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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7 22:50:29

제5공수특전여단 동사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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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괴소문4. 기타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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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8년 4월 1일 수요일 대한민국 육군 특수전사령부 예하 제5공수특전여단(현 국제평화지원단의 전신) 군인들이 천리행군을 하던 중에 일어난 참사. 원인은 기상이변, 그리고 기상이변에도 불구하고 대대장이 무리하게 훈련강행을 명령한 탓이었다.

대대장이 이런 무리한 결정을 한 데는 이유가 있었으니 그들이 육군 특수부대특전사라는 점이었다. 특전사는 적지가 어떠한 악조건이라도 작전을 해야 하는데, 만약 대대장이 비가 온다고 훈련을 멈추었다면 대대장 개인뿐만 아니라 특전사 전체의 평판이 낮아진다는 것 때문이었다. 21세기 들어서는 군인들의 안전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지휘관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당시까지는 안전불감증이 지금보다 심각했다. 그리고 대대장이 행군을 계속해야 한다고 판단했을 무렵에는 부대가 심각한 상황에 처하진 않았기 때문에 '신속하게 행군해서 지역을 이탈하자.'는 중대한 오판을 했다.

특전사 대원들은 민주지산을 오르다가 갑자기 비가 많이 내려 온 몸이 흠뻑 젖었지만 그대로 산악행군을 계속하였다. 계속 정상을 향해 걷는데 기상이 급변하였다. 4월 봄인데도 갑자기 추워지고 체감온도가 영하 30도에 이르면서 비가 눈으로 바뀌어 거센 눈보라까지 몰아치자 대원들이 저체온증으로 쓰러졌다. 옷과 몸이 물에 흠뻑 젖은 채로 기온이 급하강하면 바로 저체온증에 시달리는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빨리 따뜻한 곳으로 옮겨서 젖은 옷을 벗고 뜨거운 불로 몸을 말려 체온을 높이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죽는다.

게다가 심한 악천후로 헬기도 못 뜨는 등 구조가 늦어져 결국 여단 예하 제23특전대대 소속 김광석 대위( 학군 30기)[1], 이수봉 중사, 오수남ㆍ이광암ㆍ한오환ㆍ전해경 하사 등 총 6명이 저체온증으로 동사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 #)

2. 상세

1998년 3월 28일 토요일 특전사 제5공수특전여단 제23특전대대 소속 대원들이 천리행군을 시작하였는데 충청남도 칠갑산에서 출발하여 약 8일 동안 속리산 월악산을 거쳐 대모산에서 훈련을 종료하는 일정이었다.

5일차인 4월 1일 수요일 오후 1시 대원들은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하두마을에서 출발하여 충청북도 영동군 용화면에 소재한 민주지산(1241m) 정상으로 항했다. 일기예보상으로는 비가 조금 내린다고 하였으나 출발한 지 1시간쯤 뒤부터 비가 많이 쏟아져 내렸다.

오후 3시 민주지산 6부 능선을 통과할 즈음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서 비가 갑자기 눈으로 바뀌더니, 오후 4시 8부 능선을 지날 무렵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강하게 눈보라가 몰아쳤다. 봄에는 좀처럼 발생하지 않고 기상청의 일기예보도 예측하지 못한 드문 기상이변이었다. 이후 부대의 행군속도가 느려지더니 4시 50분 무렵에는 일부 인원들이 저체온증으로 탈진하기 시작했다. 대원들은 기상이 정상화될 때까지 훈련일정을 잠시 중단하고 일단 휴식을 취해도 될지 대대본부에 문의했으나, 당시 대대장은 "훈련을 예정대로 강행하라." 하고 지시하였다. 아직 상황이 심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차라리 빨리 현장을 통과하자고 오판한 것이다.

오후 5시 선두 인원이 민주지산 정상에 도달하였으나 날씨가 워낙 춥고 기상이 나빠 통신장애가 생겼다. 이 무렵 체감온도가 영하 30도에 달했다고 한다. 5시 30분부터는 부대에서 탈진자가 다수 나왔고 오후 6시 20분에는 9부 능선 후미 부대에서 첫 순직자가 발생하였다. 후미 인원도 얼마 뒤에 정상에 도달했다.

오후 6시 반 산을 내려가면서 첫 구호소를 설치하여 저체온증으로 의식을 잃은 인원을 구호하였다. 상태가 상대적으로 괜찮은 인원들은 그대로 하산하였으나 오후 7시 10분 5부 능선에서 결국 선두부대에서도 탈진 환자가 다수 발생하여 2차 구호소를 설치했다. 다른 병력들은 계속 하산하였으나 또 다시 3차 구호소를 설치해야 했다. 병력 일부가 겨우 겨우 하산하여 민가에 도착한 때는 오후 8시 10분이었다. 이들은 민가의 전화기를 빌려 부대에 구조를 요청하고 물한분교[2]에 임시 대피소를 마련하였다.

영동소방서 119 구조대는 부대로부터 헬리콥터를 띄워 달라는 요청을 접수하였으나 기상이 워낙 나빠 헬리콥터를 띄울 수 없었기 때문에 구조까지 시간이 오래 늦어지는 바람에 순직자가 더 늘어났다. 구조대는 오후 9시 10분에야 도착하여 환자들을 후송하였으나 어두운 밤중인 데다 눈 쌓인 산속이고 대원들이 흩어져 있어 시간이 많이 걸렸다. 결국 이 사고로 후송 도중 순직한 인원까지 포함하여 총 6명이 숨을 거두었다. 당시 기사에는 사망한 6명 외에도 실종자 1명이 더 있다고 보도했으나( #, #) 다음날 탈영병으로 밝혀졌다.( #, #). 그리고 구조 과정에서 김광석 대위는 먼저 저체온증에 걸려 대열에서 낙오된 한오환 하사를 구하려다 같이 참변을 당하고 말았다. #

순직자들은 1계급씩 추서되었다. (본 항목에서는 사고 당시의 계급으로 기록하였다.) 대대장 이춘일 중령(3사 15기)은 사고의 책임을 지고 보직 해임되었고 여단장 천연우 준장(육사 29기)[3], 여단 정보참모 김학영 소령(단기 15기)은 징계 조치되었으며 고어텍스가 전군에 보급되는 계기가 되었다.

2001년 11월에 영동군수와 부대가 합동으로 위령비를 민주지산 입구에 세웠으나 도로 근처라 장소도 좁고 위험하여 2017년 12월 4일에 이전하였다. 위령비와 별도로 국제평화지원단은 2017년 6월 1일 민주지산의 첫 구호소를 세웠던 터에 작은 추모비를 세웠다.

3. 괴소문

이 사건과 관련하여 인터넷상에서 여러 황당한 괴소문들이 돌아다녔다.

특전사 부대 초소에 쇠사슬로 묶인 관 6개를 끌고 다니는 귀신(정확히는 노인 귀신)이 목격되었고 사망자들이 전부 그때 귀신이 들어갔던 선발대 내무반이라는 소문이 돌았으며 이것 외에도 이 괴담에 기반해서 창작한 여러 가지 괴담들도 인터넷상에서 떠돌았다. 이것이 확실한 헛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정작 이들이 사고를 당한 민주지산 인근에서는 이런 괴담이 전혀 나돌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3년 기준으로 민주지산 안보공원이 형성되면서 사라졌으나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물한계곡) 가래점에는 이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비가 존재했다. 네이버 지도 거리뷰로 2013년, 2015년 판에서는 확인해 볼 수 있다. 호도나무집, 지산가든 근처에 있는 위령탑이 이것이다. 장병들이 요절하고 위령비까지 있었던 곳에서는 괴담이 없었는데 정작 부대 내에서 귀신이 보였다느니 하였으니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이 사건 때문에 그 사고가 난 대대가 아예 해체되어서 원래 여단급 부대였던 제5공수특전여단이 더 작은 급부대인 특수임무단으로 개편되었다는, 아무 근거도 없고 설득력도 없는 황당한 소문도 언젠가부터 인터넷상에 떠돌았다. 하지만 사고는 1998년 4월에 제23특전대대에서 일어났는데, 특수임무단으로 개편된 시기는 2년 뒤인 2000년 6월이고, 이때 신설 특수임무단의 소수정예화 방침 때문에 규모를 축소하느라 해체된 곳은 제25특전대대였다. 해체된 이 제25특전대대는 국제평화지원단으로 개편한 뒤 증가하는 파병수요 때문에 2013년에 재창설되었다. 즉 개편시기든 해체된 대대든 민주지산 사고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참고로 2000년에 특수임무단으로 개편하면서 더욱 소수정예 부대로 운용한다는 목표에 따라 1개 대대를 줄여 3개 대대로 편제와 인원이 축소되었다. 그래서 이때부턴 여단이 아니라 '단'이 되었기 때문에 부대장도 준장인 여단장이 아니라 대령이 부대장인 '단장'이 되었다. 이후 다시 바뀐 국제평화유지단도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여단보다 작은 '단'급 부대라서 여전히 대령이 부대장인 '단장'이다. 이후 25대대가 부활해서 부대 인원 수로는 다른 특전여단들과 다시 비슷해졌지만, 장군 숫자를 계속 줄여나간다는 군 정책 방향 때문에 장군 수를 줄이기는 가능해도 일단 줄어든 별을 다시 늘리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라 국제평화유지단은 여전히 대령이 부대장인 단급 부대로 남아 있다.

5여단은 다른 여단들과는 달리 북한 내 특정한 침투담당지역을 미리 정해두지 않은 예비대였다. 이미 침투한 다른 특전여단 팀들의 작전 추이와 상황에 따라 필요한 지역에 후속으로 추가 침투되기 때문에 북한의 어느 지역에 침투하게 될지 미리 정해져 있지 않았다. 때문에 5여단은 평상시에 다른 여단들이 늘 하는 북한 특정지역에 대한 연구와 예행연습이 필요 없었다. 그래서 다른 여단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상시 훈련 스케줄 부담이 적었던 5여단을 평시에 별도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있었고 결국 국가 재난과 테러에 대비하는 부대로 개편하기로 결정했을 뿐이다. 그래서 부대 개편 초기에는 707특임대가 이 특수 임무단 예하로 소속되기도 하였다. 이후 특수임무단으로서의 실질적인 임무 변화가 흐지부지되자 707특임대도 다시 사령부 직할로 원위치되었다. 특수임무단은 2010년에 국제평화지원단으로 다시 개편되었는데 이것도 무슨 사고가 발생해서가 아니라 그저 임무가 변경되어 그에 맞게 개편되었을 뿐이다. 국제평화지원단은 평상시엔 해외파병의 중추 부대로서의 역할을 맡고 있고 전쟁시엔 선침투한 다른 공수특전여단들에 대한 예비적인 추가 대북침투 게릴라부대 역할을 맡는다.

즉, 부대개편과 이 사고는 전혀 무관하므로 불행한 사건을 흥미거리로 삼아 누군가 창작해서 인터넷에 퍼트린 사실무근의 헛소문들에 낚이지 말자.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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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대한민국 국군/사건 사고 }}} }}} }}}




[1] 학군 30기는 1992년에 임관한 장교들로 1998년 시점에서 전역을 2개월 앞둔 말년대위였다. 김광석 대위 역시 당시 말년대위들이 참모 대신 하는 보직인 3차 중대장이었고 이 천리행군만 종료하면 제대할 예정이었다. [2] 충북 영동 상촌초등학교의 분교. 상촌면 물한리에 있다. 지금은 폐교되었다. [3] 사고에도 불구하고 2001년 소장으로 진급하여 합참 작전부장직을 마지막으로 예편하였다. 참고로 12.12 군사반란 당시 장태완 수경사령관의 전속부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