은 끝나 버리고 맙니다.”

유방은 장량의 말에 상을 물리고 먹던 것을 뱉고 욕하면서 말했다.

“유치한 유생 놈이 하마터면 이공(而公)의 일을 망칠 뻔했구나!”

유방은 이 말을 하고 서둘러 도장을 녹여버리게 하였다.

역이기의 계책은 장량의 말대로 실책 중의 실책이었다. 그는 지난날의 소진과 장의가 역설한 합종책과 연횡책의 성과에만 집착하여 역사의 발전과정과 시대상황의 분석에 미흡했다. 당연히 역이기의 계책은 성공할 수가 없었다.

훗날 「한기(漢紀)」를 쓴 순열(荀悅)은 역이기의 계책에 대해 이렇게 평하였다.
“처음에 장이(張耳)와 진여(陳余)가 진승에게 육국을 회복하고자 권하였을 때는 자기들의 동맹군을 튼튼하게 하기 위함이었고, 역이기가 한왕에게 건의한 계책도 이와 같은 목적이었다. 하지만 같은 계책이라도 시기와 정세에 따라 결과가 달리지는 법이다. 진승이 반진의 깃발을 들었을때는 천하의 영웅들이 모두 진나라가 멸망되기만을 바랐으며 이때에는 초한전쟁과 같은 국면은 발생하지 않았고 예상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의 백성들은 모두 항우의 멸망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육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은 진승에 대해서는 자신의 동맹군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였고 진(秦)나라에는 많은 적군을 만들어 준 셈이었다. 하지만 진승은 당시에 천하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육국울 세우고도 그 결과는 자신의 세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것을 두고 허명(虛名)을 좇아 실리(實利)를 놓쳤다고 하는 것이다. 한왕의 경우도 진승과 다를 바가 없다. 이는 자신의 세력을 떼주고 적에게 도움만 주는 계책이다. 따라서 장이, 진여, 역이기가 다함께 육국을 세워야 한다는 계책은 모두 잘못된 생각이다.”

말이야 맞는 말이지만 장량은 설득한답시고 멀쩡한 젓가락을 8개나 분지르고 유방은 먹던 음식을 뱉어 욕을 퍼붓고…. 초한전쟁 당시 유방 집단이 얼마나 거친 인간들이었는지 알 수 있다.

훗날 조나라를 세운 석륵이 이 이야기의 처음 부분을 듣고 "역이기의 계략대로 하면 고조는 반드시 패배한다. 그런데 어떻게 고조가 이겼을까?"고 중얼거렸다가, 뒷이야기까지 마저 들은 다음 "장자방이 있었기에 한고조가 이길 수 있었구나."라고 감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2.4. 형양, 성고의 재탈환을 간언하다

유방이 부하의 목숨을 희생하며 탈출하는 등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버틴지라, 항우는 형양과 성고를 빼앗고도 팽월의 후방 유격전으로 인해 말머리를 동쪽으로 돌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에 유방은 한숨 돌린 후 저지선을 보다 서쪽으로 재설정하려 했으나 이에 역이기는 간언하였다.
신이 듣기로 하늘을 하늘로 아는 자는 왕업을 이룰 수 있으나, 하늘을 하늘로 알지 못하는 자는 왕업을 이룰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왕업을 이룰 만한 사람은 백성을 하늘로 섬겨야 하며, 또 백성들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습니다. 저 오창(敖倉)이 천하의 양식을 운송해 와 저장하는 혈맥이 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신은 오창에 쌓인 양식이 매우 많다고 들었습니다. 초가 형양을 함락시키기는 했지만, 오창을 견고히 지키지 않은 채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나아가고는 성고는 죄수들로 구성된 군대에게 지키게끔 했다고 합니다. 이는 하늘이 오창의 곡식을 한의 것으로 내어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오히려 퇴각하여 스스로 유리한 점을 포기한다면 화가 될 것입니다.

또한 두 영웅이 공존할 수는 없는 법인데, 초와 한이 오랫동안 대치하여 결판이 나질 않으니 백성들이 동요하고 사방이 불안에 휩싸여 농부는 농기구를 버리고 베 짜는 여인은 베틀에서 내려오는 등 아직 천하의 민심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지금 다시 진격하여 형양을 탈환하고 오창의 양곡을 얻으십시오. 성고의 험준함에 의존하면서 대행(大行)을 막고, 비호(蜚狐)와 백마진(白馬津)을 지켜서 형세가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를 제후들에게 확실히 보여야 합니다.

연(燕)과 조(趙)는 평정되었지만 제(濟)만은 평정되지 않았습니다. 전광(田廣)은 사방 천리의 제나라 땅을 거점으로 삼고 있으며, 전간(田間)은 20만에 달하는 군사를 이끌고 역성(歷城)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전씨 가문이 강한데다가 바다를 등지고 있고, 황하를 건너서 공격해야 해 부담이 심하며, 남쪽으로 초와 붙어 있고 변화무쌍한 모사들이 많습니다. 수십만 명의 군사를 보낸다고 해도 언제 무너뜨릴 수 있을 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제(濟)가 동쪽의 번국이 되도록 신이 왕을 설득하겠습니다.

역이기는 왕은 백성을 하늘로, 백성은 밥을 하늘로 섬긴다는 불후의 명언을 남긴다. 오창의 곡식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하는 것이기에 형양과 성고를 재탈환해 저지선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자신은 제(濟)왕 전광을 설득하겠다고 제안한다. 유방은 역이기의 주장을 받아들여 항우가 남겨놓은 수비군을 대파, 항우가 간신히 손에 넣은 형양과 성고 및 오창의 곡식을 다시 손아귀에 넣으며 동쪽으로 진군한 항우의 처지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8] 한편 유방과 항우가 치고받는 동안 한신은 북부 전역을 아우르는 대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배수진을 이용한 정형 전투에서 조(趙)를 멸망시키고 진여를 참살했으며, 조나라의 장수였던 이좌거의 책략을 받아들여 연(燕)은 편지 한 통으로 항복을 받아냈다. 남은 제후국은 제나라 하나뿐이었는데, 초나라와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있으며 세력이 강해 무력으로 굴복시키기 어려웠다. 하지만 항우가 벌인 전쟁과 학살로 반 항우 감정도 심각한 나라였기에 이에 역이기는 제나라를 회유해 아군으로 만들기 위해 떠난다.

2.5. 제나라 설득과 최후

역이기는 제왕 전광을 설득해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다. 원래 제를 공격하기로 되어 있던 한신은 이 소식을 듣고 이대로면 공을 빼앗길 것이라는 괴철의 꼬드김에 넘어가서 제나라를 공격했다.[9]이미 유방에게 항복하여 마음을 놓고 있던 제나라 군대는 이 공격에 그대로 붕괴되어 버렸고, 이렇게 되자 제나라 입장에서는 역이기가 항복을 권유하는 척해서 긴장을 풀게 한 틈을 타 기습을 가한 간교한 술수를 쓴 셈이 되었다. 제왕 전광은 역이기와 하하호호 술 잘 마시고 있다 한신의 습격 소식을 듣고 '네가 이를 멈추게 하지 못하면 널 튀겨 죽이겠다' 고 했으나,[10] 이미 상황이 나가리가 된 걸 알아채고 한신을 막을 수 없겠다고 판단한 역이기는 '공을 세우고자 했으나 어그러졌고 이제 일은 어찌할 수 없다'며 표홀한 태도를 취했고 분노한 전광은 역이기를 튀겨서 죽였다. 이 일은 한신과 유방의 관계가 틀어지는 첫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11][12]

3. 후대

다행히 그의 동생 역상은 개국공신의 반열에 오른다. 그것도 단순한 개국공신이 아니라 공신서열 6위[13]에 4800호를 식읍으로 받았다. 역상 역시 유방의 중요한 장수로 활약했으며 사기 <번역등관열전>의 '역'이 바로 역상이다. 번쾌, 하후영, 관영과 함께 실려 있는 걸 보면 그의 대접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형이 처참하고 억울하게 죽은 것에 대한 보상도 어느 정도 담겨있던 듯 하다.[14] 유방이 공신 서열을 책정하면서 순위가 높게 매겨진 사람들은 가족들이 같이 싸웠거나 혹은 그러다가 죽었는지의 여부가 반영된 경우가 많았다. 소하가 1위가 된 근거 중 하나도 일가족 수십 명이 모조리 종군했다는 이유였다.

아들 역개도 고량후에 봉해져, 역이기의 공훈에 대한 보답을 받았다.

전광의 숙부이자 역이기를 같이 삶았던(...) 전횡은 훗날 유방의 명령으로 낙양으로 오던 중 '내가 직접 삶아 죽인 자의 동생을 부끄러워 어찌 본단 말인가' 라고 하고는 자결해버렸다.[15] 이 소식을 들은 유방은 전횡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왕의 예로서 장사를 지내주었는데 전횡과 함께 낙양으로 온 가신 두 명도 장례가 끝난 후 전횡의 무덤 곁에서 자결했다. 전횡은 제나라 멸망 후 오호도라는 섬에 숨어살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듣자 섬에 있던 전횡 휘하의 식객 500명도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사성어 "만가(輓歌)"의 유래이기도 하다.

4. 평가

비록 육국의 후예를 봉하는 방안은 그의 단견이었음이 드러났지만, 거듭된 패배로 기가 죽은 유방을 독려해 다시 형양, 성고를 공략하게 한 것은 대단한 공훈이다.[16] 그리고 말재주 하나로 거대 봉국 제나라를 투항시키는 엄청난 공을 세웠다. 비록 한신의 욕심 때문에 망했지만, 언제든지 적(敵)으로 돌변할 수 있으며 도무지 신뢰하기 어려운 군벌들 사이를 오가면서 외교를 펼친 것은 어지간히 담대하고 언변에 자신 있는 인물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장량 같은 역대급 명참모는 아니었을지라도 당대에 이름 날릴 만큼 비범한 인물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사마천은 사기 전담열전에서 역이기를 죽음에 몰아 넣은 괴철을 두고 그의 계략 때문에 제나라를 어지럽히고 한신을 교만하게 만들어 결국 두 사람 모두를 망쳤다고 혹독하게 비판하였다.

5. 미디어의 역이기



[1] 개국공신 서열 59번째인 벽양후(辟陽侯)에 봉해졌다. 여후의 핵심 측근으로 막강한 세도를 부렸다. [2] 훗날 한나라를 건국한 이후에는 국가 운영에 유생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들을 크게 후대한다. 황제 스스로도 자신이 공부와 책에 소홀히 하였음을 반성하며 유학을 장려한다. 태자에게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면서 '난 옛날에 진나라에서 학문을 금하니까 어차피 쓸모없는 거 안 해도 된다고 마냥 좋아했는데 나이 먹고 다시 생각해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 하기도 했다. [3] 유방은 훗날 영포가 귀순했을 때도 발을 닦으면서 맞이했다. 이 당시 일반 평민이었던 역이기와 달리 영포는 명목상 유방과 동격인 이었고, 또 영포의 성질이 성질이다보니 역이기가 화를 낸 것 이상으로 수치스러워하는데, 심지어는 자살까지 고민하지만(...) 유방의 숙소와 자기 숙소 상태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화를 푼다. 영포의 경우 이는 유방의 의도적인 정치적 제스쳐였을 가능성이 있다. 한나라식 압박 면접 [4] 항복이 안 먹힌 경우에 군대를 끌고 오라고 했으므로, 진류 현령이 설득에 넘어가지 않아 역이기가 내응한 것이다. [5] 사마천과 친했던 사람이 언급한 내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6] 원래는 항우에게 분봉을 받은 제후였지만 유방이 삼진을 평정하고 기세등등하자 유방에게 붙었다. 팽성대전 후 썩은 동앗줄처럼 보이던 유방을 버리고 다시 항우에게 붙은 것. [7] 유방 뿐만 아니라 그를 초기부터 따른 신하들은 빈말로라도 고상하고 교양 있는 사람들이라고는 할 수 없는 계층이었다. 하급 공무원, 개백정, 비단 장수, 옥리, 마부, 백수 친구, 누에 장수 등등. 나중에 합류한 신하들 역시 동네 건달이나 평판 제로인 백수들이었다. 출신 성분 역시 귀족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심지어 사자로 온 역이기 역시 전직 문지기. 그나마 장량 정도가 한나라 귀족 출신이었다. 그러나 위표는 위나라 왕손이고 형인 위구는 진승 휘하의 무장이던 주불이 위 왕실을 복원할 때 다시 위왕이 되었으니 극히 최근까지도 금수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 위표에게 유방 무리가 어떻게 보였을지는 말할 것도 없다. [8] 이후 역이기는 다시 한번 유방에게 이제까지 공방으로 헌 성고와 형양 대신 오창의 곡식을 바탕으로 광무산을 점거하여 그곳을 성으로 삼아(광무산 근처에 번쾌가 점령한 성이 있긴 했는데 너무 좁아서 한군이 전부 들어가진 못했다) 항우와 대치할 것을 권했다. [9] 괴철의 논리엔 중대한 에러가 있는데, 피도 안 흘리고 제나라를 얻을 기회였는데 굳이 전투를 벌여 제나라를 정복한 것을 유방이 공으로 쳐줄리가 없다. 유방의 원년 멤버급인 역이기가 끔찍하게 살해당한 결과까지 생각하면 더더욱. 유방 입장에선 자신에 대한 충성과 관계없고 그저 한신이 그대로 제나라를 꿀꺽하려는 속셈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괴철도 이때부터 이미 자기 주군인 한신을 천하의 일인자로 키울 생각이었는데, 한신이 자기 행동의 의미도 이해 못하고 여전히 어중간하게 유방에게 충성하니 뒷목잡을 노릇이었을 것이다. [10] 이문열 초한지에선 역이기에게 전광이 따지자 내가 당신을 속였다면 바로 달아났을 거라고 항변하는 것이 추가된다. 물론 전광은 그럼 한신 저놈이 놀러나온 거냐고 받아치지만. [11] 유방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역이기는 유방이 아직 패공이었던 시절부터 그에게 발탁되어 활약했던 유방 패밀리의 원년멤버급 인물이었다. 그리고 유방이 한왕이 된 후로도 참모로서 많은 노력을 했던 사람이고, 유방을 위해 단신으로 제나라로 가서 실제로 전광을 설득시키기까지 했으나 그런 역이기를 한신이 본인 공치사를 위해 그냥 죽게 만든 것이다. [12] 나중에 한신은 사형당할 때 "내가 괴철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참으로 원통하구나! 내가 한낱 아녀자에게 속임을 당해 죽게 되었으니, 이것은 분명 하늘의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유언을 남겼는데 많은 역사 전문가들은 이 한탄은 심한 어폐가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신이 유방에게 단단히 찍힌 이유는 오히려 괴철의 말을 들어서다. 제나라를 기습해 역이기를 죽게 만든 것도, 유방이 위험에 빠져 있는데 제나라 왕을 달라고 졸라서 왕이 된 것도 다 괴철의 아이디어다. 그 때마다 유방은 한신에게 엄청나게 분노했으나 꾹 참고 분노 스택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다. 괴철의 말을 듣지 않고 유방에게 잘 보였으면 이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들을 거라면 끝까지 듣든가, 아니면 아예 듣지를 말았어야 하는데 어중간하게 괴철의 말대로 유방과 척을 지다 결정적 부분에서 주저해버렸고 결국 사태가 이 지경이 되었던 것. 물론 한신은 마지막에 주저한 그 부분을 말한 것이겠지만. [13] 소하, 조참, 장오(유방의 사위이자 장이의 아들), 주발, 번쾌의 바로 다음 서열이다. 하후영(8위), 관영(9위)보다도 높다. [14] 고조공신후자연표를 보면 논공행상 시점에서 사망한 인물들의 경우 가족들에게 대신 상을 몰아서 줬기 때문이다. 당장 장오가 공신 서열 3위에 오른 것도 장오의 아버지 장이가 이름높은 명사였던 데다가 유방 진영에서 크게 활약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한신이 북부 평정을 했을 때 유방이 보내서 함께 도운 것이 장이의 업적이다. 또, 서열 7위의 해연은 도대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인데 누군가 공을 세운 인물(기신이라는 설이 있다.)의 어머니가 대신 받은 것이라고 한다. [15] 유방은 미리 역상에게 형을 죽인 원한을 갚으려 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 다음 불렀는 데도 전횡이 자살한 것이다. [16] 형양, 성고를 항우가 차지한 채였다면 항우가 광무산을 끼고 형양, 성고의 기각지세를 이용해 오창의 곡식을 받아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되었다면 항우는 분명히 다음 목표를 함양으로 두었을 테고 그러면 유방의 본거지가 무너지는 참사가 났을 것이다. [17] 역이기는 성 안의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리지 말라고 했으나, 현령은 자신이 나라의 은전을 받았으니 오직 성 안의 모든 사람들이 옥쇄(비유가 아니라 원문 중간에 唯有玉碎란 대사가 나온다.)를 해서라도 투항하지 않겠다는 실로 미친 소리를 한다. 고향과 백성을 생각하는 역이기 입장에선 상극도 이런 상극이 없는 소리였으니 사이가 제대로 틀어질 만도 하다. [18] 난 오직 당신들이 폭진(爆秦)의 순장품으로 전락하는 걸 보기 싫었다며 유방의 군대가 포위했으니 얼른 투항하라고 권유하니 모두가 역이기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한다. 현령의 망상과는 달리 현실이 시궁창이었던 셈. [19] 여기서 한신은 살짝 죄책감을 느낀 모습을 보인다. [20] 남도형 성우의 역이기 캐릭터는 후속작에서 같은 성우가 맡은 방통, 사마휘, 화타등으로 컨셉이 분화된다. [21] 당연히 이건 연의의 창작. 정사에서는 손권이 등지를 칭찬할 정도였는데 연의에선 반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