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pad>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colbgcolor=#330066><colcolor=#fff>문서 | 한성정부 · 대한국민의회 · 연통제 · 교통국 · 삼균주의 · 독립신문 · 수립 기념일 · 한인애국단 · 한국독립당 · 법통 논란 · 대일선전성명서 |
군사기구 | 광복군사령부 · 육군주만참의부 · 한국광복군 | |
사건 | 국제공산당 자금사건 · 김립 피살 사건 · 위임통치 청원 사건 · 국민대표회의 · 사쿠라다몬 의거 · 훙커우 공원 의거 · 단파방송 밀청사건 | |
인물 | 김구 · 안창호 · 지청천 · 김원봉 · 박은식 · 김규식 · 이승만 · 송병조 · 윤기섭 · 이시영 · 유동열 · 신익희 · 이상룡 · 양기탁 · 이동녕 · 이동휘 · 홍진 · 조소앙 · 여운형 · 오영선 · 최동오 · 이봉창 · 윤봉길 · 문일민 · 김철 | |
청사 | 상하이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 항저우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 전장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 창사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 충칭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 경교장 | |
틀 | 역대 수반 · 지역별 임시의정원 구성 | }}}}}}}}} |
<colcolor=#fff> | |
|
|
위치 | 저장 성 항저우시 상청구 장생로 55호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국 저장 성 항저우시에 두었던 정부청사이다.2. 상세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로 임시정부는 일제의 추적으로 상하이 조계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었다. 그래서 급하게 항저우로 이동하여 자리를 잡게 되었다. 임시정부는 김철의 활동으로 청태 제2여사[1]에서 판공처를 개설하여 활동하였다. 곧이어 중국국민당의 도움으로 서호 부근 장생로 호변촌 23호로 청사를 이전하였다. 이후에도 임시정부는 항저우 내에서 한 차례 더 청사를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현재 항저우에 남아있는 대표적인 임시정부 청사는 1933년부터 1934년까지 사용한 건물이며 일명 호변촌청사라고도 불린다. 항저우임시정부청사는 중국 정부의 도움으로 복원이 되었다. 2002년 중국 중앙 정부의 승인을 받아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복원 공사를 마치고 2007년 11월에 개관하였다. 지금은 항저우 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