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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3 22:44:36

짐 러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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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34794><colcolor=#fff> 제임스 아서 "짐" 러블 주니어
James Arthur "Jim" Lovell, Jr.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Jim_Lovell_at_LC-39.png
출생 1928년 3월 25일 ([age(1928-03-25)]세)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1. 개요2. 생애3. 기타

1. 개요

짐 러블은 아폴로 계획에 참가했던 미 해군 출신의 테스트 파일럿이자 NASA 우주 비행사이다. 아폴로 8호의 사령선 조종사로서 프랭크 보먼, 윌리엄 앤더스와 함께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 궤도 비행을 갔다온 인물이기도 하며, 많은 이들에게는 아폴로 13호의 사령관으로서 더욱 유명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달로 두 번이나 날아간 인물 세 명 중 첫 번째인데, 하필 그중 유일하게 달을 밟아보지 못한 인물이다.[1]

2. 생애

클리블랜드에서 태어나 위스콘신 밀워키에서 자란 짐 러블은 어릴적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으며 인디애나주에서 잠시 어린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로켓이나 비행기 등에 흥미를 보였다고. 러블은 위스콘신 대학교 매디슨 캠퍼스에 입학하였지만 학교를 다니다 말고 재수[2]를 선택하여 미국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가 1952년 임관하였다.

이후 F2H 밴시 파일럿으로 활동하다 해군 테스트 파일럿을 지원하여 수석으로 수료하였다. 동기 중에는 아폴로 7호의 사령관이었던 월리 시라, 아폴로 12호에 올라가는 피트 콘래드가 있었다. 그 이후 머큐리 계획에 지원하였다가 시라만이 합격되었는데 러블은 빌리루빈[3] 수치가 너무 높아서 탈락했고 콘래드는 몸을 째고 하는 절개 검사에 기겁하여 GG쳤다고 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40px-Lovell_and_Aldrin_on_Deck_-_GPN-2000-001356.jpg
제미니 12호에서 돌아온 뒤 에식스급 항공모함 10번함 USS 와스프에서 찍은 사진. 옆에 있는 인물은 버즈 올드린이다.

이후 1961년 USC에서 공부한 후 제미니 계획이 시작되며 우주 비행사 프로그램에 재도전한 러블은 존 영, 피트 콘래드와 함께 당당히 합격했다. 존 영의 회고에 따르면 이 시기에 미 해군 F-4 프로그램에서 활동했던 경력이 제미니 우주선 개발사이기도 한 맥도널 더글러스와의 연계에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고.[4] 프랭크 보먼, 버즈 올드린, 토머스 스태퍼드 등과 제미니 계획의 여러 중요 미션에서 활동하였다.

제미니 7호에서는 향후 아폴로 우주선에서 입을 예정인 신형 우주복을 테스트하기도 했다. 우주복 항목에도 소개된 당시 사진을 보면 다른 제미니 미션과 아폴로 미션들의 우주복에 비해 굉장히 스키니한 인상을 주는데, 미국보다는 소련- 러시아의 소콜 우주복에 가깝다는 인상을 풍긴다. 이 우주복은 결국 채용이 취소되었다.

파일:xuNhoJq.jpg

파일:jJEzxYvr.jpg

7호와 12호의 우주복 비교 - 둘 다 앞쪽이 러블이다. 각각 프랭크 보먼 버즈 올드린이 함께했던 미션들.

아폴로 계획이 아폴로 1호의 화재 참사로 존폐의 위기에 놓였다가 겨우 살아나고 나서 달에 처음 갔다오는 아폴로 8호의 사령선 조종사[5]로 선발[6]된 그는 1968년 크리스마스에 프랭크 보먼, 윌리엄 앤더스와 함께 달로 떠났다.[7] 미션의 개요는 단순히 달 궤도에 진입하여 돌다 오는 것이었지만, 당시 달 착륙선의 개발이 지체되고 소련이 곧 달에 사람을 보낸다는 첩보가 입수되면서 8호는 달 착륙선도 없이, 그리고 새턴 V 로켓의 첫 유인발사로 달 궤도에 갔다오는 위험천만한 짓을 해야 했다.

아폴로 8호에서는 은근히 사고뭉치 기믹이었는데, 발사 초기에 실수로 구명조끼에 바람을 넣어서 핀잔을 듣기도 했다. 이 장면은 지구에서 달까지의 <1968> 에피소드에 나와있는데, 공군이었던 보먼과 앤더스는 "고놈의 해군새끼 익사하진 않겠네ㅋㅋ"거린다. 이후 달에 도착한 뒤 그 유명한 Earthrise 장면을 목격하여 폭풍감동에 젖기도 했다. 특히 별자리를 본답시고 혼자 컴퓨터를 만지작거렸는데 컴퓨터가 이를 오류로 인식하더니 제멋대로 우주선의 고도를 조정해버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8]



이후 아폴로 11호의 백업 팀으로 활동하였다.[9] 11호가 무사히 미션을 시작하여 달에 착륙하고 12호도 갔다온 뒤 14호의 사령관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당초 13호 사령관으로 예정된 머큐리 계획 시절부터의 베테랑 앨런 셰퍼드가 연습부족을 이유로 14호와 교대하며 13호 미션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폴로 13호는... "휴스턴? 문제가 생겼다..." 러블과 프레드 헤이즈, 잭 스와이거트는 정말로 죽을뻔 했으며, 인류 역사상 지구로부터 가장 멀리까지 나가본 인물로 기록되었지만 끝내 달은 못 밟았다. 결국 달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며 무난한 은퇴 여행 성격으로 마무리될 예정이었던 마지막 미션은 하마터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뻔한 구사일생 미션이 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아폴로 13호 항목과 아폴로 13 영화 참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24px-Jim_Lovell_newspaper.jpg
USS 이오지마에서 호놀룰루 지역 신문에 뜬 생환 기사를 읽는 러블. 당시 러블의 아내 마릴린은 13호가 발사 당시에는 이전의 미션들에 비해 딱히 큰 관심을 못받았건만 다 죽게 생기니 언론이 갑자기 호들갑을 떤다며 극도로 거부감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언론의 태도에 대해서는 <아폴로 13> 영화와 지구에서 달까지의 <We Interrupt This Program> 에피소드에서도 지적하고 있다.

이후 NASA와 해군에서 은퇴하였다. NASA에서 최초로 4회 우주비행을 다녀온 기록을 세운 뒤 해군 최종 계급은 대령이었고, 이후 아폴로 8호의 공적과 아폴로 13호에서 살아돌아온 공로[10]가 인정받아 우주인 명예 훈장을 받았고, 대통령이 수여하는 자유 훈장도 받았다. 달 뒷면의 한 크레이터가 '러블'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기도 했고, 1993년에는 NASA 우주 비행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어린 시절을 보낸 밀워키 시내에는 그의 이름을 딴 거리도 있다.

3. 기타

영화 아폴로 13에서 실제로 13호 승무원들을 구조했던 USS 이오지마 함의 함장 릴랜드 E. 커크모(Leland E. Kirkemo) 해군 대령 역으로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했다. 자신의 캐릭터를 연기한 톰 행크스와 격한 악수를 나눈다. 이후 2002년 톰 행크스가 AFI 평생공로상을 수상할때 직접 참석해서 축하인사를 해주기도 했다. 짐 러블이 무대에 등장해서 거수 경례를 하자 벌떡 일어나서 마찬가지로 거수 경례를 하는 톰 행크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마릴린도 함께 영화에 출연했는데 첫 발사 때 이를 구경하는 군중 중 1명으로 등장했다. 짐 러블은 이후 노년이 되어서도 버즈 올드린이나 닐 암스트롱 같은 베테랑들과 함께 NASA를 홍보하러 바삐 돌아다니기도 했다.

LG V30의 프로모션 영상에 출연하기도 했다. 가상현실을 이용하여 VR헤드셋을 착용하고 달에 무사히 착륙해 달 표면에 발을 내딛고 지구를 바라보는 체험을 하는 모습이 아련하다 https://youtu.be/ITTvmQ7op0o

아내 마릴린과는 자식도 많이 낳았고 손주도 많이 보며 짐과 백년해로했다.[11] 사실 이 점이야말로 아폴로 시절 우주 비행사들 중 가장 돋보이는 요소이자 러블 부부의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아폴로 계획에 참여한 우주 비행사들 중 짐 러블과 프랭크 보먼, 윌리엄 앤더스를 뺀 거의 모두가 결혼생활이 파국으로 끝났는데[12] 마릴린은 온갖 고생을 다하며 짐의 뒷바라지를 했고 짐이 베테랑이었기 때문에 우주 비행사들의 아내들 중에서도 가장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던 아내임에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들은 헤어지지 않았다. 1965년 넷째 아이를 임신했는데 임신한지 넉 달 동안이나 짐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가정사 때문에 남편의 첫 미션에 지장을 줄까봐 그것을 쉬이 알리지도 못했다.( 아폴로 13 영화에서 아빠한테 아폴로 1호 화재로 죽은 사람들도 알았냐고, 아빠가 그 우주선 타고 달에 가도 안전하냐고 되묻는, 우주선 사고 소식을 엄마한테 처음 듣자 1호 화재사고 때처럼 문 고장났냐고 묻는 속깊은 아들 제프리가 그때 임신했던 아이다) 아이들이 모두 편도선염에 걸려서 모두가 절제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애비 되는 사람은 그때도 우주에 있었고 몇년이 지나도록 그 사실을 몰랐고 아내도 이를 쉬이 알리지도 못했다.

알코올 중독, 이혼 등 갖가지 사건사고가 많았던 아내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남편의 곁을 묵묵히 지켜낸 것을 보면 마릴린도 어지간한 멘탈갑인듯. 이런 이유로 지구에서 달까지 드라마에서는 에피소드마다 주연이 달라지는 구성 속에서도 분량이 꽤 된다. 제미니 계획에서 뽑힌 뉴 나인 팀의 인원들이 서로 간에 소개될 때 시청자들은 러블의 입장에서 팀원들을 처음 보게 되며, 이런저런 우주 비행사들의 사건사고에서도 러블은 자주 등장한다. 드라마에서의 배우는 팀 데일리.

아폴로 8호에 탑승한 우주인들 중 마지막 생존자이다. 그리고 유독 이혼율이 높은 우주비행사들 중에 유일하게 모든 멤버가 이혼하지않고 결혼생활을 유지한 우주인으로도 드물게 가정적으로도 대단한 멤버들이다.[13]


[1] 러블은 아폴로 8호로 달 궤도 비행을 하고 13호에서 착륙하려 했으나 실패. 나머지 둘은 아폴로 10호로 달 궤도 비행을 하고 16호 사령관을 맡았던 존 영, 17호 사령관으로서 달에서 인류의 마지막 발자국을 남긴 유진 서넌. [2] 나이로 치면 삼수다. [3] 적혈구가 수명을 다해 파괴되어 구성물질인 헤모글로빈 중 철성분인 헴(Heme)은 간에서 재흡수되고 나머지는 빌리루빈으로 전환되어 쓸개즙으로 저장한 뒤 위에서 소화된 음식물이 십이지장을 지날때 같이 섞이게되고 소장을 지나 대장에서 나오는 최종 부산물인 똥의 색깔이 갈색을 띄는이유가 바로 빌리루빈 때문이다 말기간암 환자들 대부분이 빌리루빈을 처리하지못해 몸에서 변냄새가 난다. [4] 제미니 시절 우주비행사에 뽑힌 이들은 대부분 F-4 테스트 파일럿으로 뛰었던 이들이다. [5] 아폴로 미션이 대중에게 알려진 바로는 사령선 조종사는 좀 애매한 위치의 보직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사실 짬밥 순으로 따질 때 아폴로 1개 미션의 세 우주 비행사 중에서는 사령관 다음가는 짬밥과 위상을 가진 인물이 사령선 조종사였고, 이들은 제미니 시절부터의 3회 주기로 메인 팀-백업을 오가는 로테이션을 따라 사령관이 되었다. 왜냐하면, 달 뒷편에서 홀로 아폴로 모선을 조종한다는게 만만한 임무가 아니기 때문. 러블 다음인 9호의 사령선 조종사 데이비드 스콧 역시 15호의 사령관이 되었고, 10호의 존 영 또한 16호의 사령관이 되었으며, 11호의 마이클 콜린스도 17호에서 직접 달을 밟을 수 있었으나 본인이 고사했다. [6] 원래 백업이었지만 마이클 콜린스가 디스크 수술을 받으면서 빈 자리를 메꿨다. [7] 사실 우주 미션 수행 횟수로 따지면 1회의 보먼보다 러블이 많았지만, 미션의 정규 팀이 원래 보먼의 팀이었던지라 그냥 러블 대신 보먼이 사령관이 되었다. [8]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 에러를 복구하던 경험은 러블이 아폴로 13호에서 위기를 극복하는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9] 닐 암스트롱의 자서전에 따르면, 미션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프레드 헤이즈를 대신하여 마이클 콜린스를 넣으면서 버즈 올드린도 러블로 바꿔버릴까 하는 제안을 했다고. 하지만 암스트롱은 동기이자 이미 3회의 우주비행을 수행한 베테랑한테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하기가 그랬던지 그냥 올드린이랑 같이 하겠다고 고사했다. [10] 그냥 미션 실패하고 겨우겨우 살아 돌아온 것이 뭔 공로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아폴로 13 영화에 나오듯이 그냥 삽질해서 겨우겨우 살아돌아온 것은 절대 아니며 NASA 전체가 발칵 뒤집혔던 그야말로 비상 사태였다. [11] 마릴린은 2023년 8월 27일, 93세의 나이로 자택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 [12] 당장 그 유명한 아폴로 11호의 승무원들 모두가 이혼한 경험이 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보먼과 러블은 2022년 현재 생존한 최고령 우주비행사이기도 하다. [13] 물론 이혼하지 않고 끝까지 결혼생활을 유지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주인들은 거의 대부분 가정적으로는 행복하지 않았다. 맨날 목숨을 건 작업과 훈련, 미션이 시작되면 몇달은 집에 못들어가는 경우도 허다하고 스트레스를 술로 푼다던지 엄청 많은 이유가 있어 실제로 이혼율이 엄청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