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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5 02:03:28

대성산혁명렬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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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북한 국기.svg 평양시 국립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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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e40001,#222222><tablebgcolor=#e40001,#222222> 파일:북한 국장_White.svg 대성산혁명렬사릉
大城山革命烈士陵

Taesongsan Revolutionary
Martyrs' Cemet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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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chosun.com/200608050031_01.jpg
▲ 대성산혁명렬사릉의 모습[1]
<colbgcolor=#e40001,#222222><colcolor=white> 준공 1975년 10월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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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렬사묘역(대성동)[2] (1954~1975)
대성산혁명렬사릉(대성동) (2013~ )
규모 면적 0.297㎢
주소

대성산혁명렬사릉
( 평양시 대성구역 대성동)
1. 개요2. 특징3. 구성4. 안치 인물 목록5. 남북통일 이후 전망6. 참고문헌

[clearfix]

1. 개요

북한 국립묘지. 평양시 대성구역 대성동에 소재한 주작봉에 있다.

북한을 방문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만경대고향집,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금수산태양궁전, 애국렬사릉, 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정치선전에 이용당하거나 대한민국 국가보안법에 저촉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방문하면 안 되는 곳이다.[3]

근처에 금수산태양궁전, 백화원영빈관, 조선중앙동물원, 자연박물관, 조선중앙식물원이 있다.

참고로 북한 행정구역 기준 량강도 혜산시 련봉산에도 혜산혁명렬사릉이 있다. 여기에는 김일성과 친소관계가 뚜렷하지 않은 항일 인사들의 묘가 있다.

2. 특징

1973년 8월에 착공하여 1975년 10월에 준공되었으며 1983년부터 2년간 재정비 공사가 있었다. 신미리에 있는 애국렬사릉에 비해 그 격이 높다고 한다.

북한은 "해방 직후부터 국가 차원에서 만주 등에 흩어져 있던 독립운동가들의 묘를 찾아 평양시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에 모셨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만주는 한국독립운동의 주요 무대였음에도 광복 직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동구권에 속해 냉전 시대에 교류가 수십년간 완전히 끊기면서 대한민국(남한) 정부는 오랫동안 만주 각지에 생존 또는 묻혀 있는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실질적인 대우를 할 역량이 없었다. 따라서 북한 정권의 정통성과는 별개로 본의 아니게 이곳에 안장된 수많은 이름 모를 독립운동가들 때문에라도 이 묘원을 마냥 무가치하게 바라볼 수는 없으며 사후 안장자 목록을 파악한 후 재평가와 분별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 국립서울현충원', 미국의 ' 알링턴 국립묘지', 중국의 ' 팔보산 혁명공묘', 러시아의 ' 크렘린 벽 묘지'에 대응되는 시설물이다.

3. 구성

그래도 나름 '렬사'들이 안치된 곳이라 다수의 독립운동가들도 이곳에 잠들어 있다. 실제로 자매품격인 신미리 애국렬사릉에 비해 소위 혁명원로라고 불리는 항일 빨치산들의 비율이 높은데 대략 100여 명 정도 된다고 한다. 물론 북한 김일성 가족과 개국 공신들이 더 좋은 취급을 받고 있으며 주체사상의 성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많은 묘역임은 분명하다.

립구구역, 중심계단구역, 조각군상구역, 교양마당구역, 반신상구역 등의 구획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대문과 본묘역 사이에는 400개의 계단이 있다고 한다.

입구에서 계단을 따라 오르면 정면에 대형 '공화국영웅메달'이 있고 왼쪽에는 김일성의 친필비가, 오른쪽에는 헌시비가 있다. 심지어 대문의 현판은 김정일이 썼다고 한다.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07071005463920002400-001.jpg

파일:external/www.donga.com/200608040098.jpg

각 인물들에게는 이런 식으로 묘비 앞에 분묘, 비석과 함께 반신상이 세워져 있다. 반신상과 비석에는 묻힌 사람의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약력이 서술돼 있다. 총 9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랫단부터 사망일 순서대로 안치돼있다고 한다.

파일:external/www.tongilnews.com/111086_41433_1258.jpg

그러나 김정숙, 김책, 오진우 등 총 15명의 김씨 일가의 구성원과 최고참 구성원들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특별대우'를 받는다. 참고로 가장 정중앙이 김정숙이다.

4. 안치 인물 목록

☆표시는 제일 윗단에 안치된 인물
김일성도 생전에 이곳에 묻히기를 원하였으나 김정일이 우상화를 위해 금수산기념궁전 시신을 보존하기로 결정해서 안장되지 못했다. 덕분에 김일성은 최후의 미담조차 잃어버렸다.

5. 남북통일 이후 전망

남북통일 이후에는 주체사상의 상징인 이곳을 갈아엎고 유골은 따로 처리한 뒤 공원 등으로 조성하자는 의견이 있지만 이런 식으로 처리할 경우 여기 안장된 독립운동가들까지 실수 부관참시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가령 이곳에 묻힌 최효일, 최윤구 열사는 대한민국에서도 독립유공자로 지정되어 있다. 남북 분단 이전에 사망해 만주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독립운동가의 유해를 모아서 안장했다는 북한 측의 주장이 사실이라면[4] 북한 정권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는 독립운동가도 많이 안장되어 있을 가능성도 높다. 혹여 단 한 분이라도 제대로 모시지 못할지라도 여기 안장된 독립운동가 중 남한에서도 인정받는 분들을 부관참시하는 건 안 될 말이다. 북한 정권과 관련이 있는 독립운동가라고 할지라도 1940년대에 사망하여 6.25 전쟁 발발에 대한 직간접적 책임이 없는 인물이라면 과보다 공이 크다고 할 수 있고 1950년대 이후 별다른 정치적 역할 없이 단순히 북한에서 거주하다 사망한 독립운동가, 민간영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애초에 북한 정권에 관여한 인물들도 상당수는 실제로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이기에 무 자르듯 자르기 쉽지 않다.

그러면 독립운동가의 유골만 보존하고 김씨 일가나 6.25 전쟁 전범들의 유골만 추려내면 안 되냐고 할 수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전범'이라는 것은 사실 한국에서 보는 시각이고 실제로 북한 주민들이 그런 의견에 동의하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을 애국자로 생각할 가능성도 있다. 독립운동과 북한 정권 기여에 둘 다 해당하는 사람의 부정적 재평가는 십중팔구 친일반민족행위자 프레임과 엮일 가능성도 크다.

다른 곳도 아닌 혁명렬사릉은 남북통일 이후 북한 주민의 민심 수습 차원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남조선 놈들이 이겼다고 제멋대로 군다"는 반발을 살 우려가 있으므로 굳이 여기를 밀어버리는 방향으로 간다면 북한 주민의 민심을 적절히 수습한 뒤 장기적인 안목으로 천천히 진행하는 게 최선이다. 6.25 전쟁에 참전한 북한 정치인이나 군인들은 한국의 시점에서 보면 기본적으로 "전범"이지만 북측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영웅"으로 비춰지는 인물일 수도 있으므로 북한 민중의 동향을 민감하게 파악하면서 진행할 필요가 있는 사안이다. 특히 각종 북한이탈주민들의 증언 등을 보아도 매장과 고인의 유해에 대한 유교문화권 한민족 특유의 진중함과 애착은 북한에서도 여전한 풍습이라 이런 필연적으로 정치적으로 자극적일수 밖에 없는 역사적 기념물 등은 굉장히 신중하게 접근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북측 주민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천천히 진행하면 이제는 한국측에서 6.25 전범 무덤들을 빨리 철거 안 하고 뭐하냐는 비난 여론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민감하고 어려운 문제다. 애초에 항일투쟁 경력과 북한 정권에의 기여 및 6.25 전쟁 참전 경력이 공존하는 인물들이 적지 않아서 가려내야 할 묘의 기준부터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 자세한 사항은 남북통일/인프라 문제 항목 참조.

6. 참고문헌


[1] 앞은 '대형 공화국영웅 메달 조형물'이다. [2] 원래 미천호 옆에 위치했으나 이후 현 위치로 옮겼다. # [3] 일반적으로라는 단서가 붙은 이유는 북한 내 핵심 엘리트 구성을 연구하는 데 이곳만큼 적격인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폐쇄성으로 인해 주요 인사의 약력, 생애 등에 대한 정보는 무척 제한돼 있는데 이곳의 비석에는 해당 정보가 상세히 적혀 있어서 이곳을 방문한 북한학 연구자들은 큰 도움을 얻었다고 한다. [4] 조선인 독립운동가의 유해를 수습해 만주에서 북한으로 보내주는 것은 중국 정부에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즉,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