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주둔 중인 UN군에 대한 내용은 유엔군사령부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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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 유엔 평화유지군 United Nations Peacekeep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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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일 | 1948년 ([age(1948-01-01)]주년) | |||||
소속 | 유엔 | |||||
상비군 | 81,820명 | |||||
운영비 총합 | 6.7억 달러 | |||||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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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엔 소속의 연합군 부대로 주요 분쟁지역이나 재난지역에 파병된다. 그 때문에 유엔 소속의 국가들의 군대를 필요할 때마다 차출하는 형태가 되어 비상설 조직이다. 문관(군무원)인 비군인 공무원이 사무총장 특별대리 겸 임무책임자(Special Representative of the Secretary-General and Head of Mission)를 맡고, 현역 군 장교인 부대 지휘관이 보좌하는 형태이다.1950년 한국 전쟁 당시 미국의 주도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생긴 유엔군사령부와는 다르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은 공산권의 한반도 점령을 막기 위해 생긴 특별 설립되어 한 쪽 편에서 상대편과 싸우는 군대이고,[1] 평화 유지군은 어느 편에서도 서지 않고 중립 입장에 서서 단지 치안 유지를 위해 활동을 펼치는 군대다. 평화유지군이 파란색 방탄모를 착용하고 중장비를 흰색으로 칠하고 큼지막한 UN 마크를 붙이는 등 위장 효과를 거의 없다시피 만드는 것도, 이들이 교전 임무가 아닌 치안 유지 임무를 맡기 때문이다. 행정 서비스가 마비된 불안정 지역에서 기본적인 경찰력을 제공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자위권에 의한 무력 사용은 가능하다. 1988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며, 2024년 현재까지는 군사조직으로서는 유일한 수상단체이다.
유엔 평화유지군에 대한 공격은 인도적 활동이나 식별표장 등에 관한 전쟁범죄로 규정된다.
2. 활동
평화유지군의 목표는 크게 4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다만 이 4가지 목표를 지키기 위해선 파병에 대한 양측의 동의가 있어야 하며[2] 평화유지군이 먼저 공격당하거나 이 4가지 목표를 지키기 위해선 전투가 가능하다. 이게 드문 일이긴 하나 보스니아 전쟁 당시 구호물자 행렬이 공격당하자 이를 보호하고 있던 UN 평화유지군이 교전하여 사상자를 낸적도 있으며 # 저격에 대비해 엄폐물을 놓던 평화유지군이 공격을 받아 철수하는 장면도 찍혔다. #또한, 평화유지군이 있다는 것이 UN의 관심이 그쪽으로 쏠렸다는 뜻이기도 하고, 이러면 분쟁이 조금이라도 사그러들 확률이 높다. 즉, 평화유지군은 실질적인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며, 분쟁의 가속화를 막아주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3.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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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소속의 국가면 어디나 되기 때문에 부대장들이 전세계에서 온다.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이 있어야 구성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국군은 1993년 국제 평화 유지 활동을 위해 상록수부대를 소말리아 내전에 파병했으며, # 이후 동티모르, 앙골라, 아이티, 아프가니스탄에 부대를 파병하였다. 2019년엔 레바논과 남수단에서 활동을 했다.
그리고 분쟁지역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거나 분쟁국가들과 사이가 나쁜 국가출신들은 해당 지역 사령관직에 오를 수 없는 암묵의 룰이 있으며, 대체로 분쟁국가들과 전혀 전쟁을 한 적이 없거나 아예 영토 문제로 갈등이 없는 제3의 국가에서 사령관이 오는 경우가 많다. 대신 이 암묵의 룰은 종종 깨지기도 한다. 심지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중 프랑스군, 영국군이 유고슬라비아 내전에 평화유지군으로 참전했으며 이중 네덜란드군은 세르비아계 민병대한테 사로잡혀 한 고생한 적이 있다.[3] 현재 레바논엔 프랑스군이, 남수단에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주둔해 있다.
4. 문제점 및 한계점
We are here as peacekeepers, not as peace"makers."
우리는 평화유지군으로 여기 온 거지, 평화"조성군"이 아니란 말이오.
- 캐나다군 소속 올리버 대령, 영화 호텔 르완다의 명대사로 유엔과 유엔 평화유지군의 한계를 단 한 마디로 요약했다.
우리는 평화유지군으로 여기 온 거지, 평화"조성군"이 아니란 말이오.
- 캐나다군 소속 올리버 대령, 영화 호텔 르완다의 명대사로 유엔과 유엔 평화유지군의 한계를 단 한 마디로 요약했다.
제1세계, 제2세계에 속한 국가들은 이득도 없는 평화유지군 파견에 부정적이다보니 돈이 필요한 제3세계 군대 위주로 구성되는데 그 특성상 무장이 빈약하고 훈련 경험도 적다. 그나마 인도군이나 파키스탄군처럼 실전 경험( 카길 전쟁,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이라도 있는 국가의 군대가 있긴 하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제3세계 국가 중에선 훈련도와 장비수준이 괜찮은 편이다. 특히 인도의 경우 제3세계 맹주를 자처하는 만큼 압도적이며, 파키스탄은 탈레반과 분리주의 무장단체와의 교전경험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3세계 국가들은 실전경험이 없거나 부족하다. 설상가상으로 경제력도 빈약해 군대 무장도 빈약한 데다 기강도 해이한 군인들이 홈그라운드에서 필사적으로 맞서는 게릴라를 상대로, 그것도 복잡한 전투 수칙에 묶여 싸워야 하는 꼴이다. 이기면 그게 더 이상한 상황이고 오히려 이긴 지휘관이 명장의 기질을 가진 셈이다.
또한 UNPKF의 기본 임무는 분쟁지역에서 일종의 UN관할의 중립 안전지대를 형성하는 것이지 분쟁을 종결하는 것이 아니므로 분쟁으로 인해 막장이 된 전쟁터의 상황을 손놓고 방관만 한다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특히 보스니아 내전 당시에 사라예보에서 저격수와 민병대에 의한 학살이 벌어졌을때도 이를 방치했다는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런 부분은 평화유지군 입장에서도 억울할 법도 한 것이 평화유지군의 전력으로는 도저히 맞설 수 없을 정도로 세르비아에게 직접적으로 훈련받은 민병대 세력이 강대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점은 본격적으로 대규모 교전능력을 갖춘 NATO군의 증파로 해결되었다.
게다가 기강이 빠져 있다는 건 대민범죄를 자주 저지른다는 뜻이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이런 문제가 너무 심각해서 유엔이 직접 조사에 나설 정도였다. 특히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기에 앞서 파견국의 법률로 재판한다는 협정을 맺고 들어가기 때문에 현지에선 처벌할 수도 없다. 그나마 대한민국 같은 나라는 국가 이미지를 엄청 신경써서 이런 문제는 FM대로 처리하지만, 우루과이 같이 신경조차 안 쓰는 나라도 았다.
그래서 유엔에선 제3세계 국가들로 구성된 평화유지군의 졸전과 범죄, 세계연합이라는 이름을 무색하게 만드는 미미한 존재감 때문에 평화유지군 역할 일부를 실전 경험이 풍부한 PMC로 대체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물론 이익 추구가 목적인 기업에게 이러한 역할을 맡기는 것이 어느정도 위험성을 지닐 수는 있지만, 이들은 면책특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데다 실전경험이 풍부한 퇴역군인들이 종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평시에도 훈련을 받기 때문에 전투력과 규율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 게다가 기업이다보니 관료주의적 문제에서도 크게 자유로운 편으로, 유엔에서 승인을 받고 모집을 시작하는 평화유지군과는 달리 PMC는 유엔으로부터 승인 받은 직후 바로 투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빠른 개입이 가능하다는 점도 있다.
실제로 '피의 다이아몬드'로 유명한 시에라리온 내전에서 RUF 반군들이 마을을 약탈하고 주민들이 투표를 하지 못하게 손과 다리를 자르는 악행을 저질렀지만 유엔은 명분이 없어 개입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대적 PMC의 시조로 평가받는 남아공의 'Executive Outcomes'가 대신 투입되어 반군들을 몰아냈다. 또한 위에 언급했던 유고슬라비아 전쟁 당시에는 'MPRI'가 크로아티아군을 훈련시켜 세르비아로부터 독립하는데 큰 기여를 해서 PMC가 평화유지군의 역할을 대체하는 것에도 장점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다만 애초에 UN군이 힘을 쓰지 못 하는 까닭은 평화유지군의 성격과 교전 수칙 탓인데, 병력만 PMC로 바꾼다고 해도 극적으로 개선될지는 알 수 없다.
근본적으로 아무리 유엔의 이름을 걸고 선의의 목적으로 활동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냉혹한 국제정세 속에서 철저한 힘의 논리에 휘둘린다는 명백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일단 평화유지군의 파견은 유엔 안보리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데 이곳은 거부권을 가진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의 5개 상임이사국이 좌지우지하는 상황이다. 시리아나 미얀마처럼 진짜 평화유지군이 필요한 곳에서 활동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현지 상황이 평화유지군으로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치닫은 것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각 상임이사국들의 국익에 맞는 셈법에 따라 거부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4.1. 흑역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992년 계속되는 폭력과 내전으로부터 남부 소말리아의 안정된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평화유지 작전인 UNOSOM I (United Nations Operation in Somalia I)를 시행하고 군사연합을 구성했다. 그리하여 1992년 12월에 소말리아에 진주하였으며, 리스토어 호프 작전은 유엔군의 성공으로 끝났다. 1993년 5월엔 유엔군은 대부분 철수하고 UNOSOM II으로 대체되었다.그런데, 파키스탄군이 주축인 유엔 평화유지군과 아이디드군이 정면 충돌하는 초대형 사건이 터졌다. UN평화유지군은 아이디드군이 점령해서 선전기구로 활용한 라디오 시설과 언론사, 무기 시장을 공격했다. 이 과정에서 파키스탄군 경기갑 여단을 파견했는데, 거꾸로 아이디드군의 매복에 당한 것이다. 이 결과로 파키스탄군 24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이 부상당하는 유엔 평화유지군 사상 최악의 참사가 벌어졌다. 사건 도중 아이디드군 병사가 죽은 파키스탄군의 시체를 훼손하고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CNN에 보낸 뒤, 유엔군 철수를 요구하기까지 하였다.
때문에 UNOSOM II는 평화유지니 초동조치니 뭐니 다 집어치우고 파라 아이디드를 상대로 싸우는 전투 작전으로 변경되었고, 다국적군도 전투부대가 됐다. 평화유지작전이 전투작전으로 변질되자 파키스탄은 전장에서 핵심 전투병력을 모조리 철수시켰고, 짐바브웨, 루마니아, 스웨덴도 병력을 철수시키자 이어 다른 나라들도 병력을 철수시켰다. 이후 1993년 미군이 작전을 진행했지만… 블랙 호크 다운에서 묘사된 대로 실패로 끝났다. 그 결과 21세기도 20여 년인데 소말리아는 여전히 군벌&해적 소굴일 뿐이다.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발발 당시 아이티로 파견된 평화유지군이 콜레라를 전염시켰다는 의혹이 있었다. 유엔은 이를 부인하였지만 유엔 특별 조사위원이자 미 뉴욕대의 법학 교수인 필립 올스턴 박사의 보고서를 통해 콜레라 창궐 책임을 인정하였다. # 이에 도덕적 책임을 지는 건 물론이고 물자지원을 약속하기로 했다. #
이 콜레라 전염 사태는 아이티 국민의 약 80만명이 감염되고 약 1만여명이 사망하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유엔이 이것을 인정하는데 무려 5년이나 걸렸고 아이티는 극한의 고통을 맛보아야만 했다. 평화유지군이 평화를 박살낸 것이다.
2017년, 아이티에서 12년 동안 평화유지군의 성범죄 건수가 2천여 건에 달했다는 사실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한 여성이 유엔 기지 근처를 지나던 중 평화유지군에게 강제로 끌려가서 성폭행 당하고 결국 임신까지 하게 되어버려서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실제로 처벌 받은 사람은 드물어서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
결국 13년 만에 아이티에서 불명예를 얻고 철수를 하게 되었다. # 게다가 비용 문제까지 겹쳐 일부 분쟁지역은 병력을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2024년 9월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상대로 일으킨 전쟁 한복판에도 우리의 동명부대 포함 유엔 평화유지군이 있지만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고도 항의만 할 뿐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다.
5. 주요 임무지역
6. 대한민국과 유엔평화유지군
대한민국의 유엔 평화유지군 활동은 유엔에 가입한 이후 1993년부터 진행되었다.- 소말리아 평화유지군 (1993)
- 서부사하라 평화유지군 (1994)
- 앙골라 평화유지군 (1995)
- 동티모르 평화유지군 (1999)
- 레바논 평화 유지단 (2007)
- 남수단 재건지원단 (2013)
그 외에도 정항래 육군 예비역 중장은 영관 시절에 서부사하라에서 의료단장 역할을, 안충준 예비역 육군소장은 인도 ․ 파키스탄 감시단장(UNMOGIP)으로, 황진하 예비역 육군중장은 사이프러스평화유지군(UNFICYP) 사령관으로서 활동하였다. 그외에도 권행근 예비역 육군준장은 동티모르 유엔과도행정기구(UNTAET) 사령부 참모장으로, 정성웅 예비역 대령과 천영택 예비역 대령은 인도 ․ 파키스탄 감시단과 그루지야 감시단 부단장으로 활동하였다.
직접적인 파병 외에도 대한민국은 매년 평화유지군 예산의 약 2%를 지원하고 있으며 적은 것처럼 보이나 전세계 10위이다. #
다만 한국이 파병한 유엔 평화유지군 지역 중 전투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곳이 없으며 파병지역에서 대민사업을 진행한다. 이에 한반도가 분단 상태이며, 전쟁의 위협이 항상 있으므로 한국 파견 평화유지군이 분쟁지역으로 파견되어 실전 경험을 쌓으면 대한민국 국군내에 경험자가 생기니 전투력 강화를 이끌어 낸다는 소수 의견이 있으나, 이러면 전사자 발생 가능성이 충분히 있고, 그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생겨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7. 기타
평화유지군 파병은 가난한 나라에서는 나름대로 유용한 수익사업이다. 예를 들어 몽골군의 월급은 국내에서는 160달러 정도지만, 평화유지군으로 파병되면 유엔에서 1천 28달러를 받을 수 있다. # # 다만 유엔의 재정상태가 좋지 않아 750달러밖에 못 받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대한민국 국군의 경우도 병사가 운좋게 UNPKO 활동에 참여하게 되면, 즉 해외파병에 선발되면 현지에 주둔하는 기간 동안 계급 상관없이 최소 1,400여 달러의 월급이 통장에 들어온다. 환율이 급등하면 월급도 확 오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국방부가 원화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급격한 변동에 대해 환차익변동액을 떼기 때문에 달러가 급등한다고 크게 이익이 되지는 않는다. 그게 싫고 달러 현금을 잔뜩 가지고 싶으면 전액 현지인출을 신청하면 되는데, 6개월 근무시 8400달러나 되는 현금을 군부대에서 잘 간수하기는 힘들다.
그 외에도 위의 UN 지급 금액은 '수당'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군의 본래 월급 약 40-50여만원도 같이 받는다. 또 현지인출을 따로 신청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정부를 통해 원화로 환산되어 지급되는 본수당과는 달리 UN에서 일일 간식비, 정기휴가비 등을 달러 현금으로 지급해주기 때문에 잘 모아두면 비전투지역의 경우라 하더라도 월 180만원은 받을 수 있다. UAE군사고문단과 같이 해외파병이라 하더라도 UN의 활동이 아닌 경우에는 돈을 좀 더 적게 받는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는 UNPKO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험지수당을 적용받아 2000년대 초반에 200만원을 넘는 높은 돈을 받았다고도 한다. 일설에는 분담금에 따라 같은 지역에 파병된 부대라도 각국 부대원들의 월급이 다를 수 있다고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UNPKO에서 지급되는 금액은 비슷하지만 각국의 정부 관련부처에서 자국 군인들의 월급의 일정부분을 떼어 UN분담금 돌려막기를 시전한다거나 용도를 전용한다거나 반대로 기피지역에 대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므로 UN 자체에서 액수를 차등적으로 지급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다. 정확한 진실은 경리장교들과 국방부 예산실만이 알 것이다. 많지도 않은 금액을 계급별로 나누어받는 대부분의 국내 근무 병사들에 비해서 매우 많이 받는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평화유지군의 차량 및 장갑차, 전차는 평화를 상징하는 백색 도장과 더불어 검은색 글씨로 UN 글자를 그리고, 인원은 청색바탕에 흰색 글씨로 UN이 새겨진 청색 베레모나 방탄모 등 기타 모자류와 방탄복을 착용한다. 현지 반군이나 민병대가 평화유지군을 의도적으로 공격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데 위장까지 때려치웠으니 격렬한 분쟁지대에서는 진짜 목숨 내놓고 복무하는 셈이다. UN 베레 등 휘장류는 파병국 예산으로 구매하는 것이 아닌 UN에서 직접 현물로 사전 지급해준다고 한다.
이들이 쓸모없다는 뜻으로 절묘하게 찍힌 이 사진이 쓰이기도 한다. 평화유지군의 모토인 INVOLVED In PEACE(평화와 함께한다)가 인쇄된 선전물 옆에서 경계를 서는 평화유지군 병사[4]의 방탄모에 각인되어있는 UN 글자가 절묘하게도 이 선전물의 글귀의 앞에 위치한 결과 UNINVOLVED In PEACE 즉,(평화와 함께 '안' 한다)는 뜻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8. 대중매체에서
8.1. 영화
8.1.1. 자도빌 포위작전
자도빌 전투에서 용전분투한 아일랜드 평화유지군을 다룬 자도빌 포위작전이란 영화가 2016년 개봉되었다.8.1.2. 반도
인천항에 도착한 주인공들을 구조해 폐허가 된 대한민국에서 탈출시킨다.8.2. 만화 및 애니메이션
8.2.1. 신세기 에반게리온 / 에반게리온: 서
일본 국방군을 포함한 범국제적 다국적 연합군을 휘하에 두고 있지만 실상은 제레의 수족 역할을 수행하는 집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되어 버렸다.8.3. 게임
8.3.1. Contract Wars / Escape from Tarkov
이 세계관에서는 노르빈스크 경제특구에서 자신들의 불법적인 실험 사실을 은폐하고자 하는 블랙기업인 테라그룹의 농간에 놀아나 휘하 다국적 PMC이자 테라그룹 임원진 호위 목적으로 고용되어 노르빈스크 테라그룹 실험시설에 주둔하던 평화유지군측 하청업체인 USEC(유나이티드 시큐리티)사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정부와 러시아군에 계약된 PMC인 BEAR와의 전투를 벌이게 되면서 이후 사태가 악화되자 USEC 사령부가 BEAR와의 전투 끝에 결국 서로 와해됨에 따라 테라그룹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 다음 노르빈스크에서 철수하게 된다. 이와 별개로 타르코프시의 터미널에서 주둔중인 유엔 평화유지군 장교인 '피스키퍼' 가 PMC들과 여러 내부세력들에게 각종 물자를 밀거래중이다.8.3.2. 인피니티(게임)
23세기 우주를 배경으로 한 게임 인피니티 에서는 아예 우주의 국제연합이라 볼 수 있는 O-12가 등장한다. 기존 국제연합은 인류의 지속적인 팽창과 그 사이에 일어난 여러 정치적 분쟁과 전쟁으로 인해 유명무실해 졌으나, 나노기술을 이용한 대량살상무기의 대두 이후 새로운 국제기구의 필요성이 부상하여 탄생했다. 이들의 사법집행기관인 '이지스국'은 현실의 평화유지군과 다르게, 언제 어디서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상설 되어있는 대규모 준군사조직이며, 개입능력과 독립성이 훨씬 강하다. 조직 구성원 또한 그들의 본부이자 고향행성이라 볼 수 있는 컨실리엄 행성 출신자들이 대부분이며, 그만큼 O-12와 그들의 질서유지 임무에 충성하는 편이다. 이 때문에 또다른 군벌세력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는 세력이지만, 현재까지 이들은 다른 열강들과 공식적으로는 무력충돌을 일으키지 않았고, 그만큼 중립을 잘 지켜왔으며, 외세의 위협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이들의 향후 귀추가 주목받고 있다. 평시엔 변방 행성 즉 주요 열강들이 관리 할 수 없는 무법지대, 개발도상지역이나 대형우주선의 치안유지(혹은 경호)임무를 수행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보다 군사적인 평화유지 임무를 수행하며, 유사시에는 중무장한 전투 부대를 투입한다.8.3.3. 도미네이션즈
UN 본부 파괴시 평화유지군으로 모든 국가의 병력이 한 기씩 방어 병력으로 소환된다. 용병 야영지에서 고용 가능한 용병으로 등장한다.자세한 내용은 아일랜드 평화유지군(도미네이션즈)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에티오피아 평화유지군(도미네이션즈)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UN 평화유지군(도미네이션즈) 문서 참고하십시오.
8.3.4. 테라 인빅타
이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 등장하는 프로텍토레이트 세력의 지도자는 유엔 평화유지군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목격하고 인류에 대한 회의감을 가졌다.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자 항복하고 부분적 자치권을 얻어내고자 하며, 이것이 전 인류에게 도움되는 길이라 믿고있다.8.4. 기타
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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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 대한민국은 UN이 정부 수립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수립된 첫번째 국가였고 UN이 정부 수립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또 총회에서 합법 정부로 승인까지 한 나라를 당시 일개 미승인 국가 취급이던 북한에게 망하도록 내버려두는건 설립된 지 5년 밖에 되지 않은 UN의 존립 자체가 위협당할 있는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지 불과 5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갑자기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킨 북한을 응징하자는 UN 내 여론이 매우 높았다. 그래서 당시 한국전의 배후에 있던
소련도 파병에 대해 대놓고 반대하지 못하고 기권을 했고, 중국도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닌
대만(중화민국)이 상임이사국이어서 파병을 찬성했기 때문에 유엔이 직접 참전해서 파병이 가능했다. 한국전쟁 이후로는 UN이 합심해서 한 쪽으로 참전할 상황이 나오기 힘들다.
[2]
다만 유엔이 그 분쟁에 사로잡힌 모두와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들어, 만약 정부군과 반군이 분쟁 중인데, 정부군이 유엔 평화유지군의 개입을 요구한다면 반군이 이에 반대한다고 해도 평화유지군이 개입 할 수 있다.
[3]
세르비아계 민병대에게 포로로 붙잡혀서
나토군의 폭격을 막기위한 인간 방패로 사용되었다
[4]
해당 사진의 병사는
L85 돌격 소총, 영국군의 구형 군장이자 전술조끼인 PLCE 웨빙 등 착용하고 있는 장비를 보았을 때
영국군 소속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