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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12-14 20:21:56

한국원자력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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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원자력연구원
Korea Atomic Energy Research Institute
파일:한국원자력연구원 CI.svg
설립일 1959년 2월 3일
원장 주한규[1][2]
소재지 대한민국 대전광역시 유성구 대덕대로989번길 111
직원 수 1587명
예산 5,343억 원,(2019),
링크 홈페이지
1. 개요2. 연혁3. 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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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원자력의 연구개발을 종합적으로 수행하여 학술의 진보, 에너지 확보 및 원자력의 이용 촉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영어로 KAERI (Korea Atomic Energy Research Institute)[3]. 대전광역시 유성구 대덕연구개발특구에 본원이 위치해 있으며 정읍[4]과 경주[5]에 분원이 위치하고 있다. 현재 한국 안보와 여러 기술 등의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서 국가중요시설 '가' 등급으로 지정되어져 있다.[6]
1959년 원자력 기술을 통한 에너지 자립을 목표로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기술 연구기관이다. 오타가 아니라 진짜로 1959년이다. KIST보다도 6년이나 더 앞서서 설립되었고 심지어 이승만이 있던 제1공화국 시절이다.[7]

사실 여기에 대해서는 약간의 보충지식이 필요한데, 2020년 현재의 통념과 다르게 한국은 1950년대 전쟁까지 겪은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에도 의외로 원자력에 대한 호감 내지 열망이(식자층 기준으로) 굉장히 높았다. 당장 10여 년 전 일본이 핵을 얻어맞고 패망하는 것을 두 눈으로 본 데다가, 전쟁 직후 남북이 극한대치하는 상황까지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2차대전 이후 본격화된 일본의 핵물리학 연구와 유카와 히데키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 등에도 자극을 받은 면도 있다.

그러나 핵무기 자체는 미군이 1953년 전쟁 직후부터 한반도에 들여와 이미 배치하고 있었기에, 국가 자체적으로 핵무장론이 대두되고(물론 이는 미국이 펄쩍 뛰는 소리였다) 나아가 원자력 운용에 대한 과학력 그 자체를 보유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던 것이다. 이는 1954년 동아일보에 한국도 원자력연구기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기고가 실린 것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8][9]

국내 유일의 다목적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를 직접 설계 및 운영하고 있다.[10]

대전 지역에 비행금지구역이 있는 이유는 계룡대가 아니라 여기 때문이다. 기사

2. 연혁

3. 사건사고



[1]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 [2] 윤석열 대통령 대선캠프 정책총괄본부 원자력정책분과위원장 역임 [3] 캐리 또는 카애리 라고 부른다. [4] 전라북도 정읍시 금구길 29 [5]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미래로 181 (화천리) [6] 이 '가' 등급은 대한민국 3부요인을 구성하는 중심 관청인 국회의사당, 대통령실, 대법원과 같은 등급이다. [7] 물론 오래 묵은 것으로만 치자면 1948년 출범한 건설기술연구소(당시 명칭)도 있긴 한데 이는 사실 내무부 산하 토목시험소로 출범한거라... [8] 이는 북한도 마찬가지여서 이 시기부터 이미 핵무기 연구에 국가역량을 투입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김일성대학 66학번은 저주받은 학번이라고 불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 한국과 북한의 결정적인 차이는 핵을 무기로 쓰는 연구를 했는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까지 범용적 목적의 연구를 했는가이다. [9] 이 해에는 원자력 관련 두 가지 사건이 있었는데, 하나는 물리학자 페르미의 사망이고 두 번째는 이웃나라 일본에서 나카소네 의원이 예산항목에 핵 관련 비목을 편성해버린 사건이다. 한국 정부에게는 이것이 실질적 위협으로 다가왔음을 알 수 있다. [10] 방사성의약품, 반도체, 기초과학 연구 등에 활용됨 [11] 1995.01.09까지 가동중단 [12] KAIST에서 기계공학으로 석,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인원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