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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미국의 시사잡지인 라이프에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인 100인을 선정했다. 순위는 없으며, 만장일치로 선정된 인물은 헨리 포드와 라이트 형제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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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E1F23><colcolor=#fff>
HonKBE 제임스 듀이 왓슨 James Dewey Watson |
|
|
|
출생 | 1928년 4월 6일 ([age(1928-04-06)]세) |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생물학자 |
학력 |
시카고 대학교 (
동물학 /
학사) 인디애나 대학교 ( 생물학 / 박사) |
경력 |
前
하버드 대학교 생물학 교수 前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장 미국 국립보건원[1] |
배우자 | 엘리자베스 루이스 (1968년 결혼) |
자녀 | 2명 |
종교 | 가톨릭 → 무종교( 무신론) |
서명 |
|
[clearfix]
1. 개요
젊었던 시절
사진 왼쪽의 인물이 왓슨, 오른쪽은 크릭이다.
미국의 분자 생물학자, 유전학자이자 동물학자.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왓슨과 크릭'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암 연구와 인간게놈프로젝트로도 유명하다.
2. DNA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
사실 왓슨과 크릭이 DNA의 구조를 처음부터 명확하게 증명해낸 것은 아니다. 당시 DNA에 대하여 연구를 하던 학자들은 많았고, 이 둘도 그 중 하나였다. 왓슨과 크릭은 DNA 구조에 관하여 머리를 싸매고 있었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모양을 끼워맞추다가 DNA는 이중나선 구조라는 예측을 하게 되었는데, 환경적 요인에 맞물려서 둘은 이를 학술적으로 증명할 수가 없었다.그러던 차에 우연히 로절린드 프랭클린과 모리스 윌킨스가 일하던 연구소를 방문하게 되었고 윌킨스는 프랭클린이 부재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연구하던 DNA X선 회질의 사진을 왓슨과 크릭에게 보여주게 된다. 그것은 왓슨과 크릭의 모형을 증명해주는 자료였고, 둘은 그 사진을 공유할 것을 월킨스에게 간절히 요청하였으나 사진은 프랭클린의 연구성과였기 때문에 당연히 거절당한다.[2] 어쩔 수 없이 왓슨과 크릭은 그 사진을 급하게 손으로 그렸으며, 3장짜리 논문과 함께 네이처 지에 올리게 된다.
부실하기 짝이 없는 논문이었지만 왓슨과 크릭에게 큰 행운이 뒤따랐으니, 그 학술지의 해당 호에 프랭클린과 윌킨스의 논문이 함께 실려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는 왓슨과 크릭이 노린 바였다. 프랭클린과 윌킨스의 논문이 해당 호에 실릴 것을 예상하고 자신들의 이론만 정리한 논문을 같은 호에 실을 수 있도록 서둘러 발표한 것. 결국 이 해당 호를 읽으면 왓슨과 크릭의 이론부터 읽고, 이를 뒷받침해줄 자료사진을 뒤에 실린 프랭클린의 논문에서 발견하게 되는 형태가 된 것이다.[3] 프랭클린과 월킨스의 논문은 왓슨과 크릭의 3장짜리 논문을 증명해준 꼴이 되었고, 후에 왓슨과 크릭은 제대로 된 논문을 완벽하게 정리해서 발표하였고, 자신들에게 사진을 보여준 월킨스를 공동저자로 끼워서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러나 왓슨과 크릭은 프랭클린의 지인의 폭로[4]와 자신들의 저서로[5] 인해 긴 시간동안 남의 연구성과를 도용해 노벨상을 탔다는 의혹으로 고생하게 된다.
발견과정과 논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DNA 항목 참조.
3. 이후의 행적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하고 증명해낸 왓슨은 미국으로 돌아와서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를 거치고 하버드 대학교 생물학 교수로 부임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하버드에 적응하지 못하고[6] 1968년 사표를 냈으며, 뉴욕 롱아일랜드 부근의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의 연구소장으로 부임하게 된다.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는 본래 연구원들의 휴양과 연구를 목적으로 지어진 작은 규모의 연구소였다. 왓슨 취임 이전에는 주로 멘델 유전학 제창에 주력하는 연구소였으나, 왓슨은 본인이 발견한 DNA의 구조를 이용하여 암과 같은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실제로 60년대에 들어서 암 연구 열풍이 불었기 때문에 왓슨 취임 이후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는 유전자 치료와 암 치료에 전념하게 되었다.왓슨은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를 세계 최고의 암 전문 연구소로 만들려고 노력하였고, 그 의지에 보답이 오듯이 연구소의 제원은 어마어마하게 거대해져 갔다. 그리고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국가암퇴치법을 통과시키고 암정복이 국가적 과제로 떠오르면서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는 엄청난 지원을 받게 되었다. 콜드스프링하버의 연구자들은 1970년대에 선보인 제한효소 기술을 신속하게 채택하였고, 1972년경 콜드스프링하버의 리처드 로버츠라는 연구원은 수많은 미생물로부터 새로운 제한효소를 정제하는 기술을 개발해내게 된다. 또한 세계의 제한효소의 절반 이상이 그의 실험실에서 분리되었다.
80년대에 이르러서 제한효소가 세간에 알려지고 이러한 효소들이 상업적으로 활용될 기미가 보이자, 리처드 로버츠는 그것을 무료로 전 세계 학계 연구자들에게 제공했다. 이렇게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는 종양 바이러스 연구자들을 위한 메카가 되었으며, 왓슨은 이 연구소의 소장으로서 다시 한 번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중나선이라는 저서로도 유명하다.
4. 인종차별주의자
평생을 바쳐서 유전자를 연구한 왓슨은 우생학 옹호론자,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그는 '멍청함'이 유전적 질환이라고 이야기하였고, “ 사람들은 모든 여자가 예쁘게 되면 끔찍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난 그 편이 좋을 것 같다” 라고 말하며 유전자 조작을 통해서 외모를 바꾸는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다.그 외에도 비만에 관한 망언을 하고, 멜라닌이 성충동에 영향을 끼친다는 등[7], 언젠간 한번 크게 터지지 않을까 과학계가 조마조마해왔다. 그러다 결국 2007년 아래의 발언으로 인하여 사실상 학계에서 퇴출당하게 된다.
흑인들이 백인과 동일한 지적 능력을 갖췄다는 전제하에 이뤄지고 있는 서구 국가들의 아프리카 관련 정책들은 잘못됐다.
평균적인 지능지수(IQ)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백인과 흑인 사이의 지능 차이가 있다. 이는 백인과 흑인은 유전적으로 차이가 있기 때문. 인종 간 이런 차이가 즐겁지는 않으며 만약 차이가 존재한다면 어떻게 차이를 개선할지를 우리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인종 간 지능의 우열을 가리는 유전자가 앞으로 10년 안에 발견될 수 있을 것 (2023년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백인과 흑인이 동등한 지적 능력을 갖췄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흑인 직원을 다뤄본 사람들은 다 안다.
선데이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위의 발언이 화제가 되었고, 모든 강연이 취소되며 자신이 40년 가까이 이끈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장 자리에서도 내려오는 등 왓슨은 그대로 사회에서 매장되었다. 이후 잠잠하다가 생활고에 시달렸는지 2014년 본인의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올렸다. 또한 이날 자신의 원고 두 권도 출품하였다고 한다. 관련기사
결국 러시아의 올리가르히이자 축구팀 아스널 F.C.의 주요 주주 중 한 명이었던 알리셰르 우스마노프(Alisher Usmanov)[8]에 의해 53억에 낙찰되었다. 예상 낙찰가였던 38억 원보다 15억 원이나 높은 가격이었다. 그러나 우스마노프는 왓슨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생물학자 중 한 명이고, DNA의 구조를 밝혀낸 공로로 받은 상은 마땅히 그의 소유가 돼야 한다며 왓슨을 위하여 노벨상을 다시 그에게 돌려주었다. 우스마노프의 아버지 또한 암으로 돌아가셨고, 그러한 질병 치료를 위해 평생을 바쳐 기여한 과학자의 생활고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걸 다시 사준 우스마노프 역시 인종차별 언행으로 논란이 된 전적이 있는 인물이라는 것.(우스마노프의 현 재산은 약 20조 원).
콜드스프링하버에서 개최되는 학회에 참가하면 직접 만나서 같이 사진을 찍는 것 또한 가능했는데, 같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면 백인이 아닌이상 피부색을 보고 어디에서 왔냐는등 인종 차별적인 질문들을 하곤 했다.
2019년 1월 14일, 인종 차별적 발언으로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의 명예교수직마저 박탈당했다. # ##
참고로 인종과 인종 사이의 차이에 대한 인종주의적 견해는 이미 오래전에 과학적으로 허위로 밝혀졌다. 인간은 모두 단일종 단일아종에 속한다.
동료였던 프랜시스 크릭도 "열악한 유전자를 가진 부모는 되도록이면 아이를 가지지 말아야 세상에 이바지한다. 정 가진다면 오로지 하나만 낳도록 규정해야 한다." 같은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을 했으나, 이쪽은 88세까지 장수하긴 했지만 정치적 올바름이 대세가 되기 전에 죽어서(...) 그냥 묻혔다.
[1]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2]
엄밀히 말해 이는 당시 불행한 타이밍 문제였다. 프랭클린 본인은 다른 연구소로 이전하면서 이 자료를 윌킨스에게 이전한 상황이었고, 이 자료로 프랭클린과 논문을 집필했던 윌킨스의 입장으로서는 실제 기여도가 높은 프랭클린의 동의도 없이 자료를 공유하길 꺼렸다.
[3]
도용 논란이 터지면서 나온 의혹이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나 정황은 전무하다.
[4]
프랭클린이 요절하고 나서도 왓슨은 그를 비판하고 모욕하는 언행을 종종 했다는데, 이 때문에 지인들이 여러 사실을 폭로하면서 그들의 연구성과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계기가 된다. 이거 말고도
바바라 매클린톡 보고 '나랑 같은 연구소에 있는 남자 과학자들은 무지 재밌는 사람들인데 매클린톡이라는 깐깐하고 마녀같은 할머니가 있어요. 이 여자 옥수수밭 때문에 우리가 공놀이를 못함ㅋㅋ' 이런 험담도 했을 정도로 악명높다.
[5]
사실 프랭클린의 기여를 널리 알린 건 왓슨 본인이 자신의 저서인 "이중나선"에서 프랭클린의 업적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왓슨과 크릭은 프랭클린의 기여를 무시할 생각이 없었고, 프랭클린 본인과 이 둘 간의 견해 차로 공동 논문으로 할 수 없었던 것에 가깝다. 프랭클린 본인은 생전에 본인의 자료 만으로는 왓슨과 크릭의 이론을 입증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6]
기세등등하던 왓슨은 교수회의에서 다른 자연생물학자들을 면전에서 쓸모없다고 하며 자신들의 세상이라고 공언한다. 덕분에
에드워드 윌슨과는 단 한번도 인사를 나누지 않았었다고 한다.
[7]
UC 버클리에서 열린 강연에서 "햇볕을 많이 받으면 피부색을 결정하는 색소인 멜라닌이 증가하고 다른 호르몬 작용이 활발해지면서 성욕이 증가한다"는 주장을 하며 그 과정에서 비키니를 입은 여성과 온 몸을 가린 이슬람 여성 사진을 ppt로 보여주며 햇빛 노출과 성욕의 상관관계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와중에 "대머리가 성생활에 더 능하다"는 개드립을 한 것은 덤.
00.11.27 중앙
[8]
아스널 지분의 16%를 가지고 있는 주요 주주였다. 이후 2018년 우스마노프가 보유한 주식은 NFL
로스앤젤레스 램스, NBA
덴버 너기츠, NHL
콜로라도 애벌랜치의 구단주
스탠 크랑키에게 전량 매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