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토 도나도니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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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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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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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대 |
이탈리아의 축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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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 이름 |
<colbgcolor=#ffffff,#191919> 로베르토 도나도니 Roberto Donadon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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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3년 9월 9일 ([age(1963-09-09)]세) | |
롬바르디아주 베르가모현 치사노베르가마스코 | ||
국적 |
[[이탈리아|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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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키 173cm | 체중 68kg | |
직업 |
축구선수(
미드필더[1] / 은퇴) 축구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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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colbgcolor=#eeeeee> 선수 |
아탈란타 BC (1981~1982 / 유스) 아탈란타 BC (1982~1986) AC 밀란 (1986~1996) 메트로스타스 (1996~1997) AC 밀란 (1997~1999) 알 이티하드 (1999~2000) |
감독 |
칼초 레코 1912 (2001~2002) AS 리보르노 (2002~2003) 제노아 CFC (2003) AS 리보르노 (2004~2006) 이탈리아 대표팀 (2006~2008) SSC 나폴리 (2009) 칼리아리 칼초 (2010~2011) SSD 파르마 (2012~2015) 볼로냐 FC (2015~2018) 선전 FC (2019~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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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63경기 5골 ( 이탈리아 / 1986~1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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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The Roby
Luci a San Siro[2]
이탈리아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볼로냐 FC 1909의 감독을 맡았다.
AC 밀란 역사상 최고였던 윙어. 다만 승부차기에 번번이 불운이 겹치는 인물이다. 승부차기로 자국에서의 월드컵 우승[3]과 생애 첫 월드컵 우승 기회[4]를 날려보냈고 이탈리아 국대 감독일 때 유로 2008에서 스페인에게 승부차기로 패배해 잘렸다.
2. 선수 시절
전설이었던 AC 밀란 시절.
2.1. 아탈란타
아탈란타 시절.
아탈란타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시작하여 1981년에 데뷔힌다. 이때 도나도니는 세리에 C로 강등된 팀을 다시 승격시키고 다음 해에 세리에 A로 승격시키는데 공을 세운다. 이때 도나도니를 관심있게 지켜보던 팀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AC 밀란이였다.
2.2. 밀란
이 한 마디로 도나도니의 위상을 설명할 수 있다.1987년 도나도니는 AC 밀란으로 이적한다. 처음에는 오른쪽 윙어로 뛰었으나, 아리고 사키 부임 이후, 중앙에서도 뛰기 시작했다. 이후
AC 밀란에서의 활약상.
2.3. 은퇴
밀란을 떠난 이후 뉴욕 레드불스의 전신인 메트로스터스로 이적한다. 한 시즌만에 밀란에 복귀하나, 출전 수가 적어 다시 알 이티하드로 이적하고 2000년 은퇴를 선언한다.
3. 국가대표
이탈리아 U-21부터 국가대표로 뛰기 시작했다. 1986 UEFA 유럽 U-21 챔피언십에서, 도나도니는 1986년 10월 8일 그리스 전에 데뷔하여 2-0 승리를 거뒀다. 곧 준결승부터 대표팀의 핵심 멤버가 되었다. 유로 1988부터 연속적으로 발탁되었고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때 꿈에 그리던 성인 대표팀에 발탁된다. 불행하게도, 아르헨티나와의 준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때 실축을 하였고 이탈리아는 준결승에서 탈락하고 만다.
도나도니는 1994 FIFA 월드컵 미국에서, 아리고 사키가 이끄는 이탈리아에 다시 한 번 발탁되었다. 조별 리그에서 조 3위로 간신히 16강에 진출한다.[5] 이후 이탈리아는 정신을 차렸는지 토너먼트 이후 파죽지세로 결승에 올라갔다.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만난 이탈리아는 120분 동안 무득점으로 승부차기에 들어갔는데, 승부차기에서 프랑코 바레시, 로베르토 바조가 실축하여 또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했다.
도나도니는 유로 1996에 출전해 우승을 노렸지만, 이번엔 광탈로 끝났다. 결국 1996년 6월 19일, 독일과의 유로 예선을 끝으로 도나도니는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한 채 63경기 5골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한다.
비록 국가대표 시절 정점을 찍지는 못했지만, 그와 별개로 국가대표팀에서의 도나도니의 플레이는 매우 훌륭했다. 전성기였던 90년/94년 월드컵 때는 대표팀의 돌격대장이었고, 전성기가 지났던 유로96 때도 번뜩이는 모습을 보여줬을 정도다.
4. 플레이 스타일
빠른 발과 체력, 공격 전개 능력, 볼 배급, 기술로 유명했다. 빠르고 재능있으며, 기복이 없던 윙어였다. 미드필더 지역 어느 곳에 두더라도 잘 뛰었던 선수였다. 비록 골 수가 적었지만, 찬스에는 강했다. 도나도니는 경력 전체 동안에 볼을 다루는 능력이나 기술, 창의성 같은 기술적인 능력에서는 최고였고, 드리블을 하며 달릴 때는 페인트 동작으로 상대방을 무력화시켰으며, 또한 정확하게 크로스를 날리는 희귀한 능력을 지녔다. 게다가 먼거리에서도 강력한 슛을 날릴 수도 있었다.5. 지도자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의 예시.5.1. 초기
코치 라이선스 획득 후 세리에 C에 있던 레코에서 감독직을 시작했다.5.2. 리보르노
2002년 리보르노 칼초 감독에 선임된 첫 해에 10위를 차지하였고 2003년 제노아 감독으로 선임되나 석 달도 안 되어 경질되어 2004년 다시 한 번 리보르노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04-05 시즌에 9위를 기록하더니 칼치오폴리로 시끄러웠던 2005-06 시즌에는 6위로 UEFA 유로파 리그에 진출하였다! 리보르노에서의 성공으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 취임한다.
5.3.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2006 FIFA 월드컵 독일을 우승시키고 사임한 마르첼로 리피 감독을 이어,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그가 감독으로 있던 UEFA 유로 2008 당시에 이탈리아는 조 2위로 8강에 진출했지만, 또 승부차기에서 스페인에 패배하였다.[6] 2008년 6월 26일, 도나도니는 2008년 유로 대회가 시작할 때쯤에 재계약을 했었지만, 이탈리아가 준결승에 진출을 못할 경우 계약이 종료된다는 조항에 따라 경질되었다. 그의 자리는 전임 감독이였던 마르첼로 리피로 대체되었다. 준결승만 갔더라면 국대 감독을 계속할 수 있었던 상황이라 본인에게도 꽤 아쉬웠던 커리어. 그리고 경질된 지 한달 뒤에는 한 팬에게 물세례를 당하는 수모까지 당했다.그러나 도나도니가 유로 2008에서 겪은 굴욕은 2년 뒤 남아공 월드컵에서 맞이한 재앙에 비하면 약과였다. 적어도 도나도니의 이탈리아는 첫 경기 대패 이후 정신을 차려 대회 챔피언 스페인에게 유일하게 패배하지도 실점하지도 않았지만, 리피는 유로 2008보다 훨씬 노쇠화되고 폼이 떨어진 스쿼드를 들고 나왔다가 한 경기도 승리하지 못하고 최하위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비참한 결과를 맞이했다.
5.4. 나폴리
2009년 3월 11일, SSC 나폴리의 새 감독으로 부임해 지난해 유로 2008에서 실망스러운 성적으로 이탈리아 대표팀 사령탑에서 경질된 후 나폴리에서 명예 회복을 노렸지만, 2009-2010 시즌 초반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내면서 경질 가능성이 제기되어 왔다. 이때 나폴리는 세리에 7라운드까지 2승 1무 4패의 성적으로 15위에 머물러 있었다.
결국 로마 원정 경기 1-2로 패배한 후 경질되었다. 후임으로 삼프도리아 감독이였던 왈테르 마짜리 감독이 선임되었다.
5.5. 칼리아리
2010년 11월 15일 경질된 피에르파올로 비졸리를 대신하여 칼리아리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선임 된 이후 두 경기를 승리하였지만 제노아와의 31라운드 이후 한 번도 이기지 못하며 최종 순위는 14위.2011-12 시즌 시작 전, 이적시장에서 보드진의 삽질로 마시모 셀리오 회장, 다비드 수아소와 불화가 생겼다. 결국 도나도니가 사임하면서 1년도 되지 않은 칼리아리 생활을 끝낸다.
5.6. 파르마
그러다 2012년 1월 9일, 프랑코 콜롬보를 대신하여 감독에 선임된다. 부임 이후 중위권을 유지하다 2013-14 시즌 8위로 유로파 진출권을 따내어 유로파 리그에서도 파르마를 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UEFA 라이선스를 따지 않아 유로파 리그 참가를 못하게 되었다. 기라르디 구단주는 피거솟하여 구단을 아주 팔아버리고 축구도 때려치우겠다고 하는 상황. 어부지리로 토리노 FC가 나가게 되었다. 그래도 2라운드 AC 밀란과 4:5, AS 로마와 1:2 등 상위권 클럽들과 나쁘지 않은 전적을 보이며 중하위권 팀을 잡고 올라오겠지 했으나, 파르마는 6연패 후 겨우 인테르를 잡고 다시 수렁에 빠지며 순식간에 강등권으로 추락한다.
그 원인으로 밝혀진 것은 재정 문제. 급기야 도나도니 감독이 앉던 의자까지 경매에 넘겨졌다. 파르마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상황. 게다가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의 임금 체납은 7개월째 이어지고 있고 홈구장 자체가 없어질 위기에 처해져 있으니 성적이 잘 나올 리가 없었다. 결국 팀은 세리에 D로 강제 강등되고 도나도니 감독은 자진 사퇴를 한다.
5.7. 볼로냐
자진 사퇴 이후 AC 밀란의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루머가 있었지만 한동안 무직으로 지내돈 도나도니인데 도나도니가 2년 계약으로 델리오 로시 후임으로 볼로냐 감독으로 취임했다! 수요일 인테르와의 경기 패배 후 로시 감독을 경질하면서 팀 분위기를 바꿀 의도인 듯하다. 효과가 있었는지 부임 후 8승 2무 11패로 현재 12위에 위치해 있다. 2승 8패로 강등권에 있던 전 상황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힘만 빠지지 않는다면 잔류도 가능한 상황지만 2018년 블로냐와 계약만료로 팀을 떠났다.
5.8.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볼로냐와 계약 만료로 야인으로 지낼 것 같더니 갑자기 일본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접촉했다는 기사가 떴다. 아무래도 자케로니 감독이 선전한 영향인지 이탈리아 감독에 대해서는 일본은 긍정적이다. 게다가 J리그를 관전하는 모습을 보이며 확정이 아니냐는 모습을 보였는데, 문제는 일본에는 이미 2개월 전에 계약한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있었던 것이다. 이에 일본 축구 팬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웃 나라이자 라이벌인 한국이 선수 커리어가 화려한 슈틸리케를 선임했다가 개막장을 경험한 걸 눈으로 보았던데다가, 자케로니 감독은 세리에 A에서 성과를 거둔 면이 많았기에 일본 대표팀을 맡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게다가 지금 있는 감독이 도나도니에 꿀릴 게 없는 감독인데 뭐하러 교체하냐는 것과 도나도니 감독의 경우 월드컵 우승국이던 아주리 군단을 유로 2008 8강에서 탈락시켰고, 우승 경력도 없거니와 계속 하위권 팀만 전전거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리야스 감독은 국가대표로 35경기를 뛰었고, 클럽에서도 산프레체 히로시마를 지도하며 3번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국가대표 감독으로써도 2018 아시안 게임에서 말레이시아, 사우디, 아랍에미리트를 꺾고 결승에 진출시킨데다 결승에서 패해 준우승했지만 손흥민, 황의조, 이승우, 황희찬으로 구성된 수준급 해외파 공격수들을 가진 라이벌 한국을 상대로 정규 90분 연장까지 물고 늘어지는 모습을 보이며 명승부를 연출했고, 친선경기에서도 코스타리카를 3:0으로 격파하며 국대 경력도 클럽 커리어도 국제 대회 평가전에서도 좋은 지도력을 선보인 감독을 어떻게 내치고 하향세의 감독과 접촉하냐며, 그리고 부임한지 2개월 밖에 안 된 감독을 교체할 생각을 하냐며 축구협회를 맹공격했고, 일본축구협회는 아니다라는 보도자료를 내놨다.일각에서는 모리야스 감독이 겸임을 어려워 하니 올림픽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의견과 J리그 팀의 감독 오퍼가 와서라는 반응이 있다. 얼마 전에 국가대표 감독을 맡아 행복하다는 인터뷰를 했던 모리야스 감독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일이다.
5.9. 선전 FC
2019년 7월 30일 중국 선전 FC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하지만 팀을 강등에서 구하지는 못했고, 선전은 2020년부터 중국 갑급 리그 소속으로 리그에 참가하게 된다.그러나 리그 14위를 한 톈진 톈하이가 2020년 5월 재정난으로 해체를 선언, 운좋게 다시 슈퍼리그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지휘력의 신뢰를 잃었는지 결국 경질되었다. 후임은 전 충칭 리판 감독이였던 조르디 크루이프이다.
6. 수상
- AC 밀란
- 세리에 A: 1987-88, 1991-92, 1992-93, 1993-94, 1995-96
- 세리에 A 준우승: 1989-90, 1990-91
-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 1989-90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988, 1992, 1993, 1994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준우승: 1996
- UEFA 챔피언스 리그: 1988-89, 1989-90, 1993-94
-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1992-93, 1994-95
- UEFA 슈퍼컵: 1989, 1990, 1994
- UEFA 슈퍼컵 준우승: 1993
- 인터컨티넨탈컵: 1989, 1990
- 인터컨티넨탈컵 준우승: 1993, 1994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UEFA 유로 1988 4강
- 1990년 FIFA 월드컵 3위
- 1994년 FIFA 월드컵 준우승
- 개인
- 1990년 FIFA 월드컵 올스타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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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 유로 2008 참가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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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레시 · 3
베르고미 ⓒ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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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 · 7
말디니 · 8
비에르코보드 · 9
안첼로티 10 베르티 · 11 데 나폴리 · 12 타코니 · 13 잔니니 · 14 마로키 · 15 바조 · 16 카르네발레 · 17 도나도니 18 만치니 · 19 스킬라치 · 20 세레나 · 21 비알리 · 22 팔리우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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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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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니 · 3
베나리보 · 4
코스타쿠르타 · 5
말디니 · 6
바레시 ⓒ · 7
미노티 · 8
무시 · 9
타소티 10 R. 바조 · 11 알베르티니 · 12 마르케자니 · 13 D. 바조 · 14 베르티 · 15 콘테 · 16 도나도니 · 17 에바니 18 카시라기 · 19 마사로 · 20 시뇨리 · 21 졸라 · 22 부치 |
아리고 사키 |
[1]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2]
산 시로를 밝히는 불빛이란 뜻이다. 밀란에서의 그의 위상을 보여주는 별명.
[3]
본인이 키커였으며, 실축.
[4]
다만, 본인이 키커가 아니었다. 실축한 키커는
프랑코 바레시와 그 유명한
로베르토 바조.
[5]
이때는 본선 진출국이 24개국이라 조 3위 팀 중 전적이 좋은 4팀이 16강에 추가로 진출하는 제도가 있었다. 그래서 이탈리아가 16강에 진출한 것이다. 다음 대회인 프랑스 월드컵부터 32개국 출전으로 확대되었다.
[6]
죽음의 조에 편성된 것도 있었지만, 네덜란드와의 1차전에서부터 3대0으로 크게 패하면서 출발이 불안했고, 이후 루마니아전은
무재배를 하면서 순식간에 벼랑 끝에 몰렸고, 닥치고 이겨야만 하는 프랑스와의 3차전에서는 승리하여 간신히 8강에 진출하는 등 조별리그에서부터 경기 내용이 몹시 좋지 않았다. 네덜란드전 3-0 패배에서 폼이 좋은
안토니오 카사노와
다니엘레 데 로시,
알베르토 아퀼라니 대신 폼이 떨어진
마시모 암브로시니와
젠나로 가투소,
마우로 카모라네시를 기용한 것으로 비판을 많이 받았다.
분류
- 1963년 출생
- 이탈리아의 남자 축구 선수
- 이탈리아의 남자 축구 감독
- 아탈란타 BC/은퇴, 이적
- AC 밀란/은퇴, 이적
- 뉴욕 레드불스/은퇴, 이적
- 알 이티하드 FC/은퇴, 이적
- 칼초 레코 1912/역대 감독
- AS 리보르노 칼초/역대 감독
- 제노아 CFC/역대 감독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SSC 나폴리/역대 감독
- 칼리아리 칼초/역대 감독
- 파르마 칼초 1913/역대 감독
- 볼로냐 FC/역대 감독
- 선전 FC/역대 감독
- 이탈리아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참가 선수
- 1994 FIFA 월드컵 미국 참가 선수
- 이탈리아의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참가 선수
- UEFA 유로 1988 참가 선수
- UEFA 유로 1996 참가 선수
- UEFA 유로 2008 참가 감독
- UEFA 챔피언스 리그 다회 우승 선수
- 미드필더
- 윙어
- 공격형 미드필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