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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16:38:44

장길부


1. 개요2. 생애3. 장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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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884~1974

북한의 항일빨치산 마동희의 어머니.
사람 자체는 북한에서 정치 활동을 하거나 항일 활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자식을 전부 빨치산으로 바쳐 북한에서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2. 생애

1884년 12월 1일 함경북도 학성군 학동면 석호리에서 태어나 1912년 함경북도 성진(現 김책시)에서 아들 마동희를 낳았다. 마동희는 김일성의 항일유격대에서 항일 운동을 하다가 1938년 사망했는데, 북한 측 자료에 따르면 1936년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해 1938년 체포되어 비밀을 말하지 않기 위해 옥중에서 자결했다고 한다. 이후 딸과 며느리도 항일유격대에서 활동하다가 사망하고 북한 측 자료에 따르면 남편도 혁명투쟁에 바쳤다고 하는걸 보아 남편도 1930~40년대에 사망한것은 확실해보인다. 자신도 조국광복회와 부녀회 회원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런 상황이니 해방 때도 혈혈단신이었고, 해방 후 김일성으로부터 항일투사 유가족으로 대접받았다.

김일성은 그에게 "내가 어머니를 모시겠다", '공산주의 어머니' 등으로까지 부르며 우대했고, 그의 집을 찾아 100살까지 살라고 덕담도 했다고 한다.[1] '사회주의 건설에도 잘 참가했다'는 김일성의 평가로 미루어 보아 적극적으로 일하면서 살았다고 예상할수 있으며 실제로 1965년 10월, 공화국영웅이 되었고 1972년 4월, 김일성훈장을 받는 등 간부나 항일빨치산은 아니었지만 굉장히 높은 대우를 받았다.

1974년 2월 18일 향년 90세를 일기로 노환으로 사망했다. 당중앙위원회와 북한 정부는 연명으로 부고를 발표, "민족의 태양이시며 혁명의 영재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 끝없이 충성다하여온 장길부녀사는 수령님께서 이끄시는 혁명의 한길에서 오직 조국의 광복과 나라의 부강발전을 위하여 온 가정과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였다. (...) 실로 장길부녀사는 자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확고히 세우고 모든 곤난과 슬픔도 이겨내며 오로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 끝없이 충직하였으며 수령님의 가르치심 따라 조국의 광복과 부강발전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바쳐 헌신적으로 투쟁한 조선의 공산주의어머니이다. 장길부녀사의 일생은 자기 일신과 가정을 생각하기전에 먼저 당과 혁명을 생각하는 고귀한 혁명정신의 모범을 보여준 빛나는 생애였다. 장길부녀사는 비록 서거하였으나 수령님께 무한히 충직한 그의 고상한 혁명정신과 그가 당과 조국과 인민 앞에 세운 고귀한 업적은 우리 당 력사에 길이 빛날것이며 전체 당원들과 우리 인민들, 우리 녀성들의 심장속에 영원히 살아있을것이다. 녀사여 고이 잠들라."고 아낌없는 칭송을 퍼부었다.

또한 국장이 거행, 김일성이 직접 장의위원을 맡았으며 2월 19일, 당과 정부의 주요 간부들을 이끌고 직접 조문하였다. 이날 조총련의 수괴 한덕수가 조전을 보내왔으며, 2월 20일에 장의식이 거행되었다. 한익수가 영결식 사회를 맡았고 추도사를 림춘추가 하였다. 시신은 대성산혁명렬사릉에 안정되었다.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이나 북한 정권 수립 이후 부주석이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당중앙위원회 비서같은 두루두루 요직을 거친 빨치산 출신들이나 묻힌 묘지에 딱히 큰 공적 없는 할머니가 묻힌 셈이니 북한 정권에서 그를 얼마나 우대했는지 알 수 있다.

3. 장의위원회

김일성
최용건 현무광
강량욱 최재우
김일 허담
최현 정준기
오진우 남일
김동규 홍원길
박성철 김영남
서철 김철남
한익수 오재원
오백룡 리두찬
림춘추 리오송
김중린 전문욱
김영주 김룡연
연형묵 황순희
리근모 김명화
리용무 김철호
양형섭 장철구


[1] 김일성은 태성할머니에게도 100살까지 살라고 한걸 보아 그냥 호의적인 노인들에게는 다 이런말을 해준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