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漢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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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劉如意(기원전 207년~기원전 195년)
전한 고제의 서자이자 셋째 아들. 모친은 사람돼지(人彘, 사람 인, 돼지 체) 고사로 유명한 척부인(戚夫人).
조나라의 제후왕인 조은왕(趙隱王)의 칭호를 받았으나, 조왕이 되기 전 잠시동안 대나라의 제후왕(기원전 200년 ~ 기원전 198년)을 지낸 적이 있었다. 고제의 사망 이후 척부인과 같이 고황후 여씨의 손에 어린 나이(향년 12세)[1]에 비참하게 죽은 인물로 유명하다.
2. 생애
고제는 한왕 시절 정도에 머무를 때 척희를 만났다. 척희의 미모에 반한 고제는 그녀를 바로 첩으로 삼았고 고제가 전한의 황제로 즉위하면서, 척희 역시 이에 따라 황제의 후궁으로 격상되어 후궁의 지위 중 하나인 척부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고제의 극진한 총애를 받은 척부인은 기원전 207년에 유여의를 출산하게 되었다.고제는 후궁들 중 가장 총애하는 척부인의 소생인데다, 자신의 성격을 닮아 활달하기까지한 유여의를 매우 아꼈다. 고제는 기원전 200년에 유여의를 대나라의 제후왕으로 봉했다. 2년 후인 기원전 198년에는 반란 계획 유출과 연관되어 쫓겨난 조나라의 제후왕 장오를 대신해, 유여의를 조왕으로 봉하고 주창을 재상으로 삼았다. 대나라의 제후왕은 기원전 196년 박부인 소생의 4남 유항(당시 6세)이 물려받게 된다.
기원전 197년에 고제는 여후 소생의 적장자 유영을 황태자에서 폐하고 그 자리에 유여의를 세우려고 했고, 모친인 척부인 역시 고제 앞에서 눈물로 애원하며 아들을 황태자로 만들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다. 하지만 신하들의 반발과 현실의 벽에 부딪혀 황태자 교체는 실패하고 말았다. 더군다나 여후도 본인과 아들의 지위를 위협하는 척부인과 유여의 모자에게 원한을 가지게 되었다. 이게 바로 훗날 유방 사후 두 모자가 겪을 비극의 원흉이었다.
기원전 195년에 고제가 사망하고 유영이 황위를 이어받아 혜제로 즉위하자, 결국 척부인과 유여의 모자는 황태자 교체 시도로 원한을 품은 여후의 손아귀에 떨어지고 말았다. 여후는 먼저 척부인을 영항[2]에 감금한 뒤[3] 유여의를 죽이기 위해, 그에게 장안으로 오라는 송환 명령을 계속해서 내렸다. 하지만 유여의를 보필하던 주창이 병을 핑계로 소환을 거부하자 여후는 주창부터 소환해[4], 유여의의 보호기반을 없애고 다시 그에게 소환 명령을 내렸다. 주창이라는 최소한의 보호막까지 사라진 유여의는 적모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 결국 장안으로 송환되었다.
하지만 혜제는 이복동생을 아끼고 있었고 친모의 음모도 알고 있었기에, 이를 막기 위해 유여의가 황궁에 오자마자 곁에 붙어다니며 여후로부터 보호했다. 하지만 기원전 195년 겨울[5]에 혜제가 일찍 일어나 잠시 사냥을 나간 사이에, 결국 여후는 짐주로 유여의를 독살하는데 성공한다. 나이가 어려 일찍 못 일어난 것이 화근이었으며, 혜제가 유여의를 보호한 기간은 한 달도 채 안되었다. 사망 당시의 나이는 고작 12세였으며, 시신은 함양원 유영양릉에 묻혔다. 그후 여후는 기원전 194년 여름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 척부인도 인간돼지로 만들어 끔찍하게 살해하면서 두 모자는 처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3. 여담
- 생애를 보면 알겠지만 유여의 본인은 정치에 관여하긴 커녕, 10살의 어린 소년에 불과했다. 그러나 여후를 견제하려는 아버지 유방의 그릇된 판단으로 인해 정치 암투에 휘말리게 되면서, 여후의 원한까지 사게 된 나머지 어린 나이에 비참하게 살해당했던지라 세간의 많은 동정을 샀고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는 인식이 강했다.
- 말년의 여후는 개처럼 생긴 혼령에게 겨드랑이를 물리고 혼절한 뒤 앓다 죽었다고 사기에 기록되었는데 점괘를 쳐보니 유여의가 여후에게 복수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괘가 나왔다고 한다. 여기에서 야사에는 이 개의 혼령이 유여의의 원혼이 변한 것이라고 덧붙여 나오기도. 때문에 여후도 유여의를 죽인 것이나 그간 저지른 무분별한 숙청과 아들의 단명, 여씨 일족 우대에 대해 죄책감이나 후한과 관련된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는 분석이 있다.
- 유여의가 왕으로 봉해진 조나라는 멀쩡히 재위를 마치거나, 제명을 산 제후왕이 적어 악운이 낀 제후국으로 유명했다. 전임인 장오는 공신들 중 편하게 죽었지만 재상 관고가 유방 암살 모의를 꾸미자 연루되어 쫓겨났고, 여후의 보복으로 인해 어린 나이에 독살당한 유여의는 말할 것도 없고, 유여의의 후임이자 이복형제[6]인 유우도 여후를 비방했다 송환되고 외딴 곳에 감금되어 아사하는 죽음을 맞이했다. 거기에 양왕 유회는 여후가 공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원인 불명의 자살로 생을 마감. 여후의 조카 여록도 조왕이 되었다가 여씨 일족 숙청 때 참수를 당했다. 유우의 아들 유수가 겨우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숙청 러시는 끝나는데, 조나라가 전한의 수도 장안이랑 가까이 있었던 만큼 숙청 대상으로 삼기에 요원해서였다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유수조차도 오초칠국의 난에 가담했다가 자결해, 유수의 다음 왕이자 경제의 아들인 8대 경숙왕 유팽조가 초대 장이 이후 최초로 제명에 왕으로 죽는 조왕이 된다.
4. 창작물에서
기록대로 유년기 소년이 배역을 맡는 일이 많다.2010년에 방영된 44부작 중국 사극 대풍가에는 유방을 닮아 무예가 뛰어나고 당당한 성격으로 묘사되지만 나이가 어리고 지나친 감이 있어 적모인 여후에게 거친 언행을 내뱉는 철없는 행동을 했다. 그 후 조왕이 되고 나서 조나라로 출궁했지만 역사대로 유방 사후 척부인 모자를 제거할 여후의 계략에 빠져 독살당했다.
[1]
일부 문헌이나 기록에는 14살로 잘못 적혀있는데 출생년도와 사망년도를 같이 계산하면 12살로 나온다. 세는 나이로 따져도 13살이 맞다.
[2]
죄를 지은 궁녀들이 가는 감옥. 여기서 척부인은 하루내내 쌀을 찧는 형벌을 받았다.
[3]
원래대로라면 척부인도 유방 사후 출궁해 유여의가 있는 조나라로 가야했었다. 그러나 여후는 딱히 원한이 없는
박희만 대나라로 가는 것을 허가하고 나머지 후궁들은 궁내에 감금했다. 특히 척부인만 영항에 가두었다는 것은 살려둘 생각이 없다고 선포한 거나 다를 바 없었다.
[4]
주창은 여후에게 숙청당하기는 커녕 기원전 192년에 은퇴하고 자연사를 했다. 황태자 교체 사건때 결사 반대를 하며 혜제를 지키는데 큰 공헌을 한 인물이기에 여후가 무릎을 꿇고 감사 표현을 할 만큼 악감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5]
여태후본기에는 기원전 194년 겨울이라 기재되었지만 오기로 추정. 이렇게 되면 유여의의 사망년도가 194년이 됨에 따라 척부인의 사망년도도 193년이 되어야 하기 때문.
[6]
유우는 생몰년도 미상이라 동생인지 형인지 불확실하지만 6남으로 서술된 경우가 많아 동생임이 유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