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54:14

유찬(삼국지)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손오의 인물에 대한 내용은 유찬(손오)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촉한의 인물에 대한 내용은 유찬(촉한)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서진의 인물에 대한 내용은 유찬(서진)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留贊
183년 ~ 255년
[clearfix]

1. 개요

삼국시대 오나라의 무장이며 는 정명(正明)으로 유략· 유평의 아버지. 양주 회계군 장산현 출신이다.

적을 만났을 때 머리를 풀어헤쳐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는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른 뒤에 나가 싸워 백전백승을 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전적이 뛰어난 인물이지만 결국 73세의 나이로 전사하는 슬픈 인물이기도 하다.

2. 생애

젊어서 군리가 되어 황건적의 두목 오환과 싸워 직접 그를 죽였는데, 싸우는 도중에 상처를 입은 다리가 결국 덧나 다리가 굽어 펼 수 없게 되었다.[1]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는 장수가 될 것을 포기하지만 매우 열렬한 성격을 가지고 있던 그는 책을 읽더라도 병서와 삼사[2]만을 읽었는데, 매번 명장이 전공을 세우던 형세를 보면 책을 보며 홀로 탄식하였다. 어느 날, 그는 가까운 친척들을 불러 모은 다음
지금 천하가 어지럽고 소란하며, 영웅과 호걸이 나란히 일어나는데, 과거의 일을 두루 살펴보니, 부귀는 보통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건만, 나는 앉은뱅이가 되어 평민의 동네에 있으니, 죽으나 사나 달라질 게 없소. 지금 내가 내 다리를 자르려는데, 다행히 죽지 않고 다리가 펴지면, 아마 다시 쓰임을 얻을 것이나, 죽으면 그걸로 끝이오.
라고 하며 자신의 다리를 자르려고 하자 친척들이 모두 그를 막았다.

하지만 이 똘끼 충만한 유찬은 틈이 생기자 기어이 칼로 다리의 근육을 자르니 피가 콸콸 흘러 한동안 기절한다. 집안 사람들이 매우 놀랐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라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지켜만 보고 있었는데, 결국 다리를 펼 수 있게 되었고, 상처가 낫자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능통이 그를 청해 만나보고 기이하게 여겨 표를 올려 유찬을 천거해 기용되었으며, 유찬은 거듭 전공을 세워 둔기교위까지 승진한다. 하지만 매번 시사득실에 대하여 간언을 하고 아첨을 하지 않고 직언만을 하니 손권이 그를 꺼렸다.

252년 위나라 제갈각 쌓은 성을 공격하기 위해 제갈탄 호준에게 7만 명을 주어 적을 공격하게 했는데, 유찬은 제갈각의 명을 받아 여거· 당자· 정봉과 함께 선두 부대가 되어 파견된다. 당시 동흥의 위나라의 호준을 비롯한 장수진은 유찬 등의 병사가 적은 것을 보고 두건과 칼, 방패만 갖춘 상태에서 술을 마시며 크게 웃고 떠들며 군대를 엄격하게 정돈하지 않았다.

유찬의 군대는 쉬지 않고 해안을 따라 올라가 산을 따라 서쪽 위로 간 다음에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면서 적을 마구잡이로 베니 위나라 군대는 흩어져 부교를 건너려다 수만 명이 익사했으며, 낙안 태수 환가가 익사하고 이 때 자신의 아비 한당의 시체까지 들고 위나라에 항복한 아들 한종을 붙잡아 참수하게 되니 이 공으로 유찬은 좌장군에 임명된다. 이때 유찬의 나이 70세.

255년 관구검 문흠 반란을 일으키자 좌호군이 되어 여거와 함께 손준을 따라 수춘을 공격하려고 했는데, 길에서 병에 걸리니 손준은 유찬에게 수레와 치중을 거느리고 먼저 돌아가도록 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들은 제갈탄은 놓치지 않고 장반을 보내 유찬을 습격하게 하니, 결국 255년 2월 고파에서 유찬의 군대는 장반이 보낸 4천의 군사에 따라잡힌다.

유찬이 병이 깊어 진을 정비할 수가 없어 질 것을 깨달아 곡개와 인수를 풀어 조카에게 주고 말하길
내가 장수가 된 이래로 적을 파하고 기를 빼앗았지만 일찍이 진 적은 없었다. 지금 병이 깊고 병사는 약한데다가 수 또한 비교할 수 없으니 너는 어서 가거라. 모두 죽는 것은 나라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다만 적을 쾌하게 할 뿐이다.
하지만 조카가 받지 않으려 하자 유찬은 칼을 뽑아 베려 하니 그제서야 조카는 곡개와 인수를 받아 떠났다.

거기다가 유찬이 걸린 병이 깊어 3년 전까지만 해도 팔팔하게 적진을 종횡무진으로 돌파하던 유찬은 자신이 평소에 즐겨하던 머리를 풀며 노래를 부르고 적으로 돌격하는 것도 못 하는 상태였으니 결국 패배를 맞게 되자 탄식하면서
내 싸움엔 항상 방법이 있었는데, 지금 이처럼 병이 깊으니 진실로 천명이구나!
라 외치며 손릉·장수 등과 함께 전사하니 그의 나이 73세였다. 그의 죽음을 듣고 사람들이 모두 깊이 안타까워했다.

그의 사후 장반은 전투에 승리하여 유찬의 목을 수도로 보내는데 그때 유찬의 관인과 부절도 함께 보낸다. 그가 살리려고 한 조카도 결국 탈출에는 실패한 것이다.

3. 미디어 믹스

3.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866.jpg
삼국지 12·13·14
무력과 통솔력 70대 중반에 나머지도 정치력을 제외하면 모두 60대를 기록하고 있는 B-급 무장. 심지어 수명도 길다.

다만 고증 오류가 있다. 생년도가 정사에 간접적으로 기록된 인물임에도 172년생(!)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삼국지 9·11·13 모두 생년이 172년으로 되어있는데 황건적과 싸운 기록을 반영하기 위함으로 추정되나 정작 등장년도는 200년 부근으로 설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오류는 14에 가서야 비로소 183년으로 수정되면서 해결된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3, 무력 74, 지력 64, 정치력 58. 분투·몽충·충차를 가지고 있다. 아들도 가진 노병계 병법이 없어 아쉽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4, 무력 75, 지력 66, 정치력 55, 매력 65로 좋다고 말하기엔 애매하지만 훈련 특기가 있으니 훈련셔틀로 쓰면 적어도 밥값은 한다. 전체적으로 특기는 기술·훈련·일제·저지·회복·기염 총 6개다.

삼국지 11의 능력치는 78·75·64·57·62로 그럭저럭 쓸 만하고 적성도 창병·극병·수군 A로 준수하다. 그러나 특기는 눈물이 날 정도로 잉여스러운 추진. 그래도 능력치는 좋은 편이니 특기를 갈아 버리거나 능력치를 성장시키면 된다.

삼국지 12의 일러스트는 그가 머리를 풀고 고함을 지르며 싸웠다는 사실을 반영했는데 자세히 보면 오른손에는 검을, 왼손에는 창을 들고 있다. 무력이 81로 전작에 비해서 정봉보다 높은 무력치을 찍었다. 전체 능력치는 통솔력 78, 무력 81, 지력 64, 정치력 57에 특기는 병심·연병·호걸, 전법은 전공격강화. 다른 건 제쳐두고라도 삼국지의 모든 장수를 통틀어서 단 4명 밖에 없는 호걸 궁병(나머지 셋이 태사자· 황충· 하후연)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등용해서 후회하지 않을 인재. 아쉬운 점이라면 생몰년이 명확한 인물이라서 활약했을 때는 분명히 노익장이었음이 분명한데, 일러스트는 청년이라는 괴리감이다. 물론 유찬의 동년배인 육손의 영향을 받아서 이렇게 나온 것이지만.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전작과 동일하고 특기는 순찰 1, 신속 1, 일기 3. 전수특기는 일기로 전법은 속방지휘. 두예·조비와 같은 전법이다. 좋은 전법이지만 주군인 손권의 견수지휘가 상위호환이라서 묻힌다. 물론 손권이 없는 후반기 시나리오나 왕랑 등 강동의 약소국에서는 도움이 된다. 생몰년도가 172~255년으로 설정되어 있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75, 무력 77, 지력 65, 정치 56, 매력 66으로 전작에 비해 지력이 1 상승한 대신 통솔력이 3, 무력이 4, 정치력이 1 하락했다. 개성은 악주·노발·조타·공명, 주의는 패도, 정책은 수군육성 Lv 3, 진형은 어린·봉시, 전법은 분전·대갈·강습, 친애무장은 능통, 혐오무장은 없다. 전작들에 비해 드디어 출생년도가 183년으로 고증을 반영하여 제대로 수정되었다.

3.2. 삼국전투기

드래곤 길들이기 스토이크로 패러디 되었다. 바이킹인 스토이크로 패러디된 것은 병에 걸렸음에도 싸우다 전사한 그의 최후와 바이킹의 생사관[3]을 감안한 패러디인 듯. 본인이 사망한 에피소드인 낙가 전투편(5)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다.

동흥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여거, 당자, 정봉과 더불어 당시 오에서 내로라하는 싸움꾼들이었다고 묘사된다. 제갈각이 상륙지점을 유수오와 동흥제 둘 중에서 어느 쪽으로 할지 고민하자 시간과 힘을 낭비할 필요 없다고 하며 여거, 당자와 동흥제에 직접 상륙할 것을 주장했지만 정봉의 반대로 정봉의 소수정예를 제외한 나머지와 함께 유수오에서 상륙해 올라가게 되었다. 이후 정봉이 시간을 끄는 동안 성공적으로 동흥제에 도착, 동흥제의 위군을 나머지와 함께 압도적인 힘으로 쓸어버렸다고 묘사된다.

낙가 전투 편에서는 손준의 수춘 공략에 참전했으나 손준이 수춘에 도착할 시점에는 이미 제갈탄이 수춘을 선점한 상태라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고 묘사된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유찬은 강행 중 병을 얻었고,[4] 퇴군 결정 뒤 제일 먼저 출발했지만 밀리고 밀려 최후방에 서게 되었고, 그 상태로 위의 추격군인 장반과 맞부딪히게 된다. 자신이 죽을 것임을 직감한 유찬은 같이 있던 조카에게 자신을 버리고 가라고 말한 뒤 장반과 맞서고, 결국 전사한다.

3.3.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

육손전과 여몽전에서 등장하는데, 병과는 보병. 실제 역사에서 동년배인 육손과는 하급 관리 시절부터 친구로 나오며 스토리 전개상 육손의 말상대로 계속 따라나온다. 대체로 지적이고 철두철미하며 예의바른 친구 육손과 대비되는 저돌적 호걸상으로 등장하며 육손전에 계속 출전한다. 이후 육손이 대도독에 오른 뒤에는 육손이 상관이라며 존대를 한다. 육손전 시작할 때 대화에서 머리를 풀고 노래를 불렀던 일화와 다리 근육을 잘랐던 일화를 육손이 이야기하는 등 디테일한 부분까지 나온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62
, 1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62 ( 이전 역사)
문서의 r ( 이전 역사)

[1] 황건적의 난은 184년 발발했지만 이후로도 스스로 황건이라 일컫는 반란군이 가끔씩 일어났다. 뒤를 보면 알겠지만 이 일은 손권 치세에 일어난 일임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이때의 황건적과 싸운 것 같다. [2] 사기·한서·동관한기다. [3] 바이킹들은 전사하지 않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병사나 자연사하게 될 경우는 자신을 칼로 찔러 죽여달라고 했다고 한다. [4] 이 때 유찬의 과거가 잠깐 묘사된다. 과거 능통 수하에서 맹활약했지만 손권에게 직언했다가 좌천당하고 손권 사후 간신히 중앙에 얼굴을 내밀 수 있었지만 얼마 안 가 이런 꼴이 된 비극적 인물로 묘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