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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7 02:20:58

케빈 랜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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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aa9872,#8c7a55> 초대 2대 3대1 4대2 5대
마크 콜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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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2월 7일~ 1997년 7월 27일)
모리스 스미스
(1차 방어)
파일:미국 국기.svg
( 1997년 7월 27일~ 1997년 12월 21일)
랜디 커투어
파일:미국 국기.svg
( 1997년 12월 21일~ 1998년 1월)
바스 루텐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 1999년 5월 7일~ 1999년 6월)
케빈 랜들맨
(1차 방어)
파일:미국 국기.svg
( 1999년 11월 19일~ 2000년 11월 17일)
<rowcolor=#aa9872,#8c7a55> 6대 7대3 8대 9대4 10대5
랜디 커투어(2)
(2차 방어)
파일:미국 국기.svg
( 2000년 11월 17일~ 2002년 3월 22일)
조쉬 바넷
(1차 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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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3월 22일~ 2002년 7월 26일)
리코 로드리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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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9월 27일~ 2003년 2월 28일)
팀 실비아
(1차 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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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2월 28일~ 2003년 10월 15일)
프랭크 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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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6월 19일~ 2005년 8월 12일)
<rowcolor=#aa9872,#8c7a55> 11대5 12대 13대 14대 15대
안드레이 알롭스키
(1차 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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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8월 12일~ 2006년 4월 15일)
팀 실비아(2)
(2차 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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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4월 15일~ 2007년 3월 3일)
랜디 커투어(3)
(1차 방어)
파일:미국 국기.svg
( 2007년 3월 3일~ 2008년 11월 15일)
브록 레스너
(2차 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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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11월 15일~ 2010년 10월 23일)
케인 벨라스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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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0월 23일~ 2011년 11월 12일)
<rowcolor=#aa9872,#8c7a55> 16대 17대 18대 19대 20대
주니어 도스 산토스
(1차 방어)
파일:브라질 국기.svg
( 2011년 11월 12일~ 2012년 12월 29일)
케인 벨라스케즈(2)
(2차 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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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2월 29일~ 2015년 6월 13일)
파브리시오 베우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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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6월 13일~ 2016년 5월 14일)
스티페 미오치치
(3차 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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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5월 14일~ 2018년 7월 8일)
다니엘 코미어
(1차 방어)
파일:미국 국기.svg
( 2018년 7월 8일~ 2019년 8월 17일)
<rowcolor=#aa9872,#8c7a55> 21대 22대6 23대 24대 25대
스티페 미오치치(2)
(1차 방어)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크로아티아 국기.svg
( 2019년 8월 17일~ 2021년 3월 27일)
프란시스 은가누
(1차 방어)
파일:카메룬 국기.svg 파일:프랑스 국기.svg
( 2021년 3월 27일~ 2023년 1월 14일)
존 존스
(1차 방어)
파일:미국 국기.svg
( 2023년 3월 4일~)
<colbgcolor=#000><colcolor=#fff> 1 랜디 커투어는 1998년 1월 계약 분쟁으로 UFC를 이탈하면서 타이틀을 반납하였다.
2 바스 루텐은 라이트헤비급으로 체급을 낮추기 위해 타이틀을 반납하였다.
3 조쉬 바넷은 약물 양성 반응으로 2002년 7월 26일 UFC에서 퇴출되어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4 팀 실비아는 약물 양성 반응으로 2003년 10월 15일 UFC에서 퇴출되어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5 프랭크 미어는 2005년 8월 12일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인해 심각한 부상을 입어 타이틀을 반납하였고 당시 잠정 챔피언이었던 안드레이 알롭스키가 승계를 받아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6 프란시스 은가누는 2023년 1월 UFC와의 계약 분쟁으로 인하여 재계약이 성립되지 않아 타이틀을 반납하였다. }}}}}}}}}


<colbgcolor=#000000> 이름 <colbgcolor=#ffffff,#191919>케빈 크리스토퍼 랜들맨
(Kevin Christopher Randleman)
생년월일 1971년 8월 10일
오하이오 주 샌더스키
사망 2016년 2월 11일 (향년 44세)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종합격투기 전적 32전 17승 16패
9KO, 8판정
4KO, 8SUB, 4판정
체격 177cm / 93kg [1] / 178cm
링네임 The Monster[2]
주요 타이틀 1991 NCAA Dividion l All-American
1992 NCAA Dividion l All-American
1993 NCAA Dividion l All-American
UFC 5대 헤비급 챔피언
기타 UFC 헤비급 챔피언 1차 방어
2020 UFC 명예의 전당 헌액

1. 개요2. 전적3. 커리어
3.1. 커리어 초창기3.2. UFC3.3. Pride3.4. 포도상구균 감염3.5. 복귀
4. 파이팅 스타일5. 기타
5.1. 사망

[clearfix]

1. 개요

종합격투기선수.

2. 전적

3. 커리어

3.1. 커리어 초창기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나 빈민가에서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낸 랜들맨은 레슬링을 통해 자신의 길을 찾는다.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NCAA 우승을 두번이나 하며 뛰어난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로 활약하던 랜들맨은 자신의 우상이었던 마크 콜먼의 해머하우스에 입문하면서 종합격투기 생활을 시작한다.

1996년 10월 UVF에서 데뷔, 착실히 커리어를 쌓은 3년후 1999년 3월 UFC 19를 통해 메이저 무대에 입성한다.

3.2. UFC

1999년 5월 UFC 20에서 4대 헤비급 챔피언인 바스 루텐과 타이틀매치를 갖지만 시종 유리한 경기를 펼치고도 판정으로 패하고 만다. 분명히 랜들맨이 우세한 경기였는데 석연치 않은 판정이 나와서 많은 논란이 되었다.

같은 해 11월에 공석이 된 왕좌를 놓고 피트 윌리엄스와 격돌해 승리, UFC 헤비급 5대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후 2000년 6월 페드로 히조에게 승리하여 1차 방어에도 성공한다.

파일:attachment/케빈 랜들맨/b2.jpg

2000년 11월 UFC 28에서 ' 캡틴 아메리카' 랜디 커투어를 맞아 2차 방어전을 치렀다. 랜들맨은 특유의 폭발력과 파워를 앞세워 1, 2라운드 내내 커투어를 깔아뭉갠 채 압박했으나 3라운드 단 한번의 테이크다운에서 풀 마운트를 내주며 파운딩에 TKO패를 당했다. 2001년 5월에는 라이트헤비급으로 체급을 전향하여 ' 아이스맨' 척 리델과 경기를 가졌으나 1라운드 1분 18초만에 리델 특유의 레프트 훅에 침몰하며 TKO로 패했다.

2002년 1월 헤나토 소브랄에게 판정승을 거두며 부활, 이후 RFC를 거쳐 콜먼을 따라 일본 Pride로 무대를 옮긴다.

3.3. Pride

PRIDE 진출 후 일본인 파이터를 상대로 2연승을 거둔 후 2002년 12월 슈트박세의 강자인 무릴로 닌자와 격돌한다. 레슬러인 랜들맨이 타격을 주도하고 스트라이커인 닌자가 그라운드에서 우세를 점하는 약간 이상한 상황에서 3라운드 20초만에 펀치로 커트를 만들며 TKO 승을 거두었다. 해머하우스와 슈트박세 사이의 지긋지긋한 악연의 시작이다.

그러나 2003년 3월 PRIDE 25에서 '램페이지' 퀸튼 잭슨에게 펀치로 TKO패, 2003년 11월에는 사쿠라바 카즈시에게 암바로 패하면서 기세가 한풀 꺾이게 된다.

2004년 4월 헤비급 그랑프리 개막전에서는 K-1에서 프라이드로 이적 후 한창 물이 올라있던 미르코 크로캅이랑 시합을 치렀는데 랜들맨이 패배할 거라는 대부분의 예상을 뒤엎고 1라운드 1분 57초만에 크로캅의 턱에 레프트 훅을 적중시킨 다음 파운딩을 먹여 호쾌한 KO승을 거두었다. 이 경기에 대비해 척 리델이랑 함께 트레이닝을 하며 카운터에 대한 타이밍을 익혔고 이 작전이 적중하여 왼발 하이킥의 빈틈을 정확히 찔러 크로캅을 일격에 무너뜨렸다.

파일:/pds/201011/08/57/e0066657_4cd75a30dd06a.gif

2004년 6월에는 '더 라스트 엠페러' 에밀리아넨코 효도르와 격돌한다. 초반부터 격렬한 태클로 상위 포지션을 빼앗았고 효도르가 몸을 비틀며 일어서자 등을 잡은 그대로 프로레슬링에나 나올 법한 고각도 저먼 수플렉스를 시전했다. 머리부터 떨어지는 완벽한 수플렉스였던데다 해설자들이 승패는 둘째치고 효도르의 의식을 걱정할 정도였다. 하지만 효도르는 아무런 데미지도 입지 않았다는 듯 그라운드 방어에 들어갔고 순간적인 스윕 후 기무라로 경기를 끝냈다.

파일:/pds/201008/18/57/e0066657_4c6ba84b3398b.gif

MMA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슬램'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별 효과는 없었는데 사실 잘 보면 메쳐지는 순간 효도르가 오른팔을 펼쳐 낙법을 치면서 양어깨로 받아내 충격을 완화시키는걸 볼 수 있다. 이것은 프로레슬러들이 이와 비슷한 고각도 백드롭이나 저먼 수플렉스를 맞을 때 쓰는 낙법과 유사하다. 이는 아마 효도르의 삼보 경험과 순간적인 기지가 빛을 발했다고 볼 수 있다. 또 PRIDE의 링 바닥이 UFC 케이지 바닥보다 훨씬 부드러운 영향도 있다. 케이지였다면 낙법을 했어도 저렇게 바로 움직이긴 어려웠을 것.

사실 느린 속도로 자세히보면 이 수플렉스가 랜들맨에게도 오히려 경기흐름에 악영향이었음을 볼 수 있다. 효도르를 넘기면서 효도르의 몸에 자신의 무게중심을 실어 접수해야하는데 옆으로 잘못 착지하여 링바닥에 머리를 박아 머리로 모든충격(효도르의 무게 + 랜들맨의 무게)을 받고야 만다. 슬램 시전후 바로 공격하지 않고 주춤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결국 이 랜들맨의 실수는 효도르의 침착한 낙법 이후 일어나는 일에 대응이 힘들게 되었고 효도르는 신속하게 포지션 스윕을 성공시켜 기무라락에 의해 패배했다. 랜들맨의 실수도 실수지만 저 고각도 슬램을 맞은 이후로 어떠한 망설임 없이 최적의 대응법을 찾아낸 효도르도 대단한 것이다.

효도르와의 경기는 명승부였으나 저주라도 붙었는지 이후의 경기에서 3연패의 부진에 빠진다. 2005년 10월 무사도[4]에서 1승[5]을 따내며 부활하는가 싶었지만 2006년 10년 슈트박세의 마우리시오 쇼군에게 니바로 패배.

3.4. 포도상구균 감염

부진에 빠져있던 2007년, 랜들맨은 자신의 인생을 바꾼 악재에 부딪힌다. 바로 포도상구균 감염이었다. 신체의 면역력이 저하되어 살이 썩어들어가는 끔찍한 증상을 유발하는 질병에 맞서는 2년간의 기나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옆구리와 겨드랑이에 2개의 커다란 구멍을 뚫은 다음 흡입장치에 연결해 독소와 를 뽑아내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몸이 부어올라 93kg이었던 체중이 110kg까지 올라가더니 나중에는 야위면서 85kg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한때는 정말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얼마 안 있어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될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고 한다.

당시 인터뷰에서 이런 상황에서도 댄 핸더슨과 쇼군의 소식을 듣고는 "병만 아니면 내가 티토 오티즈와 싸우고 싶다" 말했다고 한다.

다만 투병생활을 계기로 약물복용( 도핑)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실은 포도상구균은 정상적인 면역체계에서는 발병하는 일이 극히 드문 병이고 면역저하는 스테로이드 복용의 전형적인 후유증으로 알려져 있다. 타이론 우들리저리가라할 정도의 근육량을 보면 의심이 안가기도 힘들다.참고로 프라이드 시절 신체스펙인 키 178cm, 체중 93kg에 추정 눈바디 7%를 넣어서 ffmi를 계산하면 27 정도가 나온다. 미국 등에서 적극적으로 주도한, 철저하면서도 고액의 질높은 도핑 검사 170번을 통과한 카렐린이나 20세기 초반, 스테로이드 이전 시절에조차 ffmi 28을 넘긴 사례가 종종 있지만, 이를 예외로 치고 봤을때 일반적으로 내추럴로 다다를 수 있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

3.5. 복귀

결국 기나긴 병마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고 2008년 5월 센고쿠의 무대를 통해 다시금 MMA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전성기의 기량은 아니었지만 카와무라 료를 상대로 판정승 거두었다.

2009년 6월 스트라이크 포스에 진출하였으나 중진급 선수인 마이크 화이트헤드에게 판정패, 2009년 11월에는 센고쿠에서 스타니슬라프 네드코프에게 다시 판정으로 패배했다.[6] 2010년 5월에는 스트라이크포스에서 호저 그레이시를 맞아 타격에서 밀린 끝에 2라운드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패배.

1971년생으로 40을 훌쩍 넘긴 나이인 만큼 전성기의 기량을 찾긴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한때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노장 파이터가 질병과 세월을 이기고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낭만적인 일이었다.

4. 파이팅 스타일

엘리트 레슬러 출신이다. 고교 시절 이미 오하이오 주 챔피언에 올랐고 오하이오 주립대에 진학해서도 NCAA 디비전 1에서 2회 우승, 3차례 올 아메리칸에 선정되는 등 레슬링 커리어가 출중하다.

MMA에서는 해머하우스의 전형적인 레슬러 타입으로 마크 콜먼의 그라운드&파운딩에 특화된 선수이다. 흑인 특유의 힘과 탄력을 구사하며 수많은 명장면을 만들어내었다. '몬스터'라는 링네임은 그 믿을 수 없는 파워에서 비롯된 것이다. 태클과 테이크다운 능력을 비롯한 레슬링 실력은 최정상급. 엄청난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전성기 기준으로 어지간한 선수들은 엄청난 핸드스피드에 기반을 둔 타격으로 제압할 수 있었고, 백스테이지에서 점프를 하다 천장에 머리를 박고 기절했을 정도로 용수철 같은 탄력성을 자랑한다. 크로캅을 펀치로 KO시킨 장면, 효도르에게 구사한 저먼 수플렉스 등은 이런 신체능력에서 나왔던 명장면.

단점은 전체적으로 테크닉적인 정교함이 상당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타격의 파괴력은 나쁜 편이 아니지만, 사실 근본없이 순수 신체능력으로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타격이여서 패턴이 단조로워서 제대로 된 타격가들 상대로는 타격전에서 대부분 밀렸었다. 워낙 빠르기 때문에 카운터 펀치를 먹은 적은 없지만, 상대가 침착하게 가드를 올리고 대처를 하면 제풀에 꺽여버리기 일쑤였다.

또, 그라운드에서의 경기를 즐기지만 막상 서브미션 방어가 상당히 취약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크로캅 2차전, 효도르전, 쇼군전에서 허무하게 패배했던 이유. 특히 효도르전에서는 실수로 본인에게도 대미지가 크긴 했지만 그 각도의 슬램을 먹였음에도 효도르의 포지션 스윕 이후 기무라를 제대로 막지 못해서 효도르의 연승을 끊을 천금같은 기회를 놓쳤다. 게다가 경기 스타일이 전적으로 피지컬에 의존한 스타일이다 보니 나이를 먹고 피지컬 능력이 저하되면서 경기력도 크게 하락 하였다. 실제로 UFC에서 30세가 되기 전에 가졌던 경기를 보면 당대 최강의 타격가중 한명인 페드로 히조의 무시무시한 타격(탱크 애벗도 골로 보냈던)을 레슬링 개비기 하나로 막아내고 판정승을 거두었고 랜디 커추어와의 경기에서도 1, 2라운드에서 힘과 스피드에서 커투어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들급의 체격에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증량을 해서 UFC 헤비급 챔피언까지 지냈는데, 엄청난 신체능력과 포도상구균 감염, 도핑 테스트 이슈 등으로 인해 약물 증량의 의혹을 강하게 받던 파이터이다. 실제로 대학 레슬링 당시에는 체급이 78kg 급에 불과했다. 캐빈 랜들맨의 신장이나 골격을 고려해봤을때, 랜들맨이 헤비급에서 활동했던 것 자체가 MMA 초기 시절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MMA 1세대에 속하는 G&P 이후로 이렇다 할 발전이 없었기에 웰라운드로 진화해가는 종합격투기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저물어 버렸다. 물론 랜들맨도 변화를 시도했지만 MMA의 발전속도가 더 빨랐다고 해야겠다.

5. 기타

오하이오 주립대 시절 뛰어난 레슬링 커리어를 쌓아가나 정작 기량이 절정에 다다른 4학년때에는 학업 성적 미달로 대회에 출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콜먼의 권유로 MMA에 뛰어든다.

해머하우스의 수장인 마크 콜먼의 수제자로 콜먼을 우상처럼 따른다.

UFC에서 헤비급 챔피언을 지냈지만 인기는 PRIDE에서 더 높았다. 입담이 좋고 쇼맨쉽도 뛰어나기 때문에 관중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끌어낼 줄 알았다. 크로캅을 KO로 잡은 뒤의 인터뷰에서 그의 열정적인 마이크 웍을 들을 수 있다.

점프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데 사쿠라바와의 대전을 앞두고 대기실에서 점프를 하다가 천장에 머리를 들이받고 기절했다. 사쿠라바의 반응은 "바보 아냐?" 링 위에서도 경쾌하게 통통 튀어다니는 모습 때문에 일본에서는 '동키콩'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은근히 동안. 1996년에 데뷔한 이후로 2010년까지 얼굴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안이라기보다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얼굴이다.

마동석이 트레이너로 함께 했었다.

PRIDE 32에게 부상이 남아있는 상태로 마우리시오 쇼군과 싸워 패하자 "부상과 관계없이 쇼군은 강했다"며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대인배. 그러면서도 "쇼군은 퀸튼 잭슨이나 포레스트 그리핀에게는 미치지 못한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UFC 76에서 그리핀이 쇼군에게 서브미션 승을 거두면서 현실이 되었다. 여담이지만 이 경기 후 스테로이드 검사에서 인간의 것이 아닌 소변을 제출했다가 무기한 출장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젊었을 때는 아마추어 레슬링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사고도 많이 치고 다닌 모양이다. 스스로 "예전에는 미친 짓거리를 하며 살았다"고 고백했다. 대학 시절 바에서 17대 1로 맞짱을 떠서 2분만에 정리했다는 얘기가 있다. 콜먼이 이 소식을 듣고 바로 스카웃에 나섰다고 한다.

파일:/pds/201008/18/57/e0066657_4c6ba4516328f.jpg

세르게이 하리토노프 vs 세미 슐트의 경기에서 세르게이를 보면서 한 말이다. 이 경기는 프라이드 사상 가장 잔혹한 경기 중 하나.

마리오 카트 시리즈의 열렬한 팬으로 심지어 경기 직전에도 대기실에서 조이패드만 붙잡고 있었다고 한다. 엄청난 근육량 때문에 그의 웨이트 트레이닝 무게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정작 본인은 무거운 무게 대신에 저중량 고반복 훈련을 한다고 한다. 이유는 고중량 훈련은 심폐 지구력 향상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참고로 훈련시에 벤치 프레스 한세트 기준 125kg x 30회 정도 한다고 한다.(물론 벤치프레스 125kg는 일반인 기준으로는 고중량이다.)

무지막지한 외모에 안어울리게 목소리가 꽤나 고음에 가는 톤이다.

5.1. 사망

안타깝게도 2016년 2월 11일 폐렴에 의한 심부전으로 사망하였다. 향년 44세. 미국 폭스 스포츠는 11일 "케빈 랜들맨이 폐렴 증세로 병원에 입원 했다가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한국 팬들 중에는 '페이스 북에서 효도르가 RIP Kevin이라고 써놓은 것을 보고 설마 설마 했는데...'라는 반응을 보인 팬들이 다수였다. 상술했다시피 마동석은 웨이트 트레이너로 있었던 만큼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추모 트윗을 남기기도 했다. #



[1] 평소체중은 100kg 근처이다 (크로캅1차전 당시 103kg) [2] 일본에서는 " 동키콩"이라고 부른다. [3] 서브미션 패배 [4] 유럽에서 연 대회로, PRIDE의 그 무사도 대회와는 관련이 없다. 물론 PRIDE와도 관련이 없다. [5] 다만 경기가 지독하게 지루했기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적잖이 까였다. [6] 다만 이 경기는 판정 논란이 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