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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3 23:24:17

아폴로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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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호 (실패) 아폴로 2, 3호 (결번) 아폴로 4–6호
(무인시험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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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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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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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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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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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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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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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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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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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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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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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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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TP
취소된 아폴로 미션들 스카이랩 }}}}}}}}}
아폴로 13호
APOLLO 13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Apollo_13-insignia.png
"EX LUNA, SCIENTIA (달에서 지식을)"
아폴로 13호 미션 패치
이름 아폴로 13호
호출부호 사령선:CM-109, 오디세이
달 착륙선: LM-7, 아쿠아리우스
발사일 1970년 4월 11일
19시 13분 0초 UTC
케네디 우주센터, 플로리다 LC 39A
귀환일 1970년 4월 17일
18시 7분 41초 UTC
미션 기간 5일, 22시간 54분 41초
우주선 사령선 - 오디세이(Odyssey)
달착륙선 - 아쿠아리우스(Aquarius)
사령관(CDR) 짐 러블[1][2]
사령선 조종사(CMP) 잭 스와이거트[3]
달착륙선 조종사(LMP) 프레드 헤이즈[4][5]
Guiness World Records
파일:기네스 세계기록 로고.svg
''Farthest distance from Earth reached by humans
(지구에서 가장 멀리 나간 인간[6])
''
장소
(Where?)
대상
(Who?)
시일
(When?)
400,171 km (248,655 miles) above the Earths surface # APOLLO 13 1970년 4월 15일

1. 개요2. 발사 전 까지의 과정3. 13시 13분, 13호 이륙4. 일련의 사고들
4.1. 산소 탱크 폭발4.2. 실패라는 선택지는 없다.4.3. 전력 부족4.4. 이산화 탄소 농도 문제4.5. 궤도수정의 문제4.6. 열악한 생존 환경4.7. 지구 재진입4.8. 안녕, 아쿠아리우스4.9. 지구로의 귀환
5. 복귀 이후
5.1. 사고의 원인5.2. 각종 상황에 대한 연구5.3. 아폴로 계획의 축소5.4. 대중매체의 아폴로 13호
6. 기타

[clearfix]

1. 개요

달에 가던 중간에 산소탱크 폭발 등 사고로 달에 착륙하지 못하고 지구로 겨우겨우 귀환한 임무이다. 아폴로 1호와 함께 아폴로 계획에서 실패로 끝난 2개 임무 중 하나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부분의 우주선 사고가 비극으로 끝난 것과는 달리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승무원 전원이 무사 생환한, 그야말로 우주 탐사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다.[7]

사령선의 콜사인은 오디세이[8], 달착륙선의 콜사인은 아쿠아리우스.[9]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38px-The_Actual_Apollo_13_Prime_Crew_-_GPN-2000-001167.jpg
왼쪽으로부터 러벨, 스위거트, 헤이즈

2. 발사 전 까지의 과정


휴스턴, 문제가 생겼다.
Houston, We've Had A Problem.
[10]

아폴로 13호는 저주의 13으로 NASA를 몸서리치게 만든 사건인데 출발 전부터 삐그덕 댔다.

우선 당시 NASA 직원들 사이에서는 "두 번이나 해봤으니까 잘 될 거야."라는, 전혀 근거 없는 자신감이 퍼진 상태였다. 게다가 아폴로 계획에서 사소한 고장이나 실수는 자주 있었지만 현장에서의 임시방편조치로 인해 그게 큰 위험을 부르지 않았기 때문에 안전에 대한 감각이 둔화된 상태였다.

원래 모든 우주 비행 미션에는 실제 그 미션에 투입되는 정규 팀과 정규 팀에 참여하는 우주 비행사 중에서 어떤 이유로 비행금지 조치를 받을 경우 즉각 교체투입되기 위한 백업팀이 구성되는 원칙이 있다. 원래 아폴로 13호의 정규팀은 앨런 B. 셰퍼드 2세 사령관, 스튜어트 A. 루사 사령선 조종사, 에드가 D. 미첼 달착륙선 조종사로 구성이 되어 있었고, 실제 아폴로 13호에 탑승한 제임스 A. 러블 2세 사령관, 토머스 K. 매팅리 사령선 조종사, 프레드 W. 헤이즈 2세 달착륙선 조종사는 다음 미션인 아폴로 14호에 정규팀으로 탑승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셰퍼드는 10년 동안 메니에르병을 앓고 있었고, 당시로서는 선진적이었던 내림프강 감압술 수술로 병은 완치했으나 그 동안 치료를 받느라 훈련량이 부족하다며 비행금지 처분을 받았다. 그래서 NASA는 14호의 정규팀을 13호의 정규팀으로 바꾸었다.

이 상황을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면, 그들은 원래 14호의 정규팀으로 내정되어 있었다. 아폴로 계획 때는 3개의 정규 - 백업 팀이 짜여져서 세 번째 뒤의 미션에 타는 것이 원칙이었다. 최초의 달 착륙에 성공한 11호 정규팀은 8호의 백업팀이었고, 두 번째로 성공한 12호 정규팀은 9호의 백업팀이었다. 10호 정규팀은 7호의 백업팀이었고.. 등등. 결국 13호를 타게 된 짐 러블의 팀도 11호의 백업팀이었고, 14호의 정규팀이 될 예정이었다. 즉 14호를 탈 예정이었다가 13호로 순서가 바뀐 것뿐이지, 14호의 팀이 13호 정규팀의 백업팀은 아니었다.

그럼 왜 13호 정규팀에 문제가 생겼는데 백업팀으로 교체가 되지 않고, 순서를 바꾸었냐면, 이 때는 미션을 준비하는 단계였기 때문에, 굳이 백업팀으로 교체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달 착륙 훈련을 받고 있던 다음 미션의 팀으로 바꾸기가 더 나았던 것. 한 칸 밀린 앨런 셰퍼드의 팀[11]은 결국 14호에 정규팀으로 탔고, 이 팀은 13호와는 달리 달 착륙에 성공했다.

이후 교체된 정규팀은 달에 갈 준비를 하며 열심히 훈련을 받았는데 여기에서 또 한 번 삐그덕댔다. 새로 마련된 13호의 백업팀의 달 착륙선 조종사 찰스 M. 듀크 2세의 아이들이 홍역을 앓고 있었는데 이게 듀크에게 옮아버렸던 것. 그러자 13호 담당의는 이게 정규팀에게 전염됐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우주 비행사들은 어릴 때 홍역을 앓았거나 해서 면역을 가진 상태였는데 공교롭게도 매팅리만이 홍역을 앓은 경력이 없었다. 바꿔서 말하면 면역이 없으니 언제라도 걸릴 수 있다는 소리였고 듀크와 동일한 기자재를 만졌으니 홍역의 조짐이 보인다고 주장했다. 당시로서는 증상도 뭐고 없는 그냥 추정에 불과한 것이었으나 제대로 된 치료도 불가능한 우주선 안에서 홍역 때문에 제대로 임무 수행을 못하면 누가 책임질거냐!라는 담당의의 주장에 윗선도 동조했다.

당연히 정규팀의 러블과 매팅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면서 반발했지만 돈은 국가가 내고 결정은 NASA가 한다. 그리고 계속 저항해봐야 명령 불복종에 칼같이 철퇴를 내리는 디크 슬레이튼이 무슨 조치를 취할지는 뻔한 일이었다. 결국 양쪽 팀에서 한 명씩 결격사유로 제외되는 곤란한 사태가 빚어지자[12] 예비팀 사령선 조종사 존 L. 스와이거트 2세 한 사람만 기용하게 된다. 병도 안 난 사람을 희미한 전염 가능성 때문에 병자로 낙인찍고 이에 다른 승무원이 NASA의 윗선에 항거할 정도면 이미 막장. 압권인 것은 이게 불과 발사 7일 전에 벌어진 일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스와이거트도 정규 팀과 동일한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훈련량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갑자기 투입되어 7일 동안 다른 멤버들과 손발을 맞춰야 했다.[13]

영화상으로 보면 오히려 매팅리가 지구에 남은 것이 결과적으로 미션을 구한 셈이 되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사령선과 착륙선에서 적정량의 전력을 남겨 놓아야만 제대로 된 대기권 재진입이 가능했던지라 전력을 어떻게든 최대한 아끼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매팅리만큼 사령선의 구조에 대해 빠삭한 사람이 없었다.[14] 물론 이건 영화상 설정이고, 짐 러블에 의하면 영화 내에서의 켄 매팅리의 기여도는 과장되었다고 한다. 즉 매팅리 한 사람의 영화상 묘사는 전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상에서 혼신의 힘을 다한 여러 나사 직원들의 투영이라고 할 수 있다.[15]

3. 13시 13분, 13호 이륙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아폴로 13호는 계획대로 협정세계시(UTC) 1970년 4월 11일 오후 7시 13분, 미국 중부 표준시[16] 13 13분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발사되었다. 그리고 마의 숫자 ' 13'의 저주를 상기시키듯 발사 후 7분 만에 추진 로켓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새턴 V 로켓의 1단 분리 후 2단계 추진을 하던 중, 5개의 J-2 엔진이 동시에 예정된 시간까지 추력을 내줘야 되는데 공교롭게도 5번의 중앙 엔진이 2분이나 일찍 꺼졌던 것.[17] 이로 인해 우주비행사들과 미션 컨트롤 센터(MCC)에서는 미션을 취소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나왔지만[18] 나머지 4개의 엔진을 좀 더 오래 사용하면 정상적으로 궤도에 올릴 수 있다고 판단하여 미션 속행이 결정됐다.[19][20]

우주비행사들과 MCC 관계자들은 이 사소한 문제점에 대해 13의 저주와 연관된 상황을 일찍 겪으면서 액땜한 것 정도로 여겼다. 11호처럼 착륙 시 과부하 오류가 났던 것도, 12호처럼 계기가 전부 맛이 갔던 것도 아니었으며 나머지 엔진을 더 가동하여 땜질이 가능한 문제였기에 가볍게 넘어간 것. 실제로 이후 지구 궤도를 돌고, 달로 향하는 궤도로 진입하여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이들의 비행은 그야말로 큰 사고없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4. 일련의 사고들

4.1. 산소 탱크 폭발

파일:external/www.alanbeangallery.com/apollo13.jpg

협정세계시 1970년 4월 14일로 알려져 있지만, 미국 중부 표준시[21] 기준으로 4월 13일, 아폴로 13호가 지구에서 321,860km 떨어진 지점에 도착했을 무렵 기계선(Service Module)의 산소 탱크가 갑자기 폭발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pollo13_tank2.jpg

당사자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 산소 탱크가 느닷없이 폭발한 것은 아니었다. 아폴로 우주선의 수소와 산소 탱크의 경우 극저온 상태에 노출되고 있었고 이 때문에 기체가 층을 이뤄 침전되는 현상을 일으키곤 했다. 그 영향으로 정확한 산소와 수소 잔량 파악이 어려웠는데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탱크에 팬을 설치하여 동시에 히터를 통해 히팅을 하면서 공기를 뒤섞을 수 있는 장치를 설치했다.

미션 컨트롤 센터에서는 당시 콘솔에 나타난 탱크의 기체잔량이 너무 낮게 나타나자 자연스럽게 이 팬을 가동시키라고 지시했고, 우주비행사들도 늘상 있어왔던 지시였기에 자연스럽게 이 팬을 가동시켰고 몇 분 후 폭발이 일어났다.

기계선에는 산소탱크가 2개 설치되어 있는데, 그중 폭발은 2번 탱크에서 발생하였다. 문제는 이 폭발로 인해 멀쩡한 1번 탱크와 주변 배관, 하이게인 안테나까지 모두 박살나버린 것. 당초 우주비행사들은 폭발이 일어났다는 생각을 못 했고, 그저 예전처럼 작은 운석 같은 것이 우주선과 부딪쳤을 것으로 인식했다. 보고를 받은 MCC측도 사고가 발생했음을 인지했지만 역시 뭔가가 폭발했다고는 판단하지 못했다.
진 크랜츠: "알았어. 우리가 해결해줄 테니까 우주 여행이나 계속해."
무엇보다 콘솔에 들어오는 정보로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정확한 상황 파악이 어려웠다. 일단 MCC에서는 2번 탱크는 파손됐지만 1번 탱크까지 이상이 생겼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무심코 내시창 너머를 본 러블이 우주선에서 하얀 입자가 뿜어나오고 있는 것을 파악했고, 뭔가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인지한 러블은 MCC에 저 유명한 "Houston, We've had a problem."( 휴스턴, 문제가 생겼다.)이라고 보고했다. 이 말은 세간에는 "Houston, We have a problem."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지금 이 동영상의 댓글들을 보면 다 이 실수에 대해 뭐라고 하는데, 감독 론 하워드가 일부러 이렇게 바꿨다고 말하였다. 이유는 "We have"라고 하면 "We've had"보다 더 긴장스럽기 때문이라고. 즉 원래는 "방금 뭔가 일이 터졌다"의 어감이고 바꾼 것은 "지금 뭔가 일이 터지고 있다" 정도의 차이다. 완료시제 참고. 어떤 표현이었든 간에 이는 아직도 NASA 베테랑들 사이에서 회자될 정도다.

그리고, 결국 우주비행사들과 MCC 모두 사고로 2개의 산소 탱크가 모두 손상을 입어서 산소가 누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당장 우주비행사들의 생명이 중요한 문제였기에 MCC에서는 사실상 달 착륙을 포기하는 선택을 하면서도 1번 탱크를 살리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 일단 우주 비행사들에게 잠시 후 공기가 바닥나는 사령선을 폐쇄하고 신선한 공기를 쓸 수 있는 달착륙선으로 이동할 것을 지시했다.

4.2. 실패라는 선택지는 없다.

"Failure is not an option."
"실패라는 선택지는 없다."[22]

진 크랜츠가 이끄는 MCC 팀을 골치아프게 한 것은 역시 정확한 상황 파악이 어렵다는 점이었다. 그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콘솔을 통해 수신되는 정보, 그리고 사고 직후 사령선을 폐쇄하면서 얻은 최종 정보뿐이었다. 이로 인해 MCC에서는 최적의 상황을 미리 조성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문제가 하나 불거질 때마다 임기응변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MCC에서 결정해야 될 문제는 우주비행사들을 어떻게 지구로 데려올 것인가란 점이었다. 우선 우주선을 그 자리에서 직접 U턴시켜 지구로 돌아오는 방식과 우주선에 인위적인 개입없이 자연스럽게 달의 뒷면을 선회한 다음 다시 지구로 돌아오는 방식이 고려되었다. 전자의 방식대로 하자니 우주선의 진행방향을 반전시킬 충분한 속도가 없었고[23] 후자의 방식대로 하자니 달을 스윙바이해서 돌아올 동안 승무원들이 사용할 전력, 산소 등 생명유지자원 부족이 문제였다. 검토 끝에 MCC는 즉시 U턴은 불가능하며 후자의 방식이 그나마 실현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미 아폴로 13호는 달의 인력권에 접어든 상태였고, 이미 산소 탱크가 날아간 상황에서 연료전지의 정상가동이 어려운데 엔진을 한 번 점화하고 컴퓨터로 궤도를 계산하는 것 자체가 전기를 엄청나게 소모하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폭발로 인해 사령선의 엔진 쪽도 파손된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었기에 더더욱 모험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4.3. 전력 부족

이렇게 귀환 방법이 결정됐는데 전력 문제가 불거졌다. 연료전지가 정상가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남아있는 전력은 사령선에 있는 재진입용 배터리 3개와 달 착륙선의 배터리가 전부였다. 게다가 사령선에 있는 배터리는 추후 지구 재진입 절차를 고려하면 막 쓸 수도 없는 상황이였다. MCC에서도 지구로 도착하기도 전에 전력이 바닥나서 우주선이 깡통이 되어버린다는 계산이 나올 정도였다. 전력을 그대로 쓰면 지구로 절반쯤 돌아와서는 우주선의 전력이 바닥나는 상황이었다.

이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다시 MCC 전원이 머리를 싸매기 시작했고[24] 결국 MCC 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진 끝에 반드시 필요한 장비만 남겨두고 모조리 꺼버리기로 결정했다. 난방 등 기초적인 건강 유지에 필요한 것은 물론이며 심지어 항법 컴퓨터마저 꺼버리고 비상시에만 사용되는 보조 유도장치[25]로 궤도 수정을 하였다. 어쨌든 MCC와 우주비행사들의 피눈물나는 노력 끝에 지구로 돌아올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전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달 착륙선의 소모 전류는 60A였지만 그대로는 16시간 안에 전력이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를 45시간을 버티려면 12A까지 낮춰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게 얼마나 열악한 상황이냐면, 영화상으로는 "12A갖곤 청소기 하나도 못 돌리잖아"라는 대사로 짧고 굵게 설명한다.

4.4. 이산화 탄소 농도 문제

어느 정도 상황이 안정세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했을 무렵, 이번에는 이산화 탄소 문제가 불거졌다. 우주 비행선에는 이산화 탄소 제거기를 사용하는데, 이들이 옮겨온 달 탐사선은 2명만 탑승하도록 만들어진 탓에 3명이 내뿜는 이산화 탄소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이에 따라 아폴로 13호 내의 이산화 탄소 수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aecf1218533c49744d2e694f8edc33e6.jpg

MCC에서는 사령선의 이산화 탄소 제거기를 달 착륙선에 이식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지만, 사령선의 이산화 탄소 제거기는 사각형이었으나 달착륙선의 제거기는 원통형이라서 호환이 되지 않는다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상황과 마주하였다.[26] 영화 속 진 크랜츠는 황당해하면서 " Tell me this isn't a government operation."[27] 라는 말을 남겼다.[28] 물론 이런 상황까지 예측하지는 못했겠지만, 전쟁 중 쓰이는 병기나 이런 우주선 같은 중대한 경우 긴급 상황에 대비해서 주요 공통 장비들의 규격을 일치시켜 상호 교체하여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쨌든 MCC에서는 이 장치를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우주선 안에 있는 재료만을 써야 됐기 때문에 쉽지 않은 문제였고, 결국 하룻밤을 꼬박 샌 끝에 우주비행사들의 양말과 덕트 테이프[29], 두꺼운 비행 매뉴얼의 표지 등을 사용하여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리고 우주비행사들은 MCC의 지시에 따라 빠르게 제작에 착수했고 결국 완성했다. 이를 통해 이산화 탄소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파일:attachment/Apollo13_1.jpg

이산화 탄소 제거기 제작중 촬영된 기록 사진이다. 오른쪽은 스와이거트다.

파일:attachment/Apollo13_2.jpg

완성된 이산화 탄소 제거장치, 덕트 테이프로 덕지덕지 고정시켜놓은 모습이다.

이 사건 이후로 나사의 모든 유인우주선의 이산화 탄소 처리 장치는 모두 표준형으로 통일하여 설계된다. [부정됨]

4.5. 궤도수정의 문제

지구로 귀환하는 도중에도 마음 편하게 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산소탱크가 폭발한 후 남아있는 산소들이 끓어올라 빠져나가가는 힘에 의해 궤도에 영향을 주었고, 이에 따라 몇 번이나 엔진을 가동해 궤도를 바로잡아 줄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당시 신뢰성이 낮았던 전자 시계가 고장이 났다. 이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문제였기 때문에, NASA는 극저온, 극고온 테스트를 통과한 당대의 가장 정확하고 튼튼한 기계식 크로노그래프 손목시계인 오메가의 ' 스피드마스터'를 지급했다. 승무원들은 역시나 멀쩡히 작동하던 스피드마스터를 이용해 정확히 14초 동안 궤도를 수정했다.[31]

폭발로 터져나간 단열재들도 문제였다. 아폴로는 주기적으로 별자리들을 통하여 유도 장치를 재정렬해야 했지만, 단열재 조각들이 우주에서 제멋대로 회전을 하며 태양빛을 반사하는 바람에 별자리를 식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NASA의 슈퍼컴퓨터에서 보내주는 정보를 바탕으로 계산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와중에 전력이 아까워서 자동조종장치마저 꺼버린 탓에 조종사들이 수동으로 계산해야 했다. 그러나 조종사들도 며칠이나 식사, 수면, 휴식 그 무엇도 제대로 취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 이르자 자기가 적은 글씨를 자기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뇌 기능이 저하되어 버렸고, 결국 휴스턴에서 계산까지 다 해준 값을 올려주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원래 사령선 조종사였던 매팅리의 땜빵으로 7일 전에 합류했던 스와이거트가 바로 사령선의 절차를 개발한 주인공 이었다. NASA 안에서 스와이거트보다 사령선에 빠삭한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지구에 남아 지상에서 아폴로 13호를 지원하던 켄 매팅리 역시 사령선에 있어 스와이거트 못지 않은 전문가였다. 말그대로 양쪽에서 상황을 타파할 최고의 카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 이 둘이 없었다면 아폴로 13호는 비극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4.6. 열악한 생존 환경

전력소모를 줄이기 위해 전자장비를 모조리 꺼버리다 보니 난방을 위한 열을 만들 수 없어 내부 온도는 영하까지 떨어졌다. 당연히 난방이 될 줄 알고 따뜻한 옷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이 착용할 수 있는 보온장비는 달 착륙선에 비치된 월면화와 장갑 뿐이었다. 하지만 위에서도 반복하여 서술했듯이 달 착륙선은 원래 2인용이었으니 월면화와 장갑도 당연히 2켤레 뿐이라서 나머지 1명은 그냥 알아서 버텨야 하는 처지였다. 이로 인해 헤이즈는 우주 감기라는 희귀한 질병에 걸렸다.

이 와중에 승무원들에게 하루 동안 주어진 식량은 핫도그 한 개와 3 온스, 즉 90mL였다. 이해하기 쉽게 다른 물건과 비교하면, 일회용 종이컵의 용량이 약 190ml이다. 즉 하루에 반 컵 정도의 물로 버틴 것. 원래 은 별도로 싣고 가는 게 아니라 연료전지가 가동을 하면서 나오는 물을 정수해서 마시도록 되어 있는데, 산소가 부족하니 물이라고 잘 나왔을 리가 없었고 심지어 그 핫도그와 물조차도 영하의 기온 속에 딱딱하게 굳고 얼음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헤이즈는 우주 감기까지 겹쳐 신장염을 얻게 되어 귀환 후 오랫동안 고생했다.

이러한 고난으로 승무원들의 심신은 한계에 내몰렸고, 한때는 무력감에 휩싸여 생존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NASA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이들은 마침내 4월 17일 지구 재진입 절차에 착수하게 되었다.

4.7. 지구 재진입

간신히 재진입을 바라볼 수 있는 시점에 도달했을 무렵 또 다시 전력 문제가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지구 재진입을 위해서는 반드시 사령선을 가동해서 수많은 장비들을 가동해야 했는데, 턱없이 부족한 전력으로 사령선의 장비들을 몽땅 가동했다간 중간에 우주선의 동작이 멈출 게 뻔했던 것이다.

결국 MCC에서는 지상에 잔류한 매팅리,[32] 아폴로 12호를 살린 존 애런(John Aaron)[33] 등을 포함해 모든 인력을 끌어모아 전력 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했다. 존 애런은 귀환 도중 전력 사용을 최대한 제한시켜 우주인들의 건강 악화에 기여(?)했지만 그 결과 어떻게든 전력을 최소 수준으로 유지시킬 수 있었고, 우주선에서 끌어모을 수 있는 전력은 최대한 짜내고, 귀환 과정에서 도저히 끌 수 없는 장비들만 골라서 켜두는 식으로 억지를 부려서 어떻게든 재진입할 수 있는 절차를 만들어냈다. 전력 소비를 최소화하려고 장치들의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계측 장치를 가장 나중에 켜는 모험수를 썼는데 다행히 이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절차는 지상에 주어진 정보만으로 시뮬레이션하여 만들어낸 방법이었고 우주선의 정확한 상황이 파악된 것은 아니었기에 제대로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게다가 이전의 사고로 사령선의 재진입 모듈 역시 파손되지 않았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이라 NASA 내에서도 최악의 상황을 각오해야 됐을 정도로 변수가 많은 재진입이었다.

4.8. 안녕, 아쿠아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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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ewell Aquarius and we thank you."

지구 궤도에 진입하기 직전, 승무원들은 사령선으로 옮겨타 재진입용 배터리를 이용해 사령선을 재부팅하고, 기계선을 먼저 분리해 기계선의 손상을 살펴본뒤 달착륙선 아쿠아리우스를 분리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달 착륙선을 분리한 순간이 제일 아쉬웠던 순간이었다고 한다. 달 착륙을 못한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마치 생사를 같이 한 친구를 잃은 것 같아서였다고. 영화 아폴로 13호에서 이 장면이 상당히 감동적으로 묘사된다. #

달 착륙선 분리 당시에도 문제가 발생했다. 계획대로라면 달 착륙선 분리는 달 탐사 직후 달 궤도에서 이루어진다. 분리 즉시 기계선의 추진 시스템을 이용해서[34] 사령선과 달 착륙선 사이의 거리를 넓히는데, 이 안전거리가 확보되지 않는 경우에 심하면 사령선과 달착륙선이 우주상에서 충돌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아폴로 13호의 경우 고철덩어리가 된 기계선을 사용할 수도 없을 뿐더러 이미 분리한 상태라서 거리를 넓히는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 하였다. 해결책으로선 착륙선의 내부 공기압을 높혀 (풍선을 놓으면 공기가 빠져 나가면서 풍선을 추진하듯) 두 기체 사이의 거리를 넓이는 것이 제안되었고 노스롭 그루먼과 토론토 대학교의 연구원들이 같이 일해 이 일을 완수할 수 있는 안전한 기압을 측정하였고, 결국 이 해결책은 성공적이었다.

이 때 달 착륙선이 대기권 진입 중 방사능 낙진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걸 우려하는 기사가 여러 곳에서 나왔다. # 달착륙선에 실린 월면 실험 장치의 동력 공급 장치가 여러 가지인데 그 중 하나가 원자력 전지 플루토늄을 비롯한 방사능 물질이 들어간다. 열처리가 되어 있어서 재돌입을 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3.9kg짜리 플루토늄 덩어리가 육지에, 특히 대도시같은 곳에 떨어진다면 아무리 미국이라도 후폭풍을 감당할 수가 없다. 그래서 처음에 계획을 세울 때도 달 착륙선은 달 궤도에서 미리 떼버리고 귀환하려고 했던 것인데, 지금은 어쩌다보니 이게 지구까지 도로 반송된 것. 물론 NASA는 태평양에 떨어지도록 되어 있다고 발표했지만, 애초에 NASA가 일처리를 깔끔하게 했으면 이런 사태까지 오지도 않았다는 게 당시 사람들의 우려였다.

이 착륙선은 1970년 4월 17일 대기권에 재돌입해 소멸되었다. 다행히 계획대로 달착륙선을 원격으로 제어해 플루토늄을 품고 있는 원자력 전지 태평양으로 추락하도록 제어되었으며, 대기권에서 불타지 않고 남은 플루토늄 뉴질랜드 북동쪽의 통가 해구의 바닥에서 향후 2,000년간 방사선을 뿜어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물론 물은 훌륭한 방사능 차폐제로서 방사능원 주변 수중 2m만 떨어져있어도 지금 이 글을 보고있는 당신보다 적은 양의 피폭을 당한다.[35]

4.9. 지구로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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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선(Service Module)을 분리할 당시 로켓엔진 쪽에서 바라본 화각(사령선은 분리되어 보이지 않는다. 출처 위키백과)

위는 기계선의 사진인데, 이것을 보면 얼마나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다. 길이 6.4m, 폭 1.8m라는 엄청난 크기의 구멍은 동력 시스템의 한쪽면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별 수 없이 승무원들은 달 착륙선의 하강단계 엔진을 사용해야 했다. 이걸 본 우주비행사들도 "세상에. 우리가 지금껏 저걸 타고 있었단 말이야?" 하고 놀랐다니 그 꼴을 짐작할 수 있다.

사령선의 밑바닥을 보호하는 내열재가 안전한지도 불확실했다. 만약 내열재가 손상된 상태라면 아무리 완벽한 각도로 진입하더라도 승무원들은 모조리 타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망가진 기계선을 일종의 덮개로 써먹으면서 최대한 내열재를 보호했지만, 기계선 자체의 폭발 때문에 사령선의 내열재가 이미 손상되었다면 아무 의미도 없는 행동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말 사소한 문제로, 아폴로 13호의 예상 착수 지역 부근에는 태풍경보가 내려진 상태였다. 그 개고생을 하고 목숨을 걸고 대기권을 돌파하자마자 태풍에 휘말릴 판이었다. 태풍 속에 착수했다면 비행사들의 목숨은 또 다시 위험해지는데, 강한 바람이 불어 구조 선박과 구조 헬기를 띄울 수 없고 몇십 미터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에서 구조작업을 하는 것은 매우 고난이도일 뿐더러, 사령선이 바람과 파도에 뒤집어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아폴로 13의 사령선은 전력이 심하게 모자라는 상황이었는데, 전력이 모두 떨어질 경우에는 사령선이 내보내는 구조 신호도 보낼 수 없으니 구조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여담으로 아폴로 11호도 태풍을 피하기 위해 재진입 경로를 변경한 적이 있다.

재돌입 과정에서는 4분 정도 통신이 두절되는 것을 예상했는데,[36] 실제로는 무려 6분 정도 통신이 두절되었으며, 착수하고 나서도 30초 동안 통신이 두절되었다고 한다. 그 30초 동안은 우주 비행사 3명 모두 다 죽은 게 아닌가 생각했다고 한다. 출처.[37]지금까지도 예상치와 왜 이리 차이가 났는지 여러 설이 있으며, 진 크랜츠에 따르면 자기에게는 모든 설들이 다 석연치 않다고 한다. 제일 그럴 듯한 설명은 진입각도와 가벼운 무게(선체의 일부가 소실되었고, 달 운석을 안 가져왔기에)[38]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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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선이 착수하는 순간이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내열재는 무사했고, 태풍의 영향권도 피했다. 아폴로 13호는 1970년 4월 17일 오후 6시 7분 41초에 사모아 섬 남서쪽, 서경 165도 22분, 남위 21도 38분의 태평양 상에 성공적으로 착수했다. 미군은 조종사들의 구조를 위해 미 해군 강습상륙함인 LPH-2 USS 이오지마( 함장 릴랜드 E. 커크모(Leland E. Kirkemo) 대령) 함을 기함으로 하는, 도널드 C. 데이비스(Donald C. Davis) 해군 소장이 지휘하는 태스크 포스 130을 조직하여 파견시켜 두었고, USS 이오지마 함은 자신으로부터 6.5km 거리에 착수한 아폴로 13호와 조종사 모두를 구조하는 데 성공했다. 이오지마 함 승조원들은 정복을 착용하고 아폴로 13호 승무원들을 맞이했으며,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그날 밤 베트남에서 군대를 철수하겠다고 밝힐 예정이었던 연설을 취소하고 바로 USS 이오지마 함으로 마린 원을 타고 날아가 아폴로 13호 미션을 Successful Failure(성공적인 실패)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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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된 아폴로 13호의 승무원들과 TF-130 사령관 데이비스 제독. 제독의 옆에는 살짝 팔만 보이는 함장 커크모 대령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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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수 후 환호하는 MCC 사람들. 사진 가운데 담배를 문 사람 오른쪽에 있는 모히칸 헤어스타일 조끼를 입은 사람이 진 크랜츠다.

영화에서는 이 착수 과정이 결말을 모두가 다 앎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긴장감 있게 묘사된다. 대기권 재진입에서 착수하는 시간동안 러블의 집에서 지켜보는 가족들, MCC에서 계속 통신을 시도하며 숨을 죽이고 있는 팀원들, 그리고 굳은 분위기 속에서 상황을 전달하는 뉴스 앵커들을 각각 번갈아가며 비추어준다. 배경음악 역시 상당히 구슬픈 음을 선택하여 마치 비극의 전주곡인 것처럼 분위기를 제대로 세우지만... 마지막에 치지직거리는 라디오 소리와 함께 낙하산을 펼친 사령선이 카메라에 잡히고 러블의 맞통신이 들려오며 전세계가 환호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 실제에서는 위에 적혀있듯 착수하고도 30초정도 통신이 두절되어서 더 마음을 졸였다.

5. 복귀 이후

5.1. 사고의 원인

우주비행사들이 돌아온 후 바로 사문위원회가 조직되어 시뮬레이터와 14호용 기계선에 의한 조사에 착수하였다. 물론 시뮬레이터와 다른 기계선을 이용한 조사였으므로 오류는 있을 수 있지만 폭발의 이유가 참 가관이었다.

결국 이 사고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 부품 공급사와 사소한 사고를 형식적인 보고만 하고 넘기는 납품 과정 및 이상 상태를 파악할 수 없는 점검기로 검사를 한 케네디 우주 센터와 함께 전반적으로 일정만 중시한 나머지 사소하다고 판단된 사고는 원인을 규명하지 않고 편법으로 문제의 부품이 작동하도록 만든 다음, 그걸 유지한다는 편법만능주의가 합쳐지면서 벌어진, 일어날만하니까 일어난 사건이었다. 즉 인재(人災)의 연속이었다.

따라서 이 사건 후 NASA에서는 13호 관련자와 그 부품 공급사를 아폴로 계획에서 잘라버렸다. 하지만 이런 식의 안일한 대응은 그 뒤에도 이어졌고, 그 결과 인류의 우주 탐사 역사상 최악의 인명피해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39]

5.2. 각종 상황에 대한 연구

초유의 사고가 났음에도 무사히 생환한 경우였고 그 과정에서 당면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야말로 시간에 쫓기면서 각자의 머리를 쥐어짜낸 끝에 해결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추후 사고 발생시 대처방법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됐다.

아폴로 계획을 준비하고 각종 상황에 대한 시나리오와 대처 매뉴얼을 작성할 때 사령선을 폐쇄하고 달 착륙선으로 비행하는 상황 자체는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사실 초기 단계에서 "고려해야 될 상황"으로 논의가 되긴 했지만 그럴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어 시나리오조차도 작성하지 않았는데 세상 일이란 것은 결코 알 수 없는 법. 특히 사령선 폐쇄를 결정하고 달 착륙선으로 제어권을 옮기는 과정에서 비행 관련 데이터를 완전히 넘겨주지 못하면 우주선은 그야말로 눈먼 깡통이 될 처지였다.[40] 게다가 사령선이 시시각각 죽어가는 상황에서 시간조차도 많지 않았는데 조종사들은 이렇다 할 매뉴얼도 없이 달 착륙선의 컴퓨터를 부팅시키고, 잽싸게 값을 보정하여 데이터를 옮겨넣고, 성공적으로 사령선을 폐쇄했다. 그야말로 기적이 따로 없었다.

더불어 상기한 것처럼 3인의 조종사가 달착륙선을 이용하는 상황을 상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역시 전혀 고려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문제가 불거졌고 사령선의 이산화탄소 제거기와는 호환도 되지 않는 개떡같은 상황. 그 때문에 MCC에서 간신히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냈고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사후 연구에서 이 임시방편은 매우 효율적인 방법으로 인정받아 이후 추진되는 아폴로 계획의 매뉴얼과 교육과정에 포함되는 위업을 달성했다. 다행히, 그 후로 이 임시방편이 실제 상황에 적용되는 일은 없었다. 이산화탄소 제거기도 14호부터는 상호 호환이 가능하게 바뀌었다. [부정됨] [42]

5.3. 아폴로 계획의 축소

이 미션 이후로 달 미션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미국내 여론이 거세졌지만, NASA는 진보한 달 미션이라는 슬로건 아래 기계선을 완전히 재설계해 아폴로 14호를 내보내게 된다. 사실 13호부터 진보할 계획이기는 했지만...실제로 13호에는 신형 우주복이 탑재되어, 이 우주복을 새로 시험해 보는 것이 13호의 첫 임무였다. 이러한 기계선의 재설계 과정으로 인해 아폴로 14호는 약 1년 후 재개되었다.

5.4. 대중매체의 아폴로 13호

이 사건은 아폴로 13(영화)이라는 이름으로 영화화되었으며, 이 영화는 당시 사령관이던 제임스 러블도 몇몇 긴장감을 위한 장치를 제외하면 철저히 사실에 입각하여 만들어졌음을 인정했을 정도로 사실적으로 제작되었다. 이 영화에 러블은 자신들을 구조했던 USS 이오지마 함의 함장인 커크모 대령 역으로, 러블의 아내는 아폴로 13 발사를 지켜본 관객 중 한 명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6. 기타

Silver Snoopy Award
Snoopy Award Edition (2020)
파일:오메가 실버 스누피 어워드 수상.png 파일:2020 Silver Snoopy Award Edition.png
1970년 10월 3일, NASA에서 Omega측에 전달한 상장. 아폴로 13호 우주인들의 서명과 함께 스누피가 그려져있다. 2020년에 발매된 세번째 한정판. Omega에서 8000만원 이상의 기존 구매 이력이 있어야 구매가 가능하며, 가격은 1,140만원이다. 현재 스누피 에디션은 모두 정가보다 훨씬 높은 중고가로 거래된다.

[1] CDR 백업 존 영. 이후 이 팀은 16호에 배정된다. [2] 짐 러블은 아폴로 8호에 탑승한 경험이 있었다. [3] 원래 켄 매팅리가 맡을 예정이었으나, NASA는 찰스 듀크의 홍역에 매팅리도 노출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여 매팅리를 제외하였다. [4] LMP 백업 찰스 듀크 [5] 프레드 헤이즈는 아폴로 13호가 첫 번째 탑승이었다. [6] 사고 덕분에 이 기록을 갖게 되었다. 지구에서 달로 쏘아보낸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도달해 궤도에 진입할때는 달의 뒷면 상공(지구에서 가장 먼 지점)에서 감속을 하여 달 주회궤도를 형성하는데, 아폴로 13호는 중간에 사고가 터지면서 정상적인 달 뒷면 상공보다 더 높은 곳을 스윙바이로 그냥 지나친 뒤에 지구 중력에 이끌려 다시 되돌아왔다. 결과적으로 지구에서 가장 멀리 나갔다 온 유인우주선이 됐다. [7] 달착륙 음모론자들은 주구장창 아폴로 11호만 언급하면서 인류가 달에 쉽게 갔다왔다는 건 음모라고 주장하지만, 아폴로 13호의 사례에서 보듯이 아폴로 계획은 말 그대로 우주인들의 목숨을 건 임무였다. 알고보면 모든 아폴로 계획에서 크고작은 사고는 셀 수 없이 많다. 오히려 크고작은 사고를 어떻게든 뛰어 넘으며 이전 계획들이 성공한 것이 아폴로 13호에겐 독이 되었을 뿐. 그럼에도 비행사들이 살아 온 성공적인 실패로 마무리를 지어 음모론에 대한 또 다른 반박 사례가 되었다. 그리고 사실 음모론자들에겐 아쉽게도 당시의 탐사 사진 자료들이 나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아주 방대하게 남아있다. [8] 호메로스의 서사시 제목이자 주인공의 이름. 당연히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오디세우스가 집에 돌아오기까지의 험난했던 여정을 생각하면 결과적으로 이후의 사태를 예고한 셈이 되었다. [9] 물병자리는 신들이 마시는 술 넥타르가 담긴 술병을 상징하는데 인간이 넥타르를 마시면 불로불사하게 된다고 한다. 실제로 대원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건 착륙선 덕이니 재미있는 우연의 일치다. [10] 처음에 Ok, Houston으로 시작하는 말은 잭 스와이거트가 말했고, 이후 휴스턴이 다시 말하라 하자 짐 러블이 다시 말한다. [11] 사실 이 팀도 원래는 셰퍼드가 아니라 머큐리 계획 시절의 다른 베테랑 고든 쿠퍼가 사령관이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고든 쿠퍼는 훈련에 소홀하게 임한다는 이유로 디크 슬레이튼(머큐리 동기)에게 잔소리를 듣다 잘렸고, 때마침 비행자격을 회복했던 셰퍼드가 머큐리 올드보이의 달 착륙이라는 상징성을 위해 선발되었다. 고든 쿠퍼는 결국 이들과의 관계가 멀어져 NASA를 아예 나와버렸고, 14호 미션을 앞두고 셰퍼드의 귓병이 걱정이다, 개인의 욕망보다 아폴로 미션에 있어서 무엇이 최선인지 생각해야 한다느니 하는 발언으로 초를 쳤다. 그리고 쿠퍼의 팀 중 사령선 조종사 돈 아이즐리의 경우는 갑자기 불륜 스캔들이 터졌다. 지금 같은 시대에는 그냥 사생활 정도로 묻어갈 수도 있지만, 이 시기 아폴로 우주인들은 세계구급 스타들이었기 때문에 불륜으로 인한 이미지 실추는 그냥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아폴로 7호 시절 우주에서 감기에 걸려 관제센터와 고성이 오가는 싸움을 벌였기 때문에 평가는 원래 안 좋았고, 결국 아이즐리를 마음에 안 들어했던 승무원 디렉터 디크 슬레이튼은 아이즐리를 확 잘라버렸다. [12] 막말로 홍역에 옮았던 듀크가 착륙선이 아니라 사령선 조종사였다면 13호는 아예 취소될 수도 있었다. 백업 팀을 이중으로 운용하는 것도 낭비라고는 하지만 좀 아스트랄한 사태임은 부정할 수 없다. 존 영 짐 러블 모두 아폴로 사령선 조종사 경력이 있으니 존 영을 데려와서 시켰으면 될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우주비행사의 보직이란 것이 그렇게 발사 며칠 전에 쉽게 전환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아폴로 10호와 13호의 사령선은 이미 매우 다른 물건이 되어 있었다. [13] 영화상으로는 잘 안 맞는 것처럼 표현되었지만 스와이거트의 경우 사령선 메뉴얼을 작성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터라, 다른 맴버들도 딱히 걱정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14] 현실에선 사령선에 타고 있던 스와이거트 역시 사령선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인 셈이다. [15] 실제로 전력 소비량 감소 및 복구 절차를 만든 것은 아폴로 12호를 위기에서 구해냈던 전력이 있는 EECOM, 존 애런이었다. 영화에도 얼굴을 비추는데 회의 때 전력 때문이야를 외치며 최대의 문제가 전력임을 상기시키고, 이후 켄 매팅리와 함께 전력 소비량을 재며 복구 절차를 만들었다. [16] 휴스턴에서 사용하는 시간 [17] 원래는 2단의 중앙 엔진도 1단처럼 일정 시간 연소 후 중앙 엔진이 꺼지지만, 아폴로 13호에서는 후술할 문제로 인해 일찍 정지했던 것. [18] 당시나 지금이나 엔진의 문제는 폭발이라는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결정이 요구되었다. 다행히 분사 시간과 출력 등을 고려하여 내린 결정이었다. [19] 후에 엔진이 멎은 원인으로는, 액체산소 탱크의 압력이 낮아져 발생한 터보펌프 내부의 공동 현상(Cavitation, 펌프의 임펠러가 고속으로 회전하면 임펠러에는 압력이 낮은 부분이 생겨 이 부분에 기포가 생기기도 하는데, 이 기포가 터지면서 임펠러에 강한 충격을 주어 진동, 소음, 펌프의 파손 및 성능 감소 등을 유발한다.)으로 인해 시작된 포고 현상이 극심해져 중앙 엔진이 16Hz 68G의 매우 큰 진동을 일으켰다. 이에 엔진을 지지하는 크로스빔이 휘어지며 엔진이 7cm씩 위아래로 흔들릴 지경에 이르자, 연소실 압력 스위치가 영향을 받아 컴퓨터가 중앙 엔진을 자동 정지시킨 것으로 확인되었다. 아폴로 6호에서도 1단의 포고 현상으로 로켓이 파손되고 고장으로 2대의 2단 엔진이 정지한 바가 있다. [20] 꺼진 것이 중앙 엔진인 덕분에 추력 불균형이 없던 것도 미션 속행이 가능한 원인이었다. 다섯개의 엔진이 주사위의 눈처럼 배열되어 있어, 가운데에 위치한 중앙 엔진이 꺼져도 나머지 네 방향의 엔진은 정상작동해 비행의 방향 유지엔 이상이 없었다. 차라리 이때 미션 포기가 떴으면 이후의 살벌하기 짝이 없는 우주생존여행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아폴로 6호에서도 2단의 엔진이 정지한 바 있는데, 이 경우에는 2번과 3번, 즉 한쪽 측면의 엔진이 모두 정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2단이 정상적으로 비행할 수 있었다. 이것은 엔진에 추력편향 장치가 장착되어 어느정도의 추력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측면의 엔진이 정지했더라도 어쨋든 아폴로 13호는 같은 운명을 맞았을 가능성이 높다. [21] 전술했듯이 휴스턴이 여기에 속한다. [22] 발언자는 MCC 팀 리더였던 진 크랜츠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영화 제작을 준비하는 동안 어떤 관련 인물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언급이 있었던 것을 잘 포장해서 쌈박한 문장으로 바꾼 다음, 그 문장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인 진 크랜츠의 대사로 바꾼 것이다. 진 크랜츠 본인도 마음에 들었는지, 나중에 자서전의 제목이나 MCC 팀 관련 다큐멘터리의 제목으로 사용되었다. [23] 쉽게 말해 U턴을 하려면 장시간 역분사를 해야 하는데 기계선 폭발로 엔진 상태를 알 수 없고, 남은 것은 달 착륙선인데 달 착륙선 엔진은 달에서 사용하게 제작되었으며 장시간 분사할 연료는 탑재하지 않았다. [24] 아폴로 13호 당시 EECOM이던 사이 리버갓은 물론이고 이 때 아폴로 13호 관제 업무를 하지 않던 존 애런까지 급히 불러들였으며 지구에 남은 켄 매팅리 역시 동원되었다. [25] Abort Guidance System, 달 착륙선에 내장돼있던 백업 컴퓨터 시스템으로 전력 소모가 더 적었다. [26] 원래 달착륙선은 그루먼 사에서, 사령선은 노스 아메리칸 항공에서 제작되었다. 이건 원래 예정대로라면 달착륙선의 이산화 탄소 제거 필터는 달 표면에서 외부 활동을 할때 착륙선 하단에서 가져오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7] 직역하면 "누가 나한테 이게 정부가 진행하는 일이 아니라고 말해줘."라는 의미이고, 의역하자면 "정부란 놈들이 하는 짓거리가 그럼 그렇지" 정도가 될 것이다. [28] 다만 실제로 크랜츠가 이런 말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 [29] 나사의 덕트 테이프 사랑은 대단하다. 제미니 시절부터 우주비행 필수품으로 빠져본 적이 없으며, 아폴로 미션에서도 덕트 테이프 덕분에 덕을 본 게 한둘이 아니다. 하다못해 영화 마션에서도 주인공이 깨진 헬멧을 덕트 테이프로 임시 수리해 목숨을 건진다. 원작 소설에선 "물론 덕트 테이프는 거의 진공에 가까운 대기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덕트 테이프는 어디서든 사용이 가능하다. 덕트 테이프는 마법이며 숭배해야 마땅하다."라는 명대사도 나온다. [부정됨] "Despite the long-standing rumors to the contrary, there was no effort to standardize the canisters between the two spacecraft." https://www.nasa.gov/history/afj/ap13fj/30postflight.html [31] 이런이유로 Omega NASA로부터 스누피 어워드를 수상했고, Omega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스누피 에디션을 내놓고 있다. [32] 당초 의료진의 주장과는 달리 매팅리는 평생 홍역에 걸리지 않았다. 영화에서 괜찮냐고 물어보는 직원에게 "당연히 괜찮죠. 홍역에 안걸렸으니까."라고 말하며 의료담당자를 노려보는 장면이 의미심장하다. [33] 아폴로 12는 발사 당시 벼락에 맞아 기기 이상이 발생했으나 누구도 해결 방법을 몰랐는데, 존 애런은 개인적으로 이런 상황에 대한 대책을 연구해서 만들어놓고 있어서 해결할 수 있었고 본인도 명성을 얻었다. [34] (정상적인 경우에는) 이때까지도 기계선과 사령선이 붙어 있다 [35] 후쿠시마 오염수는 그럼 뭐냐고 반문할 수도 있는데, 방사능 물질 자체가 해류에 떠내려가고 해양생물에 농축되는 게 문제인거지 물이 방사선 차폐에 뛰어난 것 자체는 맞다. 애초에 원자로에서도 그래서 물을 쓴다. [36] 우주선이 대기로 진입할 때는 단열압축에 의해서 엄청난 고열이 생기는데, 높은 열로 인해 주변의 대기가 전하를 띤 플라즈마로 변해 통신이 두절된다. [37] 영화 아폴로 13에서는 3분정도 통신두절을 예상한다고 말하고, 통신이 재개된 시점은 착수시점이 아닌 낙하산이 펴진 시점인것으로 묘사된다. [38] 아폴로 사령선은 무게중심이 치우쳐져 있어 재진입 시 기체가 약간 기울어지며 양력을 발생시키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원래는 이 무게를 조절하기 위해 월석 트레이가 사령선의 하단에 장착 되었지만 월석이 없었으므로 무게중심에 영향을 주었다는 설이 있다. [39] STS-51-L 챌린저의 화재 원인은 단순한 고무링의 불량으로 인한 파손이었고 실제로 1년 전에 있었던 STS-51-C 미션에서 이와 유사한 이유로 디스커버리가 폭발하기 직전까지 갔음이 밝혀진 바 있었다. 하지만 발사 12분전 까지도 이어지던 담당 엔지니어들의 간곡한 요청에도 NASA와 제작사는 이를 무시하고 다음 겨울에도 우주왕복선 발사를 강행했다. [40] 사령선과 달착륙선은 동일한 컴퓨터와 자세제어 장치가 달려 있지만, 위치가 달라서 이걸 변환해야 하는 과정이 있다, 영화에서 짐러벨이 수작업으로 계산해서 관제소에서 계산자로 계산해서 준 값이 그 변환값이다. [부정됨] [42] 왜 변화가 없었는지에 대한 글 [43] 직역하면 "인간이 도달한 지구로부터 가장 먼 거리" [44] 다른 정상적인 아폴로 유인우주선 미션의 경우, 달 뒷면의 근일점 궤도는 통상 약 110km 상공이었다. [45] 하지만 휴스턴 NASA 우주비행관제센터와 유인우주선 사이의 최장거리 이격 기록은 아폴로 10호의 408,950km이다. 이는 당시 아폴로 10호가 달 뒷면을 돌고 있을 시점에, 때마침 지구 자전에 따른 미대륙의 위치가 달과 가장 멀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NASA 내부에서는 아폴로 10호가 가진 이 기록을 더 의미 있게 간주한다. [46] 러블이야 은퇴할 예정이었지만, 특히 예산문제로 17호가 마지막 비행이 되면서 19호 사령관이 될 예정이었던 헤이즈의 경우를 보면... 이후 헤이즈는 우주왕복선 시험기 엔터프라이즈의 테스트 파일럿으로 활동하고 우주왕복선 미션에 투입될 예정이었지만 우주왕복선을 이용하여 고도회복을 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스카이랩을 포기한 NASA의 결정에 반발하여 그루먼으로 이직했다. 하지만 헤이즈보다도 안타까운 경우가 있는데, 바로 매팅리 대신 투입되었던 조종사 잭 스와이거트. 이후 아폴로 15호 귀환 이후 세간을 들썩인 우표 스캔들에 연루되어 NASA를 그만둔 뒤 정계에 입문, 미국 하원의원에 당선되었지만 채 의정활동은 해 보지도 못한채 51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으로 사망했다. [47] 그것도 국방부에서 일급 기밀 미션을 믿고 맡길 정도로 신뢰받았다. [48] 매팅리의 세번째 비행은 앞서 언급된 STS-51-C 디스커버리 미션으로, 발사 과정이 챌린저 폭발사고의 전주곡이었다. [49] 하지만 숫자운이 완벽하게 사라지진 않았는지 미션 컨트롤의 메인 컴퓨터가 고장나 1시간 동안 셔틀의 데이터가 누락되었던가 하면 임무 중 하나였던 고장난 솔라 맥스 위성을 잡으려다 위성이 회전하는 바람에 당시 발사되었던 챌린저는 RCS 연료를 바닥낼뻔 하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