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 |||
1948~1949 제1차 중동 전쟁 (이스라엘 건국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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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전
War of Attrition Война на истощене מלחמת ההתשה حرب الاستنزا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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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간 | |
1967년 7월 1일 ~ 1970년 8월 7일 | |
장소 | |
시나이 반도 | |
원인 | |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 탈환 시도 | |
결과 | |
휴전 (양측 모두 승리 주장) | |
교전 국가 및 세력 | |
[[이스라엘| ]][[틀:국기| ]][[틀:국기| ]] |
[[이집트| ]][[틀:국기| ]][[틀:국기| ]] [[틀:깃발| ]][[틀:깃발| ]][[소련| ]] [[시리아| ]][[틀:국기| ]][[틀:국기| ]] [[요르단| ]][[틀:국기| ]][[틀:국기| ]] [[쿠바| ]][[틀:국기| ]][[틀:국기| ]] [[틀:깃발| ]][[틀:깃발|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 ]] |
지원 국가 및 세력 | |
[[쿠웨이트| ]][[틀:국기| ]][[틀:국기| ]] |
|
병력 | |
27만 5000명 ( 예비군 포함) |
이집트군 20만 명 소련군 1만 700 ~ 1만 5000명 요르단군 1만 5000명 PLO 병사 900 ~ 1000명 |
피해 | |
694 ~ 1424명 전사 민간인 227명 사망 2659명 부상 |
이집트: 민간인 포함 2882 ~ 1만 명 사망, 군용기 60 ~ 114기 격추 소련: 최소 58명 전사, 군용기 5기 격추 시리아: 500명 전사 요르단: 300명 전사, 포로 4명 쿠바: 180명 사망, 250명 부상 PLO: 1828명 전사, 2500명 포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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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6일 전쟁이후 1967년 7월 1일부터 1970년 8월 7일까지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가 이스라엘을 상대로 제한적인 전투들을 벌인 전쟁. 참고 링크2. 배경
아랍 연합이 6일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이스라엘군은 시나이 반도를 점령하고 수에즈 운하의 동편까지 점령하여 점령지의 경계선이 수에즈 운하에 쳐졌다. 이집트는 이를 매우 모욕적으로 받아들였고, 영토 회복을 위한 준비가 일어났다.이집트의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는 이스라엘을 상대로 장기 소모전을 벌이기로 판단했다. 이는 당시 이스라엘군은 속전속결로 빠르게 끝내는게 전투 교리였기 때문에 이스라엘군의 보급을 방해하고 전쟁을 장기간 끌어서 이스라엘군의 사기도 떨어뜨리고 버티기 힘들게 만들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군은 물량이 적었지만 질적으로 우수한 군대를 갖췄고, 이에 비해 이집트군은 군대가 질적으로는 떨어졌지만 병력과 장비의 양이 더 많았기에 이스라엘군이 장기 소모전에 불리할 것이라고 해석이 된 것이다.
1967년 7월 1일부터 이집트 특수부대가 이스라엘이 점령한 수에즈 운하 동부로 넘어오면서 이스라엘군 기계화보병과 이집트군 특수부대 사이의 교전이 벌어졌고, 이스라엘군이 이집트군을 격퇴하긴 했으나 1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이를 시작으로 국경지대 사이에서 수차례의 국지전과 항공기가 동원된 폭격이 일어났다.
이후 1967년 9월 1일에 제4차 아랍 정상회의에서 하르툼 결의안이 채결된 이후[1], 6일 전쟁에서 패배한 아랍 8개국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지속하면서 이스라엘을 고립시키고, 아랍 국가간의 협력을 늘리기로 결정했다.
한편 6일 전쟁의 여파로 인해 요르단에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대규모로 유입되었고, 요르단에서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에 대한 지지가 강화되어 사실상 요르단이 PLO의 본거지가 되었다.
여러차례의 전투가 벌어지다가 1967년 10월 21일에 이집트 해군의 고속정이 대함 미사일로 이스라엘 해군의 구축함 에일라트(Eilat)호를 침몰시켜서 47명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스라엘도 이에 대한 보복으로 10월 27일에 수에즈 운하 주변의 석유 정제소와 보관소를 포격하였고, 몇차례의 포격에 의해 민간인 사상자도 발생하자 이집트 정부는 수에즈와 국경지대 주변의 민간인들을 대피시켰다.
3. 전개
이집트군도 중포로 이스라엘군의 방어선을 포격하였고, 소련에게 지원받은 MiG 항공기들을 동원하여 폭격을 개시하면서 전쟁은 더 심화되기 시작했다.1968년 6월에 이집트군이 중포로 수에즈 운하 동편의 이스라엘군 전초기지에 대한 포격을 개시하여 수개월간 많은 이스라엘 병사들이 사망했고, 동년 10월에 이스라엘도 공수부대를 투하하여 이집트의 주요 발전소를 파괴했다. 이에 이집트는 수개월 동안 적대 행위를 중단하고, 주요 시설들을 요새화하여 대응했다. 이스라엘 역시 수에즈 동편에 증원군을 파견하고 바레브 선을 만들어서 대응했다.
1969년 2월에 나세르가 작년의 정전협정을 무효화하면서 다시 전투들이 일어났다. 또한 소련도 공군을 투입하여 이집트를 지원했다. 이스라엘군도 소련 공군을 위협적으로 인식하여 자국 공군 조종사들에게 소련 공군과의 교전은 가능한 피하라고 지시하였다.
지상에서의 국지전과 포격이 수차례 벌어지면서 이집트와 이스라엘 모두 손실을 적지 않은 입었고, 공군 전투기 사이에서의 항공전과 대공 미사일을 이용한 대공전도 일어나자 1969년 말부터 1970년 1월까지 나세르는 소련에게 파괴당한 기존의 대공방어체계를 복구하고 이스라엘 공군의 항공기를 저지할 새로운 대공방어체계를 요청했다. 처음에는 소련이 비용과 설치 및 훈련에 필요한 인력을 근거로 거부했으나, 나세르가 자신의 사임 후에 이집트가 친서방 국가로 돌아설 수 있다고 협박하여 결국 소련은 대공방어장치의 체계구성을 위해 파병 병력을 증원하고 공군 지원도 늘렸다.
1970년 4월에는 이스라엘 공군이 이집트군의 군사시설을 포격하다가 오폭으로 초등학교를 폭격하여 민간인 47명이 사망하였다. 이스라엘은 이후로 수에즈 운하 지역에 폭격을 집중하기로 결정했고, 이집트는 이 상황을 이용해서 SAM 기지들을 운하에 보다 가깝게 배치했다. 그리고 동시기에 소련 공군도 전투기를 동원하여 이 작업에 필요한 대공 방어를 실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군은 자국 조종사들에게 소련 공군과의 교전은 피할 것을 지시했다.
1970년 6월 25일에는 이집트 영공을 비행하던 이스라엘 A-4 스카이호크가 소련 조종사가 탑승한 MiG-21 2기 편대에게 추격당하다가 격추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스카이호크는 인근 비행장에 비상착륙을 했고, 이스라엘군도 이에 대응하여 기습작전을 준비했다.
7월 30일에는 8~20기의 MiG-21과 8기의 미라주 III, 4기의 F-4 팬텀 II 간의 공중전이 수에즈 운하 서쪽에서 벌어졌다. 이스라엘군은 미리 미끼로 출동시켰던 A-4를 이용하여 대응한 소련군들을 기습 격추해서 4기를 격추하고 1기를 피격하여 기지로 돌아가게 했다. 이때 소련군 조종사 3명이 사망했으나 이스라엘측에서는 사망자가 없었다.
4. 결말
8월부터 정전협정이 시작되어 1970년 8월 7일에 운하에서 50km 거리를 정전협정선으로 확정하여 비무장지대로 만드는게 합의되었다. 이집트군은 정전협정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비무장 구역에 SAM 기지를 설치하였고, 이후에도 SAM 기지를 계속 늘려나가며 정전협정을 위반했다.이후 9월 28일에 나세르가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였고, 당시 부통령이던 안와르 사다트가 나세르를 이어 대통령이 되었다.
[1]
특히 조항들에 포함된 내용 중에서 아랍연맹 회원국들은 이스라엘과는 평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이스라엘과 협상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다, 라는 일명 쓰리 노가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