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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8 22:45:51

아폴로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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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호 (실패) 아폴로 2, 3호 (결번) 아폴로 4–6호
(무인시험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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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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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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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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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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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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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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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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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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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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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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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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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TP
취소된 아폴로 미션들 스카이랩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920px-Apollo_12_crew.jpg
아폴로 12호의 승무원들
왼쪽부터 피트 콘래드, 리처드 고든, 앨런 빈 순이다.
아폴로 12호
APOLLO 12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AP12goodship.png
아폴로 12호 미션 패치
이름 아폴로 12호
호출부호 사령선: CM-108, 양키 클리퍼
달 착륙선:LM-6, 인트레피드
발사일 1969년 11월 14일
16시 22분 0초 UTC
케네디 우주센터, 플로리다 LC 39A
달 착륙일 1969년 11월 19일
06시 54분 35초 UTC
폭풍의 바다
달 선외 활동 7시간 45분 18초
달착륙 시간 31시간 31분 11.6초
월석 질량 34.35 kg (75.729 lb)
귀환일 1969년 11월 24일
20시 58분 24초 UTC
달궤도 시간 88시간 58분 11.52초
미션 기간 10일, 4시간 36분 24초
우주선 사령선 - 양키클리퍼(Yankee Clipper)
달착륙선 - 인트리피드(Intrepid)[1]
사령관(CDR) 피트 콘래드[2]
사령선 조종사(CMP) 리처드 고든[3]
달착륙선 조종사(LMP) 앨런 빈[4]

1. 개요2. 과정3. 이모저모

[clearfix]

1. 개요

유인 아폴로 계획의 6번째이자 인류가 두 번째로 달 표면에 내린 프로젝트. 로 너무 유명한 아폴로 프로젝트들이 있어 상대적으로 묻혀버린 프로젝트.[5]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일 뿐 아폴로 12호는 11호 계획의 완성형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6]

3인의 우주비행사는 피트 콘래드(사령관), 리처드 고든(사령선 조종사), 앨런 빈(달착륙선 조종사)이다.

2. 과정


1969년 11월 14일에 발사되었지만, 발사가 시작되자마자 벼락을 맞았다. 아폴로 12호 발사에는 높으신 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임석하기로 되어 있어서, 먹구름이 낀 좋지 않은 날씨였지만 발사가 강행되었고, 로켓이 내뿜는 배기가스의 플라즈마가 지상의 발사대까지 도달하는 바람에 전류가 통했다.

아폴로 12호는 2차례의 벼락을 맞았는데, 첫번째 벼락에 3개의 연료전지가 고장나 전력이 끊기고 배터리로 전력이 전환되었다. 주 전력원이 끊긴것도 모자라 두번째 벼락을 맞고 사령선의 관성 측정 장치가 오작동하여 주 항법 시스템이 다운된다.[7]

벼락을 맞고 후술할 SCE의 전력이 끊겨 계기들이 오작동하면서 잘못된 수치만이 출력되어 승무원이나 관제실 요원들이나 어떤 이상이 발생한 것인지 도무지 파악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사령선의 시스템이 고장났음에도 불행 중 다행으로 새턴 V의 항법 시스템은 멀쩡하여 로켓은 정상적으로 비행하고 있었으나,[8] 임무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NASA에서는 여러 가지 위급상황에 대한 대처방법을 우주비행사들에게 훈련시키지만 복잡한 내부구조를 모두 이해하고 발생가능한 모든 상황을 다 외워둘 수는 없어서 지상관제소에서 각 분야 전문가들이 비행을 보조한다. 해당 사고는 매뉴얼화되지 않은 경우였는데, 예전 시스템 테스트 중에 사고로 사령선의 전기가 끊기자 계기가 오작동하는 상황을 맞이하여 대처방법을 찾아내 두었던 지상관제소(Mission Control)의 전기전자 담당요원('이컴(EECOM)'이라고 불렸다.) 존 애런이 "SCE를 Aux로!"라고 지시했고, 달착륙선 조종사인 앨런 빈이 이에 따라 시스템을 복구했다. SCE란 신호조정장비(Signal Conditioning Equipment)였는데, 비상시에 대비해 별도로 작동하는 보조전원장치가 달려 있었다. 즉 이 장치에 보조전원을 넣어서 복구한 것이다.[9] 다만, SCE는 단지 센서의 아날로그 신호를 처리하는 장치였기 때문에 계기와 텔레메트리 수치가 제대로 표시되도록 조치 한 것이고 근본적인 고장은 시스템을 재부팅하여 하나씩 수리하고 점검해야 했다.

훈련 상황에서는 보지도 못한 사태에 처음에는 다른 지상관제소 요원들도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고, 당연히 관제국장 게리 그리핀의 반응은 "뭐라고?", 그걸 전하라는 지시를 받은 통신담당요원(캡콤, CAPCOM) 제럴드 카(Gerald Carr)도 "뭐라고요?"라는 반응부터 나왔다. 어떻게 카에게 전해들은 콘래드도 "SCE를 Aux로!" / "FCE를 Aux로?" / "아니, SCE를 Aux로!" / "그게 뭔데?" / "S, C, E! SCE를 Aux로!" 다행히 앨런 빈이 SCE 스위치가 자기 앞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스위치를 작동시켰고, 계기가 정상적으로 돌아오자 앨런 빈은 "고맙소, 지상관제소. 난 어떻게 해야될지 몰랐어."라고 했고 콘래드는 한참 동안 웃어댔다. 존 애런은 이 사건으로 두고두고 NASA 내부에서 화제가 되며, steely-eyed missile man[10]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11]

당시 NASA에서는 이 낙뢰로 인한 파손여부를 검토했는데, 다른건 다 체크되지만 재돌입 시 필요한 낙하산 검사는 불가능했다. 이걸 하려면 EVA를 해야 했는데 아폴로의 사령선 우주유영은 이 미션에서 검토하지 않은 내용이었기 때문에, 결국에는 "어차피 이거 고장나면 죽는건데 지금 알고 죽으나 재돌입하다 알게 되나 결과는 똑같다."는 명쾌한(...?) 결론을 내리고 이 문제를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다행히도 낙하산은 정상적으로 펴졌다.

어쨌거나 아폴로 12호는 덕분에 무사히 달을 향해 떠날 수 있었다. 아폴로 12호는 이전의 무인 탐사선[12]이 방문한 폭풍의 바다가 있는 지역에 착륙했다. 국제천문연맹은 이것을 기념하여 이 부근을 기존의 바다라고 명명했다. 이것을 기념하여 달 표면 지도에서는 아폴로 12호의 착륙 지점은 기존의 바다 기지 (Statio Cognitium)라고 기록되고 있다.[13] 아폴로 11호 이래 2번째가 되는 12호의 월면 착륙은 목표에의 고정밀도의 착륙을 목표로 하는 시험이 되었다. 달 표면에의 강하는 콘라드가 수동으로 몇 차례 수정한 것 이외에는 자동으로 행해졌다. 아폴로 11호에서는 지정된 목표 지점으로부터 크게 어긋나 기가 막힐 만큼 부정확한 착륙이 되어 버렸지만, 아폴로 12호는 11월 19일에 목표 지점에 핀포인트로 착륙하는 것에 성공했다.

착륙한 장소는 1967년 4월에 서베이어 3호가 착륙한 지점으로부터 걸어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200m 이내)였다. 콘라드는 실제로는 달 착륙선 인트레피드를 예정하고 있던 피트의 주차장 580피트 정도 앞에 착륙시켰다. 이것은 착륙의 최종 단계에서 예정지점이 예상보다 요철이 많은 듯 보였기 때문이다. 당초의 착륙예정지점은 서베이어 3호로부터 약 1,180피트 떨어진 지점이었다. 이만큼 거리를 둔 이유는, 인트레피드의 강하 중의 엔진 분사에 의해서 달의 모래를 흩날려 서베이어 3호에 불어닥치는 것을 막기 위해였다. 실제의 착륙 지점은 서베이어 3호에서 600피트의 지점이 되었기 때문에, 서베이어 3호에는 희미하게 티끌이 쌓여 조금 햇볕에 그을린 것 같은 색이 되었다. 콘라드와 빈은 분석용으로 지구에 가지고 돌아가기 위해서 서베이어 3호로부터 몇몇 부품을 회수한 뒤, 2번의 4시간 미만 선외 활동을 행했다.[14] 그들은 달의 암석을 채집해, 달의 지진이나 태양풍의 강도, 자기장 등을 계측하는 관측 장치를 설치해, 측정 결과를 지구에 가지고 돌아갔다.[15]

한편, 달 주회 궤도상의 사령선 양키 클리퍼에 남은 고든은 달 표면의 다파장 사진 촬영을 행했다. 인트레피드의 하강단에 장착된 명판은 다른 아폴로 미션의 명판과는 달리 지구의 그림이 그려지지 않고, 표면의 질감도 차이가 났다.[16] 콘라드와 빈이 달 궤도상에서 고든과 다시 합류한 후, 인트레피드의 상승단은 예정대로 달 표면에 추락했다. 이 상승단은 1969년 11월 20일에 달 표면의 남위 3.94도, 서경 21.20도의 지점에 충돌했다. 비행사들이 달 표면에 설치한 지진계에는 이 충돌에 의한 진동이 1시간 이상에 걸쳐서 기록되었다. 비행사들은 달 궤도상에 1일을 체류해 사진 촬영을 실시해, 달 체류 시간은 총 31시간 반이 되었다. 착수 후, 아폴로 12호의 사령선과 승무원은 항공모함 USS 호넷에 의해서 무사히 회수되었다. 이 항공모함은 현재는 캘리포니아 주 아라메다로 박물관에서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12호의 사령선은 버지니아 주 햄프톤의 버지니아 항공 우주 센터에 전시되고 있다. 여담으로 이 당시 서베이어 3호의 내부를 조사한 결과, 서베이어 3호에 묻어 달로 갔던 박테리아가 2년이 지난 아폴로 12호가 도착할 때까지 살아남았으며, 정상적으로 성장도 했다고 한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 박테리아는 서베이어 3호의 카메라를 만들던 나사 직원의 재채기에서 묻은 것인데, 가혹한 달의 환경속에서도 살아남은 이 박테리아의 존재를 통해 일부 과학자들은 지구의 생명의 기원이 우주로부터 운석을 타고 왔을 수도 있다는 가설을 세우며 흥분하기도 하였다.[17]

55초에 나온다.
Whoopie! Man, that may have been a small one for Neil, but that’s a long one for me.(NASA 공식 트위터)
읏샤! 닐한테는 작은 한 걸음이었다는데, 나한테는 좀 어렵구만.
세번째로 달에 발을 딛은 인류, 피트 콘래드 Pete Conrad
아폴로 12호 팀을 한번에 설명해주는 사령관 피트의 착륙시 첫 대사. 생방송으로 TV에 중계되었다. 잘 알려져 있는, 닐 암스트롱의 " Small step for a man" 를 인용한 중의적인 드립.

착륙후 TV카메라를 실수로 고장내기도 했다. 무려 최초로 달에서 생방송할 컬러 TV카메라였다. 앨런 빈이 설치를 위해 카메라를 들고 이동과정에서 실수로 렌즈가 태양을 향하게 했고, 이로 인해 안이 바싹 타버렸다고 한다. 결국 월면 활동의 TV중계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아폴로 12호의 S-IVB 는 원래 달 착륙선 분리 후 나머지의 추진제를 방출해 태양 주회 궤도에 투입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제3단 점화시에 모터가 예정보다 장시간 연소했기 때문에, S-IVB 의 탱크에 남아 있는 연료를 방출해도 지구 궤도를 탈출할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는 얻지 못하고, 결국 제 3단은 1969년 11월 18일에 달을 통과한 다음에 지구를 주회하는 준안정 궤도에 머물게 되었다. 1971년에 태양 주회 궤도에 들어갔지만, 약 31년 후인 2002년에 다시 지구 주회 궤도로 돌아왔다. 이 제 3단은 2002년 9월 3일에 아마추어 천문학자인 빌 영에 의해서 발견되어 인공 천체인 것이 판명되기 전에 잠정적으로 J002E3 라고 명명되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80px-Bean_Descends_Intrepid_-_GPN-2000-001317.jpg
달 착륙선에서 내려오는 앨런 빈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80px-Apollo12Visor.jpg
달 선외 활동 중인 앨런 빈. 찰스 콘라드가 촬영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80px-Surveyor_3-Apollo_12.jpg
미국의 달 착륙선 서베이어 3호, 앨런 빈, 그리고 달 착륙선 인트레피드

3. 이모저모

다른 아폴로 미션들의 승무원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서먹함이 흘렀던 것과 달리,[18] 아폴로 12호의 세 우주비행사는 모두 해군 조종사 출신으로 우정이 돈독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19][20] 콘래드는 비행학교 교관으로 활동하던 시절 앨런 빈을 가르치기도 했다. 앨런 빈은 원래 12호 승무원이 아니었지만, 9호의 백업 팀으로 활동할 적에 클리프턴 "C.C." 윌리엄스가 사망하여 새로 합류하였다.[21]

아폴로 12호의 새턴 V 3단 로켓은 사용 후 태양으로 날아가 폐기될 예정이었지만 연소시간 부족으로 지구와 달 사이를 왔다갔다 하다 사라졌는데 그 후 2002년에 다시 돌아와 J002E3이라는 명칭이 붙은 채로[22] 다시 지구 주변을 돌았고 지구를 떠나 태양으로 간 후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다 수 천년 후 지구나 달에 추락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아폴로 12호의 사령선 이름인 양키 클리퍼(Yankee Clipper)는 1940년대 메이저 리그 최고의 선수인 조 디마지오의 별명에서 따온 것이다.
파일:appolo12-corvette.jpg
[1] 범선 이름으로 유명하며, 미 해군에서는 항공모함 이름으로도 쓰인다. 반대로 이들과 경쟁을 벌이던 백업이자 이후 15호의 정규팀이 되는 스콧 팀은 공군을 상징하는 팰컨이라는 이름을 썼다. [2] CDR백업 데이비드 스콧. 이 팀은 그대로 아폴로 15호 승무원이 된다. [3] CMP백업 알프레드 워든 [4] LMP백업 제임스 어윈 [5] 아닌 게 아니라 11호는 인류가 지구 이외의 천체에 최초로 발을 디딘 사건, 13호는 인간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무사히 생환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화려했던 12호는 상대적으로 덜 유명해졌다. 게다가 나머지 아폴로 계획들도 최소한 유명한 우주비행사가 참가하거나 여러 가지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반면 12호는 참가한 우주비행사들의 똘끼를 제외하면 별로 특별한 것도 없었다. [6] 아폴로 11호는 달에 착륙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예정한 지점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내려야 했고 활동 시간이나 행동면에서 여러 아쉬움을 남겼다. 아폴로 12호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여 달 착륙이 우연이 아니며 계획에 따라서 정확히 수행할 수 있는 일임을 증명하였다. [7] 정확히는, 아폴로의 사령선과 달 착륙선은 기계식 관성 측정 장치, 스트랩다운 관성 측정 장치 두 종류의 관성 측정 장치를 탑재한다. 이 중에서 사령선의 항법 컴퓨터가 사용하던 기계식 관성 측정 장치가 전력 문제로 정지해 주 항법 시스템이 다운 된 것이다. [8] 발사 중인 새턴 V는 오로지 자체적인 항법 시스템에 의해서만 제어되었고 사령선의 항법 시스템은 비행 궤적을 모니터링하는 역할만 수행하였기 때문에 로켓은 정상적으로 비행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새턴 V의 항법 시스템이 고장났다면 로켓의 제어가 불가능해져 사령선을 사출하고 로켓을 자폭시켜야 했을 것이다. [9] 히스토리 채널 - 달까지 155마일, 우리에게 실패는 없다 [10] 이 말은 앤디 위어의 소설 마션에도 패러디되어 나온다. 국내판에선 "문제 해결 능력이 정말 뛰어난 사람"으로 번역됐다. 영화에서도 그대로 등장한다. [11] 존 애런하면 SCE to Aux가 가장 유명하지만, 아폴로 13호에서는 그보다 훨씬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바로 죽어버린 사령선의 각종 전자 장치를 한정된 전류 범위 안에서 살려내는 절차를 개발한 것. 아폴로 13호 당시에는 담당이 아니었으나 진 크랜츠의 요청으로 불려와 이 절차를 성공리에 만들었다. [12] 루나 5호, 서베이어 3호, 레인저 7호 [13] 콘라드와 빈은 착륙 지점에 정식 이름은 붙이지 않았지만, 콘라드는 착륙 목적지를 피트의 주차장(Pete's Parking Lot)」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14] 참고로, 서베이어 3호는 유일하게 지구 밖 행성에서 인류가 다시 접촉한 무인 탐사선이다. [15] 빈은 촬영이 끝난 필름을 잘못해 몇 개 달 표면에 잃어버렸다. [16] 12호 이외의 미션의 명판은 광택 완성해 된 스테인레스판에 흑으로 문자가 쓰여져 있었지만, 12호의 명판만은 불투명 마무리의 배경으로 문자 부분이 광택 마무리가 되어 있었다. [17] 출처. 앤드류 스미스의 문더스트에도 실린 유명한 일화. [18] 특히 아폴로 11호 승무원들이 서로 서먹서먹하게 지냈다는건 무척이나 유명한 사실이다. 아폴로 11호 팀은 NASA 관계자들 사이에서 "상냥한 타인들" 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어느 정도냐면 새턴 V 발사대 지휘관 귄터 벤트는 이들이 밥도 따로따로 먹으러 갔다고 증언한 바 있다. 특히 같이 달착륙을 해야 하는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그냥 데면데면한 사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19] 이들의 우정은 미드 지구에서 달까지에 잘 묘사되어 있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아폴로 12호 에피소드 자체가 개그의 연속이다. [20] 묘하게도 이들의 백업이었던, 이후 15호의 승무원이 되는 데이비드 스콧, 앨프레드 워든, 제임스 어윈은 모두 공군 출신이다. 당연히 정규팀과 백업팀 간 경쟁심도 상당했다고. [21] C. C. 윌리엄스는 미 해병대 출신의 우주 비행사로, 앨런 빈과 함께 NASA에 선발되었지만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콘래드는 앨런 빈을 찾아가서는 우리와 함께 달에 갈래? 하였고, 동기들 중 성적이 떨어지는 편이라 달에 갈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던 앨런 빈은 제안을 수락했다. 앨런 빈은 이후 아폴로 12호 엠블럼에다 CC의 몫까지 4개의 별을 새겼다. [22] 명칭 자체는 2002년에 붙었다. [23] 리스라고 하지만 그 가격은 연간 1$. 서로 공짜로 주고받기엔 입장이 난처하니 그냥 리스라는 형식만 빌린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일반인의 반발도 있었던데다 달 착륙이 성공하면서 명분도 사라져 1971년에 끝난다. [24] 색상은 금색 기반에 검은색을 더하고, 각자의 차량에는 CDR/CMP/LMP라는 직책을 적어 놓았다. 이 아이디어는 앨런 빈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