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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08 22:27:20

사마(관직)


한나라의 공경
삼공(三公)
사마 사도 사공
구경(九卿)
태상 광록훈 위위 태복 정위 대홍려 종정 대사농 소부


1. 개요2. 중국사3. 한국사4. 서양사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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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司馬

고대 중국, 한국에서 군사 운수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벼슬이다. 대사마(大司馬)로 흔히 불리며, 전한 시대에는 태위(太尉)로 불리었다.

이 벼슬을 맡던 사람들의 일부는 사마를 스스로 성씨로 삼기도 했다. 사공씨와 비슷한 경우로 중국의 성씨 사마씨는 이 사마에서 연원된 성씨다.

2. 중국사

춘추시대 제나라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유명한 병법가 전양저가 사마 직위에 있었기 때문에 ' 사마양저'라고 불리곤 했다. 전한시절에는 흉노원정을 승리로 이끈 대장군 위청과 표기장군 곽거병을 대사마로 하여 같은 직위로 두었다. 후한 말기에는 태위와 별도의 관직대사마가 부활했으며, 삼공의 위에 있는 대장군처럼 삼공보다 높았고, 승상 바로 아래, 대장군의 상관이었다. 시대 배경과 누가 관직을 맡느냐에 따라 권력은 달라졌지만 대체적으로 이 관직이 태위보다 대사마의 이름으로 있을 때가 실권이 높았고 병권을 통솔했으며, 태위로 있을 때는 병권이 없어 명예직에 가까웠다. 시대가 흐르면서 명분뿐인 직함이었을 뿐 실제 하는 일은 없어졌다. 대사마는 대장군보다 그냥 상관도 아니고 대장군을 거쳐서 대사마에 오르는 게 관례일 정도였다. 대표적인 예시가 대장군 직을 하후돈에게 물려주고 대사마에 오른 조인이 있다.

고관대작 사마(대사마, 태위)와는 별개로 전속부관, 부지휘관, 행보관급의 부관 관직인 사마가 병존했다. 중국어 사전에 따르면 한나라에서는 대장군, 장군, 교위 등의 무관은 모두 속관으로 사마를 거느렸고, 이들은 병사(兵事)[1]를 전담했다. 당나라 때에 이르러 행군 부사령관직과 더불어 지방 부주(府州)의 상급 보좌관 가운데 하나로 바뀌었다.

3. 한국사

조선 건국 직후 정도전의 관제개혁으로 이 명칭이 무관에 쓰인 적이 있다. 역할은 당연히 무예를 관장하는 일. 중앙군 조직인 십사(十司)의 장군의 명칭을 사마로, 그 아랫자리의 세 장군의 명칭을 각각 중군사마, 좌군사마, 우군사마로 개칭하여 무장의 호칭을 문관의 특성이 강한 관료적 성격으로 개편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 사마 명칭들은 얼마 안 있어 호군 및 전부 다른 명칭으로 바뀌었고, 이후에는 병조판서의 별칭으로만 남게 되었다.

4. 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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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무관장(constable), 원수백(Earl Marshal), 원수(Marshal)가 어원적으로나 기능면으로나 성격을 같이한다. 이 두 관직은 모두 군주의 "마구간지기"에서 유래된 벼슬이었다. 전자와 차자는 현대 영국에서는 아직 관직으로서 남아있는데, 명예직이긴 하지만 무려 궁중석차 7위, 8위를 차지하며, 실권은 없지만 국왕의 대관식에서 같이 행치하는 등의 역할을 맡는다. 말자의 형태는 유럽제어에서 근대까지도 총사령관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다가 현재는 군대의 최고 계급을 가리키는 말로써 폭넓게 쓰이고 있다.

근원은 다르지만 로마 공화국 시대 독재관의 부관인 기병장관(Magister equitum)도 단순 기병대 지휘관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본에서는 '사마관'이라는 용어로 번역하는 경우가 있다.

5. 관련 문서



[1] 군사(軍事)의 다른 말, 군사 활동, 전쟁의 준비와 수행 및 군대 또는 전쟁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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