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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락/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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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프로레슬러 이전3. 데뷔: 락키 마이비아4. 네이션 오브 도미네이션5. 코퍼레이트 챔피언6. People's Champion7. 2001년 ~ 영화배우 전업까지8. 2011년, WWE 복귀9. 2012년10. 2013년11. 2014년12. 2015년13. 2016년14. 2017년 ~ 2019년15. 2022년16. 2023년17.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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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더 락의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프로레슬러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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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때 모습.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성숙한 외모인데 본인 말에 의하면 학창시절에는 계속 "저거 학생인 척 하는 잠복경찰 아니냐?"라는 의심을 받았다고 한다.

1980년대 활약한 락키 존슨과 WWF 시절 활동한 전설의 레슬러 하이 치프 피터 마이비아의 딸인 아타 마이비아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캘리포니아 주 헤이워드.[1] 어릴 때는 외가 식구들과 뉴질랜드에서 자랐다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미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어린 시절에는 상당한 문제아였는지 경찰에 체포된 적도 있었다고 하지만, 펜실베이니아주 베들레헴의 한 고등학교 선생님을 만나면서 마음을 바꾸게 된다. 당시의 드웨인 존슨은 다른 선생님들은 다 싫어하는 문제아였는데 이 선생님은 계속 대드는 드웨인에게 "넌 미식축구하기에 최고의 몸을 가지고 있으니 당장 입단하는 게 좋겠다"라고 말했고 드웨인도 반항심을 꺾고 스포츠맨십을 배우며 미식축구에 입문했다고 한다. 문제아 드웨인 존슨의 삶을 바꾼 "한 번의 악수" 미식축구 선수를 지망해 미식축구 명문대학인 마이애미 대학교(마이애미 허리케인스)의 수비 태클로 장학금을 받고 입단했다. [2] [3]

마이애미 허리케인스는 드웨인 존슨이 입학한 첫 해 내셔널 챔프를 차지했지만 그 때 드웨인은 무릎 부상을 당해 전력에서 이탈했었고, 그 대타로 들어온 선수가 마이애미 대학교 풋볼팀 역사에 남을 스타이자 NFL을 대표하는 수비 태클로 성장한 워런 샙 (Warren Sapp , 전 탬파베이 버커니어스, 오클랜드 레이더스)이었다. 그래서 드웨인은 풋볼 선수로서는 아쉬운 커리어를 남겼고 1995년 범죄학과 생리학 학위를 딴이후 NFL 드래프트에 지원했지만 역시나 지명되지 못했다. 캐나다 풋볼 리그(CFL) 캘거리 스탬피더스에 입단했지만 시즌 로스터나 연습 스쿼드에 등록되지 못하고 입단 두 달 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 계속 미련이 남는지 배우가 된 후에도 미식축구 관련된 배역을 몇 가지 했다. 워킹 톨, 웰컴 투 더 정글에선 전직 미식축구 선수. 더 게임플랜에서는 아예 현역 미식축구 슈퍼스타다.

그렇게 미식축구 선수 생활을 포기한 후 가업이라 할 수 있는 프로레슬러가 되기로 마음을 먹는다. 처음에 그의 아버지인 락키 존슨은 힘들고 고달픈 스케줄과 경기 그리고 자신이 그랬던 것 처럼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다는 문제 때문에 말렸지만 그의 의지를 확인하고, 그의 트레이닝을 시키며 한 명의 레슬러로 키워내게 된다.

3. 데뷔: 락키 마이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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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시절 모습

1995년 아버지에게 사사해 레슬링을 배운 뒤 아버지의 친구인 팻 패터슨에 의해 트라이아웃 기회를 얻어 브루클린 브롤러를 상대로 승리하며 테스트에 통과한다.[4] 이후 수련을 위해 제리 롤러의 단체인 USWA에 입단하게 되고, 거기서 플렉스 카바나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바트 소여라는 선수와 태그팀 챔피언을 하기도 했다. 이후 96년 본격적으로 WWF로 올라와서 수련을 받기 시작한다.[5][6]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6)에서 데뷔했으며 처음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름을 딴 락키 마이비아[7]라는 링 네임으로 선역으로 데뷔해 8인 태그팀 제거 매치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으며 승리했고 이후 데뷔 3달 만인 1997년 2월 RAW에서 헌터 허스트 햄즐리를 꺾고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에 오른 뒤 WWF 레슬매니아 13에서 술탄[8]을 상대로 타이틀을 방어해내고, 브렛 하트를 상대로도 승리하며 타이틀을 방어해 낸다.[9]

하지만 너무나 솔직담백해서 재미없는 호청년 캐릭터라 이내 팬들에게 오질나게 욕만 얻어먹고 인기도 없었다. 이러한 경향은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이 된 후로 더욱 심해져서 락키가 등장하면 관객들은 "Rocky Sucks!", "Die Rocky Die"라는 챈트를 퍼부었다.[10][11] 이는 재미도 특징도 없는 무색무취의 풋내기가 전폭적인 푸쉬를 받는데 따른 관중들의 반발 심리였다. 생각해보면, 여성 관객과 아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나름 탄탄한 기믹과 캐릭터성을 갖추고 있고, 나름 짬밥도 되고 유명세도 탄 지금의 존 시나도 바른생활 사나이 기믹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10년 넘게 야유를 달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생판 모르는 신인이자 개성도 없는 락키 마이비아가 승승장구 할 때 관중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겠는가? 더욱이 그 시대는 자극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캐릭터만이 살아남던 애티튜드 시대였다.[12] 게다가 지금의 락의 모습에서 상상할 수 없는 우스꽝스런 초창기 복장도 바로 빈스 맥맨이 제안했던 거라고... 만약 추후의 이미지 변신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더 락은 없었을지도 모른다.[13]

한때 WWE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은 슈퍼스타로 성장하지 못하거나 또는 성장하기 전의 하이 미드카더급 선수나 드는 타이틀이 될 정도로 그 위상이 많이 하락했지만, 과거 WWF와 WCW&ECW가 합쳐지기 전만 하더라도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은 WWE 챔피언에 이은 2인자라는 업계의 확고한 인식이 있었고 이 타이틀을 두고 특별 매치가 성사될 정도였다.[14] 당장 헐크 호건과 워리어의 역사적 대결 당시 워리어는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이었다. 대표적으로 레슬매니아 10 숀 마이클스 레이저 라몬 래더매치같은 희대의 명경기가 부킹될 정도. 때문에 더 락의 인터콘티넨탈 챔피언 획득을 지금으로 치면 WWE TLC(2009)에서 셰이머스 존 시나를 꺾고 WWE 챔피언이 된 충격에 버금갈만큼 파격적인 결과였다. [15]

그러나 쏟아지는 야유는 오히려 더 락의 초기 캐릭터 정립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4. 네이션 오브 도미네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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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오웬 하트에게 패배해 타이틀을 잃고 나서 무릎 부상을 당해 잠시 결장하게 된다. 그런데 이후 자신들에게 아유를 퍼붓던 백인 관객들에게 복수하겠다며 흑인지상주의 악역 스테이블 네이션 오브 도미네이션에 전격 가입하게 된다.[16][17] 또한 락키 마이비아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자신을 3인칭화 하는 명칭인 더 락과 검은색 경기복을 쓰기 시작한다. 당시 리더이자 WCW 시절 프로레슬링 사상 최초의 흑인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올랐던 파룩과 대립을 벌였다. 락은 리더인 파룩을 제쳐두고 자신이 할 말을 다 하는데, 파룩이 더 락의 마이크를 뺏고 말하려 하자 "더 락이 말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라고 말하는 둥, 다른 NOD 동료들에겐 비싼 롤렉스 시계를 선물하지만 파룩에게는 더 락의 대형 브로마이드를 선물했다. 나아가 오웬 하트를 영입시키며 점차 NOD의 실세로 떠오르고 파룩은 바지사장으로 전락해갔다. 그 후 점점 감정이 격해지다 파룩이 락과 켄 샴락의 대결 때 링 사이드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락이 당할 때 구해주지 않고 바라만 본 일을 꼬투리 잡아 그를 비난한다[18]. 그러다 결국은 팀원들을 이용해 파룩을 린치하고 그를 축출한다. 그리고 자신이 리더가 되며 완전히 턴힐한다. 파룩을 몰아낸 뒤 인터콘티넨탈 타이틀을 놓고, 켄 샴락, 스티브 오스틴과 대립을 하게 되는데 켄 샴락에게는 정말 처절할 정도로 당했고[19], 스티브 오스틴에게는 벨트를 내놓으라고 말했다가 스터너를 얻어 맞은 뒤 뻗은 상태에서 "이딴건 너나 쳐먹어, 난 월드 챔피언에서 놀 꺼니까"라는 말까지 듣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더구나 오스틴은 그 벨트를 강물에다 던져 버려서 더 락은 한동안 벨트없는 챔피언이라는 굴욕을 당했다. 또 이 시절 DX의 리더인 트리플 H와 정말 엄청난 대립을 보였는데, 두 선수 모두 자기들만의 스테이블을 이끌며 다른 쪽을 지독하게 공격했다. 그러다 마침내 WWF 섬머슬램(1998)에서 인터콘티넨탈 타이틀을 놓고 전설의 사다리 경기를 펼치며 두 선수 모두 높은 인정을 받게 된다.

마이크웍 스타일도 바꿔서 흑인식 슬랭을 잔뜩 섞고 독설도 가미했는데 이것이 대박을 치기 시작하며[20][21], 그 전까지만 해도 사모안 특유의 통통한 체형이었지만, 근육이 적절히 드러나 보이는 보기 좋은 체형으로 변하게 되었다.[22] 그리고 1998년의 WWF 레슬매니아 14에선 희대의 명대사 "If You Smell What the Rock is cooking?"가 등장했다.

5. 코퍼레이트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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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8)에서 맥맨 의 도움을 받아 WWF 월드 챔피언십을 따내게 된다. 이로써 더 락은 당시 최연소 기록인 26살에 챔피언에 등극함과 동시에, 최초의 흑인 WWF 챔피언[23]이라는 대기록[24][25]을 세우게 된다.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락은 빈스 맥맨의 악역 스테이블인 코퍼레이션의 일원으로 활동하게 되는데, 이는 락에게는 꽤 의미 깊은 서바이버 시리즈였다.

이 서바이버 시리즈를 기점으로 락은 탑힐의 반열로 올라섰는데, 이 서바이버 시리즈는 1년 전에 있었던 몬트리올 스크류잡의 패러디였다. 더 락은 잠깐 맥맨 부자와 대립하며 턴페이스를 하였고 어렵사리 올라오는 듯 싶었으나, 그것은 처음부터 맥맨 부자와 짜고 친 연기였고 결승에서 다시 턴힐하며 맥맨가와 연합했다. 결승은 믹 폴리와의 대결이었는데, 막바지에 샤프슈터가 나왔고 믹 폴리는 항복하지 않았는데 맥맨 부자가 멋대로 경기를 끝내버리며 락의 승리를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그 잠깐의 턴페이스 기간 동안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관중들이 당시 탑페이스였던 오스틴 수준의 환호를 보냈었고, 이 서바이버 시리즈 이후에는 반응이 탑힐에게 쏟아지는 야유뿐 아니라 환호가 뒤섞이기 시작한다. 당시 주 관객층인 성인들은 마이크만 갖다주면 탑힐이어도 배꼽이 빠지도록 웃겨주며[26], 경기력도 좋고, 얼굴도 잘 생긴 이 선수에게 기믹을 벗어나 뛰어난 레슬러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죽하면 1998년 12월 PPV였던 WWF 인 유어 하우스 26: 락 바텀[27]의 부제는 더 락의 피니시 기술의 명칭을 딴 '락 바텀'으로 썼을 정도다.

이후 맨카인드와 계속해서 WWF 챔피언십을 놓고 치열하게 대립하며 타이틀을 서로 주고 받았고, 당시 관객이 없는 빈 경기장에서 경기를 가지기도 했는데 이 경기들은 폭소를 불러 일으키며 더욱 더 락의 인기를 올려주었다. 이후 WWF 로얄럼블(1999) I Quit(아이 큇) 매치에서 다시 한 번 WWE 역사에 남을 명경기를 보여주고, 더 락은 이 경기를 통해 챔피언십을 따내면서 챔피언 자격으로 WWF 레슬매니아 15 메인 이벤트에서 자연스레 오스틴과 경기를 벌이게 된다.[28] 레슬매니아 15에서[29] 스티브 오스틴에게 패해 타이틀을 잃은 뒤 본격적인 스티브 오스틴과의 라이벌 커리어를 걷기 시작하며 애티튜드의 양대 아이콘으로 등극하게 된다.

6. People's Champ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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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락의 생일은 5월 2일이야, 이 멍청이 새끼야!
(The Rock's birthday is May 2nd, You stupid son of a bitch!)
이렇게 인기를 높여 가다가 결국 1999년 턴 페이스한 후 남녀팬 모두에게 인기폭발하며 스티브 오스틴과 함께 당시 WWF를 대표하는 간판으로 올라서게 되는데. 특히 1999년 처음 런칭된 또다른 위클리 이벤트 스맥다운의 명칭은 다름아닌 더 락의 마이크웤에서 따온 명칭. 당시 파죽지세였던 락의 엄청난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스맥다운 첫 방송에서도 트리플 H와 메인이벤트를 장식했다.

이후 언더테이커 빅 쇼의 태그팀에 맞서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던 믹 폴리와 전설적인 태그팀 Rock&Sock(락 앤 싹) 커넥션을 결성하게 된다. 특히 개그 기믹으로 큰 인기를 얻던 믹 폴리가 더 락의 오만함을 풀어주기 위해서 힘 쓰는 모습이나 은근 싫어하면서도 도와주는 락의 모습을 보며 예능감 포텐이 빵빵 터지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월요일 밤의 전쟁 시기 최고의 시청률을 달성한 세그먼트인 "This is Your Life"[30]의 주인공이 되었다.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9) 이후 오스틴이 부상으로 빠진 뒤에는 명실상부한 단체의 탑페이스로 등극. WWF 로얄럼블(2000)에서도 우승한 뒤 연달아서 레슬매니아 2000에서 도전자 자격으로 챔피언십에 도전하지만 맥맨 가문의 야합으로 실패했다. 그러나 1달 뒤인 WWF 백 래쉬(2000)에서 승리해 챔피언십을 또 한 번 따냈고,[31] 인민의 챔피언(People's Champion)이라는 기믹으로 모든 팬들이 열광하는 애티튜드 시대의 최고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WWF 타이틀을 놓고 벌이는 트리플 H+ 빈스 맥마흔과의 대립이 대박을 치면서 RAW의 시청률이 6~8점대를 돌파, WCW와의 경쟁도 사실상 끝나게 된다.
이후 2001년, WWF 로얄럼블(2001)에서 우승한 스티브 오스틴과 레슬매니아 17에서 경기를 갖게 된다. 과거 레슬매니아 6 당시 헐크 호건 vs 얼티밋 워리어의 메인이벤트를 연상케 할 정도로 단체의 탑페이스끼리의 충돌은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경기 당일. ‘스티브 오스틴의 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나의 시대’라고 외치는 듯한 더 락과 ‘아직 나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를 입증하려 한 듯한 오스틴의 치열한 경기 끝에 오스틴과 빈스의 연합과 잇달은 체어샷에 결국 아쉽게 패배하고 챔피언 자리에서 물러난다.

7. 2001년 ~ 영화배우 전업까지

레슬매니아 17 다음날 RAW에서 오스틴과 재경기를 가졌으나 트리플 H와 연합한 오스틴에게 또다시 패배하게 되고 이후 영화 미이라 2를 찍으러 각본상 출장 정지를 받아 공백기를 가지게 된다. 공백기 동안, WWF가 WCW/ ECW 연합군의 침공(인베이젼)을 받고 WWF챔피언 오스틴이 연합군으로 넘어가버리며 위기에 빠지자 빈스는 최후의 수단인 락을 불러들이기 위해 출장 정지를 해제한다. 이를 본 셰인은 그 주 스맥다운에서 빈스가 락을 엿먹이는 영상들을 올리며 빈스에게 돌아가면 또 빈스에게 당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하여 락은 2001년 7월 30일 RAW에서 컴백한다.

락을 WWF에 다시 불러온 빈스 맥마흔과 각각 WCW/ECW의 경영권을 인수한 빈스의 자녀들인 셰인 스테파니가 먼저 링 위에 등장해 서로를 견제하던 가운데 락이 드디어 링 위에 올라왔고 락을 제외한 세 사람은 더 락을 자신의 세력으로 영입하기 위해 링 위에서 서로를 비난 및 디스했다. 그런데 빈스가 락을 WWF에 머무르게 하려고 설득하던 도중, 락이 갑자기 락 바텀을 빈스에게 시전했다. 이 때문에 관중들이 오스틴에 이어 락까지 연합군으로 넘어가는가 싶어 잠시 야유가 나오기도 했다.[32] 이를 보고 스테파니는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셰인이 껑충껑충 뛰며 쾌재를 부르면서 락을 바라보았고 락의 눈과 셰인의 눈이 마주친 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어 두 사람은 서로 악수까지 락이 그대로 연합군에 합류하는 듯 하는 순간, 락은 갑자기 정색을 하고는 셰인에게도 락 바텀을 시전하여 링 위에 맥맨 부자를 모두 쓰러뜨렸고 잠잠했던 관중들은 다시 열광하기 시작한다. 스테파니가 그대로 도망가면서 링 위에는 쓰러진 맥맨 부자와 락 세 사람만 있었고, 락은 그대로 피플즈 엘보우셰인에게 먹인 다음[33] WWF로 귀환을 선언했다. 이 때, WWF 복귀를 선언하면서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한다.
Finally, The Rock has come back!!!!! To the WWF. If you smell~ What the Rock is cookin'!!

이 대사는 이 전에도 더 락의 대표 유행어 중 하나였지만 보통은 쇼가 열리는 지역을 붙여서 하는 말이고 관중들도 그렇게 말할 것이라 생각하고 락보다 먼저 자신들의 지역을 말했다. 그러나 락은 이 사이에 말을 멈추고 지역이 아닌 WWF로 바꿔서 말하였기에 더욱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참고로 이 말을 하기 전까지 락은 링 위에서는 물론, 이 전에 경기장에 도착하고 나서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복귀 후 처음으로 내뱉은 대사가 바로 이 대사였던 것이다.

그리고 WWF 섬머슬램(2001)에서 부커 T를 물리치고 WCW 챔피언에 등극하면서 WWF 챔피언 오스틴이 연합군에 합류한 것과 대조적인 상황이 일어나게 된다. 다음 PPV인 언포기븐에선 핸디캡 매치로 부커 T & 셰인을 동시에 상대하나 이번에도 승리하며 타이틀을 지켜낸다. 그 뒤, 같은 편인 크리스 제리코와 몇 차례 충돌이 있으면서 사이가 나빠지고 이후 열린 노 머시에서 제리코에게 패배해 WCW 타이틀을 넘겨준다. 이후 열린 로우에서 다시 제리코를 꺾고 WCW 챔피언에 등극한 락은 WWF 서바이버 시리즈(2001)에서 팀 WWF의 리더로 드디어 팀 연합군의 리더인 스티브 오스틴과 제대로 맞대결을 하게 된다. 서바이버 시리즈 매치 도중 제리코에게 공격을 당하긴 하지만 커트 앵글 역시 오스틴을 배신하고[34] 그틈에 락 바텀을 작렬시켜 승리하면서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한다. 참고로 이 승리는 락이 오스틴에게 거둔 첫 승.

서바이버 시리즈 이후 의기양양해진 빈스는 일명 Kiss My Ass Club(...)이란것을 만들어 과거 WWF를 배신하고 연합군에 붙었던 선수들( 윌리엄 리갈 등)이라든가, 짐 로스 등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이들에게 괘씸죄를 적용해서 자신의 엉덩이에 강제로 뽀뽀하게 만들기도 했다. 빈스의 Kiss My Ass Club의 횡포가 극심해질 때 쯤 락은 빈스가 찝적대는 트리쉬를 보호하면서 막간의 로맨스도 하고[35] 리키시의 엉덩이에 빈스의 얼굴을 파묻어버리며 빈스에게 최고의 굴욕을 선사하고 Kiss My Ass Club의 해체(?)를 선언했다. 하지만 12월 WWF 벤전스에서의 통합타이틀 경기 4강전에서 제리코에게 패하며 WCW 타이틀을 잃었다. WWF 로얄럼블(2002)에서 제리코와 통합타이틀전을 벌이지만 역시 패배.
파일:external/www.wwe.com/20020218_rock_hogan.jpg
2002년 2월18일 RAW에서 8년 만에 WWF로 돌아왔으나 WWF 팬이 알던 영웅의 모습이 아닌 nWo의 악당으로 돌아온 헐크 호건에게 한판 붙자고 제안하여 레슬매니아 18에서 ‘아이콘 vs 아이콘’ 경기가 성사되었다.[36]

레슬매니아 당일 어린 시절의 영웅을 응원하는 관중들의 편애 속에서도 락 바텀과 피플즈 엘보우 콤보로 승리. 이후 스캇 홀 케빈 내시의 습격을 물리치고 호건을 존중해주는 모습을 보이며 훈훈하게 마무리 지었다.

2002년 4월 WWF가 WWE로 명칭을 바꾼 이후 RAW와 스맥다운의 양대 브랜드로 분리될 때 모든 선수들을 대상으로 드래프트를 했는데, 락은 스맥다운의 첫 번째 선수로 지명되어 WWE 산하 스맥다운 브랜드 소속의 선수가 되었다.


레슬매니아 이후 공백기를 가졌다가 무단탈단한 오스틴을 대신해 회사를 이끌기 위해 컴백했고, WWE 벤전스(2002)(이 때부터 7월)에서 언더테이커, 커트 앵글을 꺾고 WWE 통합챔피언에 등극했는데 헐크 호건과 오스틴의 기록을 넘은 최초의 7회 챔피언 등극이었다.


이어 섬머슬램 2002에서 초특급 거물 신인 브록 레스너의 도전을 받고 선전했지만 결국 브록의 무지막지한 파워를 감당하지 못하고 패배하며 한 달만에 챔피언 벨트를 내주게 된다.[37]

잦은 영화, 방송 및 광고 촬영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락의 인지도 상승에는 매우 큰 도움을 주었고 빈스 역시 회사에도 도움되겠다싶어 적극적으로 락을 밀어주었으나 2002년 이후에는 너무 지나치다며 팬들의 비판과 야유를 받게 되었다. 특히 위에 언급된 WWE 섬머슬램(2002) 브록 레스너와의 경기에서는 조만간 락이 영화 촬영 때문에 공백기를 갖는다는 사실이 알려진 탓에 락이 현역 챔피언이자 탑 페이스였음에도 경기 당일 야유를 받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38]

파일:external/www.mcstylin.com/14.jpg

2003년 1월에 스맥다운으로 복귀할 때는 확 달라진 모습[39]과 함께 거만한 할리우드 스타 캐릭터로 복귀, WWE 노 웨이 아웃(2003)에서 헐크 호건과 2번째 경기를 가져 빈스의 도움으로 승리한다.[40] 그 직후 RAW로 이적하는데 자신이 이 업계에서 유일하게 이루지 못한 것은 오스틴을 레슬매니아에서 꺾지 못한 것이라며 그에게 도전한다. 결국 레슬매니아 19에서 락 바텀 세 방을 날려 가까스로 승리한다.


하지만 그 다음 날 RAW에서 빌 골드버그의 WWE 데뷔의 희생양이 되었고, 백 래시 2003에서 맞붙게 되지만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였다. 이 시기에 락에게 쏟아지는 야유는 점차 환호로 바뀌면서 턴페이스 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후덜덜한 커리어인데, 이런 엄청난 커리어를 쌓아올린 기간은 불과 대략 6년에 불과하다.

영화배우 전환 이후에도 WWE와의 관계는 좋아서 2003년 6월 2일 RAW에서 선역 전환해 부커 T와 함께 크리스 제리코 크리스찬을 한방 먹이거나, 2003년 12월 8일 RAW에서 라 레지스탕스로부터 믹 폴리를 구해주는가 하면 2004년 레슬매니아 20에서는 믹 폴리와 락&싹 커넥션을 재결성하여 에볼루션과 경기를 가지기도 하고 근데 졌다 유진을 도와주는 등 여러 번 깜짝복귀를 했다. 팬들도 야유가 아닌 뜨거운 환대를 해주었다. 하지만 그나마도 2004년 가을 RAW 출연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WWE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더 락이 영화에 전념하는 동안에도 WWE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더 락의 프로필을 계속 현역 로스터로 분류하며 일말의 가능성을 남겨뒀다.[41]

2006년쯤 가졌던 인터뷰에서 다시 WWE로 복귀할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 "사람들이 나를 잊어갈 때 쯤 다시 링으로 돌아가겠다."는 코멘트를 한 적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저 멘트를 단순한 립서비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여겼으나 그로부터 5년 후에 정말로 그의 말대로 되었다.

2008년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자신의 외조부와 부친을 헌액하기 위해 행사 당일 출연했다. 공식적으로 WWE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4년 만이었다. 그리고 2009년 스맥다운 10주년 때는 직접 출연은 아니었지만 영상 메시지로 마이크웍과 더불어 축하 메시지를 남겼다.그 와중에 뜬금없이 돌프 지글러가 까였다.

8. 2011년, WWE 복귀


Finally, The Rock has come back! Home...
2011년 2월 14일 레슬매니아 27의 호스트가 되었고 7년 만에 RAW에 등장하였다. 레슬매니아에서 뭘 할 생각인지 현역 레슬러 시절 이상으로 벌크업이 되어있는 모습으로.[42] 관중들의 엄청난 환호 속에서 전혀 녹슬지 않은 현란한 마이크워크를 과시했다. 무적의 그분 미즈를 디스했다.

꾸준히 시나, 미즈와 대립하더니레슬매니아의 메인이벤트 경기인 시나와 미즈의 타이틀전이 더블 카운트 아웃으로 무승부로 끝나자 등장해서 재경기를 주선했으나 바로 시나에게 락바텀을 시전해 미즈가 타이틀을 지키게 만들었으며 경기 후 미즈에게도 피플즈 엘보우를 먹여 레슬매니아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리고 레슬매니아 다음 주의 RAW에 출연해 존 시나가 제안한 대결을 받아들이면서 그간 레슬링 팬들이 꿈의 대결이라고만 생각해 왔던 더 락 vs. 존 시나의 경기가 다음해 레슬매니아 28의 메인이벤트로 결정. 10년 전 WWF 레슬매니아 18에서 호건과 겨룬 icon vs icon 대결의 시즌 2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무려 1년 뒤 레슬매니아의 메인이벤트를 미리 정해놓는다는, WWE 입장에선 전무후무한 도박수이기도 했으며[43] WWE 홈페이지 내의 레슬매니아 코너에서 무려 1년이나 날짜 카운트다운을 하는 페이지를 별도로 만들어 진짜로 레슬매니아 당일까지 1년치 카운트다운을 고스란히 운영하는 등 적극적으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라이트팬들과 일반 대중들에게는 더 락이 오랜만에 레슬매니아 메인이벤트를 장식한다는 점 때문에 큰 주목을 받았으나, 한편으로 골수팬들에겐 '전날 레슬매니아를 망친 주제에 다음 레슬매니아에서도 메인을 해먹냐'며 죽도록 욕을 먹기도 했고, CM 펑크 WWE 머니 인 더 뱅크(2011) 직전 파이프밤에서 이 점을 마이크웍에 써먹기도 했었다.

2011년 자신의 생일 파티 특집 RAW에서 마이클 콜이 인용한 의문의 단장의 메세지에서 레슬매니아 27에서의 행패를 사과하라고 하자, 대충 사과해주고는 마이클 콜에게 락 바텀과 피플즈 엘보우를 날려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빈스 맥맨의 축하메시지와 더불어 성대한 생일파티와 함께 엔딩을 장식했다.

2011년 11월 PPV인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존 시나와 한 팀이 되어 미즈& 알 트루스와 상대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공식 경기로는 무려 7년이라는 오랜 공백기간이 있었음에도 별 실수 없이 경기를 잘 풀어나가며 승리. 오히려 과거에 사용하던 롤업계 기술인 라 마히스트랄이나 피셔맨 수플렉스 등을 깔끔하게 사용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멤버가 멤버이니만큼 락이 테크니션으로 보인 매치업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경기 후에는 시나에게도 락 바텀을 먹여 링에서 쫓아내며 괜히 최고의 스타가 된게 아니었다는걸 보여줬다.

9. 2012년


그리고 2012년 4월에 열린 레슬매니아 28 에서 존 시나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건재함을 과시했다.[44] 이 경기가 열리기 전에 10년 전 레슬매니아 18에서의 헐크 호건과의 대결을 연상하면서, 시나에게 패배하고 현 세대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정도가 아니겠느냐고 예상한 사람들이 많았으나 오히려 존 시나에게서 클린 핀폴을 얻어내는 충격적인 결과를 연출했다.[45] 마침 개최지가 더 락의 고향인 마이애미였던지라 더 락이 승리하는 순간의 환호는 상상 이상. 반면 자신만만했던 시나의 망연자실한 표정이 카메라에 잡혔고,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 연령 대의 팬들은 경기 결과에 충격을 받아 엉엉 우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10. 2013년


2013년 1월에 열린 WWE 로얄럼블(2013)에서 CM 펑크와 타이틀 매치를 가졌다. 경기는 CM 펑크 수상쩍은 과정으로 승리. 빈스 맥마흔이 난입해 펑크의 타이틀을 박탈하려 했으나 락은 바로 재경기를 요청했고 이게 받아들여져 펑크에게 스파인 버스터 → 피플스 엘보우 세트를 먹이고 승리.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WWE 벤전스(2002) 이후 11년만에 WWE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 소식을 접한 레슬링 팬덤은 반쯤 멘붕 상태. 풀타임 현역도 아닌 선수가 챔피언에 등극했다는 사실에 불만을 표하는 의견도 있었으나, 이런 불만은 CM 펑크가 이 날까지 챔피언십을 보유했던 기간이 434일이라는 점에 의해 깔끔하게 묻혔다.

2013년 2월에 열린 WWE 엘리미네이션 챔버(2013)에서 CM 펑크와 다시 타이틀 매치를 가졌다. 경기는 더 락의 승리. 다만 경기내용이 심히 좋지 않다는 평가를 받으며 또 까임을 당했다. 어쨌든 이로서 WWE 레슬매니아 29에서 존 시나Twice In A Lifetime[46] 경기 확정.

엘리미네이션 챔버 이후 WWE 챔피언십 벨트 디자인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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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지막한 WWE 로고와 사이드 플레이트에는 더 락의 상징인 브라마 불 문양을 붙여놓았다.[47] 공개 직후엔, 더 락 전용 벨트냐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이후 사이드 플레이트에 챔피언인 선수의 상징 로고를 넣도록 변경됐고, 벨트 자체도 모난 곳 없는 무난한 디자인이라서 평가가 좋아졌다.

챔피언인데도 라이브 쇼에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고 CM 펑크 존 시나의 도전자 결정전에 대해 트위터로 반응하거나, 영화 홍보나 하고 있는 모습도 곱게 보이지 않는다는 비난이 많다.[48] 특히 2월 25일 러에서 열린 CM 펑크와 존 시나의 도전자 결정전이 레슬매니아급 퀄리티를 뽑아낸 명경기였던데 반해, PPV였던 엘리미네이션 챔버에서 더 락이 보여준 경기력은 시망이라 실망스러운 목소리가 계속 늘어 가고 있는 상태.


그리고 레슬매니아 29 메인 이벤트에서 존 시나와 서로 피니쉬를 주고받는[49] 경기 끝에 결국 AA 3번 맞고 타이틀을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고 시나와 악수하고 포옹하며 서로 경례도 하고 손을 들어주는 등 정석적인 훈훈한 엔딩을 만들었다.

다만 안타깝게도 이 경기에서 부상을 입어 레슬매니아 29 다음날 RAW에도 불참하였고 WWE 관련 스케쥴이 전면 취소되었다. 예정되어있던 브록 레스너와의 대립도 물건너가고 진행 중인 허큘리스 영화 촬영에도 큰 차질이 생겼다고한다. 당분간 WWE 출연은 힘들 듯하다. 그래도 3년 연속으로 레슬매니아 시즌에 나와 PPV 판매율을 엄청나게 상승시켜 사업 확장으로 적자에 허덕이던 WWE에 큰 도움이 되었다. 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세 번의 레슬매니아에 출연하기로 계약을 맺었다고 하며, 그 세 차례의 레슬매니아에서 모두 더 락이 마지막 엔딩을 장식하였다.

11. 2014년

레슬매니아 30에도 출연하여 헐크 호건, 스티브 오스틴과 함께 역사상 최고의 선수들끼리의 오프닝 세그먼트를 진행하였다. 일단 가장 어리고 늦게 성공한 락이 세 번째로 나오긴 했는데 최고의 달변가답게 마이크를 잡자마자 진 주인공의 포스를 보여주었다.


그 후로 아무 소식이 없었다가 10월 7일 RAW에서 빅 쇼와 대립하던 중이었던 루세프의 세그먼트에서 등장했다. 현장은 완전한 광란의 도가니였고 루세프를 쫓아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날 깜짝 등장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는데, 원래는 뉴욕의 타임 워너 사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마침 거기서 RAW가 열리고 있어서 깜짝 방문한 거라고 한다. 오로지 레슬링에 대한 애정만으로 깜짝 출연을 감행한 락을 향해 팬들은 크게 감격했다.


3일 뒤 10월 10일 15주년 스맥다운에 다시 등장. 트리플 H와 과거 둘이 펼쳤던 대립을 회상하면서 그 때 네가 숀 마이클스랑 짜고 치사하게 이겼다[50]는 둥 예전에 락바텀맞고 갈비뼈 부여잡으며 울부짖은건 내가 아니라 로드 독이었다는 둥 말싸움을 벌이다가 자신의 소원은 내년이건 내후년이건 5년 뒤건 10년 뒤건 아무 때나 좋으니 레슬매니아에서 트리플 H와 결판을 내는 것이라며 떡밥을 던졌다.[51]

12. 2015년

WWE 로얄럼블(2015)에 마지막에 등장해 위기에 빠진 육촌 로만 레인즈를 구해주었다. 그런데 락이 야유를 먹었다! 등장할 땐 환호였으나 우승자 로만 레인즈와 엮이는 순간 야유가 폭발했다. 그 후 백스테이지에서 로만 레인즈와 함께 인터뷰를 진행하였는데 여기서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 로만 레인즈의 손을 들어줄 때도 상당히 놀란 표정을 보여주었는데, 뉴스에 따르면 실제로도 야유가 나와서 정말 당황했다고 한다.

2015년 레슬매니아 31 쇼 막바지 부분에 있었던 트리플 H 스테파니 맥마흔의 세그먼트 때 등장했다. 거기서 스테파니에게 뺨을 맞고 "난 여자니까 넌 때릴 수가 없겠지? 그러니까 링에서 꺼져!!"라는 소리를 들으며 링 밖으로 나갔지만, 관중석에 있었던 UFC 여자 벤텀급 챔피언 론다 로우지를 데려와 다시 링으로 돌아온 뒤에 트리플 H에게 신나게 해머링을 먹이고 론다 로우지에게 마무리를 맡기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2015년 12월 28일 RAW에서 레슬매니아 32 출전이 확정됐다!

13. 2016년

2016년 1월 25일자 RAW에 출연해[52] 주차장부터 시작해 백스테이지를 거쳐 고릴라 포지션까지 장장 5분에 걸쳐서 떠벌거리는 정말 무지막지한 수준의 세그먼트를 선보였다.


더 락의 어마어마한 말빨을 감상 해보자. 정말 경이롭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53][54][55]

레슬매니아 32 당일 역시 등장해 약 40분간 신나게 입을 털어줬다.[56][57] 이후 갑작스럽게 등장한 와이어트 패밀리와 충돌 결국 깜짝 경기를 갖게되었는데 이미 옷 속에 레슬링 기어를 입고있었고, 에릭 로완을 경기 시작 6초 만에 꺾으며 역대 최단 시간 승리 기록을 챙겼다. 이후 깜짝 복귀한 존 시나와 함께 와이어트 패밀리를 쫓아낸 건 덤이다.

14. 2017년 ~ 2019년

이후에도 간간히 일회성으로 출연하고 있다. 다만, 영화나 이런저런 프로그램 출연 스케쥴이 빡빡하게 차있는터라 특정 PPV 등에 흥행몰이를 위해 초단기 계약을 맺고 1회성으로 출연하는 정도. 경기를 뛰는 경우도 거의 없어서 어그로 끄는 악역 레슬러들을 가볍게 발라주는 퍼포먼스로 레슬링 기술 몇개만 쓰는게 전부라 그의 팬들에게는 살짝 아쉬운 부분이다.

2019년 8월 2일, ABC의 유명 토크쇼 '라이브! 위드 켈리 앤드 마이클'에 출현했을 때 레슬링이 그립지 않냐는 질문을 받자, 당연히 레슬링이 그립고 사랑하지만 현재 자신은 조용히 레슬링에서 은퇴한 상태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그러면서도 '경기장에서의 관중들의 함성만한게 없다'며 일말의 여지를 남겨뒀다. #

그러다가 2019년 10월 4일, FOX 채널로 변경 후 첫 스맥다운인 20주년 기념 스맥다운 프리미어 쇼 출연이 공식 발표되었다. WWE 공식 홈페이지는 물론, 더 락 본인도 자신의 SNS를 통해 이 소식을 전하며 짧은 코멘트를 남겼는데 사뭇 감동적이라는 평이다.
"마침내, 내 고향같은 WWE로 돌아갑니다. 이번 금요일 밤, 제가 폭스TV 라이브의 첫 스맥다운에 출연합니다. 그동안 난 내 꿈을 한참 뛰어넘어 초월적인 커리어를 쌓은 엄청난 행운아였습니다. 여러 해 동안 훌륭한 작품을 통해 영예를 누렸으나 '피플스 챔프(The People's Champ)'가 되는 것만큼 큰 영광은 없었고, 집보다 좋은 곳은 없었습니다. 쇼를 끝낸 후 날 위해 테킬라 한 잔을 준비해두길."


예고된 대로 FOX 채널 첫 스맥다운에 등장했으며 베키 린치와 함께 오프닝 프로모를 맡았다. WWE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한 것은 지난 2017년 RAW 출연 이후 2년만이었다. 관중들이 어마어마한 환호로 더 락을 맞이했으며, 전혀 녹슬지 않은 말빨로 배런 코빈을 신나게 골려먹었고 super tuff dude, 줄여서 STD 이에 빡친 코빈이 싸우자고 덤벼들자 베키 린치의 어시스트와 더불어 피플스 엘보우&락 바텀 콤보로 제압해버렸다.

15. 2022년

계속 배우 활동을 하던 중 2022년 2월 13일 슈퍼볼 LVI 오프닝 세그먼트를 담당하였다. 드웨인 "더 락" 존슨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해서 슈퍼볼에 진출한 신시내티 벵갈스 로스앤젤레스 램스를 소개했는데, 이 날은 영화배우 드웨인 존슨의 모습이라기보다는 프로레슬러 더 락의 정체성에 가까웠다.

슈퍼볼이 열린 소파이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7만 관중 앞에서 본인 특유의 눈썹 올리는 제스처 (People's Eyebrow)를 보여주며 등장한 후, "Finally, the Super Bowl has come back to Los Angeles!"라는 자신의 캐치프레이즈를 필두로 "absolutely electricfying team", "it is time for all of us here and millions around the world" 등, WWE 팬이라면 단번에 캐치할 수 있는 단어들을 사용해서 세그먼트를 이어나갔고, 다시 한 번 "Finally, it is the time for the Super Bowl!"로 세그먼트를 마무리하며 경기장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ESPN에서는 Epic Super Bowl Opening, 뉴욕 타임즈Energizing Speech라는 평을 내놓는 등 굉장히 반응이 좋았다. 참고로 드웨인 존슨은 2년 전 슈퍼볼 LIV에서도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캔자스시티 치프스 소개를 담당한 적이 있다. 하지만 영상에서 보여지듯 현장이 아닌 비디오로 녹화된 소개 영상인데다가, 프로레슬러 더 락의 특징은 찾아볼 수 없는 그냥 일반적인 소개에 그쳤기 때문에 이번 슈퍼볼 LVI의 소개가 WWE 팬들에게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상기 영상 말고도 NFL에서 직접 올린 링크가 있는데 제목 자체부터 "The Most Electricfying Introduction in Super Bowl History"로 더 락의 등장을 NFL에서도 인증했다. 또한 슈퍼볼 당일 선수들의 육성을 직접 들을 수 있는 Game Day All Access 영상에서도 선수들과 감독들이 "저건 더 락 아니야?"라고 수근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레슬매니아 39에서 사촌이자 현재 WWE의 탑 힐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만 레인즈와의 경기 루머가 부상하고 있다. 당연히 팬들은 이미 풀타임 프로레슬러가 아닌 더 락이 레슬매니아 메인 이벤트 자리를 또 갖는다는 건 말도 안 된다며 부정적인 반응이 많다. 루머의 자세한 내용은 로만 레인즈가 레슬매니아 1, 2일차에서 각각 시합을 두 번 하여 타이틀 하나는 코디 로즈, 다른 하나는 더 락에게 줄것이라는 루머이다.

16. 2023년

복귀에 대해 무수히 많은 루머가 나왔지만 빌드업을 위해서 꼭 출연이 필요했던 로얄럼블 2023에서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떡밥성으로 맨 마지막에 얼굴은 비추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있었던 레슬매니아 39에도 출연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헐리우드 파업 사태의 여파로 락의 스케쥴에 다소 여유가 생겨 섬머슬램 2023에 등장할거란 루머 또한 파다했으나, 여기서도 결국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2023년 9월 15일 '팻 맥아피 쇼'에 출연해 일련의 상황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2022년 초 빈스 맥맨 닉 칸 그리고 본인까지 셋이 함께 얘기를 나누며 레슬매니아 39에서 더 락 vs. 로만 레인즈의 경기를 갖기로 구두 합의를 했고 1년여를 고민했지만 자신과 로만 사이의 전례없는 순간에 대한 아이디어를 찾지 못해 최종적으로 무산되었음을 밝혔다. 그러면서 다음 레슬매니아 40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암시를 남겼다. # 본인이 직접 WWE 복귀와 로만 레인즈와의 경기에 대해 입장을 공공연히 밝혀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팻 맥아피 쇼에 출연한 당일 저녁 스맥다운을 통해 4년만에 WWE TV에 복귀했다. 아무런 홍보나 예고도 없이 깜짝 등장한 거라 현장 관중들의 반응은 매우 폭발적이었다. 오스틴 시어리 팻 맥아피의 세그먼트 중 등장하여 역시나 특유의 말빨로 시어리를 제압하고 뒤 피플스 엘보우를 날렸고 펫에게도 피플스 엘보우를 날리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백 스테이지에서 같은 날 스맥다운에 복귀한 존 시나와 만나 포옹하는 모습을 보였다.

17. 2024년

이후 한동안 출연이 없다가 한국 시간 1월 2일 신년 특집 스맥다운에 WWE 챔피언 출신 진더 마할의 마이크웍을 끊으며 깜짝 등장한다. 팬들의 환호와 함께 링안에 들어가 진더 마할을 응징하며 피플스 앨보우를 날린다. 이어서 팬들에게 자신이 Head of the Table 자리에 앉는게 어떠냐는 식의 세그먼트를 진행하여 차후 로만 레인즈와의 대립 암시를 남겼다. 현지 매체에서는 레슬매니아 직전인 엘리미네이션 챔버에서 로만 레인즈와 더 락의 경기가 열릴 예정이라는 루머가 나오고 있으며, 로만 레인즈 또한 개인 트위터로 반응을 해주어 기정사실화되는 듯했다.

다시 더 락이 WWE에 자주 등장하게 된 이유는 2024년 1월 23일 더 락이 WWE의 모회사 TKO 그룹 홀딩스의 이사진에 정식으로 합류하게 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이사직을 맡는 조건으로 링네임인 '더 락' 상표권을 본인이 100% 획득했다고 한다.

17.1. FINAL BOSS

2024년 2월 2일 스맥다운 마지막 세그먼트에서 2024 로얄럼블 우승자 코디 로즈가 통합 WWE 유니버설 챔피언 로만 레인즈와 대면하는 세그먼트를 진행했다. 코디는 자신은 로만을 노리겠지만 그 무대는 레슬매니아가 아니라는 뜻밖의 말을 했고 로만을 잘 알고 있는 누군가와 상담을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직후 더 락이 등장하여 로만과 말 없이 대면하는 장면으로 쇼가 종료되며 레슬매니아에서의 대결을 암시하였다.

이 모습을 보고 현지나 국내할 것 없이 압도적인 불호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더 락의 등장 자체가 코디 로즈 vs 로만 레인즈 2차전으로 차곡차곡 쌓여가던 서사에 난데없이 끼어들어 새치기를 하는 모양새이고, 그런 더 락이 로얄럼블을 우승해서 정당하게 챔피언 도전권을 얻어낸 코디 로즈를 제치고 레슬매니아에서 로만 레인즈에게 도전한다는 구도가 너무나 개연성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더 락 vs 로만 레인즈의 레슬매니아 메인 이벤트 경기가 아직 완전히 확정된 것도 아니고, 역반응을 의식해서 스토리 라인이 다시 변경될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WWE 입장에서는 CM 펑크의 뜻하지 않은 부상, 빈스 맥마흔 성추문 논란, 이와 연루된 브록 레스너의 불참이라는 여러 악재가 겹친 상황이기 때문에 메인 타이틀전에 적당하게 붙일 만한 선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므로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에는 코디를 붙이고, WWE 챔피언십에는 더 락을 붙여서 흥행을 끌어 모으려는 비즈니스를 위한 당위성은 있다.[58]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스토리 라인이 비판 받는 건 코디 로즈의 로얄럼블 2년 연속 우승은 로만 vs 코디의 2차전을 위한 초석이나 다름 없었고, 이번에야 말로 코디가 승리하여 로만 레인즈의 강점기를 끝낼 절호의 기회였는데 이 큰 서사가 너무 허무하게 무너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 락은 전성기 시절부터 워커보다는 엔터테이너로서 아이콘에 올랐던 사람이다. 그 때보다 나이도 훨씬 더 먹었고 본업은 영화배우로 바뀐지 오래인지라 과거만큼 몸이 따라주지도 않을 뿐더러, 실제로 데이원 RAW에서 진더 마할과 싸울 때 젊을 적의 움직임을 보여주는데 성공했다면 모를까 그렇지도 않았다. 그리고 더 락도 문제지만 하필 더 락의 상대가 경기력이 나쁜 편인 로만 레인즈라는 점이다. WWE가 그동안 로만의 경기력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경기력이 좋고 리드할 수 있는 선수들과 대립을 붙여왔는데 더 락이 그만한 역할을 해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루머에 따르면 이번 결정은 이번 TKO에 새롭게 이사로 합류한 더 락이 강력하게 추진하였고 빈스의 성추문과 여러가지의 문제를 수습해야할 WWE도 원래 코디와 로만의 2차전 이후 더 락과의 경기를 계획했으나 경기를 앞당겼다고 한다. 게다가 루머에 의하면 더 락은 본인이 승리해서 타이틀을 따내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는데 지금 여론을 살펴보면 설령 타이틀을 따낸다고 해도 팬들의 지지는 전혀 얻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2024년 2월 기준으로는 반응이 최악이다. 관련 모든 영상들이 싫어요가 압도적이며 그중 풀세그먼트 영상은 현재 좋아요가 9만 싫어요가 46만인데 이는 WWE 유튜브 채널 싫어요 1위 영상이 되었다. WWE 측에서도 나쁜 여론을 의식했는지 공식 홈페이지 에서도 더 락 vs 로만 레인즈의 레슬매니아 40 경기라고 홍보를 했다가 스맥다운에서 페이스 투 페이스를 가졌다는 식으로 수정했다. 루머에 따르면 WWE 크리에이티브 부서는 물론 내부의 모든 부서가 더 락 vs 로만에 대해서 부정적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단기적이라면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부킹이라고 평가하고 있다고 한다.

만약 이대로 락과 로만의 경기가 진행된다면 향후 스토리에도 어마어마한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코디는 로얄럼블 우승자이기 때문에 레슬매니아에서 경기를 치러야 하는데, 상대가 로만이 아니라면 세스와 무려 네 번이나 붙을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여기서 누가 이기든 선수 모멘텀이 크게 깎여나갈 게 뻔히 보이는 상황인데 세스가 이긴다면 코디는 역대 최초로 로얄럼블을 2연속으로 우승하고도 벨트를 한 번도 못 만져보는 오명을 쓰고, 코디가 이긴다면 세스는 무려 4연속으로 PLE에서 동일 인물에게 패배하는 인간 상성의 제물이 된다. 그리고 CM 펑크의 빈 자리를 대신해 세스와 대결할 것이 유력했던 드류 맥킨타이어도 붕 뜨게 되고, 데미안 프리스트의 머니 인 더 뱅크 권한은 언제 사용될지 기약이 없어진다. 더 락의 챔피언십 도전 선언 하나 때문에 장기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그림들이 전부 어그러지고 풀타임으로 고생중인 현역 메인 이벤터 대부분들이 피해를 보는 셈이다. 그리고 루머에 의하면 WWE 수뇌부에서는 코디가 챔피언에 등극하고 락과 로만의 경기 승자와 섬머슬램에서 통합 챔피언십 경기를 가지자는 아이디어까지 내놓았다고 한다.

기대보다 우려섞인 반응이 압도적으로 많은 가운데 더 락은 이 매치업을 밀고 나갈 생각인지 인스타그램 등 SNS에 자기에 대한 긍정적 반응이 담긴 영상을 수시로 업로드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대외 활동을 하며 역반응에 불을 지피는 모양새다. 이후 2월 4일 열린 NXT 벤전스 데이나 2월 5일자 RAW에서 더 락이 등장하지 않았음에도 관중은 We Want Cody, Rocky Sucks 챈트를 줄기차게 외쳤고 세스 롤린스가 코디와의 경기를 언급하기만 했음에도 야유를 던질 정도로 반응이 안 좋았다. 마이클 콜이 락키 마비이아 시절 욕을 먹던 더 락을 보는 것 같다는 암시가 담긴 코멘트를 하거나, 반대로 관중석의 야유를 줄이는 등 스토리라인에 대한 저울질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레슬매니아 40 공식 기자회견을 겸하는 킥오프 쇼 당일인 2월 9일, 팻 맥아피 쇼에 출연해 팬들의 역반응을 Crybabies(징징대는 놈들)이라고 비하하고 키보드워리어 시늉을 하며 조롱하는 등 더 락 본인도 점점 악역이나 다름없는 모습을 보인다. # 그 와중에 징징대는 놈들은 트윗질을 할 때마다 치킨너겟을 입이랑 똥꼬에 쑤셔넣으라는 둥, 락의 시그니처 멘트 중 하나인 Know your role & Shut you mouth 드립과 함께 #ShutYourBitchAssesUp #CodyCryBabies도 같이 해시태그 하라는 둥 악역에 가까운 워크를 이어간다.[59]

그리고 킥오프 쇼가 열리는 라스베가스에 도착하며 "오늘의 일이 영원히(Forever) 회자될 것" 이란 코멘트를 남기며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임을 암시했다. #


그리고 예고된 대로 킥오프 기자회견에서 등장했다. 앞서 등장했던 로만 레인즈가 레슬매니아 상대를 더 락으로 결정했다고 밝히자, 락 본인이 등장하며 팬들의 야유를 유도하고 블러드라인 계보를 대형 스크린에 띄우며 한껏 자랑한 뒤, "누가 뭐라든 이 경기는 레슬매니아 최고의 메인이벤트 경기가 될 거다"며 로만과의 경기를 확정지으려는 찰나 코디 로즈가 갑자기 등장해 "참 X같다"는 마이크웍을 시작으로 자기들끼리 멋대로 결정하는 것에 불만을 표하고, 로얄럼블 우승자의 권한을 이용해 자신이 로만 레인즈와 경기를 갖겠다고 선언한다.

이에 로만이 코디에게 "이미 우리끼리 끝난 얘긴데 괜히 끼어들지 말고 걍 2선급 챔프나 먹고 떨어져라"[60]는 식으로 코디를 비하하며 코디의 가족과 부친까지 들먹이자, 코디는 로만에게 "혈통(블러드라인) 얘기라면 제이는 어떻게된거냐"라며 로만의 격앙된 반응을 유도하고, 사모아 가문의 조상들에게 부끄러운 줄 알라며 할아버지가 이 광경을 보면 부끄러워하실거라 일갈한다. 그런데 여기에 더 락이 끼어들어 "네가 로만의 가족, 조상, 핏줄을 입에 올리는 건 내 가족, 조상, 핏줄을 입에 올리는 것과 같다."라고 받아치고는 코디의 뺨을 때리며 난장판이 된 상태로 킥오프 기자회견이 종료되었다.[61][62]


이후 백스테이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던 트리플 H 곁을 지나가며 코디가 우리 가문을 언급한 것에 대해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할 것이라며, 코디에 대한 F-Word 욕설까지 하고 퇴장했다.


한국시간으로 2월 12일 레슬매니아 40의 티저 트레일러가 공개되었는데 여기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티저 내용이 락 & 로만 vs. 세스 & 코디의 2:2 대면이라 팬들 사이에선 이게 단지 킥오프 쇼의 연장선상인지, 아니면 킥오프 쇼 이후 루머로 떠도는 2:2 매치의 떡밥인지를 두고 얘기가 오가고 있다.[63]


그리고 2월 16일 스맥다운에서 로만 레인즈의 소개로 공식적으로 블러드라인에 합류했다. 의상도 과거처럼 베르사체 셔츠를 착용하고 등장했으며 관중들을 "레슬매니아 역사에 남을 만한 메인 이벤트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내쳤다"며 비난하고 "코디가 이야기를 끝낼 거라고 하는데 그 이야기가 대체 뭐냐", " 마이클 조던 이 곳에서 유타 재즈의 꿈을 짓밟았고 유타 재즈는 패배를 묵묵히 받아 들였는데 너희들은 그저 징징거리기만 한다"며 자신만의 팩트폭력을 날려댄다. 그리고 마지막 멘트를 if you smell what the bloodline is cookin'로 바꾸고, 블러드라인 특유의 검지손가락을 드는 동작을 취하였다.[64]


3월 1일 스맥다운에서 락은 자신이 바쁜 몸이라는 이유로 엘리미네이션 챔버에서 코디가 꺼내들었던 코디의 싱글 매치 도전을 거절하면서 오히려 레슬매니아 40 1일차에 자신과 로만 그리고 코디와 세스 롤린스의 태그팀 매치를 역으로 제안한다. 이 경기에서 코디와 세스가 이기면 2일차에 벌어지는 코디와 로만의 통합 챔피언십은 블러드라인의 개입 없는 정정당당한 1:1 경기가 되겠지만, 자신과 로만이 이긴다면 블러드라인 룰로 통합 챔피언십이 치러질 것이라는 조건을 걸었다. 그리고 코디와 세스가 이 제안을 거절할 경우 락 본인의 모든 힘을 동원해 코디의 통합 챔피언 등극을 막겠다고 협박하며, 다음주 스맥다운에서 코디와 세스의 대답을 요구한 후 if you smell을 외치며 세그먼트를 마치려 하는데 로만이 저지한다. 로만은 자신은 가족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지만, 한 가지 필요한 것이 있다며 더 락이 자신을 족장으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자 락은 잠시 로만과 대면하다가 자신의 가족인 로만을 족장으로 인정한다고 말한 뒤 포옹을 나눴고, 마지막에 if you smell을 외친 뒤 로만에게 마이크를 양보했고 로만이 what the bloodline is cooking이라고 말하며 세그먼트가 마무리 되었다.[65]


3월 8일 스맥다운에서는 마침내 코디, 세스와 대면했다. 먼저 코디가 락이 로만을 족장으로 인정하며 숙이고 들어간 주제에 태그팀 경기 조건을 결정할 권한이 있느냐고 의문을 표하며 경기 수락여부를 말하려 하는데, 락이 말을 끊으며 로만을 족장으로 인정한건 가족으로서 당연한 일이었다고 반박하고 다시 한 번 경기 조건을 설명하며 수락여부를 물어보려 한다. 그때 세스가 락의 말을 끊고 너는 너의 시대를 가질 정도로 잘 나갔지만 우리의 시대를 멋대로 빼앗아 갈 수 없다며 경기를 수락한다. 그러자 로만이 세스가 경기를 수락하게 내버려 둔 코디를 멍청하다고 비웃으며 코디가 또 다시 로만 본인에게 통합 챔피언십에서 지면 다시는 본인의 타이틀에 도전하지 못하는 결말로 이야기가 끝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락도 거기에 거들어 TKO 이사회에 속한 자신의 권력을 강조하며 코디가 통합 챔피언십에서 패하면 다시는 통합 챔피언십 타이틀 샷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재차 협박했다. 그리고 이것이 가족이라며 로만과 락의 조부는 하늘에서 본인들을 자랑스럽게 바라볼 것이지만, 더 락의 영웅인 코디의 아버지는 코디를 자랑스럽게 바라볼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치어리더였던 코디의 누나나, 미래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코디의 형과 다르게 3남매의 막내이자 형, 누나보다 20살이 어린 코디는[66] 로즈 가문의 실수라고 모욕했고, 결국 분노한 코디에게 뺨을 얻어 맞으며 지난 레슬매니아 킥오프 기자회견의 복수를 당했다.


3월 15일 멤피스에서 열린 스맥다운에선 20년만에 헐리우드 락 시절 테마곡인 Is cooking으로 등장하여 오랜만에 락 콘서트를 열면서 코디와 세스를 강도높게 디스하는 한편, 코디의 어머니까지 저격을 하면서, 스스로를 최종보스라 칭하는 모습을 보였다.

3월 25일 시카고에서 열린 RAW에서 프로모를 하던 코디 앞에 깜짝 등장했다. 그리고 코디에게 육성으로 무언가를 속삭인 뒤 퇴장했고 코디는 꽤 당황한 듯한 반응을 보인다. 이후 백스테이지에서 코디에게 무슨 말을 했냐는 리포터의 질문에 코디한테 물어보라고 답했다. 코디는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더 락이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했다고 언급했다. 이후 더 이상의 등장은 없는 듯 하다가 쇼의 마지막에 백스테이지에서 블러드라인과 싸우던 코디를 기습해 그를 피투성이로 만들 정도로 잔혹하게 공격한다. 막바지에는 코디의 어머니를 겨냥해 아들의 모습을 잘 지켜보라며, Mama Rhodes라 적혀있는 자신의 벨트를 벗어 코디의 피를 묻히는 잔인한 모습을 보인다.[67][68]

4월 1일 RAW 오프닝에 등장해 자신이 기어이 코디의 피를 흘리게 했다며, 코디가 당하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그가 죽은 줄 알았다고 하는 여자아이의 반응을 보여준 뒤 더 락 자신도 3명의 아이가 있기에 이런 장면은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며 코디를 계속 박살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함께 온 로만을 소개했고, 블러드라인과 함께 등장한 로만은 더 락에게 올해는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쉬운 레슬매니아 경기를 치를 것 같다며 고마워하고 레슬매니아에서의 승리를 장담하는데, 그 때 세스가 관중석에서 등장해 레슬매니아까지 기다릴 수 없다며 더 락과 로만에게 도전한다. 그러나 락은 도전을 거절하며 솔로에게 세스의 상대를 맡겼고, 이 경기는 블러드라인 룰로 진행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메인이벤트에서 지미에게 공격당하는 세스를 돕기 위해 나온 제이를 처리한 뒤, 링에 홀로 남아있는 세스를 공격하려 할 때 급작스럽게 등장한 코디의 공격을 받고 아나운서 테이블에서 락바텀을 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로만의 도움으로 벗어난다. 이후 로만과 함께 링에서 코디와 세스를 벨트로 무자비하게 공격하며 레슬매니아를 앞두고 기선을 제압한다.


레슬매니아 40 전날에 열린 명예의 전당 2024 행사에도 참여하여 리아 마이비아[69]의 헌액사를 낭독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헌액된 무하마드 알리의 아내에게 호명되어 락의 상징인 브라흐마 황소가 각인된 커스텀 피플스 챔피언십 벨트를 선물받았다.[70] 1일차에선 이 타이틀을 들고 등장했다.

레슬매니아 40 1일차 메인이벤트에서는 치열한 경기를 펼쳤는데 로만에게 스피어를 오폭 당하고, 코디에게 아나운서 테이블에서 락바텀을 당하는 등 수난을 겪었지만 마지막에 로만에게 3연속 크로스 로즈를 시도하던 코디를 마마 로즈 벨트 공격으로 저지하며[71] 로만이 코디에게 스피어를 작렬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로만과 태그해 코디에게 락바텀과 피플스 엘보우를 시전하여 핀폴 승, 2일차 로만과 코디의 통합 챔피언십을 블러드라인 룰로 치를 수 있도록 하는 데 성공한다.[72]

레슬매니아 40 2일차 메인이벤트에서 블러드라인 룰을 활용해 로만의 승리를 도우려던 지미가 제이에게, 솔로가 존 시나에게 처리 당하자 더 락 본인이 직접 등장하여 시나와 링 위에서 대면했다. 그리고 락 바텀으로 시나를 처리한 뒤 쉴드 테마와 함께 갑자기 등장한 세스에게 기습 공격을 당할 뻔했으나 로만이 슈퍼맨 펀치로 저지했다. 그러자 더 락은 코디를 다시 한 번 마마 로즈 벨트로 마음껏 공격하려 했지만 깜짝 등장한 레슬매니아의 지배자 언더테이커에게 초크 슬램을 맞고 말았다. 결국 로만은 코디에게 패배하며 기나긴 장기집권이 끝났고 락은 로만과 함께 물러났다.[73][74]

레슬매니아 다음날 4월 8일 RAW에서 새로운 통합 챔피언이 된 코디 앞에 등장했다. 필라델피아 관중들이 자신에게 살벌한 야유를 보냈음에도 그들을 조련하는 마이크웍을 하면서, 코디가 마침내 로만에게 승리를 거두고 그의 이야기를 마쳤다고 한다. 그리고 갑자기 코디의 통합 챔피언 벨트가 아름답다고 칭찬하며 락은 여태 많은 벨트를 들어봤지만 그 벨트는 들어보지 못해서 한 번 들게 해달라고 요청하는데, 코디가 락이 가지고 있는 피플스 챔피언 벨트를 자신이 들게해주면 그렇게 하겠다고 하니까 수락하면서 서로의 벨트를 들어본다. 그리고 챔피언 벨트를 자신의 어깨에 걸어보더니 이 통합 챔피언 벨트가 자기에게 있는게 옳은 것 같다면서 서로 벨트를 다시 돌려준다. 이후 본인은 이 날 이후 잠시 WWE를 떠날 것이지만, 돌아올땐 코디가 챔피언이든 아니든 그를 노릴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코디가 로만에게 핀을 따내기 24시간 전 자신이 코디에게 핀을 따냈다면서, 로만과 코디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더 락과 코디의 이야기는 막 시작되었을 뿐이라고 경고한다. 코디는 이를 고대한다며 더 락이 자신의 보스지만 자신은 그 보스의 챔피언이라고 말한다. 락은 이를 잘 알고 있다고 하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코디에게 건네주며 다시는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라고 한 뒤 "If you smell what the Final Boss is cookin'."이라고 말하며 무대에서 떠난다.[75][76]

10월 5일 배드 블러드 2024에서 승리한 코디/로만/지미 앞에 등장하여 그들을 쓰러뜨릴 것을 암시했으며 더 락이 등장 했을 때 관중석에 있던 솔로 시코아 제이콥 파투에게 “계획의 일부다.”라고 했는데 이를 보아 뉴 블러드라인의 최종 흑막일 것으로 예상 된다.


[1] 다만 아버지인 락키 존슨이 캐나다 사람이라 더 락도 본래라면 캐나다 사람이다. [2] 당시 신체 스펙이 193cm / 115kg였다. 라인맨 치고는 조금 가볍다. [3] 드웨인과 당시 같이 활약했던 선수로 유명한 이가 NFL의 라인배커 레전드인 레이 루이스(전 볼티모어 레이븐스)와 밥 말리의 아들인 로핸 말리가 있다. [4] 당시 레슬링 기어가 하나도 없어서 어린 시절부터 따르던 하쿠에게 레슬링 복장을 빌렸다고 한다. [5] 당시 함께 수련한 동기가 마크 헨리다. [6] 과거 프로모터로 유명했던 짐 코넷은 드웨인 존슨의 첫 경기를 보고는 평론가 데이브 멜처에게 "저 친구는 5년 내 프로레슬링 업계 최대의 스타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2016.8.7 트윗 [7] 참고로 락은 WWE 역사상 최초의 3세대 레슬러 집안 출신이다. 당시 데뷔 프로모에서도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할 정도로 착하고 어리숙해 보이는 락이 나와서 가문의 영광을 살리겠다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락 본인은 할아버지,아버지의 명성에 묻어가는 것이 싫어 이 링네임을 쓰고 싶지 않아했다. 이 때문에 빈스에게 직접 찾아가 따지기까지 했는데 빈스가 '너는 우리 회사 최초의 3세대 레슬러이니 그걸 세일즈 포인트로 삼아야 한다'고 하면서 설득했고 결국 어쩔수 없이 받아들였다고 한다. [8] 리키시의 예전 링네임. [9] 여기 한가지 비화가 있는데 새로운 신예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락키 마이비아를 묻고, 헌터 허스트 헴슬리를 밀어주기 위해 클릭이 작당을 벌였다. 하지만 브렛 하트가 이를 간파한 뒤 자신이 잡을 하겠다고 해서 별 문제 없이 지나갔다. [10] 당시 빈스 맥마흔은 인터뷰에서 '잘 생기고, 기초도 튼튼한 선수에게 관중들이 대체 왜 그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한 바 있다. 사실 그럴 만도 한 게 이전까지는 미남형의 레슬러의 인기가 상당했기 때문이었기도 하다. [11] 이 챈트는 후일 코퍼레이션으로 턴힐하면서 턴힐의 동기 중 하나로 써먹기도 했다. [12] 이 당시 애티튜드 시대는 그야말로 '남자들의 프로'였다. 더구나 이때는 프로레슬링이 '선역이 악역에게 승리한다'는 동화형식에서 레슬러 한명 한명이 자신에게 맞는 캐릭터성을 부여받고 이와 연관한 기믹을 연기하는 것으로 컨셉을 변화시키던 과도기였기 때문에 성인남성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다.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의 경우, 한동안 금발미남 레슬러 기믹으로 지내던 것을 이 시기를 기점으로 텍사스 출신 배드 애스로 전환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다. [13] 게다가 전환하는 시기 역시 마침 맞았고 여기에 락의 개인신상에 어울리는 기믹을 선사함으로서 현실성을 높인 캐릭터를 선사한 것 역시 신의 한수로 간주되었다. [14] 당장 당시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이었던 랜디 새비지는 훗날 WWE 챔피언의 자격을 얻을 정도의 인기를 구사하고 있었다. [15] 이걸로 끝나지 않고 데뷔한지 1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는데 WWF 로얄럼블(1998)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고 그 해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8)에서 기어이 최연소이자 WWE 역사상 최초의 20대 챔피언에 올랐다. 이후에 데뷔한 지 1년도 안 되어 WWE 챔피언이 된 커트 앵글과 3년 후 킹 오브 더 링 우승에 반년도 안 되어 최연소 WWE 챔피언에 등극하며 기록을 갱신하고, 이후 로얄럼블 우승과 레슬매니아 메인이벤트 장식이라는 꽃길을 제대로 걸은 괴물 브록 레스너의 등장으로 희석되긴 했지만 정말 보기드문 유례없는 푸쉬였다. 특히 아래 언급된 유색인종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16] 이 때 락은 수뇌부에게 자신이 마이크웍을 할 시간은 딱 30초만 달라고 했다. 수뇌부는 새파란 애송이가 마이크웍 시간을 요구하는게 어이 없었지만, "고작 30초니까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시간을 배정해주었다. [17] 맨 처음 더 락에게 악역전환과 NOD 가입을 제안한 것은 짐 로스였고, 인터뷰에서 빈스가 처음에 더 락을 악역 전환 시킨 뒤 NOD에 가입시킬려고 할 때 굉장히 조심스럽게 락에게 물어 봤는데 락은 굉장히 기뻐했다고 한다. [18] 더 락이 켄 섐락의 앵클 픽 서브미션에 걸려있는 상황에서 파룩이 등장하자, 더 락은 대장님 제발 살려줍쇼 비굴하게 애원하지만, 평소 더 락의 건방진 행태에 분노했던 파룩은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차갑게 돌아가버리는 모습이 명장면이다. [19] 단순히 경기에서 진 정도가 아니라 경기 대도록 일방적으로 쳐맞는 스쿼시 매치만 했다.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샴락에게 비오는날 먼지나게 쳐맞다가 마지막에 앵클락 당하고 탭치거나 중간에 가끔 반칙으로 한두대 때리는게 고작이거나 그나마도 없을 정도로 쳐맞기만 했다. [20] 바로 이 때 그 유명한 "Know your role, and shut your mouth!!!"가 떴다. [21] 당시 WWF에서 작가로 일했던 브루스 프리처드는 당시 스티브 오스틴으로부터 "저 친구가 눈썹을 올리고 유행어 몇 개 읊는다고 겟오버할 거 같지는 않은데.."라는 소감을 들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프리처드가 말하길, 본래 어느 레슬러가 겟오버하기 시작하면 그 당시 최정상급 스타가 꼭 딴지를 걸기 시작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오스틴의 말을 듣고는 락이 확실히 대박을 치고 있구나하고 실감을 했다고 한다. 그는 The Sun과의 인터뷰나 스티브 오스틴 팟캐스트에서 해당 일화를 밝혔다. [22] 이를 위해 여유증을 없애기 위한 수술을 받았다. [23] 참고로 락의 아버지 락키 존슨 역시 WWE 역사상 최초의 흑인 태그팀 챔피언이란 기록을 갖고 있다. [24] 다만 일부 시각에서는 흑인 혈통이 있기는 하지만 사모안 혈통도 섞여있는 더 락을 순수 흑인 챔피언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시각도 있다. 부친인 락키 존슨 역시 백인 혼혈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WWE 최초의 흑인 챔피언을 코피 킹스턴으로 알고 있거나 그렇게 보는 사람도 있다. 다만 이건 WWE 챔피언십만 놓고 봤을 때고,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까지 따지면 부커 T 마크 헨리가 있다. WWE내에서 흑인 월드 챔피언 계보는 더 락→ 부커 T 마크 헨리 코피 킹스턴 순이다. [25] 참고로 WCW- WWE의 양대 월드 챔피언을 딴 흑인 챔피언은 더 락과 부커 T가 유이하다. 또한 WCW까지 포함된 최초의 메이적 단체 흑인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은 론 시몬스다. [26] 촌철살인의 멘트와 거기에 겉맞는 얼굴표정과 말투, 때로는 빈정거림이나 비꼼을 적절하게 섞어서 얘기하는 솜씨가 정말로 죽여주는 실력이었다. [27] 당시엔 레슬매니아, 로얄럼블, 섬머슬램, 킹 오브 더 링 같은 대형 PPV를 제외하고 PPV의 이름이 다 정해지지 않았고, ~~: 인 유어 하우스 식으로 정해지곤 했다. [28] 파일:external/2.bp.blogspot.com/WWF.Raw.Is.War.1999.02.15.720p.WEBRip.h264-WD%255B%2528167298%252903-47-25%255D.jpg
맨카인드와 아이큇매치를 비롯한 대립관계 당시의 복장이 삼선 츄리닝바지에 넉넉해보이는 검은색 셔츠인데 이게 당시 수술한 지 얼마 안된 때라 흔적을 가리기 위해서라고. 그래도 워낙 간지가 나서 지금 이 복장의 락을 그리워하는 팬들도 많다.
[29] 참고로 이 때 더 락은 다른 레슬러들의 견제를 많이 받아서 레매 15를 앞두고 다른 선수들이 빈스에게 락은 아직 너무 어리다거나 실력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방해하려 했으나, 결국 스티브 오스틴 본인이 락에게 함께 메인 이벤트를 맡을 것을 부탁하면서 일단락 되었다. [30] 무려 8.4%. 지금은 4%만 나와도 대박이란 걸 생각하면 정말 엄청난 수치다. [31] 선역으로써는 첫 챔피언 등극이다. [32] 그런데 이전 상황을 보면 락이 빈스에게 락 바텀을 가한 이유가 있었다. 위에 언급한 레슬매니아 17에서 빈스와 오스틴의 연합으로 패배하고 타이틀을 빼앗겼던 일이다. 셰인도 이를 근거로 빈스가 락을 데려오지 못 할 것이라 디스했다. [33] 피플즈 엘보우는 로프 반동을 한 후, 공격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기술을 시전할 지는 당장은 알 수가 없으나 당시 영상을 자세히 보면 빈스는 로프에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쓰러진 반면, 셰인은 완전히 링 한가운데에 쓰러져 있었다. 피플스 엘보우는 보통 상대를 링 한가운데에 쓰러뜨리고 사용하는 기술임을 생각하면 이미 이 때부터 셰인이 피플스 엘보우를 맞는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해당 영상을 자세히 보면 락 바텀을 맞고 쓰러진 셰인이 쓰러진 상태에서 조금씩 링 한가운데로 조금씩 움직인다. 여담으로 원래 피플스 엘보우는 시전하기 전에 팔꿈치 패드를 관중석에 던지지만, 이 때 락은 사복을 입고 있어서 패드 대신 선글라스를 관중석에 던졌다. [34] 다만 제리코는 WWF를 배신한 게 아니라 제거된 김에 승리하기도 힘들 테니 그간 참고 있던 락을 공격하며 화풀이를 한 것이다. [35] 빈스를 역으로 Kiss My Ass Club에 적용시키면서 다른 선수들이 자신한테 한짓을 마치 이절 자신이 트리쉬한테 해야하는 것처럼 했고, 트리쉬 또한 뒤돌아서 서있는데 그러자 빈스는 자신이 트리쉬의 Kiss My Ass Club에 들어갔다는 사실에 신이 나서 무릎으로 기어가서 키스하려했고, 빈스의 입이 닿기 직전 락이 손으로 막았다. [36] 이 때 당시 헐크 호건은 악역이고 더 락이 선역이었다. 그런데 헐크 호건의 인기가 너무나도 넘사벽이었던지라 오히려 선역이었던 더 락이 야유를 받은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37] 원래는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에게 주어진 각본이었으나, 거부하고 해고되었다. [38]
때문에 경기 직후 비방송 마이크웍을 통하여 턴힐을 암시하였다.
[39] 거의 반삭에 가까운 헤어스타일에 가죽 재킷과 고급 선글라스를 걸치고, 왼쪽 어깨에는 사모아 전통 문신을 추가해 등장했다. 이듬해에는 왼쪽 가슴까지 문신이 확장되었다. [40] 빈스가 매수한 실반 그리니어가 심판으로 나왔다. [41] 보통은 WWE를 떠난 선수들은 Alumni(동창생) 로스터로 따로 분류해놓는데, 이 시기에 락의 프로필은 다른 현역들과 마찬가지로 계속 RAW의 로스터에 포함되어 있었다. [42] 영화 '둠' 촬영당시만 하더라도 이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슬림한 체형으로 바뀌어 많은 팬들에게 충격을 줬었는데, 이 당시 분노의 질주 5, 그 후 보디빌더 역을 맡은 페인 앤 게인의 출연을 위해 엄청나게 몸을 불려놓았다. 결과적으로 영화 찍으려고 몸 키웠는데 레슬링도 함께 흥행하는 효과를 낳았다. [43] 그도 그럴것이 둘 중 하나라도 부상이라던가 기타 어떤 변수로 인해 낙마할 경우 WWE 입장에선 매우 곤란해진다. 돌의 메인이벤트에 초점이 맞춰진 홍보전략을 전부 엎어야함은 물론이고, 그로 인해 티켓팅을 비롯한 수많은 문제에 직면해야 한다. [44] 이전에 레슬매니아를 앞둔 RAW에서 시나가 Thuganomic 기믹으로 자신을 디스하는 세그먼트를 하자 이에 대한 보답으로 즉석 기타 콘서트를 열어 시나를 디스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We Will ROCK You를 즉석에서 개사해 추가로 시나를 디스했다.We~ Will~ We Will~ ROCK you! CENA SUCKS!! [45] 시나가 우위를 점하고 유 캔 씨미를 하려다 갑자기 피플스 엘보를 시전하는데, 그 틈에 정신을 차린 락이 로프반동으로 달려오던 시나에게 기습적으로 락 바텀을 구사했다. [46] 지난 레슬매니아 28에서 락과 시나의 타이틀 매치 슬로건이 평생 단 한번 뿐인(Once In A Lifetime)이었다. 네티즌들이 이를 비꼬는 말. [47] 락이 예전에 WWE 챔프에 오르고 '브라마 불 벨트'를 사용하려 했으나 무산된 적이 있기 때문에 그 점에서 락의 의견이 반영된 듯하다. [48] 이 당시 국내에 지 아이 조 2 홍보를 겸해 내한을 했었는데 새로운 WWE 챔피언십 벨트도 아주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49] 존 시나는 락에게 락바텀 3번, 피플즈 엘보우 1번을 얻어 맞았다. [50] 스맥다운 첫 회에 있었던 일이다. 둘의 싱글 매치였고, 숀 마이클스가 심판을 맡았다. [51] 먼 훗날 트리플 H는 인터뷰에서 실제로 더 락과의 레슬매니아에서의 경기를 추진했으나, 락의 스케쥴 문제로 결국 무산되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52] 고향인 플로리다에서 열렸다. [53] 주차장에 차를 몰고 들어와 인터뷰를 하던 미즈의 스포트라이트를 뺏는다. 그리고 미즈에게 인사를 하더니 옛날 영화에 나오는 수녀 꼬라지같다며 비웃는다. 그리고는 안바쁘면 자기 차나 주차 해달라고 차 키를 던져준 후 쌩깐다. 그리고 빅 쇼와 마주치는데, 처음엔 만나서 반갑다며 인사만 나누는듯 했다. 그런데 점점 말이 길어져갔고 WWF 로얄럼블(2000) 때 빅 쇼가 우승한게 맞다며 맞장구를 치더니, 당시 찍었던 영화 스콜피온 킹의 제작자가 누가됐건 로얄럼블 우승자를 캐스팅 할거라고 했다며 웃으며 속을 박박 긁기 시작한다. 만약 그때 우승했다면 온갖 영화를 찍고 스타가 된 자신의 모습이 빅 쇼 너 였을지도 모른다고 악의없는 미소와 함께 실컷 퍼붓고는 유유히 자릴 떠난다. 그걸 들은 빅 쇼가 울먹이며 노트북을 거꾸로 접어버린다. [54] 빅 쇼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라나와 마주치자 작년 루세프와의 세그먼트를 언급하며 반가워 한다. 그러다 또 말이 길어지더니 라나가 예전에 본인의 호텔 방에 찾아와 루세프랑 못해 먹겠다고 징징거린 일과, 함께 술에 취해 뜨거운 밤을 보냈다는 일까지 언급해버린다. 이걸 뒤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루세프를 보고 깜짝 놀라더니 역시 인사를 건내고 정말 유연한 아내를 얻게 되었다면서 약혼을 축하(?)했다. 그 뒤엔 팻 패터슨과 스쳐 지나가며 그의 생일을 축하하기도 했다. 그렇게 끝도 없이 떠벌거리면서 백스테이지를 지나 고릴라 포지션에 서서 그 유명한 Finally, The Rock has come back! Home... 챈트로 관객을 실컷 조련한 후에야 겨우 링으로 입장한다. 들어오자 뉴 데이 3인방에게는 왜 라마의 거시기를 머리에 붙이고 있냐고 조롱하며 끝없는 말빨을 과시했다. [55] 링에서의 세그먼트 도중 각본을 무시하고 몇몇 레슬러 복장을 따라한 팬들을 향해 애드립을 펼치기도 하였는데, 이에 대해 백스테이지에서는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다. 더 락 또는 존 시나가 아닌 다른 선수들이 저렇게 했다면 곧바로 해고를 당했을 것이라는 얘기마저 나왔다고 한다. 한편 라나에 대한 세그먼트 각본은 성차별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다만 이건 라나가 당시 트위터로 페이지와 문제를 일으킨 탓에 회사 차원에서 내린 일종의 징계라고 한다. [56] 다만 이전 경기인 딘 앰브로스 브록 레스너의 경기가 꼴랑 10분 정도였기 때문에, 현역보다 알바에게 그렇게 많은 시간을 줬어야 하냐는 비판이 나왔다. [57] 이에 대해서는 후일 딘이 스톤콜드 팟캐스트에서 브록이 이 경기에 굉장히 무성의하게 임했다고 대놓고 불평했던 사실, 일반적으로 PPV에서 하이-미드카더 이상급 선수들의 대립을 마무리짓는 경기에 고작 10분을 배정하지는 않는다는 점, 브록이 옛날부터 제멋대로에 동업자 의식이 구리기로 유명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딘과 브록의 경기가 원래 더 길 예정이었으나 브록 때문에 10분짜리 경기가 되었고, 락은 그저 이로 인해 생겨난 애매하게 붕 뜬 시간을 마이크웍으로 메꿔준 것일 뿐이다'라는 음모론(?)도 있다. [58] 설사 둘의 시합으로 레매40이 역대 레매중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다 한들 그 흥행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둘다 파트타이머인데다가 네임 밸류에 비해 경기력 자체로 어필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더 락은 본래부터 경기력 논란이 있고 로만은 경기력도 문제이지만 백혈병 환자라서 몸이 심각하게 병약하기 때문이다. 리얼리티 에라에 들어서면서 경기력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부상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59] 이후 자신의 일상얘기와 최근 제작이 확정된 모아나 2 등의 얘기로 넘어갔기때문에 해당 부분은 더 락 캐릭터로서의 워크라는 반응이 우세하다. [60] 여기서 로만이 2선급 챔피언십이라고 칭한 타이틀은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이다. 엄연히 동등한 1선급 챔프임에도 'Number Two'나 'Loser Bracket(패자조)' 등의 표현을 쓰며 조롱했다. [61] 그 와중에 현장에 있던 세스 롤린스도 더 락에게 달려들며 퇴장하기 직전까지 락과 서로 욕을 섞은 언쟁을 주고받기도 했다. 이 부분을 일각에선 풀타임 현역 vs 파트타이머의 대립구도를 암시하는 게 아니냐는 예측도 나오고 있으먀, 게다가 세스는 락의 컴백 이후 줄기차게 락을 저격하는 워크를 선보이고 있었다. [62] 이후 자신의 X에서 더 락의 캐릭터가 아닌 드웨인 존슨으로서 쓴 입장문에서도 자신이 프로레슬러로서 악역(Heel)을 수행중이었다며 턴힐을 사실상 본인 피셜로 공식화했다. # [63] 게다가 직전 스맥다운에서 트리플 H가 락을 저격하는 뉘앙스의 세그먼트를 진행한데다, 폴 헤이먼이 트리플 H에게 "다음 스맥다운에서 락과 로만이 함께 출연한다"고 알리는 등, 마치 락과 로만이 연합한 듯한 모양새라 더욱 그러하다. [64] 하지만 포즈를 취할 때 검지 손가락만 펴고 위로 들던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엄지손가락까지 피며 마치 알파벳 L을 연상하게 하는 제스처를 보여주었는데 대부분은 '단순 실수'라고 큰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이것조차 뭔가 있다고 생각하는 소수 의견도 있다. 정찬우 캐스터는 이 손동작이 " LieL을 의미하는 것이며, 정말로 블러드라인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라는 견해를 내비쳤다. [65] 그리고 이 날도 세그먼트가 끝나고 포즈를 취할 때 애매하게 손을 들다가 잠시 엄지 손가락을 펴서 L 모양을 만들자, 이를 폴 헤이먼이 지켜보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 [66] 코디는 더스틴과 자신의 누나와 어머니가 다른 이복 형제이다. [67] 쇼 초반에 코디에게 했던 이야기를 입모양에 따라 유추해 보면 “Tonight, I'm gonna make you bleed." 즉 오늘 피를 흘리게 만들겠다고 말한 것이 유력하다. 그 말을 그대로 지킨 셈. [68] 그리고 RAW 방송 종료 후에도 벨트로 때리고 있었는데 방송 종료 됐으니 이제 그만하라고 말리는 제작진들한테 욕까지 하면서 계속 코디 때리고 있었다는게 후에 밝혀졌다. [69] 레슬링 역사 최초의 여성 프로모터로 활동했으며 "High Chief" 피터 마이비아의 아내이자 락의 외할머니이다. NWA 폴리네시안 퍼시픽 프로레슬링을 발족하고 1985년에는 하와이 알로하 스타디움에서 AWA,짐 크로켓 프로모션,신일본의 선수들이 대거 참여한 "Hot Summer Night"을 개최하며 하와이와 폴리네시안 프로레슬링의 발전을 이끌어 현재 사모안 혈통의 프로레슬러들이 대거 성공하게 되는 디딤돌을 닦았다. [70] 락을 상징하는 호칭인 피플스 챔피언이라는 명칭은 본래 알리가 불리던 상징적인 호칭이었고 락이 1998년 알리에게 직접 존경을 담아 자신이 써도 되는지 허락을 맡았고 알리는 기쁘게 허락했다고 한다. [71] 원래대로면 당연히 반칙으로서 반칙패를 당하고도 남을 상황이었으나 더 락의 위치가 코디와 로만에게 가려져 심판이 반칙 행위를 볼 수가 없었다. [72] 다만 이과정에서 로만을 놔두고 락이 직접 코디를 상대로 핀을 따낸 점에 대해 일부 팬들은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아무리 레전드인 더 락이라지만 현역 셋을 밀어내고 엔딩을 차지한 건 이전 대립에서 세스가 말했던 "너의 시대를 가졌으면서 우리 시대까지 탐내는 것이냐"란 대사가 그대로 실현된 게 아니냐는 것. 한편으로 이 부분은 현실적으로 더 락이 핀폴을 해야 개연성이 성립된다며 옹호하는 의견도 있다. 당장 다음날 2일차 경기 때문에 로만이 코디를 핀폴하는 것도 그림이 이상해지고, 그렇다고 세스가 핀폴 당하는건 다음날 드류와 경기를 치러야 하는 세스 입장에서도 위상이 애매해진다. 반면에 코디는 이번 스토리라인에서 새로 등장한 기믹인 파이널 보스 더 락에게 핀폴 당한 거라, 소위 코디버스에서의 시련이 추가되어 타이틀 획득 시 서사가 드라마틱해지는 부분이 생긴다. 결국 이 경기의 결말도 코디 서사의 과정이 아니냐는 것. [73] 이때 존시나 등장한 이후 등장 할때 니가 여기가 어디라고 와 한뒤 묵음처리 되었는데 정확히 욕설이였을 가능성 높다. [74] 그리고 원래 이때 스톤콜드 부르려다가 현장에 없어서 당시 언더테이커는 관중으로 등장했는데 이때 WWE관계자가 출현해달라고 했는데 바로 응했다고 하며 데드맨 복장으로 등장하기 시간이 촉박해서 두건만 두르면 완성되는 폭주족 기믹으로 더락 응징했다는 후일담이 있었다고 한다. [75] 축하와 도전을 동시에 하며 자신의 목표물이 로만에서 코디로 바뀌었다고 선언한 것이다. 훗날 더 락이 복귀한다면 코디 로즈와의 경기는 확정된 셈. [76] 그리고 코디도 이 도전 언젠가 돌아오면 받아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