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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23:32:23

후루카와 토시오

<colbgcolor=#23263E><colcolor=#fff> 후루카와 토시오
[ruby(古川, ruby=ふるかわ)] [ruby(登志夫, ruby=としお)] | Toshio Furukawa
파일:후루카와 토시오.jpg
본명 [ruby(古川, ruby=ふるかわ)] [ruby(利夫, ruby=としお)] (후루카와 토시오, Toshio Furukawa)
출생 1946년 7월 16일 ([age(1946-07-16)]세)
도치기현 도치기시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직업 성우, 배우, 나레이터, 교수, 각본가, 기타리스트
신체 164cm | B형
가족 10남 5녀 중 막내
배우자 카키누마 시노
애완견[1]
종교 기독교 ( 개신교)
소속사 아오니 프로덕션(현재)
활동 시기 배우 | 1960년 ~ 현재
성우 | 1974년 ~ 현재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공식 프로필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2. 생애3. 인간관계4. 여담
4.1. 시끌별 녀석들 관련4.2. 루팡 3세 풍마일족의 음모 관련4.3. 명성과 품성4.4. 취향 및 취미4.5. 피규어 덕후
5. 출연작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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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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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의 모습 최근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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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 성우"를 자칭으로 시작한 첫 세대죠.[2]
<레전드 성우 인터뷰 후루카와 토시오 편>中
자신의 목소리를 '하이 바리톤' 이라 칭하며 연기에 관해서는 "강한 남자 속에 부드러움을 담아"라는 느낌과 플러스 α의 연기를 항상 유의하고 있다.
후루카와 토시오의 자서전 中[3]
일본 배우 성우이자 현 아오니 프로덕션 도쿄 지사의 원장.

2. 생애

파일:furukawa toshiogghh.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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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의 후루카와 토시오.[4] 셋째 형, 후루카와 츄지와 함께.[5]
도치기현에서 15형제(10남 5녀)나 되는 후루카와 대가족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맏형 후루카와 센이치로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중순양함 쵸카이의 기관포수를 맡았으며 필리핀해에서 폭격을 맞아서 사망했다. 이때 센이치로는 겨우 22세였고 1946년(후루카와 토시오가 태어난 해)에는 이미 센이치로는 사망한 뒤였다. 그래서 후루카와 부부는 "이 아이는 센이치로가 다시 태어난 거다" 라고 하였고 후루카와 토시오는 이 이야기를 다른 형제에게 들어서 알았다. 이후 그 형제가 "익살스럽고 재미있는 걸 해보자" 라며 후루카와 토시오를 도쿄로 불러와 아동극단의 팜플렛을 보여주며 입단을 권유 한 것이 12세에 예능계를 목표로 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6][7]

처음 1년간은 도치기현에서 도쿄까지 오가야 했기에 비용이 만만치않았고 굉장히 힘들어하여 결국 부모의 곁을 떠나 도쿄에 거주하는 형의 밑에서 함께 생활하게된다.

후루카와 토시오는 당시 극단의 도쿄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일종의 취미로 두고 있었다 한다. 시골깡촌에서 온 후루카와 토시오에게 전혀 다른 말들을 사용하는 도쿄 사람들은 굉장히 멋있어 보여, 자신의 사투리를 고치고, 도쿄사람들처럼 말하는 법을 연습한 것의 계기가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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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의 후루카와 토시오. 아래는 어머니와 찍은 사진. 형과 돈을 모아 구매한 당시 최신식 카메라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는 것을 좋아했으며 배우의 준비를 위해 사인연습도 많이 했다고 한다.

대학은 연극을 배울 수 있는 학과를 전공하는 것을 목표로  일본 예술 대학교 연극학과에 진학한다. 대학 졸업 후 연극 배우가 극단 '노(KAI)'에 참가해 극단의 단장을 맡고 있던 나카타 고지 의 권유로 스튜디오를 견학했을 때 여러감독과 오디션을 소개 받았다한다. 후루카와는 그 극단에 입단하지 않았더라면 성우 후루카와 토시오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고 회상하며 항상 감사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노력 끝에 데뷔에는 성공한다.[8]일부 드라마의 들러리나 조연으로 출연하며 대사 한 두줄을 읽는 것이 낙이였을 정도로 출연요청이 뜨는 대로 모두 승낙했다 한다. 또한 노래실력도 수준급이라 여러가지 음반을 내기도 했다.

성우 녹음을 처음 한 것은 25살이던 시절 애니메이션 '초원의 집' 이 처음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때는 정식 데뷔 이전 이다. 공식적인 애니메이션 성우로 데뷔한 것은 1976년 마그네로보 가킨의 호조 역 이라고 한다. 그때까지 병사 A 등의 수많은 단역을 맡았었다. 절대로 무리일거라 생각했던 오디션에서 주연으로 발탁 된 이후 애니메이션 작품이 단번에 증가했다. 하지만 이렇게 애니메이션에서의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극단의 연습에 참가할 수 없었고 본래 자신이 출연하기로 되어있던 무대에도 설 수 없게되어 결국 아오니 프로덕션으로 이적했다. 이적 전에 참고를 위해 도쿄지사의 스튜디오를 견학 했다는데 당시 녹음실에서 녹화연습을하고 있던 후루야 토오루의 연기에 충격을 받았었다한다. 이후 후루카와는 미남에서 세번째까지 다양한 역할을 해낸다. 성우 산업 이외에도 1980년에는 '테마주의에 입각 한 오리지널 작품의 무대'를 표방하고 '극단 푸른 숲'을 창립 하여 대표이사로 자리잡으며 많은 공연에서 각본과 연출을 담당 하기도 했다. 2003년에 해산 후에도 극작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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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의 나이임에도 후배 성우들을 돕는다는 목적으로 현재까지 성우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미소년 및 미청년 연기가 가능하다고 한다. 2022년에는 기동전사 건담 극장판 쿠클스 도안의 섬에서 17세의 카이 시덴을 다시 연기하며 노익장을 과시했고 2023년 귀멸의 칼날에서는 한텐구 연기로 다시 한 번 존재감을 보였다.

최근 어머니의 기일을 맞이하여 형제 모두가 큰 누나의 집에 모였었다는데 위의 형제가 센이치로가 생전에 사용했던 죽도(120cm)를 보여줬다며 트윗에 인증했다가 엄청난 주목을 받게되었다. 트위터

3. 인간관계

3.1. 인품

워낙 대인배에다가 인자한 성격이라 발이 넓고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아, 주변 인간관계가 좋은 성우들 중 한 명으로 유명하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이미지를 성실한 인품이라 칭한다.

자신이 연기했던 모로보시 아타루의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본인은 "여성과 이야기하는 것이 항상 곤란하다" 라며 발언한 적이 있다. 이러한 이미지 때문인지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는 "정말 그 (아타루) 역을 연기하던 후루카와 씨입니까?" 라는 말을 듣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9]

3.2. 카미야 아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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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야: 좋은 친구, 좋은 라이벌.
후루카와: 에....아니지, 평생이 빠졌잖아....
2017 성우 파이널 매거진 희대의 라이벌 수록편에서
동료 성우인 카미야 아키라와는 시끌별 녀석들의 모로보시 아타루와 멘도, 북두의 권의 '신'과 켄시로처럼,[10] 라이벌 관계의 배역을 맡은 인연이 있다. 젊은 시절에는 후루카와가 오디션을 보러 가면 항상 카미야와 맞붙게 되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이 인연 덕분에 드래곤볼 Z의 첫번째 극장판 악역 가릭 주니어의 성우로 감독은 "후루카와씨의 라이벌이라 하면 당연히 카미야씨다!" 라며 일부러 카미야 아키라를 시켰을 정도이다.[11] 또한 둘은 동갑내기로[12]오랫동안 친한 친구로써 지내고 있다.

그 중 이 둘이 가장 재밌게 연기했다는 라이벌 관계는 시끌별 녀석들 모로보시 아타루 멘도 슈타로라 한다.

3.3. 히라노 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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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시끌별 녀석들 (1981) 녹음당시.[13] 최근 모습[14]
이 둘을 보면 별의별 기억이 되살아난다.[15]
- 타카하시 루미코[16]

시끌별 녀석들에서 모로보시 아타루의 연인 라무의 목소리를 담당한 히라노 후미는 현재까지도, 다른 일로 만나더라도, 후루카와 토시오를 보면 달링이라 부른다고 한다. 하지만 후루카와 토시오는 그럴 때마다 부끄러우니 그만 둬라고 답해준다고 한다.

이런 히라노 후미와는 후에 2017년부터 현재까지도 진행하는 OCTOCO의 '레전드 성우 인터뷰'의 진행을 맡게되었다. 원래 담당진행자가 갑자기 배우 인터뷰로 전락하게 되었고, 그는 자신이 성우 인터뷰 진행자시절 인터뷰를 했던 후루카와 토시오와 히라노 후미가 이 라디오를 진행하기에 적합하다 생각 했고 제의를 했지만 처음에는 후루카와는 거절하고 히라노 후미 만이 승낙했었다한다. 후에 파트너 진행자가 히라노 후미인것을 알려주자 바로 승낙을 했다고한다.

이 둘은 훗날 치유물의 대표 애니메이션 중 하나인 타마유라의 주역 4인방 중 한 명인 사쿠라다 마온의 부모 성우로 같이 호흡을 맞추기도 한다.

최근에도 아오니 프로덕션의 행사 때나 라디오 녹음을 진행할 때 마다 서로의 만남을 항상 트위터에 인증하며 서로의 각별한 우정을 드러냈다. 덕분에 트위터의 댓글 창에는 수 많은 팬 뿐만 아니라 동료나 후배 성우들 까지 시끌별 녀석들 GIF를 올리며 코멘트를 한다.[17]

이러한 헤이세이 초기 부터 이어져 온 둘의 사이라 그런지 각종 일화들이 정말 많다.[18] 가장 유명했던 일화는 어느 한 스튜디오에서 후루카와 토시오와 히라노 후미가 서로 연기의 호흡을 맞추던 것을 후배 성우인 야마구치 캇페이가 눈치없이 "두 분은 집 안에서 아무 소리 안 하시나요?"[19] 라며 말을 꺼냈다가 후에 동료 성우들에게 된통 혼났다는 일화가 있었는데 2019년도에 이 일화가 야마자키 사오리 라디오[20] 덕분에 실화라는 것이 밝혀졌다.

스튜디오는 후지 테레비의 내레이션 녹음 현장이였으며 당시 유명 성우들을 모아 CF송을 녹음하는 과정에서 발발한 해프닝이라 한다.[21] 또한 동료 성우들이 혼내기는 했지만 장난 식으로 넘어갔고 당사자들도 별 신경도 안 쓰고 웃음으로 넘겼다고 한다. 오히려 후루카와 토시오는 야마구치 캇페이를 굉장히 아꼈다고 한다.


2016년 미국의 애니콘 행사에 둘이 함께 초청되었다. 이 곳에서 과거 둘이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던 시끌별 녀석들 2 Beautiful Dreamer의 한 장면을 보여주자 그때를 회상하며 똑같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현재 70대와 60대의 나이임에도 여전히 소년 소녀의 목소리 연기가 가능하다. 옆에 후루카와의 아내인 카키누마 시노가 보인다.

3.4. 업계 관계자

그밖에도 후루야 토오루와는 기동전사 건담에 출연하기 전부터 서로의 집을 오고 가면서 같이 지낼 만큼 가까웠으며[22], 이케다 슈이치와도 접점이 많았다고 한다. 그 외에도 소가베 카즈유키, 시오자와 카네토, 호리카와 료, 미츠야 유지, 미즈시마 유 등과 같이 1세대 아이돌 성우로 슬랩스틱 밴드 활동과 꾸준한 팬서비스 활동으로 80년대 애니메이션 및 성우 잡지에 이름을 날리면서 상위권으로 인기도를 얻었으며 2010년대인 지금도 일본의 5,60대 되시는 올드 성덕들에게는 매우 인지도가 높은 성우 중 한 명이다. 현재 그들의 수준급의 노래실력은 여기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크레용 신짱의 현재 3대 애니메이션 감독인 무토 유지, 퍼스트 건담의 메카닉 디자이너 오오카와라 쿠니오와 서로 알고 있는 사이라고 한다.(!)[23] 시라이시 료코가 트위터 계정에 팔로잉이 되어있는데 서로 소속사도 같고 선후배 사이다 보니 가끔씩 방송국에서 만나며 대화하는 사례도 보인다. 한번은 사카구치 다이스케와 서로 대화한 적도 있었다.[24]

타니야마 키쇼는 자신이 성우가 되고자 했던 이유가 바로 후루카와 토시오였음을 밝혔고, 칸나 노부토시는 후루카와 토시오를 사부님이라고 부른다고. 다만 여자를 대하는게 조금 서툴러서 여자 동료들이나 후배들과는 그다지 대화를 많이 하지 못 한다고 한다.[25] 성격은 온화하지만 이와 같이 부끄럼도 많이 타는 성격이라 그를 동경하던 후배들이 "아니, 정말 그 역할 하던 후루카와 선생님이십니까!?"라고 물어본다고.

야마구치 캇페이를 친아들처럼 귀여워 했다고 한다. 당시 20대에 성우계의 첫 발을 내딛은 후배가 당시 40대의 장년 성우에게 귀여워 보이는 건 사실 당연, 심지어 그 후배가 자신의 이 주역으로 출연한 다음 작품 2대 주역[26]을 맡았기 때문에 그 귀여움은 극에 달하였다고 한다.

4. 여담

4.1. 시끌별 녀석들 관련

시끌별 녀석들의 주인공, 모로보시 아타루의 목소리 연기는 현재까지 그의 대표 캐릭터 중 하나로 자리 잡았고, 잡지나 텔레비전에서 그의 경력이 소개 될 때에 가장 처음에 실리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자칫하면 그는 아타루의 목소리를 연기하지 못 할 뻔 했었다.

자세한 것은 모로보시 아타루 캐스팅 논란 문서 참조.

36년만에 리메이크된 신작 TVA에서는 모로보시 아타루(2022년작은 카미야 히로시)의 아버지 역을 맡게 된다. #

4.2. 루팡 3세 풍마일족의 음모 관련

후루카와 토시오는 자신이 데뷔시절 게스트 역을 맡기 위해 불려갔던 루팡 3세의 녹음실에서 루팡을 연기하던 야마다 야스오의 목소리를 처음 듣고 그 자리에서 매료되었다고 한다. 이 후에 몇번 더 녹음실에 갈 기회가 생기자 어떻게 하면 저런 연기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갖고 그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녹화하여 돌려보기까지 하며 항상 그의 연기 포인트를 카피하려 노력했다고 한다.

어느 날, OVA 1개를 만드는 것으로 루팡 3세의 역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들어오지만, "똑같이 연기하는거면 그것은 그저 흉내가 되고, 비슷하게 연기하면 감히 너 따위가 연기를 해? 라는 비판 받게 될 것이 분명하잖아. 이런 식으로 장사하고 싶지는 않아." 라며 처음에는 거절하였지만 했지만 후에 직원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다른 캐스팅 제의는 모두 수락했으면서 이제 와서 도망가려는 겁니까?" 라는 말을 듣고는 어쩔 수 없이 일을 받았다. "후루카와 토시오가 맡을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전혀 상관 없다. 나 자신 만의 연기를 하자." 라는 것을 녹음시에 염두에 뒀으며, 루팡을 연기 할 때는 "흉내 내는 연기 말고 자신 만의 루팡을 녹음 하겠다." 라는 발언을 직접 선언 함과 함께 초반의 자신 본연의 목소리로 끌어나갔지만 여전히 루팡의 그림과 야마다 야스오가 만들어낸 루팡의 이미지에 끌려 무심코 모방하던 장면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OVA가 발매되었고 언제나처럼 대량의 팬레터를 받았는데, 대부분 내용이 루팡 3세의 연기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들 투성이 였었다고 한다.

캐스팅 변동은 당시 이 작품을 제작한 도쿄무비가 예산 부족으로 주역 성우 5인의 개런티를 지불할 수 없었기에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원작자 몽키펀치는 물론 반대했지만, "성우 본인들의 승낙을 받는다면 좋다"는 조건으로 이를 승낙했다. 그러나 성우 교체에 대해서 야마다 야스오를 포함한 성우 5인은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으며,[27] 작품 발매 1년 후에야 스튜디오에 인사를 오게 된 후루카와에게서 진실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격노한 야마다는 그날 밤 술에 잔뜩 취해 몽키펀치에게 새벽 1시에 전화를 걸어 "이건 당신이 허가한 일이잖아!"라며 30분동안 분노를 쏟아내었고, 몽키펀치 본인은 이미 시간이 한참 지난 일이었기 때문에 어안이 벙벙했다고 한다. 다음날 진상규명을 위해 몽키펀치는 동경무비신사를 찾아갔지만, 당시의 감독과 관계자는 모두 동경무비를 그만둔 상태였다. 이 사건 이후로 몽키펀치는 애니업계를 불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이때의 소동과 풍마일족의 음모가 흥행적으로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둔 것이 원인으로, 이후 TV스페셜부터는 원래대로 야마다가 루팡을 연기하게 된다.[28]

이후의 작품에서는 예정 되어있던 후루카와 토시오의 루팡 3세 우정 출연, 게스트 캐스팅이 전면 취소되었다. 그러니 루팡 3세 관련자들과 팬들의 입장에서 '후루카와 토시오' 는 금지어로 낙인찍힌 것.

이렇게 루팡 3세 출연은 여러모로 후루카와에게 트라우마가 되었고, 이후 본인조차도 루팡 3세에 대한 언급을 피하며 오랫동안 출연작 리스트에서도 지우는 등 기억 자체를 봉인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겨우 트라우마를 극복하였고, 출연작 리스트에도 다시 풍마일족의 음모가 추가되었다. "지금은 루팡 3세를 연기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긴다"라고.

루팡의 어릴적을 다룬 ONA ' 루팡 ZERO'에서 루팡 2세를 맡게 되었다.

4.3. 명성과 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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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의 베스트 성우를 뽑는 투표의 남성부문에서 2위를 차지하였다. 당시 그의 인기가 굉장히 압도적이였으며 1위는 라이벌로 유명한 동료 성우 카미야 아키라가 수상했는데, 이후 이들은 97년도 까지 1, 2위를 다투고 있다.[29]

70~80년대에는 슈퍼로봇이나 기동순찰대의 에릭 에스트라다 같은 열혈 주인공 역할을 비교적 많이 맡았으나 후에 ' 카이 시덴'과 위의 캐릭터인 ' 모로보시 아타루'를 기점으로 개그 캐릭터를 많이 맡게 되었다.

자신이 맡은 캐릭터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피콜로라고 밝힌적이 있다.[30] 어느 정도냐면 피콜로 피규어를 모조리 사서 전시하고 있을 정도. 게다가 아오노 타케시가 연기한 피콜로 대마왕 피규어까지 전시했다.

일본인 중에서는 보기 드문 기독교 신자라고 한다.[31] 스즈오키 히로타카가 향년 56세로 숨을 거두었을 때 그의 사망 소식이 담긴 팩스를 받고는 "그의 영혼을 천국으로 이끌어 주소서"라는 기도를 올렸다고.

2019년 7월 16일에 73세가 되는 몸인데,( 박영남, 배한성과 동갑) 포트거스 D. 에이스[32], 카미에 우츄타, 야마무라 미사오[33], 마쥬니어 같은 소년, 청년 연기가 아직도 건재할 만큼 몸관리가 뛰어나다.[34] 그리고 연기력도 우수하고 성격도 온화해서 많은 후배가 그를 존경하며 인기도 높다.

자신이 가장 잘 소화한 역은 시끌별 녀석들 모로보시 아타루라 한다.[35] 작품이 작품이고, 캐릭터가 캐릭터인 만큼 굉장한 인기였으며, 당시 여러 프로그램에 모로보시 아타루의 타이틀을 달고 출연한 것이 여럿 있다. 이 캐릭터가 후루카와의 존재를 알렸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2년 리붐시즌 인터뷰에서 "항상 아타루가 있었기에 자신이 후에 어떠한 캐릭터들을 연기해도 소화가능하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라며 애증을 들어냈다. 이러한 아타루의 목소리는 현재, 명탐정 코난에서 활약 중이고 애니 한정으로만 등장하는 오시이감독 주관의 진지한 아타루의 목소리는 이후, 마쥬니어와 에이스를 연기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잠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36] 전철만 타면 금방 잠이 와서 야마노테선을 졸면서 일주해버리기도 하고, 녹음실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면서 졸다가 손에 들고 있던 대본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NG를 낸 적도 많았고 밴드의 연습에서도 어느 순간 기타 소리가 사라져서 멤버들이 뒤를 돌아보면 기타를 든 채로 잠든 그의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질문에 후루카와는 1990년대에 자신이 총괄을 맡은 연극의 각본을 집필하는데, 당시엔 성우활동이 많아지던 시기라 시간이 부족하여 자는 시간을 쪼개가며 틈틈이 쪽잠을 자던 버릇이 현재까지도 전이된 것 같다고 말한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일본어 내레이션을 맡고있다. 차분하고 귀에 잘 들어오는 패턴이라며, 신기하게도 후루카와가 내레이션을 맡는 애피소드들은 전부 시청률이 높다한다.[37]

강아지를 두 마리 기르고 있다. 시츄 종 계열로 이름은 아스마와 에이스. 패트레이버와 원피스에서 후루카와가 맡은 배역의 이름이다. 이 전에 키우던 개 이름은 아타루.[38] 역시 시끌별 녀석들에서 후루카와의 배역인 모로보시 아타루에서 따온 이름. 모든 개들의 이름에는 후루카와의 성이 붙는다.

파일:20190101_214753.jpg [39]
1980년대에 펫샵에서 '나루'라는 이름을 가진 오리를 분양받아 길렀었다고 한다.[40] 가끔 그의 트위터에 8월 16일이 되면 오리의 기일 관련 추모 트윗이 올라온다. 일부 사진을 보아 '강아지 아타루'와 함께 생활했나보다.
링크

성우데뷔 시절부터 근시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20세기 때에는 대본을 읽을 때에만 안경을 착용했다고 한다. 현재는 정말로 눈이 안 좋아져 평소에도 쓰고 다니는 면모를 보여준다.

을 잘 못 마시며 애초에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 방울이라도 입에 들어가는 순간 잠이 온다는 발언을 한 적 있다.

카루이자와 부지에 면적이 200평에 달하는 별장을 소유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자신의 동료 성우들을 초대하여 작은 파티를 벌인다고 한다.

2019년 4월 1일부로 아오니 프로덕션 도쿄학원의 원장으로 취임한다.

4.4. 취향 및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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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술하겠지만 자신이 목소리 연기를 맡은 캐릭터의 피규어나 가챠를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의 대본집을 수집하는 것을 좋아한다. 대본집만 따로 모아둔 책장이 있을 정도. 특히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의 대본집은 따로 모아둔다고 한다.

또한 철도 모형과 디오라마, 미니어쳐에도 조예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디오라마와 미니어쳐의 제작 풍경이나 영상을 소개하고있다. 낚시에도 조예를 가지고 있다. "Do! 스포츠"의 내레이션을 맡던 시절, 낚시 번화가에 촬영 삼아 가본 것 과  미야가와 요이치에게 그물과 장대를 선물 받은 것을 계기로 시작했다. 1년의 반 이상은 낚시를 갔다고 하며, 이 취미가 심해져 낚시 잡지에서 12년 정도 후루카와 토시오를 취재해 갔다.

요리 하는 것을 싫어하는 아내를 대신해 대부분의 가사를 자신이 맡고 있으며 요리나 베이커리 또한 취미로 삼고 있다. 한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구운 수제 단팥빵을 공개했는데 맛이 기가막혀서 판매를 해도 된다는 의견이 많았을 정도.

4.5. 피규어 덕후

파일:20181008_015540.jpg 언뜻보면 벽지같지만, 특별 주문제작한 피규어 수납장이라 한다(...)파일:DmJ4MU3VAAAx7kb.jpg

기동전사 건담의 건캐논 피규어와 기타 코믹스들, 시끌별 녀석들, 원피스 관련 미디어 믹스 상품 등을 수집하고 있는 것과 북미 쪽의 애니메이션 (con) 행사에 몇몇 원로 성우들과 참여해 열성적으로 대사를 내뿜는 것을 보면 오덕후를 넘어 노(老)덕후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의 굿즈를 매우 열성적으로 수집하며, 현재 피콜로 피규어만 700개가 넘는다고.

스기타 토모카즈의 아니게라! 디둔에 출연해 밝힌 바에 따르면, 원래는 피규어에 딱히 취미는 없었는데 팬 중 한명이 피규어를 선물로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개 두개 모이기 시작하니 장식장도 만들고, 본인도 장식장을 채우기 위해 한두개씩 구매하다 푹 빠져버렸다는 듯. 특히 원로 성우이자 인기 성우인 만큼 출연작도 많고, 그런만큼 출시된 피규어도 많다보니 현재는 위의 사진같은 상황까지 가 버렸다고 한다.

5. 출연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후루카와 토시오/출연작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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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관련 문서



[1] 슬하에 자녀가 없어서 애완견만 셋을 키운다. [2] 성우를 하나의 직업으로 보고 삼았다는 뜻이다. 어째서 이런 말이 나왔냐면 후루카와가 성우 활동을 시작할 무렵의 성우계는 전문직이라기 보다 영화, 연극의 배우가 부업 정도로 삼고 방송국에서 부름 받을 때마다 가서 목소리 연기를 하고 온다고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지금의 원로 성우들중에서도 성우를 마땅한 직업으로 보지 않는 눈도 꽤 되는 편이다. 대표적인 예로 루팡 3세 역으로 오히려 더 유명세를 탔던 야마다 야스오가 있다. 그래도 이쪽은 꽤 세월이 지난 후 인정을 한 편. [3] 사실 제목 만이 후루카와 토시오의 자서전이지, 그가 쓴 것이 아니라 일본의 소설 작가이자 방송인, 요시야마 히로시가 쓴 것이다. 요시야마 히로시는 그가 프리랜서 배우였던 시절부터 절친이었다. [4] 어릴 적부터 모자 쓰는 것을 좋아했다고. [5] 집의 정원에서 찍은 사진이라 한다. [6] 당시 그 팜플렛에 후루카와가 즐겨보던 드라마 월광 가면의 배우들이 게재되어있어 관심을 보였다 한다. [7] 후루카와 토시오는 그 때 형이 팜플렛을 안 보여줬더라면 지금까지 뭘 해 먹고 살지가 궁금하다고 한다. [8] 1974년 드라마 제로 테스터에 통신원 역 으로 출연. [9] 모로보시 아타루는 변태에다가 인격파탄자에 가까운 인물이다. 괜히 초반에 논란이 있었던게 아니다. [10] 특히 켄시로의 경우, 후루카와와 카미야 둘 다 처음에는 켄시로 역으로 오디션을 봤다고 한다. [11] 참고로 가릭 주니어는 드래곤볼의 신과 신의 자리를 두고 싸운 라이벌 '가릭'의 아들이다. 후루카와 토시오는 신이 만들어낸 분신인 피콜로를 맡았다. 어찌보면 제대로 노린 캐스팅이다. [12] 여담으로 성우로써는 카미야가 4년 선배이지만, 후루카와는 아역 출신이기 때문에 프로 데뷔 자체는 후루카와가 선배이다. [13] 당시 시끌별 녀석들 (1981)의 첫 화를 녹음 중 이였다 한다. 실제로 히라노 후미가 테스트샷 마다 결석을 하여 저 둘은 저 때 처음 만났다 한다. [14] 현재 시끌별 녀석들 시절의 연인역을 빌미로 각종 라디오의 진행을 맡고있다. [15] (言葉が できなく= 말할 수 없을 정도로) [16] 시끌별 녀석들 (1981) 2013년도 리마스터 소식을 듣고 성우들에 대한 생각을 질문한 기자에게 [17] 대표적으로 카미야 아키라가 있다. [18] 한국으로 치면 강수진 최덕희 성우의 열애설과 유사하다. [19] 속 뜻은 "집안에 각각 아내와 남편이 있는데 여기서 이러셔도 되나요?"로 직역 가능하다. [20] 朝は サオリと!!! [21] 시기는 1991년, 캠페인 광고라고 적혀 있었다. [22] 다만 문서에서 알 수 있듯이 2024년 5월 22일에 폭력 사건을 일으켰고, 해당 사건에 자신의 배역과 위상을 이용했다는 사실도 밝혀져 후루카와 토시오 입장에서는 그와 친분을 끊었을 확률이 높다. [23] 야스히코 요시카즈한테 후루야 토오루와 같이 인터뷰한 적도 한번 있었다. [24] 두 사람 모두 포트거스 D. 에이스를 맡았다. [25] 실제 스기타 토모카즈의 아니게라! 디둔에 출연했을 때, 나이던 경력이던 까마득하게 차이나는 스기타를 꼬박꼬박 "스기타씨"라고 부른다. 이정도 나이와 경력차라면 편하게 "스기타군" 정도로 불러도 아무도 뭐라고 안할테지만 출연진들도 그 성격을 아는지 편하게 부르라고 말도 안하고 그냥 받아 들인다. 뭐, 메인 퍼스널리티인 스기타 본인부터가 똑같이 한참 어린 후배라도 존칭 쓰는 낮가림 있는 성격이라 익숙한 걸지도...? [26] 여담으로 3대 주역까지 간다.(...) [27] 특히 야마다는 자신 이외의 루팡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연락을 하지 않았을것이다. [28] 몽키펀치와 야마다 야스오는 이후 TV프로그램에서 표면상의 화해를 했지만, 이 사건은 야마다가 죽을 때 까지 둘 사이의 미묘한 앙금이 되었다고 한다. 몽키펀치 입장에서도 본인은 최대한 부탁했는데 제작사가 지키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자신에게만 분노를 쏟아내는 것에 기분이 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29] 나머지 순위의 성우들도 2020년이 된 지금까지도 현역으로 활동중인 성우들이다. 참고로 3위가 이노우에 카즈히코, 4위가 야마구치 캇페이, 5위가 세키 토시히코, 6위가 후루야 토오루, 7위가 사사키 노조무, 8위가 야마데라 코이치, 9위가 쿠사오 타케시, 10위가 치바 시게루이다. 지금은 이제 모두 나이가 든 페이스로만 보는 성우들의 젊은 시절의 모습이 새로울 정도. [30] 한번은 피콜로가 손오반을 가르치는 신이 있는데 엄격하게 가르치는 연기를 하다가 결국 손오반 성우였던 노자와 마사코에게 도리어 자기가 혼이 났다고. 이유는 어린애한테 너무한거 아니냐고(...). 알다시피 노자와 마사코는 후루카와 토시오보다 경력도 길고, 나이도 열 살이나 많다. [31] 오카모토 노부히코, 카와카미 토모코 가톨릭 성우는 외외로 많다. [32] 후루카와 토시오 본인이 에이스를 무척 좋아한다. 자기 집에서 엄청나게 많이 전시해둔 에이스 피규어를 트위터로 공개했다. 그리고 에이스 코스프레를 한 최강창민을 보고 놀랍다고 감탄했다는 말을 트위터로 남겼다. [33] 여담이지만 원래 단역인데 작가가 성우가 후루카와 토시오로 마음에 들어 조연급으로 상승시켜 계속 출연시켰다. [34] 또 하나의 대표작인 기동전사 건담시리즈 관련으로 "후루야군은 아직도 15세의 아무로 연기를 한다. 성우계의 괴물이다"라고 칭찬하자 후루야는 "카이가 분명 17인가 18살이죠? 그 말 그대로 돌려드리죠" 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실제로 아무로와 샤아가 캐릭터 성우교대를 슬슬 준비해야 하지 않냐는 소릴 듣는데 반해 카이는 그런 소리가 별로 안나올 정도로 아직도 변함없는 목소리를 유지중이다. [35] 공교롭게도 주간 소년 선데이 계열 작품 내에서는 개그 캐릭터를 자주 담당하고 있고, 주간 소년 점프 계열 작품 내에서는 선의의 경쟁자 및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명탐정 코난 야마무라 미사오만 봐도... [36]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원피스에서 맡은 배역인 포트거스 D. 에이스도 잠이 많다. [37] 이유는 그 전의 내레이션을 맡고 있던 아역배우 출신의 이케다 마사하루가 너무 못해서(...) 만 23세의 청년에게 다소 잔잔하거나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시켰으니 매칭이 잘 안되었다. [38] 현재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39] 좌측에 오리를 들고있는 여성은 후루카와의 아내인 카키누마 시노이다. 하단에 소파에 앉아있는 '강아지 아타루'가 보인다. [40] 이 오리의 이름은 아내가 맡았던 세일러문 오사카 나루에서 따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