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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1 16:09:00

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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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십이호신
정보 황개 한당 장흠 주태 진무
동습 감녕 능통 서성 반장 정봉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ingFeng.jpg
최종직위 우대사마(右大司馬)
성씨 (丁)
(奉)
승연(承淵)
생몰기간 (? ~ 271)
고향 양주 여강군 안풍현[1]


[clearfix]

1. 개요

삼국시대 오나라 용장으로 양주 여강군 안풍현 사람.

사실 정사에서는 제갈량 사후 삼국시대 중후기에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다. 정사에서 정봉이 215년/219년에 사망한 감녕 소속 장수였음을 생각하면 어리게 잡아도 200년 이전 생이며, 정봉의 커리어가 252년 동흥 전투부터 몰년인 271년까지에 집중되어 있음을 감안하면 50대에 처음 두각을 나타내고 70대까지 활약한 대기만성 노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정사의《정황한장주진동감능서반전》에서 마지막에 있다는 점에서도 역시 그가 후시대 인물이라는데 증거를 보탠다.

2. 정사 삼국지

어려서 용맹하여 소장(小將)이 돼, 감녕(甘寧), 육손(陸遜), 반장(潘璋) 등에게 속했다.[2] 자주 정벌에 따라가, 전투하면 항상 군에서 앞장섰다. 매번 장수를 참살하고 깃발(旗)을 뽑아 내며, 자신도 상처를 입었다. 점점 승진해 편장군(偏將軍)이 됐다. 손량(孫亮)이 즉위하고, 관군장군(冠軍將軍)이 됐고, 도정후(都亭侯)에 봉해졌다.
젊었을 때부터 용맹을 떨쳐 싸움터에서 선봉으로 매번 적장을 베고 깃발을 탈취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도 상처를 입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타고난 맹장이었을 듯.

손권을 따라나서 어려서부터 여러 전투에 참가하여서 명성을 쌓아나갔고 252년 12월에 손권이 사망한 후 제갈탄, 호준 등이 지휘한 조위의 공격에서도 제갈각의 휘하에서 위군 진영을 공격해서 적장 한종[3]을 베는 전과를 세웠다. 이 때 그는 병사들에게 갑옷을 풀고 단병기만 지니도록 했으며, 위군은 정봉군이 오는 걸 보고서도 그 수가 적고 가벼운 옷차림인 것을 보고 제대로 방비를 하지 않아[4] 크게 패했다. 그 공으로 멸구장군, 나아가 도향후로 승격한다.
위의 장군 문흠(文欽)이 항복해 오니, 정봉을 호위(虎威)장군으로 삼고 손준(孫峻)을 따라 수춘(壽春)에 가 맞이하게 하고, 적의 추격군과 고정(高亭)에서 싸웠다. 정봉이 말에 타고 긴 을 들고 적의 진중으로 돌입하여, 수백명의 머리를 베고, 군기(軍器)를 노획했다. 안풍후(安豊侯)로 올려 봉했다.
255년 문흠이 위군에 패하고 오나라로 도망왔을때 정봉은 손준의 명령을 받고 추격해온 위군을 격파해 수백명의 수급과 군기를 노획한 전공을 세우고 문흠을 맞아들였다.
윤달 정월 9일 손준은 표기장군(驃騎將軍) 여거(呂據), 좌장군(左將軍) 유찬(留贊)과 군대를 이끌고 수춘(壽春)을 습격하려고 했다. 군대가 동흥에 이르렀을 때, 문흠 등이 패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19일, 군대가 탁고(橐臯)까지 진군하자, 문흠이 손준에게 투항해 왔고, 회남의 잔여 세력 수만 명도 오나라로 달려왔다. 위나라의 제갈탄이 수춘으로 진입하자, 손준은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다. 2월, 위나라 장군 조진(曹珍)과 고정(高亭)에서 마주쳐 교전했는데, 조진이 크게 패했다. 유찬은 제갈탄의 별장(別將) 장반(蔣班)에게 고파(菰陂)에서 패했다. 유찬과 장군 손릉(孫楞), 장수(蔣脩) 등이 모두 해를 입었다.
오봉 2년(255), 위(魏)나라 장수 관구검(毌丘儉)과 문흠(文欽)이 부대를 인솔하여 반란을 일으켜 위나라 사람들과 낙가(樂嘉)에서 싸웠다. 손준은 표기장군(驃騎將軍) 여거(呂據)와 좌장군(左將軍) 유찬(留贊)을 인솔하여 수춘을 습격했다. 그러나 마침 문흠이 패배해 항복했으므로 군대를 돌렸다.
위의 내용을 감안해 보면 호위장군으로 임명된 정봉은 손준의 부장이 되었고, 손준의 휘하에서 부대장으로 지내며 자신에게 배속된 병사들을 이끌고 돌격을 감행해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때의 전과가 정봉이 용장으로서 높게 평가받게 하는 이유가 된다.

257년 제갈탄 반란( 제갈탄의 난)때에도 그를 돕기 위해서 참전하였다.

이후 손휴가 제위에 오른 후 손침을 제거할 계획을 세울 때 장포가 그를 추천했고 이에 가담하여서 258년에 손침을 죽이고 이 공로로 대장군으로 승진한다.

263년 위나라 등애을 공격할 때( 촉한멸망전) 구원을 위해 동생 정봉(丁封)을 으로 보내고 정봉 형 정봉 본인은 위군의 군사력 분산을 위해 수춘으로 출진했으나 유선이 이미 항복하였기에 회군한다.

손휴가 사망한 후에는 손호를 차기 황제로 추대하고 우대사마 군사로 승진한다.

268년 11월 제갈탄의 아들 제갈정과 함께 합비를 공격하지만 여음왕 사마준에게 패배했다.

269년 곡양성을 공격했지만 여기서도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우장군사마를 지냈고 270년에도 군을 보내 진나라( 서진)의 와구(渦口)를 공격했지만 공이 없음을 추궁받아 271년 12월, 분노한 손호에 의해서 정봉의 도군(導軍)이 처형되었다.

271년 만욱이 정봉과 유평에게 손호를 단념하도록 발언했는데, 이 발언이 손호의 귀에 들어가서 272년 신년연회에서 만욱과 유평에게 독주를 보내는 등 사사시켜 죽게 만들었지만 이 시점에서 정봉은 이미 사망한 상태라 아들 정온 대신 처형당했다고 한다.

정봉은 승진하면서 점점 교만한 태도를 보였으며, 그가 죽은 다음 해인 272년에는 손호에게 정봉을 참언한 자가 있어서 생전의 군사행동에서의 실패를 이유로 정봉의 유족은 임천으로 강제 이주되었다.[5] 말년 정봉의 태도 및 처신 그리고 손오 희대의 폭군 손호의 행적을 생각하면 영 좋지 못한 최후를 맞았을테니 그 전에 죽은 것이 차라리 다행일 것이다.

3. 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미친 존재감으로 장수한 인물로 나와 황충, 요화 등과 함께 노장의 이미지가 남은 케이스다. 물론 연의에서는 본인보다 한 세대 위인 서성과 세트로 나와 손권 초기 전투부터 등장하니 오나라의 요절징크스에서 그야말로 독보적인 미친 존재감 급의 노장이 된 것이다.

연의에서 너무 일찍부터 장수로 등장했기 때문에 문흠, 문앙, 제갈탄보다도 익숙하다. 이는 시대 고증 오류에 따른 삼국지연의의 대표적 수혜자.

연의에서는 서성과 세트로 나오는데, 실제 정사에서 정봉이 장군으로 본격적으로 활약한 기록은 손권 사후부터 나오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미스매치.[6] 손권 초창기 전투에서 대부분 등장한다. 콤비로서도 덕을 보아, 천막과 지푸라기로 가짜 성벽을 만들어서 위성계로 조비에게 엿을 먹인 서성과 콤비가 되어 맹활약을 한다든지 하는 활약이 추가되는 등 손오의 장군들 중 거의 유일한 삼국지연의/수혜자다.

다만 정사에서 보여준 그의 용맹이 그다지 부각되지는 못한다. 정비석 삼국지 등에 의하면 서성과 힘을 합치고도 손부인에게 쫓겨나서 손권이 주태를 출동시키게 만들었다. 오나라로 가길 거부하는 손부인을 정봉이 서성과 같이 끌고가려다가 손부인에게 어디서 감히 헛소리냐고 하자 데꿀멍(...)[7] 주태가 와서 손부인도 유비와 함께 베어오라고 했으나 이미 그때는 유비가 다 도망을 가고 제갈량의 함대가 출현한 뒤였다.

특히 224년 조비의 오나라 침공 때에는 87회에서 영혼의 콤비 서성과 같이 참전하여 장료를 사살하는 대공을 세운다.[8] 113회에서는 손침을 주살할 때 활약하며, 118회에선 등애와 종회의 침공으로 위기에 처한 촉한을 구원하기 위해 동생과 함께 노구를 이끌고 출정하나 암군 유선이 마천령을 돌아온 등애에게 항복, 끝내 촉한은 멸망하였다.

4.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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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남성 신양시 구스(고시:固始)현 [2] 감녕의 군사들은 감녕이 사망한 후 이릉대전 당시 육손에게 급하게 사용되다 이후 반장에게 귀속된다. [3] 손가 3대를 섬긴 그 한당의 매국노 아들이다. [4] 일반적인 기습과는 좀 다른 상황으로,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적군이 보는 앞에서 그냥 돌격하여 무쌍을 찍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 공격 과정에 대한 기술은 정사와 연의가 일치한다. [5] 건강실록에 따르면, 정봉이 손호에게 처형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삼국지집해를 비롯한 다른 여러 기록에는 정봉의 아들이 처형되었다는 기록이 있다는 걸 보아 건강실록의 기록이 틀린 것일 가능성도 있다. [6] 정봉은 190~200년대 출생일 확률이 높은데, 서성은 170년대생으로 추정되니 실제로는 나이차, 계급차가 많이 나는 편이다. [7] 그런데 이건 딱히 뭐라하기도 뭐한게 정봉과 서성은 후에 나오는 주태처럼 손부인을 완력으로 제압할 수 있는 권한을 받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주군 여동생에게 함부로 손을 댄다는건 부하로써 목숨까지 좌우되는 일이기에[9] 굴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8] 정사에서 장료는 222년에 이미 병사한다.


[9] 당장 손권이 아니라 오국태한테 목이 날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