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8d0000><colcolor=#fff> '''''' | |||
출생 | 미상 | ||
사망 | 1592년 11월 15일 (향년 미상) | ||
오스만 제국 코스탄티니예 | |||
재위 | 몰다비아 보이보드 | ||
1592년 8월 ~ 1592년 10월 25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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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d0000><colcolor=#fff> 부모 |
아버지:
알렉산드루 4세 라푸슈네아누 어머니: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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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 무사티니 가문 | ||
종교 | 기독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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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몰다비아 공국 제39대 보이보드.2. 생애
몰다비아 공국 제28대 보이보드 알렉산드루 4세 라푸슈네아누의 사생아로, 코스탄티니예에서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 및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제국 인사들과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폴란드-리투아니아의 헤트만이자 총리 얀 자모이스키 및 자포르제 카자크와도 가까운 관계를 맺었다. 특히 카자크와의 친분이 무척 두터웠고, 그들의 생활 방식을 받아들였기에, '카자쿨(Cazacul: 카자크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1592년 6월, 몰다비아 보이보드 아론 트리아눌이 몰다비아 보야르들의 호소를 받아들인 오스만 제국 파디샤 무라트 3세에 의해 폐위되었다. 무라트 3세는 알렉산드루 6세를 몰다비아 보이보드로 세우기로 했다. 하지만 알렉산드루 6세가 미처 몰다비아에 부임하기 전에, 자포로제 카자크의 지원을 받은 페트루 7세가 몰다비아를 장악했다. 이후 아론에게서 돈을 꼭 받아내야 했던 채권자들과 예니체리의 강력한 청원을 받은 무라트 3세는 1592년 8월 아론을 보이보드로 복위하기로 하고, 또다른 가신인 트란실바니아 공 바토리 지그몬드에게 페트루 7세를 축출하고 아론이 몰다비아 공국에 복귀하게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페트루 7세는 트란실바니아 공국과 오스만 제국에서 동시에 밀려오는 적을 상대하기 위해 이아시 인근에서 항거했고, 카자크에 추가 병력을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1592년 10월 25일 이아시 인근 숲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참패하고 아론에게 체포되었다. 얼마 후 카자크인들이 몰다비아에 속한 티히나를 침공했지만, 페트루 7세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철수했다. 이후 페트루 7세는 코가 베어진 뒤 코스탄티니예로 보내졌고, 무라트 3세는 페트루 7세를 갈고리에 꽂아 죽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