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666> 독일 제국 해군 제독 프란츠 폰 히퍼 Franz von Hipp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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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Franz Ritter von Hipper 프란츠 리터 폰 히퍼[1] |
출생 | 1863년 9월 13일 |
바이에른 왕국 바일하임 인 오버바이에른 | |
사망 | 1932년 5월 25일(향년 68세) |
독일국 함부르크 오트마센 | |
복무 | 황립 해군 |
최종 계급 |
대장 ( Admiral) |
지휘 |
제1정찰전대 (I. Aufklärungsgruppe) 대양함대 (Hochseeflotte) |
주요 참전 |
헬리골란트-바이트 해전 도거 뱅크 해전 유틀란트 해전 |
서훈 |
푸르 르 메리트(Pour le Mérite) 철십자 훈장 1,2급(Eisernes Kreuz II. und I. Klassee) 막스 요제프 군사훈장(Militär-Max-Joseph-Orde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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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이저마리네의 제독으로, 제1차 세계 대전의 첫 해전인 헬리골란트-바이트 해전부터 당시 역사상 최대규모의 함대결전이였던 유틀란트 해전, 그리고 도거 뱅크 해전 등과 같은 굵직한 해전들을 지휘한 인물이다. 본래 이름은 프란츠 히퍼였으나, 유틀란트 해전 이후 귀족이 되어 프란츠 리터 폰 히퍼가 되었다. 사망 이후 이를 기리기 위해 크릭스마리네에서 활동한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의 네임쉽이 되었다.2. 생애
2.1. 초기
히퍼는 1863년 바이에른 왕국에서 테어났다. 히퍼는 고등학교 교육을 마치고, 군인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1879년 기본적인 장교 훈련을 받은 후, 1881년 해군 생도가 되었다. 그는 SMS 니오베에서 1881년 4월부터 9월까지 복무하였다. 그는 이후 카일에 있는 생도학교로 옮겼다. 실전 훈련을 위하여, 프린츠 아달베르트급 장갑순양함 2번함 프리드리히 카를에 훈련을 위해 배치되었다.결국 히퍼는 1886년 1월 4일 임관되었다. 이후 여러 군함의 당직장교가 되었다. 히퍼는 이후 어뢰 개발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후 히퍼는 중위가 되었다. 이후 히퍼는 제국 요트의 항해사로 복무하기 시작하였다. 1905년 히퍼는 요트를 떠났고, 제2어뢰 부대의 사령관으로 부임하였다.
이후 히퍼는 자신이 이전에 장교로서 복무하였던 프리드리히 카를의 함장으로 부임받았다. 히퍼의 지휘 아래 프리드리히 카를은 매우 발전하였고, 후고 폰 폴 제독은 그를 이 공로로 칭찬하였다. 이후 히퍼는 새로 건조된 SMS 샤른호르스트의 함장이 되었다. 샤른호르스트는 동아시아로 떠났지만, 히퍼는 독일에 남아 제1어뢰 부대의 사령관이 되었다. 히퍼는 제1정찰전대의 사령관이었던, 구스타프 바흐만 소장의 참모총장이 되었다. 히퍼는 이후 그의 자리를 물려받고 중장으로 승진하였다. 그리고 그의 부관은 에리히 레더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