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666> 초대 국가방위군 공군 사령관 에른스트 폰 회프너 Ernst von Hoeppn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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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Ernst Wilhelm Arnold von Hoeppner 에른스트 빌헬름 아르놀트 폰 회프너[1] |
출생 | 1860년 1월 14일 |
프로이센 왕국 포메른 | |
사망 | 1922년 9월 26일 (향년 62세) |
바이마르 공화국 포메른 | |
복무 |
독일 제국군(1879년 ~ 1918년) 독일 국가방위군(1918년 ~ 1919년) |
최종계급 |
독일 제국군
기병대장 (General der Kavallerie) |
주요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
서훈 | 푸르 르 메리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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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른스트 빌헬름 폰 회프너는 독일 제국의 군인이다. 최종 계급은 기병대장. 독일 국방군 공군의 전신인, 국가방위군 공군의 사령관이었다.2. 생애
2.1. 제1차 세계 대전 까지
회프너는 1860년 1월 14일, 포메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소령이었으며, 포츠담에 있는 사관학교에 다녔다. 1879년, 회프너는 소위의 계급으로 제6마그데부르크드라군연대에 배치되었다. 1902년 회프너는 일반참모 과정을 밟기 시작하였다. 이후 회프너는 1904년 제9군단의 참모장교가 되었다. 1906년 중령이 되고, 제13후사르연대의 연대장이 되었다. 2년 후에는 제7군단의 참모장이 되었다. 1912년 9월에는 제4기병여단의 여단장이 되었다. 1913년, 회프너는 빌헬름 2세에 의해 귀족이 되었다. 이는 참모장교와 여단장으로서의 공적 덕분이었다.2.2. 제1차 세계 대전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을 때 회프너는 제3군의 참모장이었다. 1915년 봄에는 제14예비사단, 1915년 말에는 제2군의 참모장, 1916년에는 제75예비사단의 사단장이 되었다.에리히 루덴도르프가 공군 창설을 위해 뽑은 사령관이 바로 회프너였다. 공군의 분열을 제대로 파악한 회프너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대를 더 만들었으며 이를 대대들에게 배치하였다. 그는 장성이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공중전에는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푸르 르 메리트를 수훈받았다. 이는 실제로 공중전에 참여한 장교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왼쪽부터, 헤르만 폰 데어 리트 톰센,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 회프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