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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15:00:29

집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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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51426> 대(隊)급 편제
편제 분대 소대 중대 지역대 대대 연대
지휘관 분대장 반장 소대장 중대장 지역대장 대장 대대장 연대장
부지휘관 부분대장 부소대장 부중대장 부대대장 부연대장
단(團)급 편제 군(軍)급 편제
편제 여단 사단 군단 작전사령부 야전군 집단군 군관구
지휘관 단장 여단장 사단장 군단장 작전사령관 야전군사령관 집단군사령관 군관구사령관
부지휘관 부단장 부여단장 부사단장 부군단장 부사령관
포병의 편제 지휘소
편제 포반 전포대 포대 포병단 사령부
지휘관 포반장 전포대장 포대장 단장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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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서양 조약 기구의 공용 군사 지도 표기 규약인
APP-6A에 따른 아군 보병 집단군 표기

1. 개요2. 특징3. 상세4. 운용 사례

[clearfix]

1. 개요

집단군( / Army Group)

몇 개의 야전군을 휘하에 두고 있는 군사조직. 보통 지리적으로 특정한 전쟁 지역을 책임지며, 원수 또는 대장을 지휘관으로 둔다. 일반적으로 40만~150만 명으로 이루어져 있는 가장 큰 규모의 야전 조직이다.

2. 특징

작은 나라의 인구 전체와 맞먹는 대규모를 자랑하다 보니 20세기까지 집단군이 실제로 편성된 사례는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그 중에서도 중국 국민혁명군 일본군, 독소전쟁 시기의 소련군 독일 국방군, 서부전선 미군 영국군이 전부이다. 현대에는 미군, 러시아군, 중국 인민해방군, 인도군 정도만이 집단군 운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대전의 추세가 육해공이 긴밀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합동군을 기반으로 하는지라 육군만 대규모로 한데 모으는 집단군을 편제할 필요성은 떨어진다.

한국 육군의 경우 2개 야전군을 항시 편성하고 있고 전시에는 예비군이 대거 동원되니 이론상 1개 집단군을 편성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한반도는 전선이 그렇게 넓지 않고 육본과 야전군 사이에 보고체계가 하나 더 생길 경우 명령하달이 지연될 수 있어 여러모로 효율적이지 않다. 게다가 집단군사령부를 구성한다면 사령관과 참모부, 그리고 이를 위한 행정조직과 각종 지원 부서를 추가적으로 편제해야 되는데 집단군사령관에 대장이나 원수급 지휘관이 보직된다면 참모장급도 중~대장급을, 그리고 이를 보좌할 수많은 참모들도 적어도 소~중장급을 편성해야 되니 수많은 장성들과 이를 지원할 인력과 자원의 낭비가 심해지게 된다. 거기에 더해, 전방에서 방어 및 북진을 맡는 지상작전사령부와 후방에서 대간첩작전 등을 맡는 제2작전사령부는 그 역할상 통합 운용할 필요성이 없다.

중국 인민해방군 육군도 집단군이라는 편제를 운용하고 있으나, 병력 6~8만명 정도에 휘하에 12개 여단을 두는, 사실상 타 군의 군단에 대응되는 편제이다.

3. 상세

집단군의 기원 중 하나로 미국 남북 전쟁 당시 애틀랜타 전역에서 연방군의 윌리엄 테쿰세 셔먼이 이끈 편제가 꼽힌다. 당시 셔먼은 3개 야전군[1]을 거느리고 애틀랜타로 남하하였으며, 후방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해 오하이오군과 컴벌랜드군의 일부를 돌려보낸 뒤에도 컴벌랜드군의 잔여 병력으로 조지아군을 창설하여 2개 야전군을 이끌고 바다로의 행진과 캐롤라이나 전역을 치렀다. 단, 셔먼의 편제는 정식으로 집단군 명칭을 사용하지는 않았으며 병력 규모 자체도 양차대전보다는 훨씬 작은 10만명 내외에 머물렀다.[2]

소련군에서 집단군은 전선군(фронт: 프론뜨)이라고 하였다. 무려 16개 전선군을 전개하고 있었으며 유럽 방면에는 12개의 전선군, 아시아 방면에 4개의 전선군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는 지상군만 추린 결과이고, 방공전선군, 방공구, 항공전선군까지 합치면 무려 55개다. 그 후 소련군은 1950~60년대의 군제개혁으로 군단을 거의 폐지하다시피 하고 군을 서방의 군단급 부대로 삼았기 때문에[3] 전선군급의 부대는 군관구(Military District)로 환원되거나 군집단(Group of Forces)이 되었다고 보면 된다.

독일 국방군 바르바로사 작전 북부, 중부, 남부 집단군을 운용했다. 이후 전세가 악화되자 남부집단군을 A집단군과 B집단군으로 이분했고,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중부집단군이 붕괴하자 비스툴라 집단군으로 재편했다. 북부집단군은 바그라티온 작전 직후 소련 발트 공세로 나머지 독일군과 연결이 끊겨 라트비아 서부의 쿠를란트 반도에 고립되었다. 1945년 1월 25일 기존의 북부집단군이 쿠를란트집단군(쿠를란트 포켓. 병력 약 20만 명)으로 바뀌고 중부 집단군이 북부 집단군으로, 그리고 A 집단군이 중부 집단군으로 바뀌었다. 이 2번째 중부 집단군은 항복 직전까지 활동했다. 한편 쿠를란트집단군은 전쟁의 잔여기간 내내 쿠를란트 반도에 갇혀 나오지 못하고 소수의 개인 혹은 소부대 단위로 해로 등을 통해 탈출하는 수준이었다가 전쟁이 끝나자 항복하였다. 여담으로 똑같이 Army Group으로 번역되는 Armeegruppe라는 단위가 있었지만, 일반적인 집단군과는 달리 Armeegruppe는 임시 편제의 개념이라 공식적으로 집단군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이는 오스트리아도 마찬가지.

중화민국 국민정부 당군 국민혁명군에서도 집단군이 있었으며, 다른 국가와는 다르게 전쟁 이전에도 집단군 편제가 존재했다. 중국은 2~3개의 을 하나로 묶은 전구가 가장 상위의 전투 단위였고, 전구마다 3~4개의 집단군 및 직할 부대가 있어 총 병력은 20~50만 명 정도였으며 1개 집단군에는 2~4개의 군이 있었다.

일본 제국 육군에서는 집단군을 총군(総軍)이라고 불렀다. 약어로는 전군. 데라우치 히사이치 원수가 맡았던 남방군이 대표적 예이며, 남방군은 필리핀, 미얀마, 태국을 포함한 동남아 전역을 맡았다. 총군 예하에는 방면군과 군이 있었으며 번역상으로는 방면군을 야전군, 군을 군단으로 취급한다. 평시에는 일본 본토 내에는 사단까지, 해외 식민지에는[4] 군 단위 까지만 편성하였으나 전쟁이 본격화되면서 관동군과 지나 파견군이 총군 단위로 확장되었고 남방군이 신설되었다.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본토에 3개의 총군,[5] 국외에 3개의 총군[6]이 있었다. 조선군과 대만군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군 단위였다.

집단군은 다국적 군대의 편제로 구성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의 연합군의 경우, 남부집단군( 미국 제6집단군)은 미국 7군과 프랑스 1군으로 구성되었고, 제21집단군은 영국 2군, 캐나다 1군 그리고 미국 9군으로 구성되었다. 미 제9군이 나중에 빠져나가서 21집단군은 영연방군만으로 편성되었다.

냉전기의 NATO 지상군 역시 북부집단군(Northern Army Group)과 중부집단군(Central Army Group)이란 명칭으로 두 개의 다국적 집단군 편제를 유지했지만, 이들은 실질적으로 각 4개 군단을 예하에 둔 야전군급 제대였다.

4. 운용 사례

출처

4.1. 제1차 세계 대전

4.2. 제2차 세계 대전

1939년 9월 1일 폴란드 전역
• 북부 집단군
• 남부 집단군
1940년 5월 10일~1940년 6월 22일 프랑스 전역
• A집단군
• B집단군
• C집단군
1941년 6월 22일~1945년 5월 9일 독-소전쟁
• 1941년
• 북부집단군
• 중부집단군
• 남부집단군
• 1942년
• 북부집단군
• 중부집단군
• B집단군[10]
• A집단군[11]
• 1943년
• 북부집단군
• 중부집단군
• 남부집단군[12]
• A집단군
• 1944년
• 북부집단군
• 중부집단군
• 북우크라이나집단군[13]
• 남우크라이나집단군[14]
• 1945년
• 쿠를란트집단군[15]
• 북부집단군[16]
• 비스툴라집단군
• 중부집단군[17]
• 남부집단군[18]
• F집단군[19]
1944년 6월 8일 ~ 1945년 5월 8일 프랑스~독일 서부전역
• 1944년
• B집단군
• G집단군
• 1945년
• H집단군[20]
• B집단군
• G집단군
• 오버라인집단군[21]
1943년 2월 ~ 1943년 5월 튀니지 전역
• 아프리카 집단군
1943년 7월 ~ 1945년 이탈리아 전역
• B집단군[22]
• C집단군
1943년 8월 ~ 1944년 9월 발칸 전역
• F집단군
• E집단군[23]


[1] 제임스 B. 맥퍼슨의 테네시군, 조지 H. 토머스의 컴벌랜드군, 존 M. 스코필드의 오하이오군 [2] 남북전쟁은 최초의 현대전이라는 말도 나올 만큼 이후 대전기의 육군 편제의 원형을 볼 수 있지만 같은 야전군, 군단, 사단 등의 단위라도 이후보다 규모가 작은 편이었다. [3] 사족이지만 미군의 연대도 기갑기병연대 같은 것을 제외하면 연대라는 편제 자체가 거의 유명무실해졌다. [4] 관동군, 조선군( 조선 주둔 일본군), 대만군( 대만 주둔 일본군), 지나 파견군( 중국 주둔 일본군) [5] 제1총군 - 스기야마 하지메 원수, 제2총군 - 하타 슌로쿠 원수. 항공총군 - 카와베 마사카즈 대장. 참고로 구 일본군의 원수 계급은 대장 계급에서 받는 칭호였다. [6] 남방군 - 데라우치 히사이치 원수, 관동군 - 야마다 오토조 대장, 지나 파견군 - 오카무라 야스지 대장. [7] 프랑스군과 영국군, 벨기에군의 연합 부대로, 사령관은 알베르 1세였다. [8] 공식적인 집단군 편제는 아니지만, 실질적인 규모로 따지면 집단군과 유사함으로 이 항목에 표기함. [9] 영국 원정군과 같은 이유로 이 항목에 표기함. [10] 남부 집단군 분할 [11] 남부 집단군 분할 [12] B집단군에서 돈집단군, 돈집단군에서 남부집단군으로 개칭 [13] 남부집단군에서 개칭 [14] A집단군에서 개칭 [15] 북부집단군에서 개칭 [16] 중부집단군에서 개칭 [17] 북우크라이나집단군에서 A집단군, A집단군에서 중부집단군으로 개칭 [18] 남우크라이나집단군에서 개칭 [19] 동부전선을 담당한 육군최고사령부 소속이 아닌 국방군최고사령부의 남동전구사령부를 구성 [20] 북서집단군으로 개칭 [21] 육군 소속이지만 지휘부는 무장친위대로 구성, 휘하 부대는 G집단군에 흡수되고 사령부는 동부로 이동해 11군을 지휘하면서 동지 작전을 진행했다. [22] 1943년 11월에 프랑스로 이동 [23] 흩어진 군단들을 지휘하는 사실상의 야전군급 제대로 지휘부도 12군 사령부로 구성되었다. 집단군 자체도 F집단군에 배속되었으며 군집단이 아닌 집단군이 집단군 휘하에 배속된 사례는 E집단군이 유일하다. [24] 영국군과 미군의 연합 부대로, 사령관도 영국군과 미군에서 번갈아가며 담당했지만, 지중해 전선에서 영국군의 비중이 컸으므로 영국군에 표기함. [25] 미군과 자유 프랑스군의 연합부대지만, 미군의 지휘를 받았기에 미군에 표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