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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6 01:53:47

아군 오사

아군 오폭에서 넘어옴
1. 개요2. 원인3. 대책4. 분류5. 사례
5.1. 제2차 세계 대전 이전5.2. 제2차 세계 대전
5.2.1. 독일군5.2.2. 미군5.2.3. 소련군5.2.4. 영국군5.2.5. 이탈리아군5.2.6. 일본군
5.3. 한국 전쟁5.4. 그 이후
6. 유사 상황

1. 개요

서방 연합군의 모든 무기가 우리를 적기로 간주하고 있었죠. 불빛이 비치고 무장 시스템에게 조준당했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가 타고 있는 헬기에 아군이라는 걸 알려주는 센서같은 IFF 장비가 붙어있긴 하지만... 그게 제대로 작동한다는 보장이 있어야 말이죠.
- 제임스 '스쿠비' 뉴턴 영국 해군 항공대 중령 - NGC '에어파이터' <헬리콥터 VS 탱크> 편
사상자 종합조사에 의하면 (치명상과 비치명상 둘 다) 제 2차 세계대전의 사상자 21%는 오사 사고였고, 베트남전의 사상자는 39%, 걸프전에는 52%까지 올라갔다. 현재 진행중인 이라크전 아프간전에선 각자 비율이 41%13%라고 한다.
- 존 크라카우어, 서적 Where Men Win Glory: The Odyssey of Pat Tillman에서[1]
我軍誤射, friendly fire

착각 또는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적군이 아닌 아군 사격하는 행위. 쉽게 말해 팀킬. 아군 사격이라고도 한다. 아군을 상징하는 색인 파란색끼리 공격한다고 해서 'blue on blue'라고도 한다.

전장에서 아군을 인식하지 못하고 공격하는 행위는 전략적으로 매우 큰 실책이지만, 실제 전투에서는 꽤 많이 일어난다. 한밤 중에 피아 식별이 안되어 아군 끼리 서로 교전 할 수 있고, 한 밤중에 아군이 지나가는데, 무슨 소리난다고 겁나서 바로 쏘는 경우와 공군이 아군을 향해 오인 폭격도 가능하다.

2. 원인

제일 근본적인 원인은 현실은 게임과 달리 피아식별이 자동으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근접 무기라면 눈으로 상대를 바로 볼 수 있지만 , 등 사격 무기는 적이 저 너머에 있으니 무작정 쐈다가는 아군이 맞기 십상이다.

일선 병사들 입장에서는 적과 아군의 배치를 전반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난점도 있다. 특히나 과거에는 교통통신 기술의 한계로 장군 급 되는 사람들조차도 대규모 병력의 통제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당장 전장에 나와있는 병사로서는 같은 부대 단위를 넘어서면 마주치는 상대가 아군인지 적인지를 알기가 매우 어렵다.[2] 여기에 더해 인간의 본성과도 관련된 문제인데 치열한 혈전 와중에서는 '아군을 쏘지 않게 조심해야지' 보다는 '난 살고 싶다!' 가 엄청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병사들은 불확실한 표적이라도 일단 모든 화력을 동원해 처리하고 나서 상황을 본다.

레이더와 각종 전자장비가 발전한 현대에 와서도 아군 오사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물론 이들 장비가 없는 것보다야는 훨씬 낫지만, 스크린/디스플레이 상에 찍혀있는 점만 보고 이것이 아군인지 적군인지 쉽게 알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보통은 "그 위치에는 아군이 없는 것이 확실" 이라든지 전자적인 피아식별장치 등으로 확인하지만 급박한 전장에서 아무리 조심을 해도 꼭 아군 오사가 발생하기 마련이다.[3] 조기경보기의 통제와 정보를 정확히 받아서 지시대로 정확하게 날린 미사일이, IFF가 정상적으로 달리고 제대로 동작하고 있는 아군 헬리콥터에다 박아버리는 등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3. 대책

은폐 측면에서 불이익이 있음에도 역사적으로 군기, 제복 등으로 아군을 표시하는 것은 아군 오사를 피하기 위함이 크다. 적이 자길 쏘는 것은 경계를 강화하여 방비할 수 있지만 아군이 오인해서 쏘는 것은 어떻게 대처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미군은 제공권을 장악한다는 특성상 병사들의 헬멧 위쪽, 기갑차량의 상면에 적외선을 반사하는 반사판을 달기도 한다. 지상의 적에게는 안 보이지만 상공의 미 공군기가 열영상으로 내려다볼 때 머리 위에 반짝거리는 것이 있으면 아군이라는 의미인데, 정신없이 행군하다 보면 흙먼지가 뽀얗게 앉는 경우도 흔하며, 전투 중에는 발생하는 연기나 흙먼지 등으로 인해 반사가 잘 안 되기도 한다.

전투기에 크게 국적 마크를 그려넣고 독특한 무늬를 그려넣기도 했으며 심지어 위장색을 포기하고 아니면 최소한 기체 밑면이라도 빨갛거나 노란 무늬를 그려넣기도 했다.

기갑차량에는 포구 방향으로 향한 지향성 발신기와 전방향에서 반응하는 수신기가 장비되어, 전장의 안개 속에서 흐릿한 표적을 조준하면 전방으로 암호화된 질문 코드가 날아가고 받는 측에서 얼른 '아군이다! 쏘지 마라!' 라고 답변하게 배려했지만, 정비 불량이라거나 암호 코드에서 에러가 났다거나 전파교란이 심하다거나 전투중에 파손되었다거나 지형이 나쁘다거나 등등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은 다양하다.

포병사격은 특성상 명중오차가 크며, 때문에 서방측 기준 40mm 대공포급은 전시에 125m 평시에 500m 안에, 105mm 야포는 전시 200m에 평시 650m 안에 아군이 없을 때만 사격한다.

4. 분류

5. 사례

아군시체들을 잘보니 피격부분이 아군이 있던 방향에 쏠려있다거나, 지상군끼리 안개 속에서 실컷 치고받고 싸우다가 안개가 걷히고 나서 보니 같은 편끼리 싸우고 있더라 라는 이야기는 창칼 맞대고 싸우는 시절부터 있던일이고 교전 거리가 늘어난 이후의 전투에서는 더 가능성이 높아진다. 태평양 전쟁의 키스카섬 상륙작전 당시에 실제 발생하기도 했을 정도니 말 다한 셈. 심지어 당시 키스카섬에 있던 일본군은 이전에 다 철수한지라 한 명도 없었다고. 심지어 전투기끼리도 정신 없이 공중전을 벌이다가 쏘고 보니 아군인 경우도 제법 많다.

전투기, 폭격기들이 지상공격 중 아군 오사를 하는 경우도 물론 적지 않다. 이런 것은 눈으로 확인해도 항공기들이 워낙 빠르다보니 제대로 확인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전선통제기 같은 별도의 항공기들이 지상의 아군, 적군을 확실히 구별해주고 특히 어느 적군부터 먼저 공격해야 하는지 동료 아군기들에게 기관포나 연막로켓 같은 것으로 지시해주기도 한다.

아래 언급된 사건 이외에도 아군 오사 사건은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애초에 현대전 이전 시대의 전투 방식은 대부분 백병전이었기 때문에 난전 중에 궁병이 보병을 오사하거나 백병전에서 아군을 공격하는 일은 모든 전투에서 발생했을 것이다. 혹은 병영 내 갈등으로 인해 쌓인 원한을 우발적으로 풀기도 했다. 그나마 현대전에서나 사고율이 줄어들었다.

한국 남성 대부분이 가게되는 군대에서도 마일즈 훈련[4]을 할때 시야가 차단되는 야간전 상황이면 아군오사를 심심찮게 겪을 수 있다. 피아 식별을 위한 암구호를 빠르게 말하지 못해 사살당하는 경우부터 정말 다양한 아군오사 상황을 겪거나 목격할 수 있다.

이렇듯 야전에서는 굉장히 자주 일어나는 상황이다 보니 명백한 고의가 아닌 한, 군법으로 처벌되는 일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이런 것까지 신경쓰려면 작전 자체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 기껏해봐야 조기전역이나 심하면 불명예 전역으로 책임을 묻는 정도다.

창작물에서의 사례는 팀킬/사례 항목 참조.

5.1.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5.2. 제2차 세계 대전

5.2.1. 독일군

5.2.2. 미군

5.2.3. 소련군

5.2.4. 영국군

5.2.5. 이탈리아군

5.2.6. 일본군

미드웨이 해전에서 모가미급 4척이 제 7전대로서 참가했는데, 일본군이 대패했으니 후퇴하라는 명령을 받고 돌아가던 중 미군 잠수함을 만났다. 기함인 모가미급 4번함 쿠마노는 변침 지시를 내렸지만, 45도 변침을 명령해놓고 90도 변침을 하는 바람에 제 7전대는 대혼란에 빠졌고 모가미와 미쿠마가 충돌사고를 일으켰다. 미쿠마는 이후 미군의 공습으로 격침되고, 모가미는 겨우 살아서 일본으로 돌아왔다. 지휘를 개판으로 했다가 아까운 중순양함 한 척을 날려먹고 한 척을 대파시킨 것이다.
문제의 쿠마노는 이후 사마르 해전에서 구리다 함대의 선두를 맡아 돌격하다가 미군 구축함 존스턴에게 피해를 입어 함수가 날아가면서 속도가 크게 떨어졌고, 쿠마노를 피하려던 모가미급 3번함 스즈야가 속도를 늦추고 선회하다가 미군 공습으로 박살났다. 이것으로 쿠마노는 3척에게 오사했다. 이 해전에서 모가미는 니시무라 함대 소속으로 참가했다가 미군 전함들의 공격으로 함대가 괴멸되고, 구축함 시구레와 함께 후퇴하던 중 시마함대 기함인 묘코급 중순양함 나치의 충각공격을 당해 침몰했다. 모가미급 4척 모두가 팀킬의 가해자 또는 피해자라는 점에서, 실로 보기 드문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이후 쿠마노와 나치 역시 일본으로의 탈출에 실패하고, 미군의 공격으로 침몰했다.

5.3. 한국 전쟁

5.4. 그 이후

6. 유사 상황

위에서 다루었듯 포병은 아군 오사의 위험이 많아 적이 접근하면 공격을 멈추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적군이 아군 거점을 포위하거나 돌파해 진내가 위태로울 경우 데인저 클로즈 신경쓰지 말고 쏟아부으라고 요청하는 '진내사격'도 있다. 물론 이것도 현장에서 요청하면 숭고한 희생으로 평가받지만, 상부가 멋대로 해버리면 결과를 떠나서 상당히 잔혹한 행동으로 평가받는다. 창작물 뿐만 아니라 실제 전쟁사에서도 있었고 여론도 비슷했다.

파손 혹은 보급부족으로 사용할 수 없는 장비나 운용인원을 초과하는 잉여장비를 가지고 갈 수 없을 때 적에게 넘겨주느니 스스로 파괴하는 경우는 본문에서 설명하는 '팀킬'이나 '아군 오사'라고는 볼 수 없다.



[1] 통계적 오류에 빠질 염려에 첨언하자면, 군인들이 오인사격을 점점 더 많이 하는 게 아니라, 미군사의 입장에서 보면 향상된 방탄장구 및 의료체계의 보편화(이전에는 100% 죽을 상황의 환자를 팔다리 잘라 놓는 선에서 살려놓는다던가)로 인해 적의 사격에 의한 피해는 줄어들고 있어서 전시 사상자 중 오인 사격에 의한 비율이 올라가는 것 뿐이다. [2] 그래서 아무리 병력을 많이 모아도 통제에 실패하면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갈팡질팡하다가 기껏 모은 대군이 와해되는 경우도 많았다. 전근대 전투에서 병력이 많은 쪽이 황당할 정도로 대패를 하는 때가 적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3] 그래서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 F-4 전투기들은 아군 오사가 여러번 나서 AIM-7 스패로우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탑재하고도 "반드시 눈으로 적기를 확인한 후 발사할 것" 이란 명령을 받는 통에 AIM-7의 사거리 상의 이점을 전혀 누리지 못했다. 기술을 신뢰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판단한 예라고 할 수 있다. [4] 총과 몸에 레이저 센서를 달아 공포탄을 장착하고 실제로 교전을 해보는 훈련. [5] 이중 1대는 포탄이 터진 구덩이에 빠져 기동불능되었다. [6] 초기에는 호위기없이 독일본토로 들어가야하는 탓에 컴뱃박스와 윙박스의 간격이 머스탱 등장 이후 보다 빽빽하게 편대를 이루었다. [7] 루즈벨트는 태평하게도 어뢰를 보고 싶으니 그 쪽 갑판으로 가자고 했다고 한다. 또 루즈벨트의 일기에 따르면 아이오와 2.7km쯤 뒤에서 어뢰가 터졌다. [8] 킹 제독은 윌리엄 D. 포터의 함장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어뢰를 쏘고도 맞추지 못한것도 질책했다고 한다. [9] 공고는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던 중 잠수함 씨 라이온의 공격을 받아 대만 지룽반도 인근에서 격침되었다. [10] 초카이의 승조원이 전멸한 탓에 초카이를 대파한 공격의 진위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11] 북한 2사단은 모신나강, 7사단 조선족 부대는 국공내전 때 쓰던 99식 소총을 그대로 들고 왔다. [12] 이 이유는 해당 항목 참조. [13] 물론 이런 일 뿐만 아니라 이게 발생한 경위도 불미스러운 일이기에 대다수는 이를 생략한다. [14] 어느 정도였냐면 중대가 이동하는데 미군에게 포격을 그만두라고 영어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죽을 위험 무릅쓰고 'Korean soldier, You Amerian soldier, No BBang BBang No No!' 라는 세 마디로 간신히 포격을 멈추기도 했다 한다. 그나마 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없어서 자칫 몰살당할 뻔했다 한다. 더불어 미군은 미안하다면서 레이션과 장비를 잔뜩 건네줬다. [15] 나중에 '육군교육사령부'로 개칭되었고. 위치도 광주에서 대전으로 옮겨갔다. [16] 해리어가 쏜 미사일이 근접폭발 했었다. [17] 영국군 장갑차의 주황색 식별패널을 로켓발사대로 착각하는 확증편향에 빠졌으며 교차검증 하려는 노력도 없었다. 아군 FAC에게 정보를 정확하게 물어보지 않았으며, 작전지역에 있는 영국군 좌표확인을 게을리 하였고, 아군기가 포병에게 식별용 포탄을 요청했을때 이를 무시하고 먼저 공격했다. [18] 1985년 이후 비행훈련을 받고 A-10 조종사가 되었으며 대한민국 수원에도 배치된 적이 있다고 한다. F-117의 시험비행 조종사이자 교관이기도 했으니 보통 비범한 인물은 아니다. 민항사 보잉737의 조종사이기도 했으며 2003년 사건당시 이미 20년차인 군 조종사였지만 이라크전이 첫 실전투입이었다. 이라크 자유작전 공로로 동성훈장이 수여되었다고 한다. # [19] 흔히들 이 경험을 통해 미군이 대공미사일의 대함공격 가능성을 알아챘다고들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미군은 이미 1988년 이란 해군을 상대로 한 '프레잉 맨티스' 작전에서 기동부대를 향해 달려드는 이란의 고속정을 SM-2 대공미사일로 해치운 적이 있다(일단 3발을 쏘아 무력화시킨 뒤 하푼 및 5인치 함포로 마무리). 대공미사일은 발사 반응 시간도 빠르고 탄두가 작은 대신 운동 에너지가 높아 일루미네이터로 표적을 비춰줄 수 있는 가시거리 내에서는 심지어 함포보다도 즉응성이 높고 효율 역시 매우 높다. 이 점은 이미 1970년대 초반부터 인식되어 있어서 스탠더드를 대함 목적으로 사용하는 고속정이 개발되어있었으며 한국 해군 역시 하푼 도입 이전에 이를 운용했다. 한국군 최초의 미사일 고속정인 백구급 초기형 3척이 바로 그것. [20] 원래 시리아 내전당시 미군과 러시아군이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군사적 핫라인을 개설 했었고 이스라엘과 러시아 간에도 핫라인을 구축한 상태였었다. 이스라엘 측은 핫라인으로 미리 통보를 했으나 몆분 전 기습 통보였기 때문에 실 전장에 전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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