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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삼성 라이온즈의 전·후반기 통합우승으로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았다. [B]: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개최일 연기, 고척 스카이돔 중립경기 개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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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 |
해태 타이거즈 | |
MVP | 박철우 |
[clearfix]
1. 개요
1989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 |
해태 타이거즈 | 빙그레 이글스 |
시리즈 MVP는 18타수 8안타를 치면서 활약한 박철우가 선정되었다.
2. 일정
1989 한국시리즈 해태 타이거즈 VS 빙그레 이글스 |
|||||||
<rowcolor=#FFFFFF> 경기 | 경기 시간 | 경기장 | AWAY | 결과 | HOME | 방송사 | |
1차전 | 10월 26일 18:00 |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 | 해태 타이거즈 | 0 | 4 | 빙그레 이글스 | |
2차전 | 10월 27일 18:00 | 6 | 4 | ||||
3차전 | 10월 29일 14:00 | 무등 야구장 | 빙그레 이글스 | 0 | 2 | 해태 타이거즈 | |
4차전 | 10월 30일 18:00 | 2 | 6 | ||||
5차전 | 11월 1일 18:00 |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해태 타이거즈 | 5 | 1 | 빙그레 이글스 |
3. 시리즈 전 상황
1989년은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단일시즌 체제가 도입된 시즌이었다. 이미 1988년에 돌풍의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준 빙그레는 1989년에는 돌풍을 넘어 태풍을 일으켰다. 정규시즌 운용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김영덕 전 감독의 시즌 운용에 더해 이정훈, 유승안, 고원부, 장종훈, 이강돈을 비롯한 막강한 타선이 시즌 내내 위력을 보이면서 타격왕과 타점왕 타이틀을 가져간 상황이었고, 마운드에서도 이상군과 한희민의 원투펀치가 여전히 건재한 상황이었다. 이 빙그레의 전력에 천하의 해태가 한 수 접고 들어가 2위로 만족해야 했다.그러나 이 해 포스트시즌 일정이 좀 묘했는데, KBO는 플레이오프 일정을 10월 14일부터 10월 21일까지 짰고, 한국시리즈는 10월 26일에 시작해서 11월 3일에 끝나는 일정으로 구성했다. 즉, 플레이오프가 5차전까지 가도 플레이오프 승리팀은 5일이나 쉬기 때문에, 플레이오프 승리팀은 경기 감각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충분히 팀을 재정비하고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일정이 되었다. 반대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페넌트레이스 1위 팀은 경기 감각적인 면에서 불리하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 사이의 휴식일이 길어야 4일밖에 안 되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문제점. 이는 과거와 다른 단일시즌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인데, 이 때문에 해태는 2위로 올라가 경기 경험을 쌓고 한국시리즈에 임하면 불리하지 않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마침 PO 상대도 돌풍을 일으키며 올라온 태평양 돌핀스였고, 태평양은 이미 준PO에서 삼성과의 혈투 속에 그 해 19승을 거둔 박정현이 부상으로 이탈하는 등 투수진을 소모한 상황이었다. 해태는 가볍게 태평양을 3:0으로 스윕하며 올라갔지만, 그 속에서 타선이 생각보다 터지지 않는 것은 걱정거리였다. 반대로 빙그레는 껄끄러운 해태가 올라왔고, 경기 감각이 걱정되었지만 그래도 그 해 가장 강력했음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우려했던 경기 감각이 시리즈 내내 빙그레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2]
4. 엔트리[3]
4.1. 빙그레 이글스
빙그레 이글스 1989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 ||
<colbgcolor=#000000> 감독 | 1명 | 김영덕 |
코치 | 4명 | 강병철, 이희수, 이선희, 김종수 |
투수 | 8명 | 한용덕, 한희민, 이상군, 송진우, 김대중, 김홍명, 장정순, 김락기 |
포수 | 2명 | 김상국, 유승안 |
내야수 | 9명 | 강정길, 전대영, 장종훈, 황병일, 조양근, 김성갑, 강석천, 황대연, 이종호 |
외야수 | 6명 | 이정훈, 이강돈, 이중화, 고원부, 송일섭, 조용호 |
4.2. 해태 타이거즈
해태 타이거즈 1989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 ||
<colbgcolor=#000000> 감독 | 1명 | 김응용 |
코치 | 6명 | 김인식, 백기성, 정유복, 김봉연, 이상윤, 김준환 |
투수 | 8명 | 선동열, 김정수, 차동철, 신동수, 방수원, 문희수, 이강철, 조계현 |
포수 | 2명 | 장채근, 장호익 |
내야수 | 8명 | 김성한, 서정환, 한대화, 차영화, 조충열, 백인호, 박철우, 문승훈 |
외야수 | 7명 | 김종모, 이순철, 조재환, 김평호, 김성규, 이건열, 김태완 |
5. 결과
5.1. 1차전
한국시리즈 1차전, 10월 26일 목요일, 18:00 ~ 20:54 (2시간 54분),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 | ||||||||||||||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해태 | 선동열 | 0 | 0 | 0 | 0 | 0 | 0 | 0 | 0 | 0 | <colbgcolor=#dcdcdc,#222222> 0 | 6 | - | - |
빙그레 | 이상군 | 1 | 0 | 0 | 0 | 0 | 0 | 0 | 3 | - | 4 | 5 | - | - |
중계방송사: | 캐스터: 이세진 | 해설: 하일성 |
홈런: 이강돈(1회, 빙그레)
해태의 1차전 선발은 당연하지만 선동열이었고, 빙그레는 이에 맞서 팀의 에이스 이상군을 올렸다. 경기 시작과 함께 묘한 기운이 흘렀는데, 1회말 공격에서 이강돈이 선동열 상대로 백스크린을 넘기는 선두타자 홈런을 날린 것. 그 뒤로 빙그레는 선동열의 공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서 선동열 상대로 8개의 볼넷을 얻으면서 지독하게 괴롭혔다. 점수를 많이 뽑지 못하긴 했지만 자신들의 공격을 길게 가져가면서 이상군에게 여유를 준 것은 소득이었다. 이상군도 팀의 기대에 부응하며 해태 타선을 요리했다.
해태는 8회초 2사 만루의 찬스를 잡았지만, 백인호의 플라이로 물러났고, 위기를 넘긴 빙그레는 곧바로 8회말 공격에서 선동열 상대로 2사 1루, 2루의 찬스를 잡은 후, 김상국의 2타점 2루타와 한대화의 실책을 묶어 3점을 뽑으면서 시리즈의 기선을 확실하게 제압했다. 시리즈 전 해태가 유리할 것이라던 전문가들의 예상 및 빙그레의 우려는 선동열을 눌러버림으로써 기우로써 종식시켰던 것.
참고로 이 경기는 해태 타이거즈가 최초로 1차전에서 패배를 당한 경기이다.[4]
5.2. 2차전
한국시리즈 2차전, 10월 27일 금요일, 18:00,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 | ||||||||||||||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해태 | 조계현 | 1 | 1 | 3 | 0 | 1 | 0 | 0 | 0 | 0 | <colbgcolor=#dcdcdc,#222222> 6 | 10 | - | - |
빙그레 | 한용덕 | 4 | 0 | 0 | 0 | 0 | 0 | 0 | 0 | 0 | 4 | 10 | - | - |
'''중계방송사: [[MBC TV| |
해태의 선발은 조계현, 빙그레의 선발은 한용덕이었다. 해태가 1회초에 2사 2루에서 박철우의 내야 안타와 상대 송구 실수를 틈타 이순철이 홈을 파면서 먼저 선취점을 냈다. 그러나 빙그레는 조계현 상대로 1회말에 안타 4개와 볼넷 2개를 묶어 단숨에 4점을 내면서 승부를 뒤집었다. 해태도 정말 끈질겨서 2회 바뀐 투수 김대중 상대로 1점을 만회했고, 다시 3회초에는 빙그레의 3번째 투수 송진우 상대로 1사 만루의 찬스를 잡았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선 백인호의 타구는 유격수 앞 땅볼이 되면서 찬스가 날라가는가 싶었다.
그런데...
유격수 장종훈이 그만 알을 까고 만다.[6]
이 통한의 알까기로 동점을 허용했고, 이어지는 찬스에서 희생플라이가 나오며 간단히 역전했다. 그리고 5회초에 다시 유격수 황대연이 병살 타구를 받아 1루로 송구한 것이 뒤로 빠지면서 또 실점했다. 반대로 해태는 신동수가 역전 직후인 5회 1아웃까지를 소화하고, 그 뒤에 나온 이강철이 8회말 1사 2루, 3루의 찬스를 내주기는 했지만 무실점으로 틀어 막으면서 결국 경기는 해태의 승리로 끝났다. 이 날 빙그레가 저지른 3개의 실책은 모두 득점과 연결되고 말았다.
이날 빙그레가 기록한 3실책의 후폭풍은 엄청났다. 단순히 이날 경기에서 패한 것 뿐만 아니라, 1차전을 선점해서 분위기를 탄 빙그레의 팀 분위기를 한순간에 흐트러뜨림은 물론 해태와 빙그레 양팀의 분위기까지 바꾸고 말았다. 결국 그것이 이후 빙그레의 4연패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이 2차전이 1989년 한국시리즈 전체를 결정한 경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28년 후에도 반복된다. 그리고 빙그레 입장에선 더 뼈아팠던게, 이 패배를 시작으로 1992년 KS 2차전까지 한국시리즈 10연패(敗)의 시발점이 된다.
5.3. 3차전
한국시리즈 3차전, 10월 29일 일요일, 14:00, 무등 야구장 | ||||||||||||||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빙그레 | 한희민 | 0 | 0 | 0 | 0 | 0 | 0 | 0 | 0 | 0 | <colbgcolor=#dcdcdc,#222222> 0 | 5 | - | - |
해태 | 문희수 | 0 | 1 | 0 | 1 | 0 | 0 | 0 | 0 | - | 2 | 7 | - | - |
중계방송사: | 캐스터: 정도영 | 해설: 하일성 |
빙그레는 선발로 한희민을, 해태는 1988년의 영웅 문희수를 선발로 내세웠다. 기선은 빙그레가 잡을 뻔 했다. 1사 3루에서 고원부의 플라이 때, 이정훈이 홈을 파고 들다가 그만 김종모의 송구에 아웃되면서 선제점을 뽑을 기회를 놓쳤다. 반대로 해태는 2회말에 한대화의 적시타로 박철우가 득점했고, 4회말에는 김종모의 적시타로 다시 박철우가 득점하면서 점수를 내 먼저 2:0으로 앞서 갔다.
문희수의 투구에 7이닝 무실점으로 철저하게 눌리던 빙그레는 8회 선두 타자가 나갔지만, 치고 달리기 때 허무하게 주루사를 당하면서 찬스를 날렸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빙그레는 9회초 선동열 상대로 무사 2루, 3루의 절호의 찬스를 잡았지만 여기서 고원부가 삼진, 유승안이 땅볼, 강정길이 플라이로 물러나면서 동점 찬스를 허무하게 날리며 경기를 패하고 말았다.
5.4. 4차전
한국시리즈 4차전, 10월 30일 월요일, 18:00, 무등 야구장 | ||||||||||||||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빙그레 | 이상군 | 0 | 0 | 0 | 0 | 0 | 1 | 0 | 0 | 1 | <colbgcolor=#dcdcdc,#222222> 2 | 7 | - | - |
해태 | 김정수 | 0 | 0 | 2 | 1 | 0 | 2 | 0 | 1 | - | 6 | 10 | - | - |
'''중계방송사: [[MBC TV| |
홈런: 이순철(3회 2점), 한대화(4회 1점), 김성한(6회 2점, 8회 1점)(이상 해태), 장종훈(9회 1점)(빙그레)
빙그레는 1차전의 영웅 이상군을 선발로 내세웠고, 해태는 가을의 남자 김정수를 선발로 내세웠다. 빙그레는 이상군을 믿었지만 불행히도 이상군은 사흘 휴식 후에 제 컨디션은 아닌 상황이었다. 그리고 김응용 전 해태 감독은 이상군의 변화구를 노리기 위해 타자들에게 타석 앞으로 좀 더 나갈 것은 지시한 상황이었다. 3회말 공격에서 해태는 이순철 선제 2점 홈런으로 먼저 기선을 잡았고, 4회말에는 한대화의 솔로 홈런으로 점수를 벌렸다. 빙그레 입장에서는 1회 1사 2루에서 이중화가 3루 도루를 시도하다가 잡힌 것과 2회 2사 1루, 2루에서 조양근의 타구를 잡아낸 해태 김종모의 호수비가 뼈아팠다.
6회초 빙그레는 유승안의 안타로 1점 추격했지만, 해태는 곧바로 6회말 공격에서 김성한의 2점 홈런으로 달아났고, 8회말에는 김성한의 연타석 홈런으로 승부를 완전히 굳혔다. 빙그레가 9회초 공격에서 장종훈의 솔로 홈런으로 1점 추격했지만 경기는 이미 뒤집을 수 없었다.
5.5. 5차전
한국시리즈 5차전, 11월 1일 수요일, 18:00,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해태 | 신동수 | 2 | 0 | 2 | 1 | 0 | 0 | 0 | 0 | 0 | <colbgcolor=#dcdcdc,#222222> 5 | 9 | - | - |
빙그레 | 한희민 | 0 | 1 | 0 | 0 | 0 | 0 | 0 | 0 | 0 | 1 | 5 | - | - |
중계방송사: | 캐스터: 이세진 | 해설: 하일성 |
승리: 선동열, 패배: 한희민
홈런: 전대영(2회 1점)(빙그레)
해태는 선발로 신동수를, 빙그레는 선발로 한희민을 내세웠다. 그러나 시리즈 도중 부상을 입은 한희민은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고, 해태는 그런 한희민을 가볍게 두들겼다. 1회초 공격에서 1사 만루의 찬스를 잡아 한대화의 희생플라이와 백인호의 2루타로 가볍게 2점을 냈다. 2회말 공격에서 빙그레가 전대영의 홈런으로 추격하자, 곧바로 3회초 공격에서 박철우의 2루타와 백인호의 스퀴즈로 다시 2점을 더 냈다. 그리고 4회초에는 빙그레의 실책으로 다시 1점 추가했다.
4회말 빙그레는 신동수를 상대로 무사 1루, 2루의 찬스를 잡았다. 그러나 이 때 등장한 것은 해태의 절망의 벽 선동열. 이미 3차전에서 무사 2루, 3루의 위기도 넘긴 선동열에게 무사 1루, 2루는 위기도 아니었다. 선동열은 4회 무사 1루, 2루에 등장해 9회까지 던지면서 삼진 10개를 잡으며 빙그레 타선을 침묵시켰다. 빙그레가 7회 무사 1루, 2루와 9회 1사 1루, 2루의 최후의 찬스를 잡았지만 결국 무득점으로 경기가 끝났고, 해태는 사상 초유의 한국시리즈 4연패라는 대기록을 달성한다.
6. 여담
- 2017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패하기 전까지 타이거즈가 1차전에서 패한 유일한 시리즈였다.[8] 그리고 그 시리즈에서 1패 후 4연승을 그대로 재현해낸다.
- 5차전 9회말 선동열에게 삼진을 당하며 시리즈의 마지막 타자가 된 황대연의 아들 황인준은 아이러니하게도 해태의 후신 KIA 타이거즈에 지명되었다.
- 정규리그 2위가 1위팀을 꺾고 뒤집기 우승을 기록해낸 최초의 한국시리즈이다.[9] 이후 기록된 뒤집기 우승은 1992년 롯데, 2001년 두산, 2015년 두산 등 3위팀의 몫이었다가 2018년 한국시리즈 때 SK 와이번스가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29년 만에 리그 2위팀에 의한 뒤집기 우승에 성공했다.
- 이 때 해태가 달성한 한국시리즈 4연패라는 기록은 유일무이한 기록으로 남아있다가 훗날 삼성이 2011년~2014년까지 연속 우승하면서 타이 기록을 세우게 된다.[10]
- 5차전 문단에 포함된 영상은 전설의 타이거즈 채널에서 제작한 영상이다.
- 해태는 빙그레와의 한국시리즈 3회 모두 검빨 유니폼을 입은 채로 삼진으로 우승을 확정지었다.
- 1차전 패배팀이 최종적으로 시리즈를 우승한 최초의 한국시리즈이다.
- 타이거즈가 우승한 날짜들 중에 유일하게 11월인 한국시리즈이다.
7. 관련 문서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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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관련 문서 |
[1]
1980년대 KBS 프로야구 중계의 1선발 격이었다. 1990년대 들어서는 경기장보다는 스튜디오에서 중계 프로를 진행하는 경우가 잦아졌고,
2000 시드니 올림픽까지 KBS 중계진에 합류했다.(단,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표영준 캐스터가 야구 중계를 담당했고, 이세진 캐스터는 유도 중계를 맡았다.)
[2]
공교롭게도 2년 전 KS에 먼저 직행한
삼성 라이온즈도 똑같은 상황을 겪었다. 결국 삼성 역시 한국시리즈 최초의 스윕패와 유일한 전패준을 기록하고 만다.
[3]
볼드체는 당시 주장이었던 선수.
[4]
이후 해태-KIA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1차전 패배는
2017년 한국시리즈가 유일하다.
[타사중계2]
KBS 제2라디오 캐스터 유수호 - 해설 ???.
[6]
이날 경기에서 장종훈의 실책을 보고
해설진이 한 말이 유격수 땅볼 병살 코스. 아, 놓쳤습니다! 알을 깠습니다. 3루 주자 홈인! 2루 주자 홈인! 4대4 동점! 그리고 주자 3루! 1루! 유격수의 더블 플레이 코스에서 결정격인 실책입니다. 참고로 대한민국 프로야구 레전드 10인 장종훈 편에 나와 있다.
[타사중계4]
KBS 제2라디오 캐스터 유수호 - 해설 하일성.
[8]
차이점이 있다면, 2017년 한국시리즈는
홈구장에서 1차전 첫 패배였고, 1989년 시리즈 1차전은 대전 원정이었다는 것이다.
[9]
놀라운 것은, 이 해 한국시리즈가 단일시즌 체제에서 치러진 첫 한국시리즈였다는 것이다.
[10]
해태와는 차이가 있는데 삼성은 정규시즌-한국시리즈 4연속 통합 우승 기록이다. 해태의 한국시리즈 4연패 기간 중 통합 우승의 기준에 부합하는 해는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모두 석권하고 시즌 통합 승률까지 1위를 차지한 1988년 뿐이다. 1986년, 1987년, 1989년의 해태는 모두 전체 시즌 통합 승률 기준 순위에서 2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