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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25 14:01:26

왕연(전진)

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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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王兗
(? ~ 385)

전진의 인물. 신평군(新平郡) 저족 출신.

2. 생애

초기에 전진에 임관하여 중산(中山) 태수를 지냈고, 훗날 모용수 부견을 배반해 반란을 일으키자, 박릉(博陵)을 굳게 수비하여 선비족에게 굴하지 않았다.

태안 원년(385년) 11월, 애평제 부비가 황제로 즉위하자, 왕연은 평주(平州) 자사에 임명되었고 군공(郡公)에 봉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연의 무군대장군•조왕(趙王) 모용린이 박릉에 이르러 왕연을 공격하니, 성내의 양식과 화살이 모두 떨어졌다. 이에 왕연의 공조 장의(張猗)가 성벽을 넘어서 무리를 취합해 모용수에게 호응하였다. 왕연이 성 위에서 장의를 향해 꾸짖으며 말했다.
"경은 진(秦)의 백성이요, 나는 경의 주인이다! 한데 경이 무리를 일으켜 도적에 호응하고 감히 의병(義兵)을 칭하다니, 호칭과 실상이 어찌 이리도 심히 다를 수 있단 말이냐! 네 큰형은 예전에 동족과 마을 사람을 모아 성주(城主)를 몰아내려 하다가 하늘과 땅이 이를 용납치 않아 극형에 처해졌거늘, 아직 그 육신이 멸하기도 전에 경은 또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인가? 경은 나의 관리가 창으로 그대를 죽이고 그 수급을 내거는 것은 똑똑히 본 바 있다. 군자가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어찌 오늘날의 사람들을 취할 수 있을 것인가. 경의 모든 공로는 잊혀질지언정, 경의 불충하고도 불효한 일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과거 사람들은 충신을 구하려면 반드시 효자의 가문에서 찾아야 한다 하였는데, 경은 성내에 있는 어미를 버리고 돌아보지 않았으니, 어찌 경에게서 충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 악한 것이 끊이지 않는 이유란 바로 경과 같은 자들을 향해 이르는 말이다! 중주(中州)를 바로잡아 나라의 예의를 도모하지 않고, 노모를 헌신짝 버린 것만 봐도 경의 가문의 기풍이 얼마나 저속한지 알 수 있다. 내가 경과 더이상 무엇을 논하랴!"

태안 원년(385년) 12월, 조왕 모용린이 마침내 박릉성을 무너뜨리고, 왕연과 고안후(固安侯) 부감(苻鑑)을 살해하였다. 전진의 창려태수 송창(宋敞)이 오환 탁발부 병사로 이루어진 구원군을 거느리고 출병하였지만, 그가 이르기도 전에 이미 박릉이 함락되어 그대로 귀환하였다.