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이유의 장미(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만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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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 |||
마리 앙투아네트 | 오스칼 프랑소와 드 자르제 | ||
한스 악셀 폰 페르젠 | 앙드레 그랑디에 | ||
조역 | |||
로잘리 라 몰리에르 | 알랭 드 수아송 | ||
기타 등장인물 |
1. 개요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만화)의 등장인물을 정리한 문서.2. 개별 문서가 있는 주연
3. 조역 인물
3.1. 혁명가
3.1.1. 베르나르 샤틀레
베르나르 샤틀레 (Bernard Chatellet) |
원판 성우
노지마 아키오[1] 신작 극장판 성우 이리노 미유 |
KBS판 성우 오세홍 |
EBS판 성우 홍범기 |
파리의 신문 기자. 로잘리의 어머니가 귀족의 마차에 치어서 죽었을 때[2] 뺑소니 사고를 벌이고 도망가는 폴리냑 부인에게 먼저 나서서 화를 내고 책임질 것을 요구하기도 했고, 우는 로잘리를 위로해주기도 했다.
공화주의자 집단의 일원으로 오를레앙 공과 협력하며 ' 흑기사'라는 별명과 분장으로 귀족들을 털고 다니다가 오스칼에게 추적당하게 된다. 오스칼은 앙드레를 가짜 흑기사로 분장시켜 그를 꾀어내지만, 앙드레는 베르나르와의 대결에서 눈에 부상을 입고 나중에 이 상처가 원인이 되어 실명하게 된다. 오스칼을 함정에 빠뜨려 오스칼과 로잘리 등을 오를레앙 공작의 성에 가두지만, 흑기사로 변장한 앙드레의 활약 때문에 역으로 오스칼에게 붙잡히게 된다. 그를 잡았을 때 분노한 오스칼은 '나의 앙드레에게 한 것과 똑같이!'라며 베르나르를 칼로 찌르려다 앙드레의 만류로 그만둔다. 틈을 보아 오스칼을 기습하려다가 로잘리가 쏜 총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애니에서는 원작과 다르게 오스칼 혼자 오를레앙 공작의 성에 갇혀있다가 앙드레의 도움으로 빠져나와 도망가려는 베르나르에게 총을 쏜다. 그리고 잠든 베르나르에게 다가가 칼로 찌르려다 차마 찌르지 못하고 포기한다.
부상을 입은 몸으로 오스칼의 집까지 후송되었지만, '왕비의 개'라며 욕하다가 인간의 평등을 말하는 그의 사상에 고무된 오스칼은 그를 넘기지 않고 자신의 집에 숨겨준다. 오스칼과 앙드레와는 어찌저찌 화해를 하고 오스칼은 그를 설득하여 흑기사로서 활동하는 일은 그만두게 한다. 또 오스칼의 집에 숨어있는 동안, 예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었던 로잘리 라 몰리에르에게 간호를 받다가 로잘리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되며, 로잘리는 베르나르와 함께 자르제 가에서 떠나게 된다. 이런 일 탓인지 나중에 함께 혁명 동지로써 뛰게 될 때는 사이가 훨씬 가까워진 모습을 보인다.[3]
그 후, 오스칼의 요청으로 시민 폭동을 유도하거나, 시민군 조직에 앞장서거나, 혁명정부의 일원으로 힘을 써서 로잘리를 감옥에 갇힌 마리 앙투아네트를 돌보게 하는 등의 활동을 했고, 같은 혁명동지인 로베스피에르나 생 쥐스트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와중에도 살아남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케다 리요코가 그린 후속작인 에로이카에도 출연한다. 제법 비중도 많고 에로이카 주인공인 실존인물 나폴레옹을 존경하여 잘 따르며 알랭 드 수아송과 같이 충직한 부하가 되지만, 황제가 되려는 나폴레옹에게 실망하여 둘이서 나폴레옹을 암살하려다가 실패하고 둘 다 총에 맞아 사살당하고 만다. 다카라즈카 가극단에서는 이쪽을 주인공으로 한 '베르나르 외전'을 만들기도 했다. 당연히 여주인공은 로자리.
3.1.2. 로베스피에르
로베스피에르 |
원판 성우 모리 카츠지 |
비디오판 성우 이정구[4] |
KBS판 성우 김영민 |
EBS판 성우 임채헌 |
역시 실존했던 바로 그 인물로서 루이 16세가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번 만난 적이 있다는 역사적 사실 또한 본편에서 그려지기도 했다. 참고로 초반에 오스칼과 만나 대화를 나눈 적도 있었는데, 처음에는 무난하게 대화를 나누나 싶었지만 로베스피에르가 마리 앙투아네트를 갖다가 '국왕을 휘두르는 왕비'라고 칭하는 등 나쁘게 말하자[5] 오스칼은 당연히 빡쳐서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로베스피에르를 노려본다. 그러자 로베스피에르는 당신이 근위대라는 걸 깜빡했다며 그녀에게 사과하고 그 자리를 뜬다.
후반부 프랑스 대혁명을 일으키는 중심인물 중 한 명으로 베르나르, 생 쥐스트 등의 젊은 청년들과 공조해서 개혁을 일으키려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지만, 정작 생 쥐스트는 로베스피에르는 자신보다 더한 권력을 탐하는 테러리스트라 평하기도 했고,[7] 얼마 지나지 않아 생 쥐스트의 그 말은 현실이 되었다.[8] 애니메이션 마지막화에서는 루이 16세의 처형을 주장하여 루이 16세를 사형시켰으나, 나레이션에 의하면 얼마 후 로베스피에르도 처형당했다고 한다.
3.1.3. 생 쥐스트
생 쥐스트 |
원판 성우 후루카와 토시오 |
국내 비디오판 성우 오세홍[9] |
KBS판 성우 오세홍, 이규화 (35회 이후) |
EBS판 성우 신용우 |
로베스피에르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대혁명 당시 '혁명의 대천사'[10]라 불리며 많은 이들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만든 골수 자코뱅당원.
원작의 생 쥐스트는 친척인 베르나르의 집에 숨어 살던 식객 정도로 나오고 루이 16세의 처형을 주장하는 연설을 한 것 외에는 그닥 활약이 없었으나 애니에선 로베스피에르를 따르며 그의 주도하에 이뤄진 테러의 주동자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베르나르와 친척 설정도 사라지고 그와 사상적으로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11][12] 여담으로 베르나르가 오스칼의 부탁을 들어 감방행이 된 위병대원 12명을 구해주기 위해 민중 선동을 할 것을 로베스피에르에게 허락받으려는 과정에서 로베스피에르가 이를 허락하자, 듣고있던 생 쥐스트는 그런 거 할 필요 없이 그냥 시민들 데리고 베르사이유 닥돌 콜이 더 낫지 않냐?하고
실제로 미형이었다는 것을 감안해서인지, 원작에서는 굉장한 미인으로 언급되고[16] 애니에서도 사악한 느낌이 물씬 배어나는 미형 악역으로 그려지고 있다.[17] 또한 이케다 리요코는 이후의 작품 디어 브라더에서 이 생 쥐스트의 위태롭고도 치명적인 매력을 계승한
3.2. 귀족
3.2.1. 제로델
플로리안 빅토르 클레망 드 제로델 (Florian Victor Clement de Gerodelle) |
원판 성우 미카게 케이지 신작 극장판 성우 에구치 타쿠야 |
국내 비디오판 성우 이정구 |
KBS판 성우 김준 |
EBS판 성우 류승곤[18] |
웬만한 여성 못지 않은 웨이브 진 볼륨있는 머리와 나름 훈훈한 외모에, 오스칼의 거절에 깨끗하게 물러나가는 모습 등 그냥 지나가는 조연으론 좀 아까운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지 애니메이션에서 나름 비중있게 등장하며 다카라즈카 가극단판 베르사이유 장미에는 제로델을 주인공으로 한 외전도 있다
이후 베르사이유의 장미 외전 편에서 유년 시절과 오스칼과의 인연 스토리가 공개되었는데 퍼스트 네임은 플로리안(Florian)이라고 한다. 꼬마일 때도 귀족적이고 새침하고 자존심 강한 성격에 자식들의 교육에 관심이 없다시피 한 부모님[19]들 때문에 10살때 까지 시골에 맡겨져서 유모 손에서 자랐다. 이후 유모를 따라 베르사유로 상경하며 어느날 티피티에 갔다가 우연히 오스칼을 만나 '(키가) 작다'라는 말을 팩폭을 듣는다.
그러다 오스칼이 어린 나이에 오스트리아에서 시집 오는 왕세자비의 호위역을 맡게된다는 것과 유모로부터 오스칼이 여자라는 사실을 듣고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동시에 오기가 생긴다. 그뒤 이탈리아 출신의 검술 선생까지 초빙하여 검술을 익히고 오스칼에게 마드모아젤이라고 부르면서 결투를 신청했으나 지고 만다. 비록 지긴 해도 오스칼의 격려를 받고 그녀를 따라 근위대로 가면서 왕세자 부부를 호위하는 그녀를 지켜보고 근위대 부대장까지 오르는 등 앙드레 못지않게 오랜 시간 오스칼을 짝사랑했다는게 밝혀졌다.
이후 빼어난 외모와 새침스러운 분위기로 오스칼 못지 않게 여러 여성들의 구애를 받지만 전술했듯이 제로델은 오스칼 일편단심에 애정이 없다시피 한 가족들[20]을 보고 자라서 인지 여러 혼담을 내쳤다. 그러다 우연히 페르젠의 여동생 소피아와 엮였다. 소피아가 페르젠의 편지를 왕비에게 몰래 전해주고 베르사유 궁전을 빠져나가려 하다 위병들에게 들킬 뻔 하자 제로델이 소피아에게 키스하는 척 소피를 자기 연인이라고 소개하고 베르사유 내의 자기 방으로 데려가 구해준다. 둘은 날이 샐 때까지 그 방에서 하룻밤을 보냈지만 사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그뒤 원작대로 오스칼이 근위대를 그만두려는 걸 듣고 놀라 달려오지만 그녀를 말리지 못했고, 청혼 신청까지 하며 그녀를 잡으려 했지만 이마져 실패한다. 그리고 혁명이 진행되어 오스칼이 평민의원들을 검거하려는 근위대를 단신으로 막아섰을 때 차마 오스칼을 해치지 못하고 근위대를 이끌고 되돌아간 바람에 명령 위반으로 관직이 박탈되고 감옥에 갇힌 덕에 혁명세력에게 처형되지 않고 목숨을 건졌다. 왕비의 처형이 임박했을 무렵 벨기에에서 소피아와 재회하여 소피아에게 죽은 오스칼에 대해 가져왔던 감정을 고백하고, 자신은 오스칼이 평민들의 편을 들었던 이유를 알기 위하여 파리로 돌아가겠다고 말하며, 만약 죽지 않고 돌아온다면 그 옛날의 위장 키스가 아닌, 당신을 끌어안고 진짜 키스를 하도록 허락해주시겠냐고 물은 후 파리로 향한다.
그리고 제로델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였는데, 마지막 장면이 누군가가 처형되는 기요틴이었던 걸로 보아 민중 세력에게 처형당했을 것으로 추정되었으나..2018년 나온 외전에서는 생존해 있었다는게 드러난다. 당시 사람들의 추격에 쫓기고 있던 로잘리 모자[21]을 구해주어 스웨덴까지 망명할 수 있게 도와주며 페르젠의 동생 소피아의 말에 의하면 파리로 돌아갔다 영국으로 망명해 영국 구석구석을 떠돌다가 포의 일족을 만나 동족이 되어 생체 시간이 멈췄다.[22]
여러모로 오스칼과 반대되는 인물이다. 귀족집안 자제이며 손윗형재/자매가 있고 군인이라는 것까진 동일하나 가정사의 불화 유무, 혁명 찬동과 직접적인 참여 여부, 혁명과 관계되어 그들이 맞이한 태도, 좋아하는 사람과 이어졌느냐의 여부 등이 모두 반대이다.[23]
3.2.2. 다그 대령
다그 대령 (Colonel Dagout) |
원판 성우 츠카다 마사아키 |
국내 비디오판 성우 박상일 |
KBS판 성우 오세홍 |
애니판 최고의 수혜자 위병대 부지휘관인 프랑스 육군 장교로, 원작에선 워낙 막나가는 위병대 통제에 힘들어하는 간부의 모습으로만 나오다가 혁명에 가담하려는 오스칼 일행에게 자신은 귀족이라 가담할 수 없다고 짧게 말하며 떠나게 되는 등 비중이 크지 않지만, 애니판에선 무게있는 간부이자 결핵으로 인해 괴로워하지만 애써 숨기던 오스칼을 보고 아내도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나서 잘 안다고 눈물을 보이며 건강을 염려하는 충직한 모습으로 나왔다.
애니판에서는 혁명군에 가담할 것을 선언한 오스칼과 위병대에게 자신은 혁명에 가담하지 않으며, 위병대의 혁명가담을 보고한다 하였다가 멈춰서선 '오늘 하루는 무단으로 휴가를 내고, 보고는 내일 하겠다'라며 사실상 묵인하면서 오스칼에게 무운을 빈다고 말한 뒤 떠나간다. 그래서 그를 공기같이 여기던 알랭과 위병대 일행은 그동안 그를 무시하던 걸 미안하게 생각한다.
3.2.3. 푸이에 장군
푸이에 장군 (General Bouille) |
원판 성우 이이즈카 쇼조 (1회), 마스오카 히로시 |
KBS판 성우 장광 |
EBS판 성우 하성용 |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 실존 인물은 낭시 사건으로 유명해졌으며, 루이 16세 일가가 탈출하는 것을 자르제 백작과 함께 도왔다. 원작 만화에서는 자르제 장군과는 사이가 좋지 않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자르제 장군의 오랜 친구로 나온다.
전형적으로 오만하고 기득권에 집착하는 인물로 루이16세에게 국민의회를 진압하자는 강경책을 제시하고 평민들로 구성된위병을 차별하는 모습을 보인다. 유치한 방식으로 평민 대표들을 차별하면서 오스칼과 대립한다. 실제로도 어떤 인물인지는 모르지만 바렌 도피사건 당시 어설프게 일을 진행하다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시민군에게 체포하는데 기여한다. 여담으로 푸이에 대한 평가는 현재 프랑스에도 욕에 가까운 평가를 받는다. 아예 프랑스 애국가에서 대놓고 비판할 정도다.
4. 악역
4.1. 뒤바리 부인
뒤바리 부인 |
원판 성우 키노미야 료코 |
국내 비디오판 성우 최문자 |
KBS판 성우 이경자 |
EBS판 성우 이소영 |
루이 15세의 애첩이자 마리 앙투아네트의 최초이자 최대의 숙적. 만화에선 거만한 악녀 스타일로 나오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그와 정반대 이미지였다고 한다.[24]
본래는 빈곤층 출신의 매춘부 였으나 뒤바리 백작을 홀려 백작 부인의 신분을 얻고 이후 왕의 공식 애첩인 메트레상티트르(maîteesse-en-titre)'가 되었다. 당시 왕비와 왕세자비가 모두 사망해 공식적인 여주인이 없다시피 한 프랑스 왕실의 사정으로 뒤바리는 왕의 애첩이자 안주인로서 여러 특혜를 누렸다. 그러나 얼마뒤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동맹 혼인으로 오스트리아 공주이자 왕세손비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오고 마리가 첫날부터 아름답고 매력적인 외모로 베르사유를 사로잡자 경계심을 가진다.
게다가 앙투아네트도 루이 15세의 딸들인 시고모들로부터 뒤바리 부인에 대한 험담을 듣고, 친정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받은 여자의 정절에 대한 가르침 때문에 뒤바리 부인을 경멸하고 자신의 위치[25]를 이용해 뒤바리 부인에게만 말을 먼저 걸지 않는 왕따를 시키고 귀부인들도 이에 동조해 뒤바리 부인을 멀리한다.
당연히 모욕감을 느낀 뒤바리 부인은 저 건방진 오스트리아 꼬맹이 계집이라고 험담을 내뱉고 왕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면서 신경전이 오가게 된다. 처음에는 흘려들은 루이 15세도 뒤바리 부인을 무시하는 손자 며느리의 행동을 국왕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한 루이 15세는 국가 간의 전쟁까지 감수하려 하는 국가 간 외교문제로 번지고 만다. 측근인 메르시 백작은 물론 모친 마리아 테레지아도 앙투아네트에게 편지를 써서 설득을 하고 결국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태가 심각해지자 먼저 인사를 건네려 한다.
처음 시도는 루이 15세의 딸인 시고모들의 저지로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후 거울의 방에서 열린 파티에서 마리가 뒤바리 부인에게 "오늘도 베르사유는 참 사람들이 많이 모였군요"라고 인사말을 건네며 사실상 패배를 선언하게 된다.[26] 그뒤로 뒤바리는 한층 더 기고만장 해지다 못해 뒤바리 부인은 과거 자신의 시녀 제안을 거절한 것에 대한 분풀이로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녀장으로 있던 자르제 백작 부인에게 해코지를 하려 하나 뒤늦게 달려온 오스칼의 일갈에 겁을 먹고 물러난다.
당시 오스칼에게 "국왕은 너무 늙어서 이제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궁전에서 창녀 취급 받는 당신을 황태자비가 가만히 둘 것 같냐"라는 말을 듣자 국왕이 죽으면 자신은 운이 좋으면 수녀원에 잘못하면 바스티유 감옥에 갇히는 현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이후 귀한 향료를 선물로 보내는 등 어떻게든 앙투아네트와 친해져 보려고 하지만 당연히 무시당하고, 오스칼도 뒤바리 부인의 목적을 눈치채고 막아냈다. 결국 오스칼의 예언대로 루이 15세는 천연두에 걸려버리며 딸들과 뒤바리 부인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숨을 거둔다.
아직 숨이 붙어있던 루이 15세가 고해성사를 받고자 신부를 불렀지만 신부가 고해성사를 받고 싶으면 애첩인 뒤바리 부인을 내보내라는 주장을 하자 결국 예정된 수순대로 수녀원으로 귀양가게 된다. 이때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수녀원으로 가던 도중 갑자기 "당신은 내일 먹을 빵 걱정을 한 적은 없죠?"라고 자신의 호송역을 맡은 오스칼에게 물어보며, 어렸을 때 가난으로 고생해서 빵 등을 모으다가 애첩이 되고 나선 보석이며 드레스 등을 닥치는 대로 긁어모으게 되었고 하고 싶은 건 실컷 다 하고 살았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는 등 과거의 유년시절을 털어놓는다. 과거 자신과 적대한 적이 있었음에도 자진해서 호위를 해주고 이야기도 별 말 없이 들어주는 오스칼을 보고 좀 다른 감흥이 들었던 모양인지 당신은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작품에서 퇴장한다.
나레이션에 의하면 이 후 프랑스 혁명 때 처형되었다고 언급된다. 실제 역사에서는 과거 뒤바리 부인의 흑인 노예가 그녀를 밀고하고 누명을 씌우는 바람에 체포되어 그대로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사실 그보다도 더 큰 원인은 당시 영국의 런던으로 안전하게 피신해 있다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괜히 프랑스로 귀국했다가 그대로 붙잡혔기 때문이라고.
4.2. 오를레앙 공
오를레앙 공작 루이필리프 2세 (Louis-Philippe II, Duc d'Orléans) |
원판 성우 이치카와 오사무(2~24회), 진나이 타츠유키(27회) |
KBS판 성우 최병상 |
훗날 7월 왕정의 초대이자 마지막 국왕이 되는 루이필리프 1세의 아버지. 초반부 악역으로서 초반에는 거의 최종보스급으로 나와 왕세자인 루이 16세를 암살하려 하거나 마리 왕세자비를 납치하려하든지 잔느 라모트를 감옥에서 구출한다든지 강력한 흑막으로 나왔다. 그러나 후반부에는 역사상의 활동 이하로 비중이 급 추락해서 거의 존재감이 없어지는 지경에 도달한다. 최후반부 프랑스 혁명 때 루이 16세를 몰아내고 자신이 왕위를 차지하려고 한다는 언급이 나오는데 이를 들은 로베스피에르는 쿨하게 무시한다. 그리고 등장 및 언급 끝. 극적인 흐름상 비중이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봐야 할 듯 하다.
실제 역사에서도 오를레앙 공은 루이 14세의 동생이자 루이 13세의 차남인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의 4대손으로 부르봉 왕가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어서 프랑스 왕위에 대한 욕심이 대단했다. 심지어 그는 혁명 이후 바렌느 배신사건으로 체포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에 찬성표를 던지기까지 했다.[27] 그런데 정작 본인도 쿠데타에 연루되어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와 똑같이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즉, 오를레앙 공의 최후를 애니메이션에서 묘사했다면 단두대 행이였다는 것. 오를레앙 공은 비록 왕족임에도 표면상 혁명을 지지하면서 귀족의 칭호를 버리고 스스로를 '평등한 필리프(Philippe Égalité 필리프 에갈리테)'라고 자칭하기까지 했지만, 실상은 왕위에 대한 야심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고 끝내 자신과 친분이 있었던 뒤무리에 장군의 오를레앙 왕가 옹립 쿠데타 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처형당했다. 그나마 자신의 아들 루이필리프 1세가 훗날 프랑스의 왕으로 즉위했지만 워낙에 정통성이 없다보니, 재위 기간 내내 다른 국가의 왕들에게 폭도왕이라는 욕을 먹으며 찬탈자 취급 당했다. 끝내 루이필리프도 혁명의 물결을 이기지 못해 오를레앙 왕조를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고 퇴위당했다. 이후 나타난 프랑스 군주들은 오를레앙 공과 혈연지간이 아니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그의 직계( 나폴레옹 2세), 그의 방계( 나폴레옹 3세)다. 그마저도 나폴레옹 3세를 끝으로 프랑스는 군주제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제대로 공화국 체제로 돌입한다.[28]
4.3. 드 게메네 공작
앙리 살바토르 드 게메네 (Henry Salvatore de Gemene) |
원판 성우 테라시마 미키오[29] |
KBS판 성우 설영범 |
공작. 주로 드 게메네라고 불린다. 오를레앙 공과 협력하며 항상 루이 16세나 마리 앙투아네트를 암살하려 하나 실패한다. 애니메이션에서는 길거리에서 어린 아이를 총으로 쏴 죽인 계기로 오스칼과 결투를 벌이게 된다. 풀네임은 오스칼과 결투를 할 때에 나온다.
원작에서는 왕실 연회 도중 앞서 말했던 말싸움이 벌어져 결투 직전까지 가지만 앙투아네트의 중재로 무마된다. 이 때 겉으로는 허세를 부리지만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세우는 공작의 모습이 별미 오스칼의 아버지도 태연해하면서 저딴 졸개에게 죽을 정도는 아니라고 말하는 걸 보니 아마도 전투력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던 듯 하다.
애니메이션에는 악역 보정을 받아서 로마 사격대회에서 2위를 한 명사수로 전투력이 보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확실히 이기기 위해 오스칼을 사격하기에 불리한 장소[30]로 몰아넣는 짓을 하지만[31] 결투 시작 전 빛이 반사되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챈 오스칼이 공작이 쏜 총알을 자신의 총으로 막은 후 쏘는 묘기(!)를 부려 부상을 입게 된다.[32]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는 듯.[33] 이후 등장 끝.
4.4. 폴리냑 백작 부인
폴리냑 공작부인[34] 욜랑드 드 폴리냑 (Yolande de Polignac[35], Duchesse de Polignac) |
원판 성우 무토 레이코[36] |
KBS판 성우 이연희 |
원래는 친가, 시가 모두 베르사유 궁전에 출입도 어려울 정도로 몰락한 귀족이었으나 어느날 왕비의 음악회에서 아름다운 외모[37]와 뛰어난 노래 솜씨, 소탈하고 솔직한 발언으로[38] 순진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그녀의 절친이자 측근이 된다. 그러나 겉모습과 다르게 실체는 불쌍한 척 사연팔이로 마리의 마음을 교모하게 이용해 남편[39]을 승진시키고 자신 또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자식들인 왕자녀들의 전담 가정교사로 임명되는 등 폴리냑 가문의 이득[40]을 잔뜩 취하는 수완가이자 교활한 성격의 악녀였다.
또한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충언을 거듭하고 마리에게도 깊은 신뢰를 받는 오스칼을 못마땅하게 여겨[41] 은근히 오스칼과 마리의 사이를 이간질했고 마리 앙투아네트를 무도회, 연극, 도박[42]에 열중하게 만들고, 급기야 프티 트리아농에서 자신들만의 세상을 살고자 한 마리의 계획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마리의 눈과 귀를 막아 국정까지 멀리하게 한 끝에 왕비로서의 책무마저 방임하게 만드는 그야말로 하라구로가 뭔지 보여주는 간신배.
이러한 폴리냑 백작부인과의 관계 때문에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신의 평판까지 대차게 말아먹는 건 물론, 후대에도 마리 앙투아네트하면 생각나는 사치를 부리며 나라를 망치는 희대의 악녀로 낙인찍히게 된다.[43] 결국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기 사건 이후 뒤늦게 정신을 차린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치를 그만두고 오스칼과 페르젠과 메르시 백작같은 충신들의 조언도 귀담아들으며, 본래의 선량한 왕비로 돌아오면서 어떻게든 자신의 실책을 만회하려고 애쓰지만 이미 프랑스 내 마리 앙투아네트의 평가는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나락에 떨어졌다. 그리고 이는 훗날 프랑스 혁명 때 마리 앙투아네트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원흉이 된다.
이와 별개로 마리 앙투아네트가 폴리냑 부인의 실체를 깨닫고 그녀를 멀리하자 애초에 별다른 뒷배경이나 기댈 곳도 없이 오로지 마리 앙투아네트의 총애만으로, 벼락출세한 폴리냑 백작부인은 초고속으로 권력을 잃고 왕자녀들의 전담 시녀에서도 내쳐진데다가 사교계에서마저 투명인간 취급당하면서 한순간에 몰락한다.[44] 이후 프랑스 혁명이 터지면서 재빠르게 마리 앙투아네트를 손절하고 남편과 함께 해외로 도피했다고 한다.[45]
실은 로잘리 라 몰리에르의 친어머니. 결혼 전 이름은 마르틴 가브리엘 드 폴라스트롱(Martine Gabrielle de Polastron).[46] 처녀 시절 발루아 가문의 마지막 후손이었던 생 레미 남작과 연인이었으나 연인은 자기 가문의 하녀(잔느의 친모이자 로잘리의 양모인 니콜 라 몰리에르)에게도 손을 대어 이미 딸을 낳은 상태였다. 하필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폴리냑 부인은 로잘리를 임신하고 있었으며 그런 폴리냐크 부인을 안타깝게 여긴 하녀 니콜은 그녀가 낳은 갓난 로잘리를 자신의 딸로 거두었던 것.
자기 나름대로 딸들에 대한 애정[47]이 있었지만 마리 앙투아네트와 친해지게 되면서 권력에 집착하면서 흑화되고, 정작 자신의 그 권력욕[48]때문에 결국 두 딸을 모두 잃게 된다.
덤으로 실제로 폴리냑 부인은 과연 본작에서 묘사된 것처럼 마리 앙투아네트를 이용해먹은 간신배인가, 혹은 2006년 마리 앙투아네트 영화에서처럼 사치스럽기는 해도 든든한 절친인가에 대해서 그 견해는 현재까지도 불확실하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한 것과 별개로 마리 앙투아네트를 부추겨 사치를 부린 건 쉴드가 불가능한 사실이기에 왕당파, 자코뱅, 산악파 등, 당대 모든 세력들에게 프랑스 왕국을 말아먹은 간신으로 비판받았다.
4.5. 잔느 발로아 드 라 모트
잔느 발로아 드 라 모트 (Jeanne de Valois-Saint-Rémy, "Comtesse de la Motte") |
원판 성우 마츠카네 요네코 |
비디오판 성우 임은정 |
KBS판 성우 최덕희[49] |
EBS판 성우 배정미[50] |
작 중 내 가장 큰 빌런. 사실상 프랑스 혁명 겸 마리 앙투아네트 일가를 멸망시킨 주범이자 최악의 악녀. 실제로 발생했던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기 사건의 범인인 잔느 드 라모트가 모티브다. 얼굴에 눈물점이 있는 미인이며 로잘리의 언니(실제론 이복자매)이다.
발루아 가문 후손인 생 레미 남작과 남작가 하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로잘리와 잔느가 철들기도 전에 남작이 세상을 떠버려 로잘리,어머니와 함께 파리의 뒷골목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다만 심성이 착한 로잘리와는 대조적으로 잔느는 발루아 가문의 후손[51]이란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가난을 굉장히 싫어하고 화려한 귀족의 삶을 꿈꾸는 허영심이 많은 성격이었다.
그러다 어느날 크게 한몫을 잡을 생각에 한 귀족의 마차를 잡아 구걸하다가 명망이 높은 발로아 가문 후예가 비참하게 사는 걸 보고 놀란 블랑빌리에 후작 부인의 배려[52]로 후작가로 들어가 양녀가 되어 어머니와 로잘리를 버리고 간다.
이후 후작가로 들어가 여러 교육을 받으며 아름다운 아가씨로 자라났지만 잔느는 블랑빌리에 후작부인이 예상했던 것보다 보잘 것 없는 것을[53] 알게 된다. 화려한 삶을 넘어 베르사유 진출을 포함한 출세를 노리고 있었던 잔느는 이에 실망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높은 신분으로 가겠다고 제대로 흑화[54]해 후작가의 하인인 니콜라스를 끌어들여 화재를 가장해서 후작부인을 살해하고 필기 위조 전문가를 이용해 그녀의 유언장까지 조작해서 블랑빌리에 가문의 유산까지 독식한다.
그렇게 후작가 재산을 얻고 남편 니콜라스도 로앙 대주교의 빽으로 근위대로 가는 등 나름대로 탄탄대로를 밟지만 그녀는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55] 결국 그녀는 재산에 대한 탐욕에 눈이 먼 나머지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를 사칭해 로앙 대주교를 뜯어내는 간 큰 짓[56]을 저지르고 결국엔 그 욕심이 스노우볼처럼 커져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이란 대형 사고를 치고 만다.
이후 목걸이 사건으로 채포되어 재판을 받으나 재판 와중에도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화려한 언변과 자극적인 루머를 퍼뜨려서 오스칼과 앙투아네트가 동성연애 관계라든지[57] 앙투아네트가 남자를 침실로 항상 여러 명 불러들이고 있다는 등의 내용으로[58] 청중들을 현혹시킨다. 때마침 왕가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던 시기라 귀족과 국민들은 잔느의 말을 믿게 되었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잔느는 어깨의 인두로 죄인의 상징이 찍히는 극형을 받게 된다. 이 때 필사적으로 자신은 무죄라고 악을 쓰며 집행관들을 물어뜯는 등 독한 모습을 보여 청중들까지도 저럴 정도면 진짜 죄가 없는 거 아니냐고 의심하게 만든다.
그래도 결국 감옥에 갇히지만 간신히 탈옥하고 그 이후에는 은둔하여 돈을 벌기 위해 "여자의 일생"이라는 책[59]을 내어 왕비를 모함하는 무시무시한 짓을 저질렀다. 그래도 하나 남은 가족인 로잘리에겐 애정이 남아 있었는지 도피처에서 로잘리에게 편지를 보내고 로잘리는 언니가 무사하다는 것에 안도하지만 그도 잠시, 점점 대담해지는 잔느의 행동에 고민하다가 결국 잔느 체포 명령을 받은 오스칼에게 편지를 넘기고 그 결과 근위대에게 습격당한다. 자신을 찾아온 오스칼에게 장소를 알려준 것이 로잘리냐고 묻자 오스칼은 로잘리가 아니라고 거짓말을 해준다. 이에 이 세상에서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남아있어서 다행이라며 안심하는 모습을 보인다.[60]
모든 걸 포기한 그녀와 달리 남편이던 니콜라스가 남편과 자신을 체포하기 위해 도피처 안으로 들어온 오스칼을 죽이려들자 니콜라스를 뒤에서 칼로 찌르며 '그만해, 오스칼을 죽여봤자 우리가 구제되는 것도 아니잖아, 그보다 나랑 같이 죽어줘'라고 말하며 그를 막는다, 그리고 잔느는 죽어가는 니콜라스를 안고 지하로 내려가 화약으로 자폭하여 삶을 끝낸다. 이 때 화약을 점화시켜놓고 폭발하기 전까지 니콜라스에게 '혼자가긴 외로워서 니콜라스 당신과 함께 가고 싶었다, 용서해 줘'라고 말하며 진심으로 사죄하는데 니콜라스가 자신을 죽였음에도 원망하긴 커녕 '괜찮아, 잔느 넌 내 최고의 여자였다, 사랑해'라고 말하자 크게 감동하여 니콜라스에게 키스를 하며 최후[61]를 맞이한다.
참고로 역사상의 잔느 드 라모트는 영국으로 도망갔기 때문에 오스칼이 쫓아갈 수 없지만, 그 대신 빚쟁이들에게 쫓긴 끝에 투신자살했다. 여담이지만 눈물점이 있어서 그런지 아내의 유혹에서 민소희로 신분 변경 한 구은재와 비슷하게 생겼다. 하는 짓도 별반 다를 게 없다.
4.6. 니콜라스 드 라 모트
니콜라스 드 라 모트 (Nicolas de la Motte) |
원판 성우 이케미즈 미치히로 |
비디오판 성우 오세홍 |
KBS판 성우 최병상 |
EBS판 성우 홍진욱 |
역시 역사상의 잔느의 남편. 잔느에게 고백하여 그녀의 동의를 얻은 뒤로 잔느의 수 많은 악행에 가담했다. 여기서 니콜라스도 악인이지만 잔느의 도를 한참 넘은 악행에는 몹시 당황하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잔느를 사랑하는 마음에 군말 없이 잔느를 따랐다. 잔느 덕분에 로앙 추기경의 빽을 얻어 오스칼이 지휘하는 근위대에 들어갔지만 형편없는 행동 때문에 질타만 들었다. 나중에 잔느의 도피처에서 결전을 벌일 때 오스칼의 목을 조르며 위기에 몰아넣었으나, 모든 것을 자포자기한 잔느가 등에 칼침을 꽂아 사망한다. 그래도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그에게 혼자 가기 외로워서 니콜라스 널 데려간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잔느에게 죽어가면서도 미소지으며 "괜찮아, 너는 최고의 여자였어. 그만큼 사랑했어."라고 원망하기는 커녕 조금도 미워하지 않고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걸 보면 잔느를 진심으로 사랑한 모양이다. 잔느도 니콜라스의 말을 듣고 울면서 정말이냐며 진심으로 감동했고 고맙다고 말하며 마지막 키스를 하고 폭발에 휘말려 함께 최후를 맞이 했다.[62]
자신이 사랑한 여자를 일편단심으로 사랑했고 여자를 진심으로 감동시킬 수 있는 그의 행보는 일부 시청자들에게 비록 악역이지만 멋진 녀석이라며 호평을 받은 캐릭터였다. 하지만 실존인물인 니콜라스는 빚쟁이에게 쫓기다 투신자살한 아내와 달리 재혼까지 하고 76세 천수를 누리며 편히 살다가 갔다.
- 루이 드 로안 추기경(대주교)
잔느에게 속아 목걸이 사건에 연루된 인물. 성직자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호색한이었는데 하필 앙투아네트 왕비를 연모해서 속앓이를 한다. 앙투아네트 또한 로앙의 지저분한 사생활을 익히 들은 바가 있었기 때문에 베르사유 궁에 출입도 금지시킬 정도로 터부시했는데 이 사정을 안 잔느는 로앙이 돈이 많다는 걸 이용해서 앙투아네트가 은밀하게 로앙을 만나길 원한다고 속여 로앙이 왕비에게 선물로 줄 목걸이 대금을 지급하게 만들고 앙투아네트를 닮은 장님 소녀를 섭외해서 은밀한 만남을 주선하자 거기에 한 줌의 의심도 하지 않고 왕비의 사인을 위조한 계약서에 속는 등 여러가지로 멍청한 인물. 이후 앙투아네트가 여전히 차갑게 대하자 목걸이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나라 전체가 발칵 뒤집혀서 왕족을 능멸한 죄로 재판정에 오른다. 그러나 가장 무고하고 최대의 피해자였던 앙투아네트가 국민과 귀족들에게 미운털을 박히던 시기라 로앙 추기경은 성직자로서의 위신을 지키지 않고 왕족을 기만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죄로 판결이 나며 청중들의 대환영을 받게 된다.
5. 마리 앙투아네트의 주변 인물
5.1. 메르시 백작
메르시-아르장조 백작 플로리몽 클로드 (Florimond Claude, Comte de Mercy-Argenteau) |
원판 성우 무라코시 이치로 |
비디오판 성우 김준 |
EBS판 성우 하성용 |
실존인물이며 메르시 백작은 긴 작위명을 줄여부른 것으로 본명은 메르시-아르장조 백작 플로리몽 클로드다. 본래 프랑스가 아닌 벨기에 리에주 출신의 오스트리아 귀족 겸 대신으로 마리아 테레지아가 막내딸 마리 앙투아네트를 프랑스로 시집보내면서, 어린 딸에게 적절한 충고를 할 수 있고 자신에게도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할 수 있는 보좌역을 겸하여 대사로 발령보낸 사람이다. 덕분에 프랑스에 장기파견되었다.
작중에서도 왕세손비가 된지 얼마 안 돼서 철부지였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뒤바리 부인을 견제하려던 루이 15세의 세 딸들에게 이용당해, 뒤바리 부인과 신경전을 벌인 끝에 기어이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대립으로까지 이어질 위기에 처하자 꽤나 고생하며 어떻게든 무마하려고 애쓴다. 또 오스칼처럼 마리의 옆에서 충고를 아끼지 않는데 마리가 특유의 성격 탓에 말을 안 들어먹어서 은근 쩔쩔맨다. 다만 좀 전개가 진행되고 나니 공기가 되었는데 아래 나온 노아이유 백작부인도 비슷한 처지다.
실제 역사의 메르시 백작은 프랑스 혁명 당시 합스부르크 가문에게 마리 앙투아네트의 구명을 열심히 청원했으나 합스부르크측은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63] 여하튼 프랑스 혁명 이후에도 생존해서 나중에 영국의 오스트리아 대사로 임명되었고 영국에서 사망하였다.
5.2. 노아이유 백작부인
노아이유 백작부인 안 드 아르파죵 (Anne d'Arpajon, Comtesse de Noailles) |
원판 성우 무나카타 토모코 |
EBS판 성우 정미라 |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로 시집왔을 때부터 시중을 든 귀족 부인. 당시 프랑스 궁중예법의 몇몇 사소한 것들이라도 룰을 바꾸거나 취소시키지 않는 엄격함 때문에 마리 앙투아네트에게서 마담 에티켓이라고 불렸다. 원작과 애니메이션 둘 다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프랑스 혁명 때 1794년 6월 24일에 남편과 함께 단두대에서 사형당했고 그 뒤 일가 친척과 관련 인물들도 똑같은 운명과 마주했다고 한다.
다만 이건 정사에서의 이야기고 베르사이유의 장미 원작과 애니에서는 혁명 이후의 상황이 나오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6. 자르제 家
6.1. 자르제 백작
레니에 드 자르제 백작 (Regnier de Jarjayes) |
원판 성우 우츠미 켄지 |
KBS판 성우 김규식 |
EBS판 성우 홍진욱 |
게다가 앙드레의 할머니가 앙드레의 눈이 실명한 걸 알면 분명히 주인님은 거액의 수술비를 부담할 거라며, 지금까지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았다며 앙드레의 실명 사실을 숨기도록 하거나 부하들과 하인들도 자르제 백작을 잘 따르는 걸 봐선 고용인에게도 자상한 고용주였던 걸로 추정된다. 특히 앙드레 그랑디에에 대해선 신뢰하면서 많이 아끼는 편이었다. 물론 오스칼이 삼부회의장 때 왕족편에 서지 않아서 가문이 망할 위기에 몰리자 오스칼 먼저 죽이고 나도 죽겠다를 시전할 때 앙드레가 말리자 앙드레의 감정을 알고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엔 앙드레와 오스칼의 사이를 인정하며, '네가 귀족이기만 했어도 널 오스칼과 결혼시켰을거다'라고 그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67]
대대로 프랑스 왕실을 호위했던 유서깊은 자르제 백작가의 가주였으나 후계자인 아들이 아닌 계속 딸을 얻었고 마지막 희망[68][69]으로 얻은 오스칼도 딸이었다. 이후 아들을 원했던 마음과 우렁찬 딸의 목소리를 듣고 막내딸을 오스칼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검술뿐만 아니라 사관학교를 보내는 등 남자이자 군인으로서 살아가게 했다.
그러나 불안한 프랑스 정국을 눈치채고 오스칼이 평온하게 살기 바래 제로델의 청혼을 받아들이는 등 여자로 만들려고 했다가 결국 실패한다. 그후 격동기의 프랑스에 딸의 위태로운 운명을 직감해 자신이 딸에게 저지른 행동을 후회하지만 오스칼은 오히려 남자로 살게 해서 많은걸 체험하게 해준 아버지라며 감사해한다.[70] 이후 오스칼은 부조리한 프랑스 현실에 의문을 품고 혁명에 가담하기 위해 아버지의 곁을 떠나고,[71] 나중에 이를 알게 된 자르제 장군은 오스칼이 마지막으로 그린 초상화가 작별을 의미함을 알고 눈물을 흘린다.
혁명 이후에도 왕가를 배신한 대다수의 귀족들과 다르게 프랑스에 남아 마리 앙투아네트의 탈출을 도모하며 로잘리의 요청을 받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브레게의 시계를 주고, 로잘리에게 마리 앙투아네트의 유품을 전달 받아 그 유품을 해외에 있는 페르젠과 왕제들, 메르시 백작에게 전달하는 등 끝까지 왕실의 충신으로 남았다.
참고로 마리 앙투아네트의 부모인 프란츠 1세&마리아 테레지아 부부와 오스칼의 부모의 젊은 시절을 다룬 에피소드편 파이널에서 자르제 장군의 젊은 시절이 등장했는데, 페르젠, 제로델을 위협할 정도에 딸 오스칼을 똑닮은 작중 최고 수준의 미남자였다.
실존인물인 프랑수아 오귀스탱 레니에 드 자르제(François Augustin Regnier de Jarjayes)를 모티브로 했다. 이 사람은 알렉상드르 뒤마(아버지)의 첫 소설인 '붉은 집의 기사'(Le Chevalier de Maison-Rouge)에서도 등장한다. 실존인물은 1745년생이라서 나이를 조정한 듯 보인다.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아내가 죽어서 두 번 결혼했다. 1771년에 장-피에르 앙투안 마리 빅터 드 레니에(Jean-Antoine Pierre Marie Victor de Reynier)라는 이름으로 그르노블에서 태어났다가 죽은 아들이 있었으나, 사실 파리의 도서관에서 발견된 출생 증명서에 따르면 성별 부분에서 '여자'가 '남자'로 대체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케다 리요코가 이 부분을 보고 오스칼의 아버지로 삼기로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6.2. 자르제 백작 부인
자르제 백작 부인 (Madame de Jarjayes) |
원판 성우는 카가와 코우코 |
KBS판 성우 정옥주 |
외전 에피소드편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결혼 전 풀네임은 '조르제트 드 라 투르'. 원래는 신성로마제국 내 로렌 공국 출신[74]의 몰락 귀족 가문의 딸이었으며, 궁중 화가였던 증조 할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였다. 당시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지우 분인 유리제스[75]와 약혼하게 되나 레니에의 구혼과 그녀의 신분이 밝혀지면서 레니에와 결혼하여 자르제 백작 안주인이 된다. 당시 레니에 드 자르제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그 대가로 다시는 붓을 들지 않겠다고 하느님께 맹세하고, 결혼 후에는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6.3. 마론 그랏세
마론 그랏세 (Marron Glacé, Nanny) |
원판 성우
쿄다 히사코 신작 극장판 성우 타나카 마유미 |
KBS판 성우 이경자 |
EBS판 성우 홍소영 |
여담이지만 원작에서 작중 유일하게 제4의 벽을 돌파하시거나 " 아가씨가 태어났을 때 그렇게 울음소리가 우렁차지만 않았어도... 자세한 것은 베르사유의 장미 1권을 보시라." 또한 은근한 유머가 내재된 이름의 소유자. 마론 그랏세란 사실 밤으로 만든 프랑스의 고급과자 이름이다.[77]
6.4.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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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르제 가문의 주치의
말 그대로 자르제 가문의 주치의. 오랜 세월 가문 주치의로 있어 와서, 오스칼이나 앙드레가 부상을 입거나 하면 항상 이 사람을 찾아간다. 흑기사 사건으로 한쪽 눈을 실명한 앙드레에게 양쪽 다 시력을 잃을수 있음을 경고했고, 폐렴을 앓던 오스칼에게 요양을 할것을 간곡하게 부탁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이 사람이 나올 때는 무거운 분위기가 이어지다 보니, 배경도 촛불 하나만 켠 어두컴컴한 방안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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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칼의 언니들
맏언니 오르탕스 드 로랑시 외엔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다.[78] 오스칼과 달리 딸로 키워졌기 때문인지 전형적인 귀족 아가씨들. 당시 많은 귀족소녀들이 그랬듯이 15살 전에 모두 시집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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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루 드 라 로랑시
오스칼의 맏언니 오르탕스의 딸이자 오스칼의 조카. 베르사이유의 장미 외전의 주인공이며 나이는 6살. 기본적으론 아주 말괄량이에 장난치기 좋아하는 성격이나 범상치 않는 통찰력과 지혜를 가졌기에 묘한 매력을 가진 소녀. 자르제 가에 자주 찾아오며 로자리와 친구가 되고 오스칼은 물론 외조부인 자르제 장군도 루루를 귀여워한다. 흡혈귀 편과 외전 9권에서 주연으로 나오며 작중에 나온 사건들을 해결하는 범상치 않는 행적을 보여주며 오스칼도 루루의 이런 능력[79]을 믿고 그녀를 돕기도 했다.
외전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민중들에게 공격받지만 흥분하는 어른들 앞에서 침착하게 행동해 그들을 진정시켰고 이후 자신들의 소식을 들은 오스칼의 부하였던 알랭의 도움으로 무사히 망명한다.
7. 부르봉 왕가와 합스부르크 왕가
7.1. 루이 16세
루이 16세 |
원판 성우 야스하라 요시토 |
KBS판 성우 홍승섭 |
EBS판 성우 홍범기 |
그래도 부부사이는 나쁘지 않아 마리 앙투아네트와의 사이에서 아이들도 낳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아내를 사랑하는 애처가적인 면모가 지나쳐서 마리의 부탁이라면 다 들어주고, 방임하는 바람에 마리가 페르젠과 사실상의 불륜을 벌여 평판을 떨어뜨리고 이후에도 국정을 등한시하고 측근들끼리 모여 지내거나 국고로 사치와 도박을 벌이는 것을 전혀 막지 못했다.[82] 이런 우유부단한 행동과 방임은 결국 아내와 자신을 포함한 프랑스 왕실에 대한 불신과 실망으로 이어지고 결국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기 사건으로 불만이 제대로 터지고 만다. 게다가 일국의 왕으로서도 매우 무능해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도 우유부단하게만 행동하고 프랑스 혁명으로 왕실의 존폐 자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도, 이런 모습은 변하지 않아서 루이 16세에게 충성하던 왕당파 대신들마저 완전히 질려버려 루이 16세 일가를 버리고 자기들끼리 살길을 찾아 도망칠 지경이었다.
이처럼 온후하고 소박하면서도 선량한 인품이지만 아내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보다 강력한 개혁과 변화가 요구되는 당대 사회의 상태와 어려운 민중들의 처우 개선 등에 제대로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통해, 결국 루이 16세도 앙시앙 레짐으로 표현되는 당대 지배계층이 지니고 있던 명확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고 실제 역사에서처럼 개인적으로 착해도 난세의 지도자감에는 알맞지 않은 사람이라고 묘사된다.
왕위를 노린 오를레앙 공작이 암살을 시도하기도 하였으나 살아남았으며, 할아버지인 루이 15세가 사망한 후 뒤를 이어 프랑스의 왕이 된다. 하지만 왕이 된 후 자신이 프랑스를 잘 이끌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 매우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83] 역사대로 자물쇠 제작을 취미로 하였기에 대장간에서 자물쇠를 만드는 장면이 자주 나왔으며, 작중 전개가 오스칼과 마리 앙투아네트 위주로 돌아가며 앙투아네트가 사랑한 사람이 페르젠이기 때문에 묘하게 비중이 적다.
다만 특유의 우유부단하고 군주라 치기엔 부족한 여러 개인적 문제들 탓에 망해가는 프랑스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는 모습이 혁명이 본격화되는 후반부에 점차 드러나기 시작한다. 뒤늦게야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든 나라의 위기를 수습하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겨우 기회를 마련한 삼부회도 본인의 무능함과 시대착오적 사고관 때문에 허사로 만들어버린다. 결국 왕실에 대한 증오가 쌓이고 쌓인 끝에 마침내 프랑스 혁명이 터지고 목숨조차 보장 못하는 살얼음판 같은 현실이 두려워서 아내, 자 녀, 여동생과 함께 프랑스를 버리고 오스트리아로 도주하려고 하지만[84] 우연과 관련자들의 무능이 겹친 끝에 실패한다. 이에 왕과 왕비의 몸으로 조국을 버리고 도망치려고 한 자신과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분노한 시민들한테 온갖 욕설과 위협을 당하며[85] 파리로 끌려가고 가족들과 함께 폐위되어 탕플 탑에 유폐된다. 바렌 사건의 실패로 그나마 존재했던 소수의 지지세력마저 몰살당하거나 등을 돌리면서 사실상 자신과 아내의 최후는 이때 결정되자[86], 모든 걸 체념하고 끝까지 충성을 바치며 도와주려는 페르젠에게 최후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며 사양하고 그의 우정에 감사를 표한다.
결국 국민투표에서 찬성 361 대 반대 360으로 단 1표 차이에 의해 1793년 1월 21일 처형이 결정되고, 애니메이션 마지막화에서도 바렌 사건 이후 감금당한 뒤 똑같이 1표 차이에 의해 처형이 결정되어 단두대로 끌려간다. 사형 전날에 다시 만난 가족들이 절규하자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아들 루이 샤를에게 아비가 죽더라도 복수하려는 생각은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이후 단두대 앞에 서서 자신의 피가 프랑스의 미래에 기틀이 되길 바란다는 유언을 남기고 의연하게 처형당한다. 감옥 안에서 이 처형 소리를 들은 아내 마리 앙투아네트와 여동생 엘리자베트는 절규한다.
이후 마리는 루이 16세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와의 관계에 대해 사랑이 없는 정략결혼이긴 했지만 아내와 남편으로서 20여년 간을 함께 살며, 자신에게 보여준 루이의 깊은 애정과 성실함은 진실했고 자신 역시 격렬한 연애 감정은 아니었지만 루이를 분명 사랑했다고 회고하고 슬퍼한다.
그리고 9개월 후인 1793년 10월 16일에 아내 마리 앙투아네트도 남편을 따라 처형당하게 되는데 마리는 남편과 다르게 초라하고, 굴욕적인 모습으로 단두대에 오르게 된다. 루이는 정말 밉지만 그래도 한때는 우리 국왕이라는 이유로 가장 좋은 의례용 옷을 입고 화려한 금장 마차를 타고 처형대로 향했고 그곳에서 처형 집행인도 루이에게 나름 예의를 갖추었다.[87]
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런 대우는 일절 없이 단두대에 목이 잘리기 쉽게 그 긴 머리카락도 단발로 잘리고, 두 손이 묶인 채 짐마차에 앉아 처형대로 끌려갔다. 게다가 가는 길 내내 루이 16세의 처형을 엄숙하게 지켜보던 시민들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만은 온갖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다. 거기다 1년 뒤인 1794년 5월 10일에는 여동생 엘리자베트 공주마저 똑같이 단두대에서 처형당하고 차남 루이 샤를도 가족들과 떨어져 혁명군에게 끌려가면서 생사불명이 되고 마지막 남은 딸 마리 테레즈는 부모형제와 고모까지 잃고 홀로 살아남아, 탕플 탑에서 고된 유폐생활을 이어가다가 오스트리아와의 포로 교환으로 외가인 합스부르크 황실에 의탁하지만 혁명에서 겪은 고통으로 냉혹하고 메마른 성격으로 변모하면서[88] 가족 대부분이 불행한 결말을 맞이했다.
전반적으로는 군주로써는 무능했지만 개인적으론 좋은 사람이었던 현실 루이 16세를 잘 묘사했다. 헌데 작화보정을 못 받아서 현실 외모 그대로 나왔다.
7.2. 루이 15세
루이 15세 |
원판 성우 카츠타 히사시 |
비디오판 성우 박상일 |
KBS판 성우 이종구 |
EBS판 성우 임채헌 |
등장 초기에는 절대왕권을 휘두르는 포스있는 군주의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뒤바리 부인의 말에 깜빡 넘어가서 오스트리아와 대립각을 보이는 등, 은근 생각이 짧고 과격한 면모가 있다.
그와 대비되게 절대왕권의 국왕답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듯 했다. 덕분에 뒤바리 부인도 그 빽을 얻은데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과까지 (루이 15세의 압박으로) 받아낸 덕에 기세등등해졌으나, 그가 천연두에 걸렸다는게 밝혀지면서[91][92] 다 죽어가게 된다. 이로 인해 애매하게 목숨이 붙은 루이 15세의 편에 붙느냐, 아니면 차기 왕이 될 루이 16세의 편에 붙느냐는 식으로 귀족들간에도 편이 갈라설 징조가 보이게 된다. 한편 루이 15세가 천연두에 걸린 상항에서도 좀처럼 죽질 않자[93] 귀족들 사이에서는 애매한 교착상태의 지속에 대한 불만이 생기게 된다. 심지어 어떤 귀족은 "그냥 빨리 루이 15세가 승하했다고 입장정리가 됐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도 어디 붙을지 결정을 빨리 할 수 있을테니까."라는 식으로 말하며, 사실상 그냥 빨리 루이 15세가 죽고 루이 16세가 왕위를 승계했으면 좋겠다는 분위기까지 형성되었다. 그나마 루이 15세가 죽질 않길 바라는 뒤바리 부인과 그의 세 딸들이 있었지만 이들도 순수하게 루이 15세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단지 그가 죽으면 자신들의 부귀영화가 끝난다는 사실을 잘 알아서 죽질 않길 바랬던 것 뿐이였다.
끝내 병세가 악화되어 의사들도 추후 치료를 포기하고 목숨이 오늘내일이 된 와중에 그나마 곁을 지키는 뒤바리에게 고마워한다. 하지만 죽기 전 병자성사와 고해성사를 위해 부른 신부가 " 고해성사를 하기 전에, 하느님의 뜻을 어기고 옆에 두셨던 뒤바리 부인을 내쫓으십시오"라고 하자, 어쩔 수 없이 뒤바리 부인에게 출궁을 명한다. 하지만 끌려나가는 뒤바리를 병상에서 부르는 걸 보면, 나름대로 미련이 깊었던듯.
이후에도 안 죽고 골골대면서 목숨을 겨우 이어가고 있었으나 결국 사망한다. 이때 왕이 죽었는데도 슬퍼하기는커녕 기뻐하면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부부에게 달려가는 귀족들이 압권이다.[94][95] 이후 오스칼은 루이 15세라는 배후를 잃은 뒤바리 부인이 쫓겨나는 모습을 보고, 또한 일국을 호령하던 국왕의 유해를 운구하는 초라한 행렬에 동행한다. 살았을 때와 죽었을 때의 대우가 이렇게 다른 이중적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인지, 루이 15세와 그닥 친분이 깊다고 할 수 없던 오스칼마저도 서글픈 마음이 들어 눈물까지 흘리고 만다.
7.3.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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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테레지아
마리 앙투아네트의 어머니. 사실상 마리 앙투아네트가 뒤바리 부인과 신경전을 하게 된 원인 중 하나.[96]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란츠 1세의 아내[97]이자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가문의 여제로서 오스트리아와 신성 로마 제국을 프랑스와 맞먹는 강대국으로 이끈 명군이며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평화조약을 위해 막내딸 마리 앙투아네트를 프랑스로 시집보낸다. 그러나 힘든 일을 싫어하고 감정에 솔직한 철부지 막내딸에 대한 걱정과 당시 프랑스의 불안한 현실을 직감하고 측근인 메르시 백작까지 프랑스로 보내며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받는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의 불길한 예감대로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치와 도박을 일삼고 프티 트리아농에 틀어박혀 국정에서 멀어지는 바보같은 행동을 벌이자, 충격을 받고 쓰러지고 이로 인해 몸져 누워 골골대는 상태에서도 막내딸의 안위를 걱정하다가 결국 마리의 행복을 기도하고 세상을 떠난다. 큰 버팀목인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가 사망하자 마리 앙투아네트도 매우 슬퍼하고 마리아 테레지아의 죽음 이후로 불운의 그림자가 마리에게 드리우게 되었다는 해설도 깔리는데 작중 전개와 실제 역사를 대조해보면 매우 정확하다.[98]
작중에서 나온 엄격하지만 자상한 모습과 반대로 실제 역사의 마리아 테레지아는 친자식들간에도 편애와 차별을 일삼는 결코 좋은 부모가 아니었다.[99] 가장 차별받았던 딸 마리아 아말리아는 파르마로 시집가자마자 어머니와 절연했으며, 마리아 테레지아도 그 보복으로 아말리아의 오스트리아 귀국을 막기도 했다. 이러한 마리아 테레지아의 편애와 차별은 그녀의 사후 자식들간의 사이가 뒤틀리는 결과를 초래했다.[100] 다만 작중에서처럼 오스트리아의 대의를 위해 어린 딸들을 외국 왕실로 정략결혼보낸 것만큼은 두고두고 미안해하고 이에 대해 보상하려고 노력했으며[101], 특히 막내딸 마리 앙투아네트를 프랑스로 시집보낼 때 그녀에게 불행을 안겨주는게 아니냐고 걱정하며 결혼 전에 단둘만의 시간을 길게 가질 정도로 많은 걱정을 한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도 사돈인 루이 15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메르시 백작에게 앙투아네트의 행복한 나날은 이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원판 성우는 키타무라 마사코, KBS판은 성선녀.
참고로 작가인 이케다 리요코가 그린 일러스트 중에는 10대 시절의 초상화 모습대로 그린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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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버전도 있으며 젊은 시절 모습은 딸과 견줘도 꿀리지 않는 미녀이다(!) 다만 어릴 적이나 성장한 뒤나 인상이 화사한 딸 마리 앙투아네트와 달리 마리아 테레지아는 조금 더 뚜렷하고 도도한 인상이고 젊었을적 성격은 지금과 달리 딸과 맞먹는 말괄량이었다. 외전 편에서 신하를 따돌리고 남편 될 사람과 데이트를 하고 있고 신하는 이런 상전을 찾느라 고생하는 모습이 볼만하다. 즉 모전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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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테레즈 샤를로트
성우는 스가야 마사코.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의 첫 자식. 첫아이인 마리 테레즈의 탄생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많은 안정감을 주었으며, 당시 날이 갈수록 떨어지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인기를 한때나마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 오스칼에게 안기면서 ‘오시칼 오빠라고 부르는 것이 원작에서 언급된다. EBS판 성우는 전해리. 동생들에 비해서 묘하게 비중이 적다.[102] 이후 외전편에서 프랑스 혁명 정부와 오스트리아의 포로 교환으로 성장한 모습으로 잠깐 등장하는데 오랜 감옥 생활과 가족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과거의 밝은 모습은 사라지고 차갑고 매서운 성격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 재판에서 어머니에 대한 거짓 증언을 강제로 하고만 남동생 루이 17세까지 죽여버리고 싶다고 할 정도로 싸늘해지고 말았다. 이후 외가인 오스트리아로 망명하여 외사촌 프란츠 2세 부부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마침 스웨덴 사절로 온 페르젠과 스쳐지나간다. 페르젠은 한눈에 마리 앙투아네트의 딸임을 알아보고 행복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남몰래 오열하지만 마리 테레즈는 페르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어디선가 만난 사람같다고만 생각하며 무심히 지나쳐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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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조제프
성우는 마츠오 요시코.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의 장남. 누나 마리 테레즈와 동생 샤를과 사이좋게 지내며 특히 오스칼에게 호감[103]을 보였다.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삼부회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을 대신해 삼부회를 가는 동생 루이 샤를에게 제대로 보고 오라고 조언을 하는 황태자로서 굳건한 책임감을 가진 성격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척추 카리에스에 걸려 역사대로 어린 나이에 죽게 된다. 당시 부르봉 왕실과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반감이 하늘을 찔렀던 평민들도 루이 조제프의 죽음에 애도를 표할 정도로 어린 나이에도 세간의 많은 존경을 받았으며, 어머니 마리 앙투아네트는 장남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루이 조제프의 장례식조차 제대로 치를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프랑스의 재정 상태를 마주하고 나서야 자신의 사치를 후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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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샤를[104]
성우는 미타 유코.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의 셋째이자 막내. 비중은 별로 없다. 그러나 한참 마리 앙투아네트의 평판이 안좋아지고 그녀와 페르젠의 염문이 퍼질 무렵 태어났기 때문인지, 원작에서는 일반 귀족들부터 왕위를 노리는 숙부 들까지 "페르젠의 사생아가 아니냐"며 수군거린다. 이후에도 바렌 사건의 실패 후 분노한 민중들 앞으로 끌려와 "넌 왕세자가 아니라 페르젠의 사생아다"라는 폭언을 면전에서 듣는 수모를 겪는다. 마지막에 아버지 루이 16세가 처형된 뒤 어머니에게서 강제로 떼어져 혁명파에게로 넘어간다. 이후 혁명파의 손에 크면서 혁명가를 따라 부르며 "탑에 갇힌 사람은 죄인"이라는 말을 듣자 자기 어머니인지도 모르고 "그러면 빨리 처형되면 좋겠다"고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씁쓸한 모습이 나온다.
실제 역사에서 루이 샤를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혁명 정부에 의해 부모형제들과 떨어져 탕플 탑의 감옥에 홀로 수감되었다. 이내 마리 앙투아네트의 재판에서 어머니가 자신을 겁탈했다고 증언하는 바람에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형 선고를 받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루이 17세의 이 증언은 당시 정황을 보면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사형을 선고할 만한 결정적인 물증이 없던 혁명 정부가 어린 아이인데다, 가족들과 떨어지고 학대를 받아 정신 상태도 불안정한 루이 17세를 부추겨 거짓 증언을 종용했다는 게 정설이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 이후 루이 샤를은 명목상 프랑스의 국왕 루이 17세로 즉위했지만, 남은 가족들과 재회하지 못하고 계속 탕플 감옥에 수감된 채로 열악한 환경에서 온갖 학대를 당했다. 결국 이를 버티지 못한 루이 17세는 부모님이 처형된 지 2년 후인 1795년에 고작 10살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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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아델라이드 드 프랑스(Marie Adélaïde de France)
루이 15세의 6번째 자식이자 4녀. 루이 16세의 고모며, 주변에서 아델라이드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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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루이즈 테레즈 빅투아르 드 프랑스(Marie-Louise-Thérèse-Victoire de France)
루이 15세의 7번째 자식이자 5녀. 루이 16세의 고모며, 주변에서 빅투아르로 부른다. EBS판 성우는 정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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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필리핀 엘리자베트 쥬스틴 드 프랑스(Sophie Philippine Élisabeth Justine de France)
루이 15세의 8번째 자식이자 6녀. 루이 16세의 고모며, 주변에서 소피로 부른다. EBS판 성우는 전해리.
위의 2명과 같이 묶여서 루이 15세의 왕녀들이라 취급되며, 셋 모두 아버지의 애첩인 뒤바리 부인과 사이가 안 좋다. 그래서 황태자비 마리를 충동질해서 뒤바리 부인에게 말을 걸지 않는 등 그녀의 심기를 자극시키도록 유도한다.[105]
그러나 뒤바리 부인이 총애를 이용해 루이 15세에게 마리로 하여금 뒤바리에게 말을 걸라는 어명을 내리게 만들고, 결국 마리가 이에 굴복하자[106] 입지가 위험해진다. 이후 루이 15세가 죽어가자 셋이서 죽으면 자기들 지위도 끝이라고 불안해한다. 그 뒤엔 잉여. 그나마 이들 중 한 명이 마리, 루이 16세, 오를레앙 공, 드 게메네 공작 등 중요 인사들과 동석하는 장면이 있다.
사실 이름 자체가 잘 언급되지도 않고 셋이서 한 뭉텅이처럼 몰려다녀서 캐릭터 각각은 몰개성하다.
나중에 아버지 루이 15세가 죽게 될 각이 잡히자 그의 사망을 걱정하면서 속으로 한다는 말이 우린 폐하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라는 투의, 결국 자신들의 지위와 영화가 흔들릴 것을 걱정하는 정도의 내용이었다. 이들이 자기 아버지를 뭘로 보고 있는지 드러내는 부분. 놀랍게도 그들과 정치적으로 대립하던 뒤바리 부인 역시 루이 15세가 죽으면 자기 자리랑 부귀영화는 어찌되냐는 식으로 걱정하던 걸 보면 극과 극은 통하는 걸지도.
참고로 셋이서 언제나 같은 옷만 입고 나오는 단벌숙녀들이시다.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귀족 부인들이 더 화려한 옷을 입고 더 예쁘게 그려질 정도로.
8. 기타
8.1. 디안느 드 수아송
디안느 드 수아송 (Dianne de Soisson) |
원판 성우 오카모토 마리 |
비디오판 성우 최문자 |
EBS판 성우 전해리 |
8.2. 샤를로트 드 폴리냑
샤를로트 드 폴리냑 (Charlotte de Polignac) |
원판 성우 코미야 카즈에 |
KBS판 성우 강희선 |
EBS판 성우 장은숙 |
사실 자살한 이유도 사모하는 오스칼이 아니라 페도필리아 공작에게 시집간다는게 싫어서... 언젠가 오스칼처럼 멋진 사람에게 시집가고 싶었다며 우는 걸 보면 안쓰럽다. 자살이지만 당시 자살은 장례도 못 치르는 등 죽어서도 푸대접을 받아서 사고사로 처리된다. 참고로 원작에서는 투신 직전 오스칼이 간신히 샤를로트를 붙잡았지만 그 전에 폴리냐크 부인의 함정에 빠져 입었던 부상탓에 제대로 잡지 못한 사이에 뛰어내려 죽었다.[109]
그런데 추가하자면 두 사람이 서로 같은 핏줄이 섞인 줄을 모르던 때, 그러니까 10화 후반대에 무도회에 로잘리가 등장했고 처음 두 사람이 대면했을 때에는 로잘리를 의심한 샤를로트의 신분을 따지는 질문에 귀족들이 어머니를 부르는 어머님(おかあさま오카사마)이 아닌 엄마(かあさん카상)라고 얼떨결에 말하는 바람에 "당신, 귀족이 아니군요?"라며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로잘리가 잘 넘어가긴 했으나, 다음회에서 로잘리가 더욱 화려하게 등장하여 조명을 받자 폴리냑 백작 부인에게 로잘리가 '촌뜨기'였다는 표현을 쓴다.
그리고 로잘리가 앙투아네트 왕비에게 인사를 먼저 받자 분해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솔직히 그리 심성이 곱지는 않은 듯. 물론 단순히 로잘리를 향한 오스칼을 사모하는 마음에 생긴 어린 마음의 질투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110] 자살 후에는 급 동정심이 일지만.
두 사람은 자매로서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보기도 전에 샤를로트가 베르사유 궁전의 탑 위에서 떨어져 사망해 버린다.[111] 그것을 보고 로잘리는 오스칼이 이야기를 했을 때 외면했던 동생의 존재를 느끼며 동생인 샤를로트를 가엾이 여겨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린다. 그리고 어린 동생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귀족에 대한 염증이 더 강해지게 된다. 그나마 원작에서는 로잘리가 울고 있는 샤를로트를 위로해주고 샤를로트가 과거의 무례를 사과하는 등 약간의 교류가 있었으나 애니판에서는 대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상태에서 샤를로트가 사망한지라...[112]
실존인물인 폴리냑 백작부인에게는 아들[113]만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딸이 하나 있어서 기이슈-그라몽 공작 가문에 시집보낸다. 물론 여담이지만 부부 간 나이 차는 13살인데 이 딸의 손자인 아게노르 드 그라몽은 나폴레옹 3세의 친구로 외무장관을 역임했지만 비스마르크의 엠스 전보 사건에 낚이게 된다. 문서 참고.
8.3.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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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 라 몰리에르(Nicole la Morlière)
EBS판 성우 장은숙. 잔느와 로잘리의 어머니.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두 딸을 열심히 키웠으나 허영끼가 있던 큰딸 잔느가 자신과 다투고 집을 나간 것에 충격을 받아 자리에 눕게 된다. 이후 로잘리를 마중하러 거리로 나왔다가 폴리냐크 백작부인의 마차에 치여 사망하고 만다. 죽기 직전 로잘리가 자신의 친딸이 아니며 생모가 귀족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114]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발루아 가문에서 일하던 하녀로 자신의 주인과의 사이에서 딸 잔느를 낳았으며 그 주인이 연인이었던 폴리냐크 백작부인과의 사이에서 또 로잘리를 낳은 것.[115] 당시 시집가지도 않은 처녀의 몸으로 사생아를 낳은 폴리냐크 부인의 처지를 이해하고 기꺼이 로잘리를 거두어서 친딸처럼 키웠던 것이다. 폴리냐크 부인은 나중에야[116] 자신이 마차로 치어죽인 사람이 자신에게도 잘 대해주고 로잘리까지 맡아준 니콜이라는 사실을 알고 죄책감에 휩싸인다.
계모 기믹의 캐릭터이긴 하지만 클리셰적으로 나오는 나쁜 계모들과 달리 이쪽은 진성 대인군자에 선인. 폴리냑 부인을 가여이 여겨 로잘리를 맡은 뒤 살림이 어려워진데다 몸까지 아파오는 상황이었는데도 친딸 잔느와 수양딸 로잘리를 차별없이 기르며, 로잘리의 상냥하고 착한 점을 칭찬하거나 잔느보고 로잘리를 본받으라 할 정도. 이 때문에 잔느와 로잘리는 자신들이 이복자매라고는 아예 생각도 못 했으며 로잘리는 폴리냑 부인이 자신의 생모인 것을 알았음에도 '내 어머니는 길러주신 어머니 한 분뿐이다'라고 한다.
어째서인지 친딸 잔느는 자신과 인성이 전혀 안 닮았는데 수양딸 로잘리가 그녀의 훌륭한 인성을 빼다박은 채로 자라났다. 잔느는 오히려 인연이 거의 없던 로잘리의 친모인 폴리냑 백작부인과 많은 부분에서 더 비슷한 편이다.[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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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보 백작
실존 인물. 원작 2권에서 나오며 몰락한 귀족 신분이지만 여러 여자들과 연애관계를 맺고 술과 도박을 하는 등 방탕한 생활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로잘리에게 하룻밤 집에 같이 가면 돈을 듬뿍 주겠다는 말을 하는데, 일단 로잘리는 미라보 백작에게 당하지 않고 겨우 그 상황을 빠져나온다.[118] 그뒤로 소식이 없었다가 삼부회 편에서 평민 대표로 등장하며 로베스피에르를 지지해주고 평민 대표를 내보내려는 국왕의 사자에게 "국왕에게 전하는게 좋을거야 우리는 절대로 떠나지 않는다고 말야"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등 확고한 활약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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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상
성우 키타무라 코이치. 잔느에게 속아넘어가서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기 사건의 원인이 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맡기게 된 인물. 본인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에게 이 물건을 팔 수 있겠다고 기대했으나 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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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 올리버
성우는 마츠시마 미노리
눈 먼 젊은 창녀. KBS판에서는 심의 때문인지 점쟁이로 나온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쌍둥이나 클론 수준으로 닮은 외모를 지녀, 잔느가 로앙 대주교에게 사기를 칠 때 그녀를 왕비처럼 위장시키고 만남을 주선하는 식으로 동원한 전적이 있다.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기 사건의 판이 커져서 잔느가 잡힐 위기에 처하자, 잔느는 자신의 재판에서 증인이 될지도 모를 그녀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자세한 사정을 모르고 자기의 사기행각에 동원당한 니콜에 대한 가여움을 느꼈는지 결국 잔느는 망설임 끝에 니콜에게 돈을 주며 오히려 도망칠 것을 종용하나, 끝내 니콜은 잔느와 함께 잡히고 만다.[119]
허나 재판에 동원된 니콜은 사건의 증인으로써 재판에 나오게 되었다가 그만 잔느를 알아보고 말아 잔느가 유죄 확정되는데 공헌하고 만다. 이에 잔느는 그녀를 진작에 처리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 일단 본인은 잔느의 사기행각에 동원당했을 뿐이어서 그런지 무죄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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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칼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원작에서는 갈수록 비극으로 치닫는 후반부에 등장, 마론 그랏세와 티격태격하면서 연애 플래그도 조금이나마 쌓으면서 그나마 개그신을 찍어준다. 외형도 개그 캐릭터답게 과감히 데포르메된 3등신 땅딸보+ 딸기코 조합으로 디자인되었다. 고백하러 들어왔을 땐 마론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 애니메이션은 마론 그랏세와의 감정묘사, 개그신 등을 완전히 덜어내었고, 진지해진 캐릭터 성격만큼 비주얼 또한 데포르메되지 않고 이 만화 세계관상 일반적인 성인 체형으로 디자인되었다. 마론과의 에피소드는 없고, 그저 오스칼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으로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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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시민
의사. 애니메이션 판에서 혁명때 시민군에 있었으며, 베르나르가 부상을 입은 앙드레를 구하기 위해 이중에 의사가 없냐고 물어볼 때 가슴에 총상을 입은 앙드레를 스스로 나서서 진찰했다. 하지만 심장을 관통했으며[120]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무겁게 전해줘야 했다.[121] 나중에 오스칼이 총상을 입고 사망할 적에도 앙드레 진찰 때 가장 먼저 나선 그 의사가 또 나서서 오스칼을 진찰해주지만, 오스칼 역시 손쓸 도리가 없는 치명상[122]을 입고 죽어가는 와중이었기에 치료를 통한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내리며 대신 누가 그녀의 얼굴에 있는 땀 좀 닦아달라고 부탁한다.
그 외에 파리 시민 중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아코디언 비슷한 악기를 연주하는 외발의 사내인데, 짬짬이 등장해서 악기를 연주하곤 했다.[123] 그러나 혁명 당시 혼전속에 휘말려 사망, 그의 아들이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가 누운 관을 센 강에 흘러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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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베르탱
EBS판 성우 전해리. 유명 의상 디자이너이자 실존인물 당시 부르주아 출신으로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전속 모드상.별명은 '패션 장관'.[124]
작중에서 마리의 사치를 보여주고자 등장했으며 실제로 마리 앙투아네트는 베르탱을 통해 편안하며 길이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세 갈레 퍼브의 로브 아 라 폴로네즈 드레스, ‘벼룩색’ 드레스[125] 등 여러 드레스를 선보여서 왕실 문화를 선두주자가 되었다. 한 때 로잘리 라 몰리에르도 그녀의 의상실에 근무할 뻔 했으나 하필 그날 로잘리의 어머니 니콜이 마차에 치여 사망하고 로잘리는 복수를 위해 베르사이유 쪽으로 가게 되어서 흐지부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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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빌리에 후작 부인
EBS판 성우 정미라. 자기 신분을 어필하며 동정을 호소하던 길거리 거지꼴의 잔느를 거둬준 마음 착한 귀족 부인.[126]그러나 블랑빌리에 후작 부인이 그 당시엔 혈통보증서도 없는 잔느의 말만 믿고 거둬줘서 친딸/친손녀처럼 잘 대해주었는데도 불구하고[127] 잔느는 그녀의 직위가 낮다는 이유로 속으로는 그녀를 고깝게 보고 있었다.[128]
물론 잔느가 단순히 배부르게 먹고 잘 사는 것만 원하는 사람이었다면 블랑빌리에 후작 부인 밑에서 사는 것도 만족했겠지만, 강한 출세욕을 지녔던 잔느는 남편 니콜라스와 짜고쳐서(!) 자기에게 잘 대해준 후작부인을 화재 사고로 위장시켜 살해하는 배은망덕한 짓을 저지르고 후작 부인의 유서마저 위조해서 재산까지 가로채버린다. 이 사건을 시발점으로 잔느가 본격적인 악의 길로 진입했는데, 아무래도 잔느가 블랑빌리에 후작 부인을 살해한 사건은 잔느 인생에 있어선 여러모로 분기점이라 할 수 있을듯하다.
참고로 잔느는 자신이 천애고아라고 어필해서 그녀의 밑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했기에, 나중에 사정이 어려워진 로자리가 자신을 찾아오자, 원래 가족이 있었는데 고아라고 구라친게 후작 부인에게 걸려 손해볼게 무서워서 매몰차게 손절 시도를 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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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베르(지르벨)
EBS판 성우 전해리. 오스칼이 드 게메네 공작과의 결투로 근신 처분을 받고 있는 기간 동안 여행 간 지역에 살고 있던 농민의 자식이다. 애니메이션 13회에 나온다.
오스칼과 앙드레가 해당 지역에 머무는 동안 갑자기 병에 걸렸는데, 질베르의 가정엔 아이를 의사에게 대려갈만한 돈마저도 없어서, 질베르의 가족은 질베르를 버릴지 말지[129] 고민하는 상황이었다. 돈 없는 농민 신분에 아이 하나를 치료받게 하려면 얼마 없는 재산이었던 소까지 팔아야할지를 고려해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
오스칼은 죽어가는 질베르를 죽게 만들 수 없다는 일념 하에 직접 질베르를 챙겨서 병원까지 대려다준 후 치료를 받게 해준다. 덕분에 질베르는 다행히 목숨을 구하고 건강해진다. 이후 오스칼은 질베르의 부모로부터 농민들의 비참한 실태를 듣고 왕실과 귀족에게 쥐어짜이는 평민들의 세금으로 잘 사는 귀족인 자신의 처지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로잘리, 베르나르와 위병대 대원들을 통해 평민들의 참혹한 실태와 몽테키스외, 루소 등 여러 계몽사상가들의 서적을 접하면서 프랑스의 구체제에 의문을 품고 본격적으로 자신도 혁명에 몸을 바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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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원작에서만 등장한다. 6권에서 짤막하게 등장. 라 페르 포병연대 소위로 죄드폼 맹세 사태로 인해 심란해 하던 오스칼이 우연히 만나서 관등성명을 밝힌다. 오스칼은 그 눈빛이 독수리의 제왕의 눈빛이라며 매우 비범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권의 맨 마지막에 황제에 오른 모습이 한 컷 등장한다.
이 캐릭터의 경우 후속작 에로이카에서 보다 집중적으로 다뤄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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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포츠넬
포의 일족의 주인공. 우정출연하여 생체시간이 멈춘 제로델을 이끌고 있다. 제로델을 밤피넬라로 만든 장본인인듯 하다.
[1]
노지마 아키오와 그의 아들들은
작안의 샤나 FINAL에서 한 자리에 모이고
홍범기는
작안의 샤나에서 중복셔틀(노지마 히로후미가 맡은 이케 하야토, 그 외에 위네, 도미노, 요한을 맡음)로 맹활약한다...
[2]
애니 14화
[3]
앙드레와 오스칼이 혁명 도중 부상당했을 때 알랭과 함께 둘을 걱정하며 그들을 챙기고 의사도 찾을 정도. 예전에 오스칼과 대립하던걸 생각해보면 격세지감.
[4]
비디오 더빙판에서 조연으로 중복출연이 잦았던 성우들 중 한 명. 또 다른 한 명은
최문자.
[5]
물론 왕실과 가까운 사람이 아닌 그냥 법대생 신분의 로베스피에르는 고통받는 당시 기대가 배반당하고(루이 16세 왕정 치하가 되면 잘 될 줄 알았는데 그런게 아니라 예전처럼 못 사는 상태로 남음) 곤경에 처한 민중의 심경을 대변함과 동시에 세간의 편견대로 말한 것 뿐이었다.
[6]
참고로 오스칼이 다른 손님이랑 시비붙었던건 술 취한 손님이 어거지로 술을 먹이려들면서 얼굴 이쁘장하다고 했는데, 신경질이 난 오스칼이 먼저 주먹질을 한 것. 하지만 근위대라는 걸 로베스피에르가 구태여 말해줄 필요도 없고 잘만하면 그냥 싸움질로 끝나고 말 사건을 그가 나서서 일부러 키운 걸 보면 손님 선동용으로 오스칼을 써먹을 생각밖에 없었던듯하다.
[7]
실제로도 이후 혁명 와중에 베르나르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베르사유 공략전을 한다고 밝히면서 그것이 민중의 뜻이다라고 말하자 로베스피에르는 민중의 의사를 신경쓰기보단 난 그런거 시킨 적 없는데? 함부로 행동하지 마! 혁명은 지도자가 있어야 하는 법이야!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지도자의 포지션에 은근히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것이 그가 실은 권력을 추구한다는 또다른 암시일지도 모른다.
[8]
실제 역사에서 로베스피에르는 혁명 지도자가 된 이후의 숙청질로 인해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게 되었다. 물론 그래도 자코뱅 내에선 상대적으로 극단주의 급진파는 아니긴 했다. 온건좌파에겐 공포정치와 숙청질 등으로 까이는 그지만 당대 급진좌파들에겐 더 과격해야 했다며 온건주의자라고 까였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그와 공화정의 공포정치는 혁명 이후의 공화정 상태를 오래 유지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왕정의 등장에 도움만 주게 되었다. 물론 로베스피에르를 깐 생 쥐스트 등의 과격급진파 역시 공포정치와 숙청, 처형질에 열심히 참여해서 민심을 공화정으로부터 등지게 만드는데 한몫해버렸다.
테르미도르 반동 참고.
[9]
비디오 더빙판과 KBS 더빙판 모두 출연.
[10]
그외에도 단두대의 천사, 죽음의 대천사라는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별명들로만 불린다. 프랑스 혁명 당시 수많은 왕족 및 귀족들부터 뜻이 다른 공화파 의원들까지 죄다 단두대로 보내면서
사신 혹은
저승사자라고 불려도 할말 없는 행적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
[11]
베르나르가 민중 스스로 주도하는 혁명을 주장한 반면 생 쥐스트는 암살 및 테러로 왕실과 귀족층을 처단할 것을 주장했다. 이때문에 혁명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순찰을 돌던 오스칼을 인파속에 숨어 있다가 납치하여 일대일 대결을 벌였으나 실력차가 꽤 큰 편이어서 후퇴하였다. 덤으로 오스칼은 베르나르에게 사주해서 민중 시위를 부탁하는 한편, 민중들이 손해가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을 자처했고 추후 상황이 영 안 되면 시민 편으로 돌아서겠다고 약조한 사람인데 미래의 혁명파의 아군을 갖다가 치워버리려 한 셈
[12]
참고로 생 쥐스트는 순찰돌던 오스칼을 죽여서 민중을 그 자리에서 선동시킬 생각이었지만, 아래 각주에도 나와있듯이 분노로 선동된 민중도 군대 앞에서 쉽게 와해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생각해보면 너무 성급한 바보짓이었다
[13]
다만 그냥 개닥돌하자는 제안은 말 그대로 현실성없는 제안이었다. 튈르리 광장 앞에서 최초로 군대와 붙게 된 민중이 충분히 분노한 상태에서 무기(총)를 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군대와 직접 닥돌하자 얼마 안가 진열이 흐트러지고 다수의 사상자가 나왔으며 끝내 후퇴하게 되었다. 수적으로는 전혀 밀리지 않았는데도, 그리고 민중이 충분히 빡쳐있는 상태에서도 이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그러니 이제 막 선동당했을 뿐인 민중을 데리고 아직 방비가 튼튼했던 베르사이유로 진격해봤자... 실제로 루이 16세 일가가 민중 손에 끌려나왔을 적엔 베르사이유 궁의 방비가 (오랫동안 시민들과 군대가 싸움박질하느라 군대의 기세도 많이 꺾였고) 기존에 비해 민중이 쳐들어가서 왕이랑 왕비를 끌어내는게 가능할 정도로 매우 허술해져 있었다는 뒷배경이 숨어있었다.
[14]
상대적으로 온건하게 루이 16세의 사형을 주장하던 로베스피에르와는 대조되는 반응. 물론 둘 다 국왕이 살아있는 것조차 죄로 취급한건 똑같긴 하다.
[15]
생 쥐스트는 공포정치로 유명한 로베스피에르를 우유부단하고 깔 정도의 급진 과격파였다. 하지만 그를 비롯한 혁명 지도부의 급진과격파벌 역시 부정적인 의미로 극단화되어가며 공포정치와 숙청질로 혁명정부로부터 민심이 등지게 만든다. 그 개인도 극단화된 끝에 본말전도가 되었다. '빵은 인민의 권리'라고 주장하던 인물이 '자유는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나 누리는 것이다'라는 전체주의에 더 가까운 형태의 발언을 나중에 하게 되었을 정도이다.
[16]
등장할 때마다 꾸준히 차가운 미모를 가졌다는 등 외모 묘사가 나오고 오스칼은 그를 처음 봤을 때 아예 남장여자로 착각했다. 미인이라는 말에 네가 훨씬 더 미인이라 대꾸하는 앙드레는 덤
[17]
허나 원작과 애니의 외모 버프가 컸던 탓인지 초상화 찾아보고 실망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카더라. 그러나 초상화 속 생 쥐스트의 얼굴의 특징인 길고 날렵한 V자형 하관과 날렵한 콧대 등 원작 외모 고증이 작화버프를 제외하면 꽤 잘 된 케이스다.
[18]
재더빙판이 KBS판보다 낫다는 평을 듣는 몇 안 되는 배역. 어느 팬은 이제야 제로델이 자기 목소리를 찾았다고 평했다.
[19]
당시 프랑스 귀족 사회가 아이들 교육, 양육 전반을 유모들에게 떠맡기는게 만연한 시대였다 해도 주변 귀족들이 이상하다 할 정도로 제로델 부모는 자식들에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어머니는 큰 아들 결혼식에 애인을 대동하고 오랜만에 본 둘째 아들을 보고 남보듯 할 정도로 가정을 등한시 했다.
[20]
부모님이야 말할 것 없고 나이 차가 많은 형이 있긴 하나 형의 결혼식에 참석 거부까지 할 정도로 사이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닌듯
[21]
남편 베르델이 알랭 드 와송과 함께 나폴레옹 암살 미수로 처형당하자 현상금까지 걸린 상황이었다.
[22]
에드거가 제로델을 이끈걸로 보아 제로델을 밤피넬라로 만든것은 에드거로 추정된다.
[23]
오스칼은 아버지가 자기를 억지로 남자로 살게 하고 귀족 마인드를 강요하며 생기는 갈등을 제외하면 불화도 없고 부모가 아이에게 관심을 많이 쏟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났으나, 제로델은 정반대로 부모가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데다 심지어 어머니는 불륜까지 벌이는 등 가정불화가 심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오스칼은 아예 귀족 포지션을 벗어나 혁명에 찬동하고 직접적으로 혁명전선에서 뛰다가 기존 지배세력의 군대에 의해 사망했으나, 제로델은 한 번 반역죄 처리를 감안하고 평민의원들과 오스칼을 눈감아준 것 정도를 제외하면 오스칼처럼 적극적으로 귀족과 왕정을 등지고 혁명에 참여했다는 묘사는 없다. 또 오스칼은 사랑하는 이와 이어졌으나 제로델은 결국 이어지지 못했다. 이전에 사랑하던 오스칼이든, 이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걸로 보이는 (그가 다시 만나면 진짜 키스를 하도록 허락해달라 부탁한) 소피아든 간에. 다만 소피아와 썸(?)은 그냥 알랭과 함께 솔로로 남기엔 불쌍해서 원작 작가가 급조한 커플이다. 이를 증명하듯 급조한듯 에피소드의 흐름이 부자연스럽다. 마치 외전에 나온 앙드레 짝사랑한 엑스트라 소꿉친구처럼 게다가 결정적으로 소피아의 생각을 보면 알랭과 다르게 오스칼만 바라본 순정남이다. 위의 대사는 그저 소피아의 생각처럼 솔로끼리의 위로라고 봐야 된다.
[24]
실제 역사에서
뒤바리 부인은 성격도 순박한 편에 사치보단 자선 사업에 돈을 많이 썼다고 한다. 당장
루이 15세 사후
수녀원에 유폐된 것 외에 어떤 벌도 받지 않고 그 벌도 뒤바리 부인을 무작정 싫어했던 루이 15세의 딸들이 조카인
루이 16세를 닥달해 겨우 받은 보복이었다. 게다가 수녀원 시절때도 대다수의 수녀들이 소문과 다르게 다정하고 착한 사람이란 평을 했고 그녀가 떠나는 것에 아쉬움을 표현할 정도였다.
[25]
신분제 사회인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선 높은 귀족이 아랫 귀족에게 말을 거는 것만이 허용되었다. 당시 뒤바리 부인이 공식 칭호를 받은 애첩이긴 하나 공식적인 신분으론 오스트리아의 공주이자 왕세손비인 마리가 훨씬 높았다.
[26]
심지어 뒤바리 부인은 한술 떠서 이 파티장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를 대놓고 비웃는 만행을 저지르며 마리는 오스트리아의 공주이자 왕세손비인 자신이 애첩에게 졌다는 분함과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바로 파티장을 뛰처나가 운다. 다만 오스칼이 마리를 위로하는 동시에, 평정심을 되찾은 마리는 뒤바리 부인과의 관계를 깔끔히 정리하는 것으로 깨끗이 정리되었다.
[27]
당연히 왕위에 눈이 멀어 친척의 사형을 적극 찬성하는 행태에 프랑스 전체가 충격에 빠졌고, 아들
루이필리프 1세도 아버지의 만행으로 망명 생활동안 부르봉 왕조 친척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특히 마리 앙투아네트의 딸인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는 망명생활 와중에, 루이필리프 1세는 만나주지도 않을 정도로 오를레앙 일가를 증오했다.
[28]
나폴레옹 3세 시절까지만 해도 나폴레옹 3세는 황제를 했다가 나중에 대통령을 이어서 했기에 군주제의 그림자가 아직 남아있었다.
[29]
본 성우는
은하영웅전설의
리텐하임 후작을 연기했는데
문벌귀족의 오만방자한 콧수염의 외모와 하류층 민중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점과 비슷하다.
[30]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의 깨진 부분에서 반사된 빛이 비쳐서, 그 빛을 받는 자리에서 사격을 하는 사람의 사격 성공률이 떨어지는 장소.
[31]
물론 결투는 하다가 자칫하면 누구 하나가 죽거나 쌍으로 사망자가 나오는 사단도 충분히 있을 수 있었으니 자기의 안전에 심혈을 기울이는게 별로 이상하진 않다.
[32]
패배한 후 오스칼에게 원한을 드러내며 무슨 수작을 부렸냐는 식으로 적반하장격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사실 드 게메네 공작의 자승자박에 가까운 상황. 드 게메네 공작이 오스칼에게 서도록 유도한 위치로 오스칼이 걸어갈 때 필연적으로 등을 돌려서 걸어갈 수밖에 없기에 스테인드글라스에 반사된 빛줄기가 어디로 향하는지, 그리고 그 빛줄기 사이로 뭔가 스칠 경우 오스칼이 걸어가는 방향에서라면 그게 똑바로 보일 수밖에 없긴 했다. 덕분에 오스칼도 뭣모르고 당할 뻔 하다가 빛줄기가 사격에 지장을 줄거라는 걸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었다. 죽 쒀서 남 준 꼴.
[33]
손을 다친 정도이다. 오스칼은 어린아이를 무자비하게 쏴버린 드 게메네 공작의 손을 노려서 저격했다. 다만 손이 생활에서 지니는 위상과 중요성, 그리고 총상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꽤 불편하게 살아야할지도.
[34]
원작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물론 본 항목에서도 모두 폴리냑 백작부인이라고 불리지만, 마리 앙투아네트의 총애를 얻은 뒤로 남편인 폴리냑 백작도 덩달아 공작으로 작위가 급상승했다. 이에 따라 공식 작위는 공작부인이다.
[35]
처녀적 성은 욜랑드 마르틴 가브리엘 드 폴라스트롱(Yolande Martine Gabrielle de Polastron).
[36]
라 세느의 별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를 맡았다.
[37]
폴리냑 부인을 곱게 안보던 오스칼도 그녀를 보고 어머니를 닮은 듯한 편안하고 고운 미인이라고 평할 정도였다.
[38]
왜 자주 오지 않냐는 마리의 질문에 가난해서 잘 오지 못한다고 대답하자 앙투아네트는 '자신의 치부를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다니 정말 솔직한 사람이구나'라고 단단히 착각하고 만다.
[39]
남편인 폴리냑 백작은 사람은 좋지만 무능력해서 딸 샤를로트의 억지 결혼을 강행시키려는 아내한테 찍소리도 못하고 쩔쩔 매는 인물이다.
[40]
전술했듯이 폴리냑 백작가는 베르사유 궁전 출입이 어려울 정도로 몰락한 가문이었다. 폴리냑 부인은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힘을 빌려 남편을 대신으로 만들고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도 베르사유 궁전에 거주시키고 집안의 품위유지비를 지속적으로 지원받았다.
[41]
오스칼이 마리 앙투아네트의 큰 총애를 받는 것도 있지만 오스칼이 그녀의 총애를 칼 같이 거절하고 앙투아네트를 바른 길로 이끌려고 노력하는 한편 폴리냑 부인같은 간신배들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42]
틀에 박힌 왕실 생활을 지루해하는 마리에게 좋은 게 있다며 도박판에 끌어들였는데 문제는 마리가 더럽게 도박을 못해 판돈만 뜯기는 호구였고 그 판돈마저 개인재산이 아니라 국고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애초에 마리 앙투아네트를 도박판에 끌어들이기 전부터 좋은 봉이 있다고 말하며 마리를 자신의 물주이자
호구 취급한다는 걸 여실히 보여줬다.
[43]
이후 원작 만화에선
프랑스 혁명으로 남편
루이 16세가 처형당하고 똑같이 재판에 회부된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검사측이 폴리냑 백작부인을 비롯한 총신들에게 온갖 특혜를 주며, 국민들의 세금을 낭비하지 않았냐고 추궁하자 그전까지 당당했던 마리 앙투아네트도 별다른 반론을 못하고 자신이 상상한 이상의 돈이 들어갔을 거라며 인정할 정도였다.
[44]
애초에 능력이나 뒷배경 없이 왕과 왕비같은 권력자의 총애로만 높은 자리에 올라간 사람들은 그 권력자가 죽거나 총애를 잃으면 바로 몰락하는 게 예견된 수순이다.
[45]
참고로 이렇게 해서 프랑스를 탈출한 폴리냑 백작부인의 가족들은 무사히 살아남아, 그녀의 차남 쥘 드 폴리냑(Jules de Polignac)이
샤를 10세 때 수상이 되기도 했다. 게다가 그 쥘의 직계 후손인 피에르 드 폴리냑(Pierre de Polignac)이
샤를로트 그리말디와 혼인해
모나코 공
레니에 3세를 낳았다. 즉,
현 모나코 공가는 폴리냑 백작부인의 후손.
[46]
정확히는 퍼스트 네임인 욜랑드를 뺀 미들네임과 결혼 전 성씨를 합한 이름이다. 아마 니콜이 로잘리를 맡게 된 이후 소식이 끊겼기 때문에 결혼 전 이름만 알고 있었던 모양. 앙드레는 모든 귀부인의 이름을 뒤져가며 폴리냑 부인의 정체를 알아냈는데 이미 이름을 바꿨기에 시간이 제법 오래 걸렸다.
[47]
왕비의 총애를 받고 엄청난 특혜를 받자마자 먼저 한 것이 샤를로트를 최고의 귀부인으로 만드는 것이며 로잘리의 정체를 알아낸 후 로잘리와 말을 걸어보려 노력했다. 또한 자신의 마차에 치여 죽은 여자(니콜)의 정체까지 알게 된 후엔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그 착한 니콜을 죽게 만들다니...하는 식으로 죄책감을 가지기도 했다. 참고로 니콜을 죽인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질 때 니콜을 보고 착하다는 수식어를 쓰거나 나에게 잘 대해줬다는 말을 하는 걸 보면 예전엔 (그녀가 자기 딸을 맡아줘서 고마움을 가졌던 것 외에도) 그녀와의 사이도 좋았던 듯.
[48]
샤를로트는 폴리냑 백작부인의 권력욕으로 나이많은 변태 귀족과 강제 결혼을 하게 되자 이를 비관하며 자살했다. 로잘리도 샤를로트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도 그녀의 비참한 최후에 진심으로 슬퍼하며,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만악의 근원인 폴리냑 백작부인을 혐오하고 어머니로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폴리냑 백작부인이 오스칼을 인질로 협박하는 통에 억지로 폴리냑 백작가로 들어가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귀족들의 사회에 환멸을 느껴 도망친다.
[49]
이민 후 복귀 이전까지의 몇 없는 악역 배역이다.
[50]
KBS판보다 연기를 잘 살렸다는 평가도 있지만, EBS판이 전반적으로 KBS판보다 혹평을 받았다보니 비교적 묻히는 감이 있는 편이다. 어쨌든 둘 다 진정한 악녀를 제대로 연기했다.
[51]
다만 잔느의 착각과 달리 같은 사생아여도 왕의 자식인 만큼 대우를 받는 로얄 미스트리스의 자식들을 제외하고 유럽에서 사생아는 인정은 고사하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게다가 같은 사생아라도 모친이 귀족인 로잘리와 달리 잔느는 평민 출신의 하녀였기에 설사 부친이 생존했더라도 인정 했을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오스칼도 잔느를 보자마자 "진짜 발루아 가문의 영애이면 진작에 인정을 받았겠지"라고 비꼬았다.
[52]
원작에선 후작부인이 잔느 말만 믿고 덜컥 양녀로 받아들이나 실제 역사에선 후작부인이 잔느의 출생증명서를 통해 그녀의 혈통이 사실이라는 걸 확인 후 데려갔다.
[53]
작중 후작부인 스스로 자신은 베르사유에 출입할만큼의 귀족은 되지 못한다고 시인한다. 후작가 정도의 신분이 어째서 베르사유 궁전의 출입이 힘든지 의문을 가지는 독자들도 있는데 프랑스 사교계는 루이 14세 이후 왕의 입김에 따라 위치가 정해지기 때문이었다.
[54]
이때 굶어죽기 직전에 찾아온 로잘리를 하인들에게 자신이 부리던 시녀로 속이고 니콜라스를 시켜
멍석말이해서 쫓아보내는 냉혹한 모습을 보였다.
[55]
여기에는 자신이 버리고 간 여동생 로잘리가 자르제 백작가로 가서 자신보다 더 좋은 대접을 받는다는 것에 대한 열등감도 한몫했다.참고로 무도회에서 동생과 대면했을 때 로잘리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하자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는 걸 보면 아직까진 일말의 인간성이 남아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끝끝내 그 자리에선 결코 로잘리를 아는 체 하지 않았고, 눈물 흘리는 와중에도 마음 속에선 로잘리가 자기보다 더 고급스런 옷을 차려입고 무도회에 나타난 것을 신경썼다.
[56]
필체 사칭인을 고용해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필체를 흉내낸 가짜 편지를 보내고 심지어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똑 닮은 창녀 올리버를 대역으로 데려와서 로앙 대주교를 감쪽같이 속였다.
[57]
이 당시는 지금보다도 기독교가 더욱 우세한 시기였고, 기독교에서 금기시하는 것들 중 하나가
동성애였음을 생각해보면 기독교 교리를 어긴 왕비 이미지를 씌우기 위해 부러 이런 구라를 깐듯. 마침 왕비 호위역인 오스칼이 여자고 우호적인 관계이기까지 했으니(…)
[58]
그런데 앙투아네트와 페르젠의 불륜을 생각해보면 완전히 구라는 아니었다(…) 물론 앙투아네트가 잔느 말대로 여러 남자들을 매번 불륜상대로 삼아댈 정도로 막나가는 인간은 아니었지만.
[59]
그 책의 내용은 다름아닌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스캔들 내용. 당연히 책의 내용은 전부 거짓이었지만 프랑스의 국민들은 이를 진심으로 믿으면서 책은 날개 돋힌 듯이 팔리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추문이나 일으키는 오스트리아 창녀라고 매도당하며 가뜩이나 안좋던 평판이 더욱 떨어진다.
[60]
다만 잔느의 위치는 잔느의 탈옥을 도와준 오를레앙이 통수를 쳐서 근위대에 정보를 제공하였기에 잔느가 편지를 넘겼든 넘기지 않았든 어차피 습격당하는 건 정해진 상태였다.
[61]
원작에서는 오스칼을 구하기 위해 난입한 앙드레에게 떠밀려 실수로 니콜라스를 죽이게 되자 정신붕괴가 일어나 자신도 모르게 발코니 쪽으로 다가가다가 떨어져 죽는 구제할 길 없는 악녀로 묘사된다.
[62]
다만 이 부분은 KBS 더빙판에서 통째로 잘려나갔다. 등에 칼침을 꽂는 부분이나 마지막 대사를 하며 키스하는 것까지 잘려나갔다. 비디오판이나 EBS판에선 그대로 나온다.
[63]
오히려 마리 앙투아네트나 그녀의 자녀들을 언급하는 것도 꺼렸으며 딸인 마리 테레즈도 불편한 존재로 취급되었다고.
[64]
비단 귀족들 뿐만이 아니라 국왕인 루이 15세는 아예 대놓고 뒤바리 부인을 비롯한 수십 명의 애첩을 뒀을 정도이며 당시 애처가는 남자 구실을 못한다고 욕먹었다.
[65]
외전에서 시계 장인인 브레게를 통해 아내의 결혼 기념일 선물로 자동 태엽 시계를 주문했으며 브레게도 그런 자르제 백작을 위해 주문이 밀려 있는 바쁜 상황에서도 직접 시계를 전달할 정도였다.
[66]
오죽하면
베르사이유의 장미 외전에서 귀족들이 자르제 부부를 보면서 시골 부부, 평민 같다면서 칭찬 아닌 칭찬(?)을 할 정도. 심지어 손녀 루루가 할아버지와 티격태격하는 개그씬을 찍는 걸 봐선 할아버지로서 다정한 사람인듯.
[67]
다만 구태여 '귀족이기만 했어도'란 말을 붙인걸로 보아 당시 귀족이라는 신분상의 한계는 벗어나지 못했던 듯.
[68]
외전에 따르면 이미 아내가 오스칼을 마지막으로 자식을 가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69]
사실 베르사이유의 장미 대백과에 나온 가계도에 따르면 자르제 백작 본인은 다른 형제자매로는 누이만 있는 고명아들이며 아내 역시 자매들만 있다. 즉 아들이 나오기 힘든 집안이었던 것.
[70]
이 시대의 미혼 귀족 여성은 할 수 있는게 크게 제한되어 있었으며 설사 결혼을 해도 남편의 불륜을 모른 척하는 등 이모저모로 힘든 생활을 했다. 게다가 오스칼은 남자로 살아가면서 프랑스의 현실을 제대로 보고 혁명과 계몽 사상에 대해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71]
자르제 장군은 일단 최후까지 왕정의 편을 들었기에 언제까지고 함께 할 순 없었다.
[72]
참고로 마리아 테레지아 역시 젊은 시절에 신하를 골탕먹이고 남편 되는 프란츠 1세와 데이트를 하는 등 딸과 판박이다.
[73]
당시 로자리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폴리냑 부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베르사유 궁전에 숨어들어 암살하려 했었다. 그러나 폴리냑 부인과 자르제 백작 부인 모두가 그 당시 유행타던 파란 바탕에 꽃무늬 드레스(다마스크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베르사유 궁전은 하나의 거대한 도시 그자체 였기에 로자리의 계획은 실패했다.
[74]
전술했듯이 프란츠 1세가 결혼을 대가로 지위를 포기하여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의 장인이자 왕비
마리아 레슈친스카의 부친으로 옛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왕인
스타니스와프 1세 레슈친스키에게 넘어가면서 프랑스의 땅이 된다.
[75]
아내와 사별해서 혼자 살고 있었던 재력가이며 조르제트 모녀를 잘 대해주고 화가를 통해 그녀와 레니에의 혼인을 도와주는 등 인품도 나름 괜찮은 사람이다. 이후 조르제트의 어머니와 말동무가 되었다가 서로 재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76]
그냥 등짝 스매싱을 넘어 앙드레는 붕대를 감고 있었으며 "무슨 할머니가 이렇게 힘이 센거야!!"라고 말할 정도(..)
[77]
한국으로 치면 밤조림 비슷한 디저트로, 밤을 설탕 시럽에 조려서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마론 그랏세의 겉은 유리처럼 반짝반짝 윤이 나지만 속은 밤조림의 단면과 비슷하다.
만드는 법. 만드는데 며칠에 걸쳐서 여러 번 조려줘야 하기 때문에 손이 제법 간다.
[78]
다만 베르사이유의 장미 대백과에서 언니들의 이름이 나왔다.
[79]
해적과 수도녀 편에서 루루가 수도원에 들어가겠다고 하자 다들 뜯어말릴때 오스칼은 뭔가를 느끼고 루루를 보내며 앙드레를 통해 연락을 주고 받았다.
[80]
파티와 무도회를 즐기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마리와 다르게 루이는 사냥, 독서, 자물쇠 만들기 같은 조용하고 혼자하는 활동에 몰두했다.
[81]
이러다보니 마리는 자주 독수공방 신세가 되었고 심지어 루이 16세가 자길 싫어하는게 아니냐고 속상해할 정도였다. 이런 와중에서 루이 16세는 대장간까지 마리가 찾아오자 하트 자물쇠를 선물로 주고 도망치듯 나가버린다.
[82]
사실 작중 행적을 보면 막지 못했다기 보단 아내를 위해 안 막았다고 보는게 맞다. 아무리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미안함과 자격지심이 크다지만 그런 개인적인 이유로 페르젠과의 관계부터 사치까지 여러모로 왕비로서 실격인 행동을 벌이는 마리를 막지 못한 건 남편이기 이전에 국왕으로서도 해선 안되는 일이었다. 결국 루이 16세도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국왕으로서의 책무보다 개인적인 감정을 더 중시하는 여러모로 군주로서 실격인 인물이었다.
[83]
루이 15세가 사망하자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루이 16세 부부에게 찾아가 새로운 왕의 탄생을 축하하며 기뻐하지만,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왕과 왕비가 됐다는 중압감에 불안해하는 루이 16세 부부의 대비가 이를 잘 보여준다.
[84]
이때 모두에게 외면받아 제대로 된 계획도 구상못하던 자신들을 위해 도주 계획을 진두지휘하며 마차까지 구해다준
페르젠에게 진심으로 호의를 표하고 그의 안위를 걱정해서 돌아가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이후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모두 붙잡혀서 처형당하자 페르젠은 이때 루이의 명을 거역해서라도 마리 앙투아네트의 곁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죽을 때까지 후회한다.
[85]
이런 인식은 비단 일반 시민들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만신창이가 되어 파리로 돌아온 루이 16세에게 한 의원이 "멋진 여행을 하셨더군요. 국왕 폐하... 인권 선언을 인정한다고 말씀하신 당신이... 혁명을 배신하고 프랑스 국민을 배반하다니..."라고 면전에다 비아냥거릴 정도. 이 말에 루이도 새하얗게 질려 아무 말도 못한다. 혁명정부편에 선
알랭 드 수아송도 이때 파리로 끌려온 국왕 일가의 행렬을 보고, 어떻게 이런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냐며 이건 부르봉 왕조의 장례행렬이라고 경악했다.
[86]
애초에 국왕의 몸으로 직접 맹세한 인권 선언마저 저버리고 외국으로 도망치려던 시점부터 혁명정부와의 공존 가능성을 완전히 내다버린 셈이고 현행범으로 붙잡히기까지 했으니 내통 혐의도 확실했다. 여기서 루이가 무죄라면 혁명정부가 유죄라는 소린데 결국 혁명을 지지하는 사람 모두가 죽어 마땅한 대역죄인이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이걸 혁명정부측이 두고 볼 리가 없었다.
[87]
심지어 원래 역사에서의 루이 16세는 최후의 만찬도 진짜 화려하게 먹었다. 커틀렛 6인분과 큰 통닭, 많은 양의 달걀, 베이컨, 프랑스산 와인과 스페인산 와인을 실컷 먹었다고 전해진다.
[88]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름조차 언급하는 걸 금지할 정도로 어머니를 없는 존재 취급하는 합스부르크 황실의 분위기와 자신을 받아준 사촌 프란츠 2세와 마리아 테레사 부부도 불편하게 여길 정도. 마리 테레즈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첫자식으로 프랑스 왕실의 금지옥엽으로 성장한 걸 생각하면 애석한 일이다.
[89]
이 당시만 해도
천연두는 걸리면 사람 잡는 무서운 병이었다.
[90]
사실 초기엔 뒤바리 부인의 불평을 귀찮아하며 흘려듣다가 어쩌다보니 뒤바리 부인을 무시하는 건 자기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극받게 되자 귀찮아하던 모습을 때려치우고 바로 빡쳤다.
[91]
초반엔 갑작스럽게 증세 없이 앓아누웠다. 그래서 의사들도 원인을 몰라 쩔쩔매다가 시종이 우연찮게 얼굴에 천연두의 흔적인 발진을 발견하고 놀라고, 의사들도 이를 보고 루이 15세가 천연두에 걸렸음을 알게 된다. 이후 감염을 막기 위해 아직 황태자였던 루이 16세와 황태자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루이 15세를 만날 수 없게 된다.
[92]
공교롭게도 루이 15세 역시 어린 시절에 천연두로 인해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 형을 모두 잃어서 증조부
루이 14세의 뒤를 이어 왕위를 이어받아야 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93]
의사들 왈 내장은 예전부터 튼튼했다고 하는데 나름 건강체질이어서 천연두에 걸렸음에도 의외로 오래 버텼던 듯.
[94]
국왕 서거를 외치는 귀족들의 목소리가 처음엔 당혹스러워하다가 서서히 기쁨에 찬 환호에 가깝게 변한다. 이렇게 전 국왕이 죽고 현 국왕으로 갈아타게 돼서 환호하는 귀족들은 불안감에 빠진 루이 16세 부부를 둘러싼다. 기쁜 분위기의 귀족들 사이에서 둘이서만 불안하고 침체된 분위기로 하느님께 자기들을 지켜달라고 기도하는 루이 16세 부부의 극렬한 대조가 뒤에 나온다.
[95]
귀족들의 이런 빠른 물갈이에 대해 제로델은 그들을 보며 "아까 전까지만 해도 루이 15세의 쾌유를 빌던 자들"이라고 잠시 비판하면서도 "사람 마음이란 다 저렇다"고 반응한다.
[96]
마리아 테레지아는 성생활과 성윤리에 있어 엄격했던 사람이여서 자신의 신하들의 불륜이나 여색질도 철저히 단속하고 자식들에게도 성과 관련되어 엄격히 교육시켰으며 매춘부나 정부(첩)를 좋지 않게 가르쳤다. 이러다보니 마리 앙투아네트는 루이 15세의 딸들의 부추김을 제외하고도, 매춘부 출신에다가 당시 왕의 정부였던 뒤바리 부인에 대한 인식이 좋을 리가 없었던 것이었다.
[97]
신성 로마 제국 왕위는 살리카법이 적용돼서 여성은 황제를 할 수 없었고 그 대신 남편을 황제로 즉위시켰다.
[98]
마리아 테레지아의 장남이자 마리 앙투아네트의 큰오빠로 막내여동생을 아꼈던
요제프 2세는
프랑스 혁명 직후이자
바렌 사건 이전인 1790년에 세상을 떠났고, 그 뒤를 이은 둘째 오빠
레오폴트 2세는 마리와 그닥 사이가 좋지않았던데다 프랑스 혁명 당시 사태의 심각성을 간과한 탓에
바렌 사건에서 여동생 일가가 붙잡혀 끌려가는데 일조했다. 그래도 남매간의 정은 확실했는지 바렌 사건이 실패하고 마리 앙투아네트 일가가 목숨조차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는 심각성을 뒤늦게 깨닫고 프랑스 혁명정부와 협상을 벌이며 어떻게든 여동생을 구하려고 애썼으나 급사해버렸고, 레오폴트 2세의 장남인
프란츠 2세는 어릴 때 오스트리아를 떠난 막내고모에 대해 그닥 정도 없어서 철저히 외면해버렸고 이런 복합적인 사정이 겹친 끝에 마리 앙투아네트는 친정에게마저 버림받고 남편과 함께 단두대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99]
오히려 남편
프란츠 1세가 자식들을 차별없이 골고루 사랑해주는 좋은 아버지였다.
[100]
특히 가장 편애하던 딸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어머니의 총애만 믿고 다른 남매들을 감시하고 그들의 잘못을 고자질해대는 행동을 벌였기에, 남매들과의 사이가 굉장히 나빴고 결국 마리아 테레지아의 사후 뒷배를 잃고 남매들에게 온갖 경멸과 푸대접을 당하며 쓸쓸한 말년을 보내야만 했다.
[101]
정작 가장 편애하던 딸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연애결혼을 허락해주고 막대한 지참금에 온갖 특권까지 하사하는 이중적인 면모를 보여서 다른 자식들의 불만을 샀다.
[102]
실제 역사에서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는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자녀들 중 가장 장수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부르봉 왕정이 한때나마 복고된 모습도 본 사람이지만 끝내 프랑스에서 쫒겨나 불행한 말년을 보냈다.
[103]
건강할 때도 오스칼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말을 태워달라고 한다. 이후 오스칼에게 좋아한다고 고백 후 기습 키스를 했으며 이에 오스칼도 앙드레에게 자신이 왕비가 될뻔했다며 농담한다.
[104]
일본어판 영향으로 샤르르라고 하기도 한다.
[105]
주위의 설득에 마리가 마지못해 말을 걸려고 하자 중간에 튀어나와 그녀를 낚아채가기도 한다. 실제 역사에서도 저랬으며 (루이 15세의 세 딸들은 아버지의 문란한 성생활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정부들에 대해서도 시선이 좋지 않았다) 특히 마리 앙투아네트가 마리아 테레지아의 영향으로 첩실에 대해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아주 잘 통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때는 이미 루이 15세가 마리로 하여금 뒤바리에게 인사하라는 어명이 떨어진 상태였는지라, 잘못하다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전쟁날 뻔 했는데, 아무래도 공주들이 억지로 간섭해서 마리가 뒤바리에게 인사건네는 걸 훼방놓은게 인정되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용히 넘어갔다. 전쟁보다도 아빠 정부 견제질이 더 중요한 노마님들
[106]
실제 역사에서는 뒤바리 부인이 자신이 총애받는 점을 이용해서 루이 15세한테 마리 앙투아네트가 자기를 자꾸 무시한다고 울며불며 하소연했을 뿐이었다. 다만 얘기를 들은 루이 15세가 오스트리아 대사를 불러서 공식적으로 항의하는 바람에 이 사실이
마리아 테레지아의 귀에도 들어갔고, 현실적으로 국왕의 애첩을 아예 무시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자국 대사를 통해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압력을 넣어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뒤바리 부인에게 말을 걸게 된 것이라 결과적으로 뒤바리 부인이 루이 15세를 움직여서 세 왕녀들에게 승리한 모양새가 되긴 했다.
[107]
결혼식에 쓰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죽어있었고 주변에 꽃이 흩어져있었다. 작중에선 시체 썩는 내가 이웃집까지 풍겼다고 할 정도니 원래는 더 심하게 부패되어야 정상이었겠지만, 작화상으론 그래도 드레스를 입고 그저 잠든 것처럼 숨져 있었다. 원작은 애니판보다 묘사가 직접적이라 심하게 부패되어 백골화가 상당히 진행된 모습으로 나온다
[108]
정확히 말하면, 무도회장에서 결혼상대로 지목된 43세의 드 기쉬 공작이 억지로 손등에 키스를 하자,
정신붕괴를 일으키며 무도회장 탑에서 뛰어내렸다. 원작에서는 정신붕괴까지는 아니었으며 다시는 귀족으로 태어나지 않겠다며 높은 계단에서 뛰어내린다.
[109]
작중에선 단순히 예비 남편이 될 귀족이 손에 가볍게 키스만 하는 선에서 끝났으나 그 이후 샤를로트의 반응이 거의
강간이나 그에 준하는
성폭행을 당한 수준으로 심각해서 (공작에게 손등키스를 받은 이후
정신분열증에 걸린 것마냥 크게 미쳐버린 것도 모자라 매우 빠르게 투신자살을 결심하고 진짜로 실행에 옮겨버렸다. 감정 통제가 어른들보다 더 쉽지 않은 아이인걸 감안해도 지나치게 극단적인 반응) 사실 그보다 더한 짓을 당하지 않았냐는 추측을 한 시청자들도 일부 있었다고 한다. 그런 거 안 당했다 쳐도 우리나라로 치면 겨우
초딩에, 이미 첫사랑으로 확고히 자리잡은 사람(= 오스칼)이 있는 소녀가 처음 보는 페도 아저씨랑 결혼하는게 대놓고 확정당한 것도 모자라 그 아저씨가 자기에게 연심 어필을 직접적으로 하자 충격먹을 법도 하지만. 사실 이 전에도 샤를로트가 어머니에게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등 정신적으로 몰리고 있다는 묘사가 있다. 점점 정신적으로 몰리다가 손등에 키스받은 일을 계기로 완전히 터져버린 셈.
[110]
일단 샤를로트는 로잘리가 자기의 이부언니인줄도 몰랐고, 로잘리의 행동거지를 보고 본디 귀족이 아닌데 귀족인 척 하는 여자라는 판단을 해버린 뒤인데 로잘리가 보란듯이 더 화려하게 꾸미고 나타나니까 그 시대의 전형적인 귀족다운 사고방식(그 시절의 귀족들은 일부를 제외하면 보통 신분 다른 평민들이나 심지어는 더 직위가 낮은 사람을 깔보는 경향이 은연중에 깔려있었다. 당장 제일 심한 예시로 드 게메네 공작이 자기 기분 상하게 만든 애를 아무렇지도 않게 쏴죽이는 장면이 나왔듯이. 샤를로트가 로잘리보고 촌뜨기라 한 건 양반이었다)+똑같은 대상을 짝사랑하는 여자(미래의 연적(?))를 본 어린아이의 질투심이 섞여서 편견 섞인 태도로 로잘리를 대했던 것일 수도 있다.
[111]
죽기 전에 손을 미친듯이 씻었고, 탑에서 뛰어내리기 직전엔 오스칼의 옷에서 꺼내서 챙긴 장미를 먼저 공중에 띄운다. 그리고 자신은 손을 깨끗이 잘 씻었다면서 이 장미처럼 다시 깨끗해질 거라고 말하고는 장미꽃과 함께 떨어져서 추락, 즉사한다. 그녀의 옆엔 함께 떨어졌던 흰 장미꽃의 꽃잎 몇 장이 흩어졌다.
[112]
애니판 로잘리는 자신의 양모 니콜을 죽인 자가 친모 폴리냑 부인이라는 걸 알고 살해시도까지 시전했을 정도로 폴리냑 부인에 대한 감정이 극단적으로 나빠진 상태여서 당연히 그녀의 딸인 샤를로트도 '내 동생'이라기보단 '우리 엄마 원수의 딸' 딱 그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샤를로트가 죽은 뒤에도 처음엔 슬퍼하지 않는다며 냉정한 태도만을 보였지만, 속으로는 샤를로트가 어린 나이에 정말로 자살까지 실행할 정도로 심각하게 몰려있었다는 걸 깨닫고 뒤늦게서야 샤를로트의 죽음과 그녀와 생전 교류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았던 걸 슬퍼하게 된다.
[113]
이 사람은 1829년, 샤를 10세가 빌레 백작과 마르그리트 자작이 내각수상으로서 잘 하지 못한 것에 위기를 느낀 후 내각수상으로 임명된다. 이름은 쥘 드 폴리냐크(1780-1844). 극우반동주의자였던 폴리냑은 샤를 10세와 함께 민주주의를 탄압하지만 이로 인해 자유주의자들의 분노를 사서 7월 혁명이 일어난다. 이후 1836년 루이 필리프에 의해 체포되어 자유주의를 탄압한 죄로 옥살이를 하지만 왕당파의 영수인 관계(왕당파의 동요 가능성)로 석방된 후 44년 사망한다.
[114]
사실 로잘리가 니콜의 친딸이 아니라는 복선은 진작에 나왔다. 잔느가 멋대로 가출해버릴 때 로잘리는 니콜의 곁에 남아 그녀를 위로했는데, 로잘리가 '난 엄마의 딸이니까요'라고 하자 니콜은 뭔가 흠칫한 듯이 떨리는 눈빛을 보여주다가 이내 로잘리를 꼭 끌어안으며 '그래 엄마 딸이지'라고 연신 말한다.
[115]
잔느가 출산되었던 시점에서 로잘리는 아직 폴리냑 부인의 뱃속에 있엇다.
[116]
처음엔 자기가 마차로 친 사람이 니콜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로잘리의 성씨인 몰리에르가 니콜의 성씨와 동일하다는 것까지 알게되고 나서야 그 진상을 깨달은 것.
[117]
잔느와 폴리냑 백작부인 모두 겉은 아름다우나 이해타산을 위해 악행을 거리낌없이 자행하고 가족에게도 함부로 대하는 등 인성이 막장이다.
[118]
이후 그 말을 계기로 로잘리는 마침 지나가던 오스칼의 마차를 불러 세워 자기를 하룻밤만 사 달라는 말을 한다. 오스칼은 이 말을 듣고 자신은 여자라고 밝히고 대신 금화를 한 닢을 주게 된다.
[119]
잔느가 니콜을 만나러 간 곳의 주변에 이미 군인들이 포진해있어서 둘 다 잡힐 수밖에 없었다.
[120]
이 정도면 의학이 아주 발전한 현대 수준으로도 치명상이다.
[121]
사실 이 의사 외에도 시민군 속에서 외과 전문의 등 여러명의 의사들이 나서서 앙드레를 진찰했지만 그들 모두 가망이 없단 결론을 낼 수밖에 없었다.
[122]
앙드레와 마찬가지로 흉부에 총상을 입었다.
[123]
근데 이 사람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가 의미심장하다. 지금 먹고 마셔라, 곧 있으면 총을 들어야한다 하는 내용의 가사로 누가 보더라도 프랑스 혁명을 예고하는 가사이다.
[124]
좋은 건 아니고 비꼬는 의미에서의 별명이다.
[125]
벼룩색(puce)란 붉은 계통의 색상을 일컫는다. 이 색은 피를 빤 후의 벼룩의 색에서 유래했다는 것과 1775년 마리 앙투아네트의 새 드레스 색을 본 루이 16세가 벼룩 같다고 말한 것에서
유래했다는 등 여러 유래가 있다. 현대에선 짙은 붉은 색 또는 자주색과 갈색이 합해진 것, 회색이 섞인 자주색이나 분홍색, 적갈색 등을 넓게 싸잡아서 부른다.
#
[126]
오스칼의 어머니 자르제 부인과 친구 사이다.
[127]
그녀는 어디까지고 잔느가 불쌍해보여서 거둬준 것에 가까웠기에 잔느에게 좋은 옷, 좋은 식사를 내어주고 귀족가의 숙녀에게 필요한 교육들을 제공해줬을 뿐 딱히 잔느의 신분을 광고하며 함께 출세하는 걸 노리진 않았다. 아무래도 블랑빌리에 후작부인은 그냥저낭 자기 처지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었던듯.
[128]
더 정확히는 직위가 낮은 그녀는 베르사이유에 방문하기가 힘들어서 잔느는 그녀의 빽만으로는 출세하기가 너무 힘든 상황. 잔느는 계속 베르사이유로 보내달라고 졸라댔지만 블랑빌리에 후작 부인은 자기에게 그런 건 무리라며 잔느를 타이를 뿐이었다. 애초에 출세에도 관심없는 사람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129]
정확히는 죽게 냅둘지 말지. 즉 저 '버린다'라는 말은 병 걸려 죽어가는 아이 목숨을 버리게 만들지 말지라는 뜻. 그거나 그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