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8d0000><colcolor=#fff>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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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479년 3월 9일 | ||
몰다비아 공국 바슬루이 카운티 후시 | |||
사망 | 1517년 4월 20일 (향년 38세) | ||
몰다비아 공국 바슬루이 카운티 후시 | |||
재위 | 몰다비아 보이보드 | ||
1504년 7월 2일 ~ 1517년 4월 20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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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d0000><colcolor=#fff> 부모 |
아버지:
슈테판 3세 어머니: 마리아 보이치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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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 보그단, 페트루, 엘레나, 일리아슈, 보그단, 마리아 크네아즈나, 페트루 5세 라레슈, 슈테판 5세 | ||
배우자 | 스타나, 나스타시아, 룩산드라 | ||
자녀 | 슈테판 4세( 사생아), 알렉산드루 3세 코르네아(사생아), 알렉산드루 4세 라푸슈네아누(사생아) | ||
가문 | 무사티니 가문 | ||
종교 | 기독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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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몰다비아 공국 제20대 보이보드.2. 생애
1479년 3월 9일 몰다비아 공국 바슬루이 카운티 후시에서 몰다비아 공국 제19대 보이보드 슈테판 3세와 왈라키아 공국의 보이보드 라두 3세의 딸인 마리아 보이치차의 아들로 출생했다. 1497년 아버지가 몰다비아를 침공한 폴란드군을 상대로 코즈민 숲 전투에서 대파했을 때 참여했는데, 도중에 폴란드 기사의 창에 스치는 바람에 한쪽 눈을 잃었지만, 고함을 힘껏 내지르며 계속 싸워서 몰다비아군의 전의를 끌어올렸다. 그는 이 일로 '외눈박이(De Orbu)'라는 별명으로 일컬어졌다.1498년경부터 아버지의 공통 통치자가 되어 권력을 상당 부분 루카 아르모레와 이오안 타우투를 포함한 보야르 및 행정가 집단들의 보좌를 받았으며, 폴란드와의 평화 협약에 관한 협상을 비준했다. 1504년 6월 말, 슈테판 3세가 임종을 눈앞에 두던 그 때 보그단 3세에 반대하는 여러 보야르가 반역을 꾀하다가 발각되어 모조리 처형되었다. 1504년 7월 2일, 슈테판 3세는 숨을 거뒀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그는 임종 직전에 보그단 3세에게 파디샤에게 계속 조공을 바치라고 촉구했다고 한다.
아버지 사후 보디보드에 오른 보그단 3세는 폴란드 국왕 알렉산데르 야기엘론치크에게 그의 여동생 엘즈비에타와 결혼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이를 위해 요새 2개를 넘기는 등 후한 선물을 건넸다. 그러나 2차례의 요청 모두 거절당하자, 보그단 3세는 폴란드 남부를 습격했다. 1506년, 알렉산데르는 보그단 3세가 몰다비아 내 가톨릭이 융성하도록 도와준다면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알렉산데르는 그해 8월 19일에 사망했고, 뒤이어 폴란드 왕위에 오른 지그문트 1세는 없었던 일로 처리했다. 이후 폴란드와 몰다비아군은 서로의 영토를 수시로 침공해 약탈을 자행했다.
1507년 10월 28일, 보그단 3세는 왈라키아를 침공해 람니쿠 사라트 시 주변을 황폐화했다. 침략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는데, 몰다비아 보야르 포페스티의 보그단이 자기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축출된 뒤 왈라키아가 그를 보호하자, 장차 왈라키아가 포페스티의 보그단을 앞세워 몰다비아 보이보드를 찬탈하도록 부추길 거라고 의심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자기도 아버지 슈테판 3세처럼 왈라키아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이어가려는 열망일 수도 있다. 당시 헝가리 국왕 울라슬로 2세를 대신해 외교 임무를 맡은 베오그라드의 막심 대주교[1]와 협상하던 왈라키아 보이보드 라두 4세는 이 소식을 접하자 즉시 람니쿠 시라트 시로 달려간 뒤 몰다비아군과 대치했다. 이때 그는 왈라키아와 몰다비아 국민은 형제이므로 서로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그 후 보그단 3세는 그와 평화 협약을 맺고 몰다비아로 철수했다.
1509년 10월 4일, 보그단 3세는 드네스트르강 인근 호틴에서 폴란드군에게 패배했다. 그 후 폴란드와 외교 협상을 벌인 끝에 1510년 1월 17일 정치, 경제적 이익을 받는 대가로 엘즈비에타와의 결혼을 포기했다. 같은 해 크림 칸국의 타타르인 무리가 몰다비아를 침략해 약탈을 자행하고 74,000명을 노예로 데려갔다. 그해 11월, 보그단 3세는 타타르인의 새 침공을 막아냈다. 1511년 타타르인들이 또다시 침공해 몰다비아 각지를 황폐화했다. 폴란드 왕국은 이러다가 저들이 자국까지 쳐들어올 것을 염려해 구원군을 보냈고, 보그단 3세는 1512년 5월 타타르족을 가까스로 물리쳤다.
1514년, 보그단 3세는 타타르족의 연이은 파괴로 나라가 황폐화된 상황에서 오스만 제국의 침공까지 받으면 더는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이오안 타우투를 오스만 제국의 수도 코스탄티니예에 보내 협상했다. 그 결과 몰다비아는 왈라키아와 거의 동일한 조건, 즉 모든 면에서의 자치, 오스만 종주권 인정, 연간 공물 지불 등의 조건으로 오스만 제국의 봉신이 되기로 했다. 1517년 4월 20일 고향인 후시에서 사망했고, 아버지가 안장된 푸트나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사후 아들 슈테판 4세가 보이보드 직위를 계승했다.
3. 가족
- 스타나, 나스타시아: 보그단 3세의 첫째와 둘째 아내. 이름만 전해진다.
- 룩산드라: 왈라키아 공국 제22대 보이보드 미네아 1세의 딸.
- 사생아
- 슈테판 4세(1503/1506/1508 ~ 1527): 몰다비아 공국 제21대 보이보드.
- 알렉산드루 3세 코르네아(1490 ~ 1541): 몰다비아 공국 제24대 보이보드.
- 알렉산드루 4세 라푸슈네아누(1499 ~ 1568): 몰다비아 공국 제28대 보이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