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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28 ~ 2001 (향년 73세)북한의 전 사회안전부장, 중앙재판소장, 강원도당 책임비서.
2. 생애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인물이다.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로, 6.25 전쟁 중 전사한 12 보병사단장 최춘국의 아들이라고 한다. 2001년 북한에서 발표한 부고에 따르면 외국 태생이라고 하는데 중국이나 러시아 극동지역 출신으로 보인다. 1928년 2월 11일에 태어났다.1998년에 통일부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1960년 10월 민족보위성 부상, 12월에 수산상에 임명되었으며 1961년 4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1964년 2월 내각 부수상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1985년에 편찬된 북한 역대 총리, 부총리, 장관 프로필에는 역대 사회안전부장을 잠깐 지냈다고만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인물이었다. 이 프로필에 따르면 문제의 수산상(1960~1963), 내각 부수상(1964~1972) 자리는 최원익이 아니라 최용진이 지냈다고 기재하고 있다. 부수상 이후에는 민족보위성 총정치국 부장을 지냈다고 한다. 로동신문의 임명 명단을 보면 최원익이 아니라 최용진이 부수상을 지낸 것이 맞으며 북한에서 내각 부수상 겸 수산상을 지낸 항일혁명투사 최용진의 선전물까지 따로 만들어서 배포하고 있다. 통일부의 오류가 확실하다.
조선기록영화 21편에 따르면 김정일이 초기에 군대를 장악하던 시점에 그를 수행하던 측근 출신이다. 이후 뭘 했는지는 추적이 안되다가 1976년 12월 26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사회안전부장 겸 육군중장에 전격 임명되었으며 전임 리진수는 중앙검찰소장으로 이동했다. 이듬해인 1977년 6기 최고인민회의가 소집되자 사회안전부장에 유임되었다. 하지만 1980년 리진수가 다시 사회안전부장에 임명되면서 물러났고 소문에 의하면 1980년대에 함경남도 인민위원회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탈북자동지회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김정일이 최원익에게 평양동물원의 울타리 수리를 명령하자 김정일의 수행부장을 지내면서 기세가 등등했던 최원익이 천하의 사회안전성에 뭐 그런걸 시키느냐고 개겼는데, 이거 때문에 김정일이 제대로 열받아서 쫓아내버렸다고 한다.
이후 한동안 조용하다가 1980년대에 함경남도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사업하면서 지방사업에 종사했다. 이후 중앙재판소장 방학세가 임기 중 사망하면서 1992년 12월 11일, 최고인민회의 9기 4차 회의에서 중앙재판소장에 임명, 1993년 4월 최고인민회의 9기 5차 회의에서 법제위원에 보선되었다. 1994년 김일성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8년 10기 최고인민회의가 소집되자 대의원에 선출되는 한편 법제위원에 유임되었으며 중앙재판소장 자리를 김병률에게 물려주고 1998년, 림형구의 뒤를 이어 강원도당 책임비서에 임명되었다. 2000년 김일성 훈장을 수훈받았다. 2001년 6월 9일 강원도당 책임비서 재임 중 간경변으로 사망했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공동명의 부고는 최원익이 "당의 강화 발전과 사회주의 건설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였으며, 사회주의 건설시기 무력정치기관과 인민보안기관, 지방과 중앙의 당 및 정권기관의 책임적인 위치에서 당의 노선과 정책을 관철하기 위하여 정력적으로 사업하였다."라고 칭송했다.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안치되었다. 그가 사망한 이후 강원도당 책임비서는 무려 이례적으로 5년이나 공석으로 남았었다. 책임비서 급의 당의 중요한 실무를 맡고 있었음에도 부고에 중앙위원회 위원이라는 직책을 붙여주지 않은 것을 보아 김정일 시대에 당내 정치가 마비되면서 중앙위원회에는 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3. 여담
그가 최춘국의 아들이라는 정보가 사실이라면, 그의 사촌으로는 최금순이 있는데, 김일성종합대학 졸업 후 중앙도서관 사서를 거쳐 김형직사범대학 학장에 임명되었다.4. 참고문헌
- 통일부 정보분석국, 북한 주요 인물 자료집 2000(서울: 통일부, 2000)
- 주간북한동향 제54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