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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3 18:24:31

제노아 C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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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25 시즌 참가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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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리그 및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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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아 CFC
Genoa CFC
<colbgcolor=#00244b><colcolor=#fed508> 정식 명칭 Genoa Cricket and Football Club SpA
별칭 Rossoblu(적-청), Grifone(그리핀들)
약칭 GEN
창단 1893년 9월 7일 ([age(1893-09-07)]주년)
소속 리그 세리에 A (Serie A)
연고지 리구리아 주 제노바 (Genova)
홈구장 스타디오 루이지 페라리스 (Stadio Luigi Ferraris)
(36,536명 수용)
라이벌 UC 삼프도리아 - 데르비 델라 란테르나
구단주 파일:미국 국기.svg 777 파트너스[1][2]
단장 요하네스 슈포르스 (Johannes Spors)
감독
[[프랑스|]][[틀:국기|]][[틀:국기|]] 파트리크 비에라 (Patrick Vieira)
주장
[[크로아티아|]][[틀:국기|]][[틀:국기|]] 밀란 바델 (Milan Badelj)
부주장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마티아 바니 (Mattia Bani)
영구 결번
6
잔루카 시뇨리니 (Gianluca Signorini)
12
서포터즈 (Supporters)
공식 웹사이트 파일:제노아 CFC 로고.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틱톡 아이콘.svg 파일:LinkedIn 아이콘.svg 파일:텔레그램 아이콘.svg
우승 기록
세리에 A
(9회)
1897-98, 1898-99, 1899-1900, 1901-02, 1902-03, 1903-04, 1914-15, 1922-23, 1923-24
코파 이탈리아
(1회)
1936-37
세리에 B
(6회, 최다 우승)
1934-35, 1952-53, 1961-62, 1972-73, 1975-76, 1988-89
세리에 C
(3회)
1970-71

1. 개요2. 스쿼드3. 상세4. 역사
4.1. 창단 및 구단의 최전성기4.2. 제노아 1893 시절4.3. 엘리베이터 클럽4.4. 유럽대항전 진출 이후 찾아온 쇠퇴기, 강등4.5. 2003년 이후4.6. 역대 감독4.7. 1부 리그 기간
5. 영구결번

[clearfix]

1. 개요

이탈리아 제노바에 연고를 둔 축구 클럽으로 이탈리아에서 현존하는 가장 역사가 오래된 구단이다.[3] 유벤투스, 인터 밀란, AC 밀란에 이어 4번째로 많은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한 명문 클럽이자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단 네 팀밖에 없는 리그 무패 우승팀 중 하나다.[4] 한 번만 더 스쿠데토를 차지하면 엠블렘 상단에 10회 우승을 상징하는 금별을 달 수 있다. 그런데 9번째 우승하고 100년이 지났다.

2. 스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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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25 시즌 제노아 CFC 스쿼드
번호 국적 포지션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비고
1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GK 니콜라 레알리 Nicola Leali
2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MF 모르텐 토르스비 Morten Thorsby
3 파일:스페인 국기.svg DF 아론 마르틴 Aarón Martín
4 파일:벨기에 국기.svg MF 코니 더빈터르 Koni De Winter
8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MF 에밀 보히넨 Emil Bohinen
9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FW 비티냐 Vitinha
10 파일:브라질 국기.svg FW 주니오르 메시아스 Junior Messias
11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FW 가스톤 페레이로 Gastón Pereiro
13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DF 마티아 바니 Mattia Bani 부주장
14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DF 알레산드로 볼리아코 Alessandro Vogliacco
15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DF 브룩 노튼커피 Brooke Norton-Cuffy
17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MF 루슬란 말리노우스키 Ruslan Malinovskyi
18 파일:가나 국기.svg FW 케일럽 에큐반 Caleb Ekuban
19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FW 안드레아 피나몬티 Andrea Pinamonti [1]
20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DF 스테파노 사벨리 Stefano Sabelli
21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FW 제프 에카토르 Jeff Ekhator
22 파일:멕시코 국기.svg DF 요한 바스케스 Johan Vásquez
23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MF 파비오 미레티 Fabio Miretti [2]
27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DF 알레산드로 마르칸달리 Alessandro Marcandalli
30 파일:나이지리아 국기.svg FW 데이비드 안케예 David Ankeye
32 파일:덴마크 국기.svg MF 모르텐 프렌드루프 Morten Frendrup
33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DF 알란 마투로 Alan Matturo
39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GK 다니엘레 솜마리바 Daniele Sommariva
45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FW 마리오 발로텔리 Mario Balotelli
47 파일:크로아티아 국기.svg MF 밀란 바델 Milan Badelj 주장
53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MF 리오르 카사 Lior Kasa [3]
59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DF 알레산드로 자놀리 Alessandro Zanoli [4]
72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MF 필리포 멜레고니 Filippo Melegoni
95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GK 피에를루이지 골리니 Pierluigi Gollini [5]
99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GK 프란츠 슈톨츠 Franz Stolz
<colbgcolor=#9d002c> 구단 정보
회장: 알베르토 장그릴로 / 감독: 파트리크 비에라 / 구장: 스타디오 루이지 페라리스
출처: 영문 위키피디아 / 마지막 수정 일자: 2024년 10월 29일

[1] US 사수올로 칼초에서 임대 [2] 유벤투스 FC에서 임대 [3] 마카비 하이파 FC에서 임대 [4] SSC 나폴리에서 임대 [5] 아탈란타 BC에서 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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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상세

1920년대까지 전설적인 수비수 렌초 데베키 등을 앞세워 강자의 지위를 누리다가 그 후로는 강등과 승격을 반복하는 별볼일 없는 행보를 보였다. 그러다 2000년대 중엽 현 구단주 엔리코 프레치오시[5]가 인수한 후 공격적인 투자로 2007-08 시즌부터 세리에 A에 안착하였다.

경영진의 협상력이 대단해 선수를 곳곳에서 싸게 사와 터뜨리고 빅클럽에 팔아치우는 기술이 가히 신의 경지. 현금을 받기보다 유망주 공동소유를 최대한 활용하고 그것도 터뜨린다. 스카우팅 능력도 대단한 듯 프레치오시는 16세의 리오넬 메시를 데려올 기회가 있었지만 포기했다고 한다. 밀라노의 두 클럽과 특히 우애가 돈독해 그 팀 팬들은 제노아를 '형제의 클럽'이라 부른다. 다만 너무 선수를 갈아치우는 통에 조직력을 맞출 시간이 부족해 성적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는다. 다만 AC 밀란과는 이탈리아와 거리가 먼 국내에서나 형제노아라고 불러주는 것이지, 실제 현지 사정은 한 밀라니스타가 제노아 팬을 살해함으로써 밀란이 제노바로 원정가는 순간 최루탄까지 터뜨리는 전쟁통이 되었다.[6]

이들의 이적 매커니즘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한 선수가 이적 직후 시즌을
1. 매우 잘 보냈다 → 관심있는 빅클럽에 현금 + 유망주를 받고 판다
2. 괜찮은 활약 → 한 시즌 더 주전으로 써보고 1을 기대한다
3. 보통 → 다음 시즌 영입된 기대주에 의해 벤치로 밀려난다
4. 생각보다 부진 → 유망주 영입에 교환카드로 제시된다
5. 많이 못했다 → 하위 클럽으로 팔리거나 임대된다

당장 승격 시즌과 비교하여 2011년 현재까지 남아있는 선수가 각주를 단 세 명. 이들을 빼면 언제나 팔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면 된다. 항상 세리에 A의 이적시장에서 가장 많은 선수를 사고파는 클럽이다.

축구왕 슛돌이의 배경이 된 클럽으로 여러모로 일본과 관련이 깊다. 세리에 B이던 시절 일본의 축구스타 미우라 카즈요시를 영입하고 2009-10 시즌까지 아식스 유니폼을 입기도 했다.

팀 명칭이 제노바가 아닌 제노아인데, 이것은 이탈리아 거주 잉글랜드인들의 클럽으로서 창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클럽 초창기 한동안은 이탈리아인들은 클럽에 가입할 수 없었다. 파시스트 정권 시기에는 한때 강제로 제노바로 개명당하기도 했으나 2차 대전 이후 다시 제노아로 복귀했다.

4. 역사

파일:제노아 CFC 로고(1998~2022).svg
1998년~2022년까지의 팀 로고.

4.1. 창단 및 구단의 최전성기

1893년 9월 7일 이탈리아에 사는 잉글랜드인들이 모여서 육상과 크리켓 클럽으로 설립되었다. 축구는 부차적인 스포츠에 불과했다.[7] 게다가 영국 스포츠 클럽이었기 때문에 이탈리아인은 가입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897년 4월 10일 축구 부서가 독립되었고 이탈리아 클럽으로 정착되면서 이탈리아인들도 허용하게 되었다.

세리에 A의 초대 시즌은 단 네 팀이 참가하여 하루에 토너먼트를 몰아서 하는 방식 등 틀이 잡히기 전이었는데 제노아가 선두주자로서 이득을 톡톡히 누렸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진나스티카 토리노와 인테르나치오날레 토리노를 꺾고 초대 우승팀이 되었다. 이듬해인 1899년 4월 16일에도 인테르나치오날레 토리노에 3-1 승리하면서 두 번재 우승, 1900년 대회에서도 라이벌 팀 삼피에르다레네세에 7-0 대승을 거두고 또 우승하면서 3년 만에 3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1901년에 제노아는 빨강-네이비 색상의 유니폼을 채택했고 이때부터 로쏘블루(rossoblu)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1902년은 밀란 CFC[8]에 패배해 처음으로 우승에 실패했으나 1903년과 1904년 유벤투스를 연이어 결승에서 꺾고 4,5번째 우승에 성공했다. 1903년 4월 27일에는 프랑스에서 FVC 니스와 경기를 벌여 3-0 승리를 거둬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국제경기에 나섰다. 다만 1905년 준우승에 그친 이후 제노아는 유벤투스, 밀란, 프로 베르첼리 등에 밀리는 신세가 되었다. 1908년 이탈리아 축구협회에서 외국인 선수들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거친 항의를 받아들였는데 창단 이후부터 항상 영국인들로만 구성되었던 제노아는 이탈리아 축구 협회에서 탈퇴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다음해 협회는 이 결정을 번복하였고 제노아는 일부 스위스 출신 선수들과 함께 팀을 재건했다. 선수단 리빌딩에 나서면서 수용인원 25,000명 규모의 새 경기장인 스타디오 루이지 페라리스를 지어 1911년 1월 22일 공식 개장을 했다.

새로 창설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아주리의 주장을 맡은 렌초 데베키, 에도아르도 마리아니, 엔리코 사르디 등이 대표팀의 주축 역할을 했다. 끊임없이 파이프 담배를 피우던 영국 국적의 이탈리아 최초의 전문 감독 윌리엄 가벗은 제노아의 부흥을 이끌었으며 선수들로부터 Mister라는 별명이 붙었다. 1914-15 시즌 제노아는 북이탈리아 지역에서 우승했으나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전국대회 경기를 하지는 못했고 전후인 1918년이 돼서야 우승식을 가졌다.[9] 전쟁 후에도 제노아는 북부 지구에서 강팀으로 자리잡았고 1922-23 시즌에는 라치오를 상대로 결승전에서 1,2차전 합계 6-1로 이기고 통산 8번째 우승에 성공했다. 1923-24 시즌에는 북부지구 결승전에서 볼로냐를 상대로 2차전 폭동 사태를 맞아 2-0 몰수승을 얻었고 전국대회에서 사보이아를 1,2차전 합계 4-1로 꺾고 통산 9번째 우승을 차지했다.[10] 이 시기 선수단에는 렌초 데 베카를 비롯하여 조반니 데 프라, 오타비오 바르비에리, 루이지 부를란도가 있었다. 그러나 남은 1920년대에 제노아는 1927-28 시즌 준우승에 그치며 더 이상의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4.2. 제노아 1893 시절

클럽명이 영국색이 짙어 1928년 파시스트 정부로부터 제노바 1893 치르콜로 델 칼초(Genova 1893 Circolo del Calcio)로 강제개명되는 수모를 당했다. 현재의 리그 형태인 세리에 A 첫 시즌인 1929-30 시즌에는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전신 암브로시아나에 밀려 2위로 시즌을 마쳤다. 1930년대에는 들쑥날쑥한 성적을 올리다가 1933-34 시즌 2부리그인 세리에 B로 강등당했다. 다행히 곧바로 승격하면서 세리에 A로 돌아왔고 1936년 줄리오 쿨리오로 회장이 취임한 뒤 1936-37 시즌 리그에서는 6위로 마친 뒤 코파 이탈리아에서 AS 로마를 상대로 마리오 토르티의 골로 1-0 승리를 거두며 우승에 성공했다. 1937-38 시즌에는 우승틴 암브로시아나-인테르에 승점 3점차로 3위를 기록했다. 1938 FIFA 월드컵에서는 마리오 페라촐로, 마리오 젠타, 세르조 베르토니가 우승 멤버로 활약했다.

4.3. 엘리베이터 클럽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 이전의 명칭인 제노아 CFC로 되돌아갔다. 1946년에는 지역의 다른 두 클럽이 합병한 UC 삼프도리아와 새롭게 지역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고 스타디오 루이지 페라리스를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종전 이후 제노아의 성적은 이전의 강팀과는 거리가 멀었다. 1951년에 클럽은 두 번째 세리에 B 강등을 겪었고, 2년 뒤인 1953년에 세리에 B 우승으로 세리에 A에 돌아왔으나 중위권에 머무르다 1959-60 시즌 다시 강등을 당했다. 1961-62 시즌 세리에 A 복귀에 성공했고 당시 국제 대회를 대신한 클럽대항전인 코파 델레 알피에서 1962, 1964년에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1964-65 시즌 클럽 역사상 4번째 세리에 B 강등을 당했으며 감독 및 구단주가 자주 바뀌고 재정 불안에 시달리다가 1970년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3부리그인 세리에 C로 강등당했다.

제노아는 1년 만인 1970-71 시즌 세리에 B로 복귀했고, 2년 뒤인 1972-73 시즌에는 세리에 A 승격에 성공하며 8년 만에 1부리그에 돌아왔다. 1년 만에 곧바로 강등된 뒤 1975-76 시즌 다시 세리에 A에 돌아왔다. 로베르토 로사토, 브루노 콘티, 로베르토 프루초 등이 있었으나 1977-78 시즌 득실점 1점이 부족하여 세리에 B로 강등되었다. 1980-81 시즌 루이지 시모니 감독의 지휘 속에 토토네로 도박 스캔들로 지난 시즌 강등된 AC 밀란에 이어 2위로 세리에 A 복귀에 성공했다. 그리고 1981-82 시즌 최종전에서 AC 밀란에 승점 1점차로 앞서 극적인 잔류에 성공했다. 후반 40분에 터진 마리오 파체다의 결승골로 나폴리에 승리하면서 이때 두 팀 팬들 사이 우호적 관계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두 시즌 뒤 최종전에서 유벤투스에 패배하며 또 강등을 당했다. 라치오와 승점이 같았으나 상대전적에서 열세였다.

4.4. 유럽대항전 진출 이후 찾아온 쇠퇴기, 강등

1985년 알도 스피넬리가 구단주가 되었다. 1988-89 시즌 세리에 B 우승으로 세리에 A에 돌아왔고 엘라스 베로나를 스쿠데토로 이끌었던 오스발도 바뇰리를 감독으로 선임하고 카를로스 아길레라, 토마시 스쿠라비 같은 좋은 선수가 더해지며 1990-91 시즌 세리에 A에서 4위를 기록했다. 그러면서 UEFA컵 출전권을 얻게 되었다. 1991-92 시즌 UEFA컵 8강에서 제노아는 8강에서 징계가 풀린 리버풀 FC}]를 상대로 홈, 어웨이 모두 승리하면서 이탈리아 팀 최초로 [[안필드에서 승리를 거둔 팀이 되었다. 준결승에서는 아약스를 상대로 3-4로 밀리면서 우승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리그 성적은 잔류권에 승점 1점차로 겨우 앞서 14위로 잔류했다. 게다가 바뇰리 감독은 딸의 간병을 위해 사임했고 스피넬리 회장의 경영난으로 인해 재정난이 찾아왔다. 결국 1994-95 시즌 파도바와 같은 승점을 기록하며 강등 타이브레이커를 치렀는데 피렌체에서 1,2차전을 치러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승부차기 끝에 강등을 당했다. 스피넬리 회장은 제노아를 매각하고 다른 클럽의 회장으로 옮겼으며 2000년대 초반에는 좋지 않은 재정 상황과 잦은 구단주 교체 등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4.5. 2003년 이후

2003년 프레치오시가 회장으로 부임하던 시기 제노아는 세리에 C1 강등 예정이었으나 이탈리아 축구협회가 세리에 B 참가팀을 24개 팀으로 늘리면서 세리에 B에 잔류하게 되었다. 2004-05 시즌 제노아는 디에고 밀리토 등의 활약으로 세리에 B에서 우승하면서 10년 만에 세리에 A에 돌아오는듯 했지만 승부조작 혐의로 인해 승격 취소 및 세리에 C1 강등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2005-06 시즌 승점 3점의 페널티 속에서도 2위로 마치면서 플레이오프에 나섰고 몬차를 꺾고 세리에 B 승격에 성공했다. 지안 피에로 가스페리니가 2006년 제노아 감독으로 부임했고 2006-07 시즌 나폴리와의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거두며 동반 승격에 성공했다. 12년 만의 세리에 A 복귀.

2007-08 시즌 마르코 보리엘로가 세리에 득점 3위에 오르며 팀을 안정적으로 중위권으로 안착시켰다. 2008-09 시즌 이적생 티아고 모타 디에고 밀리토의 활약으로 구단 역사상 첫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노렸으나 아쉽게도 4위 ACF 피오렌티나에 상대전적에서 밀린 5위로 유로파 리그로 갔다. 그리고 모타와 밀리토는 인테르로 떠나버렸다. 2009-10 시즌에는 에르난 크레스포 로드리고 팔라시오가 왔으나 결국 앞서 떠난 두 선수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초반 3연승 이후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이며 유로파리그 조별예선 탈락[11], 리그는 9위로 유로파 리그조차 가지 못했다.

2011-12 시즌과 2012-13 시즌은 연속 17위로 가까스로 강등을 면했다.

2014-15 시즌에 다시 가스페리니가 부임하면서 유벤투스에 전반기 유일한 패배를 안기며 14라운드까지 3위에 오르는 등 선전했다. 그러나 DTD의 법칙을 거스르지 못하며 잠시 중위권인 9위까지 내려가기도 했으나 반등에 성공하며 승점 59점으로 리그 6위를 기록해 유로파 리그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지난 시즌 파르마 FC가 그랬던 것처럼 UEFA 라이센스를 획득하지 못해 하필이면 7위를 기록한 라이벌 삼프도리아에게 진출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토트넘에서 데려온 이아고 팔케가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고 전반기에는 와싯의 양아들 알레산드로 마트리가 7골을[12], 후반기에는 사수올로에서 임대로 데려온 레오나르도 파볼레티[13]가 10경기 7골을 기록했다.

2015-16 시즌은 11위로 마쳤고, 2016-17 시즌은 강등 위기를 겪다가 16위로 잔류했다. 2017-18 시즌은 시즌 초반 부진하면서 이반 유리치 감독이 경질되었고 다비데 발라르디니 감독이 다시 부임하고 안정화되면서 중위권인 12위로 마쳤다.

2018-19 시즌 초반 7경기 4승3패로 나쁘지 않은 결과가 나오고 있었는데 발라르디니 감독이 사임하고 다시 유리치가 감독으로 부임했는데 1승도 거두지 못하며 최악의 결과를 내다가 경질되었다. 체사레 프란델리가 감독으로 부임했고 팀을 안정화시키는듯했지만 시즌 막판 득점력 부재로 인해 10경기 무승을 기록하면서 18위 엠폴리와 같은 승점으로 상대전적에서 앞서 가까스로 17위로 잔류했다. 피옹텍이 전반기 9골을 넣고 AC 밀란으로 이적했다.

2019-20 시즌은 최하위까지 추락했으나 경기 막판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17위로 가까스로 잔류했다. 2020-21 시즌 롤란도 마란 감독 체제에서 강등권으로 추락했으나 또 다시 다비데 발라르디니가 부임하며 안정화시킨 끝에 11위로 잔류했다.

2021-22 시즌 전반기에는 매우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6라운드 기준 유벤투스가 챔스 진출 확정이었다고 하지만 후반 90+7에 크리시토의 기적같은 극장골로 승리하여 잔류 희망을 이어갔다. 하지만 37라운드에서 나폴리에 0-3으로 패배를 하면서 15년간 있었던 세리에 A에서 강등 되고 말았다. 다음 시즌에 세리에 B에서 2위를 차지하면서 한시즌만에 다시 세리에 A로 승격하게 되었다.

2023-24 시즌에 팀을 다시 세리에 A로 승격시킨 질라르디노 감독을 지원하기 위해 시즌을 앞두고 여름 이적시장에서 국대 출신 스트라이커인 마테오 레테기를 나름 팀의 재정 대비 거금이라고 할 수 있는 €16M을 투자하여 영입하였고, 아탈란타에서 활약했었던 루슬란 말리노우스키도 임대 후 완전 영입하였다. 최종 12승 13무 13패 승점 49점으로 11위를 기록, 역대 승격팀들의 첫 승격시즌 최다 승점을 기록했다. 2년전 영입했던 유망주 알베르트 그뷔드뮌손이 리그 35경기 14골 4도움을 기록하며 활약했다.

4.6. 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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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 현재
101대
바바소리
파일:UEFA EURO ITA.png
102대
가스페리니
파일:UEFA EURO ITA.png
103대
발라르디니
파일:UEFA EURO ITA.png
104대
말레사니
파일:UEFA EURO ITA.png
105대
마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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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대
말레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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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대
데 카니오
파일:UEFA EURO ITA.png
108대
델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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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대
발라르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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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대
리베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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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대
가스페리니
파일:UEFA EURO ITA.png
112대
유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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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대
만도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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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대
유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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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대
발라르디니
파일:UEFA EURO ITA.png
116대
유리치
파일:UEFA CRO.png
117대
프란델리
파일:UEFA EURO ITA.png
118대
안드레아촐리
파일:UEFA EURO ITA.png
119대
모타
파일:UEFA EURO ITA.png
120대
니콜라
파일:UEFA EURO ITA.png
121대
마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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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대
발라르디니
파일:UEFA EURO ITA.png
123대
셰브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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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대(대행)
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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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대
블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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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대
질라르디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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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대
비에라
파일:UEFA EURO FRA.png
◀ 제노아 CFC 역대 감독(1대~10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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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1부 리그 기간

5. 영구결번

제노아 CFC 영구결번
No.6 잔루카 시뇨리니 No.12 서포터즈

제노아에서 8시즌 활약한 잔루카 시뇨리니가 42세에 루게릭병으로 죽자 그의 번호 6번을 영구결번 처리했고 나중에 구단의 12번째 선수인 서포터즈를 위해 구단에서 12번을 영구결번 처리를 결정했다.


[1] 마이애미에 본사를 둔 미국 투자회사. 스포츠,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2] 2021년까지 구단주였던 엔리코 프레치오시(Enrico Preziosi)는 이사회에 남아있는다. [3] 이탈리아 최초의 구단은 토리노 FCC (풋볼 앤 크리켓 클럽) 인데 1900년에 해체되었다. 두번째로 오래된 인테르나치오날레 토리노도 1906년에 해체되었다. 그리고, 세번째로 만들어진 클럽이 제노아 CFC 인데 앞에 두 클럽과 달리 해체되지 않았고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4] 나머지 세 팀은 유벤투스 FC, AC 밀란, FC 프로 베르첼리 1892. [5] 유럽 내에서 레고 다음가는 장난감 회사 '조키 프레치오시'의 회장이다. [6] 이거 때문에 2007년 제노아의 세리에 A 승격 이후 한동안 제노아 팬들의 산 시로 원정이 금지된다. 제노아 팬들은 1995년에 밀라니스타에게 살해당한걸 잊지 않고 복수하겠다고 이를 갈고있었고 일부 밀라니스타들도 몇놈 더 칼빵놓겠다고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원정 금지 덕택에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후 2007년 11월 11일, 가브리엘레 산드리 사건(라치오 서포터인 산드리라는 당시 26세 남성이 유벤투스 원정 당시 라치오 서포터의 난동에 휩쓸리면서 경찰의 발포에 총을 맞고 사망한다. [7] 유니폼도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색깔을 가져왔다. 팀명도 v를 빼먹은 Genoa인 것도 이 때문이다. [8] AC 밀란의 전신 [9] 전쟁은 루이지 페라리스와 아돌포 그네코, 카를로 마라시, 알베르토 수소네, 클라우디오 카사노바 등이 군복무 중 목숨을 잃게 했다. [10] 이때 스쿠데토 패치가 도입되었다. [11] 발렌시아와 릴과 한 조가 되며 운이 없었다. [12] 후반기에는 유베로 갔다. [13] 시즌 후 완전영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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